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김성보 sb00@sen.go.kr
서울 중등 교사
교직 18년째가 되던 2015년, 뜻하지 않게 생활부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는 교감이 2명이나 있는 큰 학교였다. 원래는 한 학년에 8개 학급 정도가 있던 보통 규모 학교였다. 그런데 인근 중학교가 자율형으로 전환해 지역의 학생들을 받지 않아 뜻하지 않게 학생 수가 2배가 됐다. 처음 그 학교에 갔을 땐, 증축한 건물이 ㄱ자로 붙어 있어 창문이 절반만 있는 교실도 존재했다. 학생도 많고 교실도 많아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빠르게 도망가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많았다. 한번은 학생이 잘못해서 보호자에게 연락했는데, 자기에게 전화하지 말고 바로 경찰서에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고 답해 곤혹스러웠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아 보호자에게 전화하면 야간 업무를 하고 자느라 늦잠을 자는 자녀를 깨우거나 등교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자퇴한 형들에게는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면서도, 교사에게는 얼마나 개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 학생 사회에서 힘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생활부장의 주요 역할은 더 큰 힘으로 일진 학생들을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인권 친화 교사인 척했던 나는 생활부장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마침 호랑이 선생님이 생활부장을 하는 시대도 끝이 나고 있었다. 생활지도는 학생인권을 중심에 둬야 했고, 학교폭력도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같은 교사가 차선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폭력을 없애는 근본적인 대책은 학생 자치 활동 강화라고 굳게 믿고 있다. 몇 년 사이 노래방으로 후배를 불러 노래 중간중간 뺨을 때리는 등과 같은 노골적인 신체 폭력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엔 학교폭력의 상당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다. 교사든 보호자든 경찰이든 학생을 24시간 감시할 수 없다. 그러니 감시와 처벌 중심의 대책은 한계가 뚜렷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권선징악을 할 힘과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교묘해지는 폭력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학생 자치의 근거로 쓰이는 학생인권조례가 공격을 받았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의 처벌도 강화되었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존재는 ‘처벌 강화냐, 완화냐’라는 프레임에 사람들의 사고를 가두어 대안적 논의를 막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과 「학교폭력예방법」
군부 독재에 의해 국가 자본주의적인 근대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가정, 학교, 회사, 군대 등 사회 전반에 폭력이 만연했었다. 질서를 위해, 안전을 위해, 예의를 위해, 학업을 위해, 훈육과 얼차려라는 외피를 쓰고 있었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만들어졌지만, 기존 선도 사안(용의 복장, 음주, 흡연, 무단 지각, 무단 결석)과 큰 차이 없이 취급되었다. 사회적으로 공적인 폭력(훈육과 체벌, 맞을 짓이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에, 폭력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보다는 폭력의 원인이 불순한가 아닌가를 더 따졌다. 일진의 신고식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나 금품 갈취는 사회적 문제였지만, 졸업식 폭력은 문화처럼 용인되었다. 2010년 ‘알몸 졸업식’ 논란 이후에야 ‘밀가루 뿌리기’와 교복 찢기’ 같은 악습이 사라졌다. 서울에서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주도로 2010년 체벌이 금지되었고, 2012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며 학교에서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커졌다.
2012년 12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후,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 지침에 ‘학교폭력 가해 학생 선도 사항을 기록하라’고 한 것이 큰 문제를 낳았다. 전교조를 비롯해서 김승환 전북 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들과 해당 교육청들은 기재 반대를 적극 주장하였으나, 교육부가 미기재 교장을 징계하며 생기부 기재를 공식화했다.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가 진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서울 강남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부터 변호사를 대동한 학교폭력 대응과 교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슬금슬금 늘어났다. 또한 체벌이 금지된 학교에는 상벌점제가 등장했고,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학교 안전교육이 대폭 강조되었다. 이런 흐름을 거치면서 학교 생활교육은 폭력, 부적응(장기 결석), 교권 침해, 안전 등의 영역으로 범주가 나뉘었다. 학교에서 학생생활교육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학생 징계와 학생 자치를 담당하던 생활교육부는 학교폭력 전담 부서가 되고 있다. 폭력 이외 규정 위반을 다루는 생활교육위원회(과거 선도위원회)는 학년부(동학년 담임 회의)에서 다루는 학교도 많아졌다. 부적응 학생은 복지부에서 돌봄의 관점에서 다루고, 교권 침해는 교감-교무 담당 업무, 안전은 체육부의 업무가 되기도 하지만, 학교폭력은 생활교육부의 고유 업무처럼 되어 있다.
2021년 ○○중학교 생활안전부 업무 분장 기획1 생활교육위원회, 지킴이 운영, 학생 표창, 생활규정, 흡연 예방 교육, 사안1 기획2 우애부 운영, 상벌점 관리, 자치 법정 운영, 교복 주관 구매, 도박 예방 교육, 사안2 자치 인권 학폭 전담 기구, 학생 자치, 학생증(명찰), 안전교육, 인권(민주시민)교육, 사안3 |
학교폭력 업무는 매뉴얼에 따른 절차가 매우 중요해졌고, 결과적으로 담임들은 학교폭력 업무에서 배제됐다. 현재 학교폭력 사안은 교육의 영역이 아닌 셈이다.
