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성노동자의 관점으로
부채 읽기

베로니카 가고 외 씀, 김주희·황유나 옮김,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 현실문화, 2025
글
유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18년, 아르헨티나는 IMF(국제통화기금)에서 거액의 돈을 빌렸다. 돈을 빌린 아르헨티나는 IMF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구조 조정을 감행하고 공공 분야에 지출하는 비용을 긴축해야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가파른 물가 상승 현상)으로 인해 고통받던 아르헨티나 거주민의 일상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얹어졌다. 아르헨티나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경제적 흐름이 여성을 약탈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저항하고자 했다. 노동 임금은 고정되어 있고 식료품, 주거 등 기본적인 서비스의 비용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정이, 특히 아이를 낳고 돌보는 여성이 빚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여성의 빚, 부채란 사실상 의무이자 강제된 것임에도 가정 내에서 계좌를 관리하고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여성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채를 여성의 전통적 역할과 돌봄 능력에 떠맡긴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복지로 지급되는 보조금조차 돈을 빌리기 위한 담보이자 부채 상환 수단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부채는 노동 임금을 받지 않는 가정 내 여성의 생산성까지 촘촘하게 착취해 냈다.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부채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생명(어떤 여성은 아이에게 음식을 더 나누고자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까지 침탈당했고, 성차별적인 폭력을 당해도 빚에 묶여 가정을 떠날 수 없었다. 책은 여성으로서 빚을 지게 되면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음을, 여성이 노동에 강제 동원되는 현실을 말하면서 국가의 부채는 여성의 자손마저 예속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됨을 폭로한다.
그런데 여성이 이런 방식으로 착취 가능하다는 것은 여성에게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의 저자 베로니카 가고와 루시 카바예로는 부채가 여성의 삶에 어떻게 폭력적인 종속을 만들어 내는지 밝히면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착취하는지 눈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가치 있다고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의 역할에서 사실은 부가 추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해당 부를 약탈하는 작용 속에서 건져 낸 것이다. 부채가 작동하는 체계는 알고 보면 평가 절하된 여성의 가치를 약탈하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빚을 진 여성들은 개인적 죄책감에 저항할 수 있다. “부채는 우리(여성)에게 빚을 진 것”(본문 23쪽)임을 드러내며 부채 경험을 말하고 부채에 불복종하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금융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기
나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속한 성노동자 커뮤니티에서, 이 책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나에게 왔다. 어디가 어떻게 어려웠을지 헤아려 가며 읽어 보니 금융 자본주의와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과 같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추상화된 부채를 벽장 밖으로 꺼내 부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문제로 만들자’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에 규명되고 합의된 듯한 지식을 기반으로 전개되는데, 해당 지식들의 규명과 합의를 따라가 본 적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관해 설명이 더 필요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료 성노동자에게 부족하게나마 해설해 줄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1990년대생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1개에 200원이었던 새콤달콤이 지금은 500원이나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이 비싸진 것,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단번에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 우리에게는 왠지 새콤달콤이 앞으로 더 저렴해질 거라는 기대가 없다. 같은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새콤달콤 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은행에서 주는 이자도 넉넉지 않다면,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충분히 준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도나도 주식을 사고 코인에 투자하는 분위기다. 일정 수 이상의 인간이 투자에 뛰어들면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투자의 장에 영향을 받고 투자로 인해 움직이는 집단이 되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투자할 만하다는 말은 곧 가치가 오를 만하다는 평가인데, 세상 모든 것이, 심지어 생명까지도 투자할 만한 대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우리가 정보 등을 학습하고 몸을 관리하는 이유는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선 투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물건은 계속 비싸지기만 할 때, 물건-삶을 구매할 돈이 부족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투자받을 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아직 젊고 돈을 벌 능력이 있는 우리는 은행에서 교육, 의료, 주거 등의 사유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은행의 가치 평가 기준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게 되거나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재평가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아르헨티나가 아닌 한국에 있어서일까, 나는 내가 지금 타격하고 싶은 상대가 정확히 ‘부채 메커니즘’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채는 우리를 수탈하는 동시에 투기의 기회가 되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부채로 충당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부채는 분명 구원자로 기능하는 순간이 있다. 불복종에 관해서도 긍정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다. 책은 부채에 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떨치자고 말하지만, 내겐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없는 대신 신용이 깎이는 처벌에 관한 공포심이 있다. 내게 불복종이란 과반수 이상의 인간이 처벌이 있든 없든 이판사판이 될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함께 떨어져야 가능성이 높아지는 수단처럼 느껴진다.
