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기획 | 특수에서 보편으로
새 학기, 통합교육을 시작하려는 선생님들께
특수 교사 아닌 교사를 위한 통합교육 이야기
글
이영수
lovesea24@hanmail.net
강원 동해 남호초 교사
저는 교대를 졸업한 일반 교사이고, 통합 학급 운영 사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통합교육 봄이오나봄’이라는 네이버 블로그에 사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공저로 참여한 책 《모두 참여 수업》(2023, 새로온봄)에서도 일반 선생님들께 통합 학급에서 장애 학생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수업에 참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작년까지 5년간 계속 통합 학급 담임을 맡았는데 올해는 맡지 않았습니다. 올해에는 좀 더 다양한 학생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고,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가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애 학생 한 명을 위해 목표와 방법을 조정하는 교수적 수정에만 한정하지 않고 유니버셜 디자인을 교육에 접목한 UDL(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보편적 학습 설계)을 수업에 적용해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올해 새로 맡게 된 우리 반 6학년 21명 중에도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선택적 함묵증으로 가정에서는 말을 하지만 학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학생도 있고 발표 시간에 부끄러워 제대로 표현을 못 하는 학생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동안은 말이 너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 올해에는 남을 많이 의식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학생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여러 명입니다. 《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2020, 새로온봄)란 책을 보면 저자 중 한 명인 김명희 선생님이 “어느 학교에 가든 통합교육은 결국 교사의 숙명이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셨다는데 저희 반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좌충우돌 미국의 통합교육 이야기》(신경아, 2023, 학지사)는 한국에서 일반 교사로 근무하던 분이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미국 학교에서 Resource teacher라 불리는 교사로 일하면서 쓴 책인데요, ADHD, 학습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정서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하루 1시간 정도 특수 교사인 저자에게 와서 수업을 받습니다. 선생님은 미국 교육 기관의 풍부한 인적 자원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언어치료, 작업치료, 특수체육 등의 프로그램이 학교 일과 시간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거의 모든 공립 학교에 전일제 특수학급과 통합 특수학급이 공존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교장을 비롯하여 특수 교사, 언어재활사, 작업치료사, 담임 교사, 그리고 상담 교사들이 서로 왕래하며 미팅을 갖는다고 하고요.
우리나라 현실에선 그나마 특수교육 대상자 학생은 특수 교사와 의논이라도 하지만 다른 다양성을 가진 학생들은 담임 혼자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강원도는 지역 특성상 외부 전문가를 섭외해서 학교에서 컨설팅을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이런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통합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새 학기를 앞두고 많은 교사들이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 반에 장애 학생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할까’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 장애나 그 외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 통합교육을 하려고 계획 중인 ‘특수 교사 아닌 교사’들에게 제가 그동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초기의 실수
처음엔 통합교육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퍼즐이나 색칠 공부를 많이 사 뒀다가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울 때 하게 했습니다. 통합교육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수업과 별개의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에 ‘최대한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ref]박승희·홍정아·김수연·최승숙·문주연(2019), 《통합교육,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ref] 지금은 색칠을 하더라도 수업 주제와 관련을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비의 한살이를 배우면서 나비나 애벌레를 색칠하게 하는 건 주제와 연관성도 있고, 색칠하면서 개념에 익숙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적 통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맞는 환경 마련해 주기
민호[ref]글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f]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학생이었는데 수시로 의자를 앞뒤로 흔들어서 소음이 발생했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라톤에 도전한 한 출연자에게 러닝 크루라는 게 있던데, 저에게는 ‘통합교육 크루’가 있습니다. 그중 한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상의하니 의자에 뭔가를 끼워 보라는 거예요. 저는 아이 행동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만 했지 아이의 환경을 바꿔 줄 생각은 못 했거든요. 체육 교구로 사 놓은 플레이스틱 커넥터라는 폭신한 스펀지 같은 걸 붙여 주었더니 더 이상 소음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에 대해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 배치도 바꿨습니다.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감각이 예민한데, 가운데 자리에 앉을 경우 사방에서 오는 자극 때문에 힘들어 안 좋고 가장 좋은 건 맨 앞이라고 하더라고요. 민호는 1학기에는 맨 뒤에 앉았는데 2학기에 자리를 맨 앞자리로 옮겼더니 자극도 줄어들고, 교사랑 상호작용을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알려 주신 대로 교실에 짐볼을 비치해 두어서 수업 시간에 감각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게 해 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의 소통으로 정보 얻기
