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교육농]자연의 일부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강주희)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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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교 텃밭, 8월


자연의 일부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주희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서울 우장초




8월. 잠깐 멀리 했던 학교의 텃밭은 괴기(?)스럽다. 주무관께서 미리 손을 봐 주었다면 모를까(대개는 여름 작물을 모두 거두고 개학 직전에 밭을 깨끗이 비우니), 8월 방학 한가운데의 텃밭은 우리가 마주하는 텃밭의 풍경 중 가장 ‘자연스럽다’. 학교 텃밭은 방학을 맞이하면서 한 회기가 마무리된다. 교사는 뜨거운 볕 아래의 노동으로부터도 잠시 자유로워지고, 관리되지 않는 텃밭이라도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된다. 곧 말끔히 갈아엎고 가을 농사를 준비할 테니까. 


하지만 방학은 ‘순환’과 ‘연결’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우선 풀. 방학 즈음부터 노지의 텃밭은 온갖 풀들이 씨앗을 맺는 시기다. 키도 훌쩍 자라서 나의 꽃이나 작물들을 뒤덮는다. 풀풀농장(7월 교육농 조합원 연수로 초대한 이연진 농부님의 농장)처럼 풀들을 그대로 남겨두었다가 모종을 심기 직전 살짝 걷어내는 일은 여러 가지(경관의 문제, 풀 사이의 곤충, 모기와 같은 해충의 문제 등)로 망설여진다. 그렇게 방치되어 관리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장소는 내 교실 말고는 학교 내에 존재하기 어렵다. 나부터도 그런 텃밭이 어쩐지 미안해지고 조금이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풀들이 작물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는 ‘비어 있기 때문’이다(교육농 웹진 6월호에서 이야기한 바 있음). 작물을 심기 위해 드러난 흙 피부는 풀 씨앗들에게도 뿌리내리기 좋은 장소이다. 보도블록,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에도 뿌리를 내리는 강인한 생명력이니 훤하고 넓은 두둑은 풀씨들에게도 새 희망의 광장이다. 배추나 무를 심기 위해 풀들을 제거하는 순간, 새 생명의 풀씨들은 어디에서든 날아와 자리를 차지한다. 다행히 8월 중순(처서 이후)부터는 풀의 기세가 한풀 꺾이기 때문에 6~7월처럼 위협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땅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풀 씨앗들은 다음 봄에 위풍당당하게 그 위엄을 뽐낼 것이다. 6월에 한 번, 7월 장마 직전에 한번 풀들을 관리(뿌리만 남기고 잘라주기)했다면 8월은 풀씨가 다시 내려앉지 못하도록 풀들을 베어내어 퇴비통으로 보내는 일이 조금 수월할 것이다. 예초기로 자르는 것은 금물. 예초기는 풀들의 생장점을 잘라내지 못하고 생명에 위협만 가한다. 위협당한 풀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키를 올리고 꽃을 피우거나 씨앗을 맺는 전투를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이미 맺힌 씨앗들을 사방으로 널리 날려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톱낫을 이용하여 지상부와 땅 속 5밀리까지는 세심하게 제거해주어야 땅(과 미생물)을 지킬 수 있다.


텃밭의 위치가 햇볕이 쨍하게 드는 자리여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관행농의 뿌리이거나 자연의 순환 사이클이 건강하게 작동하는 시대의 유산이 아닐까. 나무 한 그루 없는 너른 대지에 몇 가지 작물을 대량으로 키우고 수확하여 돈으로 교환하는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시대, 그 때문에 일그러진 자연 순환의 고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교사인 것이 고맙다. 


지루하리만치 반복하고 있지만, 건강한 밭에는 흙과 미생물, 작물과 지상의 무수한 곤충과 새들의 연결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양한 종의 식물들, 먹거리를 생산하는 나무를 포함하여 일정 수준의 다양성을 보장할 때 텃밭을 통해 그 주인과 일가족의 자립이 가능하다. 퍼머컬처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목표로 자립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품종 소량 생산(대략 300평의 논과 100평의 밭)이 필수가 된다. 최소한의 이 공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자립’이라는 단어를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나의 자립 가능성을 감히 가늠해 본다. 소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 이전에는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한 농사가 중심이 되고 남은 잉여 생산물을 이웃과 교환하는 수준에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농업은 자본에 의해 고도로 전략화되고 기능화되었다. 따라서 그렇게 다시 회귀된다는 것은 어쩌면 자본의 몰락이거나 기후 위기로 인한 인류세의 종말만큼이나 비극적인 비약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지구의 임계점이 6년만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 앞에서 나의 생존을 위한 자립은 선택의 영역으로 놓아 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연진 농부의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를 짚어 낼 수 있었다. 풀을 베어 내고 제거하는 일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과 풀과 공생함으로써 얻는 흙의 투수성, 보습성과 통기성, 그리고 영양공급과 흙의 보전까지. 풀들은 소위 ‘떼알구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게다가 노동(풀 뽑기, 물 주기, 거름 주기 등)과 경제적 투입(물, 비료, 화석연료 등)을 줄일 수 있다. 


