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호[특집] 막아도 들려오는 ‘돈벌이’ 소리 (이윤승)

특집/‘자본주의를 위한 경제교육’을 넘어


막아도 들려오는 ‘돈벌이’ 소리

- 학교와 교사에게 ‘투자’와 ‘돈’에 대한 고민



이윤승

autoki6@naver.com

본지 편집위원.

흔치 않은 장애인 중등 수학 교사라 좋습니다.

수학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입시 교과라서’라든가 ‘논리력 향상을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말해 주는 학생들이 훨씬 많아지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1997년에 나온 델리스파이스의 곡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왠지 이게 사랑에 관한 노래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환각 속의 소리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피하고 싶은 자의 외침 같다고도 느꼈다. 당시 내가 피하고 싶던 소리는 예를 들면 가짜 드럼 소리로 채워진 댄스 뮤직이었다. TV만 켜면 아이돌의 댄스 뮤직이 흘러나왔고 길거리에서도 상점과 불법 음반을 파는 리어카에서 비슷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펑크나 락, 힙합이 들리는 길거리는 없었다. 그래서 델리스파이스의 이 노래는 유행가의 소리를 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달래 주는 노래였다.


꼭 음악에서만이 아니다. 학교에만 가면 듣게 되는, 학생들의 태도와 성적에 대한 소리, 체벌의 소리도 피하고 싶지만 늘 들을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유행’하는 것들의 소리는 늘 주제만 바뀌어 계속해서 들려왔다. 비주류의 삶을 사는 이들은 귀를 막아도 주류의 목소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듣기 싫고 피하고 싶어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주류의 소리가 너무 가득해 비주류의 소리들은 온전히 들리지 않은 채 흩어지곤 했다. 나에게 그런 비주류와 주류의 소리들은 학생인권 이야기와 교권 이야기, 장애인이동권의 목소리와 출근길 시민들의 불편하다는 목소리,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는 목소리와 차별 금지에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목소리였다.


이런 사안들은 양쪽 중 한쪽의 스피커만 용량이 100배는 크기에 그 커다란 소리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그 안에서 애를 쓰고 있는 작은 소리들이 있고, 그 소리를 듣고 싶기에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로 위안을 삼는다.


15년 이상을 매일 학교에서 일하다가 휴직을 하게 되니 아침이 고요하다. 같이 사는 모든 이들이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나면 집에 나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어느 날엔 학교의 분주함과 소음이 사라져 아쉬운 찰나의 순간도 있으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6개월의 휴직 기간 중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학교로부터 떨어져 지낸 지 1년 이상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작년과 재작년의 학교는 쉽지 않았고 그로부터 떨어지자 갑자기 찾아온 평온이 비현실적이다. 지난 2년 동안 나를 가장 지치게 했던 것은 코로나19가 아니었다. 감염병으로 인해 방역에 신경을 더 쓰고 온라인 수업에서 차질이 생기지 않게끔 애쓰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충분히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도 갖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돈 얘기’, ‘주식 얘기’였다.



기업과 은행의 이야기만 가르치는


나의 교원 자격증엔 교과가 수학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사립 학교, 그중에서도 특성화고의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갑작스럽게 경제 등의 교과를 병행하여 수업을 하곤 했다. 특히 상치 교사로 처음 가르쳐야 했던 교과는 ‘상업경제’였는데 1년 내내 이 교과를 가르치며 가장 의아하고 아쉬웠던 점은 오로지 기업이 주인공인 이야기들만 배운다는 것이었다. 가끔 은행도 등장하긴 하지만 주로 기업과 관련하여 서술되어 있었다. 주식의 발행, 은행으로부터의 대출, 기업의 사채 발행, 어음, 수표 등 기업 경영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상업’의 분량은 많았지만 소비자와 노동자 관점에서의 서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주식에 대해선 1차 시장(투자 시장)만 배울 뿐 주식의 2차 시장 운영 형태는 거의 배우지 않았다. “부채는 자산”이라는 말을 암기했지만 왜 기업은 신주를 발행하기보다 먼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지, 기업의 주주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자세히 배우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경제학 이론을 배우고 주식 시장의 생성 과정과 은행, 보험, 재보험의 탄생과 역사를 배웠지만, 상업경제 교과를 가르치는 과정에선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단 상업경제 교과뿐만 아니라, 상업계 특성화고인데도 개인이 은행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기업의 주주로서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지를 않았다.


