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리뷰] 불순한 어린이에게 스며들기 | 이은진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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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순한 어린이에게 스며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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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신 씀, 《불순한 어린이들》, 동녘, 2025



이은진  thecall1@hanmail.net

초등 교사




이 책을 처음 어디서 맞닥뜨렸던가? 두 달에 한 번은 찾아가는 지역 서점이었는지, 아니면 습관처럼 들어가서 스크롤을 내리던 온라인 서점의 화면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책의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불편함이었다. 대개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 불순하다는 말은 좋게 쓰이지 않는다. 불순하다는 말은 생각이나 행동이 보통과 다른 사람에게 전체의 질서를 깨트리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의도가 선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가 될 때 주로 붙이는 말이다. 그래서 ‘불순한 어린이들’이라는 책 제목이 묘하게 불편하고 거슬렸다. ‘아니, 뭐야. 어린이들이 의도적으로 나쁘게 행동한다는 거야? 요즘 교권 강조 트렌드에 맞춰서 낸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해가 풀렸다. 저자는 불순한 어린이를 “순수함이나 어린이다움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귀여워하거나 흐뭇해하는 시선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어린이”(본문 10쪽)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었다. 책에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툭툭 하는 어린이, 친구들과 다툼이 많은 어린이, 학교폭력에 연루된 어린이, 건물주가 꿈인 어린이, 친구의 이름을 비하의 표현으로 지칭하는 어린이 등 불순한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어린이들을 마냥 두둔하지도, 마냥 꾸짖지도 않은 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다소 도발적으로 어린이를 향해 ‘불순하다’고 지칭하고 있지만, 실은 편하지 않은 감정을 전달해 주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불순한 시선’을 효과적으로 저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불순한 어린이를 ‘인정’하기


크게 세 파트로 구분된 37꼭지의 글을 통해 저자가 펼쳐 놓은 다양한 ‘불순한’ 어린이들의 세계는 생각처럼 깜짝 놀라거나 경악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교실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교사 입장에서 조금은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명쾌한 해답을 책의 어디에서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답을 주기보다는 어린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와 경험을 가만가만 살펴보면서, 그들과 함께해 온 시간을 통해 담게 된 내면의 통찰을 슬며시 꺼내 놓고 있을 뿐이다. 


그의 시선과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 어린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 그동안 어린이에게 부당하게 착함이나 순수함을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어린이가 교실에서 보여 주는 ‘불순함’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같은 질문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독자의 마음에 휘몰아치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해 준다. 


어린이들은 온몸으로 자신을 쉽게 단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어서 듣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어른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어린이를 인정하는 용기다. 규정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다채로운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용기. 오늘을 사는 어린이를 직시하면 되는 일이다.

- 본문 263쪽


어린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라는 수많은 메시지가 범람하는 오늘날, 저자는 이해가 아니라 ‘인정’을 들고 나왔다. 더 나이 많고 지혜로운 이가 그렇지 못한 다른 이를 향해 건네는 다분히 위계적인 뉘앙스를 가진 ‘이해’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로서 대하자는 의미일 테다. 교실이나 가정에서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순수하고 착하다거나, 말썽을 피우는 구제 불능 같은 딱지를 붙이곤 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손쉽게 붙이는 딱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롭다. 저자는 교사가 보는 교실 속 모습은 어린이의 일부이며, 그 일부만 보고 내리는 평가는 편협한 평가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가 깊고 넓어서 환경이 달라지면 다르게 행동하고, 어린이가 교실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교실 환경이 만든 모습”(본문 85쪽)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반의 한 어린이, 1학년 때부터 지금의 6학년이 되기까지 전교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유명했던 일명 ‘금쪽이’가 떠올랐다. 국어나 수학, 사회 수업 시간에 한없이 지우개 똥 만들기에만 열중하다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야단맞기 일쑤이고, 제출해야 하는 회신문은 3~4일씩 늦기 마련에, 수업 시간 중에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가서는 30분씩 돌아오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는 과격한 몸짓으로 놀다가 친구와 부딪쳐서 친구 또는 자신이 다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 어린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데, 스포츠 강사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는 방과후수업과 아침 스포츠 클럽 시간이다. 작은 놀이나 게임 하나에도 이 어린이는 ‘6학년답지 않게’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수업 후의 뒷정리에도 열심이다. 스포츠 강사 선생님과 내가 보는 이 어린이는 전혀 딴판이었으며, 교실을 벗어난 환경에서 이 어린이는 ‘금쪽이’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사회에서 다루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어린이를 ‘금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말은 교사와 학교에도 깊숙이 들어왔다. 나는 이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땅히 다르게 지칭할 말이 적당하지 않아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좋아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어떤 어린이를 향해 ‘금쪽이’라 부르는 것이 혹, 교실에서 어린이를 배제하거나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이를 금쪽이라고 부르며 다양한 어린이를 이해하기를 단념하면 편하다. 하지만 편한 길을 선택해서 얻는 손해도 있다. 금쪽이라고 말하며 배제하는 순간 배제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나는 곤란함을 감수하고 계속 노력하는 일이 다양한 어린이를 배제하지 않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 본문 141쪽