학교 텃밭을 시작한 이후, 풀을 과연 없애야만 하는가? 자문해왔지만 답을 얻지 못했었다. 우리반 학생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선생님, 꼭 뽑아야 해요?’ ‘안 뽑으면 안 되요?’라던가 ‘불쌍하다’(쓸모없는 풀이 뽑혀나가는 순간 동질감을 느끼는 아이의 눈빛을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는 탄식까지.


풀, 특히 다년생 풀일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며, 깊은 뿌리는 흙을 깊숙이 경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땅 위로 자라는 만큼 내리는 뿌리에는 그 수를 가늠할 수 없는 미생물이 공생하고 있다. 미생물은 흙 건강의 지표이며, 작물의 건강과 영양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풀을 뽑지 않는다는 것은 미생물을 보전한다는 의미이다. 뿌리는 광합성을 통한 삼출물과 탄소를 미생물에게 내어주고, 뿌리 삼출물을 얻은 미생물들은 그 보답으로 토양의 다양한 유기물과 미량요소를 버물인(실제로 암석을 분해하는 미생물, 동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 식물의 몸이 부드럽고 단단한 정도에 따라 모두 다른 미생물들이 분해한다) 걸쭉한 국물을 선물한다. 미생물들이 제공한 걸쭉한 국물은 작물을 건강하게 하는 동시에 각종 미네랄과 미량 요소를 품게 한다. 이것이 작물의 미묘한 맛을 다르게 할 뿐 아니라 작물의 영양분의 함량을 다르게 한다. 풀의 뿌리를 남겨두는 것(땅을 갈지 않는 것)은 미생물을 기르는 일이며 흙을 기르는 일이자, 탄소를 저장하는 일이다. CO2(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으로 만드는 광합성의 부산물로 산소를 내보낸다. 잉여 당은 열매 또는 미생물을 기르는 먹이로 이용되며 토양 우주의 미생물의 수만큼 탄소는 토양 내에 가둬진다.


게다가 우리가 성가시게 하는 풀들의 대부분은 섭취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약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어렵게 모시지 않아도 잘 자라 우리를 먹일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갖가지 풀을 먹는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어서 어렵지 않다. 풀을 가리지 않고 기르고, 풀과 함께 먹는 삶으로의 전환(귀환!),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전환적 삶이 되지 않을까. 기후위기-식량위기 시대가 도래하여 풀을 뜯어 먹을 수 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하기 전에 내가 먼저 능동적으로 풀을 키우고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은 심한 비약은 아닐테다.

 

방학을 앞두고 나는 《생명을 먹어요》라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서툴지만 힘이 있으며, 요령없이 단순하면서도 보는 이의 눈길을 깊이 이끈다. 10년 전에 출간이 되어 절판되었다가 다시 재출판 된 이 이야기에는 ‘마사노부’라는 소 도축업자가 등장한다. 마사노부는 자신이 잡을 소의 눈을 볼 때마다 늘 ‘곧 이 일을 그만 두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미야’라는 소를 데리고 온다. 소에게 이름을 붙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친구처럼 형제처럼 기르고 살아온 소다. 하지만 ‘명절을 쇠기 위해, 손녀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미야를 도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사노부에게 이야기하면서 ‘잘 부탁드린다’고 못내 깊이 고개 숙인다. 손녀는 그 곁에서 미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운다. 이 모습을 괜히 봤다고 생각한 마사노부는 다음 날 출근하지 않기로 한다. 


