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연속 기획] 급진적 교육으로서 통합교육 제안서 | 최경미(사이다)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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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기획 | 특수에서 보편으로


급진적 교육으로서 통합교육 제안서

-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을 돌아보며

 

최경미(사이다)

merrygoround360@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성미산학교 교사

 



수동성이라는 놀라운 영향력

 

나의 정체성을 ‘비장애인’으로 설명하게 된 계기는 바로 발달장애인과의 관계가 생기고 나서부터이다. 솔직히 그 전에는 ‘일반인’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호명되는 것에 대해, 정상성에 대해, 그 범주 밖에 있는 세계에 대해 직면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성미산학교에서 자폐스펙트럼 학생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지나가다’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일상을 함께 보내고 관계를 이어 가야 하는 존재로서 만난 적은 없었다. 그 미스터리적 존재는 나를 자주 당황하게 했고 어리둥절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로 만들기 일쑤였다. 그동안 내가 어떤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그 세계가 얼마나 좁은 사회였는지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왜 그동안은 만날 수 없었을까? 문득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있어야 일상을 그럭저럭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는 오멜라스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실을 알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를 풀어 줄 경우 사라질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어 그저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여전히 이 사회에는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비가시화된 여러 존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이렇게 물음표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시간 동안 발달장애인과의 관계는 항상 불안정하고 예외적이며 불가해했고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한다. 학교 안에서 자폐인은 나에게 질문을 갖게 하였고 나의 능력을 시험하였으며, 나는 늘 내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도전받았다. 그럼에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매순간 인정하고 관계에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믿은 데 있었다. 모든 관계는 예측 불가한 상태로 열어 두어야 상호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했다. 가끔은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집념을 쏟아부을 때도 있었고 ‘정체성’을 오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했다. 경험이 쌓여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습관적이거나 일방적으로 대할 때도 있었고 여전히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기를 선택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항상 다른 미래와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애써 알아 가도 결국 알지 못하는 낯선 존재들로부터 발생하는 새로운 관계는 나를 영향을 받는 위치에 놓이게 만들었다. 솔직히 나도 한때는 장애인은 항상 돌봄을 받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수동성이야말로 새로운 관계를 탄생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나로 하여금 장애인 자신들을 돌보도록 하거나 주변의 조건과 상황을 바꾸도록 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을 때, 그들로 인해 내가, 사회가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돌보는 역할로 다른 삶에 참여하는 감각을 출현하게 만들면서, 장애가 받아들여지도록 작동하게 만들면서 그들은 관계의 한 주체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수동성이라는 이 놀라운 영향력이야말로 관계의 새로운 작용이었고 그래서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번역하는 내 곁의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다양한 시도들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무능력으로 살아가면 안 되나?’ ‘무임승차는 왜 안 돼?’ ‘임금 노동은 꼭 해야 하나?’ ‘비언어적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까?’ 이런 질문들과 더불어 ‘장애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바꿔 나가기 위한 노력들에 함께했다. 그리고 우리라고 말할 때 그 ‘우리’의 의미를 확대하고자 다정한 분투가 일어나는 곳이 학교이고 마을이었고 내가 발 딛고 상관하는 모든 현장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여정 속에서의 깨달음이 담긴 편지 혹은 제안서와도 같은 것임을 밝힌다.

 

여전히 이행 중인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

 

성미산학교는 상호의존의 관계망을 만들어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20년 동안 대안교육을 실험해 왔다. 경쟁하기보다는 협동하고, 개발과 성장보다는 서로를 돌보며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 왔다. 자연스럽게 종, 성, 장애 유무, 사상 등의 다양한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통합교육을 매개로 그 지향을 실천해 왔다. 물론 대안교육 역시 학교화된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급진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가지는 학생들로 인해 우리의 한계를 확인하고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가기 위해 여전히 이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개교 초기에는 신체장애를 비롯하여 중복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있었으나 현재는 발달장애인이 대부분이며 전체 학생의 15% 정도이다. 대략 한 그룹의 2~5명 정도 학생을 대상으로 IEP(Individualized Educational Program, 개별화 교육 계획)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장애인이나 특수교육 대상자 외에 다양한 교육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해당한다. 따라서 모든 학생은 통합교육 지원 대상이 되며 IEP를 별도로 구성할 필요가 있는 개별 학생들 중 경우에 따라 특수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과정은 학생들의 동기와 의지, 욕구와 필요 등을 반영하여 목표와 내용, 진행 방식과 평가 등을 조정하여 설계한다. 교육 철학에 따라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구성하되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여 재구성해 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체 기조는 크게 변화하지 않지만 구성원의 변동과 관계 역동에 따라 학기별 교육과정 운영 방향과 내용이 세부적으로 달라지는 구조이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 기간 동안 모든 교사들은 학생의 성장 과정을 리뷰하고 교과의 수업 목표나 진행 방식 등을 평가하여 다음 학기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수업으로 실현해 나간다. 그 과정 중 어려움이 생기면 통합교육 지원 테이블을 만들어 상의하고 문제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과 신입 양육자들을 대상으로 학교 철학과 통합교육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필수적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더해 인권 수업의 일환으로 초등 5년, 중등 5년 과정에서 ‘서로 함께’ 및 ‘시민 사회’ 수업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수업은 주 1회 필수 교과로 배치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통 감각을 키우고 차별이나 불평등 등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 가는 활동을 진행한다.

