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공포와 두려움에 익숙해지지 않기
이윤승
본지 편집위원,
서울 이화여대부설미디어고 교사
지난 추석 연휴까지 뉴스에는 매일 더위에 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유난히 심한 더위가 2024년의 여름을 상징할 것 같다. 하지만 더위만큼이나 이상하고 충격적인 일들도 많았다. 기후도 공포스럽지만, 인권에 대한 마지노선이 무너져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8월 말의 어느 날, 온 학교와 학생들을 공포스럽게 만든 ‘딥페이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가 있던 날, 학생들은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로그인 기록을 살펴보며 불안해했다. 어느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피해 학교 지도를 보며 자신의 학교는 없는지, 주변 학교들의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쉬는 시간마다 찾아보곤 했다. 어느 반의 누구는 자신이 로그인하지 않은 지역에서 로그인 기록이 있다거나, 친구네 학교에 피해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들은 딥페이크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내리고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당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치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혹시 본인이 피해를 겪거나 피해를 목격하면 숨기지 말고 신고하고, 수사 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다면 우리 함께 싸워 보자는 이야기를 전했다.
쉬는 시간엔 학생들이 알려 준 피해 현황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딸이 다니는 학교를 검색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전국에 수많은 빨간 동그라미들이 가득해서 검색해 볼 생각을 거두었다. 지도가 온통 빨간데 몇몇 학교를 검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오래된 범죄와 각자도생
딥페이크 사건은 어제오늘 벌어진 문제가 아니다. 인스타그램 등 SNS 사진을 도용하는 일들은 예전부터 있었고, 지인의 사진을 이용해 ‘지인 능욕’을 하는 합성 사진을 만든 것도 오래된 일이다. 사진을 무단 도용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AI를 통해 매우 쉽게 할 수 있는 딥페이크의 경우도 미드저니(Midjourney)가 상용화된 이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텔레그램이 성폭력 가해자들의 연결 통로로 활용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오래된 것이 있다. 텔레그램 등 해외 사이트를 활용한 성폭력이나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고 가해자들의 처벌도 쉽지 않다는 인식이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를 찾아내는 성과도 경찰보다는 민간단체의 활약 덕분일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지인의 학교에서도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사건이 있었지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아 피해자가 법적인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번 딥페이크 사건의 후속 보도를 보아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해외 사이트라서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워서, 수사 인력이 부족해서,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서 등과 같은 이유로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피해 건수에 비해 검거까지 이뤄진 수는 극히 적었다. 결국 피해자가 구제되기 힘든 현실을 겪다 보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가 피해를 숨기는 일이 반복되면 대중은 범죄를 어쩔 수 없는 상황처럼 인식하게 되고 익숙해진다.
이번 딥페이크 사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을 느끼던 학생들의 반응도 금방 식어 버렸다. 그런 피해는 얼굴이 예쁜 사람들이나 당하는 것이니 나랑은 상관없다는 반응도 있고,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다 내렸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차피 정부나 경찰도 믿고 의지할 수 없으니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제 학생들의 대화에서 딥페이크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에서 관련 대화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여학생이 딥페이크 이야기를 꺼내면 유난 떤다고 반응하는 남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교육청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발행하고 성인지 교육을 하라는 정도의 공문을 보내왔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우선 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하라고 한다. 피해자들 중 학생과 교사가 상당히 많은데 이런 것이 대책이라니. 난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막막했다. 지인을 능욕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이들,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딥페이크, AI를 이용해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든 작업물을 가벼이 여기며 소비하는 이들, 피해를 호소해도 피해자를 위해 신속히 대책을 마련하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으며 때로 2차 가해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수사 기관들의 행태.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이어 가다가도 종이 치면 교실에서 방정식과 함수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매일매일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내 믿음은 과연 타당한 근거라도 있긴 했나? 그런 회의감이 들던 때에 국회의원 이준석이 나타났다.
