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온라인 수업과 강사의 위험한 영향력
교육과 사회의 ‘비선 실세’, 인강 강사
- 인터넷 강의 강사들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고민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교사.
진학이나 취업보다 고교 3년의 삶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교사입니다.
인강 강사를 보며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에서 현우진이나 정승제 같은 유명 강사가 썰을 푸는 ‘짤’들을 본 적도 있고, 그들의 문제 풀이 영상이나 개념 강의 영상을 본 적도 있다. 영상을 보다 보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도 그들처럼 강의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보며 경계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래서 라이벌이라는 느낌 없이 영상을 봤다. 김연경과 손흥민이 서로를 라이벌로 느끼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이다. 난 내가 현우진이나 정승제와 다른 종목의 선수라고 생각했다. 난 배구를 하고 있고 그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학교의 수학 교사이고 그들은 대형 강의 사이트의 ‘1타’ 수학 강사이니, 학생들에게 수학 강의를 하는 것은 같지만 그건 마치 배구나 축구나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라는 정도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들보다 축구는 확실히 못한다. 그런 사실에 별로 영향받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점점 그들이 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다가 배구 선수들이 발로만 배구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러다 보면 배구도 축구도 아닌 족구가 되어 버릴 텐데……. 걱정이 된다. 그들이 배구를 잘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배구를 잘하고 배구 선수까지 해도 상관없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배구 선수들이 축구 선수처럼 되려는 상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배구라는 종목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글의 시작부터 비유가 많아 애매한가? 학원 강사의 말투로 주입시키면 이런 거다. “배구는 교육이고, 축구는 입시야. 왜냐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하려는 건 설득이 아니에요. 그냥 기억하라고. 날 믿어. 난 대한민국에서 압도적인 1등 강사니까.”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 사이에서
난 학교를 자퇴했다. 나만큼 교사들을 싫어했던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학교의 교사들을 정말 싫어했다. 교과 내용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는 형편없는 실력에, 실력이 들통날까 질문하는 학생들은 무시하고, 재미없어하는 학생들은 윽박지르고 때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의 교사의 이미지였다. 그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교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퇴하고 1년이 지난 뒤에 대학을 가기 위해 보게 된 〈EBS〉 선생님들은 대단해 보였다. 저런 교사들이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 학교에 있었다면 자퇴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정과 말투는 정말 친절했고 수업 내용도 너무 좋았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학교를 자퇴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교사들에 대한 실망과 지금 같은 학교를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기로 결심만 했지,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미지는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우선 대학을 가기 위해 〈EBS〉 강의를 듣고 있자니 화면 속 선생님들의 모습은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땐 아직 인강의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대치동의 현장 강의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그래도 낭만이 있었나 싶다. 내 롤 모델이 되어 주던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학교의 선생님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지 수학이 좋고 국어가 좋아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EBS〉 강의 시간이 아니면 학교에서 여러분들 같은 학생들과 만나서 생활하는 학교의 교사라고 강조했다. 수업을 듣고 있는 나조차 그런 착각을 가졌다. 언제든 교무실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선생님 같았고, 내가 그들과 같은 학교에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분들 덕분에 수능을 잘 보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들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 같지 않았으니까. 교수님들은 친절하지 않았고 같은 내용도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 같았다. 선생님보다는 연구자의 모습이어서 교사 롤 모델로는 삼을 수가 없어 보였다. 수학 교수들이든 교육학 교수들이든 대학 1학년 때의 내가 보기엔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교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나를 인도해 주던 〈EBS〉의 선생님들이 그때 내가 되고자 하던 교사의 모습들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건 바로 이만기 선생님이 문일여고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절대로 돈 때문에 사교육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큰소리치며 자신은 공교육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EBS〉 강의를 한다고 했는데, 결국 메가스터디로 가 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수학교육을 하기로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소순영 선생님도 서울과학고를 떠났다. 이만기와 소순영의 학원 진출로 인해 난 롤 모델을 잃었다.
