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어떤 청소년을 마주하고 있는가?
또는
마주하고 싶은가?
이민정
minjunglee1215@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교육학과 박사 과정
“쌤도 그냥 나 포기해요. 우리 할머니도 포기했고 교감도 그렇고……. 다 그냥 다…… 나를 포기했으니까.”
등골이 싸했던 벼락 같은 말이다. A는 내가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유명했다. 강제 전학을 갔던 A가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 간 학교에서도 사고를 쳐 다시 원학교로 돌아온다고 했다. 걱정과 원성이 엉킨 수군거림이 교무실 맨 구석 기간제 교사인 나에게까지 닿았다면 학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 선생 반에 들어갈 거야. 정신 잘 차려야겠다.”
부장 교사의 걱정 한마디는 그 당시 ‘수준별 이동수업’ 하반❶까지 맡게 된 기간제 교사에게 형체 없는 공포였다. 핑퐁처럼 공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사실 하위 반 수업은 첫 시간부터 만만치 않았다. 알파벳도 전혀 모르는 학생부터 아쉽게 커트라인에 걸려 상위 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까지, 하위 반은 다양한 수준과 특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들여다볼 기회도 없이 성적에 따라 줄을 세워 스스로를 실패자라 낙인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나는 무능력한 교사였다.
이미 버거울 대로 버거운 교실에 형체를 드러낸 복교생은 첫 등장부터 책도 없이 맨몸으로 휙 들어와 가장 구석 자리에 엎드려 버린다. 시간이 흐르며 수업은 듣지 않지만 엎드리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A는 주변 친구들에게 툭툭 짓궂게 굴거나 내 이름을 장난처럼 불러 댔다. 장난과 호기심을 넘나들던 어느 날, 어김없이 내 이름을 친구처럼 큰 소리로 부르기에 더는 반 분위기를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한 순간 일이 벌어졌다. 몇 번의 이야기에도 A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나는 들리지 않는 척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모습이 ‘무시’처럼 느껴졌는지 소리치며 나를 부르던 A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내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책상을 엎고 내 코앞까지 와서는 욕설을 퍼붓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쉬는 시간, 창문 너머로 힐끗대며 복도에서 서성이는 A를 불러 세웠다. 왜 그랬냐고 묻는 나에게 대뜸 “포기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어떻게 선생님이 포기를 해’라는 말을 자동응답기처럼 내뱉었지만, 왜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 묻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교실 커튼 뒤에 숨어 담배를 피우다 걸린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학교는 A와 같은 학생을 ‘학업 중단 위기’, 혹은 ‘학교 부적응’으로 호명한다. 만약 지금이라면 A의 행동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라 곧장 공식 문서에 기록될 수 있고, 위기 학생 지원 체계로 연계되었을 것이다. 고시와 학칙에 따라 주의와 훈육으로 시작해 교실 밖 분리 조치가 뒤따르고, 보호자 통보와 상담,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기관 연계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치는 고시(제5조 학업 및 진로)를 토대로 ‘다수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교사의 수업권 보장’을 내세우며 정당화된다. 또한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적 개입’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렇게 인식된 위기 학생은 여러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학교 안에 머물 수 있지만, 잠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관리된다. 상담과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 대안교실과 위탁 교육 기관 등 외부 연계를 통해 관리 가능한 틀 안에서 위기적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절차가 작동한다. 머물러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비켜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에 대해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드러난 ‘위기’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이 중요하다. 