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에세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 | 최석우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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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

구례 ‘자라는공동체’의 이야기

 


최석우 guryejoa_joa@naver.com

전남 구례 자라는공동체 활동가, 초등 교사

 

 



“구례는 청년과 청소년이 살고 싶은 도시일까?”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대학 4년을 제외하고 평생을 구례에서 살았습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청소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이 꼭 10년 전, 학생이었던 제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언가 해 볼 기회를 주세요.”

“청소년들이 마음 편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손으로 축제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린 시절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왜 우리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어른은 없었을까. 왜 우리는 늘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었을까. 그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았고, 결국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봄, 청년 4명과 청소년 4명이 모였습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은 분명했습니다. 청소년이 행복한 구례, 청년이 돌아오는 구례를 만들어 보자. 그렇게 자라는공동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우리가 만든 것은 청소년 버스킹 행사 ‘젊은것들’이었습니다. 구례에서 처음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축제였습니다. 예산도 없었고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탑차를 무대로 쓰고 거리 바닥을 객석 삼았습니다. 지금 떠올리면 조금 무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경찰서 앞 로터리를 가득 채운 청소년들의 환호를 들으며 확신했습니다. 아, 우리가 제대로 시작했구나. 그날 이후 ‘젊은것들’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구례 청소년 문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더 나아졌고, 어느새 아이들이 먼저 기다리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기회는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 때 비로소 생긴다는 것.


행사를 마친 뒤에도 청소년들은 계속 말했습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우리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회 초년생 청년 4명이 보증금 1000만 원을 모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기보다 설렜습니다. 공간을 계약한 뒤 우리는 사용자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공간의 쓰임을 고민하고,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직접 공사했습니다. 청년들은 퇴근 후에, 청소년들은 주말마다 나와 망치와 드릴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유 공간 ‘거실’이 탄생했습니다. 이름에는 우리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가족이 하루를 마치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거실처럼, 이곳이 누군가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지금 거실은 구례에 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공부하러 오는 학생도 있고, 창업을 꿈꾸는 청년도 찾아옵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공간은 건물이 아니라 관계로 완성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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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유 공간 ‘거실’.



함께 놀고, 함께 도전하며 만들어 낸 변화

 

“구례는 심심하다.” 청년들의 이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크루 문화였습니다. 러닝 크루를 만들었고, 헬스 크루와 여행 크루도 이어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3km도 못 뛰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건강과 거리가 멀던 친구들이 바디 프로필을 찍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거창한 성공을 이루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함께 운동하고, 도전하고, 서로의 삶에 좋은 장면 하나씩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포트럭(potluck) 파티도 자주 열었습니다. 각자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고 친구를 소개하며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공동체가 되어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공동체는 특별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저녁 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자라는공동체’입니다.


자라는공동체를 하며 제 안에서 가장 크게 바뀐 시선이 있습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지역 사회의 시민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청소년이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할 때, 그는 지역의 미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참여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편 고향으로 돌아와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었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실을 팝업 스토어 공간으로 무료 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연습의 기회라도 있다면, 누군가는 다시 지역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는 구례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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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생일 파티. 우리들의 공간 안에 다정한 기억을 쌓아 갑니다.

 

 

작은 실험이 지역의 가능성이 되다

 

돌아보면 자라는공동체는 ‘사람, 공간, 시간’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활동은 청년과 청소년의 일상을 넘어 지역 교육과 문화까지 품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가능한가?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학교만으로 충분할까요? 그 질문은 결국 더 큰 연결로 이어졌습니다.


자라는공동체의 활동을 지켜본 학부모와 마을, 교육 주체들이 하나둘 마음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은 더 이상 학교만의 일이 아니라는 공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구례 교육연대 ‘이음’이 탄생했습니다. 자라는공동체가 씨앗이었다면, 이음은 숲을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둔 지역 교육 생태계를 함께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다시 확신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한 명의 교사가 아니라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연결된 존재입니다. 학교와 학부모, 마을이 서로 기대며 구례의 내일을 함께 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이 오늘이 되도록

 

저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구례는 청년과 청소년이 살고 싶은 도시인가? 예전의 저는 그 답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런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라는공동체는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닮은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저 무언가 해 보고 싶다는 작은 용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용기가 사람을 모았고, 사람이 공간을 만들었으며, 공간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문화는 지역의 교육과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구례 어디선가 청소년들이 새로운 축제를 상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창업을 꿈꾸고, 누군가는 거실에 모여 하루를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장면들을 바라보며 저는 확신합니다. 가능성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 그 길 위에 자라는공동체가 있었고, 이제는 이음이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믿습니다. 구례의 내일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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