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교육의 목표는 학력 보장이 아니어야 한다❶
학력·기초학력 개념의 나이주의·능력주의적 문제
글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투명가방끈 활동가
학력(學力)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임에도 찬찬히 돌아보면 쉽게 알기 힘든 개념이다. 보통 ‘학력 차별’이나 ‘학력주의’라고 할 때의 ‘학력(學歷)’은 공교육 이력, 즉 어느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는지 어떤 교육과정을 이수했는지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음이의어라는 점과 가시적 측정 수단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학력(學歷)이 곧 학력(學力)과 동일한 것으로 혼동 또는 간주되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힘 력(力)을 쓰니 학력이 일종의 능력이나 역량 따위임은 알기 쉽다. 그런데 대체 어떤 능력인가? 배울 학(學)이 있으니 배우는 능력인가? 학자의 학문적인 능력인가? 아마도 여기의 ‘학’은 배운다는 행위나 학문보다는 학교나 교육 제도를 의미하는 것일 듯싶다.
영어로 어떻게 옮겨지는지를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해진다. 학력을 직역하면 ‘academic ability’일 텐데, 학업을 할 수 있는 능력, 어떤 공부를 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 하는 의미의 용례들이 눈에 띈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이름에도 들어 있는 ‘수학 능력’과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학생들의 학력이 높아/낮아졌다’ 같은 말을 옮길 때는 ‘academic achievement’, ‘학업적 성취’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 학력이라는 말은, 교육의 이전에 학생이 갖추고 있는 학습/공부할 기반이라는 의미, 그리고 교육의 이후에 학생이 학습/공부한 결과 성취한 능력이라는 의미의 양쪽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의 결과, 학력
물론 이 둘 중에 우리 사회에서 사용 빈도가 더 높은 것은 후자의 의미다. 수능 시험조차도 그 이름과 달리 ‘대학에서 수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의 결과’를 측정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 학력 개념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봐도 대개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교수 및 학습을 통해서 길러지기를 기대하는 교육의 성과나 결과”❷와 같이, 학력을 교육의 결과로 정의한다. 덧붙여서 ‘academic achievement’라고 하면 학업적·학문적 영역에 한정된 성취라는 어감인 데 비해, ‘학력’이라고 하면 훨씬 더 포괄적인 능력, 개인의 똑똑함, 지능, 지식 등을 아우르는 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서 정의된 의미 이상으로 학력 개념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의 맥락과 배경을 읽어 낼 수 있다.
요컨대 학력은 교육의 결과 학생이 보유하게 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래도록 교과 지식과 그 활용을 중심으로 한 지적 능력의 의미로 통용되었고, 실질적으론 시험 성적 및 학력(學歷)과도 동일시되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막연하게 ‘공부를 잘함’, ‘똑똑함’과 동의어로 쓰이며, 실제로는 ‘입시 결과가 뛰어나다’ 내지 ‘좋은 입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는 말을 포장하기 위한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나아가 ‘기초학력’은 사회 및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력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 또는 최소치를 가리킨다. 이는 그동안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 같은 초등교육 정도의 기초적 능력을 뜻하여 왔는데, 이제는 「기초학력 보장법」에 따라서 각 교육 단계 또는 학년별로 기초학력의 내용과 기준을 규정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학력 개념을 확장하여 교과 지식을 넘어서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이라거나 창의적 능력이라거나 협동 능력, 정서적 능력 등으로 의미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 전북교육청의 ‘참학력’ 개념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시도는 의미가 없진 않겠으나 과연 얼마나 정착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역량들의 평가와 측정이 어렵다는 점에서도 ‘학력 신장’ 담론을 대체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이런 대안 역시 교육을 통하여 개인의 능력을 개발, 신장시킨다는 학력 개념에 담긴 교육관을 답습하고 있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학력 강조와 기초학력 보장 논리의 문제점
학력이 곧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길러지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학교의 목적이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 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다들 학교교육의 존재 이유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어떠한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학력의 최소 기준인 기초학력을 학생들이 갖추도록 보장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학력 개념은 결코 학생들의 능력을 폭넓게 총체적으로 다룰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앞서 학력이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능력이라고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학력은 학교가, 교육 제도가 학생에게 기르기를 요구하는 능력에 가깝다. 오직 교육 제도가 학생들에게 갖추게 하려고 의도하고 지시하는 것만이 학력에 포함될 수 있고, 성취했는지 여부를 평가받을 수 있다. 잠재적 교육과정도, 그 외의 다양한 교육적 경험의 효과도,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나 폐해도 학력의 언어로는 다룰 수 없다. 결국 학력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이 교육 제도의 의도에 잘 따라오고 순응하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게 된다. 교육의 과정과 경험을 거치면서 학생들에게 일어난 성장,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여진 교육과정이라는 지극히 제도적인 틀 속에서 작동하는 개념인 것이다.
