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하기
서희
221bsherlockhomes@naver.com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
해리포터, 신데렐라, 제인 에어, 그리고 김서희
영국 런던에 파운들링 박물관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영국 최초의 보금자리였던 파운들링 호스피탈 병원(foundling hospital)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그곳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해리 포터는 입양됐다. 신데렐라는 입양됐다. 제인 에어는 입양됐다.”❷ 우리가 문학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고아, 입양아였고 위탁 양육된 아이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나는 이들과 공통점이 있다.
나는 국내 입양인이다. 흔히 입양아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불쌍한 아이’라는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어, 입양 당사자나 입양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다. 나는 2000년 7월 25일 새벽 5시 27분에 태어나서 대한사회복지회 소속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 한 달간 위탁 양육됐다. 이때 김서희로 불렸고, 동시에 00-605라는 번호가 부여됐다. 입양된 후에야 정식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
나는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당시 생부는 만 19세, 생모는 만 17세였다. 친부모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길 싫어한다. ‘혈연관계로 맺어진’을 뜻하는 접두사 ‘친’은 ‘친하다’는 뜻으로 대표되는 한자 ‘親’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친한 부모’로 읽힌다. 생물학적 부모와 함께한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친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생부모라고 쓰고 말하고 있다.
생모는 고등학교에 다니다 생리가 없는 걸 알고 임신한 걸 깨달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임신 9개월까지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교사가 생모의 몸 상태를 보고 임신을 알게 됐고 생모 가족에게도 알렸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생모는 자퇴하고, 교사의 소개로 미혼모 쉼터에 입소해 나를 낳았다. 그리고 가족과 의논 후 아동 입양을 의뢰했다.
나는 대리 입양 당사자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내가 26세, 어머니가 74세이다. 처음 어머니가 입양 의사를 밝혔을 때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이유로 거절됐다고 한다. 그러자 당신보다 어린 이모에게 나를 데려오게 했다. 이로 인해 입양 기관이 보관하던 서류에는 이모의 이름이, 출생증명서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 사실은 내가 입양 기록을 찾기 위해 기관에 연락해서 알게 된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해 하는 나에게 기관 역시 이 상황은 전혀 몰랐다고 호소했다. 이런 무책임한 입양 기관 덕분에 나는 내 서류(기록)를 찾기 위해 어머니와 이모가 가족이란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들 당황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럴 때는 퀴어 프라이드(pride)가 부럽다.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도 있지, 프라이드 플래그(pride flag)도 있지. 나는 입양인이라고 밝히는 말과 글 외에 표현할 방법을 아직 못 찾았다. 계속 발화하는 것도 솔직히 입 아프다. 나를 대변할 단체라고는 거의 다 기독교 기반에 가족주의를 표방한다. 그마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수도권으로 이동하려면 교통비로 몇만 원쯤을 기꺼이 쓸 줄 알아야 하는 전주 시민은 여기서 좌절한다.
그래서 전주에서 판을 벌였다. 첫 번째로 기획팀인 ‘063-콜렉티브’❸를 꾸렸다. 그다음 해외 입양이 가진 아름답지 않은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 〈케이 넘버〉에 주목했고 조세영 감독을 초대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준비하는 내내 뚝딱거린 나 때문에 기획팀도 조세영 감독도 고생이 많았다. 1인분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전주에서 판을 깐다고 하니 정말 많은 이들이 도움을 줬다. 우선 동지들이 기획을 홍보하기 위해 자기 삶의 공간에 포스터를 붙여 줬다. 덕분에 서울 기준으로도 정말 많은 70여 명의 관객이 행사에 참여했다. 또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여러 단체와 해외에서도 선뜻 비용과 물품을 보태 주었다.
여러 상영회에 참여했지만, 관객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참여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가장 뒷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상영 막바지에 관객들이 함께 분노하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겐 그 소리가 꼭 공감과 연대를 표현하는 걸로 들렸다. GV 동안에도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해 주어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덕분에 긴장한 와중에도 힘낼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쓰고 남은 비용은 영화에도 등장하는 해외 입양인이 뿌리를 찾는 여정을 돕는 시민 단체 ‘배냇’에 전액 기부했다. 기부금은 오는 8월 말 개최될 국회 세미나에서 강사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덕분에 국내 입양인이 해외 입양인 운동에 연대하며 진짜 아름답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지면을 빌려 이번 기획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리퀘스트 시네마 전주편: 아름답지만은 않은 ‘입양’ 말하기〉 포스터 ⓒ063-콜렉티브
부모를 찾고 싶으신가요?
