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리뷰] 중요한 걸 중요하게 여기기 | 박일환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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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중요한 걸 

중요하게 여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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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마츠 기요시 씀, 이수경 옮김, 《말더듬이 선생님》, 웅진지식하우스, 2009



박인환 pih66@naver.com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등 뒤의 시간》, 《귀를 접다》, 동시집 《토끼라서 고마워》, 청소년시집 《만렙을 찍을 때까지》, 《우리들의 고민상담소》를 비롯해 《문학시간에 영화 보기1, 2》 같은 책을 펴냈다.




여기 말을 심하게 더듬는 교사가 있다. 아이들 앞에서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으로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셈이다. 그래서일까? 무라우치라는 이 교사는 정교사로 임용받지 못한 채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아다니는 비상근 강사다. 말을 더듬는 탓에 아이들로부터 놀림당하기도 하고,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라우치는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 다만 땀을 뻘뻘 흘리며 여전히 더듬거리는 말로 수업을 한다.


작가는 왜 하필 말더듬이 교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그 까닭을 ‘모리 할매’라고 불리는 동료 교사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선생님은 말을 잘 못한단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말만 하는 거야.”

- 본문 46쪽

   


중요한 것과 곁에 있어 주는 것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중요하다’라는 말이다. 어떤 것이 중요한 걸까? 작품 속에서 무라우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옳지 않지만 중요한 것도 있단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데 중요한 건 절대로 없지. 중요한 것은 언제든 중요한 거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대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싫어, 하고 교실에서 누군가 웃는다. 잠깐만 기다려, 하고 누군가 복도를 뛰어간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옳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생이 된 게 아니다.”

“……그러면 어떤?”

“나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싶단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선생님은 ‘중요한 것’을 다 전했다는 듯 깊게, 기분 좋은 듯 한숨을 쉬었다.

- 본문 43쪽 


옳고 그름은 어떤 기준에 맞추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교사에게는 옳지만 학생에게는 옳지 않은 일이 있을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옳은 소리를 한다. 아니, 옳은 소리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 실린 8편 중 마지막 작품인 〈뻐꾸기 알〉에서 도다 선생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무라우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마이라는 학생과 테짱이라는 청년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 때 무라우치는 “두 사람 모두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그러자 도다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일이라며 무라우치를 몰아붙인다.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명백하게 가려내야 한다는 게 도다의 생각이다. 하지만 무라우치가 보기에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무라우치에게 중요한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래서 무라우치는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건 그 학생이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자신이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라 쓸쓸한 겁니다.

- 본문 340쪽


그러면서 거짓말을 하는 아이일수록 누군가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무라우치의 도움을 받는 8명의 외톨이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무라우치는 외톨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 교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을 관통하는 두 번째 키워드 ‘곁에 있어 준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말이야, 외톨이가 둘 있으면 그건 이미 외톨이가 아니라고,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단다. 선생님은 외톨이 아이들 곁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외톨이가 되고 싶어. 그래서 나는 선생을 하는 거야.

- 본문 51쪽


“그 선생님은 말을 잘 못했어…… 말을 심하게 더듬었거든.”

나나나나나는 무무무무라우치라고 합니다. 내가 선생님 흉내를 내자 치에코는 뭐야, 하며 웃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될 수 있어?”

“될 수 있지. 게다가 무라우치는 잘 가르치지는 못해도 좋은 선생님이었으니까. 수업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중요한 거?”

머리에 떠오른 말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서 선생님이 내게 해 준 말을 써 봤다.

“곁에 있어 주는 거, 무라우치 선생님은 곁에 있어 주는 게 일이야.”

