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교육농]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상처받는 생명들이 있다 (김경희)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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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교육농, 5월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상처받는 생명들이 있다

 

 

중광초 김경희 



이른 봄 정문 상자 텃밭에 심어 놓은 삼색제비꽃들이 제법 자리를 잡았다. 삼색제비꽃 사이사이로 수레국화가 허리까지 자라 한두 송이 푸른 꽃이 활짝 피고 푸른 보리잎이 한창 올라왔다. 완두콩의 넝쿨은 손을 뻗어 하늘을 향하고 상자 가득 꽃다발처럼 푸른 잎과 꽃이 무성하다. 바늘꽃과 허브 잎도 자리를 한 자리 차지하고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반긴다.




앗, 벌써 5월이다. 밀려드는 메시지와 공문으로 컴퓨터 앞에 붙들려 있으면 어느덧 퇴근 시간을 넘기는 상황, 학부모 상담과 수업 공개, 아이들 위한 교과 보충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그 외에 잡다한 업무 등을 처리하다 보니 4월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올봄 유난히 쌀쌀했던 탓에 늦게 꽃을 내밀던 튤립은 4월 내내 환하게 피었다가 한순간 꽃잎을 떨어뜨리고 꽃대만 남았다. 사이사이 웃거름을 주고 부직포 상자를 한쪽으로 모아두니 그대로 작은 화단이 만들어진다. 튤립 사이사이에 작은 새싹들이 이젠 자기 세상을 맞이한 듯 고개를 내민다. 튤립을 심을 때 같이 뿌려주었던 야생초 씨앗들이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 푸른 잎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매일 나들이하는 우리 아이들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는지 반짝 관심을 보이던 텃밭 활동보다는 공놀이, 술래잡기가 더 재밌어한다. 하루 나들이 가자고 하면 우르르 운동장과 학교 정원 텃밭 사이로 사라졌다가 종이 치면 하나둘 나타난다. 우리 아이들이 나들이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 정원과 텃밭을 기웃거려보는데 아이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운동장 쪽에서 왁자한 소리만 가득하다. 마치 나랑 술래잡기하는 것 같다. 텃밭도 둘러보고 친구 나무도 둘러보면 좋겠는데... 교실로 들어와 나들이 잘했니? 하고 물으면 네 하고 대답한다. 일단은 좋다. 


아이들이 나랑 술래잡기하더라도 무조건 나가리라 맘을 먹고 아침엔 물주기, 4교시 끝나면 무조건 하루 나들이를 한다. 놀더라도 텃밭에서 놀아라 한다. 물도 주고 씨앗도 심고 이름표도 달아 보라고 말한 덕에 겨우 땅콩 씨 심고 옥수수 씨앗 심고 여러 가지 콩도 심었다. 해바라기 씨앗도 나들이 둘레길에 꽃잎이 진 튤립 사이사이에 구멍을 내어 부지런히 심었다. 얘들아, 텃밭이랑 친구 하자. 친구 나무도 만나고 심어 놓은 감자와 완두도 보러 가야지. 매일 가야 우리의 사랑으로 쑥쑥 자랄 거야.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텃밭과 정원을 여유롭게 거닐며 자연을 품어 보길 바란다.




누구보다 먼저 예쁜 꽃을 피워서 많은 사랑을 받은 매실나무와 산수유의 가지엔 가지마다 아이들이 매달아 놓은 나무 이름표가 눈길을 끈다. 햇볕이 좋은 곳이라 매실나무의 열매가 제법 굵어졌다. 나뭇가지마다 하얀 앵두꽃자리엔 초록색 앵두가, 연분홍 꽃가지를 자랑하던 살구 가지에도 초록 잎과 초록 열매가 보기 좋다. 올해는 예쁜 모과꽃을 못 보고 그냥 지나쳤다. 황금색 얼룩무늬의 모과나무를 바라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모과꽃이 폈다 졌나 보다. 나무 주변엔 모과 꽃잎이 흩뿌려져 있다. 너무 아쉽다. 선생님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놀이터 화단을 지나가다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가 묻는다. 뒤늦게 수선화가 피었다.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풍성하고 장미 넝쿨에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것 같다. 


곡우 지나고 5월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하는 일 없이 급한데 올 텃밭의 작물들은 좀 천천히 움직인다. 감자도 겨우 싹을 내고 완두콩도 한두 개만 싹을 내밀었다. 완두콩을 심었던 1학년에서 완두콩 싹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토마토 모종을 구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텃밭 작물이 잘 자라주면 좋은데 싹이 제때 올라오지 않으면 마치 내 책임이라도 되는 양 마음이 불안 불안하다. 완두콩엔 이젠 지주대를 세워 줘야겠다. 사이 사이에 쌈 채소와 고추와 토마토 등 모종을 심었다.


