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기고] 이름만 쓰는 시험 | 이수현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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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름만 쓰는

시험

 - 장애 학생을 배제하는 평가와 교육의 문제

 


이수현 callmehotdog@naver.com

경기 김포 푸른솔중 교사

 



“답안지에 학번이랑 이름만 써서 제출하세요.”

중학교에서 이 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발달장애가 있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문제를 읽을 수 없어도, 문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도, 심지어 해당 과목의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어도 시험 시간에는 교실에 앉아 답안지를 받아야 한다. ‘시험을 본다’기보다 ‘이름을 쓰고 제출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나는 오랫동안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교사가 된 뒤 줄곧 그렇게 해 왔고, 주변의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시험을 볼 수 없는 학생에게는 이름만 쓰게 하고 기본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배려이자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나는 그저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교육 제도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만든 결과라고 믿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장면이 내 아이의 일이 되었다. 누군가 특수교육대상 학생인 내 딸에게 풀 수 없는 시험지를 내밀며 “이름만 써서 제출하면 된다”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 행위의 본질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었다. 아이의 배움을 확인하는 과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안에는 너무나 선명한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너는 애초에 배울 수 없는 존재다.’

내가 수년 동안 학생들에게 해 왔던 일의 의미를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가는 어떤 의미인가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대안 평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발달장애 학생에게 평가가 왜 필요해요?”


처음에는 이 질문이 차별적으로 느껴졌다. 비장애 학생에게는 하지 않는 질문을 왜 장애 학생에게만 하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질문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평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서 평가는 배움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어려워하며, 앞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살피는 과정도 아니다. 평가는 학생을 줄 세우고 변별하는 도구가 되었다. 누가 더 우수한지, 누가 더 높은 등급을 받을지 가려내는 기능이 평가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발달장애 학생의 평가권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어차피 상급 학교 진학 경쟁에서 제외되는 학생인데, 평가가 왜 필요한가?”


바로 그 질문 속에 우리 교육의 깊은 문제가 숨어 있다. 평가가 오직 경쟁과 선별을 위한 도구라면, 발달장애 학생은 애초에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수교육대상 학생은 일반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전제 아래 선정된다. 그렇다면 비장애 학생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발달장애 학생에게 똑같은 시험을 치르도록 강요하고 있을까? 발달장애 학생은 애초에 실패가 예정된 비교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에서 평가의 원래 의미는 학생의 현재 수준을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다. 학생의 배움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며,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점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사는 교수-평가-기록을 일체화해야 한다. 발달장애 학생의 수준에 맞는 평가가 없다는 것은 곧 교수도 기록도 없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시험지에 이름만 써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에서도 물리적으로 존재만 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 중 아무것도 하지 못한 특수교육대상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무엇을 작성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시험은 공정한가

 

학교는 늘 ‘같은 기준’을 공정의 상징처럼 말한다.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기준으로 채점하고, 같은 방식으로 성적을 산출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현실에서 너무 쉽게 폭력이 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에게 계단만 있는 건물을 제공한 뒤 “모두에게 같은 건물을 제공했으니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각장애 학생에게 점자 자료 없이 시험지를 나누어 준 뒤 “다 같은 시험지를 받았으니 공정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발달장애 학생에게는 우리는 너무 쉽게 같은 시험을 강요한다. 배운 적도 없는 내용을 평가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풀게 하고, 결국 풀지 못한 답안지를 제출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공정한 평가’라고 부른다.


그것이 과연 공정일까? 특수교육대상 학생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이미 국가가 학생의 특수교육적 요구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수업과 평가 역시 그 요구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교수적 수정과 대안 평가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육의 기본 원칙이어야 한다. 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특별 대우가 아니라 ‘정당한 조정’이다.


 

특수교육은 있는데 평가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특수교육대상 학생에게 이미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수학급도 있고, 특수 교사도 있고, 개별화교육계획도 있으니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춰져 있다고 여긴다. 물론 특수 교사는 학생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한다. 일상생활 기능을 가르치고, 읽기와 의사소통을 지도하고, 학생에게 실제로 필요한 삶의 기술을 교육한다. 하지만 그 교육은 정식 평가로 연결되지 않는다. 특수학급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성적표에 남지 않고, 학교의 공식 기록 안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난다. 반면 정식 평가 권한은 통합학급 교사에게 있다. 그런데 통합학급의 평가는 비장애 학생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 발달장애 학생은 매우 이상한 위치에 놓인다.