통합교육을 지원하는 교사들은 각 단위별 1명씩인데 이들로 이루어진 통합교육 지원 팀은 학생과 양육자, 교직원(강사, 보조 교사, 행정 및 급식실 등)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자조 모임을 포함한 그룹 모임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각 단위별 학생들의 동기와 의욕, 이해 속도나 방식, 의사소통 및 표현 등의 다양한 차이를 확인하고 특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경우 IEP를 구성하고 진행하는 것을 지원한다. 현재 공교육 시스템에서 진행하는 통합교육과 큰 차이가 있다면 학생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재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성미산학교에서도 보편적 교수-학습 설계를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며 개별 수업을 마련하여 보완하고 있는 지점에서는 어느 정도는 특수교육의 필요도 인정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측 불가하고 무임승차가 가능한, 프로젝트 중심의 통합교육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미산학교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프로젝트 수업과 교사의 역할 통합이다. 이 두 가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통합교육의 변화 과정 속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중요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프로젝트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전환했던 시도는 학생들의 동기와 의욕의 다양한 차이를 존중하고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위계와 체계를 중시하는 지식 중심의 교과 수업보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배움과 경험을 구성해 나가는 방식의 프로젝트 수업으로 전환하고 비중을 전체의 절반 이상으로 높여 운영하였다. 프로젝트 수업은 탐구 주제와 과제와 활동이 매개되어 소그룹 협동이 가능한 방식으로 배움과 경험이 구성이 된다. 이를 위해서 학생의 이해 정도 및 성취 수준의 차이에 따라 활동지를 마련하고 교구를 활용해서 활동을 구성해 왔던 기존 수업의 틀을 총체적으로 바꾸어야 했다. 학생과 학생 사이, 학생과 교사 사이, 학생의 그 전 경험과 새로운 경험 사이의 관계 역동을 전제로 교육 내용 및 활동을 구성하는 것을 중점에 두었기 때문에 서로의 경험의 다양한 차이가 필요하며 기존 수업과 다르게 시간을 구성해 나가는 새로운 감각이 필요했다. 프로젝트 계획은 진행 과정에서 학생들의 변화와 교육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며 성취 목표와 결과에 대해서도 예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과정에 집중하여 그 다음을 만들어 간다.

특히 프로젝트에서 주제 탐구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구성할 때 장애-비장애인 학생 통합 그룹의 협동 학습을 지향한다. 이때 협동은 1/n의 방식으로 분업하거나 역할 분담을 하지 않고 무임승차가 가능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자의 특성과 기대를 반영하여 필요하고 해야 할 일 외에 예외적인 일들을 다양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서로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이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기획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해서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발달장애인의 거부를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잘 되게 하기 위해 기여한 사람의 수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무임승차한 사람들은 덕분에 선물을 받은 기쁨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나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소통이 중요하다. 그래서 비언어적 표현 방식을 활용하거나 다양한 감각으로 소통하는 것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 문자 언어를 매개로 하는 소통이 어려운 학생의 경우는 토론이나 협의하는 과정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와 수단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 장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논의 과정을 대체할 수 있는 별도의 과제나 활동을 마련하거나 결정을 하는 마무리 과정에만 참여하게 하는 식이다.

프로젝트의 평가 과정에서 학생들은 에세이를 쓰거나 발표회를 하는 과정을 통해 경험을 해석하고 배움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때 문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학생의 경우에는 ‘공동 서사 쓰기’를 제안한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그룹의 학생들이 한 학생의 경험과 배움을 지켜보면서 발견해 낸 이야기를 중심으로 공동으로 에세이를 작성한다. 그리고 함께 고른 프로젝트 활동 사진들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공유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이나 타인을 새롭게 발견해 나가고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게 된다.

프로젝트 수업은 기존 체계화된 수업보다 우연하고 예측 불가한 상황 속에서 의외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예외를 경험하면서 기존 질서를 바꾸는 힘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공동의 일을 해 나가는 가운데 차이를 가진 타인을 알아 가고 함께함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잡다단한 어려움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도는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불화와 갈등, 실패와 시행착오는 다반사가 되기를 기대하고 또 그것을 통해 차이와 결핍이 보편적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프로젝트 수업의 매력이다.

물론 프로젝트 수업은 교사의 기획력과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방식이다. 프로젝트를 통해 성공의 경험에 집중하다 보면 기존 지식 중심의 교과 수업과 비슷해질 경우가 많고 학생들의 자유분방함을 허용하다 보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길을 잃기 십상이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새롭게 발견하고 함께 만들어 가면 좋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학생들이 그들의 ‘좋은 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와의 관계도 달라질 것이고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와의 관계도 넓어질 것이다.