미디어에 보이는 입양 서사는 다 똑같다. 어릴 적 헤어진 가족을 찾겠다고 고군분투하고, 방송을 통해서 제보가 들어오고, DNA 검사를 통해 가족임이 입증되고, 마침내 눈물로 상봉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아름답게’ 끝난다.
입양인이라 말하면 너무 당연하게 가족을, 특히 생부모를 찾고 싶으냐고 물어본다. 나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가 오히려 당황하면서, 왜 안 찾고 싶으냐고 다시 묻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입양 문제는 생부모를 만나고 못 만나고의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세영 감독은 〈케이 넘버〉에서 해외 입양이 국가 차원으로 이루어진 인신매매임을 드러낸다. 한국 전쟁 이후 현재까지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이승만 정부는 ‘원 피플 원 블러드’ 정책을 복지 사업으로 내세우며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걸 권장했다. 이후 해외 입양은 한국에서 30여 년 동안 만연했다. 해외 입양 수가 급증했던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그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에서도 해외 입양이 이뤄졌다. 입양 기관들은 아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번호❹까지 붙였다. 권희정은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에서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해외 입양은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데다 좋은 일을 한다는 사회적 찬사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입양 보낼 아기가 있어야 유지되는 사업이다. 정부가 원가족 지원을 늘리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사라져 미혼모가 양육하겠다고 나서면 가장 위기에 몰리는 사업이기도 하다. 입양 기관의 좋은 기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입양 기관은 입양할 아이들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❺
1960년대 입양 수수료는 아이 한 명을 보낼 때 평균 130~150달러였다. 당시 국민 소득이 100달러 정도였으니, 해외 입양은 이른바 고소득 사업이었다.❻ 국가는 기관과 협력해 ‘수출품’을 찾았다. 길거리에 혼혈아가 돌아다니면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아버지의 나라로 보내기를 권유했다. 아동 긴급 구호라는 명분으로 모자(母子) 가정이 해체됐다. 민간 입양 기관을 통한 대리 입양이 이뤄지며 입양 부모와 아동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가족이 됐다. 1970년대 이후 미혼모 개념이 등장하며 비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비난받기 시작했다. 4대 해외 입양 기관❼은 미혼모 상담 사업을 통해 비혼혈 아동의 해외 입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심지어 미아에게 고아 호적을 부여해 단기간에 해외 입양을 보내는 일도 빈번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가족이 해체되는 등 결손 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났을 때도 해외 입양이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 국가이며 동시에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국가 3위이다. 여전히 아이 1명을 해외로 보내면 입양 기관은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까지 수수료로 받는다. 반면 해외 입양 당사자들은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서류와 숨겨진 현실, 그리고 한국 사회와 정부가 보여 주는 무관심으로 고통받고 있다.
국내 입양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혼모에 대한 여전한 차별로 그들이 낳은 아이들도 대부분 입양되는 게 현실이다. 내 입양 배경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아직 미혼인 어린 학생의 신분으로 아동을 양육할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고, 아동이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의논 후 아동의 입양을 의뢰했다.” 어머니로서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읽힐 수 있지만,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권희정은 《미혼모의 탄생》에서 미혼모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밝힌다. 이를 이해하려면 서구의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❽를 이해해야 한다. 당시 임신한 미혼 여성은 시설로 보내졌으며, 아이를 낳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회로 돌려보내졌다. 그들이 출산한 아이는 결혼한 중산층 핵가족으로 입양 보내졌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정상적인 여성을 규정하고, 비정상적인 여성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을 허용했던 것이 있다. 작년 한국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클레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여성 인권 침해 사건인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다룬다. 수녀원은 1922년부터 세탁소를 운영하며 미혼모와 성폭행 피해자, 성노동자, 고아 등을 강제 수용했다. 그들은 감금되어 노역을 해야 했고 학대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졌다. 그렇게 아이를 빼앗긴 미혼모들이 무려 1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1996년 마지막 세탁소가 문을 닫았고, 2013년 당시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미혼모 개념은 이런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미혼모가 입양 상담을 요청하면, 기관은 결손 가정임을 강조하거나 미혼모가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입양 보내기를 권유한다. 아이가 더 나은 미래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기도 한다. 결국 미혼모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편견을 빌미로 미혼모가 입양을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국가가 정상성을 규정하면 수많은 존재가 배제된다. 예전에는 인종이 주였다면 현재는 페미니즘과 가족주의가 주된 문제이다. 미혼모와 성노동자 등 다양성에 대한 차별이 강해질수록 입양 문제는 더 커진다. 지난 정부 때부터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고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입양을 추진하기 위해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궁금하다. 빛의 혁명으로 만들어졌다는 현 정부는 과연 국내외 입양 문제와 해외 입양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쌤, 울 수도 있으니까, 수건이라도 챙겨 갈까? 감정에 북받치면 울 수도 있잖아.”
