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을 알아야 하는 이유
신필규
mongsill@gmail.com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 기획자

민나리·김주연·최훈민 씀,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오월의봄, 2023
“동성애까지는 이해가 돼요, 같은 성별을 사랑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요.”
가끔 강의나 인터뷰를 하러 가면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특별히 성소수자에게 악의가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오히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는 질문이나 발언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다 보니 동성애자 차별에 대해서는 잘 반박하지만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이건 정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에게 지식이 없지는 않다. 다만 지나치게 긴 시간 이어져 와 아예 보편적인 사고의 틀로 정착된 고정 관념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보가 상충되기에 이해하기 어려워할 뿐이다.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둘로 나뉘며 ‘생물학적인 것’이고 자연적으로 타고난다는 고정 관념 말이다.
이 고정 관념을 넘어서지 못하면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는 알아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성별이란 정말로 그런 것일까. 두 성별만 있고 태어날 때 타고나며 오직 자연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몸을 기준으로 성별을 구분하다 보니 이 고정 관념을 기정사실로 오해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성별을 이분법에 따라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고 이에 적합한 몸을 나눈 것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성별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문자 석판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분류 체계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태어나면 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성별 분류에 따라 누군가의 성별을 지정한다. 트랜스젠더를 설명할 때 늘 등장하는 ‘지정 성별’이 바로 이 개념이다. 그런데 누구도 당사자에게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후 성별을 지정하지 않는다. 이는 기성의 분류에 따라 사회가 지정한 성별과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사람도 있지만❶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이다.
사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분리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❷ 혹은 젠더(성별)를 ‘성 역할’ 정도로 생각해 왔다면 앞선 설명부터 이해가 어려울 순 있다. 하지만 인류 전체로 본다면 모든 사회가 성별을 둘로 나뉜 고정불변의 것이라 보지는 않았다. 가령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부기스족은 성별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으며, 이를 현대의 개념과 연결시키자면 트랜스젠더 여성·남성, 시스젠더 여성·남성 그리고 간성(인터섹스)의 구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미 선주민들에게는 여성에도 남성에도 영구히 속하지 않고 성별과 성적 지향이 유동적인 이들을 ‘2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는 문화가 있었다.❸ 특히 현대에 들어서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성별 정체성을 가진 ‘젠더플루이드’와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별 정체성을 가진 ‘논바이너리’ 당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❹ 이런 상황을 보면 고정불변한 두 가지의 성별만을 전제했던 성별 이분법이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하기에 너무 좁은 개념이 아니었을까.
❶ 지정 성별과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사람들을 ‘시스젠더(cisgender)’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시스(cis)란 ‘같은 쪽에 있는’을 의미하는 라틴어 접두사이다. 이는 ‘가로지르는’, ‘다른 쪽에 있는’을 의미하는 ‘트랜스(trans)’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❷ 다만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성의 구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질문과 도전을 받아 왔다. 결국 생물학적인 성별의 분류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지식 체계인데 사람의 몸이 두 가지의 성별로 나누어진다는 구분을 ‘자연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령 이분법적인 섹스의 분류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간성(intersex)의 존재부터 같은 생물학적 성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이들조차 신체 구조나 성염색체 보유에 있어 다양성을 보이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생물학적 성’이라는 단어가 그 구분이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반영했다는 오해를 만든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❸ 다만 슬프게도 완고한 성별 이분법 문화를 지닌 기독교계 유럽 침략자들은 이 ‘2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신의 섭리에 어긋난 존재라 여겨 탄압했고 1900년대 무렵에는 이들이 거의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❹ 바이너리(binary)는 이분법을 뜻하는 단어로 논바이너리(Non-binary)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당사자가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는 성별을 가진 사람임을 나타낸다.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에서 플루이드는 ‘유동적인’, ‘가변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고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한 존재로 치부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기에 성별 이분법이 만든 사회를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이런 사회에서 끊임없이 충돌과 배제를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성별 이분법에 따라 제도화된 체제와 구획된 공간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정반대의 삶을 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지정 성별은 여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남성인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상상해 보자. 이들의 성별 정체성은 남성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으로 기록된 법적 신분을 가지고 학교 입학부터 사회생활까지 모두 해내야만 한다. 어디를 가나 여성으로 인식되며 때로는 그에 따른 성 역할을 하도록 강요당한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은 물론 탈의실 사용도 힘드니 공공 시설 이용에 제약이 생겨 버린다.