민호가 저에게 던진 숙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3학년이라 색칠하는 활동이 많은데 활동지를 색연필로 마구 칠해 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씨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색칠까지 거부하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보통 작년 담임 선생님이나 특수 선생님께 전화를 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아이가 전학을 와서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어머니, 아이들이 민호를 참 좋아해요. 자리에 착석도 잘 하더라구요. 그런데 민호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제가 수업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민호 어머니는 민호가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걸 즐겨 하고, 동물 책 보는 걸 엄청 좋아하고, 뽀로로나 폴리 같은 몇 가지 캐릭터에 흥미 있어 한다고 알려 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색칠하기 활동이 있을 때 민호에겐 고체 물감을 줬는데 물통이나 붓 같은 걸 매번 꺼내고 정리하기가 번거로웠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도트 물감이에요. 도트 물감은 톡톡 두드려서 사용하는데 한 가지 색깔로 대충 칠할 것 같아서 연필로 표시해서 가이드를 줬어요.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말보다 시각적 힌트를 주면 더 잘 이해한다고 해서 설명은 최대한 짧게 했습니다.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은 부모님이니까 스스로 표현을 하기 힘든 경우라면 부모님에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물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런 거요. 그리고 장애 학생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전달하기 어려워해서 저는 종종 카톡으로 아이가 잘한 게 있으면 사진, 영상과 함께 집으로 보냈습니다.
도우며 함께 성장하는 또래 도우미
통합 학급 담임을 하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또래 도우미입니다. 반에 장애 학생이 있으면 친구들 중에 도움반에 데려다주는 당번, 쉬는 시간에 같이 산책해 주는 당번, 점심시간에 같이 놀이터에 가서 놀아 주는 당번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민호는 말은 못 하는데 한글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에 개미, 사자, 참새 이렇게 단어를 써 주면 교과서 그림에 붙이는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일대일로 민호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40분 수업 중에 고작 2~3분 정도뿐이라 민호가 공부하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지켜보던 똘똘한 학생에게 민호와 공부하는 시범을 보여 주고 직접 해 보게 했습니다. 제가 시간에 쫓겨 급한 마음으로 가르치면 민호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제 손을 긁고 울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좋은 피드백을 많이 주고 재촉하지도 않아서 그런지 더 잘 공부를 했습니다.
2학기부터 민호도 일인일역을 했는데,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스케줄을 미리 알려 주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고 해서 아침에 시간표 붙이는 역할을 줬습니다.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민호의 일인일역을 돕는 역할도 정했는데, 친구가 칠판에 미리 오늘 배울 과목을 써 놓으면 민호가 자석 시간표를 그 위에 붙였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아이들도 민호가 점점 익숙하게 시간표를 척척 붙이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봤습니다.
민호를 돕는 우리 반 친구들은 주기만 했을까요? 자기가 말 걸었을 때 민호가 반응해 주고, 웃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한다는 걸 일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민호가 통합 학급에 오는 시간이면 계단에 가서 기다리다가 민호의 기분이 안 좋으면 토닥토닥하면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민호가 조금만 불편해해도 알고 이렇게 반응 속도가 빠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업 시간에 시선이 민호에게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2학년 담임을 할 때 통합교육 대상인 찬영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소문난 악동인 재범이와 찬영이의 케미가 특이했습니다. 재범이는 수업을 안 듣고 학교 뒷산이나 운동장, 도서관에 가 있다가 찾아서 데려오면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숨어서 유리창 넘어 탈출을 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찬영이 옆에만 있으면 그렇게 순둥해졌어요. 저와 다른 친구들을 대할 땐 또래 같지 않게 날카롭고 반항적인 느낌이었는데 찬영이 옆에 있으면 보통 아홉 살 아이 표정인 거예요. 찬영이와 산책하고 도움반에 가서 같이 놀아 주고, 교실에 와도 자기가 먼저 챙겨 주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도 계속 통합 학급을 맡으면서 우리 반 ‘왕별’ 학생들이 특수교육 대상인 학생을 챙기기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도움을 주면서 자신도 칭찬받을 수 있고, 또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게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자신에게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난을 걸 때 한번 웃어 주면 그걸로 보상받는 느낌을 받는 것도 같아요. 저도 그럴 땐 진심으로 “너에게 이런 면도 있었어?” 하고 칭찬을 해 줬는데 말썽꾸러기 재범이가 여름 방학이 되기 전에 많이 달라져서 수업 시간에 누워 있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도 장애 학생이 속한 통합 학급
선욱이는 6학년 때 처음 특수교육 대상으로 선정된 학생이었는데, 자기 생각도 말로 표현할 수 있고, 글도 두세 줄은 쓸 수 있었습니다. 6학년부턴 국어, 수학은 도움반에 가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가는 걸 싫어했어요. 교실에 있으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고 수업 시간에 필통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서 부스럭부스럭거리며 혼잣말을 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적하면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학력도 낮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않으니 자존감이 낮아진 건지 아이들이 다가가려고 하면 표정이 어두워져서 아이들도 어려워했습니다.
