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학교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무지개 학교는, 어렵지 않다
- 트랜스젠더 학생 지원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❶
글
송지은
jieun@ddingdong.kr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공동법률사무소 이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띵동)에는 매일 다양한 고민과 위기를 안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찾아온다. 당연한 인권의 문제를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외면하는 사회 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맞닿아 있는 모든 시공간은 이들에게 무척이나 가혹하다.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와 타인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정상성’과의 불일치감을 느껴야 하는 매 순간들이 그렇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교정하려는 가족과 학교, 사회라는 공간들이 그렇다. 특히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젠더퀴어, 즉 성별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청소년들은 불일치하는 성별로 ‘지정’된 바람에 겪어야 하는 삶의 과업 ─ 지정성별에 따라 부여된 신체 이미지, 이름, 주민등록번호, 호칭, 복장, 성별 고정 관념 등에 저항하는 모든 과정들 ─ 이 시스젠더 청소년들보다 더 많은 바람에, 더 가혹한 시공을 걷는다.
학교를 떠나는, 그러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
띵동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에 만난 트랜스여성 청소년 A는 당시 열일곱이었다. 디스포리아가 너무 심해 중학교를 자퇴한 이후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절망에 가득 차 짧은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었던 그이의 무력감을 함께 견디고, 존재 자체의 자긍심을 발견하려 애쓰는 대화를 2년 정도 계속하던 어느 날, A는 침대에서 일어나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 그동안의 상담에서 A가 들려준 학교 경험은 당연히도 폭력과 배제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었다. 친구들은 그이가 여성스럽다고 수근대고, 한편으론 외모를 비하했다. 입을 수 없는 치마 교복과 이용할 수 없는 남자 화장실,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하는 수업 시간이 있는 곳이 그가 겪은 학교였다. 사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그동안 A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놀라지 않았다. 검정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A를 축하하고 북돋아 주고 싶어 나는 자퇴 대신 ‘탈학교’라는 단어를 쓰며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 학교에서 참지 않고 탈학교하길 잘했네요. 검정고시로 남들보다 1년이나 빨리 졸업하고. 더 좋다.”
그러자 A는 이렇게 말했다.
“탈학교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학교를 벗어났다는 의미라면 나는 쓰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정말로 학교를 다니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다니게 한 거예요. 퇴학이나 다름없어요.”
A의 대답 이후로 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학교 다닐 권리, 더 정확하게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등지고 학교 밖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 마음에 대해 막연한 속상함을 느끼던 중 마침 서울시교육청 성평등팀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어느 한 중학교에 입학한 어떤 학생이 자신이 트랜스젠더 남성이며, 남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스스로 학교 측에 요청을 하였고,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교육청에 자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이가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트랜스젠더 남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려면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지원’이라는 기본 원칙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다른 나라의 학교 관련 법과 정책, 제도나 가이드라인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훨씬 진전된 고민과 논의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하고 번역하여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에 담았다. 다음에서 띵동이 학교로부터 자주 받는 몇 가지 질문에 해외 학교들의 실천 사례를 예시로 답해 보려 한다.
트랜스젠더 학생과 함께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 1. 학생이 트랜스젠더 여/남성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띵동 활동가인 나로서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기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당사자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커밍아웃이라는 용기를 낸 학생이라면 이미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많은 교직원분들도 세심하게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들었기에 도울 방법을 찾아 띵동에까지 연락을 했을 터다. 하지만 사실 ‘나의 성별대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요청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항목이 포함될 수 있고, 그중에는 한국 학교의 현실적 여건상 막연히 실현이 어렵겠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이렇게 질문하는 것일 테다.