김영삼 정부(1993~1998년) 때 경제적 효율화의 수단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 수요자’, ‘소비자 주권’으로 호명하며 신자유주의 교육이 본격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기존의 제도와 도덕 규범을 불필요한 규제로 명명하며 자유 경쟁을 찬양한다. 자유 경쟁을 통해 소비 단위를 최대한 세분화하면 소비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과거에 상품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까지 상품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다.[ref]“가족 관계에 쳐져 있던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인 장막을 찢어 버리고, 가족 관계를 순전한 화폐 관계로 돌려놓았다. (……) 굳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표상들 및 의견들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모든 것들은 정착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적인 것과 정체적인 것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독당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의 생활상의 지위와 상호 연관들을 깨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엘겔스 씀, 김태호 옮김(1998), 《공산주의 선언》, 박종철출판사, 7~8쪽)[/ref]
1970년대생인 나는 초·중·고 때 입시 경쟁을 하면서도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불가피한 경쟁에는 늘 ‘선의의 경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했다. 그러나 재작년 ‘전교조 타도’를 외치는 뉴라이트 교원단체는 교육과정 토론회에서 ‘경쟁이 없는 교육은 경쟁력이 없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개인들의 분열된 자아(부캐)는 새로운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 자유 경쟁과 개인주의의 만남은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법’만 남고 ‘교육’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동체적 해결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교실에서 싸움(폭행)이 벌어져도 방관하는 학생이 많다. 학생 간 폭력은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직접 관련된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혐오 발언을 한 학생을 꾸중하면, 다른 학생들은 주목하지 않고 장난을 친다. 교사가 화를 내면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쟤도 떠들었는데”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폭력에 대한 방관은 나쁜 짓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대한민국 형법상 정당방위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 반격이나 보복, 도덕적 징계를 정당방위로 착각하여 타인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개입해서 오히려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동체적 해결 시도는 ‘위법’한 조치로 취급받기 쉽다. 학생들이 타인의 어려움이나 갈등을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학생은 또래(친구) 관계가 중요한 발달 과제가 되는 시기다. 초등학교 시절의 ‘교사 대 다수 학생’의 관계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자신이 만드는 독립적인 관계가 힘을 발휘하는 때다. 사회화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미숙하기도 하고 갈등과 긴장은 기본이다. 코로나19 전, 〈OECD Education 2030〉이 제시한 핵심 역량 개념이 유행할 때, 청소년의 발달 과제로 4Cs[ref]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ref]가 제출되었다. 진보교육연구소는 4Cs가 특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의 성향이나 가정 환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견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판적 사고와 소통은 상황 인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창의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폭력과 차별, 배제보다 협력과 배려의 민주주의가 탁월하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분리하고 차단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관련 학생을 공동체에서 분리시켜 법적 기구에서 처리한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다투면서 발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배제와 관리의 「학교폭력예방법」
「학교폭력예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선도 이행의 강제력을 잘못된 방식으로 확보한다는 점이다. 생기부 기재(「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를 통해 상급 학교 진학 시 영향을 미치게 만들었다. 선도 처분(긴급 분리 조치, 교내 봉사, 사회봉사, 특별 교육, 출석 정지, 전학, 퇴학)은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처분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무한 경쟁 학교 시스템에서 ‘배제’는 종종 ‘혜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해자로 신고된 학생들을 긴급 분리 조치해서 생활부실에 두면, 해당 학생들은 태블릿으로 웹서핑이나 게임을 하며 지낸다. (처분 전이라서 분리만 시킬 뿐 학습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리 조치한 학생들을 위해 별도 학습 자료를 만들 여력이 없는 교사들은 해당 학생에게 책이나 교과서를 보게 하거나 태블릿 기기로 온라인 학습을 하게 한다. 제대로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처분 결과로 ‘출석 정지’라도 나오면 오히려 특별 휴가를 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까지 불이익을 주는 ‘생기부 기재’라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생기부 기재 기간도 처음에는 ‘졸업 후 2년까지’였는데, 최근 개정되어 4년까지로 늘었다.
