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특집] 우리는 무엇으로 대학 구조 조정을 마주할 수 있을까? (강석남)

특집/자본주의 교육, 어떻게 반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대학 구조 조정을 마주할 수 있을까?

-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 되돌아보기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있다.




2013년, 어느 대학 총장실에서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써 본 지가 오래되었다. 공적 지면에선 부족할지라도 객관적인 척 스스로를 감추는 허세를 부려야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학에서 전개되었던 신자유주의 교육 비판을 되돌아보려니, 부득이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소문으로만 돌던 학문 단위 구조 조정이 공식화되었고, 경쟁력이 없다고 낙인 찍힌 학과 4개의 폐과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기업식 구조 조정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된 학과의 학생들이 대책위를 꾸려 투쟁에 돌입했으나 폐과를 막지는 못했다. 민주적인 의견 수렴 대신 몇 차례의 일방적인 설명회로 절차를 거쳤다는 알리바이만 갖춘 채, 각종 수량적 지표에 근거한 시장 논리를 앞세워 구조 조정은 정당화되었다. 사실 정당화할 필요도 없었다.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에 근거한 학칙 개정 절차는 대학 구성원이 아니라 법인 이사회에 철저히 장악되어 있었으니까. 대자보를 쓰고, 학내 집회를 열고, 총장실을 점거하고, 대학 본부 앞에 천막을 세우고, 끝내는 법에 호소하기 위해 법원까지 갔으나 단 한 치의 퇴보 없이 구조 조정은 완성되었다.


총장실 점거 당시 운 좋게 구조 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학과를 다녔던 나는 연대 단위의 구성원으로 총장실 구석에 앉아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구조 조정 추진을 성토하는 여러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구조 조정이 왜 부당한지 무수한 이유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만약 정부나 대학 본부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민주적인 절차를 충분히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력 없는 학문은 대학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설득한다면, 우리는 대학 구조 조정을 반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절차를 문제 삼지 않고서, 그 원리인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에 대한 비판을 무기로 구조 조정에 저항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학령 인구 감소의 현실화로 대학 구조 조정의 당위를 누구도 부정하지 않게 된 현시점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 비판으로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


한국의 대학이 충분히 신자유주의적인지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간 너무나 많은 것들에 ‘신자유주의’라는 명찰을 달아 주느라 그 정의마저 모호해졌지만, 적어도 한국의 대학은 교육을 상품으로 대체하고, 가르치는 자를 상품의 생산자로, 배우는 자를 상품의 소비자로 호명하며 시장이 아닌 곳에 시장의 논리를 주입하고 일반화하는 데 아주 탁월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국 교육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이 재생산되는 공간은 단연 대학이며, 바로 이런 특성이 전면화되고 있는 전선이 바로 ‘대학 구조 조정’이다.


정부는 산업 부문과의 수요·공급 불일치와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으로 시장 논리에 입각한 대학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개별 대학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문 단위 통폐합을 추진한다. 국가 차원의 구조 조정 압력은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이나 ‘대학 기본 역량 진단’ 등의 시장 논리를 담은 정책을 매개로, 개별 대학에서 소위 ‘돈 안 되고 취업 안 되는 학문’을 청소하는 구체적인 구조 조정의 형태로 실현된다. 코로나19 재난에도 구조 조정은 계속 진행 중이다. 당장 올해만 해도 부산대와 부산외대, 인제대, 한국외대, 계명대·영남대·경북대 등 전국 곳곳에서 구조 조정 추진에 따른 학과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다. 이쯤 되면 대학 정원 정책이 팽창 기조에서 감축 기조로 전환된 2003년 이후 어떠한 형태로든 구조 조정이 한번도 논의되지 않은 대학을 추리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반면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은 한국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는 측면도 있다. 학문공동체로서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비판적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대학의 사회적·공공적 성격은, 비록 선언에 머무른다 할지라도 대학 구성원들이 대학에서의 신자유주의 교육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중요한 준거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지난 10여 년간 치열하게 전개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신자유주의 교육 비판의 가장 구체적인 한 예일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학에서 진행되는 학문 단위 재조정은 명목상으로는 학문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결국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기초 학문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욱이 그러한 판단과 결정이 해당 학문 분야의 구성원과 전문가들이 아닌 재단 이사장 1인의 의지로 관철되고 있다는 의혹을 우리는 지울 수가 없다. 