같은 과의 선배들과 동기들 중엔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학교엔 갈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배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수학을 가르쳐 주고 싶고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고 싶다면 학원 강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도 학생일 때 그랬다고, 교사는 학생의 선택으로 만나지도 못하고 만나도 1년 정도 수업 시간에만 만나지만, 학원 강사는 몇 년을 본인을 선택해서 온 학생들과 만나고 저녁 시간을 내내 같이 보내니 훨씬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나도 그러면 학원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야 학생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그곳에 가면 수입도 훨씬 크다. 경쟁은 치열하겠지만 나 정도면 몇 년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유명한 강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났다. 내가 목표로 한 것은 돈도 아니었고 수학도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부수려는 사람이니 학교로 가야만 했다. 나는 몇 년 후 학교에 가게 되었다. 처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고 학교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또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학교를 부숴 버리진 않았고 때로는 학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여전히 교사들의 모습을 싫어하고 학교가 불편하지만 완전히 학교가 없어지면 안 될 것 같고 학교엔 좋은 분들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학교가 유지될지, 소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구 선수 같은 교사들이 남아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된 것 같다.
인강은 누가 관리·감독하나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흐름이었을 텐데, 내가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세계이니 인터넷 강의, 인강의 세계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학생들이 인강 강사 수업을 듣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어차피 내가 가는 길이 아니라 큰 관심을 두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이제 인강은 거대해졌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시장이 학생들의 인강 강의비를 지원하자고 했을 때 한 서울시의원이 ‘검증’이라는 말을 꺼내서 논란이 되었다. ‘1타 수학 강사 현우진이 화가 났다’라는 내용의 영상과 기사들을 보고 현우진이라는 강사의 힘을 체감했다.❶ 시장보다, 시의원보다 현우진의 영향력이 더 커 보였다. 감히 시의원이 스탠퍼드 대학 출신 대한민국 1타 강사를 검증 운운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검증이라는 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인강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기에 검증은 필요하다. 교사 자격증의 유무 같은 검증 말고,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개인 사업자로서의 검증은 필요하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에 반인권적인 요소가 있지 않은지, 강의를 하는 도중에 학생 고객에 대한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는 것들은 없는지와 같은 관리· 감독은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규제보다 대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은 개인이지만 대기업이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학교 수업을 듣고 보충으로 인강을 듣던 시절이 아니다.
인강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지만, 최근의 인강은 완전히 다르다. 20년 전 한석원, 삽자루의 강의는 지금 보면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강사 수도 엄청나게 많고 그들 사이에 경쟁도 치열하다. 코로나19 이후로 ‘현강’이 불가능해지면서 인강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메가패스, 이투스패스 같은 인강 패스를 한 번도 결제해 보지 않은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학교 교사들의 수업이 소극장 공연이라면 인강은 아이돌 공연 같은 것이라 눈과 귀를 휘어잡는다. 그렇기에 유명 인강 강사의 수강생 수는 몇백이나 몇천이 아니다. 만단위이거나 십만을 넘는다. 수업이나 학원의 현강은 수강 인원이 제한적인데 인강은 그렇지 않다.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은 고도화된다. 커뮤니티에선 누가 가장 좋은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누가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찾아온다. 1등이 되면 수백억 원의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1등을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리에 도전하는 신인들이 계속 들어온다. 한때 한석원이 누리던 자리에 신승범이 있었고 정승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우진이다. 흡사 아이돌의 세계 같다.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1등에 점점 더 수강생이 몰린다. 1등의 자리를 뺏기면 금세, 한물간 아이돌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듣는 핀잔처럼 누가 요즘 그 사람 강의를 듣느냐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더더욱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강사라기보단 사업가의 모습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잘 팔기 위해서라면 각본처럼 연기도 하고 라이벌을 비하하기도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를 전설 속의 인물처럼 포장하기도 하고 웃기기 위해 무리한 개그를 친다. 집중력을 높인다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욕을 섞기도 한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수가 중요하지 않은 세계다. 그 몇몇이 강의를 거부해도 상관없다. 훨씬 더 많은 대중이 웃고 선택해 주면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반말을 하며 욕을 해도 웃기다는 소문이 나면 그것만으로도 결제하는 수강생은 늘어난다. “1타”라는 말, “누적 수강생 1위”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것으로 수입은 보증된다. 그렇게 몇 년이면 건물주가 되는 세상인데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피드백이 중요할 리 없다.