특히 체육 시간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피구 같은 경쟁 게임을 할 때 선욱이는 중간에 스르르 벤치로 가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보통 체육은 다른 학습 시간과 다르게 장애 학생에게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운동 신경도 부족하고 규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서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경쟁 게임이면 친구들이 승부에 예민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더 잃게 됩니다. 피구를 할 때 친구들이 공도 양보하고 ‘목숨’도 더 주고 해 봤는데도 의기소침하고 흥미 없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 학생도 참여할 수 있는 체육 수업을 고민하다가 스파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스파크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비만 치료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는데 흥미로운 교구도 사용하고, 규칙은 직관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적고, 협동을 강조하고, 운동량도 많은 장점이 있답니다.
선욱이도 이런 활동을 할 땐 한 번도 벤치로 가지 않았고, 친구들과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었어요. 6학년이라 아이들이 유치해할까 봐 걱정했지만 남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저희는 체육이라면 다 좋아요”라고 해서 안심했습니다. 장애 학생뿐 아니라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도, 여학생들도 소외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일기에 체육이 너무 재밌다고 써서 보람 있었습니다.
협동 학습도 선욱이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이 없는데, 짝끼리 발표를 하면 친구가 자기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니까 짝 발표에서 자신감을 얻고 모둠에서도 친구들에게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선욱이를 배려하고 챙겨 주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잘 몰랐던 다른 면을 발견하고 감동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친구 관계를 좋게 하려고 꼭 노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관계 형성이 되는 걸 많이 봤습니다.
4%의 비밀
선욱이는 장애가 가벼운 편이었기 때문에 1년간 교수적 수정, 평가 조정, 협동 학습, 또래 도우미, 협력 교수, 스파크 체육, 보편적 학습 설계 등 쓸 수 있는 걸 다 해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선욱이 표정이 밝아지니 저와 특수 선생님만 아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현재 능력보다 4% 어려운 공부를 할 때 몰입이 된다고 하는데[ref]조윤정·변영임·오재길·이수현(2021), 《학습 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도전 - 보편적 학습설계 수업》, 살림터.[/ref] 장애 학생들은 통합 학급에서 40%, 400% 어려운 학습을 하니까 불안과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도전할 만한 과제, 현재 능력보다 4% 어려운 과제를 제시해 준다면 어떨까요. 실제 그렇게 해 보았더니 학생들이 과제에 흥미를 갖고, “너 달라졌다 열심히 하네” 이런 피드백도 받고, 친구들 인식도 좋아지고, 결국 기존에 있던 이른바 ‘방해 행동’도 사라지는 걸 경험했어요. 친구들과 같은 수업 주제지만 장애 학생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주는 건 교수적 수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보니 교수적 수정이 장애 학생이 보이는 ‘방해 행동’을 줄여 준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ref]“교수적 수정을 적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감소하게 되고 수업 참여 행동이 증가하고, 증가된 수업 참여 행동은 다음 문제 행동 예방과 감소를 가져온다.” 김번영·박승희(2007), 〈통합학급에서 교수적 수정 중재가 장애학생의 문제행동과 수업참여행동에 미치는 영향〉, 《특수교육학 연구》, 42(1), 23쪽.[/ref]
선욱이는 수행 평가를 손도 못 대다가 쉬운 평가지를 받고 100점을 맞으니까 엄청나게 기뻐했습니다. 선욱이는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자기 수준에 맞는 자료를 주면 오히려 더 하겠다고 할 정도로 공부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 점이 선욱이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서 꾸준히 칭찬해 주었습니다.