특수교육은 받지만, 교육받은 내용으로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배운 것과 평가받는 것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특수교육도 받아야 하고 일반 교육도 받고 평가까지 치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안에서 비장애 학생보다 더 많은 교육을 소화하도록 요구받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진 상태다. 교육은 학생이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발달장애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공식적으로 증명할 방법 자체가 없다. 학교에 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적표에는 최하점만 남는다. 학생이 실제로 익힌 생활 기술, 의사소통 능력, 사회적 성장, 학습의 진전은 숫자 ‘0’ 앞에서 모두 사라진다.


 

점수보다 더 잔인한 것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어차피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맞다. 발달장애 학생의 부모들이 높은 점수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평가는 단지 점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 주는 언어다. 학생이 배운 것을 인정하고 기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발달장애 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무엇을 배우든 그것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육이 아니다. 즉, 평가와 기록의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는 발달장애 학생이 그 의미를 모르니 괜찮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도 끊임없이 분위기를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로 취급받는지 느낀다.

‘늘 못 푸는 시험지만 받는 학생.’

‘늘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 학생.’

‘늘 평가에서 제외되는 학생.’


그 경험은 존재 깊숙한 곳에 축적된다. 학교는 그렇게 장애 학생에게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학습시킨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 배움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 언제나 도움받는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것은 단순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문제다.


 

교사로서 나의 고백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알파벳도 모르는 학생에게 영어 시험지를 풀게 했다. “이름만 써도 점수 줄게”라는 말을 건네며 스스로를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배려를 했다고 믿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만든 폭력을 조금 부드러운 방식으로 수행한 것에 불과했다.


물론 교사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도 답답하다. 대안 평가를 하고 싶어도 명확한 규정이 없고, 평가 수정에 대한 기준도 부족하다. 교육청과 교육부에 문의해도 ‘규정이 없다’는 비슷한 대답만 돌아온다. 교사들이 문제를 인지한다 해도 제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선한 사람들조차 어쩔 수 없이 차별 구조를 반복하게 만든다.


나는 장애 학생을 아끼는 교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의 선의조차 차별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진짜 통합교육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통합교육을 이야기해 왔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배우는 교육. 서로를 이해하고 다양성을 배우는 교육. 물론 그것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교육은 종종 ‘같은 공간에 있기’ 수준에 머문다. 학생이 교실에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진짜 통합은 물리적 배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과정, 평가, 학생의 참여 경험이 통합되어야 한다. 발달장애 학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하루 종일 견디는 것이 통합교육은 아니다. 아무런 조정 없이 같은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도 통합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학생에게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하게 만드는 폭력이다. 진짜 통합교육은 학생이 자신의 수준에서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같은 교실 안에서도 다른 목표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배움 역시 동등하게 평가받고 기록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교육 아닐까?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잘못된 질문을 해 왔다.

“발달장애 학생에게 평가가 왜 필요한가?”

이 질문 안에는 이미 발달장애 학생의 배움을 주변화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이 학생에게 어떤 평가가 필요한가?”


평가는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성장의 기록이어야 한다.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어떤 도움 속에서 참여할 수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특수학급과 통합학급에서 수준에 맞게 이루어지는 교육이 공식 평가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대안 평가 기준이 국가 수준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교사 개인의 선의나 재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철학이다. 평가의 목적이 변별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사실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학생의 존엄을 지키는 일

 

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시험 기간이 되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다행히 학교가 학부모의 요구를 수용해 주어 딸은 정기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학교를 다녀도 아이가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되지 않는다. 성적표에는 여전히 최하점이 남는다. 마음이 아픈 이유는 점수가 낮아서가 아니다. 불합리한 시스템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버티고, 적응하고, 배우려 했던 아이의 시간이 최하점으로 지워지는 현실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학교 현장에는 이미 너무 많은 행정과 규정이 얽혀 있다. 교사들 역시 버거운 현실 속에서 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왜 배우지도 않은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왜 특수교육은 있으면서 평가권은 없는가.’

‘왜 발달장애 학생의 배움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가.’


교육 제도는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만약 학교가 어떤 학생에게 끊임없이 “너는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실패다. 나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이름만 쓰게 하는 시험이 당연한 풍경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발달장애 학생도 자신의 수준에 맞게 배우고, 평가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동정이 아니라 교육의 기본이다. 교육은 결국, 학생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유지하고 전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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