이준석은 예전 장애인 이동권이 이슈였던 시기에도 통계를 자신의 논리에 유리하도록 해석하여 서울시 지하철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단지 엘리베이터의 유무로만 판단하도록 유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딥페이크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상대로 질의하며 딥페이크 사건에 대한 대책이 과잉 규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의 규모에 대한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불안이 실제보다 과장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때 근거로 이준석 의원은 통계를 활용했다. 텔레그램의 사용자 수 중 한국인의 비율을 근거 삼아 딥페이크방 사용자 중 한국인은 726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대체 그런 수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찾아보니 한 유튜버의 계산 과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텔레그램 전 세계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9억 명인데 한국인 텔레그램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300만 명이니, 텔레그램의 한국인 비율은 300만/9억이고, 각 대화방별로도 한국인의 비율은 일정할 것이니, 22만 명이 모여 있다는 딥페이크방의 한국인 사용자 수는 대략 726명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준석 의원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오류투성이인 계산을 국회에서 발표하고 틀린 그래프와 수치를 국민에게 보여 주고 있을까 싶었다. 심지어 많은 언론들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보도를 해 충격을 받았다.
이 의원이 국회에서 보여 준 화면에는 텔레그램 전 세계 사용자 중 한국인의 비율이 300만/9억이므로 0.0033333%라고 쓰여 있고, 그 비율을 곱하기 위해 퍼센트를 제외하면서 220,000×0.0033=726이라고 써 놓았다. 정말 이런 이상하고 근거도 없는 계산을 국회에 가져올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우선 300만을 9억으로 나누면 1/300이 나오고 소수로 표현하면 0.003이 나온다. 그리고 이 값을 퍼센트로 표현하면 0.0033333%가 아니라 0.3%가 된다. 그 유튜버와 이 의원은 퍼센트로 변환할 때는 100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100을 곱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착각한 모양이다. 실수였는지 아니면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원형 그래프에서 차지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아주 낮아서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과 딥페이크에 연루된 인원은 22만 명이 아니라 700명 정도라는 수치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근거가 부족하고 계산식도 이상한 통계지만 효과는 좋았다. 실시간 댓글에는 ‘갓준석’, ‘역시 합리적인 의원은 이준석뿐’ 같은 댓글이 달리고 여성단체가 사건을 부풀리고 있다며 ‘페미’가 또 사회를 망친다고 하는 반응이 뒤를 이었다. 여학생들에게 유난을 떨지 말라던 남학생들의 그 반응은 어쩌면 이준석의 이 주장에서 힘을 얻었을 수 있다. 역시 수학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저런 조잡한 논리에 넘어가는 학생들은 없어야 하고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의 수학적인 지식을 누구나 갖추고 있어야 했다.
이준석 의원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퍼센트 수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수보다는 통계에 대한 무지이다. 어느 모집단이든 그 안에서 표본을 정하면 그 표본이 평균적인 분포에 가까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나도 텔레그램을 사용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대화방들 중에 외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방은 하나도 없다. 즉,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비율만큼 모든 대화방에 한국인이 같은 비율로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의원이 정말 한국에서 얼마나 딥페이크의 피해가 심각한지, 아니면 과한 대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다면 저렇게 빈약한 통계 자료를 가져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22만 명이라는 수치로 논란이 된 대화방이 전 세계인이 쓸 수 있는 봇(Bot)을 이용한 방이라 해도 그 대화방에 전 세계인이 정확하게 비율대로 참여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지만 각 나라의 인구 분포대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듯이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도 각 나라의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 디지털 성범죄의 정도에 따라 참여 비율은 상당히 차이가 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통계 자료❶를 보면, 딥페이크에 등장하는 피해자 국적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통계를 근거로 한다면 피해자의 국적과 가해자의 국적이 꼭 같지는 않겠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기에 22만 명의 대화방 사용자 중 절반가량이 한국인 사용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통계를 활용해서 딥페이크 대화방 사용자 22만 명 중 절반가량인 11만 명 정도가 한국인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도 있다. 물론 이 해석도 그릇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멋지게 표를 만들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학생들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잊은 채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한국인이 11만 명이나 있다는 말만 기억할 수도 있다. 이처럼 통계는 쉽게 사람을 속일 수 있기에 통계를 활용하려면 오류가 없도록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준석 의원은 그 과정을 생략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반응해 주기를 바라며 수학과 통계를 이용한 것이다.
