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_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④
교사들의 현실,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조영선
imaginer96@gmail.com
서울 지역 고교 교사,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이초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침해’에 대한 교사들의 분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교육부 장관과 시·도 교육감은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행사에 참여하며 ‘교권 대책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그런데 그들의 ‘교권 대책’은 교사를 보호할 수 있을까?
현재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둘째는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생활지도 고시’ 도입, 셋째는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대해 무고를 부르고 있다고 지목된 아동학대 관련 제도의 개선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다음과 같은 전제에 기반한다. 모든(또는 적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선량하고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방식도 교육적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같은 것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적절한 생활 지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관련 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나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것이 아동학대가 될까 봐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이다. 즉, 교사에게 권한만 주어진다면 모두 할 수 있는데 교사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교실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설정은 실제로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는가?
교육 당국의 책무부터 물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폭력과 갈등의 양상은 다층적이다. 하나의 사건 이전에 그 전조가 되는 사건들이 있고, 가해와 피해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어떤 장면을 폭력 행위로 잡느냐에 따라 가해자가 결정된다. 이번에 알려진, 발달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건 역시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실제 장애 학생들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이기보단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❶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은 인지적·정서적 불균형 속에서 학교에 가게 되는데, 학교는 그들을 교육할 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다. 통상적인 수업 시간에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내용과 방식이 스며들 틈이 없다. 그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적인 구조이다. 구조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단순히 학생 간 폭력이나 교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는 형국이다. 교권 침해 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학생이 교사한테 욕을 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때,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해당 학생의 맥락에 따라 정서 상태를 공격하는 ‘트리거’가 되는 원인 행위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삭제한 채 그 학생을 가해자로 규정하여, 중학교에서는 강제 전학을 보내고 고등학교에서는 퇴학·정학(출석 정지)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교사들이 중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폭력 대책이 만들어진 2012년을 돌아보자. 당시에도 교육·시민단체들은 응보적 해법이 아니라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단위 학교에서 전문 상담사 및 학교 사회복지사 확충을 통한 학생 지원 체제 강화, 피해 학생 회복을 위한 지원 예산 확보, 학생인권 제도화를 통한 학교 내 구성원의 인권 의식 제고와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 등을 요구하였다.❷ 그러나 10년 전에도 교육 당국은 교육 현장을 지원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채 문제를 당사자 간 갈등으로 프레임화하여 심판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학교폭력 사안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는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켜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법정까지 가는 관행을 만들었다. 폭력 가해자로서 성찰의 자리는 없어지고, 피해자에게 앙심만 갖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 사이에 낀 교사는 누구의 입장에 섰는지에 따라 송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 상황 또한 이런 알리바이 쌓기식 대책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보여 준다. 지난 8월 8일, 교육부가 주관한 교권 대책 포럼에서,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 등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즉, 교육부는 10년 전에 자신들이 설계한 교권 보호 정책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같은 방식의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교사·학생·학부모를 모두 지원해야 하는 교육 당국이 갈등 해결의 구조적 지원책 마련이라는 책임을 또다시 방기한다면, 교육 주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각자도생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실제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며 열을 올리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사에게 필요한 차별 금지 조항과 학교 자치에서의 교사 참여권 등을 포함한 서울 교권 조례 제정에 대해 ‘학교장의 권한과 충돌한다’라며 반대하였던 바 있다. 교육부 역시 이 조례가 상위법 위반이라며 재의 요구를 반복하다 집행 정지 소송 끝에 무산시켰다. 지금 교총은 교권 보호 조치로 교권 침해 사안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친교육부적인 관리자 집단인 교총은 교사가 교육과 학교를 바꾸기 위한 권리나 수업에 관한 자율권은 억압하고,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권리만 보장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애시당초 학생인권조례 폐지·축소 등을 이야기하는 교육부의 대책은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현재 서울 지역 학교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23.8명이다. 그런데 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30명 이상에 달하는가? 교실로 적당하지 않은 장소가 교실로 쓰일 정도로 학급 수를 증설한 경위는 무엇인가? 왜 해당 지역에는 주로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를 배치하는가? 그 학교에는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인력이 있었나?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갈등에 직면하게 되는 교사의 부담에 대해 교장·교감 등 관리자는 어떤 역할을 하였나? 이처럼 먼저 확인되고 분석되어야 할 일들은 전혀 조명되지 않고 있다. 장애 학생 관련 사건에서도, 통합교육을 하려면 일반 학급 학생들이 장애 학생의 특성을 이해하고, 장애 학생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반 학급 학생들의 반응을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졌는지, 특수교육 지원사는 상시 지원되었는지, 학교장과 교육청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등은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구하려면 교육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교육에 대한 예산이 풍부했던 2021년과 2022년, 교사 정원은 더 많이 확보되었는지, 학생 지원 인력에 대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었는지, 올해와 다가오는 새해에는 교원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고 있는지, 학생들 지원을 위해 어떤 인력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교육에 대한 불만을 받아 내는 과녁이 되는 교사
오히려 교사 정원은 몇 년째 축소되고 있고, 교사의 근무 환경은 지속적으로 열악해져 왔다. 의사 외에는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공포는 ‘초등 의대반’❸ 같은 사교육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고1에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고교 학점제 속에서 양육자와 청소년은 일찍부터 입시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학교는 학원을 가기 전 쉬는 곳 또는 사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폭발되는 곳이기도 하다. ‘교권’ 대책 마련을 위한 교육부 토론회에서도 보이듯 교육 당국이 학습권에만 관심을 갖는 사이, 그 학습을 강요당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❹를 돌면서 분노를 내면화하고, 반면 이러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안전한 정서적 지지대를 갖지 못한 채 따라갈 수 없는 학교 수업에서 소외당하고 배제된다. 이러한 학생들의 정서적·사회적 격차로 인한 갈등을 교사는 과연 중재할 수 있을까?
교육과 관련 없는, 도리어 학생과의 만남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하는 교사의 업무 문제도 여전하다. NEIS 도입 이후 모든 교사의 노동은 기록 노동으로 수렴해 갔다. 코로나19 시기 ‘자가 진단 시스템’에서도 겪어 보았듯, NEIS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 평가 결과나 학생 정서 행동은 물론 신체와 관련된 예민한 부분까지도 기재하게 강제하여 이를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기록은 모두 교사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교사들은 NEIS 외에도 교육청과의 문서 수발을 담당하는 공문 시스템과 ‘에듀파인’이라는 회계 시스템까지, 필요한 교구도 모두 교사가 직접 기안하여 사야 하는 업무 폭탄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일 때 들어온 차세대 NEIS 덕에 교사들은 학기 말 성적 처리를 앞두고 난데없는 자료 이관 등 예기치 않은 소모적인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급히 구축된 시스템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고 시험 문제 재출제와 성적 재처리 등의 업무가 가중되었다. 시스템의 불안전성을 온전히 교사의 노동으로 메워 온 것이다.
