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호[특집 ①] 민주 진보 교육감 선거의 안팎에서 (김광백, 도승숙, 하정호, 성령(이준원), 현승호)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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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민주 진보 교육감은 지속가능한가


민주 진보 교육감 선거의 안팎에서

경기, 대전, 인천, 전남광주, 제주의 이야기



김광백 

인천장애인교육권연대


도승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수석부회장 겸 경기지부장,

2026년 경기도 교육감 민주 진보 단일화 추진 기구 상임 대표


하정호

전남광주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


성령(이준원)

사회에 할 말 많은 청소년입니다.

대전청소년모임 한밭에서 활동합니다.


현승호

(사)좋은교사운동 공동 대표,

제주 초등 교사




인천

누구를 위한 

민주 진보 교육감 선거인가



지난 6월 3일, 제9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인천시 교육감 선거도 치러졌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천 역시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시작된 2010년부터 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의 전통을 이어 왔다.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종종 파열음과 분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단일화는 2010년 첫 선거를 제외하고는 매번 진보 교육감을 당선시킨 핵심 동력이 되었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은 지난 16년간 진보 진영의 표심을 모아 준 사실상 유일한 깃발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 2026년 인천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그 깃발에 가려져 있던 허상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 글에서는 이번 교육감 선거 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거의 경과와 결과를 살펴본다. 아울러 이 글에서 제시하는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와 대안은 나의 주관적 견해임을 밝힌다.



단일화 없이 치러진 인천시 교육감 선거


인천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2010년 직선제 도입 이후 세 차례 연속 진보 진영이 승리해 왔다. 2014년 이청연 교육감, 2018년과 2022년 도성훈 교육감으로 이어진 세 차례의 승리 뒤에는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한 단일화 기구가 존재했다. 이 기구는 혁신학교와 학생인권조례 등 진보적 교육 의제를 공론화하는 한편, 진보 표심의 분산을 막아 내는 결정적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올해도 인천 지역 40여 개 시민단체는 ‘2026 인천민주진보교육감 추진위원회’(추진위)를 꾸리고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경선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3선에 도전하는 도성훈 교육감은 추진위의 수차례에 걸친 면담 요청과 경선 참여 권유에 대해 거의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4월 초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 교육감이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선거에 출마는 하되 단일화를 위한 경선 참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 게 전부다. 경선 후보자 모집이 마감된 4월 중순까지 추진위 쪽에는 임병구 전국교육자치혁신연대 상임 대표 한 명만 지원했을 뿐, 도성훈 교육감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선거 국면에서 임병구 후보 측은 도 교육감이 2022년 재선 당시 ‘3선 불출마’를 시민 사회에 약속했다고 주장한 반면, 도 교육감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소모적인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추진위는 임병구 후보를 단일 후보로 최종 추대했으나, 현직 프리미엄을 쥔 도성훈 교육감이 빠진 단일화는 절차적·정치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반쪽짜리 단일화’에 그치고 말았다.


반면 보수 진영이 이대형 후보로 단일화를 성사시키면서 인천시 교육감 선거는 직선제 도입 이래 최초로 ‘진보 2 대 보수 1’의 삼파전 구도로 전개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진보 진영 내 두 후보 간의 대립은 격화되었다. 도성훈 후보는 단일화 기구가 정책 검증보다는 현직 배제를 목적으로 정략적으로 움직였다고 비판한 반면, 임병구 후보 측은 그러한 비판이 현직 프리미엄에 안주해 시민 사회의 자율적 절차를 외면한 데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날을 세웠다. 선거일을 열흘쯤을 앞두고 〈경인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도성훈 후보가 27%로 이대형 후보(18%), 임병구 후보(9%)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부동층이 무려 45%에 달해 선거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불안정한 흐름이 지속되었다.