그래도 딱 그 정도면 될 텐데, 그들의 영향력은 학생들에게 점점 더 절대적인 것이 되고 있다. 건물주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건물주인 수학 강사는 더 이상 수학만을 가르쳐 주는 강사가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이 인생의 명언이 되고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이상적인 삶의 태도가 된다. 단지 몇백 명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교사나 현강을 하는 강사가 가진 영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학교의 교사나 학원의 강사도 주제넘게 ‘인성교육’을 한다며 함부로 인생을 규정하고 반인권적인 말들을 하곤 한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별로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인강 강사들의 경우엔 다르다.
수강생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의 성공한 인간으로 포장되어 있기에 수강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들이 농담처럼 하는 그 말들이 모여 자본주의의 세계는 점점 더 굳건해진다. 강남에 주차할 곳이 없었는데 내 건물이 보여서 주차했다는 말, 대학에 가 봐야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니 대학 이름만 보라는 말, 대학을 잘 가는 것은 롯데월드에서 프리미엄 패스를 손목에 차는 것과 같다는 말, 돈이 많아서 떡볶이 같은 것은 먹지 않는다는 말, 인강에서 나오는 그런 말들을 그냥 농담이겠거니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점점 영향력을 넓히는 인강
또 하나의 우려는 영역의 확대이다. 인문학 붐이 일면서 인문학조차 수능 강의마냥 주입식으로 해 주는 방송들이 늘었고, 그 자리에 인강 강사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인강 사회 탐구의 세계에서 1타 강사였던 설민석과 최진기는 방송가에서 섭외 1순위였다. 어느새 설민석을 모르는 학생이 없던 정도에서 설민석을 모르는 국민이 없는 정도로 바뀌었다. 대치동의 스타 설민석이 국민의 멘토, 역사 강의의 신으로 승격되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들의 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지만 지금은 둘 다 사라졌다. 수능 인강 강사로만 살았다면 아무 탈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사이좋게 대중 강연의 세계로 발을 넓혔고, 이카루스처럼 추락했다. 그들의 추락을 보며 그들의 지적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설민석의 논문이 문제가 되었고 최진기의 강의에서 사실 관계가 잘못된 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일 수 없다. 애초에 인강의 세계가 그런 곳이다. 수능을 위해 존재하는 강의, 오로지 수능 문제를 맞히기 위해 훈련하는 곳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강의 세계에서 전공 지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어 강사인 조정식은 법대 출신이다. 현우진이 스탠퍼드 대학 수학과 출신이라고 유명하지만 스탠퍼드에서의 배움이 수능 강의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엄청나게 대단한 내용을 수업하지도 않는다. 이미 학문적 정리가 끝나고백 년 가까이 만들고 점검하면서 완벽하게 통제된 문제들만이 입시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보기 5개로 아무런 논란 없이 통과할 문제들로 채워진 수능 시험이니 그럴밖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배운 현우진이든 서울대에서 수학을 배운 한석원이든, 그들은 수능 수학 전문가이지 수학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수능의 범위를 벗어나면 틀릴 수 있다. 설민석과 최진기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수능 과목 ‘국사’와 ‘경제’가 아니라 세계사와 미술사를 말하다 보면 틀릴 수밖에 없다. 틀릴 수도 있다. 어떻게 언제나 오류 없이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사라면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도 스스로 검증을 거쳐야 하고, 검증을 거쳤다 하더라도 여지를 두고 말해야 한다. 인생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듯 말하는 것도, 청소년의 삶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해서도 안 되고 자기 전공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수백 년을 이어 온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과정은 틀리고 결과만 맞는 법칙이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이 아닌 영역은 어떻겠는가. 더 조심하고 더 경계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인강 강사들에게 그런 모습은 약점이 된다. 상대 평가 속에서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해야만 1등급을 딸 수 있는 학생들, 그들에게 조심스러운 말, 경계하며 하는 말을 하면 수강생에게 두려움이나 주는 꼴이다. 확실하게 말해야 하고 이것이 맞고 이것만이 옳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 강의도 결제할 것이다.