교육 활동을 성과화하는 교원 평가와 성과급 제도는 이러한 어려움을 동료들과 나눌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교원 평가의 경우엔 모욕적인 서술식 평가를 보며 다 같이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불신을 가지면서도 ‘내가 평균이 안 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성과급위원회에서 교사의 어떤 노동이 ‘S등급’을 부여할 만큼 어려운 노동인가를 다투며, 어려움을 겪는 동료에 대한 연대감은 사그라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원 노동조합은 수년에 걸쳐 성과급과 교원 평가 폐지를 외쳤지만,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막혀 있어, 중앙 단위의 단체 협약은 2002년에 맺은 것이 마지막이고 연가 투쟁이나 심지어 주말 집회로도 노조 집행부는 기소되곤 했다. 이렇게 노동 3권도 제약되는 사이,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 인상으로 인한 실질적인 임금 삭감과 연금 후퇴 그리고 교원 정원 축소 등이 이루어져 왔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교사의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조항도 없다. 학생인권조례의 지향은 학생의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을 학생의 상황에 맞게 보장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고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교권을 침해하는 것’인 듯 보이는 이유는 학교에서 교사의 행위 상당수가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와 학습의 격차를 교사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교사의 고군분투는 어떤 학생에게는 배제당하는 시간이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초등학교의 경우 수십 명의 학생에 대한 통제가 교사 1인에게 맡겨지는 현실에서 조용하고 문제없는 학급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해 내야 한다. 즉 현재의 교육 환경 자체가 인권 침해적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교사의 특정 행위가 학생에게는 인권 침해 또는 아동학대로도 느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교사 개개인이 경쟁 교육 체제와 열악한 교육 환경을 떠받치면서 그 폐해가 불러온 분노의 과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 축소가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가
학생인권조례가 ‘국가 붕괴 시나리오’라는 대통령실의 신호❺와 교육부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제정된 6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2023년 9월 5일, 서울시의회에선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폐지 조례안 공청회’를 열었고,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폐지안을 상정할 수 없다는 교육상임위원장을 불신임하겠다는 겁박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예컨대 ‘교육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교육공동체조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조례안은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럴싸한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학교에서는 교사 외에도 관리자와 행정직, 강사, 교육 공무직 등 교육 노동자들이 협업하고 있기에, 교사·학생·학부모만을 꼽는 ‘교육공동체’라는 말에는 이미 배제의 사고가 숨어 있다. 또한, 어떤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담으려면 그들이 갖는 권리와 의무의 층위와 역할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학생·학부모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권리와 의무를 갖는 방식도 다르고, 머무르는 시간도 다르다.
근본적으로 학생인권이 주장된 까닭은 교사 개인 대 학생 개인 사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학교라는 기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인권 침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교사의 권한이라고 거론되는 많은 것이 사실은 학교장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이고 그 위에는 교육 당국이 있다. 따라서 학생인권은 이러한 권력과 권한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대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두발 및 용의 복장의 자유’ 역시 학교의 ‘타인의 신체·개성에 대한 통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고려치 않고 타인의 신체나 인격을 침범하는 행위도 권리 또는 권한이라고 주장되는 순간, 무엇이 인권이고 인권 침해인가 하는 본래의 문제의식은 삭제된다. 교육공동체조례의 목적이 교사의 모든 교육 행위를 권한의 이름으로 보장하겠다는 것, 인권을 침해하던 학교의 권한과 규칙까지 포함하여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라면 더욱 학생인권 침해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반면, 교사 입장에서 학교장과 교육 당국의 부당한 통제를 조례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과거의 예를 돌아봐도 그렇고 현재의 교권 담론을 봐도 그렇고 그런 내용이 포함되긴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공동체조례는 당사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내용을 담기 어려우며, 학생인권을 후퇴시킬 위험이 크다.
또, 교육부는 이것과는 별도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만들었는데, 이 안에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령 학생의 ‘용모와 복장’까지 교사의 지도 대상으로 포함시켰음은 물론, 학생의 소지품을 교사가 다양한 사유로 금지, 압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의 수거와 압수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상 처벌이나 징계에 해당하는 조치도 교사의 판단에 의해 별다른 절차 없이 ‘지도’로서 가해질 수 있게 한 부분도 있는 등 이 고시는 교사 개인에게 이러한 ‘지도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대부분 학생인권조례는 합리적 사유가 있다면 학교 규칙을 통해 수업 중 휴대전화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의 휴대전화 사용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일상적인 휴대전화 사용과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수차례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교육부의 고시도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제한이라고 명시하고 있기에, 이러한 학생인권의 기준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실상 휴대전화에 대한 자의적 압수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학생인권의 기준을 위배하며 더 많은 충돌의 위험성도 갖고 있다. 이미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을 포함해) 많은 학교가 휴대전화를 등교 시 일괄 수거하고 있는 현실이긴 하나, 학교에서 이 고시를 계기로 교사가 휴대전화 압수·수거를 시도한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압수에 불응할 경우 학생들의 몸을 수색하여 휴대전화를 빼앗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교사의 교권을 강화할까?
이는 다른 한편에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의 디지털화, AI 교육과정 개발’❻등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일관성도 없는 대책이다. 교육 복지 차원에서 디지털 기기를 교육청에서 직접 배부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도구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스마트 기기는 디지털 학습 친구라고 하면서 스마트 기기를 걷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것이 교권 보호 방안인가? 무엇보다도 이제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과 관계, 학습, 여가, 배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기기가 되었다. 휴대전화를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고 스스로 살피고 성찰할 교육적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교사가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의 교권을 주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광범위하게 소지품 규제·압수가 가능케 한 조항에 대해서는 흉기 등 위험한 소지품에 대해 검사하거나 압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고시를 만든다고 해서 실제로 안전이 보장될까? 최근 흉기 난동 사건들 이후 경찰의 검문이 부활될 조짐이 보이고 있으나, 실제로 ‘흉기를 가지고 다닐 것 같은 사람’을 특정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필, 컴퍼스, 칼 등 모든 도구들이 어떤 행위에 쓰이냐에 따라 흉기가 될 수 있다. 학생과 교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흉기 소지를 검사하고 압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도구를 남을 해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하거나, 남을 해치고 싶은 분노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학생의 마음을 미리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결국 이 고시 내용은 학교가 학생의 각종 일상 용품을 금지하고 압수할 수 있게 허용해 주는 효과만 있을 것이다.
수업 방해 행위 학생을 쫓아내라?
교육부는 학생의 수업 활동 방해를 교사가 제지할 수단이 없다고 말한다. 수업 방해는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무엇보다도 ‘누구의 학습권인가’를 따져 보는 질문이 생략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학생들은 주로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정서 상태나 인지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다. 결국 학생의 수업 방해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는, 각각 다른 성장 단계에 있는 학생들을 대다수의 ‘선한 학생’과 ‘문제 학생’으로 이분화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제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징계 기준표에 보면 수업에 관련한 항목이 모두 들어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의 학교생활규정이나 그 안의 징계 기준표에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 불이행을 처벌한다’는 내용도 여러 조항에 포함되어 있다. 이미 현재의 학칙상으로도 교사의 ‘정당한’ 지도 및 지시에 불응하는 행위는 모두 징계가 가능하다. 그리고 교사의 지도에서 ‘정당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도 모두 교사에게 맡겨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사들은 자신의 지도에 불응한 학생이 있을 때 이를 선도위원회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지도가 정당하지 않았을 때의 책임 역시 교사 혼자 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은 수업 방해 행위자이기 이전에 학습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업을 방해했다고 해서 배제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학습 당사자로서의 학습권을 빼앗는 일이다. 만약 교사가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 징계 조치를 가해서 그 학생의 학습이 방해받았다면, 학교에선 보충 수업을 해야 하고, 이 역시 다시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수업 방해로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 역시 교사가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의 기준도 모호하다. 가령 수업 방해라고 자주 언급되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교사의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을까?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에 참여하기를 포기하고 그 시간을 견디는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고등학교는 고교 학점제와 과목 선택형 수능으로, 학교에서 선택한 과목과 수능 시험을 치를 과목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다. 더욱이 사실상 공동 교육과정이 1학년에서 끝남에 따라 배워야 할 양은 늘었다. 그런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사이의 학습 난이도 격차가 큰 데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내신 시험 난도 격차도 크다. 때문에 학습에 어려움을 느껴 좌절하게 되고 1학년 때부터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이 학교마다 존재하는 현실이다. 공부를 계속해 보겠다고 결심한 학생들은 더 많은 학원에 가고,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너희는 휴식권이 없다는 고시가 생겼으니 잠을 자면 ‘일어나라’ 말하고, 불응 시 ‘타임아웃’ 한다 하여 교사의 권위가 올라가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까? 