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의 한계와 과제 ❶
지원과 혼란 사이,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
진냥(희진) jinnyang3@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경남 초등 교사
학생맞춤통합지원은 혼란한 제도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전면 시행에 들어간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체계가 정돈되지 않았고 현장의 혼란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고, 현장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역별 차이도 엄청나서 어떤 지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제도의 양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학생맞춤통합지원에 대한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제도가 아닌, 장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는 제도의 태생 자체도 그러하니까.
아동이 살아 내는 삶
비밀 전학 아닌 비밀 전학을 한 학생을 담임한 적이 있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타국에서 넘어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지만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소송 끝에 이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녀를 비밀 전학시켰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 남편에게 자녀의 학교를 곧 들키고 말았다. 그는 학교로 쳐들어와 난동을 피웠고 그 학생은 다시 전학해야 했다. 누구든 거주 지역을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력적인 남편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 살고 싶었겠지만, 한국에 와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이 이 지역에 있고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이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자녀들과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어야 했었는데, 그걸 생각해서도 멀리 떠나기 어려웠을 테고. 결국 코앞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내가 그 학생의 담임이 되었다.
문제는 두 번째로 전학해 온 우리 학교 입장에서는 이 학생이 더 이상 비밀 전학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일반 전학이었다. 첫해까지는 소문이라도 돌았던 것 같은데, 다음 해에 담임을 맡은 내게는 아무 정보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다 늦봄쯤 되던 어느 날, 수업 중에 교무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생의 아버지가 교무실에 와 있으며, 학생을 데리고 갈 테니 불러 달라며 버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분위기가 이상해서 그 학생이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게 맞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돌리고 있는데, 담임인 내게 관련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바로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매일 야간 특근까지 하는 공장에 다니는 그녀는 평소에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직장에 출근하면 휴대전화를 뺏긴다고 했다. 퇴근 이후에만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은 이상, 당연히 학생을 보낼 수 없었다. 학교에서 학생을 부모에게 인계하면 안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생각보다는 종종 있다. 이혼 소송 중인 부부 중 현재 양육권 행사자가 누구인지, 면접교섭권 형태가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학교가 알지 못하고 학생을 잘못 인계했다가 소송에 걸리거나 학생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본 적 있다. 수업이 다 끝난 후에도 학생에게 하교하지 않고 교실에서 머무르도록 당부하고 교무실로 가 상황을 함께 수습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비밀 전학에 준해 학생의 정보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교감, 교장, 교무실 근무자들과 함께 의논했다.
담임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 마주한, 2시간 남짓한 일이었다. 그건 또 한편으로는 그 학생이 매일매일 살아 내고 있는 삶이었다. 폭력적인 전 남편을 피해,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살지만 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 연락조차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삶이기도 하다. 이 여성과 이 어린이의 삶이 안정되고 존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지원
그 학생은 공부도 학교도 좋아하지 않았다. 담임 교사인 나는 제법 좋아해 주었지만, 학생은 늘 무기력했고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해 학교에 늦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등교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별별 상상이 다 되었다. 혹시나 아버지가 집을 발견한 게 아닐까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2교시 교과 전담 시간이 되자마자 교무실로 내려가 사정을 설명하고 출장을 낸 후에 학생 집으로 가 보았다. 가는 내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문 앞에서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집이 어수선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는지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문을 한참 두드리고 나서야 잠들어 있던 학생이 나왔다. 그래도 교과 전담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와 줘서, 아버지한테 들킨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학생에게 학교에 매일 나오라고 당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다음 시간 수업을 했다. 하지만 허술한 문 잠금장치가 계속 떠올랐다. 걸쇠 하나 달린 철문이 출입문이었는데 그마저도 반쯤 뜯겨 있었다. ‘1층이 주인집이던데 왜 출입문을 안 고쳐 주지? 이주민이라서, 혹은 여자라서 얕보는 건 아닐까? 내가 집주인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끝내고 주민센터 복지사각지대팀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토요일에 같이 가정 방문을 가 주겠다고 했다. 휴일에 시간을 내주다니 너무 고마운 분이었다. 학생의 어머니에게 방문해도 되느냐고 문자를 남겼다. 번역기를 돌려서 영어와 베트남어로도 같은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와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고, 토요일에 방문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생에게도 전화를 해 보고 문을 다시 두드리고 한참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후다닥 후다닥 집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학생도, 어머니도 집에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국어가 아직 서툰 어머니는 누가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문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 전 동네 사람이 찾아와 따지고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또 온 건 줄 알고 무서워서 숨어 있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주민센터 담당자가 서류를 몇 장 꺼내더니 능숙하고 상냥하게 상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떤 지원도 신청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매일 특근을 해서 어머니의 급여가 적지 않은 데다 자동차도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특히 자동차 배기량이 커 지원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동차에 대해 물어보니 아는 사람에게 중고차를 그냥 받은 거라고 했다. 토요일 오전 내내 애써 보았지만 결국 어떠한 지원 제도에도 해당 사항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상담을 마쳤다. 대신 어머니에게 학교에 교육급여 신청을 꼭 하라고, 마지막 걸음까지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섰다. 학교장 추천으로 올려서 교육급여를 받을 수 있게 꼭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신청서는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야근을 하고, 한국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그녀에게 나의 호소는 닿을 수 없는, 허망한 말이었다. 주민센터 담당자의 선의에 기댄 도전은 효용이 없었고, 망가진 문도 그대로였다. 나의 선의는 주말 가정 방문에는 닿았지만 집 주인에게 따져 주는 것에는 가닿지 않았다.
분절된 복지 지원 체계가 축적된 역사
이 사례 하나만 봐도 학생맞춤통합지원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쟁점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학생, 하지만 미끄러지는 제도. 당당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누군가가 열심히 동동거려야 지원받을 가능성이 생기는 시혜적인 제도.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며, “학생의 복합적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하고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사각지대 없는 안전망”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제도의 문제는 사실 학생맞춤통합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를 이야기하려면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7년 경제 위기로 촉발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교육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 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70%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마저도 못 구해 실업률은 널뛰었다. 생존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한 시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아동학대가 급증하고 유기되는 영유아가 증가했던 것처럼 경제 위기 때 아동의 삶은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커지는 사회적 요구와 정책적 긴급함 속에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2003년 시범 운영, 이후 전국 확대), Wee 프로젝트(2008년), 다문화 학생 지원, 기초학력 지원 사업, 특수교육 지원 등 다양한 교육복지 제도들이 학교로 들어왔다. 학교 현장에 상담 교사, 영양 교사, 보건 교사, 사서 교사, 학교사회복지사(교육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배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2002년 「학교보건법」과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양호 교사’가 ‘보건 교사’로 이름을 바꾸고 그 역할이 새로이 정돈되었고, 2003년 영양 교사 제도 법안이 통과되어 2007년부터 학교에 영양 교사가 배치되었다.