미래에 대한 불이익 조치는 부모가 아이들 사이의 다툼에 개입해야 할 이유가 되었고, 각종 소송을 낳았다. 처분 취소 행정 소송 재판에서 이기기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주로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진행하며 절차를 위반한 것은 없는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절차대로 구성하였는지 등을 문제 삼는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권이 없는 우리나라는 학부모 위원 선출을 위한 학부모 총회의 공고와 투표 절차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구성 위반 사항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인지 학교 단위 기구를 폐지하고 교육지원청 단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다. (권한을 반납하는 것이어서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교사가 교육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도 소송에만 휘말리니 교육청으로 옮겨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학교폭력에 대한 포괄적 정의는 교사들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항은 학교폭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 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조항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안드로메다에서 누군가가 (학생에게) 눈을 흘기는 느낌’을 받은 것도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해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학교폭력은 인지한 누구나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고, 교사는 신고, 보고, 학부모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교사는 사안을 판단하고 조치할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사안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관련 학생과 보호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학교폭력 사안을 관리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호통을 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안 된다. 보호자에게 상대 학생의 진술서를 보여 주어도 안 된다. 화해를 종용하거나, 학생이나 보호자끼리 연락하거나 만나게 해서도 안 된다. 대신 학생과 보호자가 어떤 일을 하면 안 되는지,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야 한다. 이처럼 학교폭력 사안은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송사이고, 교사에게는 별도 권한은 없으며 신고, 비밀 유지 등 의무만 있다.
사안 처리 시 유의 사항[ref]〈2025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교육부·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 14쪽.[/ref]1.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한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 2. 학생과 학부모의 상황과 심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불필요한 분쟁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3. 학교폭력 사안 조사 시에는 관련 학생들을 분리하여 조사하고, 축소·은폐하거나 성급하게 화해를 종용하지 않도록 한다. 4. 학교폭력 사안 조사는 가능한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을 활용하고, 부득이하게 수업 시간에 할 경우에는 별도의 학습 기회를 제공하도록 한다. 5.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의결 전까지는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을 단정 짓지 말고 관련 학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6. 전담 기구 사안 조사,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하 ‘조사관’이라 한다)의 조사 및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의결 시 관련 학생 및 보호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7. 성범죄 관련 사안을 인지한 경우, 예외 없이 수사 기관에 즉시 신고한다. 8.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재심 성격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개최하지 않는다. |
학교폭력 담당 교사의 사안 처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안이 접수되면, 최대한 신속하게 피해자 진술을 받아야 한다. 요즘엔 교육청 소속 조사관이 학교에 방문해 면담하기 때문에 미리 약속을 잡는다. 피해 신고한 학생에게 긴급 분리 조치를 원하는지 확인하고, 분리 조치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가해 신고된 학생을 분리 조치한다. 가해 관련 학생이 진술서를 쓰는 동안 담임 교사에게 사안 접수 사실을 알리고, 개입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담임 교사는 자기 반 학생 보호에만 충실하면 된다. 양측 보호자에게 사안 접수 사실을 알린다. 참고인이 있는 경우 참고인 진술을 받는다. 교육청에 사안 접수 공문을 보내고, 1~2주 내에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소집해서 사안 조사 보고서를 완료한다. 학교장 자체 해결 여부를 수용해서, 교육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공문을 발송한다. 약 3개월 후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되면 학생과 보호자에게 참석을 안내하고, 일주일 뒤 결과가 나오면 보호/선도 처분 이행을 의뢰한다.
‘사회봉사’나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조치 처분이 나오면 관계 기관들이 학생을 잘 안 받아 주기 때문에 수락을 받는 것도 큰일이다. (라포가 형성된 교사도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이 많은데, 선뜻 사회봉사를 받아 주거나 특별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은 많지 않다.) 가해 학생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특별 교육은 더 문제다. (특별 교육 5시간부터는 위센터가 1개월마다 학부모들을 모아서 관련 교육을 해 주는데, 3시간은 학교가 해야 해서 난감하다.) 법에 따라 가해 학생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의무이자 선도 조치인 셈인데, 학교는 성인인 보호자를 교육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교육’이 어디 있는가? 교사들은 관련 학생과 보호자 모두에게 교육적 조언을 할 수 없다. 2020년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가 부활해서 경미한 사안의 경우 화해 시도가 가능해졌다. 물론 가해 학생의 온전한 반성이나 피해 학생과 보호자의 넓은 아량이 있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다툼이라는 것이 일방적 피해와 일방적 가해로 나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교육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되는 데 3개월이나 걸리는 상황 때문인지 학교장 자체 해결 비율은 제도가 시작된 이후 거의 65%에 이른다.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세상
학생들은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사과와 용서라는 감정조차도 상업적 거래로 취급되는 것인지, 용서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과를 유도하기 어렵다. 사과는 잘잘못을 다툴 권리를 포기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되어 선도 처분 수위를 두고 다투기 시작하면 사과할 기회는 없다. 사과는 처분의 한 종류일 뿐이다. 성범죄 관련 사안은 처벌이 엄하므로, 가해 학생의 진술은 보호자에 의해 번복되는 경우도 많다.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발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교사(어른)와의 관계에서 어떤 실수를 했을 때 ‘앞으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 약속으로 용서를 얻고 새로운 기회를 받는다. 하지만 학생 간의 관계에서는 반성과 용서가 가능할까? 학교폭력 처분의 이행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사과’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엄한 처벌을 주문하고, 가해자는 처벌 최소화를 위해 자기 정당화를 주장하는 과정을 거친 후이기 때문이다. 처분 결과로서 가장 낮은 조치인 ‘서면 사과’가 나오더라도 이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일 뿐이다. 우발적인 사안이라면 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금방 화해한다. 눈빛이나 손짓만으로도 사과를 할 수 있다. 한편 ‘서면 사과’ 처분은 사과 내용에 뭘 담을지를 가해 학생이 정하게 되므로, 이 처분이 나오는 순간 가해자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느낌도 있다.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 사과문은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어떤 구체적인 말과 행동, 배상이 있다면 피해 학생 측 의견을 받아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의 의견을 수용하도록 권유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사안 진술서 양식에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반성을 해 볼 수 있게 항목을 추가했다. 육하원칙에 따른 진술 외에 ‘이 일로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누가 어떻게 해야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가?’ 등을 쓰도록 했다. 반면,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은 못 쓰게 했는데,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위(無爲)’는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학생에게 어떤 좋은 일을 추가로 해 줄 것인지 고민하고, 의지가 있다면 사과문을 미리 쓰도록 했다. 비폭력 대화법을 참고해서 사과문 형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잘 정리할 수 있다.