인강 강사의 전공 영역은 수능
인강의 세계가 커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인강을 듣는 것도 막기 어렵다. 그들이 하는 강의에서 반인권적인 말과 행동을 당장 규제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난 무엇을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나. 수능을 폐지하지 않는 한 교사들의 수업보다 인터넷 강의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도 알면서,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사들과 대중을 설득해 보고 싶어서다.
우선 교사들을 설득하고 싶다. 많은 교사가 인강 강사들을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강 강사를 이겨 보겠다고 인강 강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학생을 폭력적으로 대하게 된다. 주입식 강의를 하며 편향적인 내용만을 가르치게 되고 생각을 하지 않고 외우는 학습만 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봐야 인강 강사 못 이기니,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증명은 내가 다 했으니 너넨 외워서 문제나 빨리 풀라고 하는 강의가 아니라, 함께 증명하면서 증명이라는 것이 수학에서 왜 중요한지를 알려 주는 교사가 학교에는 더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도 인권 친화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수업과 연계하여 성평등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 되도록 연구하는 교사들이 학교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런 힘이 느껴지는 학교라면 인강 강사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도 하나 부탁드리자면, 인강 강사들의 영역은 충분히 존중하되 그 이상의 영역에 대해서까지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은 경계해 달라는 것이다. 애초에 최진기가 미술사를 강의하고 설민석이 독서 강의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방송국은 그냥 ‘잘 팔리는 강사에게라면 뭐든 맡기면 되겠지’라는 마음이었을 텐데, 그것을 보는 대중들도 비슷한 모습 아니었을까 싶다. ‘설민석이나 최진기라면 뭐든 잘 연구해서 정확하고 재미있게 말해 주겠지.’ 그런데 그럴 수는 없다. 정승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초등 수학의 영역에서까지 전문가이진 않다. 그런데도 미디어는 온갖 수학교육 영역에서 정승제를 초빙한다. 초등 수학교육을 전공으로 하고 수십 년간 연구한 학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가 방송에 나와도 아무도 안 보겠지만 정승제의 방송은 사람들이 찾아본다. 이런 상황에선 제2의 설민석과 최진기가 계속 나올 것이다. 인강 세계의 스타 강사는 많고 그들은 언제든 방송계로 진출할 수 있다. 현우진, 조정식, 이다지, 이지영 등 아무나 TV에 나와도 금방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잘 포장하고 잘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에 미디어를 잘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영역은 정해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강 강사의 주 전공은 수학도 과학도 영어도 아니다. 그들의 전공은 수능이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 사회는 그들의 부전공이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 사회를 전공으로 하는 분들은 대학과 연구소에 있다. 섣불리 누군가에게 전문가라는 위치를 부여하고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인강 강사든 대학 교수든 마찬가지다. 수학 강사든, 수학과 교수든 그들이 말하는 수학은 언제나 수학의 한부분일 뿐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으니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는 기울일지라도 또한 경계하여야만 한다.
글 초입에 한 비유도 마찬가지였다. 배구가 꼭 교육이란 게 아니었고 축구가 꼭 입시를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 글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난 수학 교사이고 학생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것이 수학교육의 진수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 학생인권에 관한 가장 절대적인 텍스트도 아니다. 이렇게 길게 지면을 차지하며 말하고자 하는 것이 확신에 찬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확신에 찬 말이 아니라 길어졌다. 조심스럽게 쓴 글이니 경계하며 읽어 주셨기를 바란다.
❶ “서울런 둘러싼 논란, 사교육 업계에까지 불똥”, 〈파이낸셜뉴스〉, 2021년 9월 2일.
기획 / 온라인 수업과 강사의 위험한 영향력
교육과 사회의 ‘비선 실세’, 인강 강사
- 인터넷 강의 강사들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고민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교사.