- C대 구조 조정 공동대책위원회, 〈C대 학문 단위 일방적 재조정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선언문〉, 2010년 3월 21일


이 계획안은 또한 오로지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역량 있는 지식인과 사려 깊은 시민을 육성해야 할 대학의 책임은 완전히 포기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파국적 붕괴를 막아 내고 교수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본부의 개편안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 C대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교수 대표 비상대책위원회, 〈반학문적, 반교육적 밀실 개편안 철회하고, 책임자는 사퇴하라〉, 2015년 3월 2일



대학 구조 조정이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이며 왜 시장 논리에 의한 침탈인가 하는 논의는 충분히 다뤄져 왔다. 이제 대학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 투쟁이 지난 10여 년간 무수히 반복되어 왔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예상되는 구조 조정에 맞선 대학 구성원들의 투쟁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어떤 쟁점들을 마주했으며, 각각의 쟁점들로부터 어떤 전개 경로를 강요받았는지를 성찰적으로 되돌아보고, 나아가 그러한 경로로 운동이 전개되면서 여백으로 남겨 둔 질문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반복되는 투쟁들이 무엇을 비워 둘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지금 현재의 투쟁들에 대한 연대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직면했던 쟁점들


시장 논리와의 불완전한 대결

대학 구조 조정의 시장 논리는, 첫째로 거시적인 차원의 대학간 시장 경쟁과 둘째로 미시적인 차원의 대학 내 학문 단위(학과나 학부) 간 시장 경쟁의 두 가지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우선 한국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은 이미 1995년 5.31 교육 개혁 당시부터 대학 간 시장 경쟁을 통해 소비자인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대학을 퇴출시켜, 대학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학령 인구 대비 적정한 대학 공급의 양적 수준을 유지하려는 기획으로 출발했다. 이러한 대학 간 생존 경쟁의 전제인 시장 논리는 5.31 교육 개혁이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학 간 경쟁 촉진을 위해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를 매개로 대학교육의 공급 확대를 추진한 이유였다. 그리고 대학 간 경쟁을 통해 도태된 대학을 퇴출시켜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겠다는 원칙은 1995년 이후 여러 번의 정권 교체 속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의 형태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2000년대 중후반 학령 인구 감소의 압력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생존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된 대학들은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철저하게 시장 논리를 내면화한다. 애초에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전적으로 등록금 수익에만 의존하고 있던 대학들은 추가적인 자원을 동원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전제하고 ‘선택과 집중’을 내세워 경쟁력 있다고 ‘여겨지는’ 학문 단위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향상하고자 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경쟁력 없다고 여겨지는 학문 단위는 대학에서 사라져야 했으며 이로부터 구조 조정의 수단으로 대학 내 학문 단위 간 시장 경쟁이 추동된다.


누가 경쟁력이 있어서 키워져야 하고, 누가 경쟁력이 없어서 사라져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학문 단위가 서로 비교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분과 학문의 비교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국문학은 영문학보다 우수한 학문인가? 경영학과 역사학은? 컴퓨터 공학과 철학은? 결국 취업률, 전공 선택률, 재학생 이탈률, 교수진 연구 실적과 같은 수량적 지표들이 동원되어 대학 내 학문 단위 간 줄 세우기가 이루어졌고, 누가 더 경쟁력 있는 상품인지 증명하라는 시장 경쟁이 강요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누가 대학에서 사라져야 하는지 결정되었다.