초접전 승리, 그리고 ‘진보 교육감 16년’이 마주한 질문


선거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박빙이었다. 도성훈 후보가 54만 2,849표(36.35%)를 얻어 당선됐고, 이대형 후보가 53만 1,629표(35.59%)로 뒤를 이었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1만 1,220표, 득표율 차이는 0.76%p에 불과했다. 진보 진영의 몫이 될 수 있던 표 일부를 가져간 임병구 후보는 41만 8,910표(28.05%)를 얻었다. 투표율은 58%대에 그쳤고, 무효표는 5만 5,410표로 1·2위 간 표 차이의 5배에 달했다. 유권자 수가 비슷한 인천시장 선거의 무효표보다도 3배 이상 많은 수치였다.


2010년 직선제 도입 이후 인천시 교육감은 보수 나근형(2010년), 진보 이청연(2014년), 진보 도성훈(2018·2022·2026년)으로 이어졌고, 진보 진영 후보는 3번 연속 당선됐다. 그러나 그동안 진보 교육감들의 재임기를 돌아보면 명암이 뚜렷하다. 이청연 전 교육감은 안타깝게도 재임 중 뇌물 수수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돼 임기 도중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도성훈 교육감 체제에서도 2021년 교장 공모제 문제 유출 사태, 2024년 전자칠판 납품 계약을 둘러싼 리베이트 의혹이 있었고, 초등학교 특수교사가 과중한 업무 끝에 숨진 사건에 교육감의 책임이 있다고 지목받았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도 교육감의 자진 사퇴를 권고했고, 도 교육감은 공개 사과했지만 이후 교육청 자체 감사에서는 규정상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세 차례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모두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직 프리미엄’과 인지도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점이 이번 선거로 한층 분명해졌다. 도 교육감은 이번에도 지난 8년간의 공약 이행률과 ‘읽고, 쓰고, 걷고’ 정책의 연속성 등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정책 검증보다 인지도와 진영 프레임이 표심을 갈랐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여기서 ‘민주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이 타이틀은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맞서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 낼 대안 정책을 중심으로 시민 사회가 자율적으로 후보를 검증하고 단일화함으로써, 정당 기호가 없는 선거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인천의 사례가 보여 주듯, 현직 교육감이 그 틀 자체를 거부할 때 이를 제재하거나 강제할 수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단일화 기구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민주·진보’라는 딱지는 남았을지언정, 그 명칭을 지탱해 온 절차적 정당성과 정책 논의의 내용은 무너진 셈이다. 결국 유권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정책 비교가 아니라 ‘누가 진짜 진보인가’를 둘러싼 소모적인 명분 다툼이었다. 그 결과는 역대급 무효표로 드러난 차가운 민심이었다.


정당 표시도 기호도 없는 투표용지 앞에서 유권자 상당수가 후보들의 정책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투표에 나선다는 지적이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됐다. 유권자들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신호는 후보들이 현수막에 사용한 상징 색상뿐이었다. 파란색은 민주당 계열, 빨간색은 국민의힘 계열이라는 정당 연상 프레임이 교육감 선거판을 지배한 것이다. 진보 진영 내부의 단일화 무산은 교육 정책의 실종을 초래하는 동시에 유권자들의 정보 부재를 한층 심화시켰다. 정통성을 지닌 단일 후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해진 국면에서 유권자는 후보 개인의 인지도에 의존하거나 진영 논리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역대급으로 많았던 무효표와 막판까지 이어진 부동층, 그리고 ‘민주 진보 교육감’ 단일화 기획 자체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단일화 신화를 넘어서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치권과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육감 직선제 무용론’이 불거졌다. 시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가 짝을 이루는 러닝메이트제, 같은 기호로 선거운동만 함께하는 공동등록제, 시도지사가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교육감을 임명하는 임명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방안들은 저조한 투표율 문제를 해결하고 ‘깜깜이 선거’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를 받지만, 교육 자치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교육 정책을 단체장의 정치에 종속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교육계 일부에서는 직선제의 문제는 제도 자체의 결함보다는 운용에 있으며,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장점을 성급히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선거 과정에서 느낀 문제점을 바탕으로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교사를 비롯한 교육 당사자들의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는 교육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이자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주체다. 그러나 현행 「공직선거법」 체계는 ‘기계적 정치 중립성’을 이유로 교사들의 입을 막아 놓았다.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교육 정책에 대해 정작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다. 최소한 교육감 선거에서만큼은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둘째, 결선투표제 또는 ‘순위 선택 투표제’의 도입이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되는 현행 상대 다수제 구조에서는 진영 간 사활을 건 단일화 공학에만 선거의 모든 동력이 소모된다. 단일화가 무산되면 서로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는 비난전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전국 단위의 결선투표제 도입이 부담스럽다면 교육감 선거에 한정해 순위 선택 투표제를 대안으로 모색해 볼 수 있다. 유권자가 각 후보 옆에 1순위, 2순위, 3순위를 표시하도록 함으로써 추가 선거 비용을 줄이는 한편, 유권자의 혼란과 사표(死票), 무효표를 방지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셋째, TV 정책 토론회의 의무화 및 확대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답답했던 점 중 하나는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을 깊이 있게 검증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상황에서 무작정 거리로 나가 유권자를 만나는 방식은 실질적인 표심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보다는 TV 토론 등을 통해 시민들이 정책을 투명하게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는 장을 제도적으로 넓히는 편이 훨씬 유용하다.