특수 선생님과 래포 형성하기
특수 선생님과 학기 초에 만나서 아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래포가 형성되어서 좋습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주로 원반에서 어려운 행동을 할 때만 연락이 오니 특수 선생님 입장에서는 전화가 올까 봐 불안할 것 같아요. 선생님들끼리 래포가 형성되면 특수 선생님이 통합 학급에 와서 함께 수업하는 것도 부담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특수 선생님은 학교에 한 명뿐이고, 네다섯 명의 통합 학급 선생님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특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자신들이 일반 선생님들께 잘해야 우리 아이가 통합 학급에서 이쁨을 받을 거다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내향적인 제가 들었을 때 이 말이 너무 속상했어요. 내가 특수 교사이면 학교에서 한 명뿐이라 외롭고, 먼저 말 꺼내는 게 어렵고, 말 꺼냈다가 거절당하면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일반 교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고민까지 하고 계시다니요. 처음에 소개해 드린 미국의 통합교육에 대한 책을 보면 미국에선 교사끼리 친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굴러간답니다. 서로의 책임과 경계를 잘 지키며 팀 접근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데요, 아직도 특수 교사의 일방적인 노력에 기대는 우리나라 시스템도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특수 선생님이 다가오길 기다리기보다 담임 교사가 학기 초에 먼저 찾아가서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생활 지도는 어떻게 하고,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할지 의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때 꼭 외부 전문가를 불러오지 않아도 학교 내 구성원 간의 소통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한 요구가 있는 사람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은 모두를 위해 길을 닦아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장애 학생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다른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속 기획 | 특수에서 보편으로
새 학기, 통합교육을 시작하려는 선생님들께
특수 교사 아닌 교사를 위한 통합교육 이야기
글
이영수
lovesea24@hanmail.net
강원 동해 남호초 교사
저는 교대를 졸업한 일반 교사이고, 통합 학급 운영 사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통합교육 봄이오나봄’이라는 네이버 블로그에 사례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공저로 참여한 책 《모두 참여 수업》(2023, 새로온봄)에서도 일반 선생님들께 통합 학급에서 장애 학생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수업에 참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작년까지 5년간 계속 통합 학급 담임을 맡았는데 올해는 맡지 않았습니다. 올해에는 좀 더 다양한 학생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고, 통합 학급을 운영하며 얻은 노하우가 다양한 어려움을 가진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애 학생 한 명을 위해 목표와 방법을 조정하는 교수적 수정에만 한정하지 않고 유니버셜 디자인을 교육에 접목한 UDL(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보편적 학습 설계)을 수업에 적용해 다양한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올해 새로 맡게 된 우리 반 6학년 21명 중에도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선택적 함묵증으로 가정에서는 말을 하지만 학교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학생도 있고 발표 시간에 부끄러워 제대로 표현을 못 하는 학생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동안은 말이 너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면, 올해에는 남을 많이 의식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학생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여러 명입니다. 《교사 통합교육을 말하다》(2020, 새로온봄)란 책을 보면 저자 중 한 명인 김명희 선생님이 “어느 학교에 가든 통합교육은 결국 교사의 숙명이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셨다는데 저희 반 아이들을 보고 선생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좌충우돌 미국의 통합교육 이야기》(신경아, 2023, 학지사)는 한국에서 일반 교사로 근무하던 분이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미국 학교에서 Resource teacher라 불리는 교사로 일하면서 쓴 책인데요, ADHD, 학습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정서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하루 1시간 정도 특수 교사인 저자에게 와서 수업을 받습니다. 선생님은 미국 교육 기관의 풍부한 인적 자원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언어치료, 작업치료, 특수체육 등의 프로그램이 학교 일과 시간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거의 모든 공립 학교에 전일제 특수학급과 통합 특수학급이 공존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교장을 비롯하여 특수 교사, 언어재활사, 작업치료사, 담임 교사, 그리고 상담 교사들이 서로 왕래하며 미팅을 갖는다고 하고요.