미국은 「학교 괴롭힘 방지법」과 「학교 성차별 금지법」을 통해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및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2016년에는 대통령 및 교육부와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트랜스젠더 학생 지지를 위한 정책과 새로운 실천의 예시’를 정리하여 전국 학교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미국 NGO들이 조금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Schools in transition)〉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을 지원하는 과정을 계획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서식을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부록 중 하나인 〈젠더 서포트 계획(Gender support plan)〉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학생이 선호하는 이름’, ‘학생의 보호자가 학생의 트랜지션을 인지하고 지원하고 있는지 여부’, ‘학생의 젠더에 대한 정보가 누구에게 얼마나 공개되거나 혹은 비공개되어야 하는지 여부’, ‘학생이 사용하게 될 화장실은 어디인지’, ‘수학여행 시 시설 이용과 관련하여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학생이 참여할 교과 외 프로그램이나 활동(스포츠, 연극, 동아리 등)은 무엇이고, 해당 활동에서 학생을 지원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등 학적 시스템부터 교과 외 활동에 이르기까지, 학생의 욕구와 안전을 고려하기 위한 다양한 사전 조치를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양식을 제시한다.
젠더 서포트 계획 본 문서는 학교에서 해당 학생의 진정한 젠더가 설명되고 지원되는 방법에 대하여 공통된 이해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직원과 간병인, 그리고 학생은 본 문서를 완성하기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각 섹션을 완성한 후, 다 함께 각 섹션을 검토하고 해당 계획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공유된 합의 사항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학교에 학생의 공식적인 트랜지션을 계획하는 별도의 서류가 있음을 유의하라.
학교 |
| 작성일 | . . | 지역 |
| 학생의 학습 레벨 |
| 학생이 선호하는 이름 |
| 법적 이름 |
| 학생의 젠더 |
| 출생 시 지정된 성별 |
| 생년월일 | . . | 형제자매 | 관계 |
| 부모·보호자·간병인 | 학생과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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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 참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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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보호자의 개입 ] ❶ 해당 학생의 보호자는 해당 학생의 트랜지션을 인지하고 있고 지원하고 있습니까? ◻예 ◻아니오 ❷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해당 계획을 이행함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들은 무엇입니까?
[ 기밀/개인정보 보호와 공개 ] ❶ 해당 학생의 젠더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공개되거나 비공개되어야 합니까? (해당 사항을 모두 체크하십시오) ◻ 구(區)의 직원(관리자, 학생 지원 책임자, 지역 심리학자 등) ◻ 현장 수준의 리더십/행정력(교장, 상담사 등)(특별히 지정할 직원) : ◻ 교사 및/또는 타 학교의 직원(특별히 지정할 직원) : ◻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지 않았으나, 해당 학생의 젠더를 알고 있는 몇몇의 학생들(특별히 지정할 학생) : ◻ 해당 학생은 젠더에 대해 타인(성인 및 동료)에게 공개적임 ◻ 기타-설명 : ❷ 만약 학생이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요청한 상황에서 그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을 시, 해당 기관이 하고 있는 예측은 무엇입니까? 교사와 교직원은 해당 학생의 젠더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 것입니까? ▶ 다른 학생들은? ▶ 교직원들은? ▶ 학부모/커뮤니티의 경우? [ 학생의 안전] ▶ 학교 내에서 학생이 성인의 도움을 받을 때, 해당 성인은 누구인가? ▶ 만약 해당 성인이 부재중일 시,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학생 및/또는 가족이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해당 학생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무엇이고, 해당 경우 시 어떻게 신호를 보내기로 했는가? ▶ 수업 중인 경우 : ▶ 운동장인 경우 : ▶건물 안인 경우 : ▶기타 : ▶다른 안전 문제 / 논의 사항 :
(중략)
[ 다른 고려 사항 ] ▶다른 학생이나 가족, 또는 교직원들과 함께 논의되거나 설명되어야 할 어떤 특별한 사회적 관계가 있는가? ▶해당 학생은 학교에 형제가 있는가? 해당 형제와 관련하여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인가? ▶ 해당 학교에는 복장 규정이 있는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는가? ▶ 올해 이루어질 수업과 단원, 내용과 기타 활동들(성장과 발전, 사회 정의의 단위, 이름 프로젝트, 댄스 교육, 프라이드 행사, 학교 댄스 등)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가? ▶ 학교가 젠더퀴어 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어떤 훈련에 참여해 역량을 신장시켜야 하는가? ▶ 다른 질문이나 우려 사항, 또는 논의해야 할 이슈가 있는가?
