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호[특집] 도구화되는 공동체 그리고 저항적 공동체의 종말 (정용주)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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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마을교육공동체 만들기의 두 얼굴



도구화되는 공동체

그리고 저항적 공동체의 종말

 

정용주
서울 염경초, 본지 편집위원장
edcom234@gmail.com

이메일이 서너 개쯤 되고 혈액형은 성격 파악 어렵다는 AB형인 교사입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지만 의식은 점점 노동자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물질적인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시는 삭막하지 않다

 

자본주의 시대를 포함해 역사적으로 모든 도시는 동시대 권력의 망이 촘촘히 짜여 작동하는 시공간이었다. 모든 물자는 권력이 집중된 도시를 향했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도로, 통신, 경제의 망이 짜이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전前 자본주의적 도시의 기능을 흡수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가진 핵심적 기능인 자본의 재생산과 상품의 생산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편했다. 특히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며 농촌공동체 속의 개인을 신분으로부터 해방시켜 익명적인 개인, 아니 노동력을 팔아서 생존해야 하는 자유로운 임노동자로 만들며 이들을 도시로 호출했고, 개인은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들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했다.

 

이러한 상품화를 통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대의 끈을 끊어 버리고, 소외와 물화를 중심으로 관계를 재형성했지만 임노동자로서 개인이 권력의 강압에 의해 도시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집에서 살며 자동차를 타는 꿈을 도시 생활을 통해 이루고자 했다. 그래서 도시는 개인들을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며 다른 계급으로 가는 시간 이탈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임노동자로서 개인의 욕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전태일, 구로공단의 여공들과 같이 장시간의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이었다.

 

욕망과 착취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익명의 임노동자들은 초기 도시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같은 고향, 즉 공장 주변의 집단 거주촌에서 생활하며 일종의 재난공동체를 형성했고, 저항과 해방의 정치를 통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물화와 소외를 집단적으로 벗어나고자 했다. 그것은 익명의 노동력을 팔 자유밖에 없는 자들이 시민으로, 계급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도시는 해방의 정치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꿈꾸는 곳이기도 했다. 도시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심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저항과 봉기의 장소였다. 그래서 자본은 늘 자신들이 만들어낸 도시를 경계해야 했다. 그들이 발명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자유밖에 없는 임노동자가 자본에 의한 사적 욕망을 다른 공화국 건설이라는 공적 열망으로 전환시키고 이를 통해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도시는 셈해지지 않는 자들, 살아 있기만 한자들, 민족, 국가로부터 배제된 자들이 봉기하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권력, 해방의 정치, 개인적 욕망의 실현이라는 것들이 교차하면서 도시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며 점점 비대해져 갔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자본공동체,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공동체, 어느 정도의 욕망을 실현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모색해 가는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들이 만들어졌는데 공동체들 간의 소통은 점점 어려워졌다.


공동체를 통해 도시 내부의 이질성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도시는 점점 거대해졌고, 에너지, 주택, 식량 등 도시인과 직결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자정 능력을 상실해 갔다. 그래서 도시는 다른 도시나 마을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자기를 지속해야 했다. 그러므로 도시가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여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 속에서 나온 당연한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도시 재생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마을을 식민화하는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이러한 자본주의 도시가 삭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통제의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익명의 개인들은 도시 속에서 저항의 기운을 만들었고, 저항의 공동체를 통해 해방정치를 기획했다. 4.19 마산과 부산에서, 5.18 광주에서, 87년 6.10 서울의 거리에서 시민들은 해방의 광장을 만들었고 이 시공간에서 다른 공동체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러한 저항과 해방의 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도시가 공동체가 아니라 익명의 개인들로 구성된 다양하고 이질적인 실천과 담론들을 만들어내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개인들은 통치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영역에서 이탈하여 늘 헌법과 제도 정치의 외부에서 다른 공동체를 상상한다. 또한 익명의 자유로운 개인들에게 국경, 민족, 공동체는 수호해야 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정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러한 개인들을 봉합하여 공동체의 안전, 현재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발명해 낸다. 익명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해방적 정치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금지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긍정의 권력, 즉 자기 책임의 윤리를 확립하는 권력이다.