넷째, 교육감 선거의 정당 공천 허용이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교육감 선거는 이미 정당 정치의 하위 영역으로 깊숙이 편입되어 있다. 위선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 채 후보들이 정당 주변을 기웃거리게 하고 정책 검증을 가로막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당 공천을 통해 후보가 정당 차원의 검증을 받고 정당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현실적인 길일 수 있다.


‘민주 진보 교육감’ 16년은 인천 교육 현장에 분명 적지 않은 성취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선거 과정을 복기해 보면, 그동안 진보 진영을 받쳐 온 ‘교육감 후보 단일화’라는 방식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교육 정책을 둘러싼 다채로운 논의의 장을 새롭게 열어야 할 때다. 필자가 제시한 대안들 역시 분명한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제안들이 우리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교육 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 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김광백





경기

우리는 

왜 다시 모였는가



선거가 끝나면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한다. 누가 당선되었는지, 누가 패배했는지, 몇 % 차이였는지가 뉴스가 되고 역사가 된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만들어 낸 과정은 금세 잊힌다. 치열하게 이어졌던 회의와 토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끝내 합의를 만들어 낸 시간, 그리고 경기 교육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감당했던 수많은 시민 사회의 헌신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기록 밖으로 밀려난다.


나는 그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 글은 특정 후보를 평가하거나 누군가의 공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또한 단순한 비난이나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에 그치려는 글도 아니다. 2026년 경기도 교육감 민주 진보 단일화 과정에서 시민 사회가 왜 다시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만들고자 했는지, 그리고 당선 이후 마주한 씁쓸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기록하기 위한 글이다.



혁신교육의 유산과 무너진 공동체


경기 교육은 오랫동안 시민 사회와 함께 성장해 왔다. 김상곤 교육감 시절 시작된 혁신교육은 어느 한 사람의 정책이 아니었다. 학교 현장의 교사와 학부모, 교육시민단체와 지역 사회가 함께 토론하고 실천하며 만들어 낸 교육운동이었다. 학교는 경쟁보다 성장을 이야기했고, 학생은 점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혁신학교와 혁신교육 지구, 마을교육공동체는 행정이 일방적으로 만든 사업이 아니라 현장의 요구와 시민 사회의 참여 속에서 성장한 경기 교육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혁신교육은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 사회와 교육청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재정 교육감 시기를 거치며 시민 사회와 교육청 사이의 거리는 이전보다 멀어지기 시작했다. 교육감 스스로 ‘나는 진보 후보가 아니다’라며 진보교육의 역사적 맥락과 선을 긋는 순간도 있었다. 함께 정책을 만들던 구조는 점차 약해졌고, 교육청이 정책을 결정하면 시민 사회는 이를 전달받는 관계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변화는 임태희 교육감 체제에서 결정타를 맞았다. 혁신교육 정책의 사실상 해체, 시민 사회와의 철저한 거리 두기, 학교 현장의 갈등 심화는 많은 교육 주체들에게 깊은 위기의식을 안겨 주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야 할 학교는 점차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변해 갔고, 공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성 역시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경기 교육이 시민 사회와 멀어지고 보수 행정에 무너진다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절박함이 다시 사람들을 움직였다.