[ 지원 계획 검토 및 개선 방안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 계획은 어떻게 모니터링될 예정인가? ▶학생과 가족, 또는 학교가 본 계획의 어떤 부분을 재논의하길 원하거나 새로운 요구를 추가하길 원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논의하기로 하였는가? ▶본 회의에서 나온 구체적인 후속 및 확인 조치는 무엇이며, 누가 이를 책임지기로 하였는가?
[ 다음 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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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게 자세히 확인하더라도, 학교에서 실제로 트랜스젠더 학생이 바라고 필요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많은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질문 2. 트랜스젠더 학생의 성별에 맞는 화장실과 탈의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안전하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혹은 다른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어떡하나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추어 성별이 구분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안전하고 지지적인 학교 환경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지정성별 여성인 트랜스젠더 남학생이 남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안전이 우려되는 등의 경우라면, 학교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함께 논의하여야 한다.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은 이때의 논의 목표는 학생의 성별 정체성과 안전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하고,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에 맞는 공간을 사용하도록 한 것을 철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수업 시간 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쉬는 시간에 교사들이 화장실 주변에 더 많이 배치되는 것, ‘친구 시스템’ 즉 당사자가 신뢰할 수 있는 동료 학생과 함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나 교직원을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대체 시설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학교 내에서의 안전 문제는 트랜스젠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학교 문화의 문제일 수 있으므로, 학교는 모든 학생이 화장실과 탈의실에서 안전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지적한다.
학교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강력한 우려 중 하나는, 다른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학생과 같은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은 “이러한 우려는 언뜻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종종 트랜스젠더 남성 청소년이 ‘진짜’ 남자가 아니고, 트랜스젠더 여성 청소년이 ‘진짜’ 여자가 아니며, 트랜스젠더 학생이 부적절한 목적을 위해 공간에 출입하기를 원한다는 잘못된 통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우려가 예상되거나 실제 제기된 경우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잘못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동시에 누구든 다른 사람을 해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에게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법과 제도, 가이드라인 등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중 앨버타주에서 학교에 배포한 〈학교 현장 실천 지침 가이드라인〉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접근이 쉬운 성중립 화장실을 하나 이상 배치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더 나아가 만약 트랜스젠더 학생과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함께 쓰기를 거부하는 학생 또는 보호자가 있는 경우, 트랜스젠더 학생이 아니라 거부하는 그 학생에게 대안적인 시설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화장실 외에도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서의 숙소 배정, 기숙사 배정 등이 성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가장 우선하여야 할 것은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방 배정을 받고 싶은지 여부이고, 당사자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 1인실을 배정하거나, 친한 친구(성별을 불문하고) 또는 교직원과 함께 방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 모든 조치의 전제에는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불편한 것이 안전하지 않은 것과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학교는 모든 학생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학교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모든 학생이 안전한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관점이다.
질문 3. 그 학생이 트랜스젠더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그 학생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정 환경, 정신 건강, 각종 피해 등) 때문에 성별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종종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지원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질문이다. 당사자가 주장하는 성별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과거 성과 관련한 폭력 피해 경험이 있거나 부모가 이혼하였다는 사정 등이 있을 때, 한 사람의 정체성은 쉽게 ‘혼란’이거나 ‘실수’의 결과로 의심받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아동·청소년일 경우에는 더더욱 ‘미숙함’과 결부되어 지원자들로 하여금 ‘꼭 지금 성 정체성을 확정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때 혹시 그 청소년이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들지는 않았는지 한번 질문해 보면 좋겠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청소년에게 힘든 일이 있을 거란 염려가 들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삶이 무조건 불행하고 힘들 거란 판단 또한 하나의 편견이고❷, 지금 당장 그 청소년을 위해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청소년에게 큰 지지와 힘이 되는 것은 물론, 지금 여러분 마음 한편에 드는 불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표현, 또는 어떤 형태의 특정 젠더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은 모두 아주 건강하고 적절한 것이며, 인간 발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특정 젠더에 구애받지 않는 학생은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에 맞지 않는 성별을 표현하도록 요구 또는 권유받아선 안 된다. 이러한 시도나 요구는 비윤리적이며, 학생에게 중대한 정서적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 학생의 정체성과 표현에 대한 반대가 자신의 진지한 종교적 믿음에 근거했다고 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며, 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선언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져도(나이, 발달장애 혹은 지적장애 때문에) 변치 않는 사실이다.