GV 날짜가 다가와 한껏 긴장하던 내게 한 동지가 건넨 말이다. 그는 무슨 말이든 다 들어 줄 수 있으니까 마음껏 말하라고 덧붙였다. 물론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안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상영회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그동안 힘들었겠다는 둥, 고통스러웠겠다는 둥 나를 어림짐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에서 절름발이, 불구, 뇌병변 장애인인 자신이 마주하는 슈퍼 장애인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밝힌다.❾ 그는 고등학교 때 달리기를 사랑해서 학교 트랙을 달리고 크로스컨트리 경기에도 참가했다. 경기 결과가 어찌 되든 매번 낯선 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자신을 붙들고 울고, 자신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들에게 자신은 느리지만 근성 있는 고등학교 운동선수가 아니라 슈퍼 장애인,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애처롭고 씩씩한 소녀, 용감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연민으로 연대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저 국내 입양인이기 때문에 외롭다거나 슬펐던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곁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이들이 있다.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졌지만, 이들은 기꺼이 나와 함께 호흡하길 자처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 당시 그 동지들이 발 빠르게 오픈 마이크를 열었다. 수많은 비인간 동물을 비롯한 존재들이 나보다 먼저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 덕분에 광장 한복판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은 자긍심이다. 이건 다른 정체성과 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내가 불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도 업둥이를 키우면 집에 복이 온댔다. 그러니 당신들이 원하는 ‘슈퍼’한 이미지를 덧입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서사를 기대한 이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리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행사 당일에 외부로 드러내 보이는 내 모습은 정말 중요했다. 에일리가 노래 〈보여줄게〉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그래서 나도 머리를 자르고, 피어싱을 바꾸고, 출근할 때도 꺼내지 않은 펄(shimmery) 아이섀도를 꺼냈다. 코르셋을 조였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만, 이 모든 건 기존 서사에 대한 나만의 투쟁이었다.
한편으로는 참여자들을 웃기고 싶었다. 유머는 소수자들이 차별에 맞서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동양인 출연자는 자기 인종을 유머로 삼는다. 투렛 증후군을 앓는 한 코미디언은 오히려 자기 병이 유머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렇듯 유머는 일상을 유쾌하게 표현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차별을 드러낸다.
주량을 논할 때 부모님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정확히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나오는 정도가 유전된다는 말이었다. 물려받은 기질을 모르는 나는 “부모님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같이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패륜성 유머는 유교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금기 중에서도 금기다. 그렇지만 나는 “너 부모 없지?”라는 질문에 “응, (생)부모 없는데?”라고 답할 수 있다. 진짜 없으니까.
이렇듯 나는 내 정체성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거나 웃길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상가족 구조와 고리타분한 가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래서 잔뜩 준비해 갔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쉽다. 다음에는 조금 더 힘내서 블랙 코미디를 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함부로 하면 큰일 나는 거 안다.
입양 운동에서 미혼모 운동으로, 그리고 청소년운동으로
GV 내내 웃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내 말이 누군가에게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방송 프로그램 〈고딩엄빠〉가 보여 주는 단순한 불편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방식의 불편함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미 성인임에도 청소년 시기에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교복을 입히고, 그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참견하며 ‘청소년은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라는 틀만 덧씌우는 게 너무 불쾌하다. 이런 구조는 청소년 임신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출연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정당화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에 동조하며 수많은 청소년에게서 ‘부모됨’을 빼앗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거품을 무는 사람도 내 말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피임을 잘했는데도 아이의 앞길이 망한 것처럼 군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을 향한 차별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을 밝힐 때마다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을 꼭 붙인다. 당신 눈앞에 있는 내가,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계도하고 싶었던 ‘고딩엄빠’의 자식이란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알 때가 아니라며 성을 금기시하는 이들에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우등생과 모범생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모든 이들을 이상주의자로 비하하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가 불온하게 여겨지길 희망한다.