한편으론 특성화고이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졸업 후 기업에 친화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학생들을 기르는 것이 특성화고 교육의 오래된 전통 중의 하나이니, 일부러 개인과 노동자의 입장을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싶었다.


왜 학교는 금융을 가르치며 기업과 자본가, 은행의 이야기들을 주로 가르칠까. 어쩌면 교사 스스로도 노동자의 정체성보다 기업과 자본자의 정체성을 더 많이 투영하고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비록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미래의 모습으로 노동자의 삶보다 자본가의 삶을 그리고 있기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죽기 전에 임대 사업자가 되거나 건물주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많은 교사가 퇴직 후에 노동 없이 지속 가능한 수익 원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지속 가능한 불로 소득’을 위해 학교에서는 시드 머니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자본과 금융에 푹 빠진 세상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나에겐 피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렇기에 지난 2년 동안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애쓰곤 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들려왔다. ‘오늘 공모주 나왔는데 청약하셨어요?’ ‘요즘 어느 기업의 채권이 이율이 좋다던데 채권으로 분산해 보세요.’ ‘금도 사셨죠? 나중에 전쟁 나면 금값이 제일 많이 올라요. 금도 지금 시세가 괜찮으니 지금 사 두세요.’ ‘S&P500은 지난 몇십 년간 크게 떨어진 적이 없으니 거기에 계속 여윳돈 투자하세요.’ ‘아, 아까 부장님 팔 때 같이 팔 걸, 괜히 더 기다렸더니 금방 떨어졌네.’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무실에 갈 때마다 이런 소리가 몇몇에게서 들렸다. 영화관에 가도 간단하게 주식 투자하는 앱의 광고가 나오고, 쉽게 대출해 준다는 광고가 TV에도 나오는 때이니 학교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코로나19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위기였지만 교사들에겐 별로 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주식, 채권, 금, 갭 투자 등의 이야기가 한번 시작되면 끝이 나지 않았다. 연수 중에도 뒤에서 어느 동네가 곧 집값이 오를 것 같으니 미리 투자해야 한다는 소곤거림이 들렸고 옆의 교사는 아예 주식 거래 앱을 켜 놓고 보고 있었다. 특히 한번 입금하면 한참 동안 찾지도 못하는 연금 저축이니, 개인형 퇴직 연금 IRP이니 하는 이야기는 저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당장 쓸 돈이 없는데 20년 이상을 돈을 묶어 놓는다니, 나 같은 사람에겐 요상한 소리로만 들렸다.


오래전 내가 기간제로 일하던 학교의 한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번개같이 달려오곤 했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시세를 확인하며 단타 구매를 주로 하는 교사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 교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큰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겐 게임같이 재미난 것이라 하며 주식의 폐해와 상관없다고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는 주식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막혀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기에 얼마든지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덕분에 오래전 그 교사처럼 수업 후에 빨리 뛰어올 필요도 없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계단을 내려오면서 시세를 확인할 수 있다. 수업 후 복도에서 벽에 기대어 집중한듯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교사들이 보인다.


친한 교사들에게는 그만 좀 하자고 설득해 보기도 했다. 충북교육청에서는 2020년 공무원 행동 강령을 개정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에 근무지 무단 이탈, 게임, 주식 거래를 할 경우 품위 유지 위반으로 처벌한다는 것이 들어 있다고, 대구의 한 교장은 근무 시간에 주식 거래를 하고 업자에게 금품을 요구하다 해임되기도 했다고 설득의 이유를 댔다. 그런데도 주변 교사들은 주식 거래를 계속하고 있고 딱히 변화가 있진 않았다. 충북 외의 다른 교육청에서는 근무 시간에 하는 주식 거래에 대해 문제 삼는 정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교육청 직원들도 근무 시간에 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교사들이 주식 거래를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일까.