-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의 가이드라인 원칙 중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인식하는 젠더 정체성을 갖고 존중받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의료적, 정신적 건강 진단 또는 치료의 문턱은 없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 교육구 〈트랜스젠더 학생 - 학교 성공과 기회 법 시행 지침〉 중에서
무지개 학교❸는 어렵지 않다
이번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학교 현장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을 지원하려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궁금증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가이드라인일 뿐 구체적, 개별적 상황에 맞춘 지원은 계속해서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트랜스젠더 학생의 화장실 이용 문제를 고민하며 자문을 요청한 교사 등에게 위와 같은 해외의 사례로 대안을 제시하였을 때, 어떤 분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흔쾌히 반응한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왜일까? 가늠해 본다면, 트랜스젠더 학생의 요구에 맞춘 지원을 하였을 때 다른 학생, 보호자, 혹은 일부 혐오 단체의 민원 등을 예상하여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는지 선례를 알지 못해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한 명의 ‘좀 특이한’ 학생에 대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❹ 물론 트랜스젠더 학생을 포함해 모든 학생에게 포용적 학교 환경을 만드는 일은 개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성소수자 학생도 차별 없고 안전한, ‘무지개 학교’를 구축하는 일은 국가의 책임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포용적 학교의 중요성을 선언하기까지, 수많은 학교 현장에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 학생들과 그들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시도했던 학교 구성원들이 있었다. 그 경험이 모여 더 나은, 더욱 포용적인 방향을 상상할 수 있게 했고, 그들에게 더 이상 ‘무지개 학교’는 어려운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되었다.
2021년에 〈서울신문〉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평균 중·고등학생의 학업 중단율과 비교해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학업 중단율은 무려 27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성소수자와 학교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27배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띵동이 상담하는 청소년 중 트랜스젠더의 비율은 이미 절반을 넘었다. 학교 안의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❺의 시작을, 부족하더라도 용기 있는 시도를,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우리 모두 경험할 수 있기를, 이 모든 시도가 쌓여 결국에는 무지개 학교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❶ 이 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공동법률사무소 이채(책임연구원 송지은, 정명화)(2022),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본 연구’) 중 일부를 요약·정리하여 작성하였다. 보고서 전문은 띵동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❷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지원 FAQ〉(2023, 공개 예정)
❸ 띵동과 공동법률사무소 이채가 함께 2021년 진행한 청소년 성소수자 참여 프로그램 ‘띵동식당’에서,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각자 학교에서 겪은 경험과 자신이 바라는 학교의 모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Zoom’의 화이트보드 기능을 이용해 함께 ‘내가 다니고 싶은 무지개 학교’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2022년 띵동은 메타버스 플랫폼 ‘Zep’을 이용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구상한 학교를 메타버스 공간으로 구현하여 공개하였다. 공개 이후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자 등이 공간에 방문하여 배제와 차별 없는 공간을 탐색하고, 개정 교육과정에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zep.us/play/DK5rkG)
❹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의 부록에는 보다 다양한 장면에서의 성소수자 학생 지원의 실례, 성소수자 학생 지원에 대해 항의하는 보호자와 대화하는 방법(talking point), 학교 현장의 성소수자 포용성 척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도구 등이 실려 있어, 필요할 경우 꼭 참고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❺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UN OHCHR)은 2019년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를 교육 환경에 포함시키는 것’이 유엔의 2030 지속 가능 발전 목표(UN-SDGs)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선언하였다.
