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호[기고] 스쿨 미투 3년, 공론화를 넘어 (하영, 지혜, 지원, 유경)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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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쿨 미투 3년, 공론화를 넘어
정보 공개 청구 운동의 한계와 학교 내 백래시를 묻는다




하영, 지혜, 지원, 유경
youthfemi@gmail.com
스쿨 미투를 계기로 창립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쿨 미투 이후 학내 성평등 운동을 고민하며 글을 썼습니다.




스쿨 미투 운동은 학교 내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적 폐해를 드러내고 정치화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스쿨 미투 운동이 외부 공론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문제의 책임은 학교 전체가 아니라 개별 가해 교사에게 넘겨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공동체 자체의 성찰과 변화보다는 신속한 문제 처리가 우선시되었고, 이에 따라 스쿨 미투 운동 자체가 학내 문제 해결에까지 가닿는 데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대책의 중심이 될 때, 스쿨 미투 운동의 큰 문제의식이었던 학내 권력의 구조적 문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는 학내 구성원 간 갈등 해결 과정이 생략되거나 학생 주체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학교 문화에 대한 성찰 없이 개별 가해 교사의 처벌만 남을 때, 처벌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교육청과 사법 당국의 권한만이 더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른 한편에선 피해를 공론화한 이들에게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라며 비난을 가하는 등 백래시backlash와 2차 가해가 지속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쿨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스쿨 미투 운동은 어디에 와 있을까? 예를 들자면 2018년 ‘창문 미투’로 화제가 되었던 서울 용화여고의 스쿨 미투는 3년 동안 법정 공방 속에 있었다. 학생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가해 교사에게 2021년 10월이 되어서야 징역형이 확정되었을 정도로 그 과정은 지난했다. 용화여고에서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18명의 교사 중 15명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와중에도 사법 투쟁은 3년여간 계속되었던 것이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위티)는 스쿨 미투 이후 스쿨 미투 고발자와 여학생이 무력한 피해자로만 환원하는 구도에 맞서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는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 왔다. 위티는 3년간 청소년 섹슈얼리티를 다각도로 드러낸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 전시회’, 청소년 페미니스트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치를 고민했던 ‘안녕, 국회’ 프로젝트, 청소년 주도의 페미니즘 교육을 고민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육 활동가 양성 프로젝트 ‘경계 넘기’ 등의 여정을 거쳐 왔다. 스쿨 미투 운동이 3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스쿨 미투 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이후 운동의 방향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특히 학교 문화의 실질적 변화를 위해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지를 중심으로 스쿨 미투 운동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발 빠른 대처를 넘어, 공동체의 성찰로

스쿨 미투 운동은 학생들의 문제 제기에 의해 일어났음에도, 학생들은 문제 해결 과정의 주체로서 함께하지 못했다. 징계 절차를 밟을지 여부에 대한 학생들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았으며, 학교 내부의 문제에도 사건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이는 스쿨 미투 운동 이후 성고충심의위원회, 학교폭력위원회 등 성폭력 사안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존재했음에도 학내에서 이런 시스템들이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던 지점과도 맞닿아 있다. 위계 권력이 절대적으로 작동하고 폐쇄적인 학교 공간과 학생 주체가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없는 의사 결정 구조는 스쿨 미투 이후의 학교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시민사회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입수한 〈서울시교육청 학교 성폭력 고발 건 처리 현황 및 징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스쿨 미투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과 학교 측이 수사 기관에 신고한 교사는 151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95명(63%)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14명(75.5%)은 아예 ‘직위 해제’도 받지 않았다. 이렇듯 미미한 징계 처분은 상당 부분 스쿨 미투 고발자조차 정보를 알기 어려운, 고발자와 지지자 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불투명한 사건 처리 구조에서 기인했다.


