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호[오늘의 교육을 열며] 광장은 언제, 어떻게 닫히는가 | 강석남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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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을 열며



광장은 언제, 

어떻게 닫히는가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12.3 내란 이후 두 달 정도가 지났다.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숨 가쁘게 달려 나가는 사태를 쫓아가기도 버거웠다. 탄핵 트라우마를 운운하는 집권당의 몽니와 가까스로 의결된 탄핵, 관저에 철조망을 치고 법치주의를 대놓고 무시하며 극우적 선동을 이어 가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백골단, 극우의 준동과 법원을 침탈한 폭동까지. 내란 이래로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참담한 사태의 연속이자 현실감을 잊게 만드는 충격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들의 즉각적인 저항과 헌법을 위시한 제도의 작동으로 내란을 진압했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 의해 ‘광장’이 열렸다는 점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구속 이후 사태는 진정 국면에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이 시점에 오래된 질문을 제기하며 《오늘의 교육》을 열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광장은 언제, 어떻게 닫히는가?

우리는 한국 정치사의 궤적을 그려 온 시민 저항과 민주주의 수호의 주요한 분기마다 열렸던 전국적인 광장들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열린 광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 대단한 장관을 이루었는지도 기억할 것이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의 바다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미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된 2000년대 이전의 광장을 제외한, 특히 촛불 집회로 명명된 2000년대 이후의 광장은 각각 어떤 계기로 열렸고 언제,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을까. 

이번 내란에서 비롯된 2024년 겨울의 광장에 대해서도 여러 찬사와 진단이 이어지고 있다. 계엄 선포와 탄핵안 가결까지 여의도에 모여든 시민들은 이어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광장을 열어 냈다. 단순히 탄핵, 체포, 구속만을 외치는 것을 넘어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히 선언하고, 일상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말 그대로의 광장이었다. 2030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광장에 들고 나온 응원봉과 〈다시 만난 세계〉로 대표되는 K-Pop, 선결제와 후원으로 이어지는 연대의 표현,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와 만났던 남태령, 내란 우두머리의 체포를 촉구하며 쏟아지는 함박눈을 은박 담요로 밤새 버텨 낸 ‘키세스단’은 내란 이후 시민들의 저항과 새롭게 열린 광장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광장의 의미는 상징을 남기는 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광장이 언제, 어떻게 닫히느냐의 질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광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지, 어떤 변화로 나아갈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12.3 내란 이후 열린 광장은 그렇다면 언제 닫힌다고 볼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 정국이 도래하면? 시민들이 더 이상 수십만, 수백만 단위로 모이지 않으면? 집회를 주관하는 사회운동 연대체가 집회의 마지막을 선언하면? 

시간을 앞으로 돌려 가장 최근의 대규모 광장이었던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를 다시 떠올려 보자. 2016년 촛불 집회의 주요한 특징은 광장이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로 갈려 열렸다는 점일 것이다. 소위 ‘촛불’과 ‘태극기’를 각자의 상징으로 들고나온 두 광장 사이는 충돌을 우려하는 경찰이 가로막고 있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였겠으나, 한편으로 공권력이 두려워한 것은 촛불과 태극기의 충돌이었지 광장 자체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촛불의 광장은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촛불 집회를 살펴보자. 2016년 10월 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2017년 4월 29일 23차 집회까지, 연인원 1684만 명이 참가한 촛불 집회를 주최했던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2017년 5월 24일 ‘박근혜 정권 퇴진이라는 소임과 역할을 다했기에’ 해산을 선언했다.❶ 박근혜 퇴진 요구를 계기로 열렸던 광장은 어느 기준을 적용하든 이 시점을 전후한 시기에 닫혔을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광화문 일대를 강처럼 흐르는 촛불의 이미지가 선사하는 가슴 벅찬 감상 이상의 무엇을 광장이 남겼는지 우리 사회가 제대로 질문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1차 목표였던 박근혜의 퇴진과 많은 시민들이 염원했을 정권 교체, ‘촛불 혁명’이라는 레토릭을 적극 활용한 이른바 적폐 청산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납작한 ‘승리의 역사’로만 2016년의 광장을 기억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이처럼 2000년대 촛불을 매개로 열렸던 광장들이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싶다.

반면 무대의 한편을 차지했던 태극기 부대의 광장은 끝내 닫히지 않고 2025년 1월, 법원 침탈 폭동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오며 덩치를 키워 왔다. 박근혜 석방, 부정 선거, 색깔론 등등 아전인수 격인 의제들을 바꿔 들며, 급격히 퍼진 극우적 유튜브 매체를 매개로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제 제도권 정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이다. 그 결과 12.3 내란 이후 극우의 광장은 2016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집권 여당이 내란 우두머리를 제대로 끊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체포를 막겠다며 대통령 관저를 옹위하고, 백골단을 자처하는 극우 단체의 기자 회견을 국회에서 열어 주고, 극우 집회에 참가해 머리를 조아리며, 심지어 부정 선거를 운운하고 법원을 침탈한 폭동을 옹호할 정도이다. 이러한 일련의 추태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합리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라면 여당으로서 자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친위 쿠데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모인 우리의 광장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불법 비상계엄령 이래 사태가 긴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광장 이후에 대한 논의와 고민들은 과거의 반복된 사례보다 더 찾기 어려워진 느낌이다. 분명한 것은 12.3 내란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는 완전히 다른 환경과 조건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귀환 및 엄중한 동북아 정세와 함께 보수 집권당을 매개로 제도권 정치의 한몫을 요구하는 극우의 준동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접해 보지 못한 도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광장의 빛나는 순간만 기억하며 광장 이후에 대한 고민은 잊은 채 정권 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탄핵 정국의 블랙홀에 다시금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박근혜를 몰아냈던, 하지만 그 이상 무엇을 바꿔 냈는지 단언할 수 없는 2016년의 광장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지나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체제’로 이어졌다. 지금 한국 사회가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와 진정 결별하고 있는 중인지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12.3 내란을 가능케 한 기저의 원인에는 윤석열 개인뿐만 아니라 ‘윤석열’들을 키워 낸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 교육이 있다고 지적한다.❷ 맞는 말이다. 여전히 폭력과 권위주의가 난무하며 형식적인 민주주의와도 괴리된, 이미 계엄 중이었다는 수사가 어색하지 않은 학교 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계엄을 경험하지 않았던,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학교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주도하는 광장은 이른바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부르는 교육 제도의 효용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교육운동은 어디서 실패하고 어디서 성공하고 있는가. 다시 열린 광장이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징후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지금, 교육운동 역시 이 광장을 어떻게 닫을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❶ “퇴진행동 6개월 만에 해산 “촛불, 모든 날이 행복했다””, 〈한겨레〉, 2017년 5월 24일. 

❷ 김누리,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한겨레〉, 2025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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