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와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의 실제
이혁규 lhk97@cje.ac.kr
전 청주교대 총장
우리나라의 국가교육위원회는 일반인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조직이다. 2021년 7월 20일, 「국가교육위원회법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교육위원회법)이 제정되었고, 1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7월 2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법의 목적(제1조)에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교육 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는 “교육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일 것이다. 한국법령정보센터에 게재돼 있는 법 제정 이유를 보면 이를 좀 더 분명하게 부연 설명하고 있다.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 정책은 장기적 비전 없이 5년 임기 내 성과 창출을 위한 단기적 정책 추진으로 정책 결정이 교육 현장과 괴리되고 일관성이 미흡하다는 국민 여론이 60퍼센트에 이르고 있고(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여론 조사, ’20. 1.), 민주주의 성숙으로 시민 참여 요구가 폭증하고 있는데 소수의 교육 전문가와 관료 중심의 하향식 정책 결정 방식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음. 이에 초정권적인 독립적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하향식 정책 추진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것임.
정권에 따라 자주 바뀌는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추진 관행을 바꾸기 위해, 초정권적인 독립 기구를 설치하여 하향식 정책 추진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 때 핀란드를 주요 참조 모델로 하였다는 주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어떤 기구이며, 어떤 일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을까?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하는 일
우리❶를 따뜻하게 맞이한 인사는 국가교육위원회 선임자문위원(Senior Adviser)으로 일하는 테이요 콜요넨(Teijo Koljonen, 이하 테이요)이었다. 그는 과학과 수학을 담당하는 교사로 10년간 교직에 있었고, 이후 부교장으로도 근무했다. 그 뒤 이 기관의 채용 공고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후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장으로 7년간 일한 뒤, 현재는 이 기관으로 복귀해 6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기관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파워포인트 자료를 중심으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과 주요 업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기관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 행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교육부로, 국가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필요한 경우 법률을 준비하고 개정합니다. 또한 교육부는 국가 예산의 틀 안에서 국가 재정 지원을 총괄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Fin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입니다. 우리는 국가 차원의 교육 개발 기관으로, 교육부가 결정한 정책을 실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주요 책임은 유아교육부터 일반 고등학교,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 전반의 국가 교육과정과 자격 기준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또한 학습자에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상급중등으로 진학할 때, 또는 상급중등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 사용하는 전자 전형 시스템을 관리합니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긴 하지만, 입학 결정은 대학이 하고 우리는 실무적 절차를 관리합니다.
또한 일부 교수·학습 자료도 제작합니다. 대부분의 고품질 교재는 민간 출판사가 제공하지만, 학생 수가 매우 적은 과목의 경우에는 우리 기관이 직접 교재를 제공합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교육문화부를 ‘첫 번째 단계’, 국가교육위원회를 ‘두 번째 단계’로 구분해 설명한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구분이 아니라, 교육 정책의 결정과 실행이 어떤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설명으로 이해되었다. 그다음 단계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위치한다고 했다.
이 기관의 역할을 정리해 보면, 교육과정 개발과 국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설계, 고등학교 졸업 학력시험 운영 지원, 직업교육 개혁과 자격 체계 관리, 교사 연수 및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 운영, 교육 자료 개발,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국제 교육 협력 등 그 범위가 매우 폭넓다. 이러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언제, 어떤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는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고, 나는 그에게 이 기관이 언제 설립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1850년에 기원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테이요의 답변을 듣고, 이 기관이 매우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현 EDUFI)의 기원은 1850년대, 핀란드가 근대 국가로 전환하던 시기에 등장한 초기 중앙 교육 행정 조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규
이 기관은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테이요
우리 기관의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장 초기 형태는 18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은 발전했고, 담당 영역도 확대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직업교육(VET)과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이 서로 다른 기관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이 두 기관은 1970년대에 통합되었고, 1990년대에는 기관의 명칭이 바뀌었으며 몇몇 부서가 지금의 기관에 편입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위원회(Matriculation Examination Board)와 핀란드 교육평가센터(FINEEC)가 현재 우리가 속한 조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현수
그렇다면 이 조직의 초기 역사는 근대 교육의 시작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군요?
테이요
맞습니다. 핀란드가 근대 교육 제도를 도입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현수
핀란드 교육 체계와 교육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귀 기관이 매우 긴 역사를 가진 기관이라는 점이 종종 강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테이요
맞습니다. 우리는 교육문화부(Ministry of Education)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며,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있습니다.
1850년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지만, 대공국(Grand Duchy)으로서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핀란드가 독자적인 교육 제도와 교육 행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조건을 제공했다. 특히 루터교 전통에서 비롯된 “모든 시민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강한 사회적 요구는 국가가 교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분명히 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화 초기 단계로 이행하던 당시의 사회적 변화는 기초교육의 확장, 교사 양성, 직업교육의 체계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전면에 떠오르게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형성된 1850년대의 중앙 교육 행정 조직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위원회’는 아니었지만, 근대 교육 제도를 조정하고 지원하는 최초의 국가 차원의 교육 행정 기구로 기능했다.
이 조직은 이후 제도적 변화를 거치며 오늘날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기반을 형성하였다. 1850년대에 등장한 이 중앙 교육 행정 조직은 근대화를 시작하던 핀란드가 국가적 문해 기반을 확립하고 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구축한 최초의 교육 행정 플랫폼이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오늘날의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제도적 형태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한 역할
위의 대화 마지막 부분을 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문화부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며 상시적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두 기관의 협력은 3년 주기의 협약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상당히 평등한 파트너십이 형성된다.
현수
3년 주기로 협약을 체결한다고 들었습니다.