이에 지난 2019년 3월, 정치하는엄마들은 스쿨 미투가 일어난 학교 86곳의 실명을 담은 ‘스쿨 미투 전국 지도’를 공개하고 전국 시·도교육청에 스쿨 미투 처리 현황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같은 해 5월에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교육청이 패소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심 판결대로 행정 처분 결과를 공개하면 교사의 기본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고, 피해 학생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피해 사실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해야 하므로 피해 학생의 신상이 알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항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스쿨 미투 전국 지도 공개와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은 다방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스쿨 미투 고발 이후 고발자와 시민 사회는 사건 처리 현황이나 가해 교사의 거취 정보를 알 수 없어, 사후 모니터링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기 어려웠다. 자체 전수 조사로 제작된 스쿨 미투 전국 지도는 단발적 보도로만 쏟아져 나오던 사건들의 수와 내용, 지역 등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시민 사회의 활동이나 언론 보도에서 유의미하게 사용되었다. 게다가 ‘#스쿨미투’라는 것이 어느덧 거대한 표상이 된 시점에, 대중에게 실질적인 사건 내용과 사건이 일어난 학교를 알리며 스쿨 미투 운동의 구체성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스쿨 미투 사건의 정보 공개에서 보다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 공개 청구는 가해 교사의 처벌 여부에만 집중하는 활동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산 사건들에선 늘 가해자에 대한 엄벌, 이를테면 포토 라인 얼굴 공개나 신상 공개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엄벌’만이 정의로운 것이거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더 강하고, 더 엄한’ 처벌을 해답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무엇으로부터 가해가 시작되었는지, 처벌 이후 공동체는 어떤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이야기하기 어렵다.


스쿨 미투 운동은 ‘공론화’ 운동이라는 점에서 많은 한계를 지녔다. 공론화 과정에서 고발자는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언어로 피해에 대해 말하기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쿨 미투 보도의 헤드라인들은 주로 가해 교사의 자극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가해자의 언행에만 주목한다면, 학교에서 그러한 폭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질문하지 않게 된다. 가해 사실에 대한 ‘경악’은 기존의 학교가 얼마나 불평등한 공간이었는지, 왜 학생은 교사의 폭력적 언행에도 당장 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온라인에서의 익명의 고발을 택해야 했는지, 학교의 복장 규제와 교사의 절대적 권력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등의 근본적 질문을 가린다.


그런 면에서 정보 공개 청구 이후의 고민 지점은 공론화 운동의 어려움과도 닮아 있다. 사안 처리 과정에서 피해와 가해의 구도만이 두드러질 때, 이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 방법은 ‘가해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스쿨 미투 운동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학교를 다닌 모든 세대가 증언하는 집단적 고발이다. 스쿨 미투 운동에 공감하며 비청소년들이 다양하게 꺼내 놓는 경험담들은, 2018년에야 ‘스쿨 미투’라고 이름 붙여진 폭력과 차별이 얼마나 유구하고 뿌리 깊은 것인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구조와 역사에 뿌리내려 온 폭력은 쉬이 사라지기 어렵다.


게다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들 가운데에는 ‘신고 일시’, ‘개요’, ‘학교명’ 등 피해 사실과 고발자에 관한 정보 역시 포함되어 있다. 정보 공개가 의무화될 경우 고발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다. 고발자의 의사와 무관한 정보 공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첫 번째, 정보 공개로 인한 2차 가해 가능성이다. 스쿨 미투 운동은 고발 이후 학교에 남아야 하는 고발자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와 맞서 싸워 왔다. 교사가 학생에 대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학교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고발자가 특정될 가능성과 그 본인이 느낄 위협감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려는 특히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피해가 지속되는 특성을 가진 불법 촬영 사건에서 더더욱 도드라진다. 더불어, 입시 체제 속에 경쟁이 만연한 한국의 공교육 내에서, 학교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스쿨 미투 고발과 해결 과정은 ‘입시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겨질 확률이 높다. 물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스쿨 미투 고발이 아닌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학교 실태이고 이러한 억압적 시선들에 대한 대처 방안은 논의되어야 한다. 다만 정보 공개 청구에 있어, 입시 경쟁 중심의 학교에서 공개된 정보들이 공동체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신중한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두 번째, 공개된 정보들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사용될지 알기 어렵다. 정보 공개 이전에도 스쿨 미투를 가해 교사만의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시도는 이어져 왔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학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을 그 학교에 믿고 맡길 수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을 비판했다. 하지만 정보 공개의 목적은 ‘스쿨 미투 고발이 있었던 믿을 수 없는 학교’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위한 구조적, 제도적 노력의 기반을 만드는 데에 있어야 한다. 고발과 문제 제기가 없다는 것이 그 학교의 평등함을 담보하는 근거는 아니다. 스쿨 미투 이후 그 공동체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 외부적 압력을 넘어, 공동체 내부의 성찰과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정보 공개와 가해 교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영악한 거짓 미투’와 ‘미성숙한 아이들’이란 이분법에 맞서다

2018년 한 교사가 ‘(학생의) 패딩 원단을 확인하는 중 손등이 가슴에 닿았다’, ‘엉덩이를 툭툭 쳤다’ 등의 사유로 고발되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에 대해, 교사의 교육 방식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무례하게’ 항의했다가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몰리자 없었던 일을 지어내거나 있었던 있을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교사가 부당한 교권 침해를 당했다는 요지였다.