요컨대 2000년대는 무너진 가족공동체와 사회 불안정성 속에서 교육계가 아동 보호에 대한 응급조치를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했던 시기다. 그야말로 특이점이자 분기점이었다. 이때 아동에 대한 복지 전반을 설계해야 했다. 어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건강보험과 공공 의료 시스템을 만들었지 않은가. 아동 복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어려워 기존의 체계, 즉 학교 시스템에 밀어 넣는 것을 선택했다면 학교의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사회적 노력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그때그때 제기되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제도화 방식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고 복지 정책의 사회적 틀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함께 목격하고 있다. 서로 상충되는 법안, 정돈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결국 담당자의 개인 역량과 의지에 의존하여 추진된 개별 제도는 연계성을 가질 수 없다.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지원 제도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문제점이다. 각각 별도의 예산, 별도의 담당자, 별도의 보고 체계를 갖추면서 칸막이 행정의 전형이 지금의 학교가 되었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의 도입에 대해 학교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던 지점 역시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드디어 법제화된 돌봄의 사회화
분절적 지원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경로에서 누적되어 왔다. 소위 ‘복지 공백’이 심각해지고 분명히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학생이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코로나19 시국에서 심각하게 두드러졌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2022년 12월 28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 방안’이 발표되었다. 뒤이어 2023년 1월 교육부는 학생맞춤통합지원을 공식화하고, 선도학교와 교육지원청 일부에서 시범 운영을 추진했다. 2년의 시범 운영을 거쳐 2024년 12월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교육부는 전면 도입 시기를 2026년으로 설정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이 2024년 3월 제정되었고 이 역시 2026년 3월부터 본격 시행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만큼 돌봄통합지원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분노가 뜨겁다. 돌봄통합지원은 65세 이상 노쇠 노인과 중증 장애인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의료·요양·일상 돌봄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제도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육부 관할, 돌봄통합지원은 보건복지부 관할로 그 대상도 다르고 소관 부처도 다르지만 한국 사회가 “통합 지원”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공통의 흐름을 보여 준다.
그런데 통합 지원이 뭘까? 크게 말해 두 가지 의미에서의 통합이다. 먼저 돌봄의 사회화다. 어린이, 청소년의 복합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도, 노인과 장애인의 일상적 돌봄도, 개인과 가족이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책임진다는 방향성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드디어 법제화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각 개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책임지되 특정한 기준에 들면 도와주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전 생애에 걸친 돌봄과 복지를 사회 전반에서 책임지겠다는 법적 선언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삶의 장면 장면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특정 부서의 관할 사업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전 공공 기관, 나아가 지역 사회의 거버넌스와 민관 협력이 강조된다. 하지만 학생맞춤통합지원도 돌봄통합지원도 ‘통합적이지 않게’ 추진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
학생맞춤통합지원은 2024년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그 2년 동안 어떤 시범 운영을 했는가. 그 이전까지 학교와 교육청에서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던 지원을 지자체, 그리고 지역 시민 사회와 통합적으로 하기 위한 시범 운영이라면, 그 핵심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교육 행정 체제와 지방 행정 체제 그리고 지역 사회 NGO가 학생 지원을 위해 협업하는 모델을 마련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면 시행을 앞두고 공개된 시범 운영 사례는 ‘학생의 집에까지 가서 삼겹살을 구워 줬다’든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위해 ‘대출을 함께 알아봐 주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일까지 교사한테 하라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졌고 매뉴얼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올해 2월 26일에서야 발표되었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3월 1일 전면 시행을 포기한 셈이다.
이런 과정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돌봄이 교육인가 아닌가, 교사가 할 일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사회적 쟁점을 이동시켰다. 정부와 교육청은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좋은 의도라고 거듭 강조했고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고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중요하지 그 일을 누가 하느냐를 일괄적으로 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현장 교사들의 분노에 방안이라고 내놓은 건 전국에 장학사 정원을 몇십 명 늘려 교육지원청에 학생맞춤통합지원 담당자 1명씩을 배치한 게 고작이다. 정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덕성 프레임은 실패했고 대응은 무능했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맞춤통합지원은 학교만이 아닌 사회 전반이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다. 학교와 교육청만이 나서서 개별 교사를 ‘갈아 넣어서’ 지원한다면 그 이전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선의와 헌신에 기댄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인 교직원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정책 수혜자인 학생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지 국가의 모든 사람은 언제 거두어질지 모르는 선의에 기댄 지원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원 제도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해 삼겹살을 구워 학생을 먹이는 일은 선의와 감동일 수 있으나 결코 정책 구현의 사례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이미 우리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재생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 민관 협치가 필요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조성되어 역사가 축적되고 있다. 원래는 교육지원청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교육지원청은 이미 교육 행정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고착되어 있다. 이미 맡고 있는 행정 업무들이 상당하고 기초 지자체마다 교육 행정 기관이 필요하기도 하기에 교육지원청이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수행할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교육부의 학생맞춤통합지원 매뉴얼에서도 제도 운영의 열쇠는 외부 기관과 학교를 (그것을 민관 협치나 거버넌스 혹은 통합 체계 등 그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연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 글의 앞부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교육 행정도 복지 행정도 분절적 지원의 칸막이에 가로막혀 있고 교육 행정과 지방 행정은 나누어져 있다는 것. 그럼 이 모든 제도를 단번에 뜯어고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결국 서로 결이 다른 영역들을 조율하고 이어 붙이고 소통하게 해 주는 허브가 필요하다.