1. [인정] 나의 잘못된 행동을 있는 그대로 쓰기(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2. [공감] 상대나 다른 사람이 느꼈을 아픔 추측(감정(슬픔, 두려움, 화, 불편, 걱정), 상처, 피해) 3. [해명] 나의 원래 의도, 그때 나의 감정 상태 4. [약속] 사과의 말, 변화를 보여 줄 행동 약속(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
사안 발생 직후에 가해 학생이 사과문을 쓰게 되면, 사건 해결의 주도권을 피해 학생이 가질 수 있다. 사과를 받아 줄지 말지라든가 피해 회복을 위해 구체적인 무언가를 더 요구할 수 있다.
공동체와 자치를 추구한다면
학교폭력의 원인 진단이나 해결 방안에서 단일한 무엇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생활지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할 때,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의 양상은 많이 다르다.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담임이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무서운’ 학폭 사안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엄벌 대책보다는 담임 교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한편 학교폭력 전담 기구 등이 실질적인 위기 학급 지원팀으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에서는 인간관계의 확장이라는 발달 과제가 학교 시스템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학생 자치를 통해 민주 시민 역량 강화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인간은 유적 존재(Gattungswesen)이다. 개인과 공동체는 통합된 대립물이다.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개인’은 상상의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교육은 ‘맞춤형’, ‘선택형’의 기조를 확대하며 ‘개인’ 학생들이 ‘자유 경쟁’하는 것을 ‘공정’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14세 미만은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학생은 각종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폭력 개념, 긴급 분리 조치, 생기부 기재 등 「학교폭력예방법」은 「형법」보다 더 엄하게 학생들을 처벌한다. 공동체에서 개인을 분리해서 특정한 처분을 하는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시도는 비인간적인 결과를 낳는다. 기초학력을 보장한다면서 일제고사를 보고 성취도 미달 학생을 선별해서 지도한다. 정서 행동 검사를 해서 위기 학생을 선별한다. 교과서로 강요하고 있는 AI 디지털 자료의 핵심 기능은 ‘개인 맞춤형’ 선다형 문제 풀이 반복이다. ‘개인’, ‘맞춤’, ‘선택형’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인력’ 양성을 위한 효율적 시스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 입장에서 보면 조기 선별과 획일적 진로 강요일 뿐이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각종 학생 사안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 포용, 억압, 배제를 적절하게 결정하고 이행하도록 권한과 의무를 학교에 주면 좋겠다.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운영하기위해 고민한다면, 학교 구성원들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를 잘 담고 있는 독일 헤센주의 〈학교법〉을 참고할 만하다. 학교 활동을 중심으로 법이 정리되어 있고, 교육청과 교육부와 의회 등 지자체와 국가의 역할은 ‘학교 감독’이라는 범주로 정리되어 있다. 학부모의 학부모회 참여권이 보장되고, 학부모회는 학교 운영에 대한 동의권과 청문권이 보장된다. 또 학생회와 교사협의회, 학교협의회(학운위)가 법으로 보장되어 학교의 자치권이 민주적으로 행사되는 틀을 가지고 있다. 교육 활동은 교사회의 권한으로 진행되고, 학생회와 학부모회는 성적과 교원 인사를 제외한 학교 사안에 대해 동의권과 청문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학교장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이의 신청을 하는 식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이의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와 학부모회가 역할을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생과 학부모는 민원인이 아니라 학교 운영 참여 주체다.