개별 대학에서 전개되었던 대부분의 투쟁, 특히 구조 조정 대상으로 지목당한 학과 구성원들 중심의 투쟁들이 직면했던 첫 번째 쟁점은 바로 이 대학 내 학문 단위 간 시장 경쟁 층위에서의 시장 논리였다. 애초에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비교하기 위해 동원된 수량적 지표들은 납득하기 어렵거나 때때로 허술하기까지 했다.


“학교는 ‘지표’를 들이밀었다. 취업률, 연구 실적, 교수 평가 등으로 이루어진 지표가 있는데, 음악과가 그 지표에서 최하위 10%였다고 한다. (……) 우리 과는 교수 평가, 연구 실적 등은 높은 점수다. 그런데 ‘시설 이용률’에서 최하 점수를 받았다. 악기를 보관하여 관리해야 하고, 합주 수업도 있기 때문에 큰 공간에서 수업이 이뤄진다. 당연히 이용률이 높지 않겠나?”

- 2020년 W대 서양음악 전공 학생 인터뷰 내용(백영재 외(2020), 《지느러미 6호 : 데모 - 2010년 이후 한국 대학 사회 시위》)


문제는 대학 내에서의 시장 논리가 그 타당성이 빈약할지라도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졌다는 점이다. 우선 시장 논리가 사회의 구성 원리이자 작동 원리로 기능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수량적 지표로 표현된 시장 경쟁의 결과는 그 형식 자체만으로 합리성을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다 핵심적인 헤게모니의 원천은 대학 내에서의 시장 논리가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으로 하여금 두 가지 선택지에 갇힌 경로만을 강요한다는 점에 있다.


첫 번째 선택지는 투쟁이 시장 논리의 규정 내에 들어가 구조 조정 반대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시장 논리의 전제와 조건들을 수용하고, 그 전제와 조건을 가지고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논리다. 대학 구조 조정이 기초 학문, 특히 인문학을 집중적으로 탄압하자 성행한 ‘사실 인문학도 이러저러한 취업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있다’는 식의 논의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 경로를 선택한 투쟁들은 제시된 수량적 지표의 허점을 간파하거나, 다른 지표를 가져오거나, 지표로 표현될 수 없는 학문 단위의 강점과 경쟁력을 핵심 근거로 제시한다.


사범 대학 구조 조정과 관련하여 학교 측에서는 ○○교육과 폐과와 사범 대학 정원 반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교육과학기술부에 신청하였다. 사범 대학은 2010 교원 양성 기관 평가에서 모든 구성원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국 8개 대학만이 획득한 A등급을 받았고, (……) 또한, 본 ○○교육과는 전국 최고의 교사 임용률로 300여 명의 국공립 및 사립 학교 교사를 배출하였으며, 많은 석·박사를 배출하여 교수 및 전문가를 양성해 온 학과이다.