 

 

마을 만들기의 현주소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도시 봉기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고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이렇게 봉기의 가능성이 사라진 도시에서는 도시 공간에 대한 자본의 욕망이 무한히 증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배한다. 뉴욕에서, 파리에서, 도쿄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도시의 시공간은 자본의 재생산 함수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에서도 도시 정책은 사라지고 청계천 개발, 동대문 디자인 파크, 용산 재개발,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뉴타운과 같은 개발주의와 기업가주의적 도시 개발만이 서울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이다. 그리고 마을공동체가 부각되면 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차갑고 삭막한 곳, 비인간적인 곳으로 이야기된다. 도시가 삭막한 곳으로 묘사될수록 마을공동체로의 회귀를 도덕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개발 중심의 도시 정책으로 외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급속한 도시화와 경쟁 심화로 다양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소외문제를 겪어 왔습니다. 이러한 도시문제와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한 출발은 무엇보다 공동체의 회복에 있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제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급속한 도시화와 개발로 사라진 사람의 가치와 신뢰의 관계망 회복이 필요합니다.
                                                                                                                               - 서울시정개발연구원(2011)


이처럼 마을만들기와 같은 공동체 운동은 마을 만들기를 삭막한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비판적으로 보는 새마을운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도시인은 이기적이며 배타적이다. 따라서 협동심은 약하고 모든 일에 주관적이며 폐쇄적이다. 도시인은 현재 거주지에 특별한 애향심이 없다. 따라서 내 동네라는 관념과 애착이 없고, 항상 유동적이다. 이웃과 우리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며 사람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 내무부(1975), 새마을운동 길라잡이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해 새마을운동과 유사성을 이야기하자,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전근대적 마을과 지금의 마을 만들기 사업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마을은 농사짓던 시절의 마을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마을을 말합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며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고향을 떠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둥지를 틀면서 만들었던 마을입니다. (……) 근대 도시에서는 다양한 개인과 핵가족들이 모여 이웃이 되고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 때 생긴 말이지요. 온기 있는 동네, 삶의 지혜가 있는 공동체적 삶의 그릇 같은 마을이 분명 최근까지 서울 안에 있었습니다.

 - 서울시 마을 만들기 정책자료《서울, 마을을 품다》(2012)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마을 만들기는 사실 새마을 운동과 많이 닮아 있다. 새마을 운동도 마을이 전근대 속에 갇혀 있다는 비판 속에서 출발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통하던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을 도시에서 복원하면서 도시를 소속감, 연대감, 정착성, 공공성 등의 가치가 구현되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마을공동체의 전략 또한 공동체의 소속감을 통해 안전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전략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개발주의적 전략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뉴타운과 대비되는 대안 전략으로서 사람 커뮤니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개발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진보교육감이 추진하는 혁신학교 운동이 학교가 속해 있는 지역 사회로 확장되면서, 마을과 학교의 경계를 없애고 자유롭게 넘다들며 배우는 공간을 만들려는 전망 속에서 마을이 강조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을 단위로 공유하는 자원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가진 폭력성, 익명적이지 않음으로 인해 개인이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공동체의 일부로서 행동해야 하는 속성을 간과하고, 해방된 개인이 자동적으로 공동체적 삶에 동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마을공동체 사업이 사회적인 것들과 관련된 담론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자본, 사회적 책임, 사회적 투자, 사회적 네트워크 등과 함께하면서 마을공동체가 사회적인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마을공동체 자체가 낭만화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마을 만들기 사업의 통치전략 : 자발성, 기업가 정신, 마을의 등급화와 비즈니스화

 

마을 만들기는 일면 진보적인 면이 있지만, 사회를 다스리는 자원을 애써 다른 데서 찾기보다 지배하려는 사회 그 자체의 내부에서 찾는다는 측면과 비용의 최소화라고 하는 일반적 경제학 원칙에 부응하는 통치 방식이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경계해야 할 사업이기도 하다. 특히 통치 및 행정 비용의 절감을 위해 지역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전유하려는 시도는 새마을운동,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 나타났다.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가는 정부 재정에서 충당되었던 말단 행정기관의 운영 비용을 주민의 자발적 참여, 즉 주민 자치라는 기치 아래 주민들의 자발성과 봉사 정신을 전유함으로써 해결하려 하였다. 그래서 이때부터 지역 주민과 지역의 자치조직을 중심으로 한 지역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지역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형성을 강조한다.


서울시는 새마을 운동이 관 주도적이었던 것에 비해 마을 만들기 사업은 주민의 자발성이 가장 강조된다고 말하며 새마을 운동과 차별화를 꾀한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이 주민의 자발성이었다.

