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기획] ‘공약을 살펴보는 합리적 유권자 되기’를 넘어 (공현)

202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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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선거교육 그 이상의 민주주의교육


‘공약을 살펴보는 합리적 유권자 되기’를 넘어

- 정치·선거교육의 목적과 방식을 재논의하자



공현
gonghyun@gmai.com
본지 기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2019년 말,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만 18세로 하향된 것을 시작으로 청소년 참정권을 조금씩 확대하는 법 개정이 실현되었다. 그런 가운데 학교에서의 정치·선거교육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 청소년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안내 영상을 제작하였고,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러 교육청이 선거교육을 위한 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했으며 2021~2022년에도 재보궐 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선거교육에 관한 토론과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학교에서의 정치·선거교육은 ‘(만 18세) 청소년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필요해진 것일까? 사람은 스무 살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자연스레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거나 바람직한 민주 시민이 되지 않는다. 선거권·피선거권 등이 20대 이상에게 있을 때는 선거나 정치에 관한 교육이 필요치 않다가, 10대 청소년이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것만 놓고 보면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다. 마치 비청소년들은 자연히 할 수 있게 되는 정치 행위를 청소년들은 교육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성숙해지고 유능해진다는 것은 나이주의적 고정 관념이며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선거교육이나 정치교육 활성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선거교육은 민주주의 사회의 공교육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임을, 선거권 연령이 확대된 것은 단지 한국 사회가 초·중등교육에서의 정치·선거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후보 경력과 공약에 집중하는 걸로 충분할까?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정치·선거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선거교육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지 하는 논의 역시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고등학생) 일부가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선거교육을 하자’는 식으로 교육이 진행되면 단순한 기초 지식 전달에 중점을 두기 십상이다. 선거가 무엇이고, 어떻게 참여하면 되고, 「공직선거법」상 불법 행위는 무엇이니 뭘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내용의 교육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같은 기관에서 제공하는 영상도 대부분 이렇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21년 12월 게시한 〈2022 대통령 선거 교육 자료〉의 일부. 대통령의 자질을 생각해 보고 후보자의 정책/공약을 살펴보는 것이 주요 교육 활동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식 전달에서 한발 더 나아간 교육도 한국 사회의 기존 통념에 맞추어 기획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 선거’가 바람직한 것이며 우리는 ‘합리적 유권자’로서 꼼꼼히 공약을 살펴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실제로 시·도교육청들이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선거교육 관련 자료들을 보면 거의 이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후보자에게 어떤 자질을 요구하는가?’, ‘후보자는 어떤 공약(정책)을 제시했나?’, ‘나는 어떤 정책을 좋다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다룬다. 몇몇 교재들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소개하며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반드시 지키는 것이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공약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후보의 외모나 이미지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이도 볼 수 있다. 특정 정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거나 지연, 학연 등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한번 표방하는 공약을 검토해 보자는 활동은 나쁠 것 없다. 그리고 선거에 한 번도 참여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선거 공보물이나 공약을 찾아서 읽어 보는 활동 자체가 정치에 느끼는 거리감을 줄이고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공약을 소재로 한 토론이나 모의 선거와 같은 활동을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공약도 살펴보자’가 아니라 ‘공약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과연 정답일지는 의문스럽다. 예컨대 ‘○○ 정당은 그동안 해 온 전적 때문에 또는 역사적으로 어느 집단을 계승하는 정치 세력이므로 무슨 공약을 내세우든 절대 표를 주지 않겠다’라는 정치적 판단은 비합리적인 것일까?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는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하다’와 같은 분석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공약 위주로 선거를 이해하려는 것은 이와 같은 선거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후보자의 경력이나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교육을 하는 것에는 몇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우선, 공약에 대한 평가는 선거에서 가장 유효한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선거에서는 후보들의 공약이 겹치는 현상이 빈번하게 관찰되며, 특히 지방 선거 같은 경우 ‘생활 밀착형’ 공약일수록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게다가 임기 중 정치적 쟁점이 발생했을 때 정치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공약을 봐서는 알기 어렵다. 실제로 사람들은 정당이나 정치인이 평소에 표방하는 이념이나 방향성, 당선 가능성 등 다양한 요소들에 따라 투표하며, 이런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또 하나의 한계는 선거 제도 자체나 사람들이 후보자나 공약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에 대한 반성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선거 제도의 비례성과 대표성에 관련된 쟁점이나 선거 제도로 인해 민의가 왜곡되는 문제, 어떤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 제도일지에 대한 토론 등은 교육청들이 제공하는 선거교육 자료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후보자의 학력이나 경력, 자질 등을 살펴볼 때도 보통 사회 통념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게 될 위험이 있다. 공약 역시 당파성이나 이해관계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좋은 공약, 내가 지지하는 공약을 골라 보는 것만으로는 ‘누구를 위한 공약인지’, ‘좋은 공약이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교육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반성과 성찰의 촉발에 있음을 생각해 보면 큰 한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교육이 전제하고 있는 선거와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가진 문제점이 크다. ‘후보자 경력과 공약 살펴보기’, ‘합리적 유권자’를 강조하는 담론은 선거를 생산자(후보 또는 정당)가 제시한 상품(공약 또는 후보)들을 살펴보고 소비자(유권자)가 선택하는 시장적인 모델과 사고방식을 전달한다. 이런 정치관에 따르면 유권자는 제시된 공약들과 공보물을 보고 가장 좋은 공약, 나에게 가장 맞는 정책을 잘 골라야 한다. 그럼으로써 정당들이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며 경쟁하도록 유도한다면 전체적인 정치와 정책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시장 자유주의가 비현실적이듯이 이런 모델도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정책 선거와 공약 보고 투표하기가 오래전부터 당연한 ‘상식’이 됐지만, 선거와 정치는 그렇게 이루어지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정치 현실이 더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근본적으로 이런 관점은 시민들을 정치 시장에서의 소비자 위치에 머무르게 하고, 시야를 오직 선거에만 한정시키는 폐해가 있다.