우리나라도 학교를 옥죄는 각종 교육 특별법(「학교폭력예방법」 포함)을 폐지하고, 국가 기관의 권한 위주 조문만 가득한 유·초·중등교육 관련 법을 전면 개폐하여, 학교 구성원들의 권한과 의무를 보장하는 학교자치법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특집 -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김성보 sb00@sen.go.kr
서울 중등 교사
교직 18년째가 되던 2015년, 뜻하지 않게 생활부장을 맡게 되었다.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는 교감이 2명이나 있는 큰 학교였다. 원래는 한 학년에 8개 학급 정도가 있던 보통 규모 학교였다. 그런데 인근 중학교가 자율형으로 전환해 지역의 학생들을 받지 않아 뜻하지 않게 학생 수가 2배가 됐다. 처음 그 학교에 갔을 땐, 증축한 건물이 ㄱ자로 붙어 있어 창문이 절반만 있는 교실도 존재했다. 학생도 많고 교실도 많아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빠르게 도망가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생활지도의 어려움도 많았다. 한번은 학생이 잘못해서 보호자에게 연락했는데, 자기에게 전화하지 말고 바로 경찰서에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고 답해 곤혹스러웠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아 보호자에게 전화하면 야간 업무를 하고 자느라 늦잠을 자는 자녀를 깨우거나 등교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자퇴한 형들에게는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면서도, 교사에게는 얼마나 개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 학생 사회에서 힘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생활부장의 주요 역할은 더 큰 힘으로 일진 학생들을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는 것이었다. 평소에 인권 친화 교사인 척했던 나는 생활부장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마침 호랑이 선생님이 생활부장을 하는 시대도 끝이 나고 있었다. 생활지도는 학생인권을 중심에 둬야 했고, 학교폭력도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같은 교사가 차선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폭력을 없애는 근본적인 대책은 학생 자치 활동 강화라고 굳게 믿고 있다. 몇 년 사이 노래방으로 후배를 불러 노래 중간중간 뺨을 때리는 등과 같은 노골적인 신체 폭력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엔 학교폭력의 상당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다. 교사든 보호자든 경찰이든 학생을 24시간 감시할 수 없다. 그러니 감시와 처벌 중심의 대책은 한계가 뚜렷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권선징악을 할 힘과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교묘해지는 폭력을 근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학생 자치의 근거로 쓰이는 학생인권조례가 공격을 받았고,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의 처벌도 강화되었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존재는 ‘처벌 강화냐, 완화냐’라는 프레임에 사람들의 사고를 가두어 대안적 논의를 막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과 「학교폭력예방법」
군부 독재에 의해 국가 자본주의적인 근대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가정, 학교, 회사, 군대 등 사회 전반에 폭력이 만연했었다. 질서를 위해, 안전을 위해, 예의를 위해, 학업을 위해, 훈육과 얼차려라는 외피를 쓰고 있었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만들어졌지만, 기존 선도 사안(용의 복장, 음주, 흡연, 무단 지각, 무단 결석)과 큰 차이 없이 취급되었다. 사회적으로 공적인 폭력(훈육과 체벌, 맞을 짓이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기 때문에, 폭력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보다는 폭력의 원인이 불순한가 아닌가를 더 따졌다. 일진의 신고식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나 금품 갈취는 사회적 문제였지만, 졸업식 폭력은 문화처럼 용인되었다. 2010년 ‘알몸 졸업식’ 논란 이후에야 ‘밀가루 뿌리기’와 교복 찢기’ 같은 악습이 사라졌다. 서울에서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주도로 2010년 체벌이 금지되었고, 2012년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며 학교에서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커졌다.
2012년 12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 후,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 지침에 ‘학교폭력 가해 학생 선도 사항을 기록하라’고 한 것이 큰 문제를 낳았다. 전교조를 비롯해서 김승환 전북 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들과 해당 교육청들은 기재 반대를 적극 주장하였으나, 교육부가 미기재 교장을 징계하며 생기부 기재를 공식화했다.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가 진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서울 강남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부터 변호사를 대동한 학교폭력 대응과 교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슬금슬금 늘어났다. 또한 체벌이 금지된 학교에는 상벌점제가 등장했고,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학교 안전교육이 대폭 강조되었다. 이런 흐름을 거치면서 학교 생활교육은 폭력, 부적응(장기 결석), 교권 침해, 안전 등의 영역으로 범주가 나뉘었다. 학교에서 학생생활교육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학생 징계와 학생 자치를 담당하던 생활교육부는 학교폭력 전담 부서가 되고 있다. 폭력 이외 규정 위반을 다루는 생활교육위원회(과거 선도위원회)는 학년부(동학년 담임 회의)에서 다루는 학교도 많아졌다. 부적응 학생은 복지부에서 돌봄의 관점에서 다루고, 교권 침해는 교감-교무 담당 업무, 안전은 체육부의 업무가 되기도 하지만, 학교폭력은 생활교육부의 고유 업무처럼 되어 있다.
2021년 ○○중학교 생활안전부 업무 분장
기획1 생활교육위원회, 지킴이 운영, 학생 표창, 생활규정, 흡연 예방 교육, 사안1
기획2 우애부 운영, 상벌점 관리, 자치 법정 운영, 교복 주관 구매, 도박 예방 교육, 사안2
자치 인권 학폭 전담 기구, 학생 자치, 학생증(명찰), 안전교육, 인권(민주시민)교육, 사안3
학교폭력 업무는 매뉴얼에 따른 절차가 매우 중요해졌고, 결과적으로 담임들은 학교폭력 업무에서 배제됐다. 현재 학교폭력 사안은 교육의 영역이 아닌 셈이다.