 

새마을 운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마을 주민들이며 행정기관이나 공무원은 이 운동의 지원자요, 협조자에 불과하다. 새마을 운동은 그와 같이 누가 시키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전주민이 새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사업을 결정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피동적이고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마을이 되어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내무부(1975), 새마을운동 길라잡이

 

이러한 주민의 자발성은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똑같이 강조된다. 특히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참여, 자유, 자율, 책임과 같은 용어들과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왜냐하면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핵심은 최종적으로 일자리와 복지 등을 마을에서 스스로 책임지고 관은 이러한 마을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 새마을운동처럼 자립 마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과 마을 만들기를 자발성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새마을 운동과 마을 만들기 모두에서 강조하는 주민의 자발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에 대한 칭송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발성의 강조는 현실의 고단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특유의 창의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우리 시대의 새로운 희망을 일궈낸 사람, 즉 기업가적 정신을 가진 마을 리더에 대한 칭송으로 이어진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헌법 제1조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소기업 사장이 될 수 있다”라고 바꾸자고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이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 박원순(2011), 《마을회사》, 검둥소

 

얼핏 보면 민주주의와 자발성에 대한 예찬이 다소 이율배반적인 기업가 정신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지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율성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려는 약한 정신 상태를 배척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율성을 체화한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에 대한 예찬은 성공적인 마을을 만드는 핵심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자발성, 기업가 담론은 현실의 고단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특유의 창의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을 이루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기업가 정신에 대한 예찬이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즉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과 자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끊임없는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 리더를 키워야 한다.

 

새마을운동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자조를 강조하면 할수록 행정 지도가 강화되는 모순을 낳았다. 그런데 마을 만들기에서 자율성과 기업가 정신의 결합이 새마을운동에서 자조와 행정 지도 강화의 결합보다 더 위험한 점이 있다. 새마을운동에서 주민은 행정기관에서 지도하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지만,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주민은 컨설팅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마을공동체가 발전하지 않는지,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것인지, 의지와 열정의 부족인지, 분석하고 역량을 강화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것은 모든 해답을 마을 밖이 아니라 마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다양한 방식의 사업을 주민들이 직접 고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업은 공모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마을공동체 사업을 담당하는 전문가는 비전을 제시하고 지원을 총괄하고 우수 사례를 전파하며 교육하고 커뮤니티 개설 및 운영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불협화음은 일어나지 않고, 마을에서는 서로가 네트워크와 커뮤니케이션을 조정하면서 통치 시스템을 안정화한다. 이들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마을공동체의 모델을 개발하고 전파하며, 마을공동체에 소속된 주민들을 보다 적절한 주체로 주조해 나간다.

 

마을에서 자발성을 고취시키며 마을 비즈니스를 성립시키는 방법은 마을을 분류하고 등급화하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에서는 마을을 기초 마을, 자조 마을, 자립 마을로 구분하여 모든 마을을 자립마을로 만들려고 했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도 마을은 씨앗 마을, 새싹 마을, 희망 마을이라는 용어로 분류되는데 새마을운동에 비해서 좀 더 친숙한 이미지를 갖는 용어로 등급화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분류는 교육과 관련한 마을 사업에서도 반복되는데 서울의 경우 교육청, 지차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내용을 심사하여 혁신교육 지구와 우선교육 지구를 구분하였다.

 

마을을 구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마을을 자립 마을처럼 희망 마을로 만드는 것이지만 당장은 예산을 차등 지원하기 위함이다. 물론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는 예산이 차등적으로 지급되어도 이는 새마을운동에서 사용하던 차별적인 정부 지원이 아니라 맞춤형 지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을리더를 중심으로 마을공모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표준 매뉴얼에 맞추어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마을은 다른 마을과 구별되는 마을 고유의 특성을 만들어 나가고 희망 마을로 선정되어 좀 더 많은 돈을 받기를 바란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예산과 연계된 이상 마을의 구분은 차등 지원을 위한 등급화이며, 낮은 등급의 마을은 각종 교육과 컨설팅, 인큐베이팅 서비스를 통해서 마을공동체에 잠재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고, 커뮤니티 정신을 고양시킬 마을 일꾼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면서 마을 만들기 사업의 경쟁 체제 안으로 편입된다.