교총의 주장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스쿨 미투 악용’을 우려하는 사회적 시선을 야기했다. 성폭력 고발자를 소위 ‘꽃뱀’이라 폄훼하는 인식에 ‘요즘 아이들은 영악하다’는 시각이 더해지며 고발자들은 악의적으로 ‘가짜 미투’를 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이러한 우려와 사뭇 다르다. 한국의 성폭력 무고죄 비율은 매우 낮고, 성범죄에 대한 처벌 형량은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청소년은 여성/청소년 친화적이지 못한 성폭력 처리 과정에서 보호자의 동의 및 동행을 요구받거나 학교와 가정, 지역 사회로부터 절차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는 등 입증에 추가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교사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교육적 목적’이나 ‘친밀감 형성’으로 포장되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쿨 미투 사례에서도 교육 시스템과 교사-학생 간 위계 관계 속에서 학생들의 문제 제기는 학교공동체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이들의 비판은 교사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교권 침해’ 프레임으로 해석되고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하는 ‘영악한’ 학생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여성 청소년이 악의적으로 거짓 성폭력 고발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스쿨 미투가 교권 침해라는 담론이 설득력을 얻었던 것은 청소년에 대한 모순적인 시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발자들은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해서 판단하기 어려우며 고발자의 주변인이 이러한 생각을 주입했다’는 시각과, ‘요즘 청소년들은 알 것을 다 알고 영악해서 거짓 미투를 한다’는 시각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다.


한 스쿨 미투 재판에서 가해 교사는 “학생이 인지 부조화를 느껴서 잘못 진술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는 학생을 악의는 없지만 피해 사실에 관해 혼동할 수 있어 신뢰하기 어려운 미성숙한 존재로 여긴 사례다. 한편, 일부 언론과 웹툰 〈참교육〉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스쿨 미투 고발자를 ‘꽃뱀’으로 묘사했다. 언론은 ‘가짜 미투’로 인한 교사의 피해와 교권 침해를 우려하는 기사들을 보도했고, 웹툰 〈참교육〉은 교권이 무너진 학교에서 특정 교사에게 불만을 가진 여학생이 허위 성폭력 고발을 한다는 내용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이 에피소드에서 여학생의 성폭력 고발은 ‘나중에 문제가 돼도 장난 아니면 오해였다고 발뺌하면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여성이 이득을 얻기 위해 성폭력 고발을 한다는 ‘꽃뱀’ 담론이나, 청소년이 소수자의 위치를 악용한다며 영악하고 무섭다고 낙인찍는 ‘청소년 혐오’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충하는 관점 속에서 ‘순수한 피해자상’에 의거한 검열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스쿨 미투 고발의 내용 또한 피해자상에 관한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 종류들만이 인정되었다. 스쿨 미투 고발이 있었던 한 학교의 경우 “강간당할 것 같으면 오줌을 싸라”라는 교사의 발언은 가해로 인정되었으나, 퀴어 혐오 발언은 인정받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가해 교사들의 자극적인 발언들은 ‘정당한 피해’로 다뤄졌지만, 학생의 인권이나 성적 지향 등을 침해한 경우엔 ‘미투’까지는 부적절하다는 시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스쿨 미투 운동이 교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은 학교 내 권력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스쿨 미투 고발은 그 진위에 따라서가 아니라, 학생이 교사를 고발한다는 점 자체로 교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스쿨 미투가 ‘거짓’이나 ‘음해’일 때 문제인 게 아닌,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학생이 교사의 언행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교권을 무너뜨리는 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 교권은 학생이 교사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대적인 권위여서는 안 된다. 스쿨 미투는 교권 침해가 아닌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발화이며, 학교의 권력 구도를 성찰하자는 질문이다.


더럽혀진 공론장에서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일

‘숏컷=페미 논란’, ‘GS25 포스터 내 집게 모양 손가락 논란’ 등 한국 사회의 백래시 사건이 연일 화두에 오르며, 학내 페미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백래시 현상 역시 주목받고 있다. 백래시의 특징은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조직적으로 학생을 세뇌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사실관계 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공론장을 더럽히고, 학내 페미니스트 구성원들을 고립되게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성평등에 대한 공적 책임과 논의의 장이 사라진 자리를 비공식적이고 배설적인 혐오와 집단 괴롭힘이 채우고 있다.