조언 등 지도 방식은 고시와 매뉴얼에서 제시한 범위를 넘지 않는 선까지만 가능해진다. 다수의 안전이 흔들리지 않도록, 교실의 평온이 무너지지 않도록,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은 기존에 고시로만 운영되던 ‘학생의 정서·행동 지원’과 ‘학생생활지도’, ‘개별학생교육지원’ 등을 법률 조항으로 확정하였다(2026년 3월 1일 시행 예정). 표면적으로는 ‘지원’이라 부르지만, 실제 내용은 수업 중 일시 분리, 상담·치료 권고, 행위 제지 등 통제와 관리 장치를 촘촘히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정교한 보호망을 약속하지만, 정작 교사와 청소년이 마주하는 현실은 ‘학습권 보호’와 ‘교실의 평온’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공동체적 해법을 후순위로 밀어낸다. 그 순간 ‘위기’로 표상된 개인은 학교와 교실에서 공존의 대상이자 주체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조화롭게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 곧 결핍되고 취약한(동시에 위험한) 청소년으로 인식될 뿐이다. ‘지원’이라는 이름의 정책이 사실상 배제와 분리의 언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학교 밖으로 나간(사실은 쫓겨난) A는 어떻게 지냈을까? 자신을 포기하라는 말은 진심이었을까? 학교가 ‘노력’했다면 ‘안전한’ 학교 울타리 안에 그의 ‘위기’를 지원하며 남겨 둘 수 있었을까? 그게 맞는 ‘선택’인가? 과거 학교가 문제 학생을 무작정 학교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평온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의 울타리 안에 남겨 두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겨 둔다고 해서 곧 함께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학교 부적응’, ‘위기 청소년’,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이라 호명하고 그의 발끝에 경계를 그어 버렸다. 그리곤 교문, 교실 ‘밖’에서 우리끼리 웃고 떠드는 ‘안’을 바라보게 했고 그 주변을 맴돌게만 했다. 평온을 지키려는 학교의 노력은 누군가의 부재 위에서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청소년은 어떤 모습인가. 아니,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라는가. 다루기 힘든 청소년을 문제와 위기로만 호명하고,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분리하는 오늘의 학교에서, 정작 위기에 놓인 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학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교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❶ ‘수준별 이동수업’은 영어·수학 등 일부 교과의 성적에 따라 상·중·하 또는 상·하로 나누어 분반 운영되었다. 이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도입된 ‘교과교실제’ 정책에 따라 시행되었고, 이후 학습 효과에 대한 논란과 학생 간 서열화·낙인 우려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폐지되었다. “수학·영어 수준별 이동수업은 ‘차별 수업’”, 〈경향신문〉, 2013년 10월 9일; “수준별 수업으로 재미 좀 보셨나요?”, 〈오마이뉴스〉, 2013년 1월 26일.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어떤 청소년을 마주하고 있는가?
또는
마주하고 싶은가?
이민정
minjunglee1215@gmail.com
본지 편집위원
서울대 교육학과 박사 과정
“쌤도 그냥 나 포기해요. 우리 할머니도 포기했고 교감도 그렇고……. 다 그냥 다…… 나를 포기했으니까.”
등골이 싸했던 벼락 같은 말이다. A는 내가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유명했다. 강제 전학을 갔던 A가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 간 학교에서도 사고를 쳐 다시 원학교로 돌아온다고 했다. 걱정과 원성이 엉킨 수군거림이 교무실 맨 구석 기간제 교사인 나에게까지 닿았다면 학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 이 선생 반에 들어갈 거야. 정신 잘 차려야겠다.”
부장 교사의 걱정 한마디는 그 당시 ‘수준별 이동수업’ 하반❶까지 맡게 된 기간제 교사에게 형체 없는 공포였다. 핑퐁처럼 공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사실 하위 반 수업은 첫 시간부터 만만치 않았다. 알파벳도 전혀 모르는 학생부터 아쉽게 커트라인에 걸려 상위 반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까지, 하위 반은 다양한 수준과 특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들여다볼 기회도 없이 성적에 따라 줄을 세워 스스로를 실패자라 낙인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나는 무능력한 교사였다.