 

이렇게 마을 만들기 사업의 경쟁 체제로 편입되면서 마을은 정해진 회계 양식과 실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의 표준 절차에 따라 각종 계획서, 제안서, 심사, 평가, 상담, 교육, 검토, 컨설팅, 협의 등을 따라야 한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마을 민주주의라는 장치를 통해 미리 정해 놓은 사업 계획서와 제안서라는 형식으로 표준화‧규격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을 만드는 데 있어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중요한 것이 마을 사업의 용어를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 사업은 새마을운동의 용어를 세련화시키면서 보다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새마을운동에서 사용되던 자조, 근면, 협동, 일꾼, 행정 지도 체계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기업가 정신, 자기계발, 임파워먼트, 파트너십, 커뮤니티빌더, 민관 거버넌스 또는 협력적 거버넌스로 변화한다. 이것은 단순한 용어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을 만들기 사업과 관련한 대부분의 용어는 경영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마을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을 만들기 사업은 지역 커뮤니티 영역 안에서 주민이 친밀한 유대 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찾고 이를 운영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이다. 마을 주민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노동력, 원자재, 노하우, 기술 등의 마을 자원을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지역 문제의 해결에 착수하고 이를 비즈니스로 성립시키며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마을 단위 비즈니스가 사회적인 담론으로서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투자, 사회적 네트워크라는 담론과 연결되면, 마을 비즈니스는 숨겨진 자원과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찾고 기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해결하는 공간, 즉 사회적인 것들을 계획하고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 된다.

 

 

도구화되는 공동체, 그리고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헤게모니 내면화

 

가장 큰 문제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자발성, 마을 비즈니스를 위한 기업가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마을의 공동체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즉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마을공동체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행정 구역을 단위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국가 중심적 사고에서 보면 미시적인 맥락에서 스스로 권력을 구성해 가며 공간을 주민 자율로 구성하고 재배치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행정 구역을 단위로 행정 기술, 통계 기술, 치안 기제, 경영 지식, 평가 체계, 조사 활동, 제도, 법률, 기관, 담론 등이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해 계산 가능하고 통치 가능한 공간으로 지역 사회가 변화되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확산되는 것과 함께 교육청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마을교육을 강조하면서, 마을교육을 위해 마치 일본의 토지 조사 사업처럼 마을의 가용 자원을 확인하고 조사하고, 측정하고, 기록하고, 계산하고, 문서화하고, 지도화하고, 관리하고, 분류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보이지 않던 마을이 가독성을 갖게 되고, 공동체는 통치 가능한 공간으로,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변한다. 공동체는 공동체 발전 프로그램에 의해 기획되어야 하며, 공동체 개발 담당관에 의해 개발되어야 하고, 공동체 경찰, 공동체 안전 프로그램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질 만한 삶의 목표, 이른바 생명의 목표인 건강, 장수, 안전, 행복 등과 같은 욕망들에 대해, 국가는 지배 대상에게 ‘하지 마’라고 하는 대신에 ‘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게 한다. 특히 전문지식이 동원되어 가시성과 가독성을 높이면서 공동체는 국가가 짊어진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존재로 호명되고 개인적 수준과 집단적 수준의 자기 계발 담론이 통합되도록 한다. 이러한 통합 과정을 통해 마을은 내부적으로 마을의 고유한 가치를 고안해 내지만, 외부적으로는 행정 단위와 국가를 넘어서서 이른바 다국적 마을이 되어 마을을 홍보하고, 타 지역, 국가, 세계를 대상으로 한 마을 마케팅을 실시한다.

 

마을은 시행착오, 조정, 학습 과정을 거쳐 마을에 적합한 통치 기술을 주민들 스스로 고안해낸다.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마을에 대한 통계 자료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마을을 성공 사례라는 데이터로 가공하고, 다른 마을에 벤치마크 모델로 제작하여 배포한다. 마을의 기업가적 주체들은 성공 사례를 다른 마을에 가서 증언하고, 벤치마킹을 위해 마을을 방문하는 외부인들에게 마을은 개방된다. 이러한 지식의 공유와 확산을 통해 주민들은 마을공동체에 인간적인 애착과 강한 책임감을 가질 것을 요구받는다.

 

다시 말해, 자연발생적으로 지리적으로 근접한 공간에서 특정한 시공간에 형성되어 지속되어 온 공동체와 달리, 끊임없이 계산 가능하고 통치 가능한 공동체로 변화되면서 공동체 자체가 마을 비즈니스에 의해 도구화된다. 그리고 실패와 갈등의 위협들은 이웃 간의 따뜻한 정과 협동심, 봉사정신, 희생정신으로 극복된다. 배고파서 울고 있는 옆집 갓난아기에게 자기 젖을 물려 주던 동네 이웃의 정 혹은 측은지심은 값싼 비용으로 육아 복지 서비스 제공의 의무를 처리해 버리고 싶은 국가나 지방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 포획된다. 개인은 공동체에 귀속된 개인으로 주체화되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이웃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마을공동체에게 인간적인 애착과 동시에 강한 책임감을 가질 것을 요구받는다. 여기에 마을이 학생들에게 교육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부터 모든 면에서 마을은 교육 비즈니스의 모델을 형성해 간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마을 만들기 과정은 개인의 삶을 사회적인 유대로 묶어 내고 책임이라는 윤리에 따라 각자가 담당할 몫을 분배함으로써 통치를 사회적인 것의 관리로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이는 자기 경영, 자기 관리, 자기 통치, 자기 책임, 기업가주의와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하는 주체를 이상화시키고 저항과 갈등을 이웃 간의 따뜻한 정과 협동심, 봉사정신, 희생정신 등으로 전환시키는 헤게모니의 내면화 과정이다.