테이요
네, 맞습니다. 3년 주기 협약(three-year agreements)이 체결됩니다. 이 협약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범위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명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당한 자율성(autonomy)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협약에는 수행해야 할 일반적인 과제, 추진해야 할 주제, 그리고 실행해야 할 각종 개발 사업 및 프로그램이 포함됩니다. 동시에 매년 반복되는 상시 업무들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 시스템 운영, 연수 조직, 교사용 교육 자료 제작 등이 매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지방자치단체·학교·교사·산업계를 연결하는 협력 기반 교육 행정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❷ 이는 핀란드 교육 정책이 명령과 통제가 아니라 공동 설계(co-design)를 핵심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과정, 직업교육, 교사 연수, 평가 등 주요 정책을 교사와 현장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산업계와 함께 설계해 왔으며,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이 기관은 관리·감독보다는 지원과 조정을 핵심 기능으로 삼고, 현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구조를 유지한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핀란드 교육의 핵심 가치인 신뢰, 분권, 수평적 협력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핀란드 교육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상징이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교육을 만들어 가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임무, 교육과정 개발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행하는 여러 업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임무는 무엇일까? 테이요는 국가 교육과정의 개발과 관리가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하였다.
현수
현직 교사 연수에 대한 재정 지원은 이 조직의 핵심 업무에 포함되는 것인가요?
테이요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연수에 대한 재정 지원이 우리 기관의 핵심 임무는 아닙니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국가 교육과정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상급중등교육, 직업교육,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 단계의 교육과정을 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관의 핵심 업무입니다. 교육과정과 관련된 많은 과제들이 여기에 수반됩니다. (……) 결국 위원회의 거의 모든 업무는 교육과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테이요는 위원회에서 수행하는 많은 일이 교육과정 관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가교육과정 개발 과정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실제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테이요
최종 교육과정 문서가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누구에게도 ‘갑작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과정 안에 참여해 있었고 의견을 제시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 개발에는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며, 이 과정에서 일종의 합의가 형성됩니다. 이는 특히 초등 및 하급중등교육을 포함하는 기초교육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약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합니다. 가장 최근의 국가 교육과정은 2014년에 만들어졌고, 앞으로 몇 주 후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새 정부가 새로운 국가 교육과정 개발 계획을 포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부분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교육과정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도 일부 내용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교육과정 개혁은 전체 교육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국가 교육과정은 모든 지역의 교육에서 평등하고 높은 질을 유지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과정 개발 과정은 한국에 비해 훨씬 분권적이다. 국가는 전체적인 방향과 큰 틀만 제시하고, 세부 내용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 정부가 자체 교육과정을 통해 구체화한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교육과정이 분권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지역과 학교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학생 개인의 학습 경로에까지 도달한다. 학생 수준에서도 개인화된 학습 계획(personalised study plan)이 마련된다. 핀란드의 의무교육에서는 전체 학생의 약 15%가 국가 공통 교육과정을 개인의 필요, 능력, 목표에 맞게 조정한 개별 학습 계획을 적용받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교사, 진로 상담 교사(guidance counsellor), 학부모,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전문 인력들이 함께 협력하여 수립되며, 학습 경로가 포용적이고 지원적으로 설계되도록 한다. 이 계획에는 이수 과목, 학습 방법, 지원 서비스, 평가 방식 등이 명시되며, 학생의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개인화된 학습 계획은 의무교육 단계에서 형평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모든 학생이 자신의 학습과 발달을 가장 잘 지원받을 수 있는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분권화된 체계에서 지방 정부가 지닌 자율적 권한에 관해 테이요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핀란드는 많은 권한을 지방 정부에 위임하는 분권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지방 정부는 지역의 주요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 지역 교육과정(local curriculum)을 개발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은 지역 교육과정이 따라야 할 기본적인 틀이며, 지방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자기 지역의 교육과정을 구성합니다.
또한 지방 정부는 국가로부터 받은 예산의 배분 방식(allocation), 학교 수의 유지 여부, 학급 규모 등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항은 지방 정부가 직접 결정합니다. 교사 고용과 교사 평가 역시 지방 정부의 책임입니다.”
핀란드는 고도로 분권화된 교육 체제를 갖고 있다. 국가–지역–학교로 이어지는 삼중 구조 속에서 각 단계는 실질적인 자율성을 지닌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해 국가 차원의 강제 규제가 없고, 권고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방 정부는 지역의 특성, 예산 여건, 학생 수 등을 고려해 학급 규모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처럼 합의에 기반해 개발된 교육과정의 질 관리는 교육평가센터(FINEEC)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평가 결과는 교육과정의 부분적 수정과 개선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보장되는 안정성
국가교육위원회는 약 400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조직을 살펴보면 초·중등교육, 상급중등교육, 직업교육, 성인교육 부서, 국제 업무 부서, 행정·ICT 부서, 미디어·홍보 부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관장인 총괄 국장(General Director)은 정부가 임명하지만, 정부가 바뀌어도 전문 관료(civil servants)는 계속 근무한다. 이에 따라 정책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된다. 직원 상당수는 전직 교사, 전직 교장, 연구자(박사 학위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 이해도가 높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우파 정부에서 좌파 정부로 정권이 바뀌어도 주요 정책이나 과제의 큰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수
총괄 국장은 국무회의나 총리가 임명하나요? 그런데 정부가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테이요
네, 맞습니다. 그 이유는 임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공무원은 동일한 직무를 계속 수행합니다. 저는 이것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각 장관은 자신이 중점을 두고 싶은 우선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고 대체로 소규모 우선 과제가 추가되는 정도에 그칩니다.
현수
이전 정부는 보수당과 우파 정당들이 포함된 3당 연정이었고, 당시 교육부 장관은 보수당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이끄는 중도좌파 연합이며 교육부 장관은 좌파연합 출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테이요
네, 저는 그것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좌든 우든, 모두가 교육의 큰 그림과 광범위한 방향에 합의하고 있기 때문에, 장관은 몇 가지 사안을 추가할 수는 있어도 전체 정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핀란드라고 정권 교체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담당자들은 그러한 변화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는 느끼지 않고 있었다.