진학이나 취업보다 고교 3년의 삶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교사입니다.
인강 강사를 보며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에서 현우진이나 정승제 같은 유명 강사가 썰을 푸는 ‘짤’들을 본 적도 있고, 그들의 문제 풀이 영상이나 개념 강의 영상을 본 적도 있다. 영상을 보다 보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도 그들처럼 강의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보며 경계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래서 라이벌이라는 느낌 없이 영상을 봤다. 김연경과 손흥민이 서로를 라이벌로 느끼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이다. 난 내가 현우진이나 정승제와 다른 종목의 선수라고 생각했다. 난 배구를 하고 있고 그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학교의 수학 교사이고 그들은 대형 강의 사이트의 ‘1타’ 수학 강사이니, 학생들에게 수학 강의를 하는 것은 같지만 그건 마치 배구나 축구나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라는 정도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들보다 축구는 확실히 못한다. 그런 사실에 별로 영향받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점점 그들이 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다가 배구 선수들이 발로만 배구를 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그러다 보면 배구도 축구도 아닌 족구가 되어 버릴 텐데……. 걱정이 된다. 그들이 배구를 잘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배구를 잘하고 배구 선수까지 해도 상관없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배구 선수들이 축구 선수처럼 되려는 상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배구라는 종목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글의 시작부터 비유가 많아 애매한가? 학원 강사의 말투로 주입시키면 이런 거다. “배구는 교육이고, 축구는 입시야. 왜냐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하려는 건 설득이 아니에요. 그냥 기억하라고. 날 믿어. 난 대한민국에서 압도적인 1등 강사니까.”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 사이에서
난 학교를 자퇴했다. 나만큼 교사들을 싫어했던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학교의 교사들을 정말 싫어했다. 교과 내용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는 형편없는 실력에, 실력이 들통날까 질문하는 학생들은 무시하고, 재미없어하는 학생들은 윽박지르고 때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의 교사의 이미지였다. 그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교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퇴하고 1년이 지난 뒤에 대학을 가기 위해 보게 된 〈EBS〉 선생님들은 대단해 보였다. 저런 교사들이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그런 학교에 있었다면 자퇴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정과 말투는 정말 친절했고 수업 내용도 너무 좋았다. 내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학교를 자퇴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교사들에 대한 실망과 지금 같은 학교를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기로 결심만 했지,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미지는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우선 대학을 가기 위해 〈EBS〉 강의를 듣고 있자니 화면 속 선생님들의 모습은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땐 아직 인강의 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대치동의 현장 강의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그래도 낭만이 있었나 싶다. 내 롤 모델이 되어 주던 선생님들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학교의 선생님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지 수학이 좋고 국어가 좋아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EBS〉 강의 시간이 아니면 학교에서 여러분들 같은 학생들과 만나서 생활하는 학교의 교사라고 강조했다. 수업을 듣고 있는 나조차 그런 착각을 가졌다. 언제든 교무실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선생님 같았고, 내가 그들과 같은 학교에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분들 덕분에 수능을 잘 보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들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은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 같지 않았으니까. 교수님들은 친절하지 않았고 같은 내용도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 같았다. 선생님보다는 연구자의 모습이어서 교사 롤 모델로는 삼을 수가 없어 보였다. 수학 교수들이든 교육학 교수들이든 대학 1학년 때의 내가 보기엔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교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나를 인도해 주던 〈EBS〉의 선생님들이 그때 내가 되고자 하던 교사의 모습들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건 바로 이만기 선생님이 문일여고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절대로 돈 때문에 사교육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큰소리치며 자신은 공교육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EBS〉 강의를 한다고 했는데, 결국 메가스터디로 가 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수학교육을 하기로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소순영 선생님도 서울과학고를 떠났다. 이만기와 소순영의 학원 진출로 인해 난 롤 모델을 잃었다.
