[이야기][교육농] 텃밭 없는 교사의 봄 (지문희)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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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교육농, 5월


텃밭 없는 교사의 봄



지문희 경기 저현고



2월, 스산한 겨울에 새로 발령받은 학교를 둘러보았다. 텃밭은 당연히 없었다. 아침 해만 비치면 작물이 잘 자라니, 나무 그늘이 지지 않는 화단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유난히 학구열이 높은 고등학교. ‘그로백이나 텃밭상자, 틀밭을 사용하기에는 예산이 없으니 1년 분위기를 보고 다시 시작해야겠네’ 하는 마음이 쉽게, 너무도 쉽게 생겼다. 가능하면 가짜 흙, ‘상토’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고, 해가 잘 드는 ‘땅’에 작물을 심고 싶었다. 담당 교사가 떠나도 지속가능한 학교텃밭을 만들고 싶었다.


봄이 왔다. 확실히 봄이 문제다. 따뜻한 4월,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무관님이 그늘진 화단에서 호미질을 하고 계셨다. 호미에 몸이 반응했다. 확실히 호미도 문제다.

“뭐 하세요?”

“응? 이게 다 둥글레야. 이건 이고들빼기.”

“진짜요?”

“여기가 산을 깎아 만든 학교잖아. 이고들빼기는 지금 캐면 야들야들하니 나물로 먹기 좋아. 내가 당이 있거든. 이리로 와봐.” 주무관님을 따라간 교비 뒤 화단에는 둥글레순이 가득했고, 나는 말,했,다. “이거 크면 제가 같이 캐 드릴게요. 저 이런 거 잘해요.” (뭘 잘한다는 건지.)



▲교비 뒤편에 자라고 있는 둥굴레.



그 후로 뇌는 자동 완성 기능을 탑재한 것처럼 제멋대로 내년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고등학교에서 수업이나 동아리가 아닌 ‘프로젝트’로 텃밭 활동을 하고 계신 숙명여고 강소연샘! 소연샘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올해 시작한 바로 그 ‘텃밭 프로젝트’라면 나도 따라서 여기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숙명여고의 맛있는 정원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한다.

• 퍼머컬처(지속 가능한 농업)를 테마로 한다.

• 팀으로 지원한 학생들이 기획서, 작물 일지, 보고서를 직접 작성한다.

• 현장감 있는 강연(2회)을 준비한다.

• 보고서는 진로와 연관된 주제로 세분화할 수 있게 지도한다(기후위기, 교육, 디자인, 번역, 요리 등).




봄과 동료교사의 열정과 기획력을 받아들인 후 다시 둘러본 학교. 겨울과는 다른 곳이었다.



곳곳에 텃밭 후보지가 보였다. 핑계였던 걸까? 할 수 없었던 이유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1. 아침에 해가 잘 드는?

아침에 해가 잘 들면 좋겠지만, 작물이 자랄 수 없을 정도의 음지는 아니다.

2. 땅?

후보지를 관리자와 상의해 보고, 안 되면 텃밭상자를 이용하자. 가능하면 예산을 확보해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해 보자.

3. 텃밭상자를 이용할 시, 상토 사용은?

상토를 사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학교 뒤쪽 화단에서 부엽토를 발견했다. 심봤다! (맞아, 여기는 산이었어.)

4. 담당 교사가 떠나도 지속 가능한 학교텃밭?

전에 근무한 학교 텃밭은 함께 동아리를 운영하신 샘께서 학생들과 설렁설렁 운영하고 계신다. 텃밭을 교사들의 산책 코스로 만들면 분명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것이다.



▲ 학교 뒤쪽 화단에서 발견한 부엽토. 떨어진 나뭇잎이 세월을 거쳐 묵히고 썩어 흙이 된 것. 미생물의 보고로 흙냄새가 아주 좋다.



올해 학교에서 새로 심은 메리골드와 꽃잔디다. 돌을 타원형으로 두른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이 돌에 앉아 꽃잔디와 메리골드를 즐기기를 의도했겠지만, 흙 두둑이 너무 높고 돌과 가까워 앉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그래서 관상용이다.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텃밭은 없지만 텃밭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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