122개 단체의 연대, 그리고 ‘심판인가, 선수인가’


경기도 민주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 처음부터 122개 단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간 4번의 단일화를 묵묵히 이끌며 두터운 신뢰의 중심이 되어 주었던 민진영(경기교육혁신연대) 위원장을 삼고초려 끝에 모시는 일부터 시작했다. 몇몇 교육시민단체가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가 뜻을 모았다. 노동단체와 교육 관련 시민 사회,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하나둘 참여하면서 논의는 조금씩 커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교조와 교사노조,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정치하는엄마들, 친환경먹거리연대, 농민단체 등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직의 성격도 다른 122개 시민사회단체가 마침내 하나의 연대로 모였다.


회의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여론 조사 반영 비율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4~5시간씩 끝없는 토론이 이어졌고, 운영위원회와 상임위원회, 실무 회의는 늦은 시간까지 폭발 직전의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내부를 가장 첨예하게 갈라놓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단일화 기구에 모인 우리는 공정한 판을 관리하는 ‘심판’인가, 아니면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선수’인가?’


단일화 추진 기구에 참여한 단체가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하거나 선거인단을 조직적으로 모으는 행위를 두고, 한쪽에서는 “자율적 정치 참여”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관리 주체가 선수로 뛰는 불공정 행위”라며 거세게 맞섰다. 이 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은 소송전과 부정 투표 논란으로까지 번지며 기구 자체의 정당성을 흔드는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또 지면 경기 교육의 미래는 진짜 끝이라는 마음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었기에, 122개 단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서로를 설득하고 합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끝까지 버텼다. 그렇게 만들어 낸 2차 토론회와 최종 경선은 단순한 후보 선출이 아닌, 시민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지켜 낸 치열한 증거였다.



정책 협약이라는 약속, 그리고 당선 이후의 시민 사회 패싱


122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만든 단일화의 핵심은 단순히 후보 한 명을 결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단일화 이후 어떤 경기 교육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공동의 약속, 즉 정책 협약이었다.


우리는 이재정 2기 시절의 불통을 이미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단일화 이후에도 ‘시민소통위원회’ 같은 민주적 거버넌스가 작동하도록 정책 협약에 분명히 명시했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 학교 자치와 교육자치의 확대, 학부모 참여 보장, 시민 사회와의 지속적인 협치는 당선 이후에도 함께 실천해야 할 공동의 책임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안민석 후보로 단일화를 성사시켰고, 교육감 선거는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마주한 현실은 차갑고 씁쓸했다. 약속했던 ‘시민 소통’의 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어렵게 맺은 정책 협약은 빛바랜 종이 조각이 되었다. 당선인은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입은 개인적인 상처와 앙금을 이유로, 오랜 시간 경기 교육을 지탱해 온 정통성 있는 시민 사회와 학부모단체들을 철저히 패싱하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는 교육을 하나의 ‘사업’으로 바라보고 실리를 챙기는 비즈니스형 조직들이나 개인적 친분 관계의 외곽 세력들로 채워졌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청 행정이 학부모와 학생을 외면한 채 교사 중심·교권 위주의 편중 행정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활동보호국’이라는 비대한 옥상옥 관료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하는 동안, 학교라는 교육공동체를 함께 이끌어 가야 할 학부모는 정책 파트너가 아닌 통제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간보고회 같은 공식 석상에서조차 단일화 과정을 함께 만들었던 시민 사회를 향해 나온 “시답잖은 인권단체, 시민단체”라는 표현은, 현장을 지켜 온 학부모들의 가슴에 깊은 안타까움을 남겼다. 포용과 신뢰로 무너진 교육공동체를 다독여야 할 교육행정이 소통 대신 거리를 두는 모습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늘할 수밖에 없다.