- C대학교 ○○교육과 학생, 학부모, 동문 및 교수 일동, 〈○○교육과 폐과를 철회하라〉, 2011년 9월 1일


이러한 투쟁은 시장 논리가 독점하는 시장 경쟁 결과의 합리성을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전술로 보일 수 있지만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다. 학문 간의 경쟁력을 비교해서 패배한 학문을 소거해야 한다는 전제를 수용한 이상, 아무리 자신의 경쟁력을 강조하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을 초월하는 경쟁력을 갖춘 학문 단위가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애초에 구조 조정 대상으로 지목당한 이상 시장 논리의 전제를 수용하고서는 구조 조정을 막아 낼 수 없다. 만약 운 좋게 자기 학과의 구조 조정은 막아 내더라도 그 부담이 다른 학문 단위로 전가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위험도 크다. 다만 투쟁이 이 경로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비난할 수는 없다. 자신의 학문공동체가 부정당하는 경험 속에서 구성원들의 절박함이 표출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 선택지는 투쟁이 시장 논리 자체를 비판하면서 적극적으로 시장 논리와 대결하는 것이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대학 구조 조정 투쟁이 신자유주의 비판의 한 예가 될 수 있는 지점이 이 부분이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정말로 시장 논리와 적극적으로 대결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만약 시장 논리와 대결했다면 그 승패가 어떠했을지언정 적어도 구조 조정을 막아 냈던 사례들로부터 시장 논리에 대적할 만한 대응 논리가 관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짧은 식견에 기대어 감히 말해 보자면 그러한 대응 논리를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렵다.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 조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구조 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시장 논리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시장 논리가 아닌 대안적 구조 조정의 논리는 무엇인가? 반대 투쟁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 대신 다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는, 대학에 시장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만 확인시켜 줄 뿐이다. 이 당위마저도 학령 인구 감소의 압력이 비교적 약했던 시기에만 제한적으로 효력이 발휘되었고 거시적인 차원의 대학 간 생존 경쟁이 점차 격화된 최근으로 올수록 말 그대로 선언적인 수사로만 언급되고 있다.


현실에서의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나름의 전략적인 판단 속에서 혼합하면서 전개되었다. 절박함의 표현으로 시장 논리를 일정 부분 수용했던 투쟁이든, 적극적으로 시장 논리와 대결하고자 했던 투쟁이든 그 결과는 대응 논리의 구성이 아니라 당위로의 대체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시장 논리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했음에도 시장 논리와의 불완전한 대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학 구조 조정이 기업이 아닌 대학에 시장 논리를 내면화할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인 대학의 독점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의 이중 전선


그렇다면 대학의 의사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대학의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기업에 견준다면 학교 법인이 주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이사장은 주주 대표 격이고, 학교 법인 이사진은 기업의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와 같다. 이렇게 보면 대학의 의사 결정권은 학교 법인에서 비롯되고, 운영 주체는 학교 법인의 이사회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 박용성(중앙대 이사장), “대학 발전과 참된 주인의식”, 〈중앙일보〉, 2009년 8월 28일


14년 전의 칼럼이지만 당시 대학가를 휩쓸었고 여전히 회자되는 재벌 회장 출신 이사장의 말이다. 문제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나 교수가 아니라 법인 이사회와 이사장이다’라는 명제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실체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국 대학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립 대학들은 그 운영 비용의 과반 이상을 학생의 등록금과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각 재단 법인이 학교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립 대학들은 비용은 의존하지만 운영 자체는 학교 법인이 전적으로 행사하는 “사립 대학의 경제적 기여와 경영권 사이의 분리”를 주된 속성으로 가진다. 특히 사립 학교 학교 법인의 이사회는 규칙 제정권, 인사와 재정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사회의 구성과 임면까지도 이사회 스스로 결정하는 폐쇄적인 학내 의사 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학을 운영하는 준거로 학칙을 제·개정하는 것도 법인 이사회고, 그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이사회 스스로인 것이다. 이러한 대학 의사 결정 구조의 독점은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을 통해 법으로 명문화되어 보호받는다.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제도화된 ‘대학평의원회’나 ‘개방형 이사제’가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대받았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대학 구조 조정 국면에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는 구조 조정 투쟁에 이중의 전선을 강요한다. 