내가 언제나 열렬히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여자에게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다. 여자의 상호 부조, 가정 내의 촘촘한 생산성은 지금보다 더욱 경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성노동도 마찬가지다. 돈을 버는 족족 빼앗기는 구조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성은 성매매로 돈을 벌 수 없다’고 결론짓는 일부 반성매매 페미니스트의 이념적 선언은 실질적인 저항을 위한 실태 파악에 방해가 된다. 내 생각에, 페미니즘이 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많이 빼앗길 정도로, 다 빼앗기고도 조금 남을 정도로 규모 있는 부가 여성으로부터 추출된다는 것.
평가 절하된 여성의 가치
트랜스 남성 스펙트럼에 속한 성노동자로서, 여자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나만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억누르고 여자 역할에서 추출되는 부를 이용하며 살아왔다. 돈이 없으면 머리카락을 기르고 화장을 하며 남자에게 돈을 얻었고, 돈이 생기면 머리카락을 깎고 맨얼굴로 최저시급 받는 일자리를 전전했다.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는 남자였다면 절대 돌파할 수 없었던 수준의 빈곤을 여자가 되어 성노동함으로써 극복해 냈다. 거주하던 고시원에 불이 나 홈리스가 되었던 시기, 나는 인생 최대의 성 거래인 결혼까지 했었다.
나에게는 아직 젠더 표현을 위해 가슴을 자를 돈이 없다. 그건 수술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가슴을 팔아 생계를 이을 가능성을 없애기엔 내가 너무 가난하다는 뜻이다. 여성성을 드러내는 내 신체 조건을 바꾸고 남성으로 성을 확정짓는 조치는 나에게 전 재산을 길바닥에 버리며 파산을 준비하는 기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나는 머리카락 길이와 화장, 가슴 정도를 언급했지만, 내가 경험한 ‘여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외모를 관리하는 행위 정도가 아니다. 여자란, 남자는 하지 않는 여러 노동에 속박된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경험한 여자란 특정한 노동을 항시적으로 강요받는 상태였다. ‘여성성’이라는 단어에 담긴 모든 것, 그 모든 것으로부터 24시간 퇴근할 수 없는 노동자가 된다는 감각이 내겐 곧 여자가 된다는 감각이었다. 내가 여자임을 의도하고 판매하는 동안 나는 ‘여자’라는 노동 상태가 몹시 비쌀 만하다는 배움을 얻었고, 여자가 지금보다 더 괜찮은 가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되었다. 평가 절하된 부분에서 착취와 약탈이 일어난다면, 과연 다수의 투자자가 여자를 제대로 재평가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것이 근본적이고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더라도 말이다.