기획 -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학교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무지개 학교는, 어렵지 않다
- 트랜스젠더 학생 지원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❶
글
송지은
jieun@ddingdong.kr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공동법률사무소 이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띵동)에는 매일 다양한 고민과 위기를 안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찾아온다. 당연한 인권의 문제를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로 외면하는 사회 안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맞닿아 있는 모든 시공간은 이들에게 무척이나 가혹하다.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와 타인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정상성’과의 불일치감을 느껴야 하는 매 순간들이 그렇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교정하려는 가족과 학교, 사회라는 공간들이 그렇다. 특히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젠더퀴어, 즉 성별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청소년들은 불일치하는 성별로 ‘지정’된 바람에 겪어야 하는 삶의 과업 ─ 지정성별에 따라 부여된 신체 이미지, 이름, 주민등록번호, 호칭, 복장, 성별 고정 관념 등에 저항하는 모든 과정들 ─ 이 시스젠더 청소년들보다 더 많은 바람에, 더 가혹한 시공을 걷는다.
학교를 떠나는, 그러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
띵동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에 만난 트랜스여성 청소년 A는 당시 열일곱이었다. 디스포리아가 너무 심해 중학교를 자퇴한 이후로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절망에 가득 차 짧은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었던 그이의 무력감을 함께 견디고, 존재 자체의 자긍심을 발견하려 애쓰는 대화를 2년 정도 계속하던 어느 날, A는 침대에서 일어나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 그동안의 상담에서 A가 들려준 학교 경험은 당연히도 폭력과 배제의 기억으로 점철돼 있었다. 친구들은 그이가 여성스럽다고 수근대고, 한편으론 외모를 비하했다. 입을 수 없는 치마 교복과 이용할 수 없는 남자 화장실,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하는 수업 시간이 있는 곳이 그가 겪은 학교였다. 사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그동안 A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놀라지 않았다. 검정고시 합격 소식을 듣고 A를 축하하고 북돋아 주고 싶어 나는 자퇴 대신 ‘탈학교’라는 단어를 쓰며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 학교에서 참지 않고 탈학교하길 잘했네요. 검정고시로 남들보다 1년이나 빨리 졸업하고. 더 좋다.”
그러자 A는 이렇게 말했다.
“탈학교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학교를 벗어났다는 의미라면 나는 쓰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정말로 학교를 다니고 싶었어요. 그런데 못 다니게 한 거예요. 퇴학이나 다름없어요.”
A의 대답 이후로 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학교 다닐 권리, 더 정확하게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등지고 학교 밖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 마음에 대해 막연한 속상함을 느끼던 중 마침 서울시교육청 성평등팀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어느 한 중학교에 입학한 어떤 학생이 자신이 트랜스젠더 남성이며, 남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고 스스로 학교 측에 요청을 하였고,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교육청에 자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이가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트랜스젠더 남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려면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지원’이라는 기본 원칙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다른 나라의 학교 관련 법과 정책, 제도나 가이드라인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훨씬 진전된 고민과 논의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하고 번역하여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에 담았다. 다음에서 띵동이 학교로부터 자주 받는 몇 가지 질문에 해외 학교들의 실천 사례를 예시로 답해 보려 한다.
트랜스젠더 학생과 함께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 1. 학생이 트랜스젠더 여/남성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띵동 활동가인 나로서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기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당사자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커밍아웃이라는 용기를 낸 학생이라면 이미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많은 교직원분들도 세심하게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들었기에 도울 방법을 찾아 띵동에까지 연락을 했을 터다. 하지만 사실 ‘나의 성별대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요청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항목이 포함될 수 있고, 그중에는 한국 학교의 현실적 여건상 막연히 실현이 어렵겠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이렇게 질문하는 것일 테다.
미국은 「학교 괴롭힘 방지법」과 「학교 성차별 금지법」을 통해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및 괴롭힘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2016년에는 대통령 및 교육부와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트랜스젠더 학생 지지를 위한 정책과 새로운 실천의 예시’를 정리하여 전국 학교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노력에 힘입어 미국 NGO들이 조금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Schools in transition)〉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을 지원하는 과정을 계획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서식을 부록으로 제공하고 있다.