교원연수 프로그램 지원 등
교원 전문성 개발을 위한 역할
대화를 나누면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원 전문성 개발과 관련된 연수 지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핀란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야리
학교와 교사들이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연수에 참여할지는 지역 단위에서 결정합니다. 지역 행정은 교사들의 연수 참여 시기와 빈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교사의 급여와 근무 시간은 단체협약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협약에는 교사가 매 학년 3일의 연수 또는 계획 활동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가 개학하기 전에 교사들이 1~2일 먼저 출근하여 학교 운영 계획을 세우는데, 이 기간 역시 연수 의무일 3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일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이 중 1~2일이 계획 업무로 쓰이면 실질적인 연수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교사에게 연 60시간의 연수를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핀란드의 연 3일 연수는 많다고 보기 어렵다. 예비 교사 교육 단계에서는 석사 수준의 교사 자격을 처음부터 요구하는 등 세계적 모범으로 평가받지만, 현직 교사 연수 측면에서는 다른 나라를 선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핀란드 내부에서도 현직 교사 연수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가 국가와 지방 차원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원 연수를 직접 제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수 계획 수립, 공모 운영, 예산 배분, 품질 관리 등 연수 체계 전반을 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콜요넨은 연수 운영을 “주로 공모(open call)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연수 운영 방식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인상적인 차이로 다가왔다.
테이요
연수는 매년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이 과정은 공모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공모는 약 4~6주 동안 이루어지며, 연수 주제, 자금 사용 규정, 제약 조건 등이 포함된 안내문이 함께 제공됩니다. 기관들은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 신청서는 전자 시스템을 통해 검토·평가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신청서들이 최종적으로 재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됩니다.기관들은 신청 시 연수 운영을 위한 예산 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매년 약 20,000~25,000명이 이러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연수를 주관하는 기관은 종료 후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보고서에는 연수 진행 상황, 사용된 예산, 참여자 수 등이 포함됩니다.지원금 규모는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적게 지원된 프로젝트는 13,500유로, 가장 많이 지원된 프로젝트는 거의 50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각 기관은 약 65,000유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민간 기업도 지원 신청이 가능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통한 이윤 창출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뿐 아니라 영리 기업이라도, 정부 지원금으로는 어떠한 수익도 발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자면,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약 1억 5000만 유로 규모의 예산을 바탕으로 매년 다양한 주제를 설정해 공모 방식으로 연수 운영 기관을 선정·지원한다. 선정 비율은 약 40% 수준이라고 한다. 공모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지방자치단체, 대학, 비영리단체, 전문 민간 기업 등 매우 다양하며, 민간 기업이라 하더라도 연수 운영 과정에서 영리를 추구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가 교원 연수의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하면서도, 연수 운영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 기관
교육과정 개발과 교원 전문성 개발에 대한 논의를 넘어,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핀란드 교육에서 ‘학교교육 발전을 위한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 기관’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단순한 중앙 행정기관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산업계가 함께 교육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협력적 거버넌스 구조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핀란드의 정책 설계 방식은 중앙 정부가 세부 실행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위계적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동 설계의 원리를 토대로 운영된다. 이와 관련해 테이요는 “우리는 정책을 위에서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책은 행정 내부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문화부의 관계 역시 단순한 보고 체계를 넘어, 정책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역할 분담에 기초한 상시적 협력 관계에 가깝다. 테이요는 “우리는 교육문화부와 거의 매일 연락합니다. 이것은 보고 관계라기보다 협력 관계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문화부가 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과 결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그 결정과 지침을 바탕으로 실제 정책을 구현하고 발전시키는 개발·집행 중심의 전문 기관(development office, expert office)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교육문화부가 결정하지만,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판단한다.핀란드의 3년 주기 협약 체계 역시 ‘무엇을 하달할 것인가’를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과제를 함께 추진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단순한 정책 집행 기관을 넘어, 전문적 판단과 축적된 현장 지식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공동 생산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정책–연구–현장을 연결하는 다층적 협력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교사 연수 지원, 교육 자료 개발, 직업교육 개편,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등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업무 대부분은 현장과의 상시적 소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테이요가 “정책은 현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야리 역시 “교사 연수도 국가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이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연구 지향성과 증거 기반 지식을 정책 결정과 실행 전반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 개혁 사업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교육 시스템의 발전 과제를 탐색하고 혁신을 위한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조정·지원한다. 국제적으로는 에라스무스+(Erasmus+)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이동성과 협력을 촉진하고, 국내적으로는 평생학습 경로와 성인교육의 기회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핀란드 교육 체계 전반에 걸쳐 일관성, 형평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차원의 정책과 지역 수준의 실행, 그리고 국제적 연계를 잇는 가교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핀란드 교육의 핵심 가치인 신뢰, 자율성, 수평적 협력의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동시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왜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적 기관으로 평가받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 개선 방향을 생각하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을 살펴본 뒤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여러 고민이 떠오른다. 나는 국가교육위원회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에서 2023년 1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중장기 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원래 위원의 임기는 2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기 전문위원 전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전문위원회 내부의 의견 대립이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초정권적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였지만,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위원회보다 갈등이 잦았고, 합의를 만들어 내는 구조로 작동하지 못했다. 전문위원 선정이 이른바 ‘보수–진보 균형 배분’ 방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서로 다른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모여 숙의보다는 충돌이 반복되는 장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국가교육위원회법을 제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진실·주현준(2021)은 〈핀란드와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비교 연구〉에서 정치적 중립성, 법적 독립성, 민주성, 일관성 등의 기준으로 양국의 법률안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핀란드식 모델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우리 위원회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주요 권한이 대통령에게 위임되어 있으며, 다양한 정책 주체의 참여가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고, 단기간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핵심적인 한계로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제안-위원 공개 모집, 법률안의 구체화, 구성원 정수의 명확화, 사회적 합의의 실효성 제고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와 제안들은 실제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내가 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크게 느낀 문제 역시 위원 구성 방식의 구조적 취약성이었다. 전체 21명의 전문위원 가운데 국회 추천 9명, 대통령 지명 5명이라는 구성 방식은 정권 변화나 국회 다수당의 변화에 따라 위원회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초당적 합의를 추구해야 할 위원회가 오히려 정치적 대립이 증폭되는 공간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적 제약이다. 내가 참여한 전문위원회 역시 상위 위원회의 구성 원리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이른바 ‘대표 선수’들이 참여하는 구조가 되었고, 그 결과 정파적 대립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국내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다. 