또한 중간지원조직은 특정한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선의를 넘어선 정책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은 학교의 업무 담당자가 개정된 법안부터 교육부의 지침에 대한 이해와 해석, 운영 시스템 마련, 행정 체계 구축, 예산 집행, 정책 수혜자(학생)의 상담과 지원, 환류, 제도 개선을 다 담당하는 방식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업무 담당자가 놓치거나 지쳐서 적극적으로 업무를 행하지 않으면 지원이 단절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그렇게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무력화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학습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맞춤통합지원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모습도 보인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일이 많아지는 제도를 어떤 노동자가 계속해 나갈 수 있겠는가. 중간지원조직은 현장에서 업무를 덜어 주는 실무 지원의 역할도 하지만 지역의 정책 구현 전반을 조망하고 완급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촉진하고 격려하며 반대로 너무 매몰되고 있는 곳은 환기시키는 제3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누군가를 더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건 실무자에게 기본적으로 일을 버는 것이다. 이때 잘해 보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역할이 제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지치거나 방법이 없어 보일 때 나-학교-교육계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는 역할도 필요하다. 그렇게 지역 사회 전체의 토양을 일구는 중간지원조직이 ‘맞춤형’으로 ‘통합적’인 지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교육부는 시범 운영 2년 동안 이걸 했어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시범 운영 기간 동안 바로 이런 중간지원조직이 지역별로 만들어져야 했다. 그래야 전면 시행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돌봄청을 따로 만들라는 요구나 학생맞춤통합지원 업무를 교육청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업무를 떠안게 될지 모른다는 현장의 불안이 담긴 요구였다. 그 요구를 표면만 읽고서, ‘교사에게 맡으라고 안 할게요’ 혹은 ‘그래도 교사가 해야죠’라는 식으로, 업무 분장 수준으로 답하는 건 정책 입안자들의 업무 태만이다. 필요가 있어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정된 법안이다. 제대로 작동해 정책 수혜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이 달라질 수 있게, 동시에 현장의 문제를 심화시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책 전문성이다.
복지에도 지역 균형 개발이 필요하다
경남 산청군의 군수는 지난번도 이번도 보수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임 산청군수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산청군에 성폭력상담소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든 우울이든 간에 청소년이 상담할 수 있는 단체가 산청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것은 설령 극우 정당이라 하더라도 성과로 평가될 지점이었다.
물론 산청군수의 자발적 의지만은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로 가는 지원을 축소하고자 추진한 여러 정책 중, 성폭력상담소 통합 사업이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정책 방향성 아래 추진된 것으로, 기초 지자체별로 성폭력 상담 기관을 단 하나만 두고 나머지는 지원을 모두 끊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지역마다 있는 여성 단체들을 갈라치기 했고, 불법합성물 사태가 대대적으로 터졌을 때 대응을 어렵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예기치 못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켜서, 산청군과 같이 성폭력상담소가 없는 기초 지자체에는 오히려 성폭력상담소를 설치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군 지역에 없는 것은 성폭력상담소만이 아니다. 광역 지자체 전체에서 아동 전문 정신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지역들도 많다. 자살 위기 학생이 발생한 학교에서 어렵게 어렵게 치료 상담 예산을 확보해도 그 지역은커녕 인근 지역에도 사설 상담소 하나가 없어서, 학생이 갈 정신과 병원도 없어서 예산을 그대로 반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차량으로 이동하면 지원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지원 대상 학생들은 가정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양육자들이 지원 시설까지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임 교사나 업무 담당자가 매주 출장을 내고 자기 차량으로 이동을 지원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의 교직원은 외근이 아닌 내근 직원으로 업무 형태가 설계되어 있고 그렇게 이동해야 할 학생이 여러 명이 되면 결국 지원이 불가능해진다. 서울의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다른 지역보다 잘 돌아가는 것은 이런 이동 지원 등을 지자체가 전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빛을 발하려면 사업과 사업을, 기관과 기관을 연계하고 또 사업 연계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자원도 필요하다.
그나마 인근 지역에 기관이 있으면 이동만 고민하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인근 지역에조차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없을 때다.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지원하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는 시·군·구 단위 설치가 원칙이지만 실제 군 지역에는 설치되지 않아 인근 시 센터가 넓은 지역을 광역 담당하는 구조가 많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를 통한 연계조차 불가능하므로 청소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기관도 없고 이동 수단도 없는 이중 공백에 놓인다. 발달장애 청소년에 대한 방과 후 활동서비스는 시·군·구가 공모를 통해 제공 기관을 지정하는 바우처 방식이다. 운영 가능한 기관이 없는 군 지역에서는 수급 자격이 있어도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19년 보건복지부 발표 기준으로도 이미 상담원 1인당 평균 사례 관리 건수가 62건으로, 선진국 기준인 12~27건에 비해 2배에서 5배에 달했다. 기관 자체가 없는 군 지역에서는 이런 과부하 상태의 기관이 오히려 더 넓은 지역을 광역 담당하게 되는 구조다. 양육자의 정신 건강 위기가 청소년 위기와 맞물리는 경우도 많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역시 군 지역에서는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 위기 양육자가 이용할 수 있는 긴급 쉼터나 장기 보호기관 역시 없는 지역이 더 많다. 재정 상태가 열악한 보육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공공 영역의 공급은 시장과 공동체, 정부 세 축이 나누어 담당하고 있다. 인구 규모 등으로 시장성이 없고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 사회의 자원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채워야 한다. 정말로 통합 지원, 통합 돌봄을 하려면 지역마다 각종 기관을 지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에게 낯선 아이디어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지역 구석구석에 수도 시설과 전기 시설, 보건소, 우체국, 학교, 버스 정류장, 국공립 어린이집을 구축했다. 사람이 살 기본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복지 지원 기관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코스피가 연일 불장이라서 주식 시가 총액 기준으로 한국 경제가 세계 6위라고 한다. 이 정도 경제 대국에서 복지 체계가 기본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않다는 건 심각한 불균형이다. 통합 지원과 관련된 법들은 삶의 기본적 복지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하는 법제화이며, 전국 어디든 그 기본적 복지를 구현할 책임이 정부에게 부여된 것이다. 지자체들도 이런 필요성을 알고 있어서 몇 달에 한 번씩 가족 상담 등을 특강처럼 열고 주민들의 신청을 받는다. 그렇게 운에 기댄 지원이 아니라, 공립 기관이 지역마다 설치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연계할 기관 및 단체들이 갖추어지고, 이동 지원이 생긴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 방안을 고르고 설계해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나는 학생맞춤통합지원 전면 시행을 앞둔 작년 말, 교육청에 요구했었다. 서울에서 매해 열리는 NPO파트너페어를 우리 지역에서도 열어 달라고. 각 시·도교육청들은 교육 재정 감축에도 연말이면 성과 발표회나 박람회 등의 행사를 호텔을 빌려서 몇 번씩이나 개최하곤 한다. 그중 한 번을, 지역 사회의 단체들과 각종 기관들이 함께 모여 정보를 주고받고 학교의 교직원들도 우리 지역 사회의 단체와 기관들을 만나 볼 수 있는 행사로 전환한다면 예산도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권역별 대학 진학 박람회도 열리는데 학생들에 대한 기본 복지 체계를 만들고 종사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박람회는 그야말로 필요한 일이지 않은가. 그마저도 어려우면 서울NPO파트너페어 도록 같은 자료집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았을 때 인터넷에 검색해서 제일 위에 나오는 단체에 그냥 학생을 연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학교와 교육청의 울타리를 넘어 단체와 기관을 살펴보고 특성을 비교도 해 보고 평도 들어 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소통하는 경험도 가지는 일은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업무 과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교 단위에서, 교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각들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학생맞춤통합지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놓친 것들