물론 자력 구제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호르몬 요법을 포함하여 성 전환을 위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변화를 겪기도 한다. 후술하겠지만 비록 한계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는 경제적·사회적 자원들이 필요하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 기반도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입지가 별로 좋지 못한 트랜스젠더들 중에서도 유독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다. 오늘 이야기할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대면 인터뷰 및 설문 조사를 통해 만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이야기를 더 하기에 앞서 잠시 청소년의 삶을 상상해 보자. 성인이 되어 자립이 가능해지기까지 청소년은 주거부터 경제적 지원까지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분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사회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자립에 필요한 노동의 자격을 구성원들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요구하는 교육의 수준이 있고 자격이 있다. 그게 없다고 살아남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학교를 중도에 벗어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상에 놓인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랬으리라는 편견과 그에 기반한 차별에 노출되고, 왜 학교를 그만두었느냐 계속되는 질문은 덤이다. 그래서 공교육은 학생들을 잘 성장시킬 책임을 지지만 이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 청소년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부담을 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그리고 가정, 나아가 사회에 질문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추고 있는가.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이 부분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답은 부정적이다.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보호하고 교육해야 할 학교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럴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령 트랜스젠더 남성인 송우현 씨는 이어지는 성별 불쾌감❺에도 부모가 의료적 트랜지션을 허용하지 않자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결국 학교에 자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에 학교는 의무 상담 시간을 배정했는데 당시의 경험을 우현 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❺ 출생 시 부여받은 지정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불쾌감이나 위화감, 그로 인한 고통을 뜻한다.
“두발이나 복장이 자유로운 학교여서 짧은 머리에 바지 교복을 입은 상태였는데, 상담 교사가 ‘네가 머리를 짧게 하고 바지를 입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다. 여성성을 되찾도록 머리도 기르고 치마도 입어 봐라’라고 하더라고요.”
- 본문 43쪽
누구보다 학생의 입장에서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상담 교사가 대뜸 자신의 편견으로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재단한 셈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부정하고 당사자가 겪는 고통을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말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이 책을 만든 〈서울신문〉 취재팀이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교사의 혐오 발언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단을 가진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반발하기는커녕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듯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이분법에 따라 공간이 구획되고 생활 체계가 만들어진 학교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화장실이나 샤워실 사용은 물론 성별 정체성에 맞는 교복을 입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야말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일 텐데, 그런 역할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21.9%라는, 다른 청소년에 비해 17배나 높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학업 중단율이다.
시스젠더 중심의 사회가 가진 한계
사실 이러한 문제를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별 정체성과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이 일치하는 게 당연하고 여성과 남성, 이분법적으로 구획된 성별에 따라 체계가 만들어진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여 성소수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한데, 이를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교육 당국과 정부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교사뿐만 아니라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부모조차도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로 치닫고 만다. 앞서 언급한 취재팀의 조사에 따르면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가 탈가정을 고민했고, 그중 12.2%는 실행했다. 성인이 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떠밀리듯 학교와 집을 떠난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은 특히나 충분한 지원 속에서 성장한 청소년 시스젠더의 삶에 비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책에 등장하듯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노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든 홀로 서 보고자 일을 구하려고 해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다른 성별이 기재된 신분증이 발목을 잡는다. 학업을 중단한 것부터 핸디캡인데 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갈 법적 신분 또한 없다. 결국 책에도 등장하듯 많은 경우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다다르는 건 모두가 기피하기에 구하는 사람에게 무엇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일,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다.