기초학력 역시 ‘기초’라는 수식어 때문에 마치 보편적이고 자명한 내용 같지만 매우 제도적으로 결정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규정되는 기초학력은 국가 교육과정의 틀에 의해 정해진다. 「기초학력 보장법」 등에서도 기초학력을 ‘교과의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초학력은 1차적으로는 교육과정 내에서 요구받는 능력인 것이다. 흔히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은 진급하면서 학교생활이 어려워진다고 이야기되는데, 애초에 그 배경에는 나이와 학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짜여 있고 학생의 개별적인 상태를 유연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학교 제도가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초학력 담론과 정책에는 나이주의적인 성격이 있다. 특정한 나이에는 그에 걸맞은 발달 수준과 교육에서 성취해야 하는 단계가 있으며, 이에 미달되는 것은 뒤처지는 것, 비정상, 문제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은 연령과 학년, 교육과정에 끼워 맞춰질 수 없다. 따라서 기초학력 기준 설정은 애초부터 그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움을 전제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기초학력 정책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기초학력 미달’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는 것이다.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 논란은 더 나아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은 기초학력 미달 자체를 ‘없애야 할’ 현상으로 바라본다. 기초학력 수준 미달은 나쁜 것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비율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뒤처지는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각자 재능과 환경에 따라 배움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핵심은 비율을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에 미달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하는지다.
- 〈서울시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 공개, 기초학력 보장을 저해한다?〉,
《시사IN》, 820호, 2023년 5월 30일
기초학력을 포함한 학력 담론은 능력주의적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교육을 통해 길러진 ‘개인의 능력’을 중심에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뒤처져선 안 된다는 것이든,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통해 입시와 취업에서 성공하게 하겠다는 것이든, 학력을 높이고 인재를 길러 내 국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든 학력 강조는 개개인이 더 유능해져야만 더 행복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학교 서열화와 학력을 능력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강고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게 작동할 개연성이 높다.
또한 학력을 측정하는 것은 학생이 무언가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고, 학생에게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해 더 공부하고 연습하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기초학력 보장 정책도 형식상으로는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의무를 지우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상 학생에게 학습과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핵심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학생 개인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일은 서열화와 분류의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능력주의적 차등화와 개인의 능력 개발 논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와 교육의 목적을 재설정해야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기존의 교육에 비판적인 이들이 학력 논란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학력 신장은 필요한데, 그 기회가 불평등해서 문제다. 평등하게 학력을 키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학력이란 게 중요하긴 한데, 그렇게 시험 쳐서 서열화하고 낙인찍는 식으로 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길러 주려는 학력(능력)은 이런 게 아니라 저런 것이다’라며, 대안적인 학력 개념을 제시하고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접근 방법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각각의 문제의식과 유의미한 지점이 있고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력 논의가 되풀이되고 나이주의·능력주의적 논리가 재생산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한발 더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학교가 학생의 학력을 책임지고 길러야 하는 게 당연한 진리이고 제1의 목표라는 생각을 벗어나, 학교의 다른 역할과 존재 이유를 논의하고 교육의 다른 목적을 설정해 보자. 가령, 학교는 신뢰하는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를, 학교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관계를, 지역 사회와 연결된 네트워크를, 문화와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돌보고, 복지 제도나 공공 기관 등 사회적 자원과 연결해 주는 중개지여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쿠션이자 발판이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를 익히고 사회의 규범과 역사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제공해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권리도 실천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들이 인격을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생활 공간이어야 한다.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배움이나 도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공부나 배움이 즐거움과 보람의 한 원천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학교라면 수업이나 교육, 평가의 의미와 방식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도 학교에서 성장하며 능력과 역량이 길러지긴 하겠으나 그것이 최우선의 절대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학교생활과 교육 활동의 결과 학생들이 더 좋은 사회를 구성하고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곧 ‘교육을 통해 학생들과 우리 사회가 기르게 되는 능력’일 것이다. 그 이름으로 학력이나 기초학력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❶ 이 글은 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의 내부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❷ 성열관 외(2016), 〈새로운 학력 개념 정립 및 구현 방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기획 / 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교육의 목표는 학력 보장이 아니어야 한다❶
학력·기초학력 개념의 나이주의·능력주의적 문제
글
공현
gonghyun@gmail.com
본지 기자, 투명가방끈 활동가
학력(學力)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임에도 찬찬히 돌아보면 쉽게 알기 힘든 개념이다. 보통 ‘학력 차별’이나 ‘학력주의’라고 할 때의 ‘학력(學歷)’은 공교육 이력, 즉 어느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는지 어떤 교육과정을 이수했는지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음이의어라는 점과 가시적 측정 수단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학력(學歷)이 곧 학력(學力)과 동일한 것으로 혼동 또는 간주되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힘 력(力)을 쓰니 학력이 일종의 능력이나 역량 따위임은 알기 쉽다. 그런데 대체 어떤 능력인가? 배울 학(學)이 있으니 배우는 능력인가? 학자의 학문적인 능력인가? 아마도 여기의 ‘학’은 배운다는 행위나 학문보다는 학교나 교육 제도를 의미하는 것일 듯싶다.
