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벌인 미술교육
김인규
전 중등 미술 교사,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
202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꿈의 스튜디오’❶ 시범 사업에 선정되어 4개월간의 미술교육 활동을 마무리했다. 내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은 충남 서천 장항초등학교에서 4년간 수업을 마친 지 대략 6개월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를 집필하여 출판하였고, 책을 들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나의 교육적인 관점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15년 넘게 미술 활동을 해 온 것은 나의 교육적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활동과 표현이 가진 보편성을 확인하였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자기표현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역설적으로 비장애인은 그리기에서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즉각적으로 그리기에 돌입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면서 망설이며 두려움에 떠는 비장애인들의 태도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꿈의 스튜디오는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였다. 활동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한 공간에서 모든 과정을 평등하게 함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발달장애 아동과 학습장애 아동을 포함한 7~9명 정도의 아이들로 구성된 초등학생 1개, 중학생 1개, 총 2개 반을 운영하였다.
공간 중심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달리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교사가 제시하는 과제 없이 공간과 재료가 아이들의 활동을 이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런 과제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처음부터 하고 싶은 대로 시작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 가는 과정을 가졌다. 그렇게 4개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아무런 과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내가 발달장애인과 오랜 세월 미술 활동을 하면서 가지게 된 태도였다. 과제를 제시할 경우 어려움을 겪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자유롭게 자기표현에 몰입하게 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냥 작가처럼 활동을 하였다. 나는 그런 방식과 태도를 비장애인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의 눈높이를 비장애인 아동에게도 적용하는 것이었다.
비장애 아동들은 과제를 제시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 대체로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할 수 있지만 회가 반복되면 ‘뭘 해야지?’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만 보내야겠다”며 불평하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활동의 목표를 설명하고 부모님들에게 믿고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가져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시작
비장애 아동을 어렵게 하는 것은 자신이 못 그린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뭘 해야 하지?” 묻는 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묻는 것이다. 머릿속에 어떤 그럴듯한 이미지가 떠오른 순간마저, 실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떠올린 것이다. 그러니 그리기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기의 두려움은 바로 거기에서 온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리기를 하며 그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자기를 표현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없게 된다. 그게 그리기의 본질이다. 그러다 보면 정말 작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비장애 아동들도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아이는 연필을 가지고 무언가를 그리려 하고 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자신이 그려 낼 만한 그럴듯한 이미지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다행히도 좀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얻었다. 끄적거리다가 X표를 치거나 그나마 왼쪽 하단의 이미지에 네모를 친 것은 그래도 그것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만족에 교사가 동의해 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는 끝내 연필을 놓아 버리고 말 것이다.
나의 과정은 그런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부러 더 실패하게 하거나 아예 그리지 않아도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문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풀려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린 아이의 소감을 보자.
해변을 그리려 했는데 팔레트가 없다 보니 백사장을 그린 곳에 어쩌다 초록색이 묻어 수습하려다가 할 수 없이 선인장으로 표현을 하였고, 완성하고 보니 사막처럼 보였다. 그게 좋아서 선인장을 완성하니 위에가 허전해서 구름까지 만들었다. 해변이 아니라 사막이 되었다. 그래서 사막화라고 이름을 정했다. 그림이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이 들어 좋았다.

팔레트가 없고 게다가 붓도 가급적 큰 것을 제공한 것은 나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는 애초에 자신이 그릴 만한 것으로 해변을 떠올렸지만, 그것은 실패하였고 그래서 우연히 사막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 아이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을 한다.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된 이미지로부터 이탈하면서 스스로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었다. 물론 바로 사막화라는 새로운 알리바이를 세워 되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분명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아이의 소감을 들어 보자. (흑백 사진이라 그림의 색과 느낌이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 온라인 게재본에는 색깔이 있는 원본 사진을 첨부하였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칠하다가 어두운 파랑이 심해 속처럼 보여서 심해처럼 표현해 보았다. 처음에는 막 칠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완성할수록 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든다.

아이가 작업실에 와서 그린 첫 그림이다. 아이는 교사의 지도를 잔뜩 기대하고 왔지만, 나는 “그냥 너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만 했다. 아이의 눈빛이 순간 막막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편하게 색만 칠해도 돼”라고 말했다. 아마도 아이는 그 말에서 과제를 찾았는지 모른다. 정말 아무렇게나 칠했고, 점차 거기서 심해를 발견한 것이다. 이때 아이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미 그 시선에 매이지 않은 시간이 가졌을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대개 그렇게 활동한다. 처음부터 타인의 시선에 잘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 ‘뭘 해야지?’에 매이지 않는다. 활동은 아무런 제약이 없이 즉각적으로 실행되고 그 순간을 향유한다. 어떤 아이는 그렇게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다. 기호화된 도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에 집착할지라도 거기에는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쾌락을 지속할 따름이다.