무엇보다 교사로서 이야기한다면, 지금의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에서 나는 학생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큰 문제점이라고 느낀다. 학생맞춤통합지원에 관련된 행정적 업무가 학교에 대부분 부여되어 있는 지금, 학교는 학생을 대변하기에 상충되는 정체성이 너무 많다. 학생 지원에 예산을 더 투입하면 학교의 다른 예산이 깎이니 주저하게 되고, 학생 지원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학교의 다른 직원의 노동 여건이 하락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의사 결정에 학생의 지원 필요성이나 특성만이 아니라 학교 전반의 상황과 여건이 더 크게 고려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교직원 개인이든 학교든 입장이 복잡할수록 판단하기 어렵고 행동은 더뎌진다. 최대한 학교가 학생의 입장에 집중해서, 학생의 이익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책 수혜자의 의견이 직접 수렴되는 구조가 학생맞춤통합지원에는 결여되어 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시행령 제정안은 지원 대상 학생 선정 기준 및 절차를 규정하면서, 학생, 보호자 또는 교직원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은 청소년을 지원과 개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가 제도 전반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신에 대한 지원 여부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가, 어떤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수집되고 공유되는지 알 권리는 보장되는가, 지원을 거부하거나 중단하고 변경을 요청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 무조건 학생의 의견에 따라 지원을 계속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결국 아동의 삶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고 삶의 주인공은 아동이다. 아동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생맞춤통합지원은 물론, 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법률과 시행령은 충분히 답하고 있지 않다.
이 중 알 권리나 정보에 대해서는 현장에서의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은 학생맞춤통합지원정보시스템 구축을 규정하고 있다. 기초학력, 심리·정서, 경제적 상황, 가족 관계, 건강 상태 등 민감한 정보들이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되어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연계·이전된다는 것이다. 이전 체계에서 「개인정보 보호법」상 학생 정보가 연계되지 못하는 것을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새 제도는 그 반대 방향으로 정보를 최대한 집적하고 공유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정보의 통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목적으로, 누가, 어떤 범위에서 접근하느냐에 대한 설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교사부터 교육청 담당자, 외부 기관 관계자까지 연계되는 정보 흐름 속에서, 학생의 심리·정서적 어려움, 가정 문제, 경제적 빈곤에 관한 민감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다. 기준이 없으니 학교는 연계하고 있는 기관과 단체에 학생의 정보를 이전하지 않는다. 기관과 단체들은 학생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어 ‘맞춤지원’을 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외부에 학생에 대한 정보를 이관하는 것에 대한 우려, 학생의 배경 및 취약성에 대한 정보를 집적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공개한다 / 공개하지 않는다’로만 접근하면 문제는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절대 공유되어서는 안 되는 범위를 명확한 가이드로 제시하고, 그 범위 안에서는 명확하게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들에 연간 예산 한계를 배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는 지원자에 대한 구체적 자격 입증이나 영수증 처리를 면제하는 방식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서둘러 정돈해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 재정 확보와 전문 인력 충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력 문제는 결정적이다. 법률이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지더라도, 이를 실현할 전문 인력이 없다면 제도는 공문서 행정으로 전락한다. 법만 제정하고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것은 그 법을 실제로 무력화하는 기만이다. 인력과 재정의 배치는 모든 제도의 핵심이다.
‘사회 전반의 노키즈존’이 사라져야
진짜 학생맞춤통합지원이 가능하다
이번 6.3 지방 선거에서 교육감이든 시장이든 도지사든 많은 후보가 급식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도 교육감 후보 4명 중 단 1명만이 급식에 대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은 아침 식사, 무상 석식, 방학 중 급식을 각각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정책들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방학을 포함해 1년 내내 하루 3끼를 모두 학교에서 먹으라는 것은 지역 사회 전체를 ‘노키즈존’으로 만들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복지를 강화하고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책 수혜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이를 복지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지원의 대상으로 삼는 것들을 다시 살펴보자. 기초학력 미달, 경제적 어려움, 심리·정서적 문제, 가정 해체, 아동학대. 이것들은 개인의 결함이나 가족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내는 조건들이다. 빈곤은 노동 시장의 불평등에서 비롯되고, 가정 해체는 사회 안전망 부재의 결과이며, 심리·정서적 어려움은 경쟁 중심 교육 체제와 과도한 학업 압박이 청소년에게 가하는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는 이 구조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은 채,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개별 학생의 증상을 학교가 발굴하고 개입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더구나 ‘맞춤형’이라는 관점은 문제를 개별화하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어떤 학생이 학습 부진이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원인을 사회적 조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당 학생의 개인적 결핍과 가족 문제로 환원하는 시각이 강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개별 지원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지원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 재정 지원의 균등화,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교육 의존 구조의 해소, 경쟁 중심 입시 제도의 개혁 등 세상을 바꾸는 변혁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상호 이해를 넓혀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접근 없이 위기 학생을 학교에서 발굴하고 지원하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제도가 아무리 촘촘한 그물망을 치더라도, 그물망을 필요로 하는 조건을 재생산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제도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의 완충재에 머물 뿐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돌봄지원도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지역 사회 전체에서 함께 통합되어 잘 살아갈 때 비로소 그 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디서든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과 장애인, 성소수자를 볼 수 있는 사회, 그들이 지역 사회 어디든 갈 수 있는 사회가 통합 지원이 실현된 모습일 것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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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의 한계와 과제 ❶
지원과 혼란 사이,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
진냥(희진) jinnyang3@gmail.com
본지 편집자문위원, 경남 초등 교사
학생맞춤통합지원은 혼란한 제도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전면 시행에 들어간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체계가 정돈되지 않았고 현장의 혼란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고, 현장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지역별 차이도 엄청나서 어떤 지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제도의 양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학생맞춤통합지원에 대한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제도가 아닌, 장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는 제도의 태생 자체도 그러하니까.