결국 이준석은 고의든 아니든 자신의 주장을 위해 통계를 잘못 인용하고, 그릇된 분석을 국회에서 발표하며 국민을 거짓 선동한 셈이다. 게다가 이준석을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며 학교에서 수학을 계속 공부하긴 해야겠구나 싶었다. 또 학교에서 수학을 잘한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교육과 수학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됐다. 수학을 잘해서 결국 수학을 사기의 도구로 쓰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니 수학 수업을 할 때 ‘수학으로 뭘 잘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수학으로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불신하기보다 변화를 만들어 가야
지금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뉴스를 보면 내 주위의 모든 남자가 ‘한남’ 같고, 모든 남자가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고, 내 주위의 수많은 남자들이 몰래 내 사진을 캡처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울 수밖에 없는 마음이 이해되지만 그래도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믿어 보자고 한다. 언론에 나오는 가해자들이 정말 많지만, 그들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모든 나이에 걸쳐 균질하게 퍼져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불신하기보다는 내 주위 사람들의 변화를 만들어 가다 보면, 전체의 분포도 조금씩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 보자고 한다. 나도 믿고 싶어서 말이라도 그렇게 한다. 22만 명이든, 700명이든 중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에선 누군가 지인의 사진을 도용하고 AI를 활용하여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아직은 수학이 나서서 분포, 비율을 따지기엔 이르다. AI의 활용을 어떻게 우리 사회가 컨트롤할 수 있을지, 인간의 윤리 의식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어떤 교육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해야 한다. 성인지 교육이 특별 교육이 아닌 학교의 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린 두려움과 공포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다. 공포가 일상이 되어 개인이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알아서 조심하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❶
미국의 사이버보안 업체인 ‘시큐리티 히어로’의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개인 중 53%가 한국인이라고 밝힘.
오늘의 교육을 열며
공포와 두려움에 익숙해지지 않기
이윤승
본지 편집위원,
서울 이화여대부설미디어고 교사
지난 추석 연휴까지 뉴스에는 매일 더위에 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유난히 심한 더위가 2024년의 여름을 상징할 것 같다. 하지만 더위만큼이나 이상하고 충격적인 일들도 많았다. 기후도 공포스럽지만, 인권에 대한 마지노선이 무너져 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8월 말의 어느 날, 온 학교와 학생들을 공포스럽게 만든 ‘딥페이크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가 있던 날, 학생들은 인스타그램의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고 로그인 기록을 살펴보며 불안해했다. 어느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피해 학교 지도를 보며 자신의 학교는 없는지, 주변 학교들의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쉬는 시간마다 찾아보곤 했다. 어느 반의 누구는 자신이 로그인하지 않은 지역에서 로그인 기록이 있다거나, 친구네 학교에 피해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학생들은 딥페이크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내리고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당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치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혹시 본인이 피해를 겪거나 피해를 목격하면 숨기지 말고 신고하고, 수사 기관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다면 우리 함께 싸워 보자는 이야기를 전했다.
쉬는 시간엔 학생들이 알려 준 피해 현황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딸이 다니는 학교를 검색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전국에 수많은 빨간 동그라미들이 가득해서 검색해 볼 생각을 거두었다. 지도가 온통 빨간데 몇몇 학교를 검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오래된 범죄와 각자도생
딥페이크 사건은 어제오늘 벌어진 문제가 아니다. 인스타그램 등 SNS 사진을 도용하는 일들은 예전부터 있었고, 지인의 사진을 이용해 ‘지인 능욕’을 하는 합성 사진을 만든 것도 오래된 일이다. 사진을 무단 도용하고 합성하는 과정을 AI를 통해 매우 쉽게 할 수 있는 딥페이크의 경우도 미드저니(Midjourney)가 상용화된 이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텔레그램이 성폭력 가해자들의 연결 통로로 활용된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오래된 것이 있다. 텔레그램 등 해외 사이트를 활용한 성폭력이나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고 가해자들의 처벌도 쉽지 않다는 인식이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를 찾아내는 성과도 경찰보다는 민간단체의 활약 덕분일 때가 많았다. 얼마 전 지인의 학교에서도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사건이 있었지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아 피해자가 법적인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번 딥페이크 사건의 후속 보도를 보아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해외 사이트라서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워서, 수사 인력이 부족해서,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서 등과 같은 이유로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피해 건수에 비해 검거까지 이뤄진 수는 극히 적었다. 결국 피해자가 구제되기 힘든 현실을 겪다 보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가 피해를 숨기는 일이 반복되면 대중은 범죄를 어쩔 수 없는 상황처럼 인식하게 되고 익숙해진다.