반면에 극단적인 상황도 있다. 전혀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상태이다. 무언가 하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충동에 휩싸인다. 연필을 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동의 밖으로 튀어 나가 버린다. 물감을 쥐어짜고 손으로 문지르다 엎어 버린다. 점토를 사정없이 주물러 잡아 뜯고 집어 던지고 입으로 가져가 먹어 버리기도 하며 결국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때는 그 행동을 붙잡아 매 줄 방도가 필요하다. 행위를 일정한 범위 안에 사로잡을 방도, 가지런하게 안정화될 방도 말이다.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방도 말이다.
스티커는 초기 단계에 이 아이를 묶어 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다니다가 문 앞에 섰을 때 스티커는 그를 문틀에 매어 주는 역할을 했다. 문에 있는 격자 모양은 아이가 스티커로 채워야만 하는 과제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 안을 채워 붙이는 일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사각 프레임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아이를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의 행동은 점차 안정화되고 침착해지면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교사는 재료를 바꿔 가며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면서 그런 반복적인 행동을 유지해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로잡힘과 풀려남은 미술 활동에서 양쪽 좌표를 형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타인의 시선이든, 도상이든, 사각 프레임이든 그 사로잡힘은 우리를 묶어 주고 안전하게 지켜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숨 막히게 하고 짓누를 수 있는 셈이다. 어느 지점에서 짓눌림과 풀려남이 교환되는지, 지켜짐이 지속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것은 교사와 아동, 그리고 재료와 공간이 함께 하는 상관관계인 셈이다. 이는 또한 내가 꿈의 스튜디오를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다.
나는 이번 미술 교실에서 더 큰 욕심이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활동하고 그것을 지속하면서 그리기를 일상화할 수 있는 지점까지 나아가고 싶었다.
다음은 중3 아이들의 마무리 소감이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머뭇거리고 아무런 주제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하라고 하는 말에 어떻게 할지 몰라 걱정되고 좀 무서운 기분도 들었는데 점점 하다 보니 그림을 조금 더 과감하게 그리게 됐고, 점점 불편했던 마음이 나아져 재밌게 참여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화지에 그저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술 강의처럼 하는 줄 알았으나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어서 흥미롭고 좋았다. 평소에는 써 보지 못했던 큰 캔버스에다가도 그려 보고 물감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은 초등 5학년 아이의 소감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였지요. 그런 저에게 이곳은 딱 안성맞춤이었어요. 단순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점토도 만들고 비싼 스프레이도 뿌려 보고 물감으로 색칠도 하고 엄마에게 혼이 나서 못 했던 벽에 그림 그리기도 해 봤어요. 매우 자유로워서 좋았어요. 제일 재밌었던 것은 물감으로 색칠하는 것이었어요. 흰 도화지에 내 생각을 추상적으로 그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캔버스에 하늘색을 칠했던 작품이에요. 푸른 하늘색이 시원시원하니 맑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여기 이곳에서 좋았던 점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자유도가 높았고 재료와 도구, 물감도 많아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매주 끝이 날 때 즈음, 간식이 있어 좋았어요. 처음에는 빵만 있다가 점점 다양해지니 정말 좋았어요.

다음은 초등 4학년 아이의 소감이다.
재밌다. 좋았다. 사랑한다. 즐겁다. 또 하고 싶다. 색깔 칠하고 싶다. 행복하다. 자유롭다. 예쁘다.
