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몸에 각인될 기억 만들기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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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몸에 각인될 기억 만들기

- 윤상혁 서울시교육청 학교정책안전기획관 미래교육기획팀

 

전 서울 한성여중 수학교사. 도봉산 무수골에서 학생들과 텃밭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해 왔던 이. 교장으로 일하다 임기를 마치고는 평교사로서 근무하다 퇴직했던 고춘식 선생님과 함께 학교 변화를 꿈꾸었던 이. 쉼 없는 독서와 공부로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서 열정을 쏟던 이. 벗 카페에 꾸준히 수업일기와 고민을 나누었던 이. 수업을 보고 싶었으나 어느 날인가 교육청에서 일하게 됐다고 해서 못내 아쉽기도 했던, 오래된 미래 윤상혁 조합원. ‘오래된 미래’는 그의 별칭이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로 그 오래된 미래의 꿈을 담은.

아마도 그는 ‘교육농’이라는 말을 무척 반겼을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학생들과 이어오던 텃밭 동아리를 새로운 의미를 담아 키워갈 가능성이기도 했을 테니.

그를 지난 3월 25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만났다. 그가 걷기부터 할지 점심부터 먹을지를 물었으나, 이날 봄 기운이 너무 좋았다. 인왕산 자락의 둘레길로 끌려가 1시간을 걸어서야 경복궁역 금천교시장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 동아리는 어떻게? 현재도 이어지고 있나?

 

학교에서 나오면서 동아리 활동만이라도 맡을 분을 찾았으나, 맡을 만한 분들은 이미 다른 동아리를 하고 계셔서 아쉽지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무수골 텃밭을 찾았을 때 첫 기억이 새롭다. 도봉역에서 내려 화려한 도심 냄새를 조금씩 떨군다 싶을 때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던 텃밭. 도시 생활자들은 마음만 내면 주거지에서 대중교통으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런 풍광에 취할 수 있다. 그는 2005년부터 학생들과 함께 주말 농장을 찾았다고 했다. 2018년 교육청 일을 하면서 접게 되었으니.

 


 ▲ 2017년 여름. 도봉산 무수골. 환경동아리 오래된 미래 학생들과 함께

 

그가 벗 카페에 올렸던 그의 무수골 기억 일부를 따와 본다.

 

“버스에 내려 농장에 다가갈수록 풀내음이 진동한다. 기분 좋은 냄새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미리 나눠준 봉지에 채소를 수확하여 담고 있다. 대부분 고추다. 상추는 더운 날씨에 대부분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들풀이 무성한데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농장 운영자께서 관리를 잘 해놓으셔서 열매가 풍성하다. 방울토마토는 이달 말쯤 돼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손을 꼽아보니 올해로 12년째다. 멋모르고 텃밭을 시작했는데 아직도 모르긴 매한가지다. 부끄럽다 … 농장에 오는 길이 쉽지 않다. 농사가 직업인 사람에 비하면 말 그대로 체험 수준에 불과한 일인데 이조차도 버거워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가끔 학교를 찾는 졸업생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도 바로 텃밭이다. 몸으로 각인된 기억은 오래 간다.”

 

교육농을 내걸고 텃밭에 몸을 실으면서 제일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흙냄새와 금세 어울어지는 듯한 몸의 느낌이었다. 왜 좋은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알 수 없다. 서울에서 교육농 공부를 하러 홍동으로 여주로 길바닥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좋았다. 텃밭에 이르기까지가 문제이지 일단 그 앞에 서면, 딱! 좋았다! 버거운 학생, 사람들도 있겠지.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그의 졸업생들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교육은 몸에 새겨질 그 무엇에 해한 기대이기도 하다.

  

 

지난 교육농 총회에서 교육농 공통 강의안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 이후 교육농 운영위에서 공통 강의안 출발로 교육농을 설명할 말들 정리부터 하자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 키워드를 몇 가지 제안해 달라.


의.식.주.

 

 

의식주?

 

기본이다.

의. 과연 우리 학생들의 복장은 교육에 적합한 복장인가? 어떤 공부를 염두에 둔 복장인가? 이런 질문이다.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의 복장이 적절한 것인가?

식. 학교에서 먹는 음식은 어떠한가? 외부에서 조리돼 와서 학생들은 그냥 먹기만 하는, 소비자로서만 급식을 대한다. 학교에서 수확하고 요리에도 참여하는 과정들이 설계된다면 먹는 과정이 나눔 과정이 될 것이다.