영어로 어떻게 옮겨지는지를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해진다. 학력을 직역하면 ‘academic ability’일 텐데, 학업을 할 수 있는 능력, 어떤 공부를 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 하는 의미의 용례들이 눈에 띈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이름에도 들어 있는 ‘수학 능력’과 유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학생들의 학력이 높아/낮아졌다’ 같은 말을 옮길 때는 ‘academic achievement’, ‘학업적 성취’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 학력이라는 말은, 교육의 이전에 학생이 갖추고 있는 학습/공부할 기반이라는 의미, 그리고 교육의 이후에 학생이 학습/공부한 결과 성취한 능력이라는 의미의 양쪽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의 결과, 학력
물론 이 둘 중에 우리 사회에서 사용 빈도가 더 높은 것은 후자의 의미다. 수능 시험조차도 그 이름과 달리 ‘대학에서 수학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의 결과’를 측정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 학력 개념에 관한 연구들을 살펴봐도 대개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교수 및 학습을 통해서 길러지기를 기대하는 교육의 성과나 결과”❷와 같이, 학력을 교육의 결과로 정의한다. 덧붙여서 ‘academic achievement’라고 하면 학업적·학문적 영역에 한정된 성취라는 어감인 데 비해, ‘학력’이라고 하면 훨씬 더 포괄적인 능력, 개인의 똑똑함, 지능, 지식 등을 아우르는 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에서 정의된 의미 이상으로 학력 개념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의 맥락과 배경을 읽어 낼 수 있다.
요컨대 학력은 교육의 결과 학생이 보유하게 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오래도록 교과 지식과 그 활용을 중심으로 한 지적 능력의 의미로 통용되었고, 실질적으론 시험 성적 및 학력(學歷)과도 동일시되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막연하게 ‘공부를 잘함’, ‘똑똑함’과 동의어로 쓰이며, 실제로는 ‘입시 결과가 뛰어나다’ 내지 ‘좋은 입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라는 말을 포장하기 위한 것처럼 보일 때도 많다. 나아가 ‘기초학력’은 사회 및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력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수준 또는 최소치를 가리킨다. 이는 그동안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 같은 초등교육 정도의 기초적 능력을 뜻하여 왔는데, 이제는 「기초학력 보장법」에 따라서 각 교육 단계 또는 학년별로 기초학력의 내용과 기준을 규정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 학력 개념을 확장하여 교과 지식을 넘어서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이라거나 창의적 능력이라거나 협동 능력, 정서적 능력 등으로 의미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 전북교육청의 ‘참학력’ 개념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시도는 의미가 없진 않겠으나 과연 얼마나 정착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역량들의 평가와 측정이 어렵다는 점에서도 ‘학력 신장’ 담론을 대체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이런 대안 역시 교육을 통하여 개인의 능력을 개발, 신장시킨다는 학력 개념에 담긴 교육관을 답습하고 있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학력 강조와 기초학력 보장 논리의 문제점
학력이 곧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길러지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학교의 목적이 학생들의 학력 신장이 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다들 학교교육의 존재 이유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어떠한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학력의 최소 기준인 기초학력을 학생들이 갖추도록 보장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학력 개념은 결코 학생들의 능력을 폭넓게 총체적으로 다룰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앞서 학력이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능력이라고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학력은 학교가, 교육 제도가 학생에게 기르기를 요구하는 능력에 가깝다. 오직 교육 제도가 학생들에게 갖추게 하려고 의도하고 지시하는 것만이 학력에 포함될 수 있고, 성취했는지 여부를 평가받을 수 있다. 잠재적 교육과정도, 그 외의 다양한 교육적 경험의 효과도,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나 폐해도 학력의 언어로는 다룰 수 없다. 결국 학력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이 교육 제도의 의도에 잘 따라오고 순응하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게 된다. 교육의 과정과 경험을 거치면서 학생들에게 일어난 성장,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여진 교육과정이라는 지극히 제도적인 틀 속에서 작동하는 개념인 것이다.