만약 저자가 이 어린이를 학교에서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어린이가 학교에서 공공연히 ‘금쪽이’라고 불리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교실을 벗어난 체육 환경에서 보이는 어린이의 반짝임을 포착하여 ‘아주 조금의 인정’과 함께, 이 어린이가 학교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았을까. 아주 조금의 인정을 어떻게 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다음 날, 나는 이 어린이가 아침 스포츠 클럽을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교실로 들어왔을 때 그의 체육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향해 ‘엄지 척’을 날려 줬다. 평소 같으면 1교시 시작종이 울릴 때 가까스로 교실에 도착한 어린이에게 ‘스포츠 클럽만큼 교실 수업도 신경 쓰라’며 잔소리를 했을 담임이 날리는 ‘엄지 척’이 낯설기도 했을 텐데, 어린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엄지 척’으로 전해진 담임의 아주 조금의 인정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스며들어’ 함께 살아가기


평소 인권에 관심이 있는 교사로서 모든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인권교육을 한답시고 나서면서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어린이들은 여전히 힘들다. 수업의 흐름을 깨뜨리는 행동을 하는 어린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을 폭발시키는 어린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규범을 넘나드는 어린이를 만날 때면 ‘교육적 지도’라는 명목으로 질서를 세우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시도하는 교육적 지도는 어린이들에게 가닿지 않고 허공에 흩어지거나, 간혹 지나치게 날카롭게 어린이들을 겨냥하곤 한다. 이렇듯, 모든 어린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교실 안에서 이 말을 살아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어린이들의 행동을 바꾸길 원한다면 마음을 울려야 했다. 어린이들은 마음이 다치지 않는 방식을 원했다. 자신들은 충분히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 다르게 다가와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 본문 197쪽

 

‘다르게’ 다가와 달라는 어린이들의 부탁처럼, 저자는 ‘어린이들과 연루되어 스며드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연루되어 스며드는 관계 속에서 저자는 어린이들에게 “미안한데”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알지만 그것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 쓰는 말이란다. 사람과 사람의 동등한 관계에서 종종 쓰이곤 하는 ‘미안한데’라는 말이 교사와 어린이들 사이에 오가는 교실이라니, 낯설지만 따스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약속했던 학급 이벤트를 하기로 했던 날, 피치 못할 학교 사정으로 이벤트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어린이들은 입이 삐죽 나와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불평의 말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듣는 마음은 썩 편치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그만하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들의 실망이 이해되기도 했기에 ‘많이 기대했을 텐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라고 덧붙였다. 놀랍게도 어린이들은 나의 강력한 훈계가 아닌 사과의 말에 반응했다. 불평과 불만으로 뾰족해졌던 공기가 누그러들면서 어린이들은 ‘선생님 탓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기대하는 사이가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서로 연루되고 스며드는 관계를 통해 오늘을 사는 어린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상실의 순간을 애도하고, 다름과 불평등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다. 억지로 무엇을 가르치기보다는, 주체로서의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 욕망을 오롯하게 인정하고 바라본다. 어린이의 옆에 앉아 기웃거리고, 아주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투르게나마 말을 건네면서,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교사로서 나는 얼마나 어린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특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어린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교육적으로 가르치려는 시도를 하기 이전에, 어린이들의 삶의 맥락과 경험을 더 들여다봐야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 생각이다. 



‘긁혔던’ 느낌을 넘어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할까 한다. 이 책은 흔히 교사의 입장과 시각이 도드라지고 결국 교사가 주인공이 되는 여타의 교육 에세이와는 다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다가 요샛말로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저자의 말과 실천을 보면서 마음에 울림을 느끼다가도 한 번씩 울컥하고 짜증 비슷한 기분이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담임 교사라는 역할에 몰입해서 살다 보면 자꾸만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싶어진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규제하거나 야단치게 된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든지 “걔가 그럼 그렇지” 같은 말이 툭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어린이들을 정말 오롯하게 바라본다. 그만큼 충분히 그러하지 못한 나는 읽는 내내 저자에게 ‘긁힘당했다’. 그 긁힘은 꽤나 불편해서 책을 덮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찌꺼기처럼 들러붙어 있는 나의 교사로서의 습관을 되돌아보게 한다. 


솔직히 말해서, 여전히 교사로서 교육 행위를 하는 것과 어린이의 다양함을 제거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가는 교실살이에서 여전히 나는 매번 ‘이것이 맞나? 틀리나?’ 하는 혼란이 일고, 그때마다 얼마나 잘 판단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하게 매번 헷갈리고 고민하면서 생활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언젠가, 이 책의 저자와 마주 앉아 차 한잔 나누면서 진솔하게 대화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같은 고민으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초대하여 불순한 어린이들의 삶을 공유하며 서로 스며들기를 꿈꿔 본다. 




교육공동체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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