부록 중 하나인 〈젠더 서포트 계획(Gender support plan)〉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학생이 선호하는 이름’, ‘학생의 보호자가 학생의 트랜지션을 인지하고 지원하고 있는지 여부’, ‘학생의 젠더에 대한 정보가 누구에게 얼마나 공개되거나 혹은 비공개되어야 하는지 여부’, ‘학생이 사용하게 될 화장실은 어디인지’, ‘수학여행 시 시설 이용과 관련하여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학생이 참여할 교과 외 프로그램이나 활동(스포츠, 연극, 동아리 등)은 무엇이고, 해당 활동에서 학생을 지원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등 학적 시스템부터 교과 외 활동에 이르기까지, 학생의 욕구와 안전을 고려하기 위한 다양한 사전 조치를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양식을 제시한다.
젠더 서포트 계획
본 문서는 학교에서 해당 학생의 진정한 젠더가 설명되고 지원되는 방법에 대하여 공통된 이해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직원과 간병인, 그리고 학생은 본 문서를 완성하기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각 섹션을 완성한 후, 다 함께 각 섹션을 검토하고 해당 계획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공유된 합의 사항을 확인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학교에 학생의 공식적인 트랜지션을 계획하는 별도의 서류가 있음을 유의하라.
[ 학부모/보호자의 개입 ]
❶ 해당 학생의 보호자는 해당 학생의 트랜지션을 인지하고 있고 지원하고 있습니까?
◻예 ◻아니오
❷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해당 계획을 이행함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들은 무엇입니까?
[ 기밀/개인정보 보호와 공개 ]
❶ 해당 학생의 젠더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공개되거나 비공개되어야 합니까?
(해당 사항을 모두 체크하십시오)
◻ 구(區)의 직원(관리자, 학생 지원 책임자, 지역 심리학자 등)
◻ 현장 수준의 리더십/행정력(교장, 상담사 등)(특별히 지정할 직원) :
◻ 교사 및/또는 타 학교의 직원(특별히 지정할 직원) :
◻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지 않았으나, 해당 학생의 젠더를 알고 있는
몇몇의 학생들(특별히 지정할 학생) :
◻ 해당 학생은 젠더에 대해 타인(성인 및 동료)에게 공개적임
◻ 기타-설명 :
❷ 만약 학생이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요청한 상황에서 그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었을 시, 해당 기관이 하고 있는 예측은 무엇입니까? 교사와 교직원은 해당 학생의 젠더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 것입니까?
▶ 다른 학생들은?
▶ 교직원들은?
▶ 학부모/커뮤니티의 경우?
[ 학생의 안전]
▶ 학교 내에서 학생이 성인의 도움을 받을 때, 해당 성인은 누구인가?
▶ 만약 해당 성인이 부재중일 시,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학생 및/또는 가족이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해당 학생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무엇이고, 해당 경우 시
어떻게 신호를 보내기로 했는가?
▶ 수업 중인 경우 :
▶ 운동장인 경우 :
▶건물 안인 경우 :
▶기타 :
▶다른 안전 문제 / 논의 사항 :
(중략)
[ 다른 고려 사항 ]
▶다른 학생이나 가족, 또는 교직원들과 함께 논의되거나 설명되어야 할 어떤 특별한 사회적 관계가 있는가?
▶해당 학생은 학교에 형제가 있는가? 해당 형제와 관련하여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인가?
▶ 해당 학교에는 복장 규정이 있는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는가?
▶ 올해 이루어질 수업과 단원, 내용과 기타 활동들(성장과 발전, 사회 정의의 단위, 이름 프로젝트, 댄스 교육, 프라이드 행사, 학교 댄스 등)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가?
▶ 학교가 젠더퀴어 학생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어떤 훈련에 참여해 역량을 신장시켜야 하는가?
▶ 다른 질문이나 우려 사항, 또는 논의해야 할 이슈가 있는가?