백래시는 공적 규범과 일상적 문화를 가로지르며 발생한다. 이를테면 여학생의 외모를 통제하는 학칙과 여학생의 외모를 품평하는 일상적 문화가 결합되어 꾸밈 노동을 실천하지 않는 청소년에 대한 낙인과 괴롭힘으로 이어진다. ‘여성다움’과 ‘학생다움’에 대한 요구는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여학생의 숏컷에 ‘머리 모양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벌점을 주는 교사의 권력과 졸업 사진을 찍을 때 화장을 안 하면 “자신 있나 봐?”라고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공동체 문화는 상반되지 않는다. 성에 대한 공동체적 논의가 부재한 현실은 성차별적 규범을 방치하고, 비공식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집단 괴롭힘을 더욱 강화한다. 이렇듯 다수의 폭력이 규범으로 작동하는 학교에서는 평등을 논의하기도, 소수자가 존중받기도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학내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닌 페미니즘이다. 스쿨 미투 전후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스쿨 미투는 페미니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준다. 페미니즘은 백래시 속에서 사그라든 학생 자치와 소수자 인권을 구현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공동체의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수호해야 할 ‘옳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 구조에 대해 질문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만드는 밑바탕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교의 페미니즘적 전환은 페미니즘을 ‘질문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 두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따라서 페미니즘과 성에 대한 공론장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더럽혀진 공론장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공적 규범으로 확립해 나가는 적극적 절차가 필요하다. 이제는 학생인권의 한 부분으로 논의되었던 성평등이 학교 전반을 다루는 전면적 약속이자, 상위 규범으로 등장해야 한다. 최근 학생인권운동은 학생의 속옷/양말 등을 규제하는 학칙을 여학생에 대한 섹슈얼리티 규제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과 문제 제기가 일상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학칙 개선 및 성 인권 학칙 제정을 논의하고, 성폭력 사안 처리의 원칙 및 공동체적 조치 등의 규범을 합의하는 위상과 권한을 가진 논의 테이블이 필요하다.


스쿨 미투 이후에 대한 더 많은 상상력

약 3년 전인 2018년 11월, 위티는 스쿨 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개최했다. 집회를 통해 각자의 학교에서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던 이들이 광장에 모였고, 서로의 경험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여성, 학생, 소수자의 말하기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임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용화여고 스쿨 미투 가해 교사에 대한 징역형 판결은 우리들의 목소리가 이루어 낸 끈질기고 위대한 한 걸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여성이자 청소년이라는 그들의 위치성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억한다.


이 글은 스쿨 미투 이후를 함께 살았던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활동가들이 함께 썼다. 우리는 스쿨 미투 운동에서 고발자들이 경험해야 했을 부조리함에 대해 공감했고,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을 돌아보고자 노력했다. 위티는 앞으로도 학내 성평등이라는 목표가 막연한 지향이 아닌 구체적인 제도로 도입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에서의 실천을 이어 가고자 한다. 우리는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스쿨 미투 이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❶ 몽, “누가 스쿨미투를 지키는가”, 〈프레시안〉, 2019년 8월 9일.
❷ “‘스쿨 미투’로 고발된 서울 교사 63%는 교단에 있다”, 〈한겨레〉, 2021년 12월 9일.
❸ “[스쿨 미투 그 후] 교사 징계 결과 공개 여부 논란… ‘깜깜이’ 관리 지적도”, 〈조선에듀〉, 2020년 4월 8일.
❹ “스쿨 미투 후 ‘마녀사냥’… ‘공부 방해된다’는 친구가 더 무서웠다”, 〈여성신문〉, 2021년 7월 4일.
❺ 〈‘스쿨 미투 정보 공개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 최종 변론 소회〉, ‘정치하는엄마들’ 홈페이지(www.politicalmamas.kr/post/687).
❻ “‘스쿨 미투’ 목사 징역 2년 구형… “학생이 인지 부조화” 혐의 부인”, 〈이데일리〉, 2020년 4월 17일.
❼ 박희정 외(2020), 《나는 숨지 않는다》, 한겨레출판, 267쪽.
❽ 스쿨 미투가 학내 소통을 어렵게 하고 더 나아가 교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향신문〉 “스쿨미투는 계속 돼야 한다… 그런데 무고한 교사들은?”(2020년 1월 5일), 〈서울경제〉 “징계받을 것 같자 “엉덩이 쳤다”고 ‘거짓 미투’… 학생 교권 침해 급증”(2020년 5월 14일), 〈문화일보〉 “교사 얼굴 때리고 발로 차고… ‘거짓 스쿨 미투’까지”(2021년 5월 14일) 등 언론은 피해를 의심하거나 스쿨 미투를 ‘악용’하는 청소년이란 기사를 보도하며 고발자들을 가해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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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