아동이 살아 내는 삶
비밀 전학 아닌 비밀 전학을 한 학생을 담임한 적이 있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타국에서 넘어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지만 폭력적인 배우자와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소송 끝에 이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녀를 비밀 전학시켰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 남편에게 자녀의 학교를 곧 들키고 말았다. 그는 학교로 쳐들어와 난동을 피웠고 그 학생은 다시 전학해야 했다. 누구든 거주 지역을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생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력적인 남편과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에 살고 싶었겠지만, 한국에 와서 알게 된 모든 사람이 이 지역에 있고 구할 수 있는 일자리도 이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자녀들과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어야 했었는데, 그걸 생각해서도 멀리 떠나기 어려웠을 테고. 결국 코앞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내가 그 학생의 담임이 되었다.
문제는 두 번째로 전학해 온 우리 학교 입장에서는 이 학생이 더 이상 비밀 전학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일반 전학이었다. 첫해까지는 소문이라도 돌았던 것 같은데, 다음 해에 담임을 맡은 내게는 아무 정보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다 늦봄쯤 되던 어느 날, 수업 중에 교무실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생의 아버지가 교무실에 와 있으며, 학생을 데리고 갈 테니 불러 달라며 버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분위기가 이상해서 그 학생이 우리 학교에 다니는 게 맞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을 돌리고 있는데, 담임인 내게 관련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바로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매일 야간 특근까지 하는 공장에 다니는 그녀는 평소에도 전화를 받지 못했다. 직장에 출근하면 휴대전화를 뺏긴다고 했다. 퇴근 이후에만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은 이상, 당연히 학생을 보낼 수 없었다. 학교에서 학생을 부모에게 인계하면 안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생각보다는 종종 있다. 이혼 소송 중인 부부 중 현재 양육권 행사자가 누구인지, 면접교섭권 형태가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학교가 알지 못하고 학생을 잘못 인계했다가 소송에 걸리거나 학생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본 적 있다. 수업이 다 끝난 후에도 학생에게 하교하지 않고 교실에서 머무르도록 당부하고 교무실로 가 상황을 함께 수습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비밀 전학에 준해 학생의 정보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교감, 교장, 교무실 근무자들과 함께 의논했다.
담임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 마주한, 2시간 남짓한 일이었다. 그건 또 한편으로는 그 학생이 매일매일 살아 내고 있는 삶이었다. 폭력적인 전 남편을 피해,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살지만 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 연락조차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삶이기도 하다. 이 여성과 이 어린이의 삶이 안정되고 존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지원
그 학생은 공부도 학교도 좋아하지 않았다. 담임 교사인 나는 제법 좋아해 주었지만, 학생은 늘 무기력했고 아침에는 일어나지 못해 학교에 늦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등교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별별 상상이 다 되었다. 혹시나 아버지가 집을 발견한 게 아닐까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2교시 교과 전담 시간이 되자마자 교무실로 내려가 사정을 설명하고 출장을 낸 후에 학생 집으로 가 보았다. 가는 내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문 앞에서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집이 어수선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는지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문을 한참 두드리고 나서야 잠들어 있던 학생이 나왔다. 그래도 교과 전담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와 줘서, 아버지한테 들킨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학생에게 학교에 매일 나오라고 당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다음 시간 수업을 했다. 하지만 허술한 문 잠금장치가 계속 떠올랐다. 걸쇠 하나 달린 철문이 출입문이었는데 그마저도 반쯤 뜯겨 있었다. ‘1층이 주인집이던데 왜 출입문을 안 고쳐 주지? 이주민이라서, 혹은 여자라서 얕보는 건 아닐까? 내가 집주인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끝내고 주민센터 복지사각지대팀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토요일에 같이 가정 방문을 가 주겠다고 했다. 휴일에 시간을 내주다니 너무 고마운 분이었다. 학생의 어머니에게 방문해도 되느냐고 문자를 남겼다. 번역기를 돌려서 영어와 베트남어로도 같은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와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고, 토요일에 방문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학생에게도 전화를 해 보고 문을 다시 두드리고 한참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후다닥 후다닥 집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학생도, 어머니도 집에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한국어가 아직 서툰 어머니는 누가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문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 전 동네 사람이 찾아와 따지고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또 온 건 줄 알고 무서워서 숨어 있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주민센터 담당자가 서류를 몇 장 꺼내더니 능숙하고 상냥하게 상담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떤 지원도 신청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매일 특근을 해서 어머니의 급여가 적지 않은 데다 자동차도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특히 자동차 배기량이 커 지원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동차에 대해 물어보니 아는 사람에게 중고차를 그냥 받은 거라고 했다. 토요일 오전 내내 애써 보았지만 결국 어떠한 지원 제도에도 해당 사항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상담을 마쳤다. 대신 어머니에게 학교에 교육급여 신청을 꼭 하라고, 마지막 걸음까지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섰다. 학교장 추천으로 올려서 교육급여를 받을 수 있게 꼭 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신청서는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야근을 하고, 한국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그녀에게 나의 호소는 닿을 수 없는, 허망한 말이었다. 주민센터 담당자의 선의에 기댄 도전은 효용이 없었고, 망가진 문도 그대로였다. 나의 선의는 주말 가정 방문에는 닿았지만 집 주인에게 따져 주는 것에는 가닿지 않았다.
분절된 복지 지원 체계가 축적된 역사
이 사례 하나만 봐도 학생맞춤통합지원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쟁점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학생, 하지만 미끄러지는 제도. 당당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지원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누군가가 열심히 동동거려야 지원받을 가능성이 생기는 시혜적인 제도.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학생맞춤통합지원이라며, “학생의 복합적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하고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사각지대 없는 안전망”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제도의 문제는 사실 학생맞춤통합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뿌리를 이야기하려면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7년 경제 위기로 촉발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교육 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 말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70%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마저도 못 구해 실업률은 널뛰었다. 생존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한 시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아동학대가 급증하고 유기되는 영유아가 증가했던 것처럼 경제 위기 때 아동의 삶은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커지는 사회적 요구와 정책적 긴급함 속에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2003년 시범 운영, 이후 전국 확대), Wee 프로젝트(2008년), 다문화 학생 지원, 기초학력 지원 사업, 특수교육 지원 등 다양한 교육복지 제도들이 학교로 들어왔다. 학교 현장에 상담 교사, 영양 교사, 보건 교사, 사서 교사, 학교사회복지사(교육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배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2002년 「학교보건법」과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양호 교사’가 ‘보건 교사’로 이름을 바꾸고 그 역할이 새로이 정돈되었고, 2003년 영양 교사 제도 법안이 통과되어 2007년부터 학교에 영양 교사가 배치되었다.
