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황량한 학교 텃밭에 다시 섰다_방효신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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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량한 학교 텃밭에 다시 섰다

- 서울 세검정초 방효신 교사


방효신 교사는 2020년 한 해를 자율연수휴직으로 충남 홍성군 홍동면 풀무학교 전공부(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과정 생태농업과, 이하 전공부)에서 보냈다. 직전 해까지 교육농 연수를 기획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였기에, 그 에너지가 그를 이 공부로 이끌었는가 싶었다. 2019년 그의 근무처인 서울 세검정초 학교 텃밭을 찾았을 때, 그가 학생과 텃밭에 함께하며 웃던 모습이 어찌나 해맑던지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었다. 2021년, 그가 다시 학교 텃밭으로 돌아와 지난 1년의 공백을 마주하고 있다. - 풀씨

 

▲전공부 입학 전, 2019년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를 찾았을 때. 마침 1학년 학생과 텃밭 활동을 막 마치고 올라온 순간이었다. 학생의 얼굴도 발갛게 익고 물을 주느라 실내화가 흥건하게 젖었다. 학생도 멋지고 교사도 멋지고. 교사가 학생의 호흡에 척척 맞추어 주는 것을 목격할 때 그들의 모습에선 빛이 난다.



자율연수로 1년을 전공부에서 보냈다. 그 계기가 뭔가? 교사로서 재직 중 1회만 허용된 휴직 기회이기도 한데.

 

교사 활동 중단 기회를 갖고 싶었다. 1년의 기간이 괜찮았다. 교육농 연수 경험이 홍동으로 이끌었다. 이제까지 학사력에 따라 봄과 가을로 나누어 학교 텃밭을 운용해 왔다. 이런 분절된 느낌이 아닌 1년 흐름이 끊이지 않는 농사를 짓는 경험을 해 보고 싶기도 했다.

전공부 과정이 2년이다. 자율연수 휴직은 1년만 할 수 있으니 입학을 할 수 있을까도 염려했는데, 그동안 홍동을 오가며 박형일 샘과 같이 교육농을 공부해 온 이력이 있어서 가능했구나 싶다. 자율연수휴직은 그 사유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어 아껴서 쓴다고도 하는데, 나는 앞일은 알 수 없으니 쓰고 싶을 때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여름 방학은 교사에게나 학생에게나 휴식이기도 하고 재충전 기회이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봄이나 가을 방학을 두어 여름 방학 기간에 변동이 있기도 하지만, 뜨거운 계절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니 여름 방학 기간이 줄거나 해도 생략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밭은 어떤가? 작물들은 어떤가? 그 땅에 그대로 있는 작물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그러니 작물들을 이른 시기에 빨리 수확하기도 한다. 작물과 땅이 방치되지 않았다면 방학 중에 교사가 출근을 해서 돌본 경우일 뿐이다.

 

 

다른 자율연수휴직을 할 분들에게 혹시 전공부 수학을 권할 수 있겠나?

 

음… 나는 (무급 휴직이니까) 농촌에서 돈을 벌지 않고 지내는 경험 ― 그동안 도시에서 지내면서 무분별하게 소비 생활 습관에 길들기도 했으니까 ― 쓰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는 경험도 좋았다.

중요한 건 가치관 아니겠나. 전공부는 공동생활(먹고 자고 농사짓고 인문학 배우고)을 한다. 그러니 가치관이 맞지 않는 경우 그만두게 된다. 우리는 왜 홍동마을을 찾는가? 그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풀무학교의 가치관과 마을의 가치관이 다르지 않다. 홍동에 이주해 오는 분들도 보면 가치관의 큰 줄기 비슷하다. 돈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 농업진흥센터에서 실시하는 귀농귀촌교육을 경험해 보니, 현장 농부로 초빙된 강사들은 하우스 재배 시설농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량 생산과 유통을 할 수 있는 환금작물로 그 시설 비용을 처음 들었을 때 억 소리가 나기도 했다. 정말 억대 단위의 시설 비용이었다. 그렇게 지원을 받아 시작도 하고 또 시설을 늘리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돈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인을 넘어, 교육에서, 마을에서 공유되고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풀무학교의 서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과 이웃, 지역과 세계, 자연과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학교, 유기농 농사를 오랫동안 애써 지어온 지역, 교육이 마을로 향하도록 고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몇 해를 왕래하던 이런 곳에서 1년의 붙박이 생활은 그에게 어떤 변화의 씨앗을 뿌렸을까?

 

 

전공부에 가기 전과 다녀온 후 학교 텃밭을 보았을 때 느낌이 차이가 있나?

 

복귀해서 학교 텃밭을 처음 보았을 때 그저 황량하다는 느낌이었다. 흙 만들기가 잘 안 된, 잡초도 없는 상태, 그야말로 흙밖에 없는.

전공부에 가기 전에는 올해는 뭘 심지 고민하고, 밭갈이할 걱정도 하고, 5, 6월 정도면 어떤 작물이 어떻게 크겠구나 생각도 하지만, 2월에는 그리 할 게 없었다. 땅을 보지 못하고 작물 위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땅 자체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떤 사업을 끌어들여 어떻게 텃밭을 만들어야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보다 더 환경적으로(생태적으로) 텃밭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작물을 위한 것, 그림을 그리는 대상으로서 도화지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의 상태, 땅 자체를 살리고 싶어졌다. 활동 결과물에 중점을 두거나, 목적 의식적인 경험을 해 본다 이런 것보다는 그냥 자주 들여다보거나 매일 가 보면서 땅의 변화를 느껴 보고 싶다.