자신은 ‘정시러’❼라 내신이 필요 없으니 스스로 ‘타임아웃’ 하여 자습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그래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타임아웃’이 뭔가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쫓겨나는 일이 무서워서 자신이 행동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임아웃 당할 행동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며, 어떤 방식의 타임아웃이라야 학생과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타임아웃이 되어 학생도 진정할 수 있고, 다른 더 적합한 교육 환경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교사를 만날 수 있으며, 교실에서 배우는 것에서 배제되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과정을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할당된 교육이나 체험은 당사자에게 교실에서 ‘쫓겨났다’는 낙인과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에 사회적으로 불거진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대책에서도, 특수 교사들은 일반 학급에서 문제 발생 시 특수 학급으로 보낼 게 아니라 별도의 공간과 인력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❽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쫓겨나서 가는 공간으로 이해될 경우, 특수 학급은 격리 시설이자 낙인의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흥분하여 물리적 폭력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의 형태일 때, 분리부터 회복까지의 과정에서 이는 모두 교사에 대한 원망과 책임으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지금 이야기되는 ‘타임아웃’ 등의 조치는 개인을 분리해 내는 데 집중하기에 심리적·종합적 지원과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회복을 지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리자와 상담사와 복지사, 특수행동치료사 등 다양한 권한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상주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 상황이 진정되면 무엇이 그러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사례관리위원회를 통해 확인하고 교실 안에서 이를 돕기 위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학생에게도 ‘너를 교실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너를 이 교실에서 도와줄 거야’라는 메시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 학생과 학부모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제안한, 정서 불안 학생을 위한 별도 학교를 세우고 분리 조치한다는 정책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발달장애 학생에게 쏟아진 혐오를 볼 때, 어떤 학생이 정서 행동 위기 학생으로 분류되어 특수교육 기관으로 이전되는 순간 그 학생을 사회에서 분리시키려는 움직임이 더 강화되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이러한 분리 조치를 학부모나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위기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 학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현재 제안된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은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원칙적으로 민형사상 신고나 소송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무고죄를 적용하거나 소송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어떤 형태의 예외 조항이 생긴다고 해도 이것은 신고 후 사법적 판단 절차에서 감형이나 무혐의·무죄 결정의 근거로 활용될 수는 있으나 신고 자체를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 활동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법령을 지켰는지 등으로 여전히 계속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❾
아동학대 신고 이후 절차 문제에 주목하여, 교사 직위 해제 조치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학교 안에서 폭력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며 현재의 원칙은 어떠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률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동일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형평성에도 맞고, 반(反)폭력 감수성 또한 지위를 막론하고 폭력 행위가 있을 때 피해자 보호 조치가 우선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 구성원 간 일어난 폭력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안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오는 동시에 가해 학생은 분리 조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의 교육적 평가를 떠나, 해당 조문은 학생 간 폭력에서 아직 폭력 행위로 판단되지 않은 행위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분리 조치하라는 취지다. 그리고 교권보호위원회에서도 교사에게 폭언이나 욕설,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 전학이나 퇴학 조치를 통해 교사를 보호하고 그런 절차가 행정적으로 시행되는 동안 교사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 회복 조치를 한다. 그런데 교사가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학대 처벌법의 절차에서 교사만 예외로 한다는 것이 적절하고 문제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교사에 대한 직위 해제 조치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하므로 다른 방식으로 바꾸자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❿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법령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할 사람을 지원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학교폭력 상황에서 분리된 가해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숙고하면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교사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교실을 일정 기간 떠나게 되었을 때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교육을 이어 나가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절차를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이를 위해 ‘생활 지도 인력을 다수 확보하여,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인한 즉각적인 분리 조치 실행 등 특정 또는 다수 학생을 지도하기 어려운 사안 발생 시 이를 운용한다’고 했다.⑪ 적정 규모의 지원 인력을 둔다고 했지만, 이보다는 전면적인 정원 확대가 먼저다. 그리고 협력 교사 제도에서도 드러났듯, 지원 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또는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은데, 노동 조건이 안정적이지 않은 동료에게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갈등 상황의 학급을 책임지고 맡으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시급한 교원 확보를 말하지 못하면서 인력 지원을 말하는 것은 차세대 NEIS처럼 불안정한 시스템의 오류를 또 교사에게 메우게 하는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교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통과시키고 실제 면책을 받는 것은 바로 교육 당국이다. 현시점에서 교육 활동 아동학대 면책 취지의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실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이 아동학대 면책권까지 가진, 훈육에 있어 어떤 제한도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로 교사들을 여길 것이다. 이것은 학부모로 하여금 교사에게 더 많은 기대를 품고 요구하게끔 할 수도 있다. 현재 교사들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것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직접 훈육하기 어려우니 교사가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는 이중적인 요구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아동학대 면책권은 교사에게 책임과 부담을 전가하는 효과로 돌아온다. 사실 이전에도 교육 당국은 체벌을 금지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부담을 고스란히 교사에게 뒤집어 씌웠다. 즉, 폭력을 가해서라도 교육 당국의 목표와 지침을 학생들이 이행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실제 면책이 되지도 않는 면책권을 주는 듯 떠들며 이러한 부담을 교사에게 지우려고 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려면 더 많은 동료가 필요하고, 교육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 학교 안에서의 폭력 행동, 정서적 문제 등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의 협업체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교사는 이러한 것을 집단적으로 요구하고 정책을 견인할 수 있는 기본권도 없다. 다시 말해, 기본권 없이 면책권을 준다는 것은 교사로 하여금 때로는 경찰도 되었다가, 지식을 가르치는 강사도 되었다가, 상담가나 복지사도 되었다가, 행정 공무원도 되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혼자서 떠맡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교사의 면책권이 핵심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학생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정부의 책임을 은폐하고, 오히려 정부를 면책해 주는 것이다.
교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의 기준이 학교 안에서 불명확한 상태로 교육 활동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토론회나 여러 자리에서 교원의 교육 활동 중 어떤 것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교사에게는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교육 활동이라도 맥락적으로 아동에게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교실 내에 아동의 존엄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는지 인지하고, 교사가 아동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야 할 행동이 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사회적 기준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교사 개인의 과제가 아니라 학교 제도가 전체적으로 학생인권의 기준으로 설계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학생·학부모 강제 조치는 교사를 보호할 수 있을까?
학부모의 요구나 민원 제기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치는 분명 필요하다. 일단 해당 교사 개인이 문제에 온전히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 중심으로 학부모의 민원 절차를 체계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학부모가 교사에게 근무 시간에 전화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어디에서도 그러한 법은 만들 수 없다!). 학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사안과 담임 교사와 상의할 사안을 구분할 수 있게 하고, 학교가 절차를 통해 학생에 관한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한다는 원칙이 학교 안에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리자가 학부모와 교사 모두로부터 신뢰를 받는 존재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장을 통한 민원 해결 과정에서, 교장이 자신의 인사권(교장은 교사에 대한 구두 경고, 시말서 등의 징계권을 가지고 있다)으로 교사에게 부당한 사과를 강요할 수도 있고, 학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소송으로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원 절차를 체계화하되 그 절차를 설계하는 기준으로 학생인권의 원칙 및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한편 학교의 사법화를 막기 위해 교사에 대한 고소를 줄이자고 하면서 학부모에 대한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자고 하는 것은 학교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반대로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가 부당하게 이뤄질 때 교사에 대한 무고죄를 묻자는 주장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정서와 행동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학부모 상담을 의무화하는 것은 학생의 지원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학교폭력 가해자 상담처럼 징벌적 대책이 아니라 지원을 위한 대책이어야 한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가 필요한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효과가 있다기보다 그저 요식적으로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가해자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상담을 지원하거나 공식적으로 직장에서 특별 휴가를 쓸 수 있게 하거나 교육비를 지급하여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될 때 학교교육이나 교사에 대한 신뢰가 제고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교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징벌적 대책만을 강화한다면 이것은 학부모의 참여권을 위협할뿐더러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릴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인 부모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자녀의 정서적 위기에 공감하고 이를 지원할 소통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의 고통 때문에 학교나 교사에게 더 많은 피해 의식을 갖기도 하고, 이것이 음해성 신고나 과장된 신고로 이어져 교사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서적 위기를 겪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것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자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지원을 시스템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을 요구할까?