동시에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함께 논했으면 좋겠다. 학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면받지 않는 사회, 학업을 이어 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어떤 모습을 하든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내 생모가 어디에서 지내든 그저 어여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❶ 이 글은 ‘063-콜렉티브’가 주최한 〈리퀘스트 시네마 전주편: 아름답지만은 않은 ‘입양’ 말하기〉 후기다. 이 행사는 2025년 7월 18일 금요일 저녁 7시에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진행됐으며, 조세영 감독의 영화 〈케이 넘버〉를 상영하고 GV(Guest Visit)를 진행했다. 나는 행사를 기획하고, 조세영 감독과 함께 게스트로 참여했다.
❷ 원문은 ‘Harry Potter was fostered. Cinderella was fostered. Jane Eyre was fostered.’이다.
❸ 전북을 중구난방 퀴어링(Queering)하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번 〈케이 넘버〉 상영회에 이어 ‘전주 선미촌’에 관한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유연한 모임이니 관심과 참여 바란다.(063-콜렉티브 인스타그램 @063collective, 이메일 063collective@gmail.com)
❹ 영화에 출연한 미오카 밀러(김미옥)는 ‘723915’, 선희 엥겔스토프(신선희)는 ‘K82-2150’라는 고유번호를 부여받았다. 영화 제목 〈케이 넘버〉는 이 숫자에서 가져왔다.
❺ 권희정(2024),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날, 153쪽.
❻ “[심층] 최대 25만 명이 보내졌다… 해외 입양 70년의 명암”, 〈조선일보〉, 2023년 5월 10일.
❼ 한국의 4대 입양 기관은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이다.
❽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는 문자 그대로 국자로 퍼내듯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의미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미혼모들이 국가의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자녀를 입양 보내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❾ 일라이 클레어, 전혜은 옮김(2020),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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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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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
해리포터, 신데렐라, 제인 에어, 그리고 김서희
영국 런던에 파운들링 박물관은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영국 최초의 보금자리였던 파운들링 호스피탈 병원(foundling hospital)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그곳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해리 포터는 입양됐다. 신데렐라는 입양됐다. 제인 에어는 입양됐다.”❷ 우리가 문학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고아, 입양아였고 위탁 양육된 아이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나는 이들과 공통점이 있다.
나는 국내 입양인이다. 흔히 입양아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불쌍한 아이’라는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어, 입양 당사자나 입양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다. 나는 2000년 7월 25일 새벽 5시 27분에 태어나서 대한사회복지회 소속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 한 달간 위탁 양육됐다. 이때 김서희로 불렸고, 동시에 00-605라는 번호가 부여됐다. 입양된 후에야 정식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
나는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당시 생부는 만 19세, 생모는 만 17세였다. 친부모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길 싫어한다. ‘혈연관계로 맺어진’을 뜻하는 접두사 ‘친’은 ‘친하다’는 뜻으로 대표되는 한자 ‘親’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친한 부모’로 읽힌다. 생물학적 부모와 함께한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친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생부모라고 쓰고 말하고 있다.
생모는 고등학교에 다니다 생리가 없는 걸 알고 임신한 걸 깨달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임신 9개월까지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교사가 생모의 몸 상태를 보고 임신을 알게 됐고 생모 가족에게도 알렸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생모는 자퇴하고, 교사의 소개로 미혼모 쉼터에 입소해 나를 낳았다. 그리고 가족과 의논 후 아동 입양을 의뢰했다.
나는 대리 입양 당사자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내가 26세, 어머니가 74세이다. 처음 어머니가 입양 의사를 밝혔을 때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이유로 거절됐다고 한다. 그러자 당신보다 어린 이모에게 나를 데려오게 했다. 이로 인해 입양 기관이 보관하던 서류에는 이모의 이름이, 출생증명서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 사실은 내가 입양 기록을 찾기 위해 기관에 연락해서 알게 된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해 하는 나에게 기관 역시 이 상황은 전혀 몰랐다고 호소했다. 이런 무책임한 입양 기관 덕분에 나는 내 서류(기록)를 찾기 위해 어머니와 이모가 가족이란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들 당황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럴 때는 퀴어 프라이드(pride)가 부럽다.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도 있지, 프라이드 플래그(pride flag)도 있지. 나는 입양인이라고 밝히는 말과 글 외에 표현할 방법을 아직 못 찾았다. 계속 발화하는 것도 솔직히 입 아프다. 나를 대변할 단체라고는 거의 다 기독교 기반에 가족주의를 표방한다. 그마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수도권으로 이동하려면 교통비로 몇만 원쯤을 기꺼이 쓸 줄 알아야 하는 전주 시민은 여기서 좌절한다.
