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특집]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 편집부

2025-04-21
조회수 77


학교폭력 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누더기가 된 「학교폭력예방법」은 본래 의도와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져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사소한 다툼도 징계와 분쟁으로 이어지며, 교사는 조사와 보고의 부담 속에 교육적 개입의 여지를 잃는다. 학생은 사과 대신 자기변호가 우선이고, 보호자는 맞신고와 소송에 나선다. 학교는 분쟁을 접수하고 분리와 배제를 실행하는 사법 시장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교육공동체 벗은 2025년 2월 ‘학교와 폭력’ 연속 포럼의 첫 번째 자리를 열어, 「학교폭력예방법」의 폐해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번 《오늘의 교육》 특집은 그 연장선에서 문제투성이 법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본다.

김성보는 생활부장으로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법이 학생 간 갈등을 법적인 사안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학생은 관계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잃고, 교사는 교육적으로 개입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과 맞물려 강화되었으며,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경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으로서 경험한 현실을 통해,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과 학부모를 제도적 위협 속에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사안의 상당수는 일상적인 갈등이지만 ‘감금’이나 ‘강요’ 같은 형사 범죄로 분류되고 학생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갈등을 조장한다. 관계 회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해 필자는 전면 폐지를 포함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희진은 학교폭력 대응의 사법화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는 형사법적 절차를 따르면서도 학생의 발달 특성과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변호사의 개입은 갈등을 법적 다툼으로 비화시키고 심의 과정에서도 증거와 절차만 중요시되며 학생의 개별 상황과 관계적 맥락은 삭제된다. 보호자의 의사가 학생의 의사보다 앞서며 학생의 참여권은 배제된다.

오승관은 학교폭력 사안을 교육적 맥락에서 다루려 한 실천을 공유한다. 공동체 생활협약과 삼자협약위원회를 바탕으로 한 대응 시도는, 폭력의 경중이나 진술의 완성도보다 사안을 둘러싼 전체 상황을 고려해 교육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절차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학교는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 자체가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주는 한국의 학교폭력 대응이 교육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의 사례를 들어 학교폭력은 공동체 전체가 예방과 회복에 함께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학교가 교육보다는 기록과 분류에 집중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병원에 비유해 “회복이 아닌 통제와 퇴출”에 가까운 방식이라 말한다. 학교는 관계와 배움의 회복을 지원해야 하며, 정서적 안정과 존중, 배움의 기쁨을 중심에 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좌담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고자 학교와 법정을 비롯해 각 현장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근무해 온 강물은, 접수된 사안을 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으로 다뤘으나 그 과정에서도 교사가 소외되고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던 사례를 들며, 외주화를 멈추고 교사가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 질문한다. 사법 재판에서의 회복적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판사 임수희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물꼬를 터 주는 대화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조명하고, 아동 간 갈등이 사법으로 다뤄지는 것 자체가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강조한다. 갈등 조정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해 온 평화교육 활동가 박숙영, 반은기는 외부 전문가의 개입은 학교 구성원이 주체로 설 때에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자리 잡기 위한 과제들을 짚는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은 은폐, 축소되어 있던 학교 내 집단 괴롭힘, 서열 문화와 학생 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거의 방기했으며, 무엇보다 학생 개인에 대한 처벌과 낙인찍기가 거듭 강화되며 자치적 해결 가능성을 축소하고 사법적 개입을 보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가운데 회복적 정의를 적용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이미 팽배한 사법 시장의 논리 등 걸림돌이 많다. 지금껏 응보적 정의를 위해 동원됐던 모든 자원을 재배열해야 될까 말까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고쳐 쓰지 말고 폐지하자.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탈선한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 학생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직면하고 해결 과정에 동행한다는 당연한 교육적 가치를 다시 지향하기 위해서.

- 편집부

0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