학생인권조례 등의 제도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학교가 이러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지역별로,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즉 사회적으로는 학생인권이 향상되었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것이 보장되지 않을 때, 그 분노는 그 상황을 만드는 것처럼, 묵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사에 대한 공격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학생인권법’⑫ 제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인권의 기준이 적용될 때 교사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정당한 교육 활동을 위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분명히 하고, 이를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당연한 상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시·도교육청에 학생인권옹호관과 센터를 둠으로써 학교에서 인권 침해 발생 시 조사하고 공론화하여, 단위 학교에서 학생인권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양한 층위의 권고와 지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와 구제 절차가 생김으로써, 아동학대 행위자로 신고되어 바로 형사 처벌 등 사법적인 절차로 넘어가기 전에 해당 문제를 다루도록 할 수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의 사건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학부모들이 꼭 교사에게 형사상 처벌을 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지금 학교에 자녀의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 공정하게 다뤄 줄 절차와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강력한 수단이 아동학대 신고이기에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동학대나 성 비위에 대한 처벌만 강화되어 있다 보니, 학생인권 침해에 관련된 모든 민원이 그쪽으로 쏠리는 경향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권 침해나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우선적으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단순히 교사에 대한 조치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에 대한 실태 조사나 학생과 교사에 대한 인권교육 등 학교 문화를 바꾸는 조치를 동반할 수 있기에 학생·학부모에게 보다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또한 아동학대로 신고할 경우에는 문제가 있거나 부적절한 행동도 ‘학대’에 이를 만큼 심각하지 않으면 별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 데 비해, 더 적절한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다. 실제 전라북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⑬에서는 현재 가해자가 교사로 지목된 아동학대 사건도 조사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이것을 확대하고 체계화한다면 교사가 무분별하게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것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특성상 동시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교사가 모든 갈등 상황에서 다수 학생의 행동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도와 다르게 긍정적 목적으로 행한 교육 활동이 당사자에게는 예기치 않게 모멸감과 수치심을 줄 수도 있다. 이때 학교 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학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갈등이나 불만을 해결할 방책이 상위 기관에의 신고로 수렴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어 신고로 가기 전에, 침해 행위나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어야 한다. ‘공론화’란 인권 침해로 불거진 문제에 대해 사법적인 틀이 아니라 학교에서 먼저 이를 공식적으로 다뤄, 그 공동체 안에서의 대책까지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경미한 문제라면 그 감정을 그 즉시 다룰 수 있는 기구가 있어서 당사자 간 소통이 이뤄져야만 사안이 커지지 않을 수 있다. 또, 구성원 간의 갈등은 학교 안의 비인권적 제도나 부족한 인프라 등에 기인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을 통해 비인권적 제도는 고치고 인프라는 확충해 달라고 요구하여 시스템이 변화하는 과정이 학교 안에서 가능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학생인권 구제 기구나 절차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 행위는 한 교사의 인권 감수성의 문제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교사가 속한 학교나 교육청에도 그런 행위가 용인되고 조장되는 문화를 만든 책임이 있다. 교육청도 가해 교사 처벌로 할 일을 모두 했다면서 학교 현장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있을 때, 교육 기관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 행위는 개인의 일탈 행위를 넘어 공동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교육 문화 전체를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적인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학생이 신고하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역시 신고 전에 학생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계기 수업이나 민주시민교육, 성평등교육을 몇몇 학생이 신고하기 전에 학생인권위원회에서 우선 다루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신장시키는 목적으로 인권적 방식에 부합하게 교육했는지를 선제적으로 판단하게 한다면 무분별한 고소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다. 곧 교사의 생각을 교실 안에서 더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 침해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절실하다. 이러한 시스템이 있을 때 학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학교 자치의 토대로 이어져 교사가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않고, 학부모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하도록 할 것이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특수 학급 교사와 장애 학생의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고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동안, 특수교사노동조합과 장애인부모연대는 함께 기자회견을 하여 교육부가 통합교육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소수자 학생을 포용하는 인권 친화적 학교를 만드는 것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보여 준다.
멀어 보이는 길이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출생아 수 급감으로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으므로, 현재는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교사 수를 줄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올해조차 신규 교원 임용 수를 줄였다. 정책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교사에게는 노동 기본권과 정치 기본권이 필요하다. 파업 등의 단체행동으로 교사 정원을 확대할 수 있었다면, 차세대 NEIS 등 교육 활동에 무리를 주는 행정에 항의할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이 아니라 고용이 안정된 동료들과 우리 반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다면, 근무 시간에 우리 반의 어려움을 학교에서 나눌 수 있는 노조 활동 시간이 보장된다면, 이러한 정책을 잘 아는 교사들이 모여 정당을 만들고 이러한 정책을 낼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교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교사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상관없어 보이고 멀어 보이는 길임에도 지름길인 이유다.
❶ “장애 학생에 대한 학교 안 폭력과 따돌림… 점점 더 심각해져”, 〈YTN〉, 2022년 5월 13일.
❷ 전교조·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주최, ‘징벌적 사법에서 회복적 교육으로 – 학교폭력 대안 마련 토론회’(2013년 7월 12일) 참고.
❸ “‘초등 의대반 선발 고사 진행’ 지방 시골 학원까지 광풍”, 〈조선일보〉, 2023년 6월 17일.
❹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이들의 ‘길밥 보고서’〉, 《시사인》, 647호, 2020년 2월 12일.
❺ “대통령실 “尹 국정 방향, 종북 주사파 망친 5년 원상 복구 집중””, 〈쿠키뉴스〉, 2023년 7월 22일.
❻ “초중고 ‘AI 교과서’로 수학·영어 배운다… 2025년 도입”, 〈한겨레〉, 2023년 2월 23일.
❼ 학교 내신 성적을 포기하고 정시를 중심으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
❽ “발달장애인·학부모·교사 모여 “교육부, 통합교육 위한 개혁 나서라””, 〈비마이너〉, 2023년 8월 7일.
❾ 교육 활동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이 왜 문제인지는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의 의견서 등에서 이미 지적되었다.(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태규 의원 대표 발의)에 대한 검토 의견서〉, 2023년 5월 25일.)
❿ 아동학대 신고가 모두 곧바로 직위 해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2022년 아동학대로 수사 개시된 교육 공무원이 직위 해제된 사례는 7.8%였다.(“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 직위 해제 35건… 수사 대상의 8%”, 〈연합뉴스〉, 2023년 8월 13일.)
⑪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보도자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교권 보호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임시 총회 개최”, 2023년 8월 8일.
⑫ 박주민 의원은, 모든 대한민국 학생들의 인권이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 보호에 꼭 필요한 내용, 즉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것(제8조), 학생인권에 대한 근거 규정 명시(제17조), 학생에게 모욕을 주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등 학생인권 침해 행위 명시(제17조의2), 학생 자치 활동 보장(제17조의3), 징계 사유와 징계 내용 구체화(제18조), 인권 침해 조사와 구제를 위한 학생인권옹호관 설치(제18조의5),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여(제31조) 등의 내용을 신설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⑬ 〈전북교육청 아동학대 사안 처리 가이드북〉(2023년 3월 1일), 84~88쪽.
특집 _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④
교사들의 현실,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조영선
imaginer96@gmail.com
서울 지역 고교 교사, 본지 편집자문위원
서이초 사건 이후 이른바 ‘교권 침해’에 대한 교사들의 분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교육부 장관과 시·도 교육감은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 행사에 참여하며 ‘교권 대책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그런데 그들의 ‘교권 대책’은 교사를 보호할 수 있을까?