 

헤게모니 내면화 과정으로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보적 관점에서 보다 문제인 것은 국가의 억압적 폭력에 항거했던 기억과 상처들을 마을 만들기 사업에 필요한 자원으로 가공한다는 것이다. 집합적 기억들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적극적으로 회고되고 동원되고 재생산되어 마을 만들기에 활용된다. 일례로 5.18의 기억을 마을 만들기로 연결시키는 좋은 예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5.18 때 보여준 민주, 인권, 사랑, 헌신, 나눔, 평등의 정신을 실천하는 시민참여가 바로 문화중심도시의 핵심이 돼야 한다. 환경과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물난리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정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질서의식이 모두 생활 속에서 5.18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뜻한 복지공동체를 만드는 것 역시 5.18 때 우리가 만든 공동체 정신의 승화인 것이다. (……)


그 동안 하수구 청소, 하수관거 공사, 배수펌프 설치 등의 예방조치를 해왔지만, 예산이 부족해 마무리하지 못한 곳이 많다. 주민을 물난리 수호천사로 위촉해 물난리 제보와 예방조치에 동참할 수 있게 미리 조직하면 좋겠다. 5.18 때 위기에 처한 광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 것처럼 물난리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 전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에 옮겨 감동적인 물난리 극복의 기적을 만들어 가자.

- 류동훈(2008), 《5.18로 끓여먹는 얼큰한 문화도시 - 희망제작소 지역희망찾기 08》. 이매진.
 

이렇게 모든 기억을 마을 만들기에 동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마을 만들기를 통해 바라는 이상적인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 없이도 아무런 문제없이 스스로 알아서 잘 돌아가는 마을, 다르게 표현하면 마을마다 건실한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가 있어서 장애인, 노약자, 외국인 노동자, 실업 문제 등을 내부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 만들기가 가진 심각한 문제는 마을 안에서 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 도시에서 진행되는 거주지 분화 현상에 침묵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주지 분화 현상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는 식의 중립적 차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구조가 드러나는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 공간은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개인은 상품화된 공간에 살며 공간을 합리적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의 공동체는 대부분 비슷한 계급에 기반을 둔 공동체이다. 아파트공동체가 주택 시장 참여 능력에 따른 자본의 배제와 포섭의 결과물인 것처럼, 마을공동체 만들기는 일종의 신분적 지위를 형성하고 보이지 않는 폐쇄성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는 하나의 공동체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이 교육 문제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대부분의 성공 사례는 학벌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저항 운동이 아닌 계급적 욕구이다. 예를 들어 학교 증설에 대한 운동, 장애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운동, 강남북 교육 불균형 해소를 위한 자립형 사립고 유치 운동 등이 마을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교육운동이다. 물론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학생들은 마을 속에서 진로를 탐색하고, 꿈과 끼를 키우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 교과 연계 프로젝트 활동,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한다. 마을의 학부모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교육 문제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인권적‧친환경적‧생태적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방과 후 공동육아 운동을 진행하고 친환경 체험을 통해 입시 위주 교육이 아닌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진행한다. 이러한 실천들은 의미 있는 운동이지만, 이러한 운동이 입시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다시 배제와 포섭이라는 전략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가질 수 있는 진보적 가능성을 쉽게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 만들기와 마을 결합형 학교 운동에서는 민주주의와 기업가 정신, 자율성과 컨설팅이라는 서로 상충되고 모순되어 보이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실천들이 접합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이질성을 드러내면서 해방적 정치를 가능하게 했던 흐름을 계산 가능하고 통치 가능한 형태로 변화시킨다. 마을 만들기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결론이 헤게모니가 내면화되는 것이라면 이는 우려할 만한 것이다. 저항적 실천과 운동, 그리고 변혁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절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이다.




참고 자료


박주형(2013), 〈서울의 공간과 정책 ; 도구화되는 "공동체" 서울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공간환경학회 《공간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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