그런 일을 하며 홀로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악순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르몬 요법을 포함한 의료적 트랜지션의 과정은 성별 불쾌감 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이 법적 성별 정정을 할 때도 요구된다. 특히 외과적 수술이 그렇다. 우리 법원은 트랜스젠더들의 법적 성별을 정정할 ‘충분한 몸’을 갖추고 있는지 이마저도 성별 이분법에 따라 살피기 때문이다. 자궁은 제거했는지, 성기 수술을 했는지 따져 묻는다. 하지만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수술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비용의 문제로 미루거나 복잡한 수술 과정에 부담을 느끼거나 가장 중요하게는 수술까지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만족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체성에 맞는 신분증을 얻어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비싼 외과적 수술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림자 속에서 사는 사람들, 성소수자
마지막에 이르러 이 책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충분한 지원 속에서 성장할 시스템을 갖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다룬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학교에서 잘 생활하며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지 않고 학업을 잘 이어 갈 수 있기 위한 시스템 말이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아예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성별 불쾌감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어린 시절부터 상담을 받고 생활을 해 볼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이 단순히 ‘발전한 선진국의 케이스’ 정도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아무리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하여 진보한 국가들일지라도 이들이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사회 체제와 법제,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체제를 아무리 고치고 개편해도 한계는 남는다. 그런 국가에서도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이 위화감과 방황을 겪을 여지는 충분하다. 이 책이 탐구한 해외 사례들은 그런 한계가 있더라도 성소수자 개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보완책들이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여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기 위한 정책적 보완책들이 한국에는 언제쯤 도입될까. 여야를 막론하고 거대 정당 정치인들은 차별금지법과 같은 성소수자 관련 법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변명을 반복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성소수자 관련 의제들이야말로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괜히 드러냈다가 차별만 당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안전과 생계에 위협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다면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당장의 삶을 살아 낼 여력조차 부족한 이들은 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한다. 당사자 인터뷰부터 설문, 학교와 집에서의 생활상과 그 이후의 삶의 경로, 그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통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막기 위한 정책 사례까지. 사실은 시민의 권리와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가 해야만 했을 일을 언론사 기자들이 대신 한 셈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했듯 트랜스젠더의 삶에 관심이 없다는 건 단순히 무심한 게 아니다. 트랜스젠더들이 차별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과 같다.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세상이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일단 알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을 알아야 하는 이유
신필규
mongsill@gmail.com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 기획자
민나리·김주연·최훈민 씀,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오월의봄, 2023
가끔 강의나 인터뷰를 하러 가면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특별히 성소수자에게 악의가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 오히려 이들은 트랜스젠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당사자에게 상처를 주는 질문이나 발언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다 보니 동성애자 차별에 대해서는 잘 반박하지만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이건 정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에게 지식이 없지는 않다. 다만 지나치게 긴 시간 이어져 와 아예 보편적인 사고의 틀로 정착된 고정 관념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정보가 상충되기에 이해하기 어려워할 뿐이다.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둘로 나뉘며 ‘생물학적인 것’이고 자연적으로 타고난다는 고정 관념 말이다.
이 고정 관념을 넘어서지 못하면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는 알아도 이해하지는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니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성별이란 정말로 그런 것일까. 두 성별만 있고 태어날 때 타고나며 오직 자연의 영역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몸을 기준으로 성별을 구분하다 보니 이 고정 관념을 기정사실로 오해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성별을 이분법에 따라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고 이에 적합한 몸을 나눈 것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성별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문자 석판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분류 체계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태어나면 사회는 이미 존재하는 성별 분류에 따라 누군가의 성별을 지정한다. 트랜스젠더를 설명할 때 늘 등장하는 ‘지정 성별’이 바로 이 개념이다. 그런데 누구도 당사자에게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후 성별을 지정하지 않는다. 이는 기성의 분류에 따라 사회가 지정한 성별과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사람도 있지만❶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이다.