현재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둘째는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생활지도 고시’ 도입, 셋째는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대해 무고를 부르고 있다고 지목된 아동학대 관련 제도의 개선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대안은 다음과 같은 전제에 기반한다. 모든(또는 적어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선량하고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방식도 교육적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같은 것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적절한 생활 지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관련 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나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것이 아동학대가 될까 봐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이다. 즉, 교사에게 권한만 주어진다면 모두 할 수 있는데 교사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교실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설정은 실제로 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대변하는가?
교육 당국의 책무부터 물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폭력과 갈등의 양상은 다층적이다. 하나의 사건 이전에 그 전조가 되는 사건들이 있고, 가해와 피해가 뒤섞여 있는 가운데 어떤 장면을 폭력 행위로 잡느냐에 따라 가해자가 결정된다. 이번에 알려진, 발달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사건 역시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실제 장애 학생들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이기보단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❶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은 인지적·정서적 불균형 속에서 학교에 가게 되는데, 학교는 그들을 교육할 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다. 통상적인 수업 시간에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내용과 방식이 스며들 틈이 없다. 그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적인 구조이다. 구조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단순히 학생 간 폭력이나 교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는 형국이다. 교권 침해 행위 역시 마찬가지로, 학생이 교사한테 욕을 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때,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해당 학생의 맥락에 따라 정서 상태를 공격하는 ‘트리거’가 되는 원인 행위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삭제한 채 그 학생을 가해자로 규정하여, 중학교에서는 강제 전학을 보내고 고등학교에서는 퇴학·정학(출석 정지)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교사들이 중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폭력 대책이 만들어진 2012년을 돌아보자. 당시에도 교육·시민단체들은 응보적 해법이 아니라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단위 학교에서 전문 상담사 및 학교 사회복지사 확충을 통한 학생 지원 체제 강화, 피해 학생 회복을 위한 지원 예산 확보, 학생인권 제도화를 통한 학교 내 구성원의 인권 의식 제고와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 등을 요구하였다.❷ 그러나 10년 전에도 교육 당국은 교육 현장을 지원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채 문제를 당사자 간 갈등으로 프레임화하여 심판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학교폭력 사안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는 이러한 문제를 증폭시켜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법정까지 가는 관행을 만들었다. 폭력 가해자로서 성찰의 자리는 없어지고, 피해자에게 앙심만 갖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 사이에 낀 교사는 누구의 입장에 섰는지에 따라 송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 상황 또한 이런 알리바이 쌓기식 대책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보여 준다. 지난 8월 8일, 교육부가 주관한 교권 대책 포럼에서,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 등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즉, 교육부는 10년 전에 자신들이 설계한 교권 보호 정책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같은 방식의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교사·학생·학부모를 모두 지원해야 하는 교육 당국이 갈등 해결의 구조적 지원책 마련이라는 책임을 또다시 방기한다면, 교육 주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각자도생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실제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며 열을 올리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사에게 필요한 차별 금지 조항과 학교 자치에서의 교사 참여권 등을 포함한 서울 교권 조례 제정에 대해 ‘학교장의 권한과 충돌한다’라며 반대하였던 바 있다. 교육부 역시 이 조례가 상위법 위반이라며 재의 요구를 반복하다 집행 정지 소송 끝에 무산시켰다. 지금 교총은 교권 보호 조치로 교권 침해 사안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친교육부적인 관리자 집단인 교총은 교사가 교육과 학교를 바꾸기 위한 권리나 수업에 관한 자율권은 억압하고, 당국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권리만 보장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애시당초 학생인권조례 폐지·축소 등을 이야기하는 교육부의 대책은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현재 서울 지역 학교의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23.8명이다. 그런데 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30명 이상에 달하는가? 교실로 적당하지 않은 장소가 교실로 쓰일 정도로 학급 수를 증설한 경위는 무엇인가? 왜 해당 지역에는 주로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를 배치하는가? 그 학교에는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인력이 있었나?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갈등에 직면하게 되는 교사의 부담에 대해 교장·교감 등 관리자는 어떤 역할을 하였나? 이처럼 먼저 확인되고 분석되어야 할 일들은 전혀 조명되지 않고 있다. 장애 학생 관련 사건에서도, 통합교육을 하려면 일반 학급 학생들이 장애 학생의 특성을 이해하고, 장애 학생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반 학급 학생들의 반응을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졌는지, 특수교육 지원사는 상시 지원되었는지, 학교장과 교육청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등은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구하려면 교육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교육에 대한 예산이 풍부했던 2021년과 2022년, 교사 정원은 더 많이 확보되었는지, 학생 지원 인력에 대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었는지, 올해와 다가오는 새해에는 교원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고 있는지, 학생들 지원을 위해 어떤 인력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교육에 대한 불만을 받아 내는 과녁이 되는 교사
오히려 교사 정원은 몇 년째 축소되고 있고, 교사의 근무 환경은 지속적으로 열악해져 왔다. 의사 외에는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공포는 ‘초등 의대반’❸ 같은 사교육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고1에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고교 학점제 속에서 양육자와 청소년은 일찍부터 입시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학교는 학원을 가기 전 쉬는 곳 또는 사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폭발되는 곳이기도 하다. ‘교권’ 대책 마련을 위한 교육부 토론회에서도 보이듯 교육 당국이 학습권에만 관심을 갖는 사이, 그 학습을 강요당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❹를 돌면서 분노를 내면화하고, 반면 이러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안전한 정서적 지지대를 갖지 못한 채 따라갈 수 없는 학교 수업에서 소외당하고 배제된다. 이러한 학생들의 정서적·사회적 격차로 인한 갈등을 교사는 과연 중재할 수 있을까?
교육과 관련 없는, 도리어 학생과의 만남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하는 교사의 업무 문제도 여전하다. NEIS 도입 이후 모든 교사의 노동은 기록 노동으로 수렴해 갔다. 코로나19 시기 ‘자가 진단 시스템’에서도 겪어 보았듯, NEIS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전반, 평가 결과나 학생 정서 행동은 물론 신체와 관련된 예민한 부분까지도 기재하게 강제하여 이를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기록은 모두 교사의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교사들은 NEIS 외에도 교육청과의 문서 수발을 담당하는 공문 시스템과 ‘에듀파인’이라는 회계 시스템까지, 필요한 교구도 모두 교사가 직접 기안하여 사야 하는 업무 폭탄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일 때 들어온 차세대 NEIS 덕에 교사들은 학기 말 성적 처리를 앞두고 난데없는 자료 이관 등 예기치 않은 소모적인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급히 구축된 시스템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고 시험 문제 재출제와 성적 재처리 등의 업무가 가중되었다. 시스템의 불안전성을 온전히 교사의 노동으로 메워 온 것이다.