선거 연대를 넘어, 진짜 교육자치를 향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선거를 위한 연대는 가능했지만, 선거 이후의 협치는 되풀이하여 어그러지는 것인가. 왜 시민 사회는 선거가 끝나면 매번 정치 공학의 소모품으로 버려지고 ‘외부의 조언자’로만 남게 되는가. 이 기형적인 단일화 잔혹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제도적 수술이 시급하다.


첫째, 정치인의 교육감 직행을 차단할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정당 공천이 없다는 허울 아래, 정치인이 정당 간판만 잠시 내린 채 세력 대결을 펼치는 변종 정치 선거를 막아야 한다. 최소한 정당을 떠난 지 3~5년의 유예 기간이 지난 사람만이 출마할 수 있도록 하여, 교육감이 정치인의 재활용 창구가 되는 것을 법으로 차단해야 한다.


둘째, 교육의 진짜 당사자인 청소년들에게 교육감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 어른들의 진영 싸움과 표 셈법, 친위 세력 나누어 먹기에 교육이 휘둘리지 않으려면, 학교 현장을 직접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직접 교육감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 당사자의 참정권이야말로 정치공학에 갇힌 교육감 선거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가장 강력한 견제 장치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무너진 학교공동체를 복원하고 경기 교육을 바로 세우는 교육자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선인의 독주와 불통을 감시해야 하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우리는 특정 정치인을 교육감으로 만들기 위해 모였던 것이 아니었다. 혁신교육의 정신을 잇고, 학부모와 시민이 교육의 당사자로 서는 경기 교육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122개 단체가 늦은 시간까지 땀 흘리며 쏟아부은 시간은 결코 한 번의 선거용으로 쓰이고 버려질 수 없다. 언젠가 다시 경기 교육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뼈아픈 성찰의 기록을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정치 공학에 휘둘리지 않고, 선거 이후에도 단단하게 책임지는 협치의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122개 시민사회단체가 담아낸 절박함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우리가 다시 경기 교육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도승숙




