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계몽의 한계, 구원의 모순
정치·사회적 전환기 속,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교육과 사회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극우의 확산과 발호, 여성 혐오와 소수자 차별 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극우 대응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민주시민교육’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특정 능력 배양이나 ‘계몽’ 위주의 교육 담론이 올바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인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청소년을 주체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와 경쟁, 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외면한 채 현상만을 ‘문제’로 규정하는 위험한 시각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근본적 해결을 방해한다. 《오늘의 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최근 이야기되는 교육 담론의 한계와 사회적 맥락을 짚어 본다.
박권일은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를 능력주의와 성찰의 결핍에서 찾는다. 학교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실제 사회는 시험과 경쟁, 서열 중심의 능력주의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단순히 충돌하는 것을 넘어, 능력주의가 교육을 압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화 세력’과 고학력 중산층 진보 인사들이 평등을 말하면서도 자녀를 ‘엘리트화’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며, 이런 모순된 태도가 교육의 신뢰를 허무는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이중 규범’과 ‘이중 구속’의 구조로 설명하며,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배우면서도 불평등한 현실을 체화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민주시민교육이 공허한 담론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론이나 정책이 아니라, 가르치는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결국 문제는 그 가치를 살아 내려는 용기의 결여와 성찰의 부재다.
공현은 문제를 단순히 교육이 부족한 결과로만 진단하는 시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나 책임 없이 ‘유예된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의 공허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기존 방식을 비판한다. 그는 단지 어떤 능력을 추가로 장착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태도를 ‘부품 장착식 교육’이라 명명하며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또한 청소년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봐야 하고, 그들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함께 바꾸지 않는 한 교육과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도 학교는 침묵을 지켰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조용히 굳게 닫힌 문 뒤에 숨었다. 교사인 톨은 이 침묵이 단지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학교가 본래부터 지배 질서 재생산의 도구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 학교는 군사 독재 정권의 국민 양성소였으며,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는 인간형을 길러 냈다. 교사는 체제 유지의 파수꾼으로 자리 잡았고, 교육은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는 과정이 아닌, 통제와 길들이기, 그리고 이윤 추구의 도구가 되었다. 위기 때마다 ‘교육이 문제’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문제’라는 진단 아래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한은 청소년·청년 남성들 사이에 뿌리내린 여성과 소수자를 경쟁 상대로 보는 ‘제로섬적 세계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 구조의 결과임을 지적한다. 끊임없는 자기 증명 압박과 실패 경험이 그들의 불안과 혐오를 키우고 이는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임을 보여 준다. 그는 문제 해결의 핵심이 ‘교육’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과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며 신뢰를 쌓는 ‘동행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과 사회가 청소년의 삶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할 때만 변화가 가능하다. 이 위기에 대해 우리 사회는 성찰과 연대의 자세로 응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 교육에 갇혀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는 특정 지식의 전달이나 능력 배양으로 해결할 수 없다. 청소년을 ‘문제’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시각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청소년을 인간으로,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과 사회 구조를 함께 바꾸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미래의 인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주체로서 청소년과 사회가 연대하여 삶과 구조를 동시에 변화시키는 성찰과 실천이 절실하다. 능력주의와 지식 전달 위주의 틀을 넘어 청소년의 현실을 깊이 살피고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새로 들어설 정부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교육 과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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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한계, 구원의 모순
정치·사회적 전환기 속,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교육과 사회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극우의 확산과 발호, 여성 혐오와 소수자 차별 등이 여실히 드러났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극우 대응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민주시민교육’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특정 능력 배양이나 ‘계몽’ 위주의 교육 담론이 올바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인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청소년을 주체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 구조의 문제와 경쟁, 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외면한 채 현상만을 ‘문제’로 규정하는 위험한 시각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교육의 본질을 흐리고 근본적 해결을 방해한다. 《오늘의 교육》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최근 이야기되는 교육 담론의 한계와 사회적 맥락을 짚어 본다.
박권일은 한국의 민주시민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를 능력주의와 성찰의 결핍에서 찾는다. 학교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실제 사회는 시험과 경쟁, 서열 중심의 능력주의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단순히 충돌하는 것을 넘어, 능력주의가 교육을 압도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주화 세력’과 고학력 중산층 진보 인사들이 평등을 말하면서도 자녀를 ‘엘리트화’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며, 이런 모순된 태도가 교육의 신뢰를 허무는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이중 규범’과 ‘이중 구속’의 구조로 설명하며,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배우면서도 불평등한 현실을 체화하게 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민주시민교육이 공허한 담론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론이나 정책이 아니라, 가르치는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결국 문제는 그 가치를 살아 내려는 용기의 결여와 성찰의 부재다.
공현은 문제를 단순히 교육이 부족한 결과로만 진단하는 시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나 책임 없이 ‘유예된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의 공허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기존 방식을 비판한다. 그는 단지 어떤 능력을 추가로 장착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태도를 ‘부품 장착식 교육’이라 명명하며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또한 청소년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봐야 하고, 그들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함께 바꾸지 않는 한 교육과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도 학교는 침묵을 지켰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조용히 굳게 닫힌 문 뒤에 숨었다. 교사인 톨은 이 침묵이 단지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학교가 본래부터 지배 질서 재생산의 도구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 학교는 군사 독재 정권의 국민 양성소였으며,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는 인간형을 길러 냈다. 교사는 체제 유지의 파수꾼으로 자리 잡았고, 교육은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는 과정이 아닌, 통제와 길들이기, 그리고 이윤 추구의 도구가 되었다. 위기 때마다 ‘교육이 문제’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문제’라는 진단 아래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한은 청소년·청년 남성들 사이에 뿌리내린 여성과 소수자를 경쟁 상대로 보는 ‘제로섬적 세계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 구조의 결과임을 지적한다. 끊임없는 자기 증명 압박과 실패 경험이 그들의 불안과 혐오를 키우고 이는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임을 보여 준다. 그는 문제 해결의 핵심이 ‘교육’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과 함께 고민하고 질문하며 신뢰를 쌓는 ‘동행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과 사회가 청소년의 삶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할 때만 변화가 가능하다. 이 위기에 대해 우리 사회는 성찰과 연대의 자세로 응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 교육에 갇혀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는 특정 지식의 전달이나 능력 배양으로 해결할 수 없다. 청소년을 ‘문제’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시각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청소년을 인간으로,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과 사회 구조를 함께 바꾸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미래의 인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주체로서 청소년과 사회가 연대하여 삶과 구조를 동시에 변화시키는 성찰과 실천이 절실하다. 능력주의와 지식 전달 위주의 틀을 넘어 청소년의 현실을 깊이 살피고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새로 들어설 정부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교육 과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