그래서 전주에서 판을 벌였다. 첫 번째로 기획팀인 ‘063-콜렉티브’❸를 꾸렸다. 그다음 해외 입양이 가진 아름답지 않은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 〈케이 넘버〉에 주목했고 조세영 감독을 초대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준비하는 내내 뚝딱거린 나 때문에 기획팀도 조세영 감독도 고생이 많았다. 1인분이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전주에서 판을 깐다고 하니 정말 많은 이들이 도움을 줬다. 우선 동지들이 기획을 홍보하기 위해 자기 삶의 공간에 포스터를 붙여 줬다. 덕분에 서울 기준으로도 정말 많은 70여 명의 관객이 행사에 참여했다. 또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여러 단체와 해외에서도 선뜻 비용과 물품을 보태 주었다.
여러 상영회에 참여했지만, 관객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참여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가장 뒷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상영 막바지에 관객들이 함께 분노하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겐 그 소리가 꼭 공감과 연대를 표현하는 걸로 들렸다. GV 동안에도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해 주어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덕분에 긴장한 와중에도 힘낼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쓰고 남은 비용은 영화에도 등장하는 해외 입양인이 뿌리를 찾는 여정을 돕는 시민 단체 ‘배냇’에 전액 기부했다. 기부금은 오는 8월 말 개최될 국회 세미나에서 강사비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덕분에 국내 입양인이 해외 입양인 운동에 연대하며 진짜 아름답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지면을 빌려 이번 기획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리퀘스트 시네마 전주편: 아름답지만은 않은 ‘입양’ 말하기〉 포스터 ⓒ063-콜렉티브
부모를 찾고 싶으신가요?
미디어에 보이는 입양 서사는 다 똑같다. 어릴 적 헤어진 가족을 찾겠다고 고군분투하고, 방송을 통해서 제보가 들어오고, DNA 검사를 통해 가족임이 입증되고, 마침내 눈물로 상봉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아름답게’ 끝난다.
입양인이라 말하면 너무 당연하게 가족을, 특히 생부모를 찾고 싶으냐고 물어본다. 나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가 오히려 당황하면서, 왜 안 찾고 싶으냐고 다시 묻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입양 문제는 생부모를 만나고 못 만나고의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세영 감독은 〈케이 넘버〉에서 해외 입양이 국가 차원으로 이루어진 인신매매임을 드러낸다. 한국 전쟁 이후 현재까지 약 20만 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이승만 정부는 ‘원 피플 원 블러드’ 정책을 복지 사업으로 내세우며 미군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걸 권장했다. 이후 해외 입양은 한국에서 30여 년 동안 만연했다. 해외 입양 수가 급증했던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그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에서도 해외 입양이 이뤄졌다. 입양 기관들은 아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번호❹까지 붙였다. 권희정은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에서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해외 입양은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데다 좋은 일을 한다는 사회적 찬사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입양 보낼 아기가 있어야 유지되는 사업이다. 정부가 원가족 지원을 늘리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사라져 미혼모가 양육하겠다고 나서면 가장 위기에 몰리는 사업이기도 하다. 입양 기관의 좋은 기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입양 기관은 입양할 아이들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❺
1960년대 입양 수수료는 아이 한 명을 보낼 때 평균 130~150달러였다. 당시 국민 소득이 100달러 정도였으니, 해외 입양은 이른바 고소득 사업이었다.❻ 국가는 기관과 협력해 ‘수출품’을 찾았다. 길거리에 혼혈아가 돌아다니면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아버지의 나라로 보내기를 권유했다. 아동 긴급 구호라는 명분으로 모자(母子) 가정이 해체됐다. 민간 입양 기관을 통한 대리 입양이 이뤄지며 입양 부모와 아동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가족이 됐다. 1970년대 이후 미혼모 개념이 등장하며 비혼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비난받기 시작했다. 4대 해외 입양 기관❼은 미혼모 상담 사업을 통해 비혼혈 아동의 해외 입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심지어 미아에게 고아 호적을 부여해 단기간에 해외 입양을 보내는 일도 빈번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가족이 해체되는 등 결손 가정이 급격하게 늘어났을 때도 해외 입양이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 국가이며 동시에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국가 3위이다. 여전히 아이 1명을 해외로 보내면 입양 기관은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까지 수수료로 받는다. 반면 해외 입양 당사자들은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서류와 숨겨진 현실, 그리고 한국 사회와 정부가 보여 주는 무관심으로 고통받고 있다.