시민들은 소비자 이상의 권리와 책임을 가진,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주권자이다. 그리고 정치는 대개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집단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후보자 개인의 자질이나 경력보다, 후보자가 대변하는 집단, 그 후보자를 통해 집권하는 정당과 정치 세력이 더 중요한 이유다. 또한 정치 전반에서는 물론 선거 자체에서도 선거 이전의 정치적 사건이나 역사적 맥락, 사회 안의 다양한 세력 간 이해관계 등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을 적극적 정치 행위나 역사적·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공약을 알아보고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선거 소비자적 태도를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적절한 교육인지 고민스럽다.



똑똑한 사람을 뽑을까, 나와 비슷한 사람을 뽑을까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다른 정치·선거교육은 어떻게 가능할지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은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다.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2020년, 2022년 상반기에 성미산학교 포스트 중등 과정 중 민주주의와 선거를 주제로 한 교육과정을 담당하면서 그런 고민을 녹여 내려고 시도한 사례를 소개해 본다.


성미산학교 교육의 첫 시작은 먼저 참정권과 민주주의 자체를 주제로 삼았다. 바람직한 정치나 선거가 무엇인지 같이 이야기하기 위한 전제로, 민주주의나 참정권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어떠한 이념을 담고 있는지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 참정권 관련 쟁점이나 소수자의 참정권에 관한 이슈를 다루면서 ‘정치 참여의 자격 조건’ 등에 관한 고민을 나누었다. 다음으론 ‘선거 제도’에 관한 공부나 ‘정치적 대표자’에 관한 토론을 이어 갔다. 선거 제도를 둘러싼 논의나 여러 형태의 선거 제도를 소개하고, 학생들이 선거 제도에서 더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모습의 정치를 원하며 거기에는 어떤 선거 제도가 더 적합한지 등의 토론도 진행했다.