첫 번째는 가시화된, 드러난 전선인 구조 조정의 일방적 추진에서 비롯되는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전선이다. 거의 모든 대학 구조 조정은 ‘일방적’, ‘강압적’이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학교 본부가 학내 구성원들과의 소통이나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 없이 구조 조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방적 추진이 가능한 원동력은 시장 논리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시장 논리는 구조 조정의 합리성과 근거를 제시할 뿐이고 실질적인 원동력은 앞서 살펴본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에 있다. 사실 대학 구조 조정만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대학의 모든 운영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뿐 항상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구성원들이 학내 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따라서 대학 내 구조 조정 과정은 대학 구성원들과의 합의 과정이 아니라 학칙 개정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다. 학문 단위별 정원 조정은 학칙에 근거해야 하기에 구조 조정은 학칙이 개정되어야 실현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 맞추어 투쟁도 학칙 개정 절차에 대한 대응으로 구체화되는 경로가 일반적이다. 교무위원회, 대학평의원회, 가장 핵심인 이사회에서의 학칙 개정 의결을 막아 내는 것이 곧 구조 조정을 막아 내는 것이다. 이때 쟁점은 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시장 논리가 얼마나 타당하느냐가 아니다.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는 구조 조정의 타당성에는 관심이 없고 구조 조정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애초에 민주적 합의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일방적으로 추진되며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다. 이에 맞선 투쟁의 현실적이고 선택 가능한 유일한 수단은 훼손된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아 구조 조정을 저지하는 것이 된다.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시장 논리와의 불완전한 대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혹은 그래도 괜찮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투쟁이 전개되는 장소는 시장 논리와 결합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가 그어 놓은 절차적 정당성의 전선이다.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한편으로 수량화된 지표의 합리성으로 무장한 시장 논리와 대결하면서, 동시에 그 시장 논리를 대학 안에서 제도화시키는 학칙 개정 추진에도 대응해야 하는 중첩된 과제를 강제당했다. 애초에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대체로 1학기, 길어야 1 년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학칙 개정의 시간 축을 따라 다음 년도 입시에 반영되어야 하니까. 여기에 특히 학생 주체들을 얽매는 학사 일정이 더해지면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매번 시간에 쫓기는 다급한 투쟁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협소한 운신의 폭에서 시장 논리를 꺾을 만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왜 지금까지의 투쟁들이 필연적으로 학교 본부의 비민주적 추진을 비판하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수렴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선에서 파생되는 두 번째 전선은,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해 제대로 가시화되지 못한 전선으로, 독점적 대학 의사 결정 구조 자체에 대한 대립이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실제로 투쟁이 전개되는 공간이 일방적 학칙 개정의 공간이라면, 투쟁은 당연히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에 균열을 내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이미 알다시피 이 구조 자체가 공고한 한, 대학 구조 조정의 절차적 정당성은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법인 이사회의 아량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 조정을 막기 위해서는 학칙 개정을 막아야 하며, 일방적 학칙 개정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독점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독점적 결정 구조에 균열을 내는 것이 개별 대학에서 학칙 개정을 막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제라는 점이다.


현행법상 그나마 이 균열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만한 장치는 대학평의원회다. 대학평의원회는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 중 구성 단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학칙의 제·개정에 대한 심의권을 가지는 기관이다. 즉 여전히 평의원회가 설치되지 않거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평의원회는 사실상 학내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 결정 참여가 보장되는 거의 유일한 수단과 다름없었다.


피신청인은 2013. 6. 18.자 이사회에서 ○○ 전공, ○○복지 전공, △△ 전공, △△복지 전공을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2014학년도 학칙 개정안’(이하 ‘이 사건 개정안’이라 한다)을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를 하였다. (……) 위 소명 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개정안에 관한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와 같은 학칙 개정은 학칙 제96조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 대학평의원회 심의 거부를 적법하다고 볼 경우 대학평의원회가 심의 거부를 통하여 사실상 학칙 개정을 무산시킬 수 있는 결과가 되므로, 본안에서 달리 판단될 여지는 있으나 대학평의원회의 위와 같은 심의 거부는 심의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2013. 6. 18.자로 개정·의결된 학칙의 개정 절차가 위법하여 그 효력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카합1558 결정 [학칙 효력 정지 가처분], 2013.08.05.