같은 과의 선배들과 동기들 중엔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학교엔 갈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배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수학을 가르쳐 주고 싶고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고 싶다면 학원 강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도 학생일 때 그랬다고, 교사는 학생의 선택으로 만나지도 못하고 만나도 1년 정도 수업 시간에만 만나지만, 학원 강사는 몇 년을 본인을 선택해서 온 학생들과 만나고 저녁 시간을 내내 같이 보내니 훨씬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잠깐이지만 나도 그러면 학원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야 학생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그곳에 가면 수입도 훨씬 크다. 경쟁은 치열하겠지만 나 정도면 몇 년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유명한 강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루 이틀 만에 끝났다. 내가 목표로 한 것은 돈도 아니었고 수학도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부수려는 사람이니 학교로 가야만 했다. 나는 몇 년 후 학교에 가게 되었다. 처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그리고 학교에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처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또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학교를 부숴 버리진 않았고 때로는 학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여전히 교사들의 모습을 싫어하고 학교가 불편하지만 완전히 학교가 없어지면 안 될 것 같고 학교엔 좋은 분들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학교가 유지될지, 소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구 선수 같은 교사들이 남아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된 것 같다.
인강은 누가 관리·감독하나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흐름이었을 텐데, 내가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세계이니 인터넷 강의, 인강의 세계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학생들이 인강 강사 수업을 듣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어차피 내가 가는 길이 아니라 큰 관심을 두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이제 인강은 거대해졌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시장이 학생들의 인강 강의비를 지원하자고 했을 때 한 서울시의원이 ‘검증’이라는 말을 꺼내서 논란이 되었다. ‘1타 수학 강사 현우진이 화가 났다’라는 내용의 영상과 기사들을 보고 현우진이라는 강사의 힘을 체감했다.❶ 시장보다, 시의원보다 현우진의 영향력이 더 커 보였다. 감히 시의원이 스탠퍼드 대학 출신 대한민국 1타 강사를 검증 운운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검증이라는 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인강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기에 검증은 필요하다. 교사 자격증의 유무 같은 검증 말고,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개인 사업자로서의 검증은 필요하다. 그들의 언어와 행동에 반인권적인 요소가 있지 않은지, 강의를 하는 도중에 학생 고객에 대한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는 것들은 없는지와 같은 관리· 감독은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규제보다 대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은 개인이지만 대기업이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학교 수업을 듣고 보충으로 인강을 듣던 시절이 아니다.
인강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지만, 최근의 인강은 완전히 다르다. 20년 전 한석원, 삽자루의 강의는 지금 보면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강사 수도 엄청나게 많고 그들 사이에 경쟁도 치열하다. 코로나19 이후로 ‘현강’이 불가능해지면서 인강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메가패스, 이투스패스 같은 인강 패스를 한 번도 결제해 보지 않은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학교 교사들의 수업이 소극장 공연이라면 인강은 아이돌 공연 같은 것이라 눈과 귀를 휘어잡는다. 그렇기에 유명 인강 강사의 수강생 수는 몇백이나 몇천이 아니다. 만단위이거나 십만을 넘는다. 수업이나 학원의 현강은 수강 인원이 제한적인데 인강은 그렇지 않다.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은 고도화된다. 커뮤니티에선 누가 가장 좋은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누가 좋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찾아온다. 1등이 되면 수백억 원의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1등을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리에 도전하는 신인들이 계속 들어온다. 한때 한석원이 누리던 자리에 신승범이 있었고 정승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우진이다. 흡사 아이돌의 세계 같다.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1등에 점점 더 수강생이 몰린다. 1등의 자리를 뺏기면 금세, 한물간 아이돌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듣는 핀잔처럼 누가 요즘 그 사람 강의를 듣느냐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더더욱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강사라기보단 사업가의 모습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잘 팔기 위해서라면 각본처럼 연기도 하고 라이벌을 비하하기도 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를 전설 속의 인물처럼 포장하기도 하고 웃기기 위해 무리한 개그를 친다. 집중력을 높인다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욕을 섞기도 한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을 때도 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수가 중요하지 않은 세계다. 그 몇몇이 강의를 거부해도 상관없다. 훨씬 더 많은 대중이 웃고 선택해 주면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반말을 하며 욕을 해도 웃기다는 소문이 나면 그것만으로도 결제하는 수강생은 늘어난다. “1타”라는 말, “누적 수강생 1위”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것으로 수입은 보증된다. 그렇게 몇 년이면 건물주가 되는 세상인데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피드백이 중요할 리 없다.