우리나라 현실에선 그나마 특수교육 대상자 학생은 특수 교사와 의논이라도 하지만 다른 다양성을 가진 학생들은 담임 혼자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강원도는 지역 특성상 외부 전문가를 섭외해서 학교에서 컨설팅을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이런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통합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새 학기를 앞두고 많은 교사들이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 반에 장애 학생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할까’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 장애나 그 외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 통합교육을 하려고 계획 중인 ‘특수 교사 아닌 교사’들에게 제가 그동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초기의 실수
처음엔 통합교육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퍼즐이나 색칠 공부를 많이 사 뒀다가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울 때 하게 했습니다. 통합교육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수업과 별개의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에 ‘최대한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ref]박승희·홍정아·김수연·최승숙·문주연(2019), 《통합교육,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ref] 지금은 색칠을 하더라도 수업 주제와 관련을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비의 한살이를 배우면서 나비나 애벌레를 색칠하게 하는 건 주제와 연관성도 있고, 색칠하면서 개념에 익숙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적 통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 맞는 환경 마련해 주기
민호[ref]글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f]는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학생이었는데 수시로 의자를 앞뒤로 흔들어서 소음이 발생했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라톤에 도전한 한 출연자에게 러닝 크루라는 게 있던데, 저에게는 ‘통합교육 크루’가 있습니다. 그중 한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상의하니 의자에 뭔가를 끼워 보라는 거예요. 저는 아이 행동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만 했지 아이의 환경을 바꿔 줄 생각은 못 했거든요. 체육 교구로 사 놓은 플레이스틱 커넥터라는 폭신한 스펀지 같은 걸 붙여 주었더니 더 이상 소음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에 대해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 배치도 바꿨습니다.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감각이 예민한데, 가운데 자리에 앉을 경우 사방에서 오는 자극 때문에 힘들어 안 좋고 가장 좋은 건 맨 앞이라고 하더라고요. 민호는 1학기에는 맨 뒤에 앉았는데 2학기에 자리를 맨 앞자리로 옮겼더니 자극도 줄어들고, 교사랑 상호작용을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알려 주신 대로 교실에 짐볼을 비치해 두어서 수업 시간에 감각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게 해 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의 소통으로 정보 얻기
민호가 저에게 던진 숙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3학년이라 색칠하는 활동이 많은데 활동지를 색연필로 마구 칠해 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씨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색칠까지 거부하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보통 작년 담임 선생님이나 특수 선생님께 전화를 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아이가 전학을 와서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어머니, 아이들이 민호를 참 좋아해요. 자리에 착석도 잘 하더라구요. 그런데 민호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제가 수업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민호 어머니는 민호가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걸 즐겨 하고, 동물 책 보는 걸 엄청 좋아하고, 뽀로로나 폴리 같은 몇 가지 캐릭터에 흥미 있어 한다고 알려 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색칠하기 활동이 있을 때 민호에겐 고체 물감을 줬는데 물통이나 붓 같은 걸 매번 꺼내고 정리하기가 번거로웠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도트 물감이에요. 도트 물감은 톡톡 두드려서 사용하는데 한 가지 색깔로 대충 칠할 것 같아서 연필로 표시해서 가이드를 줬어요.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말보다 시각적 힌트를 주면 더 잘 이해한다고 해서 설명은 최대한 짧게 했습니다.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은 부모님이니까 스스로 표현을 하기 힘든 경우라면 부모님에게 아이에 대한 정보를 물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런 거요. 그리고 장애 학생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전달하기 어려워해서 저는 종종 카톡으로 아이가 잘한 게 있으면 사진, 영상과 함께 집으로 보냈습니다.
도우며 함께 성장하는 또래 도우미
통합 학급 담임을 하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또래 도우미입니다. 반에 장애 학생이 있으면 친구들 중에 도움반에 데려다주는 당번, 쉬는 시간에 같이 산책해 주는 당번, 점심시간에 같이 놀이터에 가서 놀아 주는 당번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민호는 말은 못 하는데 한글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에 개미, 사자, 참새 이렇게 단어를 써 주면 교과서 그림에 붙이는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일대일로 민호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40분 수업 중에 고작 2~3분 정도뿐이라 민호가 공부하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지켜보던 똘똘한 학생에게 민호와 공부하는 시범을 보여 주고 직접 해 보게 했습니다. 제가 시간에 쫓겨 급한 마음으로 가르치면 민호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제 손을 긁고 울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좋은 피드백을 많이 주고 재촉하지도 않아서 그런지 더 잘 공부를 했습니다.