요컨대 2000년대는 무너진 가족공동체와 사회 불안정성 속에서 교육계가 아동 보호에 대한 응급조치를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했던 시기다. 그야말로 특이점이자 분기점이었다. 이때 아동에 대한 복지 전반을 설계해야 했다. 어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건강보험과 공공 의료 시스템을 만들었지 않은가. 아동 복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어려워 기존의 체계, 즉 학교 시스템에 밀어 넣는 것을 선택했다면 학교의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사회적 노력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그때그때 제기되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제도화 방식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고 복지 정책의 사회적 틀은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지금 함께 목격하고 있다. 서로 상충되는 법안, 정돈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결국 담당자의 개인 역량과 의지에 의존하여 추진된 개별 제도는 연계성을 가질 수 없다.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지원 제도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문제점이다. 각각 별도의 예산, 별도의 담당자, 별도의 보고 체계를 갖추면서 칸막이 행정의 전형이 지금의 학교가 되었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의 도입에 대해 학교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던 지점 역시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드디어 법제화된 돌봄의 사회화
분절적 지원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경로에서 누적되어 왔다. 소위 ‘복지 공백’이 심각해지고 분명히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학생이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코로나19 시국에서 심각하게 두드러졌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2022년 12월 28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 방안’이 발표되었다. 뒤이어 2023년 1월 교육부는 학생맞춤통합지원을 공식화하고, 선도학교와 교육지원청 일부에서 시범 운영을 추진했다. 2년의 시범 운영을 거쳐 2024년 12월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교육부는 전면 도입 시기를 2026년으로 설정한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이 2024년 3월 제정되었고 이 역시 2026년 3월부터 본격 시행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만큼 돌봄통합지원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분노가 뜨겁다. 돌봄통합지원은 65세 이상 노쇠 노인과 중증 장애인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의료·요양·일상 돌봄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제도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육부 관할, 돌봄통합지원은 보건복지부 관할로 그 대상도 다르고 소관 부처도 다르지만 한국 사회가 “통합 지원”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공통의 흐름을 보여 준다.
그런데 통합 지원이 뭘까? 크게 말해 두 가지 의미에서의 통합이다. 먼저 돌봄의 사회화다. 어린이, 청소년의 복합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도, 노인과 장애인의 일상적 돌봄도, 개인과 가족이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책임진다는 방향성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드디어 법제화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각 개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책임지되 특정한 기준에 들면 도와주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전 생애에 걸친 돌봄과 복지를 사회 전반에서 책임지겠다는 법적 선언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삶의 장면 장면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특정 부서의 관할 사업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전 공공 기관, 나아가 지역 사회의 거버넌스와 민관 협력이 강조된다. 하지만 학생맞춤통합지원도 돌봄통합지원도 ‘통합적이지 않게’ 추진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
학생맞춤통합지원은 2024년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그 2년 동안 어떤 시범 운영을 했는가. 그 이전까지 학교와 교육청에서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던 지원을 지자체, 그리고 지역 시민 사회와 통합적으로 하기 위한 시범 운영이라면, 그 핵심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교육 행정 체제와 지방 행정 체제 그리고 지역 사회 NGO가 학생 지원을 위해 협업하는 모델을 마련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면 시행을 앞두고 공개된 시범 운영 사례는 ‘학생의 집에까지 가서 삼겹살을 구워 줬다’든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위해 ‘대출을 함께 알아봐 주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일까지 교사한테 하라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졌고 매뉴얼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올해 2월 26일에서야 발표되었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3월 1일 전면 시행을 포기한 셈이다.
이런 과정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돌봄이 교육인가 아닌가, 교사가 할 일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사회적 쟁점을 이동시켰다. 정부와 교육청은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좋은 의도라고 거듭 강조했고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고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중요하지 그 일을 누가 하느냐를 일괄적으로 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현장 교사들의 분노에 방안이라고 내놓은 건 전국에 장학사 정원을 몇십 명 늘려 교육지원청에 학생맞춤통합지원 담당자 1명씩을 배치한 게 고작이다. 정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덕성 프레임은 실패했고 대응은 무능했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맞춤통합지원은 학교만이 아닌 사회 전반이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다. 학교와 교육청만이 나서서 개별 교사를 ‘갈아 넣어서’ 지원한다면 그 이전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선의와 헌신에 기댄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노동자인 교직원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정책 수혜자인 학생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복지 국가의 모든 사람은 언제 거두어질지 모르는 선의에 기댄 지원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원 제도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해 삼겹살을 구워 학생을 먹이는 일은 선의와 감동일 수 있으나 결코 정책 구현의 사례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중간지원조직은 이미 우리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재생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 민관 협치가 필요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조성되어 역사가 축적되고 있다. 원래는 교육지원청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교육지원청은 이미 교육 행정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고착되어 있다. 이미 맡고 있는 행정 업무들이 상당하고 기초 지자체마다 교육 행정 기관이 필요하기도 하기에 교육지원청이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수행할 것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교육부의 학생맞춤통합지원 매뉴얼에서도 제도 운영의 열쇠는 외부 기관과 학교를 (그것을 민관 협치나 거버넌스 혹은 통합 체계 등 그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연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 글의 앞부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교육 행정도 복지 행정도 분절적 지원의 칸막이에 가로막혀 있고 교육 행정과 지방 행정은 나누어져 있다는 것. 그럼 이 모든 제도를 단번에 뜯어고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결국 서로 결이 다른 영역들을 조율하고 이어 붙이고 소통하게 해 주는 허브가 필요하다.
또한 중간지원조직은 특정한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선의를 넘어선 정책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은 학교의 업무 담당자가 개정된 법안부터 교육부의 지침에 대한 이해와 해석, 운영 시스템 마련, 행정 체계 구축, 예산 집행, 정책 수혜자(학생)의 상담과 지원, 환류, 제도 개선을 다 담당하는 방식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업무 담당자가 놓치거나 지쳐서 적극적으로 업무를 행하지 않으면 지원이 단절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그렇게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무력화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학습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맞춤통합지원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모습도 보인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일이 많아지는 제도를 어떤 노동자가 계속해 나갈 수 있겠는가. 중간지원조직은 현장에서 업무를 덜어 주는 실무 지원의 역할도 하지만 지역의 정책 구현 전반을 조망하고 완급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은 촉진하고 격려하며 반대로 너무 매몰되고 있는 곳은 환기시키는 제3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누군가를 더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건 실무자에게 기본적으로 일을 버는 것이다. 이때 잘해 보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역할이 제도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지치거나 방법이 없어 보일 때 나-학교-교육계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는 역할도 필요하다. 그렇게 지역 사회 전체의 토양을 일구는 중간지원조직이 ‘맞춤형’으로 ‘통합적’인 지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교육부는 시범 운영 2년 동안 이걸 했어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시범 운영 기간 동안 바로 이런 중간지원조직이 지역별로 만들어져야 했다. 그래야 전면 시행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돌봄청을 따로 만들라는 요구나 학생맞춤통합지원 업무를 교육청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업무를 떠안게 될지 모른다는 현장의 불안이 담긴 요구였다. 그 요구를 표면만 읽고서, ‘교사에게 맡으라고 안 할게요’ 혹은 ‘그래도 교사가 해야죠’라는 식으로, 업무 분장 수준으로 답하는 건 정책 입안자들의 업무 태만이다. 필요가 있어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정된 법안이다. 제대로 작동해 정책 수혜자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이 달라질 수 있게, 동시에 현장의 문제를 심화시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책 전문성이다.