핀란드에서는 교육문화부가 포괄적인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를 토대로 세부 실행과 개발을 담당하는 구조인 반면, 한국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중장기 계획과 국가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교육부가 이를 집행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핀란드가 수평적 협약을 통해 상하 관계의 경직성을 완화한다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교육부의 실질적 ‘머리’ 기능을 국가교육위원회로 이전하면서, 위원회가 교육부의 상위 조직처럼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 설정은 두 기관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설령 원활하게 작동하더라도 관료주의의 계층을 하나 더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제도가 잘못 작동할 경우, 기관 간 협력 부재로 인해 의사결정이 교착 상태에 빠질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핀란드는 높은 사회적 신뢰와 협치 문화라는 토대 위에서 교육문화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을 이루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신뢰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부의 중장기 기획과 교육과정 권한을 분리해 국가교육위원회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 왔다. 이는 협치 문화를 전제로 한 제도를, 협치의 사회적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조건에서 도입한 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핀란드 모델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토양을 깊이 성찰한 위에서 현재의 제도를 재검토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창조적 변형과 제도적 재설계를 모색하는 일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축적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형식보다도 그것이 작동하는 구조와 관계, 그리고 신뢰의 조건을 다시 묻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보론 :
최근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둘러싼 논란
앞서 소개한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점은 산나 마린 정부가 집권하던 2023년 3월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지금, 핀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온 핀란드는 안보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며 2023년 나토(NATO)에 가입했고, 전쟁의 여파와 더불어 재집권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해 경제 전반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르포(Petteri Orpo)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 연합 정부는 사회 전반에 걸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구조뿐 아니라 복지 모델과 교육 재정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긴축 재정 기조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협치와 협력 거버넌스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국가교육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교육문화부로 이전하는 방안이 예산 절감 목록에 포함되었고, 관련 법안이 2026년을 목표로 제안되었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으로 알려진 ‘핀란드인당(Finns Party, Perussuomalaiset)’은 핀란드에서 포퓰리즘적 급진우파 정당으로 널리 인식된다. 이 정당은 ‘평범한 핀란드인’을 대변한다는 담론을 통해 엘리트와 EU 관료주의, 글로벌리즘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민·다문화·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급진우파적 입장을 강화해 왔다. 2011년 총선에서 급부상했으나, 이후 선거에서 부침을 겪으며 유럽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정치적 변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핀란드인당은 최근의 교육 정책 흐름-PISA 성취도 하락, 개방형 교실 운영,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허용,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 통합교육 정책(inclusion policy) 등-을 문제 삼으며, 그 책임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돌리고 있다. 교육의 성과와 질에 대한 불만이, 교육 거버넌스 구조 전반에 대한 정치적 문제 제기로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2026년 예산의 최종안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 폐지안이 제외되었으나, 이를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교육 정책의 성과와 책임 소재, 그리고 국가 차원의 교육 거버넌스 구조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야리는 이메일을 통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보내 주었다.
핀란드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국방비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교육 부문 전반에 걸쳐 긴축 조치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원 현직 연수에 대한 예산 삭감과 학교 자원의 축소는, 특히 이미 인구 감소로 학교 폐쇄를 겪고 있는 농촌 지방자치단체에서, 핀란드 교육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형평성 원칙을 약화시킬 위험이 큽니다.
정부는 긴축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군사 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가 예산 감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군사비는 2029년까지 GDP의 3% 수준으로 증액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반면, 다른 공공 부문은 지속적인 축소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핀란드 복지 국가 모델의 지속 가능성과 교육 체제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원 현직 연수를 위한 모든 재원을 삭감하여,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교사의 전문적 학습과 성장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교사 학습을 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삼아 왔던 핀란드 교육 체제에서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교수·학습 혁신은 물론 지역 간 형평성까지 잠식할 위험이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 구조 변화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출산율 감소와 도시로의 인구 이동으로 인해 많은 농촌 지방자치단체에는 소수의 아동만 남게 되었고, 그 결과 학교 수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거주 지역과 무관하게 양질의 교육 접근을 보장한다는 형평성 원칙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점점 더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시각에서 볼 때, 국방 예산의 증대와 교육 재원의 축소 사이의 대비는 매우 선명합니다. 국가교육위원회 폐지를 둘러싼 논쟁과 교원 현직 연수 예산의 전면 삭감은, 핀란드 교육을 지탱해 온 협력적 교육 모델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인구 감소와 농촌 지역의 학교 폐쇄가 겹치면서, 수십 년간 핀란드 교육을 규정해 온 형평성 원칙은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은, 협치와 신뢰를 전제로 구축된 제도라 하더라도 정치·안보·재정 환경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는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상대적으로 이제 막 출범한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가 어떤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인가를 성찰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비교 사례이다. 제도의 형식이나 권한 배분만이 아니라, 재정 우선순위, 정치적 책임 구조, 그리고 협치 거버넌스를 실제로 지탱하는 사회적 합의와 신뢰의 조건을 함께 묻지 않는다면,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언제든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❶ 방문 시기는 2023년 3월이며, 한국 측 방문자는 나, 김종우(전 교원대 총장), 서현수(교원대 교수)이고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야리 라보넨 교수가 동행해 주었다.
❷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EDUFI)는 교육문화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넘어서는 폭넓은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된다. 이 기관은 외교부(Ministry for Foreign Affairs)와 협력하여 핀란드의 글로벌 교육 및 개발 협력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으며, 에라스무스+(Erasmus+)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연합(EU)과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도 협력하면서 국제 이동성과 정책 정합성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차원에서는 핀란드 교원노동조합(OAJ)과 협력하여 교사들의 목소리와 전문적 관점이 교육 정책과 실천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Education Finland와 Business Finland와의 협력을 통해 핀란드의 교육 전문성을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교육 수출 분야에서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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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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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와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의 실제
이혁규 lhk97@cje.ac.kr
전 청주교대 총장
우리나라의 국가교육위원회는 일반인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조직이다. 2021년 7월 20일, 「국가교육위원회법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교육위원회법)이 제정되었고, 1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7월 2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법의 목적(제1조)에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교육 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는 “교육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일 것이다. 한국법령정보센터에 게재돼 있는 법 제정 이유를 보면 이를 좀 더 분명하게 부연 설명하고 있다.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 정책은 장기적 비전 없이 5년 임기 내 성과 창출을 위한 단기적 정책 추진으로 정책 결정이 교육 현장과 괴리되고 일관성이 미흡하다는 국민 여론이 60퍼센트에 이르고 있고(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여론 조사, ’20. 1.), 민주주의 성숙으로 시민 참여 요구가 폭증하고 있는데 소수의 교육 전문가와 관료 중심의 하향식 정책 결정 방식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음. 이에 초정권적인 독립적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하향식 정책 추진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것임.