한편, 마사노부에게는 미야의 친구 또래의 아들이 있다. 아들은 학교 수업 공개 때 아빠가 ‘아주 평범한 정육점에서 일한다’는 발표를 했다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빠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것’이라는 응원과 자부심을 고쳐 받는다. 이후 아들은 미야를 잡지 않기 위해 출근하지 않으려는 아빠에게 ‘아빠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아들의 부탁에 망설이며 출근한 아빠는 미야를 잡고, 다음 날 할아버지는 마사노부를 찾아와 미야의 몸(소고기)를 감사히 먹게 된 이야기(손녀를 설득하여 함께 먹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사노부는 ‘이 일을 좀 더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 딸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읽어 주며 다시 흐느꼈다. 슬픔보다는 나의 원죄, 생명을 먹어야만 나의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책의 옮긴이의 메시지)을 들킨 탓이다. 얼핏 육식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그림책. 하지만, 육식을 줄이면 우리의 원죄가 가벼워지는 것인가. 육식과 채식의 문제로 마주하는 곳에서는 마치 선과 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처럼 중요한 사실이 곡해된다. 그래서 다수의 이들은 육식의 문제에 날카로워지고, 채식의 문제를 배척하기도 한다. 물론 육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처럼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채식이면 그만인가. 화석연료에 기대고, 흙을 마구 파헤쳐서 탄소와 땅의 지력, 무수한 생명들을 유린하며 길러내는 단일 작물들의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 파괴되는 토양의 무수한 생명들에 대한 문제는 공장식 축산업의 비극만큼이나 아프다. 육식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채식을 이야기하기보다 내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에 대한 겸손과 감사로 생명을 바라본다면 인간 종만을 위한 다른 종의 희생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따뜻해지리라.

 

 

채종


지난 달에도 채종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초봄에 심은 꽃이나 허브들은 7월이면 씨앗을 맺지만, 오이와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의 채종은 이제부터다. 그간 바쁘다고 지나치기만 하던 작물의 생김새와 자람, 꽃의 짐, 씨앗의 꼴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여름 열매 작물들은 씨앗의 크기가 크고 과육 안에 보존되어 있어 꽃과 허브들에 비해 채종이 쉬워보이지만, 과육과 즙을 제거하는 일이 만만찮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엷은 막을 제거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과, 배, 감 같은 과일의 단면을 잘라 씨앗을 관찰하는 일만큼 오이와 토마토, 가지의 씨앗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절반으로 자른 오이나 토마토, 고추의 씨앗을 이쑤시개로 채종하는 방법을 간단히 안내한 뒤, 교실 뒤 사물함 위나 창가에 며칠간 올려두어 충분히 보게 한다(주의. 부지불식간에 곰팡이가 피어난다). 개학 즈음부터 전시되는 씨앗은 사각 종이봉투에 담아 입구를 열어둔 채로 10월까지 그대로 놓아두는데, 초록의 줄기가 갈색으로 변해가는 이 전시만으로도 교실은 가을이 된다. 게다가 먹지 않고 내 손으로 골라낸 씨앗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도 일종의 자립과 자존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 재작년 3학년 우리 반 채이는 방학 직전 나온 급식 토마토의 씨앗을 휴지에 챙겨가서 가을과 초겨울까지 베란다에서 키우며 그 소식을 온라인 학기 내내 전해 주었다.



▲줄기째 담아 교실 이곳 저곳에 전시한다. (오팔바질 씨앗줄기)


▲허브들이나 씨앗들은 수확직후 소쿠리나 종이봉투에 담아 사물함 위에 그대로 둔다. 충분히 말려야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 지난해 시*이는 특히 채종하는 작업을 도맡아 즐겨했다.

 

 

심는다


배추나 무, 갓, 쪽파로 대표되는 가을 작물(방효신 조합원의 식재 팁 참고) 외에도 초봄에 심었던 허브나 상추류는 8월 초에 다시 심을 수 있다. 