2학기부터 민호도 일인일역을 했는데, 자폐스펙트럼 학생은 스케줄을 미리 알려 주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고 해서 아침에 시간표 붙이는 역할을 줬습니다. 혼자 할 수 없으니까 민호의 일인일역을 돕는 역할도 정했는데, 친구가 칠판에 미리 오늘 배울 과목을 써 놓으면 민호가 자석 시간표를 그 위에 붙였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아이들도 민호가 점점 익숙하게 시간표를 척척 붙이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봤습니다.
민호를 돕는 우리 반 친구들은 주기만 했을까요? 자기가 말 걸었을 때 민호가 반응해 주고, 웃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행복해한다는 걸 일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민호가 통합 학급에 오는 시간이면 계단에 가서 기다리다가 민호의 기분이 안 좋으면 토닥토닥하면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민호가 조금만 불편해해도 알고 이렇게 반응 속도가 빠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업 시간에 시선이 민호에게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2학년 담임을 할 때 통합교육 대상인 찬영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소문난 악동인 재범이와 찬영이의 케미가 특이했습니다. 재범이는 수업을 안 듣고 학교 뒷산이나 운동장, 도서관에 가 있다가 찾아서 데려오면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숨어서 유리창 넘어 탈출을 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찬영이 옆에만 있으면 그렇게 순둥해졌어요. 저와 다른 친구들을 대할 땐 또래 같지 않게 날카롭고 반항적인 느낌이었는데 찬영이 옆에 있으면 보통 아홉 살 아이 표정인 거예요. 찬영이와 산책하고 도움반에 가서 같이 놀아 주고, 교실에 와도 자기가 먼저 챙겨 주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도 계속 통합 학급을 맡으면서 우리 반 ‘왕별’ 학생들이 특수교육 대상인 학생을 챙기기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도움을 주면서 자신도 칭찬받을 수 있고, 또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게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처럼 자신에게 편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난을 걸 때 한번 웃어 주면 그걸로 보상받는 느낌을 받는 것도 같아요. 저도 그럴 땐 진심으로 “너에게 이런 면도 있었어?” 하고 칭찬을 해 줬는데 말썽꾸러기 재범이가 여름 방학이 되기 전에 많이 달라져서 수업 시간에 누워 있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도 장애 학생이 속한 통합 학급
선욱이는 6학년 때 처음 특수교육 대상으로 선정된 학생이었는데, 자기 생각도 말로 표현할 수 있고, 글도 두세 줄은 쓸 수 있었습니다. 6학년부턴 국어, 수학은 도움반에 가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가는 걸 싫어했어요. 교실에 있으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고 수업 시간에 필통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서 부스럭부스럭거리며 혼잣말을 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적하면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학력도 낮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않으니 자존감이 낮아진 건지 아이들이 다가가려고 하면 표정이 어두워져서 아이들도 어려워했습니다.
특히 체육 시간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피구 같은 경쟁 게임을 할 때 선욱이는 중간에 스르르 벤치로 가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보통 체육은 다른 학습 시간과 다르게 장애 학생에게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운동 신경도 부족하고 규칙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서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경쟁 게임이면 친구들이 승부에 예민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더 잃게 됩니다. 피구를 할 때 친구들이 공도 양보하고 ‘목숨’도 더 주고 해 봤는데도 의기소침하고 흥미 없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 학생도 참여할 수 있는 체육 수업을 고민하다가 스파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스파크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비만 치료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는데 흥미로운 교구도 사용하고, 규칙은 직관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적고, 협동을 강조하고, 운동량도 많은 장점이 있답니다.
선욱이도 이런 활동을 할 땐 한 번도 벤치로 가지 않았고, 친구들과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었어요. 6학년이라 아이들이 유치해할까 봐 걱정했지만 남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저희는 체육이라면 다 좋아요”라고 해서 안심했습니다. 장애 학생뿐 아니라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도, 여학생들도 소외되지 않았고, 아이들이 일기에 체육이 너무 재밌다고 써서 보람 있었습니다.