정권에 따라 자주 바뀌는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추진 관행을 바꾸기 위해, 초정권적인 독립 기구를 설치하여 하향식 정책 추진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 때 핀란드를 주요 참조 모델로 하였다는 주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어떤 기구이며, 어떤 일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을까?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하는 일
우리❶를 따뜻하게 맞이한 인사는 국가교육위원회 선임자문위원(Senior Adviser)으로 일하는 테이요 콜요넨(Teijo Koljonen, 이하 테이요)이었다. 그는 과학과 수학을 담당하는 교사로 10년간 교직에 있었고, 이후 부교장으로도 근무했다. 그 뒤 이 기관의 채용 공고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국가교육위원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후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장으로 7년간 일한 뒤, 현재는 이 기관으로 복귀해 6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기관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파워포인트 자료를 중심으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과 주요 업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기관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 행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교육부로, 국가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필요한 경우 법률을 준비하고 개정합니다. 또한 교육부는 국가 예산의 틀 안에서 국가 재정 지원을 총괄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Finnish National Agency for Education)입니다. 우리는 국가 차원의 교육 개발 기관으로, 교육부가 결정한 정책을 실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주요 책임은 유아교육부터 일반 고등학교,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 전반의 국가 교육과정과 자격 기준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또한 학습자에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중학교에서 상급중등으로 진학할 때, 또는 상급중등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 사용하는 전자 전형 시스템을 관리합니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긴 하지만, 입학 결정은 대학이 하고 우리는 실무적 절차를 관리합니다.
또한 일부 교수·학습 자료도 제작합니다. 대부분의 고품질 교재는 민간 출판사가 제공하지만, 학생 수가 매우 적은 과목의 경우에는 우리 기관이 직접 교재를 제공합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교육문화부를 ‘첫 번째 단계’, 국가교육위원회를 ‘두 번째 단계’로 구분해 설명한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구분이 아니라, 교육 정책의 결정과 실행이 어떤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설명으로 이해되었다. 그다음 단계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위치한다고 했다.
이 기관의 역할을 정리해 보면, 교육과정 개발과 국가 교육과정 프레임워크 설계, 고등학교 졸업 학력시험 운영 지원, 직업교육 개혁과 자격 체계 관리, 교사 연수 및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 운영, 교육 자료 개발,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국제 교육 협력 등 그 범위가 매우 폭넓다. 이러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언제, 어떤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는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고, 나는 그에게 이 기관이 언제 설립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1850년에 기원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
테이요의 답변을 듣고, 이 기관이 매우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현 EDUFI)의 기원은 1850년대, 핀란드가 근대 국가로 전환하던 시기에 등장한 초기 중앙 교육 행정 조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규
이 기관은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테이요
우리 기관의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장 초기 형태는 18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은 발전했고, 담당 영역도 확대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직업교육(VET)과 일반교육(general education)이 서로 다른 기관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이 두 기관은 1970년대에 통합되었고, 1990년대에는 기관의 명칭이 바뀌었으며 몇몇 부서가 지금의 기관에 편입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위원회(Matriculation Examination Board)와 핀란드 교육평가센터(FINEEC)가 현재 우리가 속한 조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현수
그렇다면 이 조직의 초기 역사는 근대 교육의 시작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군요?
테이요
맞습니다. 핀란드가 근대 교육 제도를 도입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현수
핀란드 교육 체계와 교육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귀 기관이 매우 긴 역사를 가진 기관이라는 점이 종종 강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테이요
맞습니다. 우리는 교육문화부(Ministry of Education)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며, 거의 매일 연락하고 있습니다.
1850년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지만, 대공국(Grand Duchy)으로서 상당한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핀란드가 독자적인 교육 제도와 교육 행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조건을 제공했다. 특히 루터교 전통에서 비롯된 “모든 시민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강한 사회적 요구는 국가가 교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분명히 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화 초기 단계로 이행하던 당시의 사회적 변화는 기초교육의 확장, 교사 양성, 직업교육의 체계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전면에 떠오르게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형성된 1850년대의 중앙 교육 행정 조직은 비록 현대적 의미의 ‘위원회’는 아니었지만, 근대 교육 제도를 조정하고 지원하는 최초의 국가 차원의 교육 행정 기구로 기능했다.
이 조직은 이후 제도적 변화를 거치며 오늘날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기반을 형성하였다. 1850년대에 등장한 이 중앙 교육 행정 조직은 근대화를 시작하던 핀란드가 국가적 문해 기반을 확립하고 산업 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구축한 최초의 교육 행정 플랫폼이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오늘날의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제도적 형태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한 역할
위의 대화 마지막 부분을 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문화부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며 상시적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두 기관의 협력은 3년 주기의 협약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상당히 평등한 파트너십이 형성된다.
현수
3년 주기로 협약을 체결한다고 들었습니다.
테이요
네, 맞습니다. 3년 주기 협약(three-year agreements)이 체결됩니다. 이 협약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범위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명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당한 자율성(autonomy)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협약에는 수행해야 할 일반적인 과제, 추진해야 할 주제, 그리고 실행해야 할 각종 개발 사업 및 프로그램이 포함됩니다. 동시에 매년 반복되는 상시 업무들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전형 시스템 운영, 연수 조직, 교사용 교육 자료 제작 등이 매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지방자치단체·학교·교사·산업계를 연결하는 협력 기반 교육 행정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❷ 이는 핀란드 교육 정책이 명령과 통제가 아니라 공동 설계(co-design)를 핵심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과정, 직업교육, 교사 연수, 평가 등 주요 정책을 교사와 현장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산업계와 함께 설계해 왔으며,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이 기관은 관리·감독보다는 지원과 조정을 핵심 기능으로 삼고, 현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구조를 유지한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핀란드 교육의 핵심 가치인 신뢰, 분권, 수평적 협력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핀란드 교육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상징이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교육을 만들어 가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임무, 교육과정 개발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행하는 여러 업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임무는 무엇일까? 테이요는 국가 교육과정의 개발과 관리가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하였다.
