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국가교육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청소년이 실종된 국가교육위원회
글
김자유
jayu@nuguna.co
투명가방끈 회원, 누구나데이터 대표
국가교육위원회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교육계의 염원을 담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이다. 축배를 들고 앞으로의 교육에 대한 가슴 뛰는 상상과 제안이 넘실대야 하는데, 이렇게 적막할 수가 없다. 참담한 심정이다.
가능성이 엿보였던 국가교육회의 시절
교육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면 우리 교육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번에도 ‘청소년 배제’라는 기성 질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청소년(단, 초·중·고 재학생으로 한정)과 청년을 묶어 총 2명의 위원을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청소년 1석, 청년 1석 배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국회 추천 과정에서는 이 2석을 모두 대학생으로 채워 버렸다.
게다가 위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현직 교수, 대학생 등 대학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이 전체 위원 21명 중 11명으로 53%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학’교육위원회라고 부를 만하다. 오늘날 전국 유·초·중·고 재학생은 590만 명으로 대학생 250만 명보다 2.4배나 많은 점을 고려하면, 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민의를 균형 있게 반영하고자 세심하게 노력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교육의 민주성을 최대로 구현하고자 탄생한 기구인데 그 가치가 제1기 위원 구성이라는 첫 단추부터 훼손되었다.
나는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 희망을 가졌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추진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가교육회의’라는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를 만들었다. 국가교육회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전신 기구로서 모델을 실험하면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계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청소년 시절 학생회 활동 등을 했던 경험을 계기로 국가교육회의 산하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국가교육회의는 중장기교육정책위원회, 고등·직업교육개혁위원회, 지역사회협력위원회, 디지털교육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교육 어젠다 전반을 다루었고 교육에 대해 고민해 온 현장의 유능한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초대하여 직·간접적 참여를 요청하였다. 현안에 매몰되어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중장기 교육 개혁 과제를 모두 꺼내어 공론장에 올려놓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구체화하는 용광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나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청소년·청년 기구는 짜여진 틀에 들러리를 서 주는 것이니까’라는 패배감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특별위원이 되고 나서 운영팀에 ‘국가교육회의가 청년특별위원회를 활용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문의하였다.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그에 맞춰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운영팀은 “정해진 것은 없으니 위원님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하시면 된다”라고 일관되게 답변하였고, 이내 나의 태도가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청소년·청년에게 중요한 중장기 교육 과제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의견을 모을지, 어떤 형태로 정책을 제안할지는 청소년·청년에게 완전히 일임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을 국가교육회의에서 일하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생경한 이러한 문화와 인식을 기반으로 청년특별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체제 개편, 비대면 교육 등에 대해 청소년·청년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기 위한 토론회, 경청회, 워크숍 등의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였다.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라는 제한적인 행정력 안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남기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다루는 내용뿐 아니라 그 운영의 방식마저도 새롭게 세우고자 했던 이 같은 열망은, 정권이 바뀌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고요하게 사라졌다.
청소년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아직 위원 구성만 마쳤을 뿐이다. 구체적인 예산과 사업이 집행되는 2023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의지를 가지고 운영의 묘미를 살린다면 국가‘대학’교육위원회라는 오명을 벗고 소생할 수 있다. 청소년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위해 다음을 제언한다.
첫째, 산하 기구 제도를 적극 활용해 청소년을 공식적인 기구 안으로 편입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특별위원회, 국민참여위원회 등 산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저 비청소년이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신 수렴하는 요식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소년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모을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답습하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이라는 평가를 피해 가기 어렵다.
둘째, 청소년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청소년 위원의 자격을 초·중·고 재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다. 시행령 입법 당시 학교 밖 청소년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청소년단체들이 의견을 개진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비록 본 위원회의 위원 자격은 이렇게 정해졌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산하 기구를 활용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소년의 참여를 보장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산하 기구 위원에 대해서는 법령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 장애 청소년 등 국가 교육 정책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청소년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바란다.
셋째, 청소년 위원을 추천하기 위한 추천 자문단 구성이 필요하다. 공공 기관이 청소년 위원을 인선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점은 어디서 청소년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대학생, 학부모, 교사, 교수 등의 집단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원을 추천할 때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거버넌스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청소년은 그들을 대표하는 조직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위원은 담당 공무원들의 역량에 의존해 임의로 ‘데려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안목이 있으면서 청소년의 권익을 잘 대변하는 역량을 가진 청소년들은 이미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만들어 도움을 받는다면 청소년 추천 프로세스가 비로소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 기대를 거두지 말자. 행복하고 평등한 교육을 위해 국가 권력이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요청한다.