그래도 딱 그 정도면 될 텐데, 그들의 영향력은 학생들에게 점점 더 절대적인 것이 되고 있다. 건물주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건물주인 수학 강사는 더 이상 수학만을 가르쳐 주는 강사가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이 인생의 명언이 되고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이상적인 삶의 태도가 된다. 단지 몇백 명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교사나 현강을 하는 강사가 가진 영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학교의 교사나 학원의 강사도 주제넘게 ‘인성교육’을 한다며 함부로 인생을 규정하고 반인권적인 말들을 하곤 한다. 그래도 다행히 그런 이야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별로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인강 강사들의 경우엔 다르다.
수강생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의 성공한 인간으로 포장되어 있기에 수강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들이 농담처럼 하는 그 말들이 모여 자본주의의 세계는 점점 더 굳건해진다. 강남에 주차할 곳이 없었는데 내 건물이 보여서 주차했다는 말, 대학에 가 봐야 전공이 중요한 게 아니니 대학 이름만 보라는 말, 대학을 잘 가는 것은 롯데월드에서 프리미엄 패스를 손목에 차는 것과 같다는 말, 돈이 많아서 떡볶이 같은 것은 먹지 않는다는 말, 인강에서 나오는 그런 말들을 그냥 농담이겠거니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점점 영향력을 넓히는 인강
또 하나의 우려는 영역의 확대이다. 인문학 붐이 일면서 인문학조차 수능 강의마냥 주입식으로 해 주는 방송들이 늘었고, 그 자리에 인강 강사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인강 사회 탐구의 세계에서 1타 강사였던 설민석과 최진기는 방송가에서 섭외 1순위였다. 어느새 설민석을 모르는 학생이 없던 정도에서 설민석을 모르는 국민이 없는 정도로 바뀌었다. 대치동의 스타 설민석이 국민의 멘토, 역사 강의의 신으로 승격되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들의 인기는 영원할 줄 알았지만 지금은 둘 다 사라졌다. 수능 인강 강사로만 살았다면 아무 탈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사이좋게 대중 강연의 세계로 발을 넓혔고, 이카루스처럼 추락했다. 그들의 추락을 보며 그들의 지적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설민석의 논문이 문제가 되었고 최진기의 강의에서 사실 관계가 잘못된 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일 수 없다. 애초에 인강의 세계가 그런 곳이다. 수능을 위해 존재하는 강의, 오로지 수능 문제를 맞히기 위해 훈련하는 곳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강의 세계에서 전공 지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어 강사인 조정식은 법대 출신이다. 현우진이 스탠퍼드 대학 수학과 출신이라고 유명하지만 스탠퍼드에서의 배움이 수능 강의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엄청나게 대단한 내용을 수업하지도 않는다. 이미 학문적 정리가 끝나고백 년 가까이 만들고 점검하면서 완벽하게 통제된 문제들만이 입시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보기 5개로 아무런 논란 없이 통과할 문제들로 채워진 수능 시험이니 그럴밖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배운 현우진이든 서울대에서 수학을 배운 한석원이든, 그들은 수능 수학 전문가이지 수학의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수능의 범위를 벗어나면 틀릴 수 있다. 설민석과 최진기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수능 과목 ‘국사’와 ‘경제’가 아니라 세계사와 미술사를 말하다 보면 틀릴 수밖에 없다. 틀릴 수도 있다. 어떻게 언제나 오류 없이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사라면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도 스스로 검증을 거쳐야 하고, 검증을 거쳤다 하더라도 여지를 두고 말해야 한다. 인생을 한 문장으로 축약하듯 말하는 것도, 청소년의 삶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해서도 안 되고 자기 전공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수백 년을 이어 온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과정은 틀리고 결과만 맞는 법칙이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이 아닌 영역은 어떻겠는가. 더 조심하고 더 경계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인강 강사들에게 그런 모습은 약점이 된다. 상대 평가 속에서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해야만 1등급을 딸 수 있는 학생들, 그들에게 조심스러운 말, 경계하며 하는 말을 하면 수강생에게 두려움이나 주는 꼴이다. 확실하게 말해야 하고 이것이 맞고 이것만이 옳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 강의도 결제할 것이다.