기초학력 역시 ‘기초’라는 수식어 때문에 마치 보편적이고 자명한 내용 같지만 매우 제도적으로 결정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규정되는 기초학력은 국가 교육과정의 틀에 의해 정해진다. 「기초학력 보장법」 등에서도 기초학력을 ‘교과의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초학력은 1차적으로는 교육과정 내에서 요구받는 능력인 것이다. 흔히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은 진급하면서 학교생활이 어려워진다고 이야기되는데, 애초에 그 배경에는 나이와 학년에 따라 선형적으로 짜여 있고 학생의 개별적인 상태를 유연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학교 제도가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기초학력 담론과 정책에는 나이주의적인 성격이 있다. 특정한 나이에는 그에 걸맞은 발달 수준과 교육에서 성취해야 하는 단계가 있으며, 이에 미달되는 것은 뒤처지는 것, 비정상, 문제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은 연령과 학년, 교육과정에 끼워 맞춰질 수 없다. 따라서 기초학력 기준 설정은 애초부터 그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움을 전제해야 마땅하다. 실제로 기초학력 정책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기초학력 미달’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는 것이다.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 논란은 더 나아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은 기초학력 미달 자체를 ‘없애야 할’ 현상으로 바라본다. 기초학력 수준 미달은 나쁜 것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비율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뒤처지는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각자 재능과 환경에 따라 배움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핵심은 비율을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에 미달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하는지다.
- 〈서울시 기초학력 진단 검사 결과 공개, 기초학력 보장을 저해한다?〉,
《시사IN》, 820호, 2023년 5월 30일
기초학력을 포함한 학력 담론은 능력주의적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교육을 통해 길러진 ‘개인의 능력’을 중심에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뒤처져선 안 된다는 것이든,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통해 입시와 취업에서 성공하게 하겠다는 것이든, 학력을 높이고 인재를 길러 내 국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든 학력 강조는 개개인이 더 유능해져야만 더 행복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학교 서열화와 학력을 능력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차별이 강고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게 작동할 개연성이 높다.
또한 학력을 측정하는 것은 학생이 무언가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고, 학생에게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해 더 공부하고 연습하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기초학력 보장 정책도 형식상으로는 학교에 학생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할 의무를 지우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상 학생에게 학습과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핵심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학생 개인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는 일은 서열화와 분류의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능력주의적 차등화와 개인의 능력 개발 논리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와 교육의 목적을 재설정해야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기존의 교육에 비판적인 이들이 학력 논란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학력 신장은 필요한데, 그 기회가 불평등해서 문제다. 평등하게 학력을 키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학력이란 게 중요하긴 한데, 그렇게 시험 쳐서 서열화하고 낙인찍는 식으로 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길러 주려는 학력(능력)은 이런 게 아니라 저런 것이다’라며, 대안적인 학력 개념을 제시하고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접근 방법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각각의 문제의식과 유의미한 지점이 있고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력 논의가 되풀이되고 나이주의·능력주의적 논리가 재생산되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한발 더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학교가 학생의 학력을 책임지고 길러야 하는 게 당연한 진리이고 제1의 목표라는 생각을 벗어나, 학교의 다른 역할과 존재 이유를 논의하고 교육의 다른 목적을 설정해 보자. 가령, 학교는 신뢰하는 관계로 맺어진 공동체를, 학교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관계를, 지역 사회와 연결된 네트워크를, 문화와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돌보고, 복지 제도나 공공 기관 등 사회적 자원과 연결해 주는 중개지여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패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쿠션이자 발판이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를 익히고 사회의 규범과 역사와 문화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제공해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권리도 실천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는 학생들이 인격을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생활 공간이어야 한다.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배움이나 도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공부나 배움이 즐거움과 보람의 한 원천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학교라면 수업이나 교육, 평가의 의미와 방식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도 학교에서 성장하며 능력과 역량이 길러지긴 하겠으나 그것이 최우선의 절대적인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학교생활과 교육 활동의 결과 학생들이 더 좋은 사회를 구성하고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곧 ‘교육을 통해 학생들과 우리 사회가 기르게 되는 능력’일 것이다. 그 이름으로 학력이나 기초학력이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❶ 이 글은 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의 내부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❷ 성열관 외(2016), 〈새로운 학력 개념 정립 및 구현 방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