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시] 뒤집기 외 | 김영언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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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기

 

 

선생님은 이런 거 안 해봤죠

옆집 아저씨 검게 그을린 얼굴로 히죽 웃으며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는 논바닥을 들여다보다가

그런 거는 해보지 않았지만

매일 썼다 지우며 칠판을 갈아엎느라고

평생을 다 보내다시피 하긴 했는데도 아직

다 갈아엎지 못한 것이 있나 따져보니

그 잘난 시 나부랭이를 가르치던 국어 시간

시답잖다는 듯 심드렁하게 엎어져 자던 아이들

아직도 미처 다 깨워 일으키지 못했는데

세상 뒤집으려고 선동하는 세력 반대한다고

시끄러운 게 뭐 좋으냐며 핀잔을 놓던 아저씨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그 이치를

나만 아직 모르고 있었나 무안해져

아저씨, 땅을 참 잘 뒤집네요

그럼요, 잘 뒤집어야 뭐든지 더 잘 되죠

장단 맞추듯 슬그머니 웃으며 지나치려니

개구리 한 마리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갈아엎은 두둑 위에 올라앉아 끄덕거리고 있다

견고했던 겨울이 화창하게 뒤집어지고 있었다

 

 

봄눈

 

 

그렇게

우리들의 국어 시간

 

엄숙하게 가물가물 졸고 있는 활자 사이로

어쩌다 흘끔흘끔 소곤거림 몇 꿈틀거리더니

웅성웅성 순식간에 불어나 술렁이더니

남루한 교과서 검은 글자들을

온통 새하얗게 뒤덮어 버렸다

 

규칙을 위반한 봄눈이 선동적으로 내려

시대의 모범적인 말들이 묻히고

급작스런 봄날의 정전 속에서

잠시 나를 잊어버리고 창가로 끌려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교과서를 배신하고

봄눈과 함께 규칙위반으로 흩날렸다

 

 


시작노트

교실 안의 시와 교실 밖의 시.

항상 교실 안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언젠가는 휘몰아쳐 올 눈보라 같은 한바탕의 소란과 그로 인해 뒤집힐 세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이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비장미 넘치는 혁명의 시간 같은 것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무심히 그것을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선생이라는 관습 같은 이름으로, 국어를 가르친다는 엄숙함으로, 문학을 가르친다는 진지함으로 버티던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내 청춘보다도 더 푸른 청춘들이 뜨거운 숨결을 억누르며 남루한 시대 같은 복종을 배우던 교실은 이제 점점 먼 전설 속으로 흘러가고 있건만, 문득 그곳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종종 있다. 향수도 미련도 아니다. 교실은 교실 밖에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을 뿐이다. 그곳에도 시가 아이들처럼 앉아 있다. 다만 고요가 고요하게 피고 지는 세월을 따라가는 길가는 날로 확장되고 있지만, 발길은 오히려 퇴행하는 욕망처럼 좁아지고 있다. 멈출 수 없어서 걷고, 걷기 위해 멈출 수 없는 길 위다.

 


김영언(hanripo@hanmail.net) 

1962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인천교대와 서강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38년 간 초·중·고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교사문학》 동인지와 《황해문화》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계간문예 《다층》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 《집 없는 시대의 자화상》, 《나이테의 무게》 등과 기행 산문집 《노 프러블럼 인디아》를 펴냈으며,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장을 역임했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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