이번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획하면서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가벽은 아이들의 표현 충동을 자극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완충해 주는 효과를 지녔다는 점에서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감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 소리치고 펄쩍펄쩍 뛰어도 개의치 않고 활동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번 활동에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표현에서 출발하여 미술 표현을 즐길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미술교육의 보편적 토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❶ 예술가의 전문 작업실을 기반으로, 예술가와 함께 창작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경험하고 창의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시각예술교육 지원 사업.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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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벌인 미술교육
김인규
전 중등 미술 교사,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
202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꿈의 스튜디오’❶ 시범 사업에 선정되어 4개월간의 미술교육 활동을 마무리했다. 내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은 충남 서천 장항초등학교에서 4년간 수업을 마친 지 대략 6개월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를 집필하여 출판하였고, 책을 들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나의 교육적인 관점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15년 넘게 미술 활동을 해 온 것은 나의 교육적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활동과 표현이 가진 보편성을 확인하였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자기표현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역설적으로 비장애인은 그리기에서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었다. 즉각적으로 그리기에 돌입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면서 망설이며 두려움에 떠는 비장애인들의 태도를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꿈의 스튜디오는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였다. 활동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한 공간에서 모든 과정을 평등하게 함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발달장애 아동과 학습장애 아동을 포함한 7~9명 정도의 아이들로 구성된 초등학생 1개, 중학생 1개, 총 2개 반을 운영하였다.
공간 중심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달리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교사가 제시하는 과제 없이 공간과 재료가 아이들의 활동을 이끈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런 과제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처음부터 하고 싶은 대로 시작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 가는 과정을 가졌다. 그렇게 4개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아무런 과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내가 발달장애인과 오랜 세월 미술 활동을 하면서 가지게 된 태도였다. 과제를 제시할 경우 어려움을 겪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자유롭게 자기표현에 몰입하게 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냥 작가처럼 활동을 하였다. 나는 그런 방식과 태도를 비장애인들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발달장애인의 눈높이를 비장애인 아동에게도 적용하는 것이었다.
비장애 아동들은 과제를 제시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 대체로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할 수 있지만 회가 반복되면 ‘뭘 해야지?’ 하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만 보내야겠다”며 불평하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활동의 목표를 설명하고 부모님들에게 믿고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가져야만 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시작
비장애 아동을 어렵게 하는 것은 자신이 못 그린다는 생각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뭘 해야 하지?” 묻는 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묻는 것이다. 머릿속에 어떤 그럴듯한 이미지가 떠오른 순간마저, 실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떠올린 것이다. 그러니 그리기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기의 두려움은 바로 거기에서 온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리기를 하며 그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자기를 표현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없게 된다. 그게 그리기의 본질이다. 그러다 보면 정말 작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비장애 아동들도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아이는 연필을 가지고 무언가를 그리려 하고 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자신이 그려 낼 만한 그럴듯한 이미지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다행히도 좀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얻었다. 끄적거리다가 X표를 치거나 그나마 왼쪽 하단의 이미지에 네모를 친 것은 그래도 그것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자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만족에 교사가 동의해 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는 끝내 연필을 놓아 버리고 말 것이다.
나의 과정은 그런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부러 더 실패하게 하거나 아예 그리지 않아도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문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풀려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린 아이의 소감을 보자.
해변을 그리려 했는데 팔레트가 없다 보니 백사장을 그린 곳에 어쩌다 초록색이 묻어 수습하려다가 할 수 없이 선인장으로 표현을 하였고, 완성하고 보니 사막처럼 보였다. 그게 좋아서 선인장을 완성하니 위에가 허전해서 구름까지 만들었다. 해변이 아니라 사막이 되었다. 그래서 사막화라고 이름을 정했다. 그림이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이 들어 좋았다.
팔레트가 없고 게다가 붓도 가급적 큰 것을 제공한 것은 나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는 애초에 자신이 그릴 만한 것으로 해변을 떠올렸지만, 그것은 실패하였고 그래서 우연히 사막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 아이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을 한다. 타인의 시선이 내면화된 이미지로부터 이탈하면서 스스로 놀라운 경험을 한 것이었다. 물론 바로 사막화라는 새로운 알리바이를 세워 되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분명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아이의 소감을 들어 보자. (흑백 사진이라 그림의 색과 느낌이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 온라인 게재본에는 색깔이 있는 원본 사진을 첨부하였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칠하다가 어두운 파랑이 심해 속처럼 보여서 심해처럼 표현해 보았다. 처음에는 막 칠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는데 완성할수록 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든다.
아이가 작업실에 와서 그린 첫 그림이다. 아이는 교사의 지도를 잔뜩 기대하고 왔지만, 나는 “그냥 너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만 했다. 아이의 눈빛이 순간 막막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편하게 색만 칠해도 돼”라고 말했다. 아마도 아이는 그 말에서 과제를 찾았는지 모른다. 정말 아무렇게나 칠했고, 점차 거기서 심해를 발견한 것이다. 이때 아이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는 이미 그 시선에 매이지 않은 시간이 가졌을 것이다.