하지만 법원 결정이 확인시켜 주는 것처럼 구조 조정 국면에서 대학평의원회는 이사회와 달리 의결 기구가 아닌 심의 기구에 불과하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덕분에 현행법에 근거한 대학의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는 자신이 세워 둔 의사 결정의 원칙을 위반해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데 방해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두 번째 전선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개별 대학을 넘어서 한국 대학 체계 전반, 또한 한국 사회 전반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학 집단의 이해관계와 투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투쟁이 나아가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개별 대학에서 전개되는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직면한 학칙 개정을 막기도 벅찬 상황에서 「사립학교법」 및 「고등 교육법」 개정을 의제로 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2005년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파장을 참고하면,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를 전복시켜 대학의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를 구성하려면, 2011년 반값 등록금 운동을 넘어서는 정도의 전국적 운동으로도 충분할지 확신을 가지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시장 논리와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의 결합은, 특히 이 구조가 강요했던 이중 전선의 문제는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첫 번째 전선에서 개별 대학의 운동에 머물렀을까? 왜 두 번째 전선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 전국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언급했던 시장 논리의 두가지 층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위계화된 구조 조정 압력과 파편화된 투쟁의 반복

대학 구조 조정은 한편에서 미시적인 대학 내에서의 시장 경쟁을 핵심 원리로 가진다. 이는 곧 시장 경쟁을 통해 대학에서 사라져야 하는 학문 단위가 결정됨과 동시에 그 반사 이익을 차지할 수 있는 학문 단위도 결정됨을 의미한다. 즉 대학 구조 조정은 항상 승자와 패자, 살아남는 자와 사라져야 하는 자, 일부라도 챙기는 자와 모든 것을 잃는 자를 동시에 결정한다. 구체적으로 폐지된 학과나 전공의 학생 정원을 가져와 몸집을 불릴 수도 있고 구조 조정이 약속하는 것처럼 경쟁력 강화로 인한 대학 서열에서의 상승 이동을 기대할 수도 있다. 결국 구조 조정의 대상으로 지목당한 학문 단위와 그 구성원들이 다른 학내 구성원들의 연대를 구하는 것 자체가 무거운 과제와 다름없다. 대학 구조 조정은 대학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생존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대체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덧붙여 대학 내에서의 시장 경쟁은 교묘하게 그 결과의 책임을 왜곡시킨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경쟁의 기준으로 평가가 제시하는 수량적 지표, 예를 들어 낮은 취업률이나 전공 선택률은 그 학문 단위 고유의 특성에서 비롯된 결과라고만 설명될 수 있을까? 단적으로 수량적 지표는 학교 본부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수량적 지표와 대학 내 시장 경쟁은 그러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학교 본부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 끝내는 학교 본부의 책임을 완전히 은폐 시켜 버린 채 그 책임을 오롯이 구조 조정의 대상으로 지목된 학문 단위의 구성원들에게 전가시켜 버릴 뿐이다. 때때로 이런 전가는 구성원들에 대한 낙인찍기로 이어진다.


“(학내 커뮤니티 게시판)에 저희를 조롱하는 글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폐과생 면담했다는 기사가 뜨면 ‘○○학과로 전과시켜 달라고 했겠네’, ‘○○학과 가고 싶어서 폐과될 거 알고 들어온 거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어요. 화가 나더라고요. (……) 또 그런 비난도 있었어요. ‘솔직히 △△학과 성적 맞춰서 들어오지 않았느냐, 성적 맞춰서 제일 낮은 과 들어왔으면서 ○○학과 전과시켜 주면 좋지 않냐’ 이런 글이었어요. 또 (학내 커뮤니티 게시판)에 ○○학과 애들은 ‘그런 애들 들어오면 우리 학과 질 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학교에 다녔어요. 저희 때문에 학교 경쟁력 떨어진다는 거예요. 학교 발전에 장애물 같다는 거죠. 사실 좀 많이 후회도 했어요. ○○대에 내가 왜 왔을까 하고요.”