복지에도 지역 균형 개발이 필요하다
경남 산청군의 군수는 지난번도 이번도 보수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임 산청군수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산청군에 성폭력상담소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든 우울이든 간에 청소년이 상담할 수 있는 단체가 산청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것은 설령 극우 정당이라 하더라도 성과로 평가될 지점이었다.
물론 산청군수의 자발적 의지만은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가 시민사회단체로 가는 지원을 축소하고자 추진한 여러 정책 중, 성폭력상담소 통합 사업이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정책 방향성 아래 추진된 것으로, 기초 지자체별로 성폭력 상담 기관을 단 하나만 두고 나머지는 지원을 모두 끊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지역마다 있는 여성 단체들을 갈라치기 했고, 불법합성물 사태가 대대적으로 터졌을 때 대응을 어렵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예기치 못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켜서, 산청군과 같이 성폭력상담소가 없는 기초 지자체에는 오히려 성폭력상담소를 설치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군 지역에 없는 것은 성폭력상담소만이 아니다. 광역 지자체 전체에서 아동 전문 정신과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지역들도 많다. 자살 위기 학생이 발생한 학교에서 어렵게 어렵게 치료 상담 예산을 확보해도 그 지역은커녕 인근 지역에도 사설 상담소 하나가 없어서, 학생이 갈 정신과 병원도 없어서 예산을 그대로 반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차량으로 이동하면 지원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지원 대상 학생들은 가정에서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양육자들이 지원 시설까지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임 교사나 업무 담당자가 매주 출장을 내고 자기 차량으로 이동을 지원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의 교직원은 외근이 아닌 내근 직원으로 업무 형태가 설계되어 있고 그렇게 이동해야 할 학생이 여러 명이 되면 결국 지원이 불가능해진다. 서울의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다른 지역보다 잘 돌아가는 것은 이런 이동 지원 등을 지자체가 전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빛을 발하려면 사업과 사업을, 기관과 기관을 연계하고 또 사업 연계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자원도 필요하다.
그나마 인근 지역에 기관이 있으면 이동만 고민하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인근 지역에조차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없을 때다.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을 지원하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는 시·군·구 단위 설치가 원칙이지만 실제 군 지역에는 설치되지 않아 인근 시 센터가 넓은 지역을 광역 담당하는 구조가 많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를 통한 연계조차 불가능하므로 청소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기관도 없고 이동 수단도 없는 이중 공백에 놓인다. 발달장애 청소년에 대한 방과 후 활동서비스는 시·군·구가 공모를 통해 제공 기관을 지정하는 바우처 방식이다. 운영 가능한 기관이 없는 군 지역에서는 수급 자격이 있어도 실제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19년 보건복지부 발표 기준으로도 이미 상담원 1인당 평균 사례 관리 건수가 62건으로, 선진국 기준인 12~27건에 비해 2배에서 5배에 달했다. 기관 자체가 없는 군 지역에서는 이런 과부하 상태의 기관이 오히려 더 넓은 지역을 광역 담당하게 되는 구조다. 양육자의 정신 건강 위기가 청소년 위기와 맞물리는 경우도 많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역시 군 지역에서는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 위기 양육자가 이용할 수 있는 긴급 쉼터나 장기 보호기관 역시 없는 지역이 더 많다. 재정 상태가 열악한 보육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공공 영역의 공급은 시장과 공동체, 정부 세 축이 나누어 담당하고 있다. 인구 규모 등으로 시장성이 없고 시민사회단체 등 지역 사회의 자원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채워야 한다. 정말로 통합 지원, 통합 돌봄을 하려면 지역마다 각종 기관을 지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에게 낯선 아이디어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지역 구석구석에 수도 시설과 전기 시설, 보건소, 우체국, 학교, 버스 정류장, 국공립 어린이집을 구축했다. 사람이 살 기본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복지 지원 기관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코스피가 연일 불장이라서 주식 시가 총액 기준으로 한국 경제가 세계 6위라고 한다. 이 정도 경제 대국에서 복지 체계가 기본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않다는 건 심각한 불균형이다. 통합 지원과 관련된 법들은 삶의 기본적 복지를 사회적 책임으로 규정하는 법제화이며, 전국 어디든 그 기본적 복지를 구현할 책임이 정부에게 부여된 것이다. 지자체들도 이런 필요성을 알고 있어서 몇 달에 한 번씩 가족 상담 등을 특강처럼 열고 주민들의 신청을 받는다. 그렇게 운에 기댄 지원이 아니라, 공립 기관이 지역마다 설치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연계할 기관 및 단체들이 갖추어지고, 이동 지원이 생긴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 방안을 고르고 설계해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나는 학생맞춤통합지원 전면 시행을 앞둔 작년 말, 교육청에 요구했었다. 서울에서 매해 열리는 NPO파트너페어를 우리 지역에서도 열어 달라고. 각 시·도교육청들은 교육 재정 감축에도 연말이면 성과 발표회나 박람회 등의 행사를 호텔을 빌려서 몇 번씩이나 개최하곤 한다. 그중 한 번을, 지역 사회의 단체들과 각종 기관들이 함께 모여 정보를 주고받고 학교의 교직원들도 우리 지역 사회의 단체와 기관들을 만나 볼 수 있는 행사로 전환한다면 예산도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권역별 대학 진학 박람회도 열리는데 학생들에 대한 기본 복지 체계를 만들고 종사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박람회는 그야말로 필요한 일이지 않은가. 그마저도 어려우면 서울NPO파트너페어 도록 같은 자료집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찾았을 때 인터넷에 검색해서 제일 위에 나오는 단체에 그냥 학생을 연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학교와 교육청의 울타리를 넘어 단체와 기관을 살펴보고 특성을 비교도 해 보고 평도 들어 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소통하는 경험도 가지는 일은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업무 과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교 단위에서, 교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각들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학생맞춤통합지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이 놓친 것들
무엇보다 교사로서 이야기한다면, 지금의 학생맞춤통합지원 체계에서 나는 학생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큰 문제점이라고 느낀다. 학생맞춤통합지원에 관련된 행정적 업무가 학교에 대부분 부여되어 있는 지금, 학교는 학생을 대변하기에 상충되는 정체성이 너무 많다. 학생 지원에 예산을 더 투입하면 학교의 다른 예산이 깎이니 주저하게 되고, 학생 지원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학교의 다른 직원의 노동 여건이 하락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의사 결정에 학생의 지원 필요성이나 특성만이 아니라 학교 전반의 상황과 여건이 더 크게 고려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교직원 개인이든 학교든 입장이 복잡할수록 판단하기 어렵고 행동은 더뎌진다. 최대한 학교가 학생의 입장에 집중해서, 학생의 이익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책 수혜자의 의견이 직접 수렴되는 구조가 학생맞춤통합지원에는 결여되어 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시행령 제정안은 지원 대상 학생 선정 기준 및 절차를 규정하면서, 학생, 보호자 또는 교직원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은 청소년을 지원과 개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가 제도 전반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신에 대한 지원 여부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가, 어떤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수집되고 공유되는지 알 권리는 보장되는가, 지원을 거부하거나 중단하고 변경을 요청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가. 무조건 학생의 의견에 따라 지원을 계속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결국 아동의 삶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고 삶의 주인공은 아동이다. 아동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생맞춤통합지원은 물론, 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법률과 시행령은 충분히 답하고 있지 않다.