현수
현직 교사 연수에 대한 재정 지원은 이 조직의 핵심 업무에 포함되는 것인가요?
테이요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연수에 대한 재정 지원이 우리 기관의 핵심 임무는 아닙니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국가 교육과정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상급중등교육, 직업교육,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 단계의 교육과정을 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관의 핵심 업무입니다. 교육과정과 관련된 많은 과제들이 여기에 수반됩니다. (……) 결국 위원회의 거의 모든 업무는 교육과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테이요는 위원회에서 수행하는 많은 일이 교육과정 관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가교육과정 개발 과정에는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실제 개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테이요
최종 교육과정 문서가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누구에게도 ‘갑작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과정 안에 참여해 있었고 의견을 제시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 개발에는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며, 이 과정에서 일종의 합의가 형성됩니다. 이는 특히 초등 및 하급중등교육을 포함하는 기초교육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약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합니다. 가장 최근의 국가 교육과정은 2014년에 만들어졌고, 앞으로 몇 주 후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새 정부가 새로운 국가 교육과정 개발 계획을 포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부분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상태이며, 교육과정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도 일부 내용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교육과정 개혁은 전체 교육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국가 교육과정은 모든 지역의 교육에서 평등하고 높은 질을 유지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과정 개발 과정은 한국에 비해 훨씬 분권적이다. 국가는 전체적인 방향과 큰 틀만 제시하고, 세부 내용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 정부가 자체 교육과정을 통해 구체화한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교육과정이 분권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지역과 학교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학생 개인의 학습 경로에까지 도달한다. 학생 수준에서도 개인화된 학습 계획(personalised study plan)이 마련된다. 핀란드의 의무교육에서는 전체 학생의 약 15%가 국가 공통 교육과정을 개인의 필요, 능력, 목표에 맞게 조정한 개별 학습 계획을 적용받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교사, 진로 상담 교사(guidance counsellor), 학부모,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전문 인력들이 함께 협력하여 수립되며, 학습 경로가 포용적이고 지원적으로 설계되도록 한다. 이 계획에는 이수 과목, 학습 방법, 지원 서비스, 평가 방식 등이 명시되며, 학생의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개인화된 학습 계획은 의무교육 단계에서 형평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모든 학생이 자신의 학습과 발달을 가장 잘 지원받을 수 있는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분권화된 체계에서 지방 정부가 지닌 자율적 권한에 관해 테이요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핀란드는 많은 권한을 지방 정부에 위임하는 분권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지방 정부는 지역의 주요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 지역 교육과정(local curriculum)을 개발합니다. 국가 교육과정은 지역 교육과정이 따라야 할 기본적인 틀이며, 지방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자기 지역의 교육과정을 구성합니다.
또한 지방 정부는 국가로부터 받은 예산의 배분 방식(allocation), 학교 수의 유지 여부, 학급 규모 등을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항은 지방 정부가 직접 결정합니다. 교사 고용과 교사 평가 역시 지방 정부의 책임입니다.”
핀란드는 고도로 분권화된 교육 체제를 갖고 있다. 국가–지역–학교로 이어지는 삼중 구조 속에서 각 단계는 실질적인 자율성을 지닌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해 국가 차원의 강제 규제가 없고, 권고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지방 정부는 지역의 특성, 예산 여건, 학생 수 등을 고려해 학급 규모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처럼 합의에 기반해 개발된 교육과정의 질 관리는 교육평가센터(FINEEC)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러한 평가 결과는 교육과정의 부분적 수정과 개선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보장되는 안정성
국가교육위원회는 약 400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조직을 살펴보면 초·중등교육, 상급중등교육, 직업교육, 성인교육 부서, 국제 업무 부서, 행정·ICT 부서, 미디어·홍보 부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관장인 총괄 국장(General Director)은 정부가 임명하지만, 정부가 바뀌어도 전문 관료(civil servants)는 계속 근무한다. 이에 따라 정책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된다. 직원 상당수는 전직 교사, 전직 교장, 연구자(박사 학위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 이해도가 높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우파 정부에서 좌파 정부로 정권이 바뀌어도 주요 정책이나 과제의 큰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수
총괄 국장은 국무회의나 총리가 임명하나요? 그런데 정부가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테이요
네, 맞습니다. 그 이유는 임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공무원은 동일한 직무를 계속 수행합니다. 저는 이것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각 장관은 자신이 중점을 두고 싶은 우선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고 대체로 소규모 우선 과제가 추가되는 정도에 그칩니다.
현수
이전 정부는 보수당과 우파 정당들이 포함된 3당 연정이었고, 당시 교육부 장관은 보수당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이끄는 중도좌파 연합이며 교육부 장관은 좌파연합 출신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테이요
네, 저는 그것이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좌든 우든, 모두가 교육의 큰 그림과 광범위한 방향에 합의하고 있기 때문에, 장관은 몇 가지 사안을 추가할 수는 있어도 전체 정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핀란드라고 정권 교체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담당자들은 그러한 변화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는 느끼지 않고 있었다.