분명히 교사와 공무원들에게는 겸직 금지의 원칙이 있다. 하루 근무 시간이 8시간이지만 점심시간도 포함되기에 다른 직장인들보다는 노동 시간이 짧기도 하다. 그만큼 교사들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은 교육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각종 복지와 휴직의 자유로움이 있고, 연차를 쓸 때 눈치를 보지도 않고, 연금도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근무 시간에 겸직 금지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노동 소득 이외의 수익을 추구할까. 학교 교사들조차 교육보다는 자본이 더 중요한 삶의 가치라고 느끼고 있는 걸까. 비단 교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중의 절대다수가 이미 ‘주식 개미’의 삶을 살고 있으니, 교육도 거기에 발맞추고 있는 것일까. 주식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의 구독자 수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더라도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본과 금융의 세계에 푹 빠져 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주식 시장의 폐해를 얘기하고 교사들의 근무 시간 주식 거래를 금지하자고 하는 말은 대중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경제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담임 교사가 자신의 학급 학생들과 경제 수업을 하는 사례가 소개되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방송을 보면, 그 교실에선 각 학생들에게 직업이 있고 임금이 지급된다. 임금으로 지급된 학급 화폐로 소비를 하거나 저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교사의 몸무게가 지수로 평가되어 주식 투자하듯 교사 몸무게 지수에 투자를 한다. 그로 인해 수익이 발생하면 더 많은 학급 화폐를 모을 수 있는데, 큰돈이 모이면 교실의 책상을 구매하여 임대 수입을 얻을 수도 있다. 방송에서 아주 자세히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 방송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살아 있는 경제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 방송을 보고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한 개인이 돈을 잘 벌고 그 돈으로 무엇을 사거나 누릴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웠다. 특히 자리를 구매하고 그 자리를 임대해 줄 수도 있다는 설정은,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알려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속에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미는 없었다. 오로지 돈을 통해 개인이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만 느끼게 할 뿐, 개인의 소비와 투자들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경제를 교육하려면 현재의 자본주의 현상을 배우고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본주의를 배우되 그 안의 문제를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각자도생의 원리가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수많은 사람이 낙오자가 되는 세상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그러기 위한 연대의 힘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방송 이후, 그 영향을 받은 건지 혹은 이러한 경제교육을 하는 것이 초등학교에서 유행을 탔던 건지는 모르지만, 다른 교사들도 이와 비슷한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며 사례를 소개하는 기사들이 여럿 보였다. 심지어 한 교사는 2학기가 되면 모두에게 1개씩의 직업이 있다가 갑자기 직업의 개수를 반으로 줄여 구조 조정의 원리를 배우게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직업이 있을 때 저축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겠다는 것인데,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해직과 실업을 경험하는 것이 과연 어떤 유익한 경험으로 남을지 걱정이 된다. 그런 수업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 심지어 직업을 줄여 버리는 권력자는 담임 교사이다. 화폐를 유통하는 권력자도 담임이고, 주식 투자의 지수를 결정하는 것도 담임이다. 살아 있는 경제 수업을 하기 위해, 현실의 경제도 결국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의도였을까? 과연 정규 교육과정이 아닌 담임의 경제 활동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학생에겐 거부권이 보장되긴 했을까?