- ××대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제76호(2019 봄여름)


대학 내 시장 경쟁은 한편으로 학내 학문 단위를 구분 짓는 동시에 구조 조정의 책임을 지목된 학문 단위에 전가시키면서 사회 전반의 거시적인 구조 조정 압력을 위계적으로 가하는 메커니즘이다. 본질적으로 거시적인 대학 간 시장 경쟁이 대학 내 시장 경쟁으로 전화하는 것은, 사회 전반의 구조 조정 압력을 대학 내 학문 단위 간의 갈등으로 전환시켜, 그중 일부에게 모든 비용과 고통을 전가시키는 방식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구조 조정의 압력을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연대의 확장을 위한 주체들의 절박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내에 고립되는 경향성을 보여 주었다.


구조 조정 압력의 위계는 학내보다 대학 사회 전반의 대학 간 시장 경쟁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명제가 이미 보여 주는 것처럼 지역과 입시로 줄 세워진 대학 간 서열의 아래로부터 구조 조정 압력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별도의 논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미 취약한 지방 사립대부터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 조정의 양상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일수록 대학 간 통폐합이 점차 논의되고 있지만 수도권 지역의 위계상 특혜를 누리는 대학들의 구조 조정은 여전히 대학 내 학문 단위 통폐합이나 재조정의 차원에서 구체화된다.


학령 인구 감소라는 조건은 동일하지만 그 압력이 대학 서열 체제의 위계에 따라 상이하게 가해지면서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의 전국적 연대 가능성도 요원해진다. 압력의 정도에 따라 구조 조정 추진의 동력도 상이하게 동원되고 자연히 투쟁이 마주해야 할 상황도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당장 정원 미달이 발생하고 정부 재정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는 대학에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 조정’은 그 자체로 정언 명령이다. 앞서 확인한 바와 같이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고립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과 맞물리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구조 조정 투쟁이 전국적 연대를 구성하는 데 실패하면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의 개정은 모두가 알지만 나아갈 수 없는 경로로 남게 된다.


결국 대학 내 시장 경쟁과 대학 간 시장 경쟁이 맞물려 위계화된 대학 구조 조정의 압력은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을, 매번 반복되 지만 매번 파편화되는 악순환으로 빠뜨린다. 대학 사회 전반의 구조 조정에 동원되는 시장 논리와 그 조건으로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 구조 조정의 압력과 정당성이 점차 고도화되는 상황 속에서, 매번 개별 대학에서의 투쟁만 반복된다. 그 결과 대학 구조 조정 추진과 완성의 사례는 누적되며, 전국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 스스로의 역사는 누적되지 못했다. 역사성의 상실은 곧 앞선 운동이 쟁취해 낸 것의 상실이자 앞선 운동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상실이다. 전국적 연대의 불가능성은 한편에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에 균열을 내는 데도 실패하지만, 동시에 개별 투쟁들이 유사한 국면에서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필연적 한계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의 여백을 우리의 언어로 채우기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금까지 살펴본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비워 두었던 여백들을, 시장 논리와의 맞대결,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 파편화된 투쟁의 반복을 그 누구도 아닌 구조 조정 투쟁 자신과 운동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먼저 개별 대학에서 흩어진 채 똑같은 투쟁을 각자 반복하지 않기 위해 투쟁의 전국적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보편 의제로서 대학 구조 조정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왜 현실에서 위계적으로 나타나는 구조 조정 압력이 대학 사회 전반의 문제인지를 당위의 차원을 넘어 구체화·이론화해야 한다. 대학의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기능, 지역과 대학의 관계, 학문 다양성, 살아남은 대학들이 직면하게 될 위기들에 대한 의제들이 있다.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질문들을 대학 구조 조정이라는 하나의 보편 의제로 묶어 내야 한다.