전남광주

위임받은 자치는 

자치가 아니다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출범했다.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가 하나의 광역 단위로 합쳐진 이 전례 없는 시도는 교육 쪽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통합 첫 교육감 김대중과 초대 시장 민형배가 나란히 취임하면서, 언뜻 보면 ‘진보 교육감 벨트’의 규모가 하나 더 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지역의 이야기를 인물의 당선과 낙선으로만 읽으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전남광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특정 교육감의 진영이 아니라, 교육자치라는 권한 자체가 어떤 제도적 형태로 자리 잡느냐를 둘러싼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치에 필요한 원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전남광주통합특별법」) 제77조는 교육자치조직권에 관한 특례를 두고 있다. 교육장과 시장·군수·구청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학교운영위원과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교육발전위원회의 구성·운영, 지역 주민과 교육 구성원이 참여하는 교육장 임용 방식, 공모 교육장에 대한 예산·인사 권한의 위임, 교육지원청의 조직·인사·재정 자율성 확보 등을 통합특별시 조례로 구체화하도록 위임한 것이다. 법조문만 보면 상당한 진전처럼 읽힌다.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위임은 논리적으로 ‘더 상위의 권한을 가진 자가 하위자에게 내려 준다’는 구조를 전제하는데, ‘자치’는 정의상 그 권한의 원천이 자기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소나 시에예스의 주장대로라면 입법권·주권의 원천은 인민(공동체)에게 있고, 국가 기구는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에 불과하다. 이 틀에서 보면 정부가 자치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가의 정당성이 아래로부터의 주권자 자기 결정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입법은 ‘보충성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은 보충성의 원리를 국가→광역→기초로 이어지는 3단 사무 배분 구조 전체에 처음으로 명문화했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제16조는 국무총리 소속 지원위원회가 외교·국방·사법 등 국가 존립 사무를 제외한 사무를 단계별로 통합특별시에 이양하는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여, 국가가 갖고 있던 사무를 광역 단위로 내려보내는 첫 단을 열었다. 제10조 제4항은 통합특별시 사무를 시·군·구가 우선 처리하도록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선언했고, 제17조는 이를 재량이 아닌 의무로 못 박으며 심의 전담 기구(전남광주자치분권심의위원회)까지 별도로 두었다. 즉 국가에서 광역으로, 광역에서 기초로 단계마다 ‘더 작은 단위가 처리할 수 있으면 거기 맡긴다’는 동일한 원리를 반복 적용한 것이다. 이는 제주특별자치도가 특례를 열거하고도 실질적 분권에 이르지 못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은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제77조는 이 원리를 교육 영역으로 확장해, 지역교육발전위원회라는 기초 단위 교육 거버넌스 기구를 법률 차원에서 신설했다는 점에서 한국 지방교육자치사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순조롭지 못했던 교육감 선거 과정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 진짜 질문은 ‘누가 당선됐는가’가 아니다. ‘진보 교육감은 지속가능한가’라는 《오늘의 교육》의 질문에 전남광주가 줄 수 있는 답은 조금 다른 결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은 이곳에서도 순조롭지 못했다. 광주의 김용태, 오경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정성홍 후보로 단일화하고서는, 정작 본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의 캠프로 들어갔다. 전남에서도 불공정을 이유로 단일화 과정에서 뛰쳐나온 문승태 후보가 경쟁 상대였던 김대중 후보를 지원했다. 두 지역 진보 경선에서 낙마하거나 이탈한 인사들이 모두 공식 단일 후보가 아니라 그 트랙 바깥의 현직 후보(김대중) 캠프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인수위에서도 요직을 맡게 된다. 결국 520개 단체로 결성한 전남광주통합공천위가 표방했던 민주적 절차가 최소한의 구속력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출마자들 스스로의 행보가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천위원회는 ‘누가 진보 진영의 적통 후보인가’를 결정할 권한을 달라고 했지만, 유권자가 확인한 것은 시민단체의 무능과 무책임이 아니었을까. 공천위는 ‘시민들의 참여로 깜깜이 교육감 선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시민들의 정당한 판단 기회조차 빼앗은 건 아닌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15만 명에 이르는 참여자들은 출마자들의 정견과 공약도 모른 채 경선 룰 협상에 대한 소식만 듣다 후보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교육감 직선제와 후보 단일화 경선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다.


지난 16년간의 이른바 진보 교육감 체제는 ‘교육감 자치’라는 우리 교육자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못 했고, 소위 민주 진보 후보 단일화도 교육감 1인 지배 체제를 굳혀 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의 제정 과정에서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는 “교육자치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교육장 임용 방식의 변경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로써 그들의 한계를 볼 수 있었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자면, 교사의 교실 자치, 학교 자치, 지역자치가 교육감 자치보다 우선해야 한다. 공동재로서의 교육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한 교사는 교실에서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학생과 보호자도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지원)청은 이들의 자치를 돕는 기관이지 국가의 명령과 지침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다. 자치는 당연히 책임을 전제로 한다. 교사는 자기 수업에 책임을 지고, 학생과 보호자도 책임 의식을 갖고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교육자치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교육의 전문성도 그 책임에 따른 권한에서 나온다. 최소한의 성취 기준만 책임지면 자유롭게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을 때 교사의 전문성도 발휘된다. 교육과정에서 일어난 의도치 않은 사건에 대한 책임까지 교사에게 떠넘기는 정부와,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와 지침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교사들로서는 그런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 교육장에게 인사와 예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보충성의 원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교육부의 의지로 「전남광주통합특별법」에는 그나마 “교육장 임용 시 해당 지역 주민과 교육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임용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현직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라 시민들이 직접 나서 조례를 만들지 않는 한 이 최소한의 조치마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전남과 광주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들이 조례 제정 운동에 나서야 했던 이유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이 정한 것도 어디까지나 ‘위임’이지, 그 자체로 완성된 자치가 아니다. 위임은 조례가 실제로 제정되고, 포괄적으로 권한을 이양할 때 비로소 실질이 된다. 조문에 어떤 사항을 담을지, 어디까지 지역이 스스로 결정할지는 전적으로 이후의 조례 제정 과정으로 남겨져 있다. ‘전남광주 교육자치 운동연대’가 “위임받은 자치는 자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3 지방 선거를 앞두고 운동연대는 광주와 전남에서 토론회를 열고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들과 함께 5개의 교육자치 조례안을 만들어 설명회를 개최했다. 선거 과정에서 조례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후보자 초청 토론도 준비했지만 김대중 교육감 후보가 참여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선거 후에도 시장과 기초단체장의 인수위에도 찾아가 조례안을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5개의 교육자치 조례가 ‘교육자치 기본조례’로 바뀌었고, 운동연대도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춘 단체로 변모하고 있다. 국가가 베푸는 교육을 넘어, 주민이 참여하고 학교와 함께 결정하는 교육자치를 전남광주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 많은 분이 지켜보고 있다.