‘투자’와 ‘경제적 자유’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예전에 잠시 같이 일했던 한 교사분이 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은행에서 일을 하셨고 서울 여러 곳에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선생님과 지내며 정말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그분은 사회 교사였는데,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수업 목표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시드 머니를 빨리 만들어서 제대로 투자해, 10여 년 후에 작은 빌라라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 자유로움’을 찾고 나면 인생의 가장 큰 걱정이 사라지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수입원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개똥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은 부모가 부자인 덕분에 증여세를 피할 목적으로 월급을 모두 적금에 넣고 그만큼의 돈을 부모에게 현금으로 받아서 생활하고 있었고, 부모 집에 살면서 아버지 이름의 차를 타고 다니며 생일 선물로 가족들로부터 금을 받곤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신이 그런 환경이기에, 때마다 가족의 돈을 모두 모아 카카오나 하이브의 공모주를 받아 한번에 수백만 원의 수익을 올리며 이미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채권과 주식, 연금 저축 등을 다 설계해 주고 결혼 후 살 집도 가족 간 거래로 싸게 받을 교사이기에 그 경제적 자유로움이 쉽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상당수가 기초 생활 수급자이고,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차상위 계층인데, 당신의 시드 머니 이야기와 건물주의 꿈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이야기했다. 심지어 특성화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단지 이른 취업을 통해 가정 경제에 일부라도 공헌하기 위해 온 경우가 많은데, 과연 시드 머니라는 게 취업 후에 만들어질 수는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굳이 그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하고자 한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그 수업에 영향을 받아 섣불리 투자를 위해 부채를 짊어질 학생들에게는 부채와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교사 자신이 얼마나 자본가 계급에 속해 있는지부터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그러지 않고 교사인 자신도 힘든 청년이고 노력하며 살면서 시드 머니를 만든 척한다면 그냥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일 뿐이니까.


이런 대화가 오가기 전, 그 교사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금융 교육을 받아와 그랬는지 중학교 미술 수행 평가 제출을 앞두고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에게 돈을 주고 과제물을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자본주의의 겉면만 배우고 나면 중학교 때 그런 괴물이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 교사는 또 얼마 전, 어떤 학교의 정교사를 뽑는 과정에서 시강을 준비해야 했는데, 공립 학교 임용에 합격한 친구 둘을 불러서 스터디를 했으며 그 친구들이 열심히 안 도와주는 것 같길래 자신이 붙으면 제주도 여행을 하게 해 준다고 약속했더니 두 친구가 아주 성의껏 도와줬다는 이야길 했다. 아마도 중학교 때 미술 숙제를 돈으로 해결한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말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이미 그가 금융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득 채워진 인간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윤 추구가 당연한 교육이 아니어야 하니까


주식 시장은 오전 9시에 개장하여 오후 4시에 폐장한다. 정확하게 우리 교사들의 근무 시간과 겹친다. 나이 많은 교사이면서 아주 오랫동안 주식 투자를 해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이야기가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 그는 출근하고부터 퇴근 때까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생각해서 주식은 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방학 때만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 도와주고 싶은 기업에만 장기 투자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그 원칙을 어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주식 투자를 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마음가짐을 갖고 하는 것이 교사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아무리 대중 매체에서 금융교육이 대세라고 하고, 교사 스스로도 주식 투자를 하고 있기에 본인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학생들에게 이런 주식 투자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치고 지금의 금융 구조를 원리와 역사, 문제점에 대한 탐구 없이 현상으로만 가르치려 한다면 자본주의의 허점과 문제는 점차 가려질 것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의 성장만을 촉구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누군가가 돈을 잃기 때문이다. 아닌 순간도 가끔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누군가의 돈을 뺏는 일이다. 어떻게 해서 돈을 잘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당연히 할 수 있을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자면, 제발 교사들이 근무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보며 시간을 보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실현되기 쉽지 않은 바람이긴 할 것이다. 수학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대치동 수학 학원에 보내고, 영어 교사가 공교육의 영어교육을 믿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길들여진 교사들에게 내 이야기는 아마 머리에 스치지도 않고 지나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이유는, 나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나 이외의 누군가에게도 조금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서이다.


휴직해서 조용한 아침을 보내니 이곳은 정말 천국이다.

귀를 막지 않아도 들리지 않는다. 진정 평화롭다.

글을 쓰면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니 더욱 그렇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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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