[ 지원 계획 검토 및 개선 방안 ]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 계획은 어떻게 모니터링될 예정인가?
▶학생과 가족, 또는 학교가 본 계획의 어떤 부분을 재논의하길 원하거나 새로운 요구를 추가하길 원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논의하기로 하였는가?
▶본 회의에서 나온 구체적인 후속 및 확인 조치는 무엇이며, 누가 이를 책임지기로 하였는가?
물론 이렇게 자세히 확인하더라도, 학교에서 실제로 트랜스젠더 학생이 바라고 필요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많은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질문 2. 트랜스젠더 학생의 성별에 맞는 화장실과 탈의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안전하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혹은 다른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어떡하나요?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추어 성별이 구분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안전하고 지지적인 학교 환경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지정성별 여성인 트랜스젠더 남학생이 남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안전이 우려되는 등의 경우라면, 학교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과 함께 논의하여야 한다.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은 이때의 논의 목표는 학생의 성별 정체성과 안전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하고,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에 맞는 공간을 사용하도록 한 것을 철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수업 시간 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쉬는 시간에 교사들이 화장실 주변에 더 많이 배치되는 것, ‘친구 시스템’ 즉 당사자가 신뢰할 수 있는 동료 학생과 함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나 교직원을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대체 시설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학교 내에서의 안전 문제는 트랜스젠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학교 문화의 문제일 수 있으므로, 학교는 모든 학생이 화장실과 탈의실에서 안전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지적한다.
학교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강력한 우려 중 하나는, 다른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학생과 같은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은 “이러한 우려는 언뜻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종종 트랜스젠더 남성 청소년이 ‘진짜’ 남자가 아니고, 트랜스젠더 여성 청소년이 ‘진짜’ 여자가 아니며, 트랜스젠더 학생이 부적절한 목적을 위해 공간에 출입하기를 원한다는 잘못된 통념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우려가 예상되거나 실제 제기된 경우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잘못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동시에 누구든 다른 사람을 해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 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에게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법과 제도, 가이드라인 등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중 앨버타주에서 학교에 배포한 〈학교 현장 실천 지침 가이드라인〉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접근이 쉬운 성중립 화장실을 하나 이상 배치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더 나아가 만약 트랜스젠더 학생과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함께 쓰기를 거부하는 학생 또는 보호자가 있는 경우, 트랜스젠더 학생이 아니라 거부하는 그 학생에게 대안적인 시설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화장실 외에도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서의 숙소 배정, 기숙사 배정 등이 성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가장 우선하여야 할 것은 트랜스젠더 학생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방 배정을 받고 싶은지 여부이고, 당사자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 1인실을 배정하거나, 친한 친구(성별을 불문하고) 또는 교직원과 함께 방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 모든 조치의 전제에는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불편한 것이 안전하지 않은 것과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학교는 모든 학생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학교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모든 학생이 안전한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관점이다.
질문 3. 그 학생이 트랜스젠더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그 학생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가정 환경, 정신 건강, 각종 피해 등) 때문에 성별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종종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지원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질문이다. 당사자가 주장하는 성별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과거 성과 관련한 폭력 피해 경험이 있거나 부모가 이혼하였다는 사정 등이 있을 때, 한 사람의 정체성은 쉽게 ‘혼란’이거나 ‘실수’의 결과로 의심받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아동·청소년일 경우에는 더더욱 ‘미숙함’과 결부되어 지원자들로 하여금 ‘꼭 지금 성 정체성을 확정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때 혹시 그 청소년이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들지는 않았는지 한번 질문해 보면 좋겠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청소년에게 힘든 일이 있을 거란 염려가 들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삶이 무조건 불행하고 힘들 거란 판단 또한 하나의 편견이고❷, 지금 당장 그 청소년을 위해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청소년에게 큰 지지와 힘이 되는 것은 물론, 지금 여러분 마음 한편에 드는 불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대한 표현, 또는 어떤 형태의 특정 젠더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은 모두 아주 건강하고 적절한 것이며, 인간 발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특정 젠더에 구애받지 않는 학생은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에 맞지 않는 성별을 표현하도록 요구 또는 권유받아선 안 된다. 이러한 시도나 요구는 비윤리적이며, 학생에게 중대한 정서적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 학생의 정체성과 표현에 대한 반대가 자신의 진지한 종교적 믿음에 근거했다고 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며, 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선언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져도(나이, 발달장애 혹은 지적장애 때문에) 변치 않는 사실이다.