부를 추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는 이유로 금융화되어 내 미래의 성노동 가능성까지 동원당하는 현실은 물론 힘들고 끔찍하다. 그러나 대안을 찾지 못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생명까지 조각내 파는 경험을 스스로 허용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 꼭 부채에 시달리느라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성노동자 권리 운동은 부채로 강제당한 성매매 피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빚이 없는 여자도 다양한 이유로 성산업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다. 성노동 현장에서 만나 온 의미 있는 수의 여자들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자영업 하는 사장이 되기 위해, 결혼 시장에 정상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부양 가족도 부채도 없이 성노동으로 ‘목돈’을 모으고 있었다. 페미니즘으로 부채를 읽듯이, 읽어 내야 할 무언가가 이 노동 현장에 남아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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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의 관점으로
부채 읽기
베로니카 가고 외 씀, 김주희·황유나 옮김,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 현실문화, 2025
글
유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18년, 아르헨티나는 IMF(국제통화기금)에서 거액의 돈을 빌렸다. 돈을 빌린 아르헨티나는 IMF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구조 조정을 감행하고 공공 분야에 지출하는 비용을 긴축해야 했다. 이는 인플레이션(가파른 물가 상승 현상)으로 인해 고통받던 아르헨티나 거주민의 일상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얹어졌다. 아르헨티나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경제적 흐름이 여성을 약탈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저항하고자 했다. 노동 임금은 고정되어 있고 식료품, 주거 등 기본적인 서비스의 비용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정이, 특히 아이를 낳고 돌보는 여성이 빚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여성의 빚, 부채란 사실상 의무이자 강제된 것임에도 가정 내에서 계좌를 관리하고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여성 개인의 책임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채를 여성의 전통적 역할과 돌봄 능력에 떠맡긴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복지로 지급되는 보조금조차 돈을 빌리기 위한 담보이자 부채 상환 수단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부채는 노동 임금을 받지 않는 가정 내 여성의 생산성까지 촘촘하게 착취해 냈다.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부채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생명(어떤 여성은 아이에게 음식을 더 나누고자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까지 침탈당했고, 성차별적인 폭력을 당해도 빚에 묶여 가정을 떠날 수 없었다. 책은 여성으로서 빚을 지게 되면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음을, 여성이 노동에 강제 동원되는 현실을 말하면서 국가의 부채는 여성의 자손마저 예속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됨을 폭로한다.
그런데 여성이 이런 방식으로 착취 가능하다는 것은 여성에게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의 저자 베로니카 가고와 루시 카바예로는 부채가 여성의 삶에 어떻게 폭력적인 종속을 만들어 내는지 밝히면서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착취하는지 눈에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가치 있다고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의 역할에서 사실은 부가 추출되고 있었다는 것을 해당 부를 약탈하는 작용 속에서 건져 낸 것이다. 부채가 작동하는 체계는 알고 보면 평가 절하된 여성의 가치를 약탈하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빚을 진 여성들은 개인적 죄책감에 저항할 수 있다. “부채는 우리(여성)에게 빚을 진 것”(본문 23쪽)임을 드러내며 부채 경험을 말하고 부채에 불복종하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금융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기
나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속한 성노동자 커뮤니티에서, 이 책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나에게 왔다. 어디가 어떻게 어려웠을지 헤아려 가며 읽어 보니 금융 자본주의와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과 같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추상화된 부채를 벽장 밖으로 꺼내 부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의 문제로 만들자’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에 규명되고 합의된 듯한 지식을 기반으로 전개되는데, 해당 지식들의 규명과 합의를 따라가 본 적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관해 설명이 더 필요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료 성노동자에게 부족하게나마 해설해 줄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1990년대생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1개에 200원이었던 새콤달콤이 지금은 500원이나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이 비싸진 것,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단번에 설명하기엔 복잡하지만, 우리에게는 왠지 새콤달콤이 앞으로 더 저렴해질 거라는 기대가 없다. 같은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새콤달콤 수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은행에서 주는 이자도 넉넉지 않다면,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충분히 준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너도나도 주식을 사고 코인에 투자하는 분위기다. 일정 수 이상의 인간이 투자에 뛰어들면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투자의 장에 영향을 받고 투자로 인해 움직이는 집단이 되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투자할 만하다는 말은 곧 가치가 오를 만하다는 평가인데, 세상 모든 것이, 심지어 생명까지도 투자할 만한 대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우리가 정보 등을 학습하고 몸을 관리하는 이유는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선 투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물건은 계속 비싸지기만 할 때, 물건-삶을 구매할 돈이 부족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투자받을 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아직 젊고 돈을 벌 능력이 있는 우리는 은행에서 교육, 의료, 주거 등의 사유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은행의 가치 평가 기준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게 되거나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재평가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아르헨티나가 아닌 한국에 있어서일까, 나는 내가 지금 타격하고 싶은 상대가 정확히 ‘부채 메커니즘’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채는 우리를 수탈하는 동시에 투기의 기회가 되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부채로 충당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부채는 분명 구원자로 기능하는 순간이 있다. 불복종에 관해서도 긍정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다. 책은 부채에 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떨치자고 말하지만, 내겐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없는 대신 신용이 깎이는 처벌에 관한 공포심이 있다. 내게 불복종이란 과반수 이상의 인간이 처벌이 있든 없든 이판사판이 될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함께 떨어져야 가능성이 높아지는 수단처럼 느껴진다.