이 중 알 권리나 정보에 대해서는 현장에서의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은 학생맞춤통합지원정보시스템 구축을 규정하고 있다. 기초학력, 심리·정서, 경제적 상황, 가족 관계, 건강 상태 등 민감한 정보들이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되어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연계·이전된다는 것이다. 이전 체계에서 「개인정보 보호법」상 학생 정보가 연계되지 못하는 것을 사각지대의 원인으로 진단하고, 새 제도는 그 반대 방향으로 정보를 최대한 집적하고 공유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정보의 통합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목적으로, 누가, 어떤 범위에서 접근하느냐에 대한 설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교사부터 교육청 담당자, 외부 기관 관계자까지 연계되는 정보 흐름 속에서, 학생의 심리·정서적 어려움, 가정 문제, 경제적 빈곤에 관한 민감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다. 기준이 없으니 학교는 연계하고 있는 기관과 단체에 학생의 정보를 이전하지 않는다. 기관과 단체들은 학생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어 ‘맞춤지원’을 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외부에 학생에 대한 정보를 이관하는 것에 대한 우려, 학생의 배경 및 취약성에 대한 정보를 집적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공개한다 / 공개하지 않는다’로만 접근하면 문제는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절대 공유되어서는 안 되는 범위를 명확한 가이드로 제시하고, 그 범위 안에서는 명확하게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들에 연간 예산 한계를 배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는 지원자에 대한 구체적 자격 입증이나 영수증 처리를 면제하는 방식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서둘러 정돈해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 재정 확보와 전문 인력 충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력 문제는 결정적이다. 법률이 아무리 촘촘하게 만들어지더라도, 이를 실현할 전문 인력이 없다면 제도는 공문서 행정으로 전락한다. 법만 제정하고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것은 그 법을 실제로 무력화하는 기만이다. 인력과 재정의 배치는 모든 제도의 핵심이다.
‘사회 전반의 노키즈존’이 사라져야
진짜 학생맞춤통합지원이 가능하다
이번 6.3 지방 선거에서 교육감이든 시장이든 도지사든 많은 후보가 급식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도 교육감 후보 4명 중 단 1명만이 급식에 대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은 아침 식사, 무상 석식, 방학 중 급식을 각각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정책들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모두에게 방학을 포함해 1년 내내 하루 3끼를 모두 학교에서 먹으라는 것은 지역 사회 전체를 ‘노키즈존’으로 만들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복지를 강화하고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책 수혜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이를 복지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가 지원의 대상으로 삼는 것들을 다시 살펴보자. 기초학력 미달, 경제적 어려움, 심리·정서적 문제, 가정 해체, 아동학대. 이것들은 개인의 결함이나 가족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내는 조건들이다. 빈곤은 노동 시장의 불평등에서 비롯되고, 가정 해체는 사회 안전망 부재의 결과이며, 심리·정서적 어려움은 경쟁 중심 교육 체제와 과도한 학업 압박이 청소년에게 가하는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생맞춤통합지원 제도는 이 구조적 원인을 건드리지 않은 채,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개별 학생의 증상을 학교가 발굴하고 개입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더구나 ‘맞춤형’이라는 관점은 문제를 개별화하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어떤 학생이 학습 부진이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원인을 사회적 조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당 학생의 개인적 결핍과 가족 문제로 환원하는 시각이 강화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개별 지원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지원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 재정 지원의 균등화,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사교육 의존 구조의 해소, 경쟁 중심 입시 제도의 개혁 등 세상을 바꾸는 변혁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상호 이해를 넓혀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접근 없이 위기 학생을 학교에서 발굴하고 지원하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제도가 아무리 촘촘한 그물망을 치더라도, 그물망을 필요로 하는 조건을 재생산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면, 제도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의 완충재에 머물 뿐이다. 학생맞춤통합지원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돌봄지원도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지역 사회 전체에서 함께 통합되어 잘 살아갈 때 비로소 그 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디서든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과 장애인, 성소수자를 볼 수 있는 사회, 그들이 지역 사회 어디든 갈 수 있는 사회가 통합 지원이 실현된 모습일 것이다.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조합 통신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조합원 연수와 총회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 벗모임과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 교육농, 나눔공방 등 조합원들이 만들어 내는 모임들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임을 직접 제안하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조합비는 월 15,000원이며, 아래 링크를 통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시면 매월 CMS로 자동 출금됩니다.
(단,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분들이나 청소년들은 월 회비 납부를 조정하거나 유예할 수 있습니다.)
· 출자금은 최소 '1구좌 2만 원'이며, 약정하신 금액만큼 첫 번째 월 조합비와 함께 출금됩니다.
· 가입서 작성시 ‘상호’에 재직 중인 학교나 회사명 또는 소속을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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