- 〈트랜지션 중인 학교들〉의 가이드라인 원칙 중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인식하는 젠더 정체성을 갖고 존중받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의료적, 정신적 건강 진단 또는 치료의 문턱은 없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 교육구 〈트랜스젠더 학생 - 학교 성공과 기회 법 시행 지침〉 중에서
무지개 학교❸는 어렵지 않다
이번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학교 현장에서 트랜스젠더 학생을 지원하려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궁금증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가이드라인일 뿐 구체적, 개별적 상황에 맞춘 지원은 계속해서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트랜스젠더 학생의 화장실 이용 문제를 고민하며 자문을 요청한 교사 등에게 위와 같은 해외의 사례로 대안을 제시하였을 때, 어떤 분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흔쾌히 반응한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왜일까? 가늠해 본다면, 트랜스젠더 학생의 요구에 맞춘 지원을 하였을 때 다른 학생, 보호자, 혹은 일부 혐오 단체의 민원 등을 예상하여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는지 선례를 알지 못해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한 명의 ‘좀 특이한’ 학생에 대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❹ 물론 트랜스젠더 학생을 포함해 모든 학생에게 포용적 학교 환경을 만드는 일은 개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성소수자 학생도 차별 없고 안전한, ‘무지개 학교’를 구축하는 일은 국가의 책임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포용적 학교의 중요성을 선언하기까지, 수많은 학교 현장에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 학생들과 그들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시도했던 학교 구성원들이 있었다. 그 경험이 모여 더 나은, 더욱 포용적인 방향을 상상할 수 있게 했고, 그들에게 더 이상 ‘무지개 학교’는 어려운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되었다.
2021년에 〈서울신문〉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평균 중·고등학생의 학업 중단율과 비교해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학업 중단율은 무려 27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성소수자와 학교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27배의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띵동이 상담하는 청소년 중 트랜스젠더의 비율은 이미 절반을 넘었다. 학교 안의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❺의 시작을, 부족하더라도 용기 있는 시도를,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을 우리 모두 경험할 수 있기를, 이 모든 시도가 쌓여 결국에는 무지개 학교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
❶ 이 글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공동법률사무소 이채(책임연구원 송지은, 정명화)(2022),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본 연구’) 중 일부를 요약·정리하여 작성하였다. 보고서 전문은 띵동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❷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지원 FAQ〉(2023, 공개 예정)
❸ 띵동과 공동법률사무소 이채가 함께 2021년 진행한 청소년 성소수자 참여 프로그램 ‘띵동식당’에서,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각자 학교에서 겪은 경험과 자신이 바라는 학교의 모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Zoom’의 화이트보드 기능을 이용해 함께 ‘내가 다니고 싶은 무지개 학교’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2022년 띵동은 메타버스 플랫폼 ‘Zep’을 이용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구상한 학교를 메타버스 공간으로 구현하여 공개하였다. 공개 이후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자 등이 공간에 방문하여 배제와 차별 없는 공간을 탐색하고, 개정 교육과정에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zep.us/play/DK5rkG)
❹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의 부록에는 보다 다양한 장면에서의 성소수자 학생 지원의 실례, 성소수자 학생 지원에 대해 항의하는 보호자와 대화하는 방법(talking point), 학교 현장의 성소수자 포용성 척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도구 등이 실려 있어, 필요할 경우 꼭 참고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❺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UN OHCHR)은 2019년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를 교육 환경에 포함시키는 것’이 유엔의 2030 지속 가능 발전 목표(UN-SDGs)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