협동 학습도 선욱이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원래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이 없는데, 짝끼리 발표를 하면 친구가 자기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니까 짝 발표에서 자신감을 얻고 모둠에서도 친구들에게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선욱이를 배려하고 챙겨 주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잘 몰랐던 다른 면을 발견하고 감동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친구 관계를 좋게 하려고 꼭 노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관계 형성이 되는 걸 많이 봤습니다.
4%의 비밀
선욱이는 장애가 가벼운 편이었기 때문에 1년간 교수적 수정, 평가 조정, 협동 학습, 또래 도우미, 협력 교수, 스파크 체육, 보편적 학습 설계 등 쓸 수 있는 걸 다 해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선욱이 표정이 밝아지니 저와 특수 선생님만 아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현재 능력보다 4% 어려운 공부를 할 때 몰입이 된다고 하는데[ref]조윤정·변영임·오재길·이수현(2021), 《학습 격차 해소를 위한 새로운 도전 - 보편적 학습설계 수업》, 살림터.[/ref] 장애 학생들은 통합 학급에서 40%, 400% 어려운 학습을 하니까 불안과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도전할 만한 과제, 현재 능력보다 4% 어려운 과제를 제시해 준다면 어떨까요. 실제 그렇게 해 보았더니 학생들이 과제에 흥미를 갖고, “너 달라졌다 열심히 하네” 이런 피드백도 받고, 친구들 인식도 좋아지고, 결국 기존에 있던 이른바 ‘방해 행동’도 사라지는 걸 경험했어요. 친구들과 같은 수업 주제지만 장애 학생이 도전할 만한 과제를 주는 건 교수적 수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보니 교수적 수정이 장애 학생이 보이는 ‘방해 행동’을 줄여 준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ref]“교수적 수정을 적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감소하게 되고 수업 참여 행동이 증가하고, 증가된 수업 참여 행동은 다음 문제 행동 예방과 감소를 가져온다.” 김번영·박승희(2007), 〈통합학급에서 교수적 수정 중재가 장애학생의 문제행동과 수업참여행동에 미치는 영향〉, 《특수교육학 연구》, 42(1), 23쪽.[/ref]
선욱이는 수행 평가를 손도 못 대다가 쉬운 평가지를 받고 100점을 맞으니까 엄청나게 기뻐했습니다. 선욱이는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자기 수준에 맞는 자료를 주면 오히려 더 하겠다고 할 정도로 공부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 점이 선욱이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서 꾸준히 칭찬해 주었습니다.
특수 선생님과 래포 형성하기
특수 선생님과 학기 초에 만나서 아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래포가 형성되어서 좋습니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주로 원반에서 어려운 행동을 할 때만 연락이 오니 특수 선생님 입장에서는 전화가 올까 봐 불안할 것 같아요. 선생님들끼리 래포가 형성되면 특수 선생님이 통합 학급에 와서 함께 수업하는 것도 부담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특수 선생님은 학교에 한 명뿐이고, 네다섯 명의 통합 학급 선생님과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특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자신들이 일반 선생님들께 잘해야 우리 아이가 통합 학급에서 이쁨을 받을 거다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내향적인 제가 들었을 때 이 말이 너무 속상했어요. 내가 특수 교사이면 학교에서 한 명뿐이라 외롭고, 먼저 말 꺼내는 게 어렵고, 말 꺼냈다가 거절당하면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일반 교사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고민까지 하고 계시다니요. 처음에 소개해 드린 미국의 통합교육에 대한 책을 보면 미국에선 교사끼리 친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굴러간답니다. 서로의 책임과 경계를 잘 지키며 팀 접근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인데요, 아직도 특수 교사의 일방적인 노력에 기대는 우리나라 시스템도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특수 선생님이 다가오길 기다리기보다 담임 교사가 학기 초에 먼저 찾아가서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생활 지도는 어떻게 하고, 공부는 어떻게 시켜야 할지 의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때 꼭 외부 전문가를 불러오지 않아도 학교 내 구성원 간의 소통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한 요구가 있는 사람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은 모두를 위해 길을 닦아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장애 학생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다른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