사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분리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❷ 혹은 젠더(성별)를 ‘성 역할’ 정도로 생각해 왔다면 앞선 설명부터 이해가 어려울 순 있다. 하지만 인류 전체로 본다면 모든 사회가 성별을 둘로 나뉜 고정불변의 것이라 보지는 않았다. 가령 인도네시아의 소수 민족인 부기스족은 성별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으며, 이를 현대의 개념과 연결시키자면 트랜스젠더 여성·남성, 시스젠더 여성·남성 그리고 간성(인터섹스)의 구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미 선주민들에게는 여성에도 남성에도 영구히 속하지 않고 성별과 성적 지향이 유동적인 이들을 ‘2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는 문화가 있었다.❸ 특히 현대에 들어서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성별 정체성을 가진 ‘젠더플루이드’와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별 정체성을 가진 ‘논바이너리’ 당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❹ 이런 상황을 보면 고정불변한 두 가지의 성별만을 전제했던 성별 이분법이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하기에 너무 좁은 개념이 아니었을까.
❶ 지정 성별과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사람들을 ‘시스젠더(cisgender)’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시스(cis)란 ‘같은 쪽에 있는’을 의미하는 라틴어 접두사이다. 이는 ‘가로지르는’, ‘다른 쪽에 있는’을 의미하는 ‘트랜스(trans)’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❷ 다만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성의 구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질문과 도전을 받아 왔다. 결국 생물학적인 성별의 분류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지식 체계인데 사람의 몸이 두 가지의 성별로 나누어진다는 구분을 ‘자연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령 이분법적인 섹스의 분류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간성(intersex)의 존재부터 같은 생물학적 성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이들조차 신체 구조나 성염색체 보유에 있어 다양성을 보이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생물학적 성’이라는 단어가 그 구분이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반영했다는 오해를 만든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❸ 다만 슬프게도 완고한 성별 이분법 문화를 지닌 기독교계 유럽 침략자들은 이 ‘2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신의 섭리에 어긋난 존재라 여겨 탄압했고 1900년대 무렵에는 이들이 거의 사라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❹ 바이너리(binary)는 이분법을 뜻하는 단어로 논바이너리(Non-binary)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당사자가 이분법으로 구분될 수 없는 성별을 가진 사람임을 나타낸다.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에서 플루이드는 ‘유동적인’, ‘가변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고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한 존재로 치부하거나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기에 성별 이분법이 만든 사회를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이런 사회에서 끊임없이 충돌과 배제를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성별 이분법에 따라 제도화된 체제와 구획된 공간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정반대의 삶을 살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지정 성별은 여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남성인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상상해 보자. 이들의 성별 정체성은 남성이지만 그럼에도 여성으로 기록된 법적 신분을 가지고 학교 입학부터 사회생활까지 모두 해내야만 한다. 어디를 가나 여성으로 인식되며 때로는 그에 따른 성 역할을 하도록 강요당한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은 물론 탈의실 사용도 힘드니 공공 시설 이용에 제약이 생겨 버린다.
물론 자력 구제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호르몬 요법을 포함하여 성 전환을 위한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변화를 겪기도 한다. 후술하겠지만 비록 한계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법적 성별을 바꾸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는 경제적·사회적 자원들이 필요하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안전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 기반도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입지가 별로 좋지 못한 트랜스젠더들 중에서도 유독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다. 오늘 이야기할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대면 인터뷰 및 설문 조사를 통해 만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이야기를 더 하기에 앞서 잠시 청소년의 삶을 상상해 보자. 성인이 되어 자립이 가능해지기까지 청소년은 주거부터 경제적 지원까지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분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사회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자립에 필요한 노동의 자격을 구성원들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요구하는 교육의 수준이 있고 자격이 있다. 그게 없다고 살아남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학교를 중도에 벗어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출발선상에 놓인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랬으리라는 편견과 그에 기반한 차별에 노출되고, 왜 학교를 그만두었느냐 계속되는 질문은 덤이다. 그래서 공교육은 학생들을 잘 성장시킬 책임을 지지만 이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 청소년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부담을 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그리고 가정, 나아가 사회에 질문하게 된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추고 있는가.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이 부분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답은 부정적이다.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보호하고 교육해야 할 학교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럴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령 트랜스젠더 남성인 송우현 씨는 이어지는 성별 불쾌감❺에도 부모가 의료적 트랜지션을 허용하지 않자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결국 학교에 자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에 학교는 의무 상담 시간을 배정했는데 당시의 경험을 우현 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❺ 출생 시 부여받은 지정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불쾌감이나 위화감, 그로 인한 고통을 뜻한다.