이번 딥페이크 사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을 느끼던 학생들의 반응도 금방 식어 버렸다. 그런 피해는 얼굴이 예쁜 사람들이나 당하는 것이니 나랑은 상관없다는 반응도 있고,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다 내렸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차피 정부나 경찰도 믿고 의지할 수 없으니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제 학생들의 대화에서 딥페이크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에서 관련 대화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여학생이 딥페이크 이야기를 꺼내면 유난 떤다고 반응하는 남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교육청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발행하고 성인지 교육을 하라는 정도의 공문을 보내왔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우선 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하라고 한다. 피해자들 중 학생과 교사가 상당히 많은데 이런 것이 대책이라니. 난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막막했다. 지인을 능욕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이들, 이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딥페이크, AI를 이용해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든 작업물을 가벼이 여기며 소비하는 이들, 피해를 호소해도 피해자를 위해 신속히 대책을 마련하고 수사에 착수하지 않으며 때로 2차 가해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수사 기관들의 행태.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이어 가다가도 종이 치면 교실에서 방정식과 함수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매일매일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낸다.
수학을 공부하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내 믿음은 과연 타당한 근거라도 있긴 했나? 그런 회의감이 들던 때에 국회의원 이준석이 나타났다.
이준석은 예전 장애인 이동권이 이슈였던 시기에도 통계를 자신의 논리에 유리하도록 해석하여 서울시 지하철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단지 엘리베이터의 유무로만 판단하도록 유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딥페이크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상대로 질의하며 딥페이크 사건에 대한 대책이 과잉 규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의 규모에 대한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불안이 실제보다 과장되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때 근거로 이준석 의원은 통계를 활용했다. 텔레그램의 사용자 수 중 한국인의 비율을 근거 삼아 딥페이크방 사용자 중 한국인은 726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대체 그런 수치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찾아보니 한 유튜버의 계산 과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텔레그램 전 세계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9억 명인데 한국인 텔레그램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300만 명이니, 텔레그램의 한국인 비율은 300만/9억이고, 각 대화방별로도 한국인의 비율은 일정할 것이니, 22만 명이 모여 있다는 딥페이크방의 한국인 사용자 수는 대략 726명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준석 의원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오류투성이인 계산을 국회에서 발표하고 틀린 그래프와 수치를 국민에게 보여 주고 있을까 싶었다. 심지어 많은 언론들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보도를 해 충격을 받았다.
이 의원이 국회에서 보여 준 화면에는 텔레그램 전 세계 사용자 중 한국인의 비율이 300만/9억이므로 0.0033333%라고 쓰여 있고, 그 비율을 곱하기 위해 퍼센트를 제외하면서 220,000×0.0033=726이라고 써 놓았다. 정말 이런 이상하고 근거도 없는 계산을 국회에 가져올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우선 300만을 9억으로 나누면 1/300이 나오고 소수로 표현하면 0.003이 나온다. 그리고 이 값을 퍼센트로 표현하면 0.0033333%가 아니라 0.3%가 된다. 그 유튜버와 이 의원은 퍼센트로 변환할 때는 100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100을 곱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착각한 모양이다. 실수였는지 아니면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원형 그래프에서 차지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아주 낮아서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과 딥페이크에 연루된 인원은 22만 명이 아니라 700명 정도라는 수치를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근거가 부족하고 계산식도 이상한 통계지만 효과는 좋았다. 실시간 댓글에는 ‘갓준석’, ‘역시 합리적인 의원은 이준석뿐’ 같은 댓글이 달리고 여성단체가 사건을 부풀리고 있다며 ‘페미’가 또 사회를 망친다고 하는 반응이 뒤를 이었다. 여학생들에게 유난을 떨지 말라던 남학생들의 그 반응은 어쩌면 이준석의 이 주장에서 힘을 얻었을 수 있다. 역시 수학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저런 조잡한 논리에 넘어가는 학생들은 없어야 하고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의 수학적인 지식을 누구나 갖추고 있어야 했다.