경운하지 않는 곳이면 여름에 떨군 작물의 씨앗이 어느 사이 자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루꼴라, 딜, 고수, 밀크씨슬, 봉숭아는 9월이면 그늘이 길어지는 우리학교 텃밭에서도 잘 자란다. 루꼴라나 딜, 고수, 봉숭아(다시 핀 봉숭아 덕에 손톱 물들이기는 9월에도 가능하다. 이상 기후로 첫눈이 12월 끄트머리에 내린다 해도 우리의 (첫)사랑을 이룰 수가 있다!)는 살살 직파를 하면 되고, 밀크씨슬(서양엉겅퀴)처럼 씨알이 굵은 것은 모종을 내어 옮겨주는 것이 좋다. 한여름 모종을 내는 일은 초봄 모종 내기보다 쉽다. 온습도가 맞기 때문에 싹이 튼 후에는 반그늘에 두기만 하면 잘 자란다. 본잎이 5~6장 될 때쯤 본 밭에 옮겨심는다고 하는데, 대략 2주~3주 사이가 된다. 그래서 8월 첫 주~둘째주 초반에 모종을 내면 개학즈음 심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모종을 내려고 하는데, 일주일 정도 앞당겨서 모종을 내면 본 잎의 수가 5-6장, 첫 본잎이 제법 자라 개학에 맞추어 심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입추에 씨를 뿌리고 처서에 옮겨심으라고 했구나!)



▲8월은 온상이 없어도 모종내기가 수월하다. (8.13)

 

▲씨앗을 넣은지 4일만에 떡잎이 돋고 (8.17)

▲보름 정도만에 본잎이 돋는다. (8.26)



배추 밭에 봄에 심은 메리골드가 심겨져 있다면 그대로 두고, 카모마일도 심어 보자. 가을에 배추를 심어 보아 알겠지만, 배추벌레 때문에 학교에서의 배추농사는 어려운 것이라 애초부터 무만 심는 학교들도 있는데, 무- 배추 –무로 섞어서 배추 심기를 도전해 본다. 무농약은 불가능하지만, 메리골드-카모마일-난각칼슘, 섞어짓기와 밀식(땅이 보이지 않도록 빽빽이)만으로도 어느정도 배추벌레와 알을 막을 수 있다.

 



토종(재래종) VS. 외래종 

- 여름 연수 후기


8년 동안 학교 텃밭의 경험은 푸성귀 몇 종과 열매채소 몇 종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허브와 꽃, 외래종 작물까지 그 경계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애초부터 판매를 위한 생산을 목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새롭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고, 교사의 기쁨이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 늘 새로운 작물을 심고 키우는 것에 열의를 다했다. 매일같이 나가서 들여다보는, 어지러우리만치 뒤섞여 있는 다양한 작물들을 통해 한 가지 기준과 기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교사의 고백을 보여주고 싶었다. 똑같은 작물들만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을 때 병해충에 약해지는 밭과 다르게 20명 남짓한 너희들끼리 서로의 합을 맞추어보고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건전한(건강의 가치보다 더 바람직할 가치) 우리반의 다양성을 그대로 추구한달까. 


그렇게 다양성의 이름으로(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다양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종 다양성,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농 다양성) 늘 새로운 종자를 보면 취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토종과 외래종의 경계를 넘게 되고,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를 밟으면서 토종에 대한 경계(해당 지역에서 3년 이상을 그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고 길러진 종자는 지역 토박이 종자로서 인정된다는 배움이 있었다)도 느슨해졌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농답게(아직 ‘교육농답다’를 찾는 중이다) 종자의 ‘토종’에 대한 화두는 무시할 수 없다. 10여 년 전 유전자 변형 종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몬산토로 상징되는 다국적 기업의 종자 특허권 소송으로 시끌시끌했었다. 농민이 채종할 권리를 제한하는 일이자 종자 주권과 식량 안보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음을 여러 환경 단체들을 통해 알게 되어 지속 가능성의 수업 주제로 다룬 것이 나의 종자에 대한 출발점이었기에 조작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먹거리, 식량 안보와 종자주권을 위한 종자의 문제로서 토종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강하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이번 여름 연수에서 배이슬 조합원은 문화의 측면에서 ‘토종’은 토종이 아닌 것에 대한 배척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종자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디부터 국적이 ‘한국’인 순종 종자(본토 종이라는 어휘가 가까울 것 같다)는 없음을 기준할 때 ‘토종’을 고집하고 사수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화두를 던졌다. 토종 종자, 국산 종자의 보호과 계승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지역, 국가의) ‘재래종’ 종자를 내 땅에서 심고 기르고 채종하기를 반복하며 기후위기에 대응(이 땅에서 나고 자라던 작물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판에 한 가지라도 더 이 땅에 맞는 종자를 육종하는 것)하는 동시에 종자 주권의 길을 확보하는 일에 방점을 두고 있음으로 이해되었다. 실제로도 다양한 종자를 도입하여 수 년에 걸쳐 이 땅의 씨앗으로 채종하는 일을 실험적 단계지만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토종에 대한 의미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어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재래종,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농작물이나 가축의 종자. 다른 지역의 종자와 교배되는 일이 없이, 어떤 지역에서만 여러 해 동안 기르거나 재배되어 그곳의 풍토에 알맞게 적응된 종자를 이른다’고 나온다. 1970년 8월 ‘토종’이라고 순화하였단다. 토종의 뜻에는 과연 순종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질문이 생긴다. 토종에 대한 순종의 조건은 필요조건일까, 충분조건일까.