교육 활동을 성과화하는 교원 평가와 성과급 제도는 이러한 어려움을 동료들과 나눌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교원 평가의 경우엔 모욕적인 서술식 평가를 보며 다 같이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불신을 가지면서도 ‘내가 평균이 안 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성과급위원회에서 교사의 어떤 노동이 ‘S등급’을 부여할 만큼 어려운 노동인가를 다투며, 어려움을 겪는 동료에 대한 연대감은 사그라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원 노동조합은 수년에 걸쳐 성과급과 교원 평가 폐지를 외쳤지만,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막혀 있어, 중앙 단위의 단체 협약은 2002년에 맺은 것이 마지막이고 연가 투쟁이나 심지어 주말 집회로도 노조 집행부는 기소되곤 했다. 이렇게 노동 3권도 제약되는 사이,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 인상으로 인한 실질적인 임금 삭감과 연금 후퇴 그리고 교원 정원 축소 등이 이루어져 왔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교사의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조항도 없다. 학생인권조례의 지향은 학생의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을 학생의 상황에 맞게 보장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고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교권을 침해하는 것’인 듯 보이는 이유는 학교에서 교사의 행위 상당수가 이러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와 학습의 격차를 교사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교사의 고군분투는 어떤 학생에게는 배제당하는 시간이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초등학교의 경우 수십 명의 학생에 대한 통제가 교사 1인에게 맡겨지는 현실에서 조용하고 문제없는 학급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해 내야 한다. 즉 현재의 교육 환경 자체가 인권 침해적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교사의 특정 행위가 학생에게는 인권 침해 또는 아동학대로도 느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교사 개개인이 경쟁 교육 체제와 열악한 교육 환경을 떠받치면서 그 폐해가 불러온 분노의 과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 축소가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가
학생인권조례가 ‘국가 붕괴 시나리오’라는 대통령실의 신호❺와 교육부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제정된 6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2023년 9월 5일, 서울시의회에선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폐지 조례안 공청회’를 열었고,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들은 폐지안을 상정할 수 없다는 교육상임위원장을 불신임하겠다는 겁박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학교 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예컨대 ‘교육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교육공동체조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조례안은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그럴싸한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학교에서는 교사 외에도 관리자와 행정직, 강사, 교육 공무직 등 교육 노동자들이 협업하고 있기에, 교사·학생·학부모만을 꼽는 ‘교육공동체’라는 말에는 이미 배제의 사고가 숨어 있다. 또한, 어떤 공동체 구성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담으려면 그들이 갖는 권리와 의무의 층위와 역할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학생·학부모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권리와 의무를 갖는 방식도 다르고, 머무르는 시간도 다르다.
근본적으로 학생인권이 주장된 까닭은 교사 개인 대 학생 개인 사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학교라는 기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인권 침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교사의 권한이라고 거론되는 많은 것이 사실은 학교장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이고 그 위에는 교육 당국이 있다. 따라서 학생인권은 이러한 권력과 권한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대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두발 및 용의 복장의 자유’ 역시 학교의 ‘타인의 신체·개성에 대한 통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고려치 않고 타인의 신체나 인격을 침범하는 행위도 권리 또는 권한이라고 주장되는 순간, 무엇이 인권이고 인권 침해인가 하는 본래의 문제의식은 삭제된다. 교육공동체조례의 목적이 교사의 모든 교육 행위를 권한의 이름으로 보장하겠다는 것, 인권을 침해하던 학교의 권한과 규칙까지 포함하여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라면 더욱 학생인권 침해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반면, 교사 입장에서 학교장과 교육 당국의 부당한 통제를 조례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과거의 예를 돌아봐도 그렇고 현재의 교권 담론을 봐도 그렇고 그런 내용이 포함되긴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공동체조례는 당사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내용을 담기 어려우며, 학생인권을 후퇴시킬 위험이 크다.
또, 교육부는 이것과는 별도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만들었는데, 이 안에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령 학생의 ‘용모와 복장’까지 교사의 지도 대상으로 포함시켰음은 물론, 학생의 소지품을 교사가 다양한 사유로 금지, 압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의 수거와 압수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상 처벌이나 징계에 해당하는 조치도 교사의 판단에 의해 별다른 절차 없이 ‘지도’로서 가해질 수 있게 한 부분도 있는 등 이 고시는 교사 개인에게 이러한 ‘지도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대부분 학생인권조례는 합리적 사유가 있다면 학교 규칙을 통해 수업 중 휴대전화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의 휴대전화 사용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일상적인 휴대전화 사용과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 수차례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교육부의 고시도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제한이라고 명시하고 있기에, 이러한 학생인권의 기준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실상 휴대전화에 대한 자의적 압수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학생인권의 기준을 위배하며 더 많은 충돌의 위험성도 갖고 있다. 이미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을 포함해) 많은 학교가 휴대전화를 등교 시 일괄 수거하고 있는 현실이긴 하나, 학교에서 이 고시를 계기로 교사가 휴대전화 압수·수거를 시도한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압수에 불응할 경우 학생들의 몸을 수색하여 휴대전화를 빼앗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교사의 교권을 강화할까?
이는 다른 한편에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의 디지털화, AI 교육과정 개발’❻등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일관성도 없는 대책이다. 교육 복지 차원에서 디지털 기기를 교육청에서 직접 배부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도구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스마트 기기는 디지털 학습 친구라고 하면서 스마트 기기를 걷는 코미디를 연출하는 것이 교권 보호 방안인가? 무엇보다도 이제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과 관계, 학습, 여가, 배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기기가 되었다. 휴대전화를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보장되고 스스로 살피고 성찰할 교육적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교사가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의 교권을 주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광범위하게 소지품 규제·압수가 가능케 한 조항에 대해서는 흉기 등 위험한 소지품에 대해 검사하거나 압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고시를 만든다고 해서 실제로 안전이 보장될까? 최근 흉기 난동 사건들 이후 경찰의 검문이 부활될 조짐이 보이고 있으나, 실제로 ‘흉기를 가지고 다닐 것 같은 사람’을 특정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필, 컴퍼스, 칼 등 모든 도구들이 어떤 행위에 쓰이냐에 따라 흉기가 될 수 있다. 학생과 교사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흉기 소지를 검사하고 압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도구를 남을 해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하거나, 남을 해치고 싶은 분노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학생의 마음을 미리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결국 이 고시 내용은 학교가 학생의 각종 일상 용품을 금지하고 압수할 수 있게 허용해 주는 효과만 있을 것이다.
수업 방해 행위 학생을 쫓아내라?
교육부는 학생의 수업 활동 방해를 교사가 제지할 수단이 없다고 말한다. 수업 방해는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무엇보다도 ‘누구의 학습권인가’를 따져 보는 질문이 생략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학생들은 주로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정서 상태나 인지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다. 결국 학생의 수업 방해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는, 각각 다른 성장 단계에 있는 학생들을 대다수의 ‘선한 학생’과 ‘문제 학생’으로 이분화하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제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징계 기준표에 보면 수업에 관련한 항목이 모두 들어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의 학교생활규정이나 그 안의 징계 기준표에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 불이행을 처벌한다’는 내용도 여러 조항에 포함되어 있다. 이미 현재의 학칙상으로도 교사의 ‘정당한’ 지도 및 지시에 불응하는 행위는 모두 징계가 가능하다. 그리고 교사의 지도에서 ‘정당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도 모두 교사에게 맡겨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사들은 자신의 지도에 불응한 학생이 있을 때 이를 선도위원회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지도가 정당하지 않았을 때의 책임 역시 교사 혼자 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은 수업 방해 행위자이기 이전에 학습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업을 방해했다고 해서 배제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은 학습 당사자로서의 학습권을 빼앗는 일이다. 만약 교사가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 징계 조치를 가해서 그 학생의 학습이 방해받았다면, 학교에선 보충 수업을 해야 하고, 이 역시 다시 교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수업 방해로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 역시 교사가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의 기준도 모호하다. 가령 수업 방해라고 자주 언급되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교사의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을까? 따라가기 어려운 수업에 참여하기를 포기하고 그 시간을 견디는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고등학교는 고교 학점제와 과목 선택형 수능으로, 학교에서 선택한 과목과 수능 시험을 치를 과목이 서로 다른 경우도 많다. 더욱이 사실상 공동 교육과정이 1학년에서 끝남에 따라 배워야 할 양은 늘었다. 그런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사이의 학습 난이도 격차가 큰 데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내신 시험 난도 격차도 크다. 때문에 학습에 어려움을 느껴 좌절하게 되고 1학년 때부터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이 학교마다 존재하는 현실이다. 공부를 계속해 보겠다고 결심한 학생들은 더 많은 학원에 가고,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너희는 휴식권이 없다는 고시가 생겼으니 잠을 자면 ‘일어나라’ 말하고, 불응 시 ‘타임아웃’ 한다 하여 교사의 권위가 올라가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까? 