김영삼 정부(1993~1998년) 때 경제적 효율화의 수단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 수요자’, ‘소비자 주권’으로 호명하며 신자유주의 교육이 본격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기존의 제도와 도덕 규범을 불필요한 규제로 명명하며 자유 경쟁을 찬양한다. 자유 경쟁을 통해 소비 단위를 최대한 세분화하면 소비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과거에 상품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까지 상품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다.[ref]“가족 관계에 쳐져 있던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인 장막을 찢어 버리고, 가족 관계를 순전한 화폐 관계로 돌려놓았다. (……) 굳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표상들 및 의견들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모든 것들은 정착되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적인 것과 정체적인 것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독당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의 생활상의 지위와 상호 연관들을 깨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엘겔스 씀, 김태호 옮김(1998), 《공산주의 선언》, 박종철출판사, 7~8쪽)[/ref]
1970년대생인 나는 초·중·고 때 입시 경쟁을 하면서도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불가피한 경쟁에는 늘 ‘선의의 경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했다. 그러나 재작년 ‘전교조 타도’를 외치는 뉴라이트 교원단체는 교육과정 토론회에서 ‘경쟁이 없는 교육은 경쟁력이 없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개인들의 분열된 자아(부캐)는 새로운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 자유 경쟁과 개인주의의 만남은 「학교폭력예방법」에서 ‘법’만 남고 ‘교육’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동체적 해결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교실에서 싸움(폭행)이 벌어져도 방관하는 학생이 많다. 학생 간 폭력은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직접 관련된 학생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혐오 발언을 한 학생을 꾸중하면, 다른 학생들은 주목하지 않고 장난을 친다. 교사가 화를 내면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쟤도 떠들었는데”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폭력에 대한 방관은 나쁜 짓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편 대한민국 형법상 정당방위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 반격이나 보복, 도덕적 징계를 정당방위로 착각하여 타인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개입해서 오히려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동체적 해결 시도는 ‘위법’한 조치로 취급받기 쉽다. 학생들이 타인의 어려움이나 갈등을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학생은 또래(친구) 관계가 중요한 발달 과제가 되는 시기다. 초등학교 시절의 ‘교사 대 다수 학생’의 관계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자신이 만드는 독립적인 관계가 힘을 발휘하는 때다. 사회화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미숙하기도 하고 갈등과 긴장은 기본이다. 코로나19 전, 〈OECD Education 2030〉이 제시한 핵심 역량 개념이 유행할 때, 청소년의 발달 과제로 4Cs[ref]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ref]가 제출되었다. 진보교육연구소는 4Cs가 특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인의 성향이나 가정 환경이 다양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견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비판적 사고와 소통은 상황 인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창의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폭력과 차별, 배제보다 협력과 배려의 민주주의가 탁월하다는 것을 확인해 왔다.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분리하고 차단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관련 학생을 공동체에서 분리시켜 법적 기구에서 처리한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다투면서 발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배제와 관리의 「학교폭력예방법」
「학교폭력예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선도 이행의 강제력을 잘못된 방식으로 확보한다는 점이다. 생기부 기재(「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를 통해 상급 학교 진학 시 영향을 미치게 만들었다. 선도 처분(긴급 분리 조치, 교내 봉사, 사회봉사, 특별 교육, 출석 정지, 전학, 퇴학)은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처분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무한 경쟁 학교 시스템에서 ‘배제’는 종종 ‘혜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해자로 신고된 학생들을 긴급 분리 조치해서 생활부실에 두면, 해당 학생들은 태블릿으로 웹서핑이나 게임을 하며 지낸다. (처분 전이라서 분리만 시킬 뿐 학습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리 조치한 학생들을 위해 별도 학습 자료를 만들 여력이 없는 교사들은 해당 학생에게 책이나 교과서를 보게 하거나 태블릿 기기로 온라인 학습을 하게 한다. 제대로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처분 결과로 ‘출석 정지’라도 나오면 오히려 특별 휴가를 받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까지 불이익을 주는 ‘생기부 기재’라는 잘못된 방식이 등장했다. 생기부 기재 기간도 처음에는 ‘졸업 후 2년까지’였는데, 최근 개정되어 4년까지로 늘었다.