이준석 의원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퍼센트 수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수보다는 통계에 대한 무지이다. 어느 모집단이든 그 안에서 표본을 정하면 그 표본이 평균적인 분포에 가까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나도 텔레그램을 사용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대화방들 중에 외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방은 하나도 없다. 즉,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비율만큼 모든 대화방에 한국인이 같은 비율로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의원이 정말 한국에서 얼마나 딥페이크의 피해가 심각한지, 아니면 과한 대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다면 저렇게 빈약한 통계 자료를 가져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22만 명이라는 수치로 논란이 된 대화방이 전 세계인이 쓸 수 있는 봇(Bot)을 이용한 방이라 해도 그 대화방에 전 세계인이 정확하게 비율대로 참여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지만 각 나라의 인구 분포대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듯이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도 각 나라의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 디지털 성범죄의 정도에 따라 참여 비율은 상당히 차이가 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통계 자료❶를 보면, 딥페이크에 등장하는 피해자 국적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통계를 근거로 한다면 피해자의 국적과 가해자의 국적이 꼭 같지는 않겠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기에 22만 명의 대화방 사용자 중 절반가량이 한국인 사용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통계를 활용해서 딥페이크 대화방 사용자 22만 명 중 절반가량인 11만 명 정도가 한국인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도 있다. 물론 이 해석도 그릇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멋지게 표를 만들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학생들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잊은 채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한국인이 11만 명이나 있다는 말만 기억할 수도 있다. 이처럼 통계는 쉽게 사람을 속일 수 있기에 통계를 활용하려면 오류가 없도록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준석 의원은 그 과정을 생략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반응해 주기를 바라며 수학과 통계를 이용한 것이다.
결국 이준석은 고의든 아니든 자신의 주장을 위해 통계를 잘못 인용하고, 그릇된 분석을 국회에서 발표하며 국민을 거짓 선동한 셈이다. 게다가 이준석을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며 학교에서 수학을 계속 공부하긴 해야겠구나 싶었다. 또 학교에서 수학을 잘한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교육과 수학에 관한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됐다. 수학을 잘해서 결국 수학을 사기의 도구로 쓰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니 수학 수업을 할 때 ‘수학으로 뭘 잘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수학으로 어떻게 속지 않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불신하기보다 변화를 만들어 가야
지금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뉴스를 보면 내 주위의 모든 남자가 ‘한남’ 같고, 모든 남자가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고, 내 주위의 수많은 남자들이 몰래 내 사진을 캡처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울 수밖에 없는 마음이 이해되지만 그래도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믿어 보자고 한다. 언론에 나오는 가해자들이 정말 많지만, 그들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모든 나이에 걸쳐 균질하게 퍼져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불신하기보다는 내 주위 사람들의 변화를 만들어 가다 보면, 전체의 분포도 조금씩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 보자고 한다. 나도 믿고 싶어서 말이라도 그렇게 한다. 22만 명이든, 700명이든 중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에선 누군가 지인의 사진을 도용하고 AI를 활용하여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아직은 수학이 나서서 분포, 비율을 따지기엔 이르다. AI의 활용을 어떻게 우리 사회가 컨트롤할 수 있을지, 인간의 윤리 의식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어떤 교육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해야 한다. 성인지 교육이 특별 교육이 아닌 학교의 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린 두려움과 공포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다. 공포가 일상이 되어 개인이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알아서 조심하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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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이버보안 업체인 ‘시큐리티 히어로’의 〈2023 딥페이크 현황〉 보고서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개인 중 53%가 한국인이라고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