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에세이] 다시 교사로 살아가기 - 공모 교장 이후 교사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고민(박지희)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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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다시 교사로 살아가기

- 공모 교장 이후 교사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고민



박지희

jihia430@hanmail.net

서울 상원초 교사,

전 서울 도봉초 공모 교장

 



모든 것이 낯설다.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내려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출근길에 교무실에 들르는 선생님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해 놓고, 교문에서 학생들 등굣길 맞이를 하는 게 지난 4년간의 아침 루틴이었다. 또, 퇴근할 때면 교무실에 남아서 퇴근 못 하는 분들과 고민도 나누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면 같이 해결도 하고 함께 걸어서 퇴근했었다. 교장실과 교무실이 연결된 구조라서 주로 어른들과 마주하고 의논하고 때로는 속엣말도 나누던 생활이었다.

지금은 1학년 교실과 나란한 교과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만 하다가 혼자 퇴근하는 생활이다. 예정에 없던 교과 전담 교사라 동학년도 없어서 어떤 날은 어른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 갈 때도 있다.

 

나는 왜 교장이 되었나?

 

교사로 돌아온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는 왜 교장이 되었는가부터 이야기해 보자.

교사로 발령받고 1년 남짓 생활하다, 전교조 결성으로 72학급이 넘는 거대 학교에서 저경력 교사인 나 혼자 해임이 되었다. 그리고 4년여의 해직 교사 생활을 하고, 1994년 다시 신규 교사로 복직했다. 젊은 날, 왜 해직이라는 어마어마한 칼날을 피하지 않았느냐고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스스로도 수없이 나에게 물었었다. 그때도 교사가 교실의 교사로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교실 안에만 머무르다가 교사가 이상한 철학을 갖고 있으면 학생들은 이상한 배움의 내용을 갖고 다음 학년으로, 세상으로 나가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설령 교사가 학생들과 1년을 의미 있게 또는 즐겁게 보낸다 해도, 아이들의 삶의 환경이나 교육을 바꿔 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이벤트가 될 뿐이다. 그래서 교사들이 자유롭게 모이고 배우고, 교사들의 교육적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 교육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건강한 교육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장 승진 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승진 제도뿐만 아니라 교장의 역할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안적인 방법으로 공모 교장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는 반가웠고, 교장의 새로운 역할과 상도 교사 출신 공모 교장들이 세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더구나 2014년부터는 혁신학교를 주도적으로 해 오면서, 학교장이 갖는 영향력이 큼을 실감했다. 새로운 교장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들이 하는 걸 지원해 주는 그런 교장보다, 혁신학교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을 가지고 교사들과 함께 머릴 맞대고 논의하는, 때론 설득도 하고 협의도 하는 그런 교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교장을 찾고자 하면서도,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역사가 오래된 도봉초등학교의 핵심 교사들에게도 그런 갈증이 있었다. 좋은 교장들이 거쳐 갔지만, 그들은 조금 더 자신들과 강하게 결합되어 함께 일할 ‘기획팀장’ 같은 교장을 찾고 있었다. 내가 그 역할을 잘할 거라 생각했다기보다는, 내가 기대하는 교장의 역할과 그들이 생각하는 역할이 비슷해서 공모 교장에 지원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교장이 되었다.

어떤 다른 학교장이나 혁신학교를 따라 하기보다, 우리 학교에서 필요한 교장의 역할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학교에 맞는 혁신을 하고자 했다. 바로 기초 학력 강화였고, 문해력 향상이었다. 기초 학력과 문해력이 나아지자 수업 분위기를 흐리던 아이들도 적어졌고, 그러자 ‘아이들이 너무 어렵다’고 하던 교사들도 ‘아이들이 이뻐 죽겠다’고 하는 모습으로 변해 갔다. 학년별로 문해력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이 체계화되었고 이를 수시로 공유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 주기’로 가정의 문해 환경이 바뀌면서 학생들의 정서는 물론 읽기 유창성이 크게 나아졌다. 보호자들이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 주기’를 모든 학년에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도봉초가 교사들이 기피하던 힘든 학교였는데, 이제는 교사들이 근무 기간을 넘기고도 이 학교에 남고자 하게 되었다. 개인 연구 시간을 뺏는다고 불평의 대상이던 회의나 연구 모임에도 교사들이 기꺼이 참여하게 됐다. 학교 전체의 교육생 태계가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이런 교육 활동들은 어떤 것은 시도한 지 1년, 길어야 2~3년이 됐다. 학교의 맞춤형 교육과정이나 특색 활동으로 자리 잡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운영 방향을 정하고, 구성원들과 그것에 대해 합의하고 설득해 나가면서, 또 그것이 문화로 안착되기에는 사실 4~5년은 부족하다. 그래서 교장 임기를 마치고 교사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시작된 변화를 공고한 교육과정과 문화로 만들고 싶었다.