자신은 ‘정시러’❼라 내신이 필요 없으니 스스로 ‘타임아웃’ 하여 자습하고 싶다는 학생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그래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타임아웃’이 뭔가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쫓겨나는 일이 무서워서 자신이 행동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임아웃 당할 행동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며, 어떤 방식의 타임아웃이라야 학생과 학부모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타임아웃이 되어 학생도 진정할 수 있고, 다른 더 적합한 교육 환경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교사를 만날 수 있으며, 교실에서 배우는 것에서 배제되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과정을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적으로 할당된 교육이나 체험은 당사자에게 교실에서 ‘쫓겨났다’는 낙인과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에 사회적으로 불거진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대책에서도, 특수 교사들은 일반 학급에서 문제 발생 시 특수 학급으로 보낼 게 아니라 별도의 공간과 인력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❽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쫓겨나서 가는 공간으로 이해될 경우, 특수 학급은 격리 시설이자 낙인의 공간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흥분하여 물리적 폭력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교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의 형태일 때, 분리부터 회복까지의 과정에서 이는 모두 교사에 대한 원망과 책임으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지금 이야기되는 ‘타임아웃’ 등의 조치는 개인을 분리해 내는 데 집중하기에 심리적·종합적 지원과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회복을 지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리자와 상담사와 복지사, 특수행동치료사 등 다양한 권한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 상주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 상황이 진정되면 무엇이 그러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사례관리위원회를 통해 확인하고 교실 안에서 이를 돕기 위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학생에게도 ‘너를 교실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너를 이 교실에서 도와줄 거야’라는 메시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 학생과 학부모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제안한, 정서 불안 학생을 위한 별도 학교를 세우고 분리 조치한다는 정책은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발달장애 학생에게 쏟아진 혐오를 볼 때, 어떤 학생이 정서 행동 위기 학생으로 분류되어 특수교육 기관으로 이전되는 순간 그 학생을 사회에서 분리시키려는 움직임이 더 강화되지 않을까? 그러한 면에서 이러한 분리 조치를 학부모나 학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위기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특정 학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현재 제안된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은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원칙적으로 민형사상 신고나 소송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무고죄를 적용하거나 소송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서 어떤 형태의 예외 조항이 생긴다고 해도 이것은 신고 후 사법적 판단 절차에서 감형이나 무혐의·무죄 결정의 근거로 활용될 수는 있으나 신고 자체를 금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 활동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법령을 지켰는지 등으로 여전히 계속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❾
아동학대 신고 이후 절차 문제에 주목하여, 교사 직위 해제 조치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학교 안에서 폭력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며 현재의 원칙은 어떠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률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동일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형평성에도 맞고, 반(反)폭력 감수성 또한 지위를 막론하고 폭력 행위가 있을 때 피해자 보호 조치가 우선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 구성원 간 일어난 폭력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안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신고가 들어오는 동시에 가해 학생은 분리 조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의 교육적 평가를 떠나, 해당 조문은 학생 간 폭력에서 아직 폭력 행위로 판단되지 않은 행위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 고려하여 분리 조치하라는 취지다. 그리고 교권보호위원회에서도 교사에게 폭언이나 욕설,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 전학이나 퇴학 조치를 통해 교사를 보호하고 그런 절차가 행정적으로 시행되는 동안 교사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 회복 조치를 한다. 그런데 교사가 가해자로 지목된 아동학대 처벌법의 절차에서 교사만 예외로 한다는 것이 적절하고 문제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교사에 대한 직위 해제 조치가 경제적 어려움까지 가중하므로 다른 방식으로 바꾸자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❿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법령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할 사람을 지원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학교폭력 상황에서 분리된 가해 학생이 자신의 잘못을 숙고하면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교사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교실을 일정 기간 떠나게 되었을 때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교육을 이어 나가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절차를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이를 위해 ‘생활 지도 인력을 다수 확보하여, 아동학대 의심 신고로 인한 즉각적인 분리 조치 실행 등 특정 또는 다수 학생을 지도하기 어려운 사안 발생 시 이를 운용한다’고 했다.⑪ 적정 규모의 지원 인력을 둔다고 했지만, 이보다는 전면적인 정원 확대가 먼저다. 그리고 협력 교사 제도에서도 드러났듯, 지원 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또는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은데, 노동 조건이 안정적이지 않은 동료에게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나 갈등 상황의 학급을 책임지고 맡으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시급한 교원 확보를 말하지 못하면서 인력 지원을 말하는 것은 차세대 NEIS처럼 불안정한 시스템의 오류를 또 교사에게 메우게 하는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교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통과시키고 실제 면책을 받는 것은 바로 교육 당국이다. 현시점에서 교육 활동 아동학대 면책 취지의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실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이 아동학대 면책권까지 가진, 훈육에 있어 어떤 제한도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로 교사들을 여길 것이다. 이것은 학부모로 하여금 교사에게 더 많은 기대를 품고 요구하게끔 할 수도 있다. 현재 교사들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것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직접 훈육하기 어려우니 교사가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는 이중적인 요구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아동학대 면책권은 교사에게 책임과 부담을 전가하는 효과로 돌아온다. 사실 이전에도 교육 당국은 체벌을 금지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부담을 고스란히 교사에게 뒤집어 씌웠다. 즉, 폭력을 가해서라도 교육 당국의 목표와 지침을 학생들이 이행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실제 면책이 되지도 않는 면책권을 주는 듯 떠들며 이러한 부담을 교사에게 지우려고 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려면 더 많은 동료가 필요하고, 교육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 학교 안에서의 폭력 행동, 정서적 문제 등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전문가, 사회복지사 등의 협업체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교사는 이러한 것을 집단적으로 요구하고 정책을 견인할 수 있는 기본권도 없다. 다시 말해, 기본권 없이 면책권을 준다는 것은 교사로 하여금 때로는 경찰도 되었다가, 지식을 가르치는 강사도 되었다가, 상담가나 복지사도 되었다가, 행정 공무원도 되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혼자서 떠맡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교사의 면책권이 핵심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학생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정부의 책임을 은폐하고, 오히려 정부를 면책해 주는 것이다.
교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의 기준이 학교 안에서 불명확한 상태로 교육 활동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토론회나 여러 자리에서 교원의 교육 활동 중 어떤 것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교사에게는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교육 활동이라도 맥락적으로 아동에게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교실 내에 아동의 존엄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는지 인지하고, 교사가 아동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야 할 행동이 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사회적 기준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교사 개인의 과제가 아니라 학교 제도가 전체적으로 학생인권의 기준으로 설계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학생·학부모 강제 조치는 교사를 보호할 수 있을까?
학부모의 요구나 민원 제기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치는 분명 필요하다. 일단 해당 교사 개인이 문제에 온전히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 중심으로 학부모의 민원 절차를 체계화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학부모가 교사에게 근무 시간에 전화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어디에서도 그러한 법은 만들 수 없다!). 학부모에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사안과 담임 교사와 상의할 사안을 구분할 수 있게 하고, 학교가 절차를 통해 학생에 관한 문제를 공정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한다는 원칙이 학교 안에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리자가 학부모와 교사 모두로부터 신뢰를 받는 존재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장을 통한 민원 해결 과정에서, 교장이 자신의 인사권(교장은 교사에 대한 구두 경고, 시말서 등의 징계권을 가지고 있다)으로 교사에게 부당한 사과를 강요할 수도 있고, 학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소송으로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원 절차를 체계화하되 그 절차를 설계하는 기준으로 학생인권의 원칙 및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한편 학교의 사법화를 막기 위해 교사에 대한 고소를 줄이자고 하면서 학부모에 대한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자고 하는 것은 학교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반대로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가 부당하게 이뤄질 때 교사에 대한 무고죄를 묻자는 주장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정서와 행동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학부모 상담을 의무화하는 것은 학생의 지원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학교폭력 가해자 상담처럼 징벌적 대책이 아니라 지원을 위한 대책이어야 한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가 필요한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효과가 있다기보다 그저 요식적으로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가해자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상담을 지원하거나 공식적으로 직장에서 특별 휴가를 쓸 수 있게 하거나 교육비를 지급하여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 수 있는 지원책이 마련될 때 학교교육이나 교사에 대한 신뢰가 제고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교권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징벌적 대책만을 강화한다면 이것은 학부모의 참여권을 위협할뿐더러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릴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인 부모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자녀의 정서적 위기에 공감하고 이를 지원할 소통을 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의 고통 때문에 학교나 교사에게 더 많은 피해 의식을 갖기도 하고, 이것이 음해성 신고나 과장된 신고로 이어져 교사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서적 위기를 겪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 묻는 것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자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지원을 시스템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을 요구할까?