국내 입양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혼모에 대한 여전한 차별로 그들이 낳은 아이들도 대부분 입양되는 게 현실이다. 내 입양 배경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아직 미혼인 어린 학생의 신분으로 아동을 양육할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고, 아동이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의논 후 아동의 입양을 의뢰했다.” 어머니로서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읽힐 수 있지만,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권희정은 《미혼모의 탄생》에서 미혼모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밝힌다. 이를 이해하려면 서구의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❽를 이해해야 한다. 당시 임신한 미혼 여성은 시설로 보내졌으며, 아이를 낳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회로 돌려보내졌다. 그들이 출산한 아이는 결혼한 중산층 핵가족으로 입양 보내졌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정상적인 여성을 규정하고, 비정상적인 여성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을 허용했던 것이 있다. 작년 한국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클레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여성 인권 침해 사건인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다룬다. 수녀원은 1922년부터 세탁소를 운영하며 미혼모와 성폭행 피해자, 성노동자, 고아 등을 강제 수용했다. 그들은 감금되어 노역을 해야 했고 학대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졌다. 그렇게 아이를 빼앗긴 미혼모들이 무려 1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1996년 마지막 세탁소가 문을 닫았고, 2013년 당시 총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미혼모 개념은 이런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미혼모가 입양 상담을 요청하면, 기관은 결손 가정임을 강조하거나 미혼모가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입양 보내기를 권유한다. 아이가 더 나은 미래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하기도 한다. 결국 미혼모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편견을 빌미로 미혼모가 입양을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국가가 정상성을 규정하면 수많은 존재가 배제된다. 예전에는 인종이 주였다면 현재는 페미니즘과 가족주의가 주된 문제이다. 미혼모와 성노동자 등 다양성에 대한 차별이 강해질수록 입양 문제는 더 커진다. 지난 정부 때부터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고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 입양을 추진하기 위해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궁금하다. 빛의 혁명으로 만들어졌다는 현 정부는 과연 국내외 입양 문제와 해외 입양인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쌤, 울 수도 있으니까, 수건이라도 챙겨 갈까? 감정에 북받치면 울 수도 있잖아.”
GV 날짜가 다가와 한껏 긴장하던 내게 한 동지가 건넨 말이다. 그는 무슨 말이든 다 들어 줄 수 있으니까 마음껏 말하라고 덧붙였다. 물론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안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상영회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그동안 힘들었겠다는 둥, 고통스러웠겠다는 둥 나를 어림짐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 자긍심》에서 절름발이, 불구, 뇌병변 장애인인 자신이 마주하는 슈퍼 장애인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밝힌다.❾ 그는 고등학교 때 달리기를 사랑해서 학교 트랙을 달리고 크로스컨트리 경기에도 참가했다. 경기 결과가 어찌 되든 매번 낯선 이가 다가와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자신을 붙들고 울고, 자신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를 들려줬다고 한다. 그들에게 자신은 느리지만 근성 있는 고등학교 운동선수가 아니라 슈퍼 장애인,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애처롭고 씩씩한 소녀, 용감한 장애인일 뿐이었다.
연민으로 연대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저 국내 입양인이기 때문에 외롭다거나 슬펐던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곁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이들이 있다.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졌지만, 이들은 기꺼이 나와 함께 호흡하길 자처했다. 윤석열 탄핵 정국 당시 그 동지들이 발 빠르게 오픈 마이크를 열었다. 수많은 비인간 동물을 비롯한 존재들이 나보다 먼저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 덕분에 광장 한복판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게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은 자긍심이다. 이건 다른 정체성과 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내가 불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도 업둥이를 키우면 집에 복이 온댔다. 그러니 당신들이 원하는 ‘슈퍼’한 이미지를 덧입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서사를 기대한 이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리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행사 당일에 외부로 드러내 보이는 내 모습은 정말 중요했다. 에일리가 노래 〈보여줄게〉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그래서 나도 머리를 자르고, 피어싱을 바꾸고, 출근할 때도 꺼내지 않은 펄(shimmery) 아이섀도를 꺼냈다. 코르셋을 조였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지만, 이 모든 건 기존 서사에 대한 나만의 투쟁이었다.