발달장애인들은 대개 그렇게 활동한다. 처음부터 타인의 시선에 잘 묶이지 않는다. 그래서 ‘뭘 해야지?’에 매이지 않는다. 활동은 아무런 제약이 없이 즉각적으로 실행되고 그 순간을 향유한다. 어떤 아이는 그렇게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다. 기호화된 도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에 집착할지라도 거기에는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쾌락을 지속할 따름이다.
반면에 극단적인 상황도 있다. 전혀 어느 것에도 묶이지 않는 상태이다. 무언가 하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충동에 휩싸인다. 연필을 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동의 밖으로 튀어 나가 버린다. 물감을 쥐어짜고 손으로 문지르다 엎어 버린다. 점토를 사정없이 주물러 잡아 뜯고 집어 던지고 입으로 가져가 먹어 버리기도 하며 결국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때는 그 행동을 붙잡아 매 줄 방도가 필요하다. 행위를 일정한 범위 안에 사로잡을 방도, 가지런하게 안정화될 방도 말이다.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방도 말이다.
스티커는 초기 단계에 이 아이를 묶어 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어다니다가 문 앞에 섰을 때 스티커는 그를 문틀에 매어 주는 역할을 했다. 문에 있는 격자 모양은 아이가 스티커로 채워야만 하는 과제로 인식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 안을 채워 붙이는 일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사각 프레임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아이를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의 행동은 점차 안정화되고 침착해지면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교사는 재료를 바꿔 가며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면서 그런 반복적인 행동을 유지해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로잡힘과 풀려남은 미술 활동에서 양쪽 좌표를 형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타인의 시선이든, 도상이든, 사각 프레임이든 그 사로잡힘은 우리를 묶어 주고 안전하게 지켜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숨 막히게 하고 짓누를 수 있는 셈이다. 어느 지점에서 짓눌림과 풀려남이 교환되는지, 지켜짐이 지속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것은 교사와 아동, 그리고 재료와 공간이 함께 하는 상관관계인 셈이다. 이는 또한 내가 꿈의 스튜디오를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다.
나는 이번 미술 교실에서 더 큰 욕심이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활동하고 그것을 지속하면서 그리기를 일상화할 수 있는 지점까지 나아가고 싶었다.
다음은 중3 아이들의 마무리 소감이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머뭇거리고 아무런 주제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하라고 하는 말에 어떻게 할지 몰라 걱정되고 좀 무서운 기분도 들었는데 점점 하다 보니 그림을 조금 더 과감하게 그리게 됐고, 점점 불편했던 마음이 나아져 재밌게 참여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화지에 그저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술 강의처럼 하는 줄 알았으나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어서 흥미롭고 좋았다. 평소에는 써 보지 못했던 큰 캔버스에다가도 그려 보고 물감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은 초등 5학년 아이의 소감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였지요. 그런 저에게 이곳은 딱 안성맞춤이었어요. 단순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점토도 만들고 비싼 스프레이도 뿌려 보고 물감으로 색칠도 하고 엄마에게 혼이 나서 못 했던 벽에 그림 그리기도 해 봤어요. 매우 자유로워서 좋았어요. 제일 재밌었던 것은 물감으로 색칠하는 것이었어요. 흰 도화지에 내 생각을 추상적으로 그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캔버스에 하늘색을 칠했던 작품이에요. 푸른 하늘색이 시원시원하니 맑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았으니까요. 여기 이곳에서 좋았던 점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자유도가 높았고 재료와 도구, 물감도 많아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매주 끝이 날 때 즈음, 간식이 있어 좋았어요. 처음에는 빵만 있다가 점점 다양해지니 정말 좋았어요.
다음은 초등 4학년 아이의 소감이다.
재밌다. 좋았다. 사랑한다. 즐겁다. 또 하고 싶다. 색깔 칠하고 싶다. 행복하다. 자유롭다. 예쁘다.
이번 활동의 또 다른 특징은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획하면서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가벽은 아이들의 표현 충동을 자극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완충해 주는 효과를 지녔다는 점에서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감을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 소리치고 펄쩍펄쩍 뛰어도 개의치 않고 활동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번 활동에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표현에서 출발하여 미술 표현을 즐길 수 있음을 확인하였고, 미술교육의 보편적 토대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❶ 예술가의 전문 작업실을 기반으로, 예술가와 함께 창작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경험하고 창의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시각예술교육 지원 사업.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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