미래에 대한 불이익 조치는 부모가 아이들 사이의 다툼에 개입해야 할 이유가 되었고, 각종 소송을 낳았다. 처분 취소 행정 소송 재판에서 이기기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주로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를 진행하며 절차를 위반한 것은 없는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절차대로 구성하였는지 등을 문제 삼는다. 학부모의 학교 참여권이 없는 우리나라는 학부모 위원 선출을 위한 학부모 총회의 공고와 투표 절차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구성 위반 사항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인지 학교 단위 기구를 폐지하고 교육지원청 단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다. (권한을 반납하는 것이어서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교사가 교육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도 소송에만 휘말리니 교육청으로 옮겨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학교폭력에 대한 포괄적 정의는 교사들에게 무한 책임을 요구했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항은 학교폭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 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조항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안드로메다에서 누군가가 (학생에게) 눈을 흘기는 느낌’을 받은 것도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해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학교폭력은 인지한 누구나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고, 교사는 신고, 보고, 학부모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교사는 사안을 판단하고 조치할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사안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관련 학생과 보호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학교폭력 사안을 관리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호통을 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안 된다. 보호자에게 상대 학생의 진술서를 보여 주어도 안 된다. 화해를 종용하거나, 학생이나 보호자끼리 연락하거나 만나게 해서도 안 된다. 대신 학생과 보호자가 어떤 일을 하면 안 되는지,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야 한다. 이처럼 학교폭력 사안은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송사이고, 교사에게는 별도 권한은 없으며 신고, 비밀 유지 등 의무만 있다.
사안 처리 시 유의 사항[ref]〈2025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교육부·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 14쪽.[/ref]
1.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한 경우,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학교폭력 사안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
2. 학생과 학부모의 상황과 심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불필요한 분쟁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3. 학교폭력 사안 조사 시에는 관련 학생들을 분리하여 조사하고, 축소·은폐하거나 성급하게 화해를 종용하지 않도록 한다.
4. 학교폭력 사안 조사는 가능한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을 활용하고, 부득이하게 수업 시간에 할 경우에는 별도의 학습 기회를 제공하도록 한다.
5.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의결 전까지는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을 단정 짓지 말고 관련 학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6. 전담 기구 사안 조사,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하 ‘조사관’이라 한다)의 조사 및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의결 시 관련 학생 및 보호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7. 성범죄 관련 사안을 인지한 경우, 예외 없이 수사 기관에 즉시 신고한다.
8.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재심 성격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개최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담당 교사의 사안 처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안이 접수되면, 최대한 신속하게 피해자 진술을 받아야 한다. 요즘엔 교육청 소속 조사관이 학교에 방문해 면담하기 때문에 미리 약속을 잡는다. 피해 신고한 학생에게 긴급 분리 조치를 원하는지 확인하고, 분리 조치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가해 신고된 학생을 분리 조치한다. 가해 관련 학생이 진술서를 쓰는 동안 담임 교사에게 사안 접수 사실을 알리고, 개입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담임 교사는 자기 반 학생 보호에만 충실하면 된다. 양측 보호자에게 사안 접수 사실을 알린다. 참고인이 있는 경우 참고인 진술을 받는다. 교육청에 사안 접수 공문을 보내고, 1~2주 내에 학교폭력 전담 기구를 소집해서 사안 조사 보고서를 완료한다. 학교장 자체 해결 여부를 수용해서, 교육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공문을 발송한다. 약 3개월 후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되면 학생과 보호자에게 참석을 안내하고, 일주일 뒤 결과가 나오면 보호/선도 처분 이행을 의뢰한다.
‘사회봉사’나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 치료’ 조치 처분이 나오면 관계 기관들이 학생을 잘 안 받아 주기 때문에 수락을 받는 것도 큰일이다. (라포가 형성된 교사도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이 많은데, 선뜻 사회봉사를 받아 주거나 특별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은 많지 않다.) 가해 학생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특별 교육은 더 문제다. (특별 교육 5시간부터는 위센터가 1개월마다 학부모들을 모아서 관련 교육을 해 주는데, 3시간은 학교가 해야 해서 난감하다.) 법에 따라 가해 학생 보호자에게 부과되는 의무이자 선도 조치인 셈인데, 학교는 성인인 보호자를 교육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교육’이 어디 있는가? 교사들은 관련 학생과 보호자 모두에게 교육적 조언을 할 수 없다. 2020년부터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가 부활해서 경미한 사안의 경우 화해 시도가 가능해졌다. 물론 가해 학생의 온전한 반성이나 피해 학생과 보호자의 넓은 아량이 있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다툼이라는 것이 일방적 피해와 일방적 가해로 나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교육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되는 데 3개월이나 걸리는 상황 때문인지 학교장 자체 해결 비율은 제도가 시작된 이후 거의 65%에 이른다.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세상
학생들은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사과와 용서라는 감정조차도 상업적 거래로 취급되는 것인지, 용서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과를 유도하기 어렵다. 사과는 잘잘못을 다툴 권리를 포기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사안으로 접수되어 선도 처분 수위를 두고 다투기 시작하면 사과할 기회는 없다. 사과는 처분의 한 종류일 뿐이다. 성범죄 관련 사안은 처벌이 엄하므로, 가해 학생의 진술은 보호자에 의해 번복되는 경우도 많다.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발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교사(어른)와의 관계에서 어떤 실수를 했을 때 ‘앞으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 약속으로 용서를 얻고 새로운 기회를 받는다. 하지만 학생 간의 관계에서는 반성과 용서가 가능할까? 학교폭력 처분의 이행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사과’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엄한 처벌을 주문하고, 가해자는 처벌 최소화를 위해 자기 정당화를 주장하는 과정을 거친 후이기 때문이다. 처분 결과로서 가장 낮은 조치인 ‘서면 사과’가 나오더라도 이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일 뿐이다. 우발적인 사안이라면 학생들은 생활 속에서 금방 화해한다. 눈빛이나 손짓만으로도 사과를 할 수 있다. 한편 ‘서면 사과’ 처분은 사과 내용에 뭘 담을지를 가해 학생이 정하게 되므로, 이 처분이 나오는 순간 가해자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느낌도 있다.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 사과문은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어떤 구체적인 말과 행동, 배상이 있다면 피해 학생 측 의견을 받아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의 의견을 수용하도록 권유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사안 진술서 양식에 회복적 정의에 입각한 반성을 해 볼 수 있게 항목을 추가했다. 육하원칙에 따른 진술 외에 ‘이 일로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누가 어떻게 해야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가?’ 등을 쓰도록 했다. 반면,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라는 말은 못 쓰게 했는데,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위(無爲)’는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학생에게 어떤 좋은 일을 추가로 해 줄 것인지 고민하고, 의지가 있다면 사과문을 미리 쓰도록 했다. 비폭력 대화법을 참고해서 사과문 형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더 잘 정리할 수 있다.