한편으로는 참여자들을 웃기고 싶었다. 유머는 소수자들이 차별에 맞서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동양인 출연자는 자기 인종을 유머로 삼는다. 투렛 증후군을 앓는 한 코미디언은 오히려 자기 병이 유머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렇듯 유머는 일상을 유쾌하게 표현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차별을 드러낸다.
주량을 논할 때 부모님에게서 물려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정확히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나오는 정도가 유전된다는 말이었다. 물려받은 기질을 모르는 나는 “부모님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같이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패륜성 유머는 유교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금기 중에서도 금기다. 그렇지만 나는 “너 부모 없지?”라는 질문에 “응, (생)부모 없는데?”라고 답할 수 있다. 진짜 없으니까.
이렇듯 나는 내 정체성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거나 웃길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상가족 구조와 고리타분한 가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래서 잔뜩 준비해 갔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쉽다. 다음에는 조금 더 힘내서 블랙 코미디를 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함부로 하면 큰일 나는 거 안다.
입양 운동에서 미혼모 운동으로, 그리고 청소년운동으로
GV 내내 웃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내 말이 누군가에게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방송 프로그램 〈고딩엄빠〉가 보여 주는 단순한 불편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방식의 불편함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미 성인임에도 청소년 시기에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교복을 입히고, 그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참견하며 ‘청소년은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라는 틀만 덧씌우는 게 너무 불쾌하다. 이런 구조는 청소년 임신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출연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정당화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에 동조하며 수많은 청소년에게서 ‘부모됨’을 빼앗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거품을 무는 사람도 내 말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피임을 잘했는데도 아이의 앞길이 망한 것처럼 군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을 향한 차별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을 밝힐 때마다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을 꼭 붙인다. 당신 눈앞에 있는 내가,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계도하고 싶었던 ‘고딩엄빠’의 자식이란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알 때가 아니라며 성을 금기시하는 이들에게,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우등생과 모범생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모든 이들을 이상주의자로 비하하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가 불온하게 여겨지길 희망한다.
동시에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함께 논했으면 좋겠다. 학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면받지 않는 사회, 학업을 이어 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어떤 모습을 하든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내 생모가 어디에서 지내든 그저 어여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❶ 이 글은 ‘063-콜렉티브’가 주최한 〈리퀘스트 시네마 전주편: 아름답지만은 않은 ‘입양’ 말하기〉 후기다. 이 행사는 2025년 7월 18일 금요일 저녁 7시에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진행됐으며, 조세영 감독의 영화 〈케이 넘버〉를 상영하고 GV(Guest Visit)를 진행했다. 나는 행사를 기획하고, 조세영 감독과 함께 게스트로 참여했다.
❷ 원문은 ‘Harry Potter was fostered. Cinderella was fostered. Jane Eyre was fostered.’이다.
❸ 전북을 중구난방 퀴어링(Queering)하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이번 〈케이 넘버〉 상영회에 이어 ‘전주 선미촌’에 관한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유연한 모임이니 관심과 참여 바란다.(063-콜렉티브 인스타그램 @063collective, 이메일 063collective@gmail.com)
❹ 영화에 출연한 미오카 밀러(김미옥)는 ‘723915’, 선희 엥겔스토프(신선희)는 ‘K82-2150’라는 고유번호를 부여받았다. 영화 제목 〈케이 넘버〉는 이 숫자에서 가져왔다.
❺ 권희정(2024),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날, 153쪽.
❻ “[심층] 최대 25만 명이 보내졌다… 해외 입양 70년의 명암”, 〈조선일보〉, 2023년 5월 10일.
❼ 한국의 4대 입양 기관은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이다.
❽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는 문자 그대로 국자로 퍼내듯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의미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미혼모들이 국가의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자녀를 입양 보내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❾ 일라이 클레어, 전혜은 옮김(2020), 《망명과 자긍심》, 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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