한마음 텃밭 울타리에 자리 잡은 상자 텃밭은 올해 4년 차이다. 3월마다 구청에 신청해 주문한 큰 플라스틱 상자 텃밭인데 첫해는 목화와 당근, 도라지, 수레국화를 심어 잘 키웠는데 두 해째는 전해 씨앗이 싹터 당근을 키웠고 국화를 삽목하여 국화꽃도 보았고 토마토와 고추 둥근 가지 등을 심었다. 그런데 세 번째 해에는 열매채소와 잎채소는 비실비실 잘 자라지 못했다. 흙과 퇴비를 보충했는데 땅이 힘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까치콩과 동부갓끈콩은 울타리를 잘 감싸 뻗어가 꽃과 열매를 보여주었다. 흙은 어렵다. 작년 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웃거름과 왕겨를 뿌려주고 겨울을 보냈다. 올해도 완두콩, 여러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심었지만 잘 자라줄지 지켜봐야겠다. 도라지, 토끼풀, 당근의 새싹이 새로 심은 채소 모종과 함께 나란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사이로 까치콩과 제비콩, 유홍초, 풍선초을 심어 울타리을 초록 커튼으로 덮어 볼 상상을 해 본다. 


작년 구청 텃밭 담당자에게서 늦은 연락이 왔다. 2월까지 연락이 없길래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우리 학교에도 새로 텃밭이 더 마련되나 보다. 기쁨도 잠시, 막상 텃밭이 만들어질 장소를 살펴보니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작년 겨울 삭막할 무렵엔 텃밭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푸릇푸릇 싹이 돋아나니 텃밭 자리에 자리 잡은 새싹과 풀들 모습에 마음이 안쓰럽다. 이제 이곳에 틀밭이 만들어진다. 5월은 새로운 틀밭에 허브랑 다년생 작물을 심어 두고두고 보련다. 마음먹었다. 드디어 4월 29일 틀밭과 흙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틀밭을 놓으려는 곳에 두릅나무, 장미나무가 걸린다. 새로 올라온 쌈배추 모종들이 아깝다. 레몬밤과 서양톱풀 허브를 뽑아야 한다. 두릅나무는 학교 울타리에 옮겨심고 허브는 되는대로 화분에 옮겨 심었다. 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상처받는 생명들이 있다. 미안하다. 







3, 4월 푸르름을 자랑했던 교실 상자 텃밭의 해바라기들이 키가 쑥 커지면서 비실비실하다. 액비를 뿌려주고 누렇게 변한 잎을 잘라주고 밀집한 싹들을 정리해 주었지만 휘청휘청하다. 아무래도 교실에서 자라는 친구들이라 햇빛이 부족한 듯하다. 해바라기 사이로 보리가 푸르다. 꺼끄러기 가득한 보리 이삭이 싱그럽다. 5월엔 해바라기 꽃이 피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 아이들과 보리를 거두고 보리 빨대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조엔 창포가 제법 자라고 이름 모를 물풀들이 올라왔다. 늦게 심은 고구마 화분엔 붉은 고구마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제 작년에 갈무리해둔 벼를 심어 모를 내야 할 텐데... 5월 마음만 분주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저절로 잘 자라주는 식물들이 고맙다. 제때에 물이라도 충분히 줄 수만 있어도 절반은 성공이다. 




새로 얻은 텃밭에 여기저기 고개를 내미는 들깨와 허브를 적당한 자리로 옮겨심고 꽃과 채소 모종을 옮겨 심어 가급적 흙이 드러나지 않도록 작년에 모아둔 볏짚으로 덮어 주고 잊지 말고 물도 잘 줘야겠다. 4월 옥수수를 심은 자리에 다시 남겨둔 옥수수 씨앗을 사이사이 심어두면 오래 두고 옥수수를 수확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햇볕 좋은 곳 완두는 지금 한창 하얀 완두꽃을 피우고 있다. 무성하게 자란 어린 열무도 솎아 주고 상추도 잘 거둬 때마다 잘 챙겨 먹어 보자. 쑥쑥 자란 부추 거둬 아이들과 부침개도 해 먹을 생각에 맘이 설렌다. 토마토와 고추에 지주대를 세워 주고 고개를 내민 풀과도 친구 하는 몸이 바쁜 만큼 저절로 얻어지는 풍성함이 기대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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