‘토종’씨앗. 미국이나 캐나다의 재래종이 대한민국 서울, 화곡동의 텃밭에서 5년을 이어가며 채종되었다면 그것은 한국의 재래종일까, 아니면 여전히 외래종일까.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 귀화한 많은 외국인은 한국인일까, 외국인일까의 문제처럼 선명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해당 지역에서 순환의 고리가 끊긴 종자를 대하는 자세는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순종의 개념에 치중하다보니 ‘로컬’의 의미를 놓치는 것 같다. 글로벌- 세계화가 된 식문화에 대한 우려로 가속화되는 반생태적인 문화(화석연료에 기반한 시설 재배와 유통 구조, 소비의 문제)는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글로벌의 대응어로서 로컬은 중요하다. 로컬은 순종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찌감치 로컬의 문화를 이야기한 헬레나 호지는 다품종 소량 생산, 지역농, 가족농, 작은 생산과 지역적 소비가 중심이 되는 ‘지역화’를 이야기했다. 지역화된 생산과 소비, 그 지역에서 길러서 해당 지역에서 유통하고 소비하는 문화. 그를 통해 거대 자본과 다국적 기업, 자유주의 시장 경제 논리로부터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씨앗의 문제로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토종, 재래종의 문제는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나는 왜 계속 채종을 할까. 교육농 조합원 연수를 통해 채종을 알게 되고 3~4년간 모은 씨앗들이 대여섯 상자. 어지간한 농부보다 더 많은 씨앗이 있는 교사다. 나는 왜 계속해서 씨앗을 거둘까. 즐겁다. 내 마음대로 어디든 심을 수 있다. 맘껏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든든하다. 이 정도면 경제적인 수익을 차치하고 씨앗을 소유하고 누려야 하는 의미는 여느 농부와 비슷하지 않을까. 뭐, 농부도 아니고 씨앗 문제를 이렇게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생태적 전환’을 말하고자 하는 학교와 교실, 교육농이라면 짚어 볼 문제다. 봄마다 해외에 돈을 내고 토마토 고추 등을 심고, 고구마 양파를 먹을 때마다 일본에 돈을 보내고 있으니 언제든 그 먹거리들이 제한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테니까. 종자 주권이니, 식량 위기니 하는 말들이 아직은 대단히 멀게 느껴지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가까운 미래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공생의 철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함께 생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공생의 철학과 기술을 교육농이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➊ 교육농 여름 워크숍이 7월 29일~30일 전북 진안에서 열렸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님의 안내로 교육농을 실천해 온 마령초 교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때 마령초 선생님들이 나눠 주신 풀 음료수의 단맛이 더위와 갈증을 금세 가시게 해 주었다. 감사드린다) 마령활력센터 김춘자 님과는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든농장을 방문해서는 청년 농부로서의 생계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목격하며 들판의 풀로 음료수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교육농을 조금은 더 풍부화하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참고 도서


▲토양의 균근균(각종 곰팡이와 방선균, 고초균)과 나무 뿌리가 공생하는 메커니즘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식물을 공격하는 해충들에 대응하는 방어 체계(나무의 뿌리가 신호 물질을 통해 선충을 불러모으고 선충이 해충 애벌레를 해결해 주는 공생과 연대)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었다.


▲퍼머컬처를 재생 농법, 자연 농법, 유기 농법 등의 농법이나 농기술로 제한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다각적이고 유기적인 생태적 연결, 설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섞어짓기, 좋은 흙, 잡초 등 텃밭의 생태적 순환요소들을 경쾌하게 알려준다. 아이들과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활동들이 제시되어 있어서 굿!


▲ 겸손의 시선으로 먹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 육식, 채식, 그리고 자연의 순환에 기대는 일에 한 걸음 더 섬세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물꼬를 틔워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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