누구보다 학생의 입장에서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할 상담 교사가 대뜸 자신의 편견으로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재단한 셈이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부정하고 당사자가 겪는 고통을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말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이 책을 만든 〈서울신문〉 취재팀이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교사의 혐오 발언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청소년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단을 가진 교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반발하기는커녕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듯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이분법에 따라 공간이 구획되고 생활 체계가 만들어진 학교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화장실이나 샤워실 사용은 물론 성별 정체성에 맞는 교복을 입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야말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일 텐데, 그런 역할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21.9%라는, 다른 청소년에 비해 17배나 높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학업 중단율이다.
시스젠더 중심의 사회가 가진 한계
사실 이러한 문제를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별 정체성과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이 일치하는 게 당연하고 여성과 남성, 이분법적으로 구획된 성별에 따라 체계가 만들어진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여 성소수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한데, 이를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교육 당국과 정부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교사뿐만 아니라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부모조차도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로 치닫고 만다. 앞서 언급한 취재팀의 조사에 따르면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가 탈가정을 고민했고, 그중 12.2%는 실행했다. 성인이 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떠밀리듯 학교와 집을 떠난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은 특히나 충분한 지원 속에서 성장한 청소년 시스젠더의 삶에 비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책에 등장하듯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노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든 홀로 서 보고자 일을 구하려고 해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다른 성별이 기재된 신분증이 발목을 잡는다. 학업을 중단한 것부터 핸디캡인데 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갈 법적 신분 또한 없다. 결국 책에도 등장하듯 많은 경우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다다르는 건 모두가 기피하기에 구하는 사람에게 무엇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일,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다.
그런 일을 하며 홀로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악순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르몬 요법을 포함한 의료적 트랜지션의 과정은 성별 불쾌감 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이 법적 성별 정정을 할 때도 요구된다. 특히 외과적 수술이 그렇다. 우리 법원은 트랜스젠더들의 법적 성별을 정정할 ‘충분한 몸’을 갖추고 있는지 이마저도 성별 이분법에 따라 살피기 때문이다. 자궁은 제거했는지, 성기 수술을 했는지 따져 묻는다. 하지만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수술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비용의 문제로 미루거나 복잡한 수술 과정에 부담을 느끼거나 가장 중요하게는 수술까지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만족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체성에 맞는 신분증을 얻어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비싼 외과적 수술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림자 속에서 사는 사람들, 성소수자
마지막에 이르러 이 책은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충분한 지원 속에서 성장할 시스템을 갖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다룬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학교에서 잘 생활하며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지 않고 학업을 잘 이어 갈 수 있기 위한 시스템 말이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아예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성별 불쾌감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어린 시절부터 상담을 받고 생활을 해 볼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이 단순히 ‘발전한 선진국의 케이스’ 정도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아무리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하여 진보한 국가들일지라도 이들이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 이분법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사회 체제와 법제,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다. 체제를 아무리 고치고 개편해도 한계는 남는다. 그런 국가에서도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이 위화감과 방황을 겪을 여지는 충분하다. 이 책이 탐구한 해외 사례들은 그런 한계가 있더라도 성소수자 개인들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보완책들이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하여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기 위한 정책적 보완책들이 한국에는 언제쯤 도입될까. 여야를 막론하고 거대 정당 정치인들은 차별금지법과 같은 성소수자 관련 법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변명을 반복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성소수자 관련 의제들이야말로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괜히 드러냈다가 차별만 당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안전과 생계에 위협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다면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당장의 삶을 살아 낼 여력조차 부족한 이들은 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주제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한다. 당사자 인터뷰부터 설문, 학교와 집에서의 생활상과 그 이후의 삶의 경로, 그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통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막기 위한 정책 사례까지. 사실은 시민의 권리와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가 해야만 했을 일을 언론사 기자들이 대신 한 셈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했듯 트랜스젠더의 삶에 관심이 없다는 건 단순히 무심한 게 아니다. 트랜스젠더들이 차별과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과 같다.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세상이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일단 알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