내가 언제나 열렬히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여자에게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다. 여자의 상호 부조, 가정 내의 촘촘한 생산성은 지금보다 더욱 경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성노동도 마찬가지다. 돈을 버는 족족 빼앗기는 구조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성은 성매매로 돈을 벌 수 없다’고 결론짓는 일부 반성매매 페미니스트의 이념적 선언은 실질적인 저항을 위한 실태 파악에 방해가 된다. 내 생각에, 페미니즘이 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렇게 많이 빼앗길 정도로, 다 빼앗기고도 조금 남을 정도로 규모 있는 부가 여성으로부터 추출된다는 것.
평가 절하된 여성의 가치
트랜스 남성 스펙트럼에 속한 성노동자로서, 여자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나만큼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억누르고 여자 역할에서 추출되는 부를 이용하며 살아왔다. 돈이 없으면 머리카락을 기르고 화장을 하며 남자에게 돈을 얻었고, 돈이 생기면 머리카락을 깎고 맨얼굴로 최저시급 받는 일자리를 전전했다.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는 남자였다면 절대 돌파할 수 없었던 수준의 빈곤을 여자가 되어 성노동함으로써 극복해 냈다. 거주하던 고시원에 불이 나 홈리스가 되었던 시기, 나는 인생 최대의 성 거래인 결혼까지 했었다.
나에게는 아직 젠더 표현을 위해 가슴을 자를 돈이 없다. 그건 수술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가슴을 팔아 생계를 이을 가능성을 없애기엔 내가 너무 가난하다는 뜻이다. 여성성을 드러내는 내 신체 조건을 바꾸고 남성으로 성을 확정짓는 조치는 나에게 전 재산을 길바닥에 버리며 파산을 준비하는 기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나는 머리카락 길이와 화장, 가슴 정도를 언급했지만, 내가 경험한 ‘여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외모를 관리하는 행위 정도가 아니다. 여자란, 남자는 하지 않는 여러 노동에 속박된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경험한 여자란 특정한 노동을 항시적으로 강요받는 상태였다. ‘여성성’이라는 단어에 담긴 모든 것, 그 모든 것으로부터 24시간 퇴근할 수 없는 노동자가 된다는 감각이 내겐 곧 여자가 된다는 감각이었다. 내가 여자임을 의도하고 판매하는 동안 나는 ‘여자’라는 노동 상태가 몹시 비쌀 만하다는 배움을 얻었고, 여자가 지금보다 더 괜찮은 가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되었다. 평가 절하된 부분에서 착취와 약탈이 일어난다면, 과연 다수의 투자자가 여자를 제대로 재평가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것이 근본적이고 완전한 해결책은 될 수 없더라도 말이다.
부를 추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는 이유로 금융화되어 내 미래의 성노동 가능성까지 동원당하는 현실은 물론 힘들고 끔찍하다. 그러나 대안을 찾지 못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생명까지 조각내 파는 경험을 스스로 허용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 꼭 부채에 시달리느라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성노동자 권리 운동은 부채로 강제당한 성매매 피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빚이 없는 여자도 다양한 이유로 성산업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다. 성노동 현장에서 만나 온 의미 있는 수의 여자들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자영업 하는 사장이 되기 위해, 결혼 시장에 정상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부양 가족도 부채도 없이 성노동으로 ‘목돈’을 모으고 있었다. 페미니즘으로 부채를 읽듯이, 읽어 내야 할 무언가가 이 노동 현장에 남아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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