인강 강사의 전공 영역은 수능
인강의 세계가 커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인강을 듣는 것도 막기 어렵다. 그들이 하는 강의에서 반인권적인 말과 행동을 당장 규제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난 무엇을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나. 수능을 폐지하지 않는 한 교사들의 수업보다 인터넷 강의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도 알면서,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사들과 대중을 설득해 보고 싶어서다.
우선 교사들을 설득하고 싶다. 많은 교사가 인강 강사들을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강 강사를 이겨 보겠다고 인강 강사처럼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학생을 폭력적으로 대하게 된다. 주입식 강의를 하며 편향적인 내용만을 가르치게 되고 생각을 하지 않고 외우는 학습만 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봐야 인강 강사 못 이기니, 아예 시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증명은 내가 다 했으니 너넨 외워서 문제나 빨리 풀라고 하는 강의가 아니라, 함께 증명하면서 증명이라는 것이 수학에서 왜 중요한지를 알려 주는 교사가 학교에는 더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도 인권 친화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수업과 연계하여 성평등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이 되도록 연구하는 교사들이 학교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런 힘이 느껴지는 학교라면 인강 강사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도 하나 부탁드리자면, 인강 강사들의 영역은 충분히 존중하되 그 이상의 영역에 대해서까지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은 경계해 달라는 것이다. 애초에 최진기가 미술사를 강의하고 설민석이 독서 강의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방송국은 그냥 ‘잘 팔리는 강사에게라면 뭐든 맡기면 되겠지’라는 마음이었을 텐데, 그것을 보는 대중들도 비슷한 모습 아니었을까 싶다. ‘설민석이나 최진기라면 뭐든 잘 연구해서 정확하고 재미있게 말해 주겠지.’ 그런데 그럴 수는 없다. 정승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초등 수학의 영역에서까지 전문가이진 않다. 그런데도 미디어는 온갖 수학교육 영역에서 정승제를 초빙한다. 초등 수학교육을 전공으로 하고 수십 년간 연구한 학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가 방송에 나와도 아무도 안 보겠지만 정승제의 방송은 사람들이 찾아본다. 이런 상황에선 제2의 설민석과 최진기가 계속 나올 것이다. 인강 세계의 스타 강사는 많고 그들은 언제든 방송계로 진출할 수 있다. 현우진, 조정식, 이다지, 이지영 등 아무나 TV에 나와도 금방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잘 포장하고 잘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에 미디어를 잘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영역은 정해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강 강사의 주 전공은 수학도 과학도 영어도 아니다. 그들의 전공은 수능이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 사회는 그들의 부전공이다. 수학이나 과학, 영어, 사회를 전공으로 하는 분들은 대학과 연구소에 있다. 섣불리 누군가에게 전문가라는 위치를 부여하고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인강 강사든 대학 교수든 마찬가지다. 수학 강사든, 수학과 교수든 그들이 말하는 수학은 언제나 수학의 한부분일 뿐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으니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는 기울일지라도 또한 경계하여야만 한다.
글 초입에 한 비유도 마찬가지였다. 배구가 꼭 교육이란 게 아니었고 축구가 꼭 입시를 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 글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난 수학 교사이고 학생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것이 수학교육의 진수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이 학생인권에 관한 가장 절대적인 텍스트도 아니다. 이렇게 길게 지면을 차지하며 말하고자 하는 것이 확신에 찬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확신에 찬 말이 아니라 길어졌다. 조심스럽게 쓴 글이니 경계하며 읽어 주셨기를 바란다.
❶ “서울런 둘러싼 논란, 사교육 업계에까지 불똥”, 〈파이낸셜뉴스〉, 2021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