기획 / 국가교육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청소년이 실종된 국가교육위원회
글
김자유
jayu@nuguna.co
투명가방끈 회원, 누구나데이터 대표
국가교육위원회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교육계의 염원을 담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이다. 축배를 들고 앞으로의 교육에 대한 가슴 뛰는 상상과 제안이 넘실대야 하는데, 이렇게 적막할 수가 없다. 참담한 심정이다.
가능성이 엿보였던 국가교육회의 시절
교육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면 우리 교육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번에도 ‘청소년 배제’라는 기성 질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청소년(단, 초·중·고 재학생으로 한정)과 청년을 묶어 총 2명의 위원을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청소년 1석, 청년 1석 배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국회 추천 과정에서는 이 2석을 모두 대학생으로 채워 버렸다.
게다가 위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현직 교수, 대학생 등 대학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이 전체 위원 21명 중 11명으로 53%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학’교육위원회라고 부를 만하다. 오늘날 전국 유·초·중·고 재학생은 590만 명으로 대학생 250만 명보다 2.4배나 많은 점을 고려하면, 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민의를 균형 있게 반영하고자 세심하게 노력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교육의 민주성을 최대로 구현하고자 탄생한 기구인데 그 가치가 제1기 위원 구성이라는 첫 단추부터 훼손되었다.
나는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 희망을 가졌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추진을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가교육회의’라는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를 만들었다. 국가교육회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전신 기구로서 모델을 실험하면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설계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청소년 시절 학생회 활동 등을 했던 경험을 계기로 국가교육회의 산하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국가교육회의는 중장기교육정책위원회, 고등·직업교육개혁위원회, 지역사회협력위원회, 디지털교육위원회 등을 설치하여 교육 어젠다 전반을 다루었고 교육에 대해 고민해 온 현장의 유능한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초대하여 직·간접적 참여를 요청하였다. 현안에 매몰되어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중장기 교육 개혁 과제를 모두 꺼내어 공론장에 올려놓고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구체화하는 용광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나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청소년·청년 기구는 짜여진 틀에 들러리를 서 주는 것이니까’라는 패배감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특별위원이 되고 나서 운영팀에 ‘국가교육회의가 청년특별위원회를 활용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문의하였다.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그에 맞춰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운영팀은 “정해진 것은 없으니 위원님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하시면 된다”라고 일관되게 답변하였고, 이내 나의 태도가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청소년·청년에게 중요한 중장기 교육 과제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의견을 모을지, 어떤 형태로 정책을 제안할지는 청소년·청년에게 완전히 일임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을 국가교육회의에서 일하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생경한 이러한 문화와 인식을 기반으로 청년특별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체제 개편, 비대면 교육 등에 대해 청소년·청년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하기 위한 토론회, 경청회, 워크숍 등의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였다.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라는 제한적인 행정력 안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남기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다루는 내용뿐 아니라 그 운영의 방식마저도 새롭게 세우고자 했던 이 같은 열망은, 정권이 바뀌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고요하게 사라졌다.
청소년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아직 위원 구성만 마쳤을 뿐이다. 구체적인 예산과 사업이 집행되는 2023년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의지를 가지고 운영의 묘미를 살린다면 국가‘대학’교육위원회라는 오명을 벗고 소생할 수 있다. 청소년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위해 다음을 제언한다.
첫째, 산하 기구 제도를 적극 활용해 청소년을 공식적인 기구 안으로 편입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특별위원회, 국민참여위원회 등 산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저 비청소년이 청소년의 목소리를 대신 수렴하는 요식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소년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모을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답습하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이라는 평가를 피해 가기 어렵다.
둘째, 청소년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청소년 위원의 자격을 초·중·고 재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다. 시행령 입법 당시 학교 밖 청소년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청소년단체들이 의견을 개진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비록 본 위원회의 위원 자격은 이렇게 정해졌지만, 국가교육위원회가 산하 기구를 활용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소년의 참여를 보장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산하 기구 위원에 대해서는 법령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밖 청소년, 장애 청소년 등 국가 교육 정책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청소년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바란다.
셋째, 청소년 위원을 추천하기 위한 추천 자문단 구성이 필요하다. 공공 기관이 청소년 위원을 인선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움을 토로하는 점은 어디서 청소년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대학생, 학부모, 교사, 교수 등의 집단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원을 추천할 때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거버넌스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청소년은 그들을 대표하는 조직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위원은 담당 공무원들의 역량에 의존해 임의로 ‘데려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안목이 있으면서 청소년의 권익을 잘 대변하는 역량을 가진 청소년들은 이미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만들어 도움을 받는다면 청소년 추천 프로세스가 비로소 시스템으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 기대를 거두지 말자. 행복하고 평등한 교육을 위해 국가 권력이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