학생인권조례 등의 제도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학교가 이러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지역별로,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즉 사회적으로는 학생인권이 향상되었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것이 보장되지 않을 때, 그 분노는 그 상황을 만드는 것처럼, 묵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사에 대한 공격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학생인권법’⑫ 제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인권의 기준이 적용될 때 교사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학생인권법은 학생인권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정당한 교육 활동을 위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분명히 하고, 이를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당연한 상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시·도교육청에 학생인권옹호관과 센터를 둠으로써 학교에서 인권 침해 발생 시 조사하고 공론화하여, 단위 학교에서 학생인권 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양한 층위의 권고와 지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와 구제 절차가 생김으로써, 아동학대 행위자로 신고되어 바로 형사 처벌 등 사법적인 절차로 넘어가기 전에 해당 문제를 다루도록 할 수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의 사건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학부모들이 꼭 교사에게 형사상 처벌을 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지금 학교에 자녀의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 공정하게 다뤄 줄 절차와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강력한 수단이 아동학대 신고이기에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아동학대나 성 비위에 대한 처벌만 강화되어 있다 보니, 학생인권 침해에 관련된 모든 민원이 그쪽으로 쏠리는 경향도 존재한다. 따라서, 인권 침해나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우선적으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단순히 교사에 대한 조치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에 대한 실태 조사나 학생과 교사에 대한 인권교육 등 학교 문화를 바꾸는 조치를 동반할 수 있기에 학생·학부모에게 보다 신뢰감을 줄 수 있다. 또한 아동학대로 신고할 경우에는 문제가 있거나 부적절한 행동도 ‘학대’에 이를 만큼 심각하지 않으면 별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 데 비해, 더 적절한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다. 실제 전라북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⑬에서는 현재 가해자가 교사로 지목된 아동학대 사건도 조사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이것을 확대하고 체계화한다면 교사가 무분별하게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되는 것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 현실의 특성상 동시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교사가 모든 갈등 상황에서 다수 학생의 행동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도와 다르게 긍정적 목적으로 행한 교육 활동이 당사자에게는 예기치 않게 모멸감과 수치심을 줄 수도 있다. 이때 학교 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학교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갈등이나 불만을 해결할 방책이 상위 기관에의 신고로 수렴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어 신고로 가기 전에, 침해 행위나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어야 한다. ‘공론화’란 인권 침해로 불거진 문제에 대해 사법적인 틀이 아니라 학교에서 먼저 이를 공식적으로 다뤄, 그 공동체 안에서의 대책까지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경미한 문제라면 그 감정을 그 즉시 다룰 수 있는 기구가 있어서 당사자 간 소통이 이뤄져야만 사안이 커지지 않을 수 있다. 또, 구성원 간의 갈등은 학교 안의 비인권적 제도나 부족한 인프라 등에 기인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을 통해 비인권적 제도는 고치고 인프라는 확충해 달라고 요구하여 시스템이 변화하는 과정이 학교 안에서 가능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학생인권 구제 기구나 절차는 학생뿐 아니라 교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 행위는 한 교사의 인권 감수성의 문제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교사가 속한 학교나 교육청에도 그런 행위가 용인되고 조장되는 문화를 만든 책임이 있다. 교육청도 가해 교사 처벌로 할 일을 모두 했다면서 학교 현장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대책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있을 때, 교육 기관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 행위는 개인의 일탈 행위를 넘어 공동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교육 문화 전체를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진보적인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학생이 신고하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역시 신고 전에 학생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계기 수업이나 민주시민교육, 성평등교육을 몇몇 학생이 신고하기 전에 학생인권위원회에서 우선 다루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학생인권을 신장시키는 목적으로 인권적 방식에 부합하게 교육했는지를 선제적으로 판단하게 한다면 무분별한 고소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다. 곧 교사의 생각을 교실 안에서 더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 침해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절실하다. 이러한 시스템이 있을 때 학부모들도 자신의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한다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는 학교 자치의 토대로 이어져 교사가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않고, 학부모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하도록 할 것이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특수 학급 교사와 장애 학생의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고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동안, 특수교사노동조합과 장애인부모연대는 함께 기자회견을 하여 교육부가 통합교육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소수자 학생을 포용하는 인권 친화적 학교를 만드는 것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보여 준다.
멀어 보이는 길이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출생아 수 급감으로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으므로, 현재는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교사 수를 줄이고,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올해조차 신규 교원 임용 수를 줄였다. 정책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교사에게는 노동 기본권과 정치 기본권이 필요하다. 파업 등의 단체행동으로 교사 정원을 확대할 수 있었다면, 차세대 NEIS 등 교육 활동에 무리를 주는 행정에 항의할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이 아니라 고용이 안정된 동료들과 우리 반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었다면, 근무 시간에 우리 반의 어려움을 학교에서 나눌 수 있는 노조 활동 시간이 보장된다면, 이러한 정책을 잘 아는 교사들이 모여 정당을 만들고 이러한 정책을 낼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교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교사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상관없어 보이고 멀어 보이는 길임에도 지름길인 이유다.
❶ “장애 학생에 대한 학교 안 폭력과 따돌림… 점점 더 심각해져”, 〈YTN〉, 2022년 5월 13일.
❷ 전교조·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주최, ‘징벌적 사법에서 회복적 교육으로 – 학교폭력 대안 마련 토론회’(2013년 7월 12일) 참고.
❸ “‘초등 의대반 선발 고사 진행’ 지방 시골 학원까지 광풍”, 〈조선일보〉, 2023년 6월 17일.
❹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아이들의 ‘길밥 보고서’〉, 《시사인》, 647호, 2020년 2월 12일.
❺ “대통령실 “尹 국정 방향, 종북 주사파 망친 5년 원상 복구 집중””, 〈쿠키뉴스〉, 2023년 7월 22일.
❻ “초중고 ‘AI 교과서’로 수학·영어 배운다… 2025년 도입”, 〈한겨레〉, 2023년 2월 23일.
❼ 학교 내신 성적을 포기하고 정시를 중심으로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
❽ “발달장애인·학부모·교사 모여 “교육부, 통합교육 위한 개혁 나서라””, 〈비마이너〉, 2023년 8월 7일.
❾ 교육 활동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이 왜 문제인지는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의 의견서 등에서 이미 지적되었다.(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태규 의원 대표 발의)에 대한 검토 의견서〉, 2023년 5월 25일.)
❿ 아동학대 신고가 모두 곧바로 직위 해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2022년 아동학대로 수사 개시된 교육 공무원이 직위 해제된 사례는 7.8%였다.(“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 직위 해제 35건… 수사 대상의 8%”, 〈연합뉴스〉, 2023년 8월 13일.)
⑪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보도자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교권 보호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임시 총회 개최”, 2023년 8월 8일.
⑫ 박주민 의원은, 모든 대한민국 학생들의 인권이 동등하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학생인권 보호에 꼭 필요한 내용, 즉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것(제8조), 학생인권에 대한 근거 규정 명시(제17조), 학생에게 모욕을 주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등 학생인권 침해 행위 명시(제17조의2), 학생 자치 활동 보장(제17조의3), 징계 사유와 징계 내용 구체화(제18조), 인권 침해 조사와 구제를 위한 학생인권옹호관 설치(제18조의5),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여(제31조) 등의 내용을 신설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⑬ 〈전북교육청 아동학대 사안 처리 가이드북〉(2023년 3월 1일), 84~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