1. [인정]
나의 잘못된 행동을 있는 그대로 쓰기(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2. [공감]
상대나 다른 사람이 느꼈을 아픔 추측(감정(슬픔, 두려움, 화, 불편, 걱정), 상처, 피해)
3. [해명]
나의 원래 의도, 그때 나의 감정 상태
4. [약속]
사과의 말, 변화를 보여 줄 행동 약속(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사안 발생 직후에 가해 학생이 사과문을 쓰게 되면, 사건 해결의 주도권을 피해 학생이 가질 수 있다. 사과를 받아 줄지 말지라든가 피해 회복을 위해 구체적인 무언가를 더 요구할 수 있다.
공동체와 자치를 추구한다면
학교폭력의 원인 진단이나 해결 방안에서 단일한 무엇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교사들이 학교에서 생활지도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할 때,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의 양상은 많이 다르다. 쉬는 시간에도 교실에 담임이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무서운’ 학폭 사안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엄벌 대책보다는 담임 교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한편 학교폭력 전담 기구 등이 실질적인 위기 학급 지원팀으로 기능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에서는 인간관계의 확장이라는 발달 과제가 학교 시스템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학생 자치를 통해 민주 시민 역량 강화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인간은 유적 존재(Gattungswesen)이다. 개인과 공동체는 통합된 대립물이다.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개인’은 상상의 개념일 뿐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교육은 ‘맞춤형’, ‘선택형’의 기조를 확대하며 ‘개인’ 학생들이 ‘자유 경쟁’하는 것을 ‘공정’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14세 미만은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학생은 각종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폭력 개념, 긴급 분리 조치, 생기부 기재 등 「학교폭력예방법」은 「형법」보다 더 엄하게 학생들을 처벌한다. 공동체에서 개인을 분리해서 특정한 처분을 하는 방식으로 위기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시도는 비인간적인 결과를 낳는다. 기초학력을 보장한다면서 일제고사를 보고 성취도 미달 학생을 선별해서 지도한다. 정서 행동 검사를 해서 위기 학생을 선별한다. 교과서로 강요하고 있는 AI 디지털 자료의 핵심 기능은 ‘개인 맞춤형’ 선다형 문제 풀이 반복이다. ‘개인’, ‘맞춤’, ‘선택형’은 국가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인력’ 양성을 위한 효율적 시스템인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 입장에서 보면 조기 선별과 획일적 진로 강요일 뿐이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각종 학생 사안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 포용, 억압, 배제를 적절하게 결정하고 이행하도록 권한과 의무를 학교에 주면 좋겠다.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운영하기위해 고민한다면, 학교 구성원들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를 잘 담고 있는 독일 헤센주의 〈학교법〉을 참고할 만하다. 학교 활동을 중심으로 법이 정리되어 있고, 교육청과 교육부와 의회 등 지자체와 국가의 역할은 ‘학교 감독’이라는 범주로 정리되어 있다. 학부모의 학부모회 참여권이 보장되고, 학부모회는 학교 운영에 대한 동의권과 청문권이 보장된다. 또 학생회와 교사협의회, 학교협의회(학운위)가 법으로 보장되어 학교의 자치권이 민주적으로 행사되는 틀을 가지고 있다. 교육 활동은 교사회의 권한으로 진행되고, 학생회와 학부모회는 성적과 교원 인사를 제외한 학교 사안에 대해 동의권과 청문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학교장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이의 신청을 하는 식이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이의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와 학부모회가 역할을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학생과 학부모는 민원인이 아니라 학교 운영 참여 주체다.
우리나라도 학교를 옥죄는 각종 교육 특별법(「학교폭력예방법」 포함)을 폐지하고, 국가 기관의 권한 위주 조문만 가득한 유·초·중등교육 관련 법을 전면 개폐하여, 학교 구성원들의 권한과 의무를 보장하는 학교자치법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