 

흙살림, 땅살림은 많은 분들이 고민해 온 것이기도 하다. 화학비료는 그 효과가 좋아서 흙이 나빠져도 화학비료만 주면 작물들은 잘 자랐다. 화학비료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주류가 됐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농부를 따라다녔다. 마약 중독이 그러한 것처럼 농부는 비료에, 농약에 중독되고 땅은 그만큼 더 나빠졌다. 이것이 몸에 익어 학교 텃밭이나 주말농장 같은 조그만 땅뙈기에 농사를 지으면서도 비닐로 멀칭을 하고 화학비료를 준다. 그러니 좋은 흙이 만들어질 리 없다. 땅은 생명을 잃고 있다. 2021년 연말에는 땅의 변화에 시선을 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다.



▲2021년 세검정초의 상자 논. 3월 초 귀리를 뿌릴 예정이다. 100일 정도면 수확할 수 있다.



올해는 어떻게 학교 텃밭을 운영할 계획인가?

 

4학년을 배정받았다. 등교는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정해지니, 어떤 식으로든 등교하는 날은 꼭 텃밭 나들이를 할 계획이다. 아침이나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거나.

텃밭에 가서는 내가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교사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으로) 학생들이 뭐가 필요한 거 같다는 제안을 하면 그 필요를 살펴보거나 같이 해 보거나 하려고 한다. 나 자신도 (전공부에서 공부한 경험으로) 느긋하게 학교 텃밭을 볼 수 있게 됐으니까.

돌아보면 텃밭에서 일어나는 일은 학생들이 먼저 발견하거나 궁금해했다. 벌레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 지금 이 작물은 수확할 수 있을까, 없을까 같은. 흙이나 작물이나 그냥 같이 어울려 있는 그림을 보고 싶다. 좋은 땅, 아닌 땅 이런 걸 가르치기보다는. 몸으로 배우러 가는 것이다.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교육 활동을 꾸준히 벌여 가는 모습은 교사들에게 종종 보는 바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다 해 보라고 학생들을 풀어 놓지만, 그래,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손바닥 안이야,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면, 교육과정은 대강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큰 힘이 실린다. 의도치 않은 배움이 있다는 것을 교사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2021년 2월 19일 세검정초등학교 텃밭 모습. 수선화와 튤립 구근을 심었다. 올해는 밭갈이를 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할 예정이다.



▲2019년 5월의 텃밭 모습이다. 텃밭이 아니었으면 버림받은 구석 땅 모습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리라. 이러한 공간이 교육농에 뜻을 둔 한 교사의 노고에 힘 입어 생명을 품은 교육 장소로 거듭 태어난다.



우리가 교육농이라는 말을 쓰고 실천하기 이전에도 학교에는 텃밭을 일구는 교사들이 있어 왔다. 심지어 농사의 고수라고 부를 만한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교육농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학교 텃밭과 교육농의 차이는 ‘학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 있는가 없는가. 교육농은 학생의 존재, 학생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동료 교사와도 교육농을 매개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2011년 《오늘의 교육》을 통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제언되고, 이후 교육농연구소의 박형일 선생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의 구체화 방법으로 벗에 교육농을 제안해 왔다. 이 과정을 거치며 교육농협동조합도 뭇고 학교 텃밭 활동을 이어 왔다. 교육농은 농사를 통해서 교육의 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니 농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교사가 농사를 모르니 배우는 것이다. 알지 못한다고 시작도 할 수 없지는 않다. 학생들을 믿고 가면 된다. 일단 벌여 놓으면 교사나 학생이나 서로가 질문을 던지며 함께 답을 풀어내는 비상한 능력이 발휘된다.

 

 

마지막 질문. 학교 텃밭을 처음 시도하려는 분들께 조언을 한다면?

 

무엇보다 즐겁게 해야 한다. ○○ 사업 같은 것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으로 학생들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시작이고 마무리이다. 학교 상황에서 주어진 대로 있는 자원을 활용하면 좋겠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공부에서 여러 가지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그분들 말씀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더라. 땅이 타고난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 학교 땅은, 흙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학교 텃밭 자체보다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매개가 되는 텃밭이 되면 좋겠다.

 

학교 텃밭에서는 교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확장된 교육 장소로서 보람도 느끼지만, 그 밖에 감수해야 할 것들도 있다. 사업비를 받았다면 서류 처리에 머리를 써야 하고, 찬사와 경탄 못지않은 여럿의 간섭과 불만을 만날 수도 있으니. 그런데도 해마다 텃밭을 이어가니, 즐거움이 더 큰 일을 하는 건 맞는가 보다.

손에 흙을 묻히고 아주 작은 씨앗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쏟고 그 싹이 트고 열매가 맺도록 기다리도록 하는 교육의 방향은, 편리한 것, 간편한 것, 빠른 것이 좋다고 가르쳐 온 것과는 다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시간을 몸으로 겪으며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찐’ 삶이 된다. 학교 텃밭이 그 이야기의 산실일 수 있길 기대한다.

- 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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