주. 지금의 학교는 주입에 적절한 공간이다. 왜 지금과 같은 학교 공간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의식주라니. 식상한 말이었다. 학교 다니면서도 졸업하고서도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라고 얼마나 많이 들은 말인가. 어? 그런데? 정말 식상한 건가? 입고 먹고 사는 공간이 온전한지 따지고 드는 데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학교’라는 곳의 의식주 문제는 어떠한가? 어떻게 학교를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식주가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문제화가 된 지는 오래고 이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사나 학생이나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접근하는 인식과 방법이 달라졌으며, 그에 따른 학교 운영 시스템과 공간 구조도 바뀌고 있다. 다만 의식의 변화가 여전히 그 흐름에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덧붙여 교육농 연수 중에 배이슬 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이와 같은 사례를 잘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토종 씨앗을 예로 들어서 지역마다 다른 씨앗, 다른 조리 방법이 있지만, 토종 씨앗의 강조는 오히려 다양성을 저해하는, 동화를 은연중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토종 씨앗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 준 경우다. 베트남 가지와 관련해서도 인상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엄마가 베트남 분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 학생의 얘기까지. 이런 이야기들이 교육농으로 연결된다.


 

 

교육농과 수학 교과로 연결은 어떤가?

 

수학은 효율성, 경제성을 따지는 교과이기도 해서 교과까지 가려면 멀다. 수확을 기대하는 밭 디자인은 생산성 논리를 반영한 것일 테고. 다만, 굳이 수학 교과가 아니어도 이 말은 하고 싶다. 배움은 끝이 없다. 수확을 많이 못 해도 괜찮다. 하하하.

 


학교 현장과는 다른 교육청의 일을 해 오면서 갖게 된 문제의식이 있나?


현장의 성과가 교육청의 성과로 사유화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서는 학교 문화가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공문으로 일을 하기보다 학교 혁신 관련해서 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진행했다. 그런데 현장 담당자가 바뀌면서 무소용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해 오던 분이 다른 학교로 가면서 일을 맡으신 분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 일이 맥락을 상실하게 되면 교육청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업무를 맡기는 경향이 있다. 바뀌어야 한다.

 

또 한 가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교육과정’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다. 전통적으로 학교에서 교육과정은 단순히 실행의 영역이었지 사유의 영역이 아니었다. 탑다운 방식으로 국가 교육과정이 만들어지면 학교는 그것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것도 국가 교육과정을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 흐름이 바뀌고 있다. ‘국가’에서 ‘학생’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학생의 삶의 맥락 속에서 교육과정을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과서에는 그런 것들이 담길 수 없다. 결국 학생에 대한 이해와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교육청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그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마무리 질문. 몇몇 분들과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 관련해서 조합원들께 짧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연구소 회원 가입해 달라? 하하하. 앞으로 연구소는 왜? 무엇을? 어떻게? 세 가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녹색교육, 지속가능교육, 기후위기대응교육 등에 대해 초중고가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은 다른데 답은 다 똑같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다 똑같다. 급별로 달라야 한다. 연구소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그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하는 곳이다. 현재는 연구소 준비모임을 꾸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가까운 시일 내 포럼 형태로 출발을 선보이고 싶다.

 

그는 책이나 공부모임을 자주 소개한다. 언제 이런 책들을 다 읽나 싶은데, 공부를 즐기면서 하는 부가적인 일인 듯한 인상을 받는다. 환생교(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의 ‘기후위기, 학교교육 변화를 위한 학습’ 공부를 그가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서는 공부를 실천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안다. 그렇기에 모임이 만들어지고 변화가 거듭된다. 그의 연구소 준비도 모임 공부도 그 길에 함께하고 싶은 이들의 에너지로 빛을 발할 수 있길 기대한다.

 

풀씨

 

덧. 그에게 책 추천을 부탁했다. 그의 짧은 독후감을 덧붙여 소개한다.

 

▲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롭 닉슨, 에코리브르, 2020

 

전환 시대의 교육과정은 탈출, 애도, 각성을 키워드로 해야 한다

 

그루밍 환경범죄로부터 탈출(벗어남)

좀 과장해서 말하면 지난 20년 우리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일종의 ‘그루밍 환경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생태 환경의 파괴를 짐짓 고상하게 꾸짖으면서도 근본적인 변화와 혁명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희망과 절망의 반복, 기대하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관하고 외면하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다가감)

알도 레오폴드는 “우리는 오직 스스로가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윤리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대멸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기억하고 기록할 것.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 없이, 그들이 존재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 없이 우리는 그루밍의 유혹에 끊임없이 빠져들 것이다. 계속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결국 타락하게 될 것이다.

 

행위 주체들의 각성(거듭남)

독하게 반대하고 끝없이 불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야 한다. 반대와 불복종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반대하는 것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불복종하는 것은 앞장서서 이끄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순응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혁명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전환의 핵심은 ‘자율’과 ‘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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