현재 교육 현실은 일상적으로 타인과의 유대와 사회와의 연대를 경험하고 공동체를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사라진 상태다. 그것을 회복해 가는 교육적 방법으로서 프로젝트 중심의 통합교육과정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체계적이지 않고 통제 가능하지 않고 예측 불가하고 우연하고 실패 가능하고 산만과 난잡함이 예상되는 교육……. 프로젝트 수업은 그야말로 배움과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관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모든 교사가 통합교육 지원 교사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에서 두 번째 전환점은 특수교육을 지원하는 통합 교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가 통합교육 지원 교사(통합 교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교육과정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선택이었고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도 했다. 장애인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통합교육 지원 대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교사가 통합 교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기존의 분리된 역할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2016년 전까지만 해도 통합교육은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래서 통합교육은 특수 교사가 담당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교사가 통합 교사가 되는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장애 유무를 떠나 학교 안에 이미 다양한 정체성과 차이를 가지고 취약한 조건에 놓인 존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는 교육에 대해 공통의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서로 확인했다. 동시에 당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교사들의 팀워크를 중심으로 통합교육의 지향을 공부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기대와 의지도 뒷받침되었다.

담임이 통합교육을 주도하게 되면서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필요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이를 중심으로 수업 연구를 하는 흐름이 가능해졌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끼리 상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며 다른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로부터 대략 10여 년이 흐른 현재, 그 의지를 가진 교사들은 남아 있기도 하지만 신입 교사의 비중이 높아 교사회의 집단적 역량을 다시 리셋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실적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고 회의나 연수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서 통합교육에 대한 이해나 기대가 서로 달라지거나 실천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난감함을 해결해 가는 데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교사의 통합교육에 대한 ‘준비’와 공동체의 ‘감당 가능성’에 대한 걱정과 의심 앞에서 보수화되어 가는 상황을 직면하기도 한다. 교사의 돌봄 노동에 대해, 장애 학생의 학습 성취에 대해, 비장애인 학생의 역차별과 학습권(장애인 학생의 돌발 행동이 수업 방해라고 하거나, 장애인 학생의 개별 수업을 특별하게 지원하는 데 대한 반감을 갖는 경우) 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통합 교사의 능력을 평가하거나 개별 맞춤으로 분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생겼다. ‘무조건 장애-비장애인 학생을 한 공간에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냐’, ‘통합교육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시기상조다’, ‘지금은 실현하기 어렵다’. 어쩌면 성미산학교의 통합교육은 이런 말들에 대해 대응하고 저항할 대답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준비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준비한다 해도 우리의 무지와 무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고, 그래서 ‘부딪쳐 가며 실패하는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힘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교육이니 우리의 최선이 한계가 되고 그 한계가 다시 출구가 될 수 있도록 조급하게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말자’고. 그래서 다시 통합교육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추궁이 아니라 어떻게 감당해 갈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는 장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난 시간을 통해 모든 교사가 통합 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의 차이를 알아 가고 그 간극을 메워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험과 실패를 통해 가까스로 터득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미산학교에서의 통합 교사는 교육 장면이라는 상황에 휘말리고 복잡하게 얽히게 되는 경험을 하면서 쌓이게 되는 이야기가 풍요로워질 때 통합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 학생과 양육자도 함께 참여했을 때 통합교육의 역량이 쌓여 간다고 생각한다.

 

급진적 존재들이 바꾸는 학교와 교육

 

통합교육은 그동안 학교를 통해 어떤 사회를 재생산하려고 했는지 질문하게 한다. 동시에 우리가 왜 어떻게 서로를 돌보는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통합교육은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 공간에 있게 하는 것을 넘어 교육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경쟁을 통해 능력의 차이를 구별하고 입시 중심의 성취 교육을 지향한다면 통합교육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통합교육을 고민하다 보면 교육에서 무엇을 실패하고 있는지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능력과 입시 중심의 경쟁 교육 시스템은 유지한 채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 모순을 건드리지 않고 장애인 학생/양육자와 교사들 사이의 권리 싸움으로 프레임이 만들어진 것이 교육운동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시험으로 서열을 매기고 학력을 평가하고 학벌이 지배적인 사회는 이미 장애인에게는 차별적이다. 그래서 통합교육은 불평등한 경쟁 교육에 다른 교육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통합교육은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혁명이 될 수 있다고 예언한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에서 특정한 종류의 존재 방식을 낙인찍고 배제하는 조건과 착취의 구조를 탐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성미산학교의 지난 20여 년을 돌이켜 보면, 점점 시설화되어 가는 학교교육을 뛰어넘어 ‘대안교육’이 될 수 있게 만든 힘은 바로 다양한 차이와 감각을 가지고 급진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매력에 이끌려 나와 교사들은 새로운 시도와 다른 구조를 만들려고 고민해 왔으며 여기까지 소진되지 않고 꾸준하고 묵묵하게 탐구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공부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여전히 통합교육이 현재의 교육 체제의 불가능하고 무능함을 반면교사 삼으며 기존 교육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탈출구라고 믿는다.

 

나는 교육은 마음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마음을 생기게 하는 일이다. 통합교육은 그 마음을 만들어 가는 최전선에 있는 급진적 교육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꿈을 같이 실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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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