전국적 연대의 핵심은 ‘규모의 경제’만이 아니라, 반복되고 사라졌던 개별 투쟁들을 하나의 역사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대학 사회 전반의 보편 의제를 중심으로 이전까지의 투쟁과 현재 진행 중인 투쟁들이 어디까지 나아갔으며 무엇을 쟁취했는지를 정리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투쟁은 원점이 아니라 전국적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나아갔던 만큼의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기 위해서 전국적 연대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재난에서 비롯되었던 등록금 반환 운동은 나름의 한계가 있었지만 동시에 여전히 전국 대학에서 보편의 문제에 대한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무리 대학 사회가 무너졌고 탈정치화되었다는 세간의 평가가 득세하더라도, 대학은 모두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둘째로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민주적 대학 거버넌스 건설’이 전국적 연대를 통해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법 개정 투쟁을 통해 대학평의원회의 의결 기구화나 개방형 이사제의 현실화, 학생·교수 자치 기구의 법제화 등이 논의될 수 있다. 비록 그 한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최근 몇 년간 국립대와 일부 사립대에서 진행된 총장 직선제 사례는 민주적 대학 거버넌스 제도화에 대한 대학 사회 전반의 열망을 잘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제도와 제도화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가능케 할 다양한 자치 기구들의 실험적 시도와 다양한 연대, 다각적인 저항의 모색일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로의 자기 호명이 아니라 대학 사회의 시민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대학 구성원들의 주체 화가 꼭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논리와 다시금 대결할 수 있는 투쟁과 운동의 언어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학 구조 조정은 스스로의 언어를 계속해서 체계화하고 고도화하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와 인구 절벽, 대학과 노동 시장의 양적·질적 미스매치, 4차 산업 혁명의 도래 등의 담론들은 기존의 신자유주의 교육의 시장 논리와 결합하여, 대학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막강한 헤게모니를 장악 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 속에서 대학 구조 조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다급한 위기 속에 다소간 민주주의를 저버리는 것은 그리 어색하지도 않다. 절차적 정당성에 의존한 지금까지의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이 더 이상 승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와 자본이, 혹은 때때로 신자유주의가 대학 구조 조정에 동원하는 이 논리와 언어들이 실제로 타당한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저들의 것 이외에 현재 대학이 직면한 위기를 설명하는 우리의 논리와 언어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대학 구조 조정 반대 투쟁은 학령 인구 감소나 노동 시장, 급변하는 기술적 변화와 고등 교육 수요 이외에 대학이 직면한 위기를 진단할 논리와 언어를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살펴본 투쟁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구조 조정의 언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는 당위에서 출발하되 그래서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현재 진행 중인 대학 구조 조정에 마주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보편 의제로서 대학 구조 조정과 민주적 대학 거버넌스가 운동의 언어로 구성된 대안적 구조 조정 담론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출발하자. 사회적인 대학 구조 조정은 불가능한가?




❶ 본문에서 인용한 투쟁 사례 관련 자료들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❷ “대학 내 어문계열 통폐합 잇따라… 학생들 ‘학과 사라진다’ 반발”, 〈노컷뉴스〉, 2022년 4월 1일.

❸ “‘입시 몰락’ 인제대, 학과 구조 조정 극약 처방에 내홍까지”, 〈프레시안〉, 2022년 3월 4일.

❹ “한국외대 ‘12개 학과 통폐합’… 학생 동문들 결사 반대”, 〈한국경제〉, 2022년 4월 10일.

❺ “대학들 속속 학과 구조 조정 밑그림… 비인기 학과 줄이고 유망 학과 늘리고”, 〈매일신문〉, 2022년 4월 4일.

❻ 강석남(2021),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행기 고등교육 제도와 노동 제도의 종속적 제도 결합〉,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❼ 김일환(2019), 〈사립대 재단의 ‘기생적’ 성격과 그 기원〉, 《대학 : 담론과 쟁점》, 1, 61~76쪽.

❽ 박동기(2007), 〈한국사립대학의 의사결정구조에 관한 연구〉, 배재대학교 법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❾ 이 절은 [강석남·백승욱(2021), 〈기업식 대학 구조 조정 추진의 균열과 대학 구성원의 저항 : A사립대학 사례를 중심으로〉, 《기억과 전망》, 44, 10~58쪽]의 일부를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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