공모 교장 제도를 교장의 역할에 대한 확장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누가 교장이 되는가도 중요하지만, 교장이 다시 교사로 돌아와 그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한다. 기존에 해당 학교에 있던 교사가 교장에 지원하는 것은 공정성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납득이 된다. 하지만 교장을 하던 사람이 그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겠다는 것이 왜 어려울 일인가? 어쨌든 그 학교에 대해 잘 알고 학생들과 주변 환경을 잘 아는 교사나 교장이 학교 교육과정을 안착시키기 위해 더 일하겠다면, 별도 심사를 해서라도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계속 교장을 하던 도봉초등학교에서 이제는 교실의 담임 교사로 돌아가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위법은 아닌데 선례가 없고 새로 오는 교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므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교사로 돌아오는 길

 

교장으로서의 4년의 경험을 지우고 교실 교사로 서는 것은 좋은 것인가? 4년이라는 고민의 시간과 수많은 연수와 경험을 교육적 자산으로 가장 잘 살릴 방안은 무엇인가? 내가 받은 대답에는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교장에서 교사로 오는 과정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학교 재지정을 신청하고 새로운 공모 교장을 뽑는 절차가 진행되는 10월부터 교사들은 전보 절차가 진행된다. 실제적인 전보 절차가 진행되는 11월쯤, 임기가 끝나 가는 공모 교장들에게도 진로를 물어야 하고 교사로 진로를 정한 교장에게는 교사들이 갖는 전보 인사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다 갖게 해야 한다. 교사들이 전보에 관해 갖는 의무는 실제 거주지여야 하고, 친인척이나 가족 간 동일 학교 근무 여부를 확실하게 밝히는 정도다. 교사로서 갖는 권리는 유예, 초빙이 있고 여기에 해당되지 않으면 전산 전보로 근거리 원칙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임기 만료 교장은 교사들이 다 발령이 나고 교장, 교감까지 다 발령된 다음에야 새삼스럽게 ‘교장에서 교사 전직’이라는 타이틀로 지역 교육청으로 발령을 낸다. 이어서 지역 교육청에서는 본인에게 어느 학교로 가고 싶은지 다시 묻고, 해당 학교 교장에게 받을 것인지 묻고, 그 교장이 허락하면 발령을 내는 방식이다.

본래는 어떤 교사도 학교장에게 전입 허락을 받는 경우가 없다. 교장을 하다가 교사로 돌아오는 교사를 왜 부담스러워하는가? 교장 출신이라고 특별 대우를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수업을 적게 맡겠다는 것도 아니다. 학년 운영, 학급 운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달라는 정도인데, 이런 발령 방식은 곤란하다.

특히 내 경우는 이미 담임 배정뿐만 아니라 교과 전담 교사 배정과 수업 시수까지 다 결정된 뒤에 발령된 과원 교사라, 교과 전담을 하다가 다른 담임 교사 중 누군가가 휴직하면 바로 담임에 투입되어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이미 수업 시수 조정이 다 끝난 다음이라 최대한 많은 교사에게 골고루 수업 시수 경감 혜택을 주어야 하므로 4개 학년 국어 및 저학년 통합 교과를 맡게 되었다. 4개 학년, 13개 학급, 19시간 수업, 혼자 연구하고 학생들 만나 수업하고 또 혼자 연구하다 퇴근한다. 결국은 그렇게 돌고 돌아, 내 수업만 하는 교사로 돌아왔다.

 

우린 서로에게 거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성장하면서 ‘거울 존재’가 필요하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권윤덕(2005), 창비)라는 그림책이 있다. 아이는 매 순간 자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존재(고양이)가 자신을 따라 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되비쳐 주기(거울 역할) 하는 존재에게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확신을 얻는다. 고양이가 아이를 따라 하고, 아이가 고양이를 따라 하기도 하면서, 아이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배우면서 세상으로 나아간다. 어릴 때는 자기라는 개별적 존재에 눈을 맞추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존재가 필요하다. ‘맞아, 그거야, 그렇게 하고 있구나’ 하고 이야기하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때로는 ‘나를 봐 봐’ 하면서 다른 존재를 보여 주는, 아이가 신뢰감 있게 바라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거울 존재 말이다.

이 거울 존재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가? 자신의 삶이 교육이 되는 교사에게도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 갑자기 낯선 사람들 속에 애매한 존재로 발령 난 나는 내 모습을 되비쳐 줄 거울도 없이 날마다 하루하루 교실만 드나드는 ‘교실 교사’로 살고 있다.

물론 나는 또 같이 고민하고 실천할 동료를 모을 것이다. 후배 교사 한 명은 내 수업을 참관하고 싶다고 매주 수업에 들어온다. 어떤 후배는 같이 모임을 하자며 교사학습공동체를 제안했다. 벌써 새 사람들과 가질 모임에 다시 설레지만, 후배들과 나는 서로 거울 존재가 되어 줄 만큼의 시간이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시도하는 단계에 다다를 즈음이면 나는 퇴직할 나이가 되어 있을 거란 생각에 자꾸 주춤거리게 된다. 공모 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다시 교사로 돌아와 살기에 적절한 방식이 무엇인지, 우리가 교육 생태계를 위해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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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