교원연수 프로그램 지원 등
교원 전문성 개발을 위한 역할
대화를 나누면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원 전문성 개발과 관련된 연수 지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핀란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야리
학교와 교사들이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연수에 참여할지는 지역 단위에서 결정합니다. 지역 행정은 교사들의 연수 참여 시기와 빈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교사의 급여와 근무 시간은 단체협약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협약에는 교사가 매 학년 3일의 연수 또는 계획 활동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가 개학하기 전에 교사들이 1~2일 먼저 출근하여 학교 운영 계획을 세우는데, 이 기간 역시 연수 의무일 3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일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이 중 1~2일이 계획 업무로 쓰이면 실질적인 연수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교사에게 연 60시간의 연수를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핀란드의 연 3일 연수는 많다고 보기 어렵다. 예비 교사 교육 단계에서는 석사 수준의 교사 자격을 처음부터 요구하는 등 세계적 모범으로 평가받지만, 현직 교사 연수 측면에서는 다른 나라를 선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핀란드 내부에서도 현직 교사 연수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가 국가와 지방 차원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원 연수를 직접 제공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수 계획 수립, 공모 운영, 예산 배분, 품질 관리 등 연수 체계 전반을 조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콜요넨은 연수 운영을 “주로 공모(open call)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연수 운영 방식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인상적인 차이로 다가왔다.
테이요
연수는 매년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이 과정은 공모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공모는 약 4~6주 동안 이루어지며, 연수 주제, 자금 사용 규정, 제약 조건 등이 포함된 안내문이 함께 제공됩니다. 기관들은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 신청서는 전자 시스템을 통해 검토·평가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신청서들이 최종적으로 재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됩니다.기관들은 신청 시 연수 운영을 위한 예산 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매년 약 20,000~25,000명이 이러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연수를 주관하는 기관은 종료 후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보고서에는 연수 진행 상황, 사용된 예산, 참여자 수 등이 포함됩니다.지원금 규모는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적게 지원된 프로젝트는 13,500유로, 가장 많이 지원된 프로젝트는 거의 50만 유로에 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각 기관은 약 65,000유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민간 기업도 지원 신청이 가능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통한 이윤 창출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비영리단체뿐 아니라 영리 기업이라도, 정부 지원금으로는 어떠한 수익도 발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자면,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약 1억 5000만 유로 규모의 예산을 바탕으로 매년 다양한 주제를 설정해 공모 방식으로 연수 운영 기관을 선정·지원한다. 선정 비율은 약 40% 수준이라고 한다. 공모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지방자치단체, 대학, 비영리단체, 전문 민간 기업 등 매우 다양하며, 민간 기업이라 하더라도 연수 운영 과정에서 영리를 추구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가 교원 연수의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하면서도, 연수 운영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 기관
교육과정 개발과 교원 전문성 개발에 대한 논의를 넘어,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가 핀란드 교육에서 ‘학교교육 발전을 위한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 기관’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단순한 중앙 행정기관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산업계가 함께 교육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협력적 거버넌스 구조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핀란드의 정책 설계 방식은 중앙 정부가 세부 실행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위계적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동 설계의 원리를 토대로 운영된다. 이와 관련해 테이요는 “우리는 정책을 위에서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책은 행정 내부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문화부의 관계 역시 단순한 보고 체계를 넘어, 정책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역할 분담에 기초한 상시적 협력 관계에 가깝다. 테이요는 “우리는 교육문화부와 거의 매일 연락합니다. 이것은 보고 관계라기보다 협력 관계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문화부가 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과 결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국가교육위원회는 그 결정과 지침을 바탕으로 실제 정책을 구현하고 발전시키는 개발·집행 중심의 전문 기관(development office, expert office)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교육문화부가 결정하지만,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무엇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판단한다.핀란드의 3년 주기 협약 체계 역시 ‘무엇을 하달할 것인가’를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과제를 함께 추진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단순한 정책 집행 기관을 넘어, 전문적 판단과 축적된 현장 지식을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공동 생산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정책–연구–현장을 연결하는 다층적 협력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교사 연수 지원, 교육 자료 개발, 직업교육 개편,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등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 업무 대부분은 현장과의 상시적 소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테이요가 “정책은 현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야리 역시 “교사 연수도 국가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이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연구 지향성과 증거 기반 지식을 정책 결정과 실행 전반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 개혁 사업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교육 시스템의 발전 과제를 탐색하고 혁신을 위한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조정·지원한다. 국제적으로는 에라스무스+(Erasmus+)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이동성과 협력을 촉진하고, 국내적으로는 평생학습 경로와 성인교육의 기회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핀란드 교육 체계 전반에 걸쳐 일관성, 형평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차원의 정책과 지역 수준의 실행, 그리고 국제적 연계를 잇는 가교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핀란드 교육의 핵심 가치인 신뢰, 자율성, 수평적 협력의 생태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동시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왜 협력과 협치 거버넌스의 상징적 기관으로 평가받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 개선 방향을 생각하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을 살펴본 뒤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여러 고민이 떠오른다. 나는 국가교육위원회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에서 2023년 1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중장기 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원래 위원의 임기는 2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기 전문위원 전원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다. 전문위원회 내부의 의견 대립이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초정권적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였지만,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위원회보다 갈등이 잦았고, 합의를 만들어 내는 구조로 작동하지 못했다. 전문위원 선정이 이른바 ‘보수–진보 균형 배분’ 방식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서로 다른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모여 숙의보다는 충돌이 반복되는 장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국가교육위원회법을 제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최진실·주현준(2021)은 〈핀란드와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비교 연구〉에서 정치적 중립성, 법적 독립성, 민주성, 일관성 등의 기준으로 양국의 법률안을 비교한 결과,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핀란드식 모델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우리 위원회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주요 권한이 대통령에게 위임되어 있으며, 다양한 정책 주체의 참여가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고, 단기간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핵심적인 한계로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제안-위원 공개 모집, 법률안의 구체화, 구성원 정수의 명확화, 사회적 합의의 실효성 제고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와 제안들은 실제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내가 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크게 느낀 문제 역시 위원 구성 방식의 구조적 취약성이었다. 