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호[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6 3·4 vol.91 | 오은영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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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이야기


오늘의 교육

2026 3·4 vo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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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라는 폭력, 사안만 남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여러분의 최선은 ‘무관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마이크를 쥔 학생인권부장 교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교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대처 안내 방송이었다. 스피커 아래에 서 있던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폭력에 대처하는 최선이 무관심이라니.

물론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섣부른 관심이 낳을 수 있는 2차 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무성한 소문들, 혹은 개입이 어긋나 사안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질 때 교사와 학교가 감당해야 할 행정적, 법적 무게들. 가장 깔끔하고 안전한 ‘사안 처리’를 위해 쳐 둔 방어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행정적 편의와 보호 비용을 고려한다 해도,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저 발언은 명백히 길을 잃은 것이었다.

 


얼굴을 지운 자리에 들어선 ‘평범한 악’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윤리의 출발점을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에서 찾았다.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은 그 자체로 내게 “나를 외면하지 말라”며 무한한 책임을 호소한다. 그러나 무관심을 최선이라 부르는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타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라고, 눈을 감으라고 가르친다.

나아가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 즉 무사유(사유의 불능)와 무관심이야말로 폭력과 악이 일상 속에서 자라나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라고 경고했다. 폭력을 멈추는 것은 눈을 감는 무관심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려는 치열한 사유와 간섭이다. 무관심은 폭력의 반대말이 아니라, 폭력의 가장 조용한 동조자일 뿐이다.

 


‘사람’은 없고 ‘사안’만 남은 학교

 

학생인권부장의 안내 방송을 듣는 내내, 91호 특집의 좌담 〈‘사람’은 없고 ‘사안’만 남은 학교폭력 제도를 극복하려면〉이라는 제목이 뼈아프게 겹쳐 왔다. 오늘날의 학교는 교육공동체가 아니라, 흡사 기계적인 판결을 내리는 소규모 법정처럼 변해 버렸다. 아이들의 갈등은 성장의 계기가 아니라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 번호’가 되고, 교사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재자가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조사관이 되어 버렸다.

이런 삭막한 시스템 속에서 내가 몸담은 학교공동체에도 치열한 토론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든다. 우리에게는 매뉴얼을 암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학교, 폭력, 배움, 교사, 갈등, 문화라는 날것의 키워드들을 탁자 위에 올려 두고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벌을 넘어, 학교 문화의 회복으로

 

결국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멈추는 힘은 제도의 정비나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학교 문화의 개선’에 있음을 깨닫는다. 학교는 사안을 접수하고 판결을 내리는 사법 기관이 아니다. 갈등을 마주하고 대화로 풀어내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배움의 공동체다.

작년 연말부터 내 플레이리스트에 깊게 안착한 ‘산만한시선’의 노래 〈개의 심장〉이 다시 귓가를 맴돈다. ‘무관심이 최선’이라는 대처 방안은 어쩌면 학생들을 ‘짖지 않는 개’, ‘울지 않는 아이’로 길들이는 가장 폭력적인 문화일지 모른다. 갈등을 피하는 법만 배워, 정작 친구가 다치거나 자신이 아플 때 소리 내어 짖거나 울지 못하는 아이들을 길러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폭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아니라, 폭력이 자라날 수 없는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로 말이다. 시끄러운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서로에게 다가가 짖고 우는 법을 허락하는 문화. 타인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끌어안는 연대의 문화가 교실에 단단히 뿌리내릴 때, 비로소 우리는 폭력이라는 유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오은영(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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