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86호 | 맹수용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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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5 5·6 vol.86





몇 해 전 만났던 A는 누가 보아도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교사에 대한 신뢰, 학업에 대한 열정, 빼어난 유머는 A가 학급 내에서 ‘인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A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3달 만에 교사에게 전학 소식을 전했다. A는 이사로 인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1차 지필 평가 이후 내린 선택이어서 갑작스러운 전학의 이유를 추측하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는 생존하기 어렵겠다’라는 판단이 학교를 옮기고 친구 관계를 새로 만들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부담을 감수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1학년 1차 지필 평가 이후 자퇴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는 학교생활이 자신에게 의미가 없으며 경쟁 체제의 ‘들러리’가 되기 싫다는 주체적 선언일지 모른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사회는, 삶은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공현의 〈‘무엇을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살고 있나’가 문제〉에서 언급된 것처럼, ‘교육 불가능성 시대’에 교육의 가능성은 청소년의 삶과 사회적 위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학생들의 삶에 대한 ‘규정’을 너무나 쉽게 하는 사회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현의 글은 ‘교육 불가능성’ 앞에서 주춤했던 가능성의 실마리를 보여 주는 듯하다. 확실히 학생들의 내면에는 매우 큰 ‘불안감’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은 학교생활에서의 긴장감을 더 키운다. 


이한은 〈우리의 ‘소년의 시간’, ‘구원’하고 ‘계몽’할 수 있나요?〉에서 왜곡된, 차별을 용인하는, 때로는 데이터를 부정하는 남성들의 문제를 이들의 ‘세계관’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는 삶. 사실 이런 삶의 관점은 과거의 나에게도 있었고, 지금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나는 다행히도 내가 어떻게 살아오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돌이켜 보면 누군가와의 만남이 삶의 방식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과 행동, 켜켜이 쌓이는 관계가 만들어 가는 자연스러운 공동체, 이렇게 살면 나도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롤모델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사는 것이 주변과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게 했다. 내 삶을 상대화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만든 것은 결국, ‘돌봄’이었다. 이한의 글에 담긴 개인사는 나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학생들에게 어떤 존재로 곁에 있어야 할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진심 어린 관심과 돌봄이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곁을 함께하는 관계에서 교육의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이라는 말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로 표현된 대상과 ‘나’의 연결점보다는 단절을 떠올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톨의 글 〈‘그들’은 학생을 생각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놀랐다. 그는 근대 교육이 남성 가부장 체제, 자본-군사 제국주의, 인간 중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이러한 교육이 청소년과 아동을 규격화하고 통제해 왔음을 비판한다. 나아가 학교 안팎에서 ‘그들’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그러한 교육 질서에 가담하거나 침묵해 왔음을 드러낸다. 그의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학교의 변화는 소수의 의미 있는 실천과 저항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고 경험한 바가 적어서 선배들의 실천과 노력의 대부분을 알지 못하지만, 최근 교육 실천과 운동의 온기가 이전만큼 뜨거운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음의 질문을 제기해 보고 싶다. 왜 우리는 ‘그들’과 연결되지 못하고, 같이 변화를 도모하지 못할까? 톨의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의 나태함을 성찰할 수는 있었지만, 학교 변화를 만들어 나갈 ‘연결’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날카로운 비판보다도 불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현실과 이에 기반한 관념에 대한 경청, 그리고 ‘함께 하기’를 위한 대화와 설득이 내가 믿는 변화의 방식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요즘 많이 지쳐 있는 것 같다. 교육에 대한 희망과 그 가능성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마주한 학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인 ‘관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정책과 제도는 더욱 거세게 밀려온다. 서로를 섬세하게 대하는 관계와 돌봄, 그리고 교육이 이 파도에 묻혀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그렇지만 이번 호의 특집을 읽으며,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다잡을 수 있었다. 


- 맹수용(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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