- 본문 316쪽


무라우치가 외톨이들에게 해 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멋진 말도, 훌륭한 지혜도, 경제적 도움 같은 것도 주지 않았다. 다만 곁에 있어 주는 것, 곁에 있으면서 믿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교육이라는 말에는 앞에서 ‘수업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그 무엇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수업보다 중요한 그 무엇은 수치로 계량화하거나 성적 향상과 같은 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수업보다 중요한 그 무엇은 종종 무시되기 일쑤다. 심지어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유능한 교사는 과연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말을 더듬는 무라우치는 어쩌면 무능 교사의 표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라우치가 있어 어느 학교에나 있기 마련인 외톨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무라우치는 모든 학생에게 필요한 교사가 아니라 외톨이들에게 필요한 교사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비상근 강사라는 신분 때문에 겨우 몇 달씩밖에 학교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외톨이를 찾아 이 학교 저 학교 떠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키워드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말을 한다. 외톨이에게 다가가 그 아이를 만난 게 아직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 아이 또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잊어버리지 않기


이 책에 실린 8편의 작품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아이가 등장하고, 이들은 무라우치를 만나 힘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학교라는 제도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외톨이들을 양산하거나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외톨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 학생이 발생하자 그 대책으로 전체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교환 일기를 쓰게 하고 우정 맹세를 하게 하는 학교(〈손수건〉),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익명으로 왕따를 고발하는 투서함인 파랑새 BOX를 설치하는 학교(〈파랑새〉), 역시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급 구성원 간에 팀워크를 기른다며 10명씩 지네 모양의 팀을 이루어 달리는 학급 대항 지네 경주를 정례화한 학교(〈친애하는 쥐대왕마마〉) 등의 사례가 그렇다. 분명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만든 행사일 테지만 그러한 행사에 불만을 갖거나 동화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보여 주기식 대책이 어떤 아이에게는 역으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못한 탓이다.


작가는 사태의 본질과 해결책이 그런 대책들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파랑새〉라는 작품은 상황은 다르지만 자연스레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작품에는 일종의 ‘빵셔틀’을 당하다가 자살을 시도하고 끝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노구치라는 학생이 등장한다. 같은 반 친구들은 노구치에게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각종 물건을 가져올 것을 요구한다. 노구치는 매번 그 요구에 응하게 되고, 상황은 끝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노구치가 속했던 반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휴직을 한 담임 대신 무라우치가 그 반을 맡게 된다. 무라우치는 담임을 맡자마자 치웠던 노구치의 책상과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게 한 다음 빈자리를 향해 매일 “노구치,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당연히 같은 반 아이들은 그런 무라우치의 행동에 대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벌주기 게임을 하는 게 아니냐며 반감을 갖는다. 이에 대해 무라우치는 “잊어버리다니 비겁하구나”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노구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짓을 했다. 그런데 너희가 그것을 잊는다는 건 비겁한 일이겠지? 불공평하겠지? 노구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노구치에게 한 짓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생. 그것이 책임이라는 거다. 벌이 있든 없든, 죄가 되든 안 되든, 자신이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우리는 반성했다. 후회도 했다. 본인에게 건네지는 못했지만 반성문 속에서도, 마음속으로도 노구치에게 수없이 사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과는 다른 것일지 모른다. 잊지 말라고 선생님은 되풀이했다. 노구치 일을 잊지 마라. 자신이 한 일을 잊지 마라.

- 본문 168쪽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는 줄곧, 이제 그만 잊을 것을 강요했다. 다수의 사람들도 유가족들에게 그 정도 했으면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보상금 지급과 적당한 선에서 관련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비겁하다는 말에 딱 들어맞았다. 사과와 책임지는 것은 다르다는, 작품 속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부가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모두는 안다.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으며,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는 왜 제대로 된 추모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는지 아프게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 추궁해야 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시민 사회와 우리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걸 잊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말더듬이 선생님》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사가 혹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의 힘 또한 대단하다. 교육 문제를 매개로 이 정도의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다. 무엇보다 제도 교육이 놓치기 쉬운 부분과 교육의 본질에 바탕을 둔 교사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룬 교육철학 입문서의 역할을 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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