정치적 대표자에 관해서는 이런 질문이 교육의 핵심이 되었다. ‘더 똑똑하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 대표자가 되는 게 옳은가? 아니면 나를 더 잘 대변하는 사람,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들에 더 가까운 사람이 대표자가 되는 게 바람직한가?’ 이에 더해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 있는 개인’과 ‘지지자나 정당에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 정치인’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등도 토론거리였다. 능력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서도 대다수 학생이 한국 정치가 좀 더 다양해지고 더 많은 사람을 대변하게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직접적으로 선거에 관한 수업에서는 ‘우리가 선거에서 어떻게 투표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를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약이나 후보를 살펴보는 것 이전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 기준을 돌아보고 언어화해 보는 것, 그리고 이를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실제로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서 선거에서 표를 던질 후보나 정당을 고르는 다양한 기준을 정리하여 제시했다. 6~8개가량의 사례들을 준비했는데, 그중 2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는 선거 때 내놓는 공약이나 말 같은 건 안 믿어요. 당선되려고 무슨 말인들 못 하겠어요? 약속해 놓고 안 지켜도 뭐 어떻게 되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후보나 정당이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권력을 잡았을 때 뭘 했는지를 봐야죠. 그래서 과거 행적을 봤을 때 제가 원하는 정책을 할 것 같은 정당을 찍어요.”

“저는 후보가 저랑 가깝게 느껴지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삶과 좀 더 가까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 제가 느끼는 문제나 어려움도 더 잘 알지 않겠어요? 저와 같은 여성이거나, 아니면 월세 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후보가 좋겠죠. 그리고 금수저 후보보다는 저같이 별다른 재산도 빽도 없는 사람이 되면 좀 더 기분도 좋고요.”


다음으로 ‘공약’, ‘인물(후보)’, ‘정당’ 등 사람들이 선거에서 투표할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들을 범주화하고 그 각각을 중시하는 이유, 장단점 등을 정리했다. 이런 학습과 준비를 거쳐서 ‘나의 정치적 지지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대답을 정리하여 종이에 써서 공유했다. 2022년 교육에서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에 반론, 의문, 보충 의견, 공감 의견을 댓글로 다는 형식의 활동을 기획해 보았다. 이견을 나누고 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2022년 4월,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선거에서 어떻게 투표할지 정할 때 자신이 중시하는 기준을 적어서 나눈 모습이다.



정치·선거교육의 목적을 되돌아보자

마지막 시간에는 선거에 한정하지 않고 더 다양한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사회운동에서 활용하는 사회 변화의 단계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이 틀에 맞추어 법이나 문화를 변화시킨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관심을 가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참여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찾아보는 활동을 준비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꽃이 아니라 뿌리나 줄기나 잎은 무엇일까?”라고 물으면서 선거와 선거 결과에 갇히지 않고 사회와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들을 상상하고 탐구했다.


우리가 성미산학교에서 진행한 정치·선거교육 사례가 잘 다듬어진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교육 실연도 2회(8차시씩)밖에 해 보지 않았고, 교육 환경이 8~10명 정도의 소규모 대안학교 학급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정치·선거교육이 어떻게 좀 더 폭넓은 주제를 다룰 수 있고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참고 사례로 삼을 만할 것 같다.


교육청 등이 제시하는 주류 정치·선거교육이 선거 관련 정보 제공과 정책과 공약 알아보기에 머무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정치·선거교육을 통해서 정치와 선거에 대해 어떤 관점과 메시지를 공유할지 논의가 부족하고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정치, 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의와 규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선거교육의 목적이 ‘청소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만들자’, ‘공약을 잘 알고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하자’라는 데서 만족하고 멈춰선 안 된다. 내가 정치·선거교육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무엇이 더 좋은 정치이고, 우리가 어떻게 그 정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더 좋은 유권자로 만들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좋은 정치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이 정치·선거교육의 목적이 된다면 정치도 교육도 좀 더 변화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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