전체 21명의 전문위원 가운데 국회 추천 9명, 대통령 지명 5명이라는 구성 방식은 정권 변화나 국회 다수당의 변화에 따라 위원회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초당적 합의를 추구해야 할 위원회가 오히려 정치적 대립이 증폭되는 공간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적 제약이다. 내가 참여한 전문위원회 역시 상위 위원회의 구성 원리를 그대로 따르다 보니, 각 진영을 대표하는 이른바 ‘대표 선수’들이 참여하는 구조가 되었고, 그 결과 정파적 대립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국내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다. 핀란드에서는 교육문화부가 포괄적인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를 토대로 세부 실행과 개발을 담당하는 구조인 반면, 한국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중장기 계획과 국가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교육부가 이를 집행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핀란드가 수평적 협약을 통해 상하 관계의 경직성을 완화한다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교육부의 실질적 ‘머리’ 기능을 국가교육위원회로 이전하면서, 위원회가 교육부의 상위 조직처럼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 설정은 두 기관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설령 원활하게 작동하더라도 관료주의의 계층을 하나 더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제도가 잘못 작동할 경우, 기관 간 협력 부재로 인해 의사결정이 교착 상태에 빠질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핀란드는 높은 사회적 신뢰와 협치 문화라는 토대 위에서 교육문화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을 이루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신뢰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부의 중장기 기획과 교육과정 권한을 분리해 국가교육위원회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 왔다. 이는 협치 문화를 전제로 한 제도를, 협치의 사회적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조건에서 도입한 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핀란드 모델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토양을 깊이 성찰한 위에서 현재의 제도를 재검토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창조적 변형과 제도적 재설계를 모색하는 일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를 축적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형식보다도 그것이 작동하는 구조와 관계, 그리고 신뢰의 조건을 다시 묻는 작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보론 :
최근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둘러싼 논란
앞서 소개한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점은 산나 마린 정부가 집권하던 2023년 3월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지금, 핀란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온 핀란드는 안보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며 2023년 나토(NATO)에 가입했고, 전쟁의 여파와 더불어 재집권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인해 경제 전반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르포(Petteri Orpo) 총리를 중심으로 한 보수 연합 정부는 사회 전반에 걸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구조뿐 아니라 복지 모델과 교육 재정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긴축 재정 기조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협치와 협력 거버넌스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국가교육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교육문화부로 이전하는 방안이 예산 절감 목록에 포함되었고, 관련 법안이 2026년을 목표로 제안되었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으로 알려진 ‘핀란드인당(Finns Party, Perussuomalaiset)’은 핀란드에서 포퓰리즘적 급진우파 정당으로 널리 인식된다. 이 정당은 ‘평범한 핀란드인’을 대변한다는 담론을 통해 엘리트와 EU 관료주의, 글로벌리즘에 대한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민·다문화·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급진우파적 입장을 강화해 왔다. 2011년 총선에서 급부상했으나, 이후 선거에서 부침을 겪으며 유럽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정치적 변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핀란드인당은 최근의 교육 정책 흐름-PISA 성취도 하락, 개방형 교실 운영,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허용,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 통합교육 정책(inclusion policy) 등-을 문제 삼으며, 그 책임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돌리고 있다. 교육의 성과와 질에 대한 불만이, 교육 거버넌스 구조 전반에 대한 정치적 문제 제기로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2026년 예산의 최종안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 폐지안이 제외되었으나, 이를 둘러싼 논쟁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교육 정책의 성과와 책임 소재, 그리고 국가 차원의 교육 거버넌스 구조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야리는 이메일을 통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보내 주었다.
핀란드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국방비 지출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교육 부문 전반에 걸쳐 긴축 조치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원 현직 연수에 대한 예산 삭감과 학교 자원의 축소는, 특히 이미 인구 감소로 학교 폐쇄를 겪고 있는 농촌 지방자치단체에서, 핀란드 교육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형평성 원칙을 약화시킬 위험이 큽니다.
정부는 긴축 정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군사 부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가 예산 감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군사비는 2029년까지 GDP의 3% 수준으로 증액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반면, 다른 공공 부문은 지속적인 축소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핀란드 복지 국가 모델의 지속 가능성과 교육 체제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원 현직 연수를 위한 모든 재원을 삭감하여,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교사의 전문적 학습과 성장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교사 학습을 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삼아 왔던 핀란드 교육 체제에서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교수·학습 혁신은 물론 지역 간 형평성까지 잠식할 위험이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 구조 변화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출산율 감소와 도시로의 인구 이동으로 인해 많은 농촌 지방자치단체에는 소수의 아동만 남게 되었고, 그 결과 학교 수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거주 지역과 무관하게 양질의 교육 접근을 보장한다는 형평성 원칙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점점 더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시각에서 볼 때, 국방 예산의 증대와 교육 재원의 축소 사이의 대비는 매우 선명합니다. 국가교육위원회 폐지를 둘러싼 논쟁과 교원 현직 연수 예산의 전면 삭감은, 핀란드 교육을 지탱해 온 협력적 교육 모델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인구 감소와 농촌 지역의 학교 폐쇄가 겹치면서, 수십 년간 핀란드 교육을 규정해 온 형평성 원칙은 붕괴의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은, 협치와 신뢰를 전제로 구축된 제도라 하더라도 정치·안보·재정 환경의 급격한 변화 앞에서는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상대적으로 이제 막 출범한 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가 어떤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인가를 성찰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비교 사례이다. 제도의 형식이나 권한 배분만이 아니라, 재정 우선순위, 정치적 책임 구조, 그리고 협치 거버넌스를 실제로 지탱하는 사회적 합의와 신뢰의 조건을 함께 묻지 않는다면,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언제든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❶ 방문 시기는 2023년 3월이며, 한국 측 방문자는 나, 김종우(전 교원대 총장), 서현수(교원대 교수)이고 핀란드 헬싱키 대학의 야리 라보넨 교수가 동행해 주었다.
❷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EDUFI)는 교육문화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넘어서는 폭넓은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된다. 이 기관은 외교부(Ministry for Foreign Affairs)와 협력하여 핀란드의 글로벌 교육 및 개발 협력에서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으며, 에라스무스+(Erasmus+)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연합(EU)과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도 협력하면서 국제 이동성과 정책 정합성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차원에서는 핀란드 교원노동조합(OAJ)과 협력하여 교사들의 목소리와 전문적 관점이 교육 정책과 실천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또한 Education Finland와 Business Finland와의 협력을 통해 핀란드의 교육 전문성을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교육 수출 분야에서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교육공동체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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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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