이미 버거울 대로 버거운 교실에 형체를 드러낸 복교생은 첫 등장부터 책도 없이 맨몸으로 휙 들어와 가장 구석 자리에 엎드려 버린다. 시간이 흐르며 수업은 듣지 않지만 엎드리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A는 주변 친구들에게 툭툭 짓궂게 굴거나 내 이름을 장난처럼 불러 댔다. 장난과 호기심을 넘나들던 어느 날, 어김없이 내 이름을 친구처럼 큰 소리로 부르기에 더는 반 분위기를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한 순간 일이 벌어졌다. 몇 번의 이야기에도 A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나는 들리지 않는 척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모습이 ‘무시’처럼 느껴졌는지 소리치며 나를 부르던 A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내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책상을 엎고 내 코앞까지 와서는 욕설을 퍼붓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쉬는 시간, 창문 너머로 힐끗대며 복도에서 서성이는 A를 불러 세웠다. 왜 그랬냐고 묻는 나에게 대뜸 “포기하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어떻게 선생님이 포기를 해’라는 말을 자동응답기처럼 내뱉었지만, 왜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 묻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교실 커튼 뒤에 숨어 담배를 피우다 걸린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학교는 A와 같은 학생을 ‘학업 중단 위기’, 혹은 ‘학교 부적응’으로 호명한다. 만약 지금이라면 A의 행동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라 곧장 공식 문서에 기록될 수 있고, 위기 학생 지원 체계로 연계되었을 것이다. 고시와 학칙에 따라 주의와 훈육으로 시작해 교실 밖 분리 조치가 뒤따르고, 보호자 통보와 상담,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기관 연계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치는 고시(제5조 학업 및 진로)를 토대로 ‘다수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교사의 수업권 보장’을 내세우며 정당화된다. 또한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적 개입’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렇게 인식된 위기 학생은 여러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학교 안에 머물 수 있지만, 잠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여 관리된다. 상담과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 대안교실과 위탁 교육 기관 등 외부 연계를 통해 관리 가능한 틀 안에서 위기적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절차가 작동한다. 머물러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비켜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에 대해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드러난 ‘위기’와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이 중요하다. 조언 등 지도 방식은 고시와 매뉴얼에서 제시한 범위를 넘지 않는 선까지만 가능해진다. 다수의 안전이 흔들리지 않도록, 교실의 평온이 무너지지 않도록,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은 기존에 고시로만 운영되던 ‘학생의 정서·행동 지원’과 ‘학생생활지도’, ‘개별학생교육지원’ 등을 법률 조항으로 확정하였다(2026년 3월 1일 시행 예정). 표면적으로는 ‘지원’이라 부르지만, 실제 내용은 수업 중 일시 분리, 상담·치료 권고, 행위 제지 등 통제와 관리 장치를 촘촘히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정교한 보호망을 약속하지만, 정작 교사와 청소년이 마주하는 현실은 ‘학습권 보호’와 ‘교실의 평온’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공동체적 해법을 후순위로 밀어낸다. 그 순간 ‘위기’로 표상된 개인은 학교와 교실에서 공존의 대상이자 주체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조화롭게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 곧 결핍되고 취약한(동시에 위험한) 청소년으로 인식될 뿐이다. ‘지원’이라는 이름의 정책이 사실상 배제와 분리의 언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학교 밖으로 나간(사실은 쫓겨난) A는 어떻게 지냈을까? 자신을 포기하라는 말은 진심이었을까? 학교가 ‘노력’했다면 ‘안전한’ 학교 울타리 안에 그의 ‘위기’를 지원하며 남겨 둘 수 있었을까? 그게 맞는 ‘선택’인가? 과거 학교가 문제 학생을 무작정 학교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평온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의 울타리 안에 남겨 두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겨 둔다고 해서 곧 함께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학교 부적응’, ‘위기 청소년’, ‘학교 밖/가정 밖’ 청소년이라 호명하고 그의 발끝에 경계를 그어 버렸다. 그리곤 교문, 교실 ‘밖’에서 우리끼리 웃고 떠드는 ‘안’을 바라보게 했고 그 주변을 맴돌게만 했다. 평온을 지키려는 학교의 노력은 누군가의 부재 위에서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청소년은 어떤 모습인가. 아니,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길 바라는가. 다루기 힘든 청소년을 문제와 위기로만 호명하고,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분리하는 오늘의 학교에서, 정작 위기에 놓인 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학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학교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❶ ‘수준별 이동수업’은 영어·수학 등 일부 교과의 성적에 따라 상·중·하 또는 상·하로 나누어 분반 운영되었다. 이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도입된 ‘교과교실제’ 정책에 따라 시행되었고, 이후 학습 효과에 대한 논란과 학생 간 서열화·낙인 우려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폐지되었다. “수학·영어 수준별 이동수업은 ‘차별 수업’”, 〈경향신문〉, 2013년 10월 9일; “수준별 수업으로 재미 좀 보셨나요?”, 〈오마이뉴스〉, 2013년 1월 26일.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 교육공동체 벗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