- 하정호




대전

‘진보’라는 이름으로 

장난치지 맙시다



2026년 6월 3일, 전국 동시 지방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지방 선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교육감 선거는 단연 뜨거운 화두였다. 전국에서 16명을 뽑는 교육감 선거에 58명의 후보가 출마해 최고 8 대 1에 육박하는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대전 지역 민주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기구인 ‘미래 교육을 위한 대전시민교육감 단일화 시민회의’(시민회의)에 청소년 대표로 직접 참여했다.


단일화 과정의 한복판에서 지켜본 대전 교육감 선거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대전의 민주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허망하게 변질되었는지 청소년 대표로서 목격한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나누고자 한다.



왜 실패했는가


대전의 민주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시민회의 경선에 참여한 후보는 성광진, 강재구 2명에 불과했다. 경선 결과 성광진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막상 본 선거에 ‘진보’라는 이름을 달고 출마한 후보는 성광진, 맹수석, 정상신 총 3명이었다. 단일화 기구를 거친 후보는 단 1명뿐이었으니, 단일화는 처참하게 실패한 셈이다.

그렇다면 다른 후보들은 왜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맹수석 후보 측은 “주요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채 일방적·강제적인 서약서를 요구받았다”라며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문제 삼은 것은 “시민회의가 제시하는 내부 경선의 일정과 방식에 따를 것을 서약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정상신 후보 역시 서약서 내용 중 “경선 결과를 어기고 개별 출마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라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 서약서 조항들은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 민주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기구에서도 통용되던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이었는데, 이를 문제 삼으며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진보 교육감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결국 대전시 교육감은 보수 성향인 오석진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석진 후보와 성광진 후보의 표 차이는 고작 0.63%p였다.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로 분류된 후보들의 득표율은 61.34%, ‘보수’로 분류된 후보들의 득표율은 38.64%였다. 즉, 대부분의 대전 시민들은 진보 후보를 원했다는 것이다. 만약 결선 투표제나 선호 투표제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이런 게 진보인가요?


단일화 실패와는 별개로 난 사실, 대전 교육감 후보 중 제대로 된 ‘진보’ 후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보 교육감 단일화 기구에 청소년 대표로서 함께했는데도 말이다. 교육감 선거의 대부분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참담한 마음만 들었다. ‘이런 후보들도 진보라고 불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일화 기구 전체 회의가 있던 날, 회의에서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회의가 거의 끝나 갈 때쯤 내가 “아이들이란 말은 차별적이니 사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라고 발언하였다. 당시 현장에는 “동의합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며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인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문제를 제기했으니 다음부터는 자제할 줄 알았으나, 나의 지적은 없었다는 듯이 시민회의 안에서는 계속 ‘아이들’, ‘미래 세대’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청소년 대표인 나를 향해 ‘기특하다’, ‘대단하다’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불쾌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어느 날 모 진보 후보의 홍보 대화방에 일방적으로 초대되었다. 나처럼 초대당한 사람이 많았는지, 그 대화방에도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강제로 초대하는 문화에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 시기이니 그렇게 초대하는 것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그 대화방에는 교육감 후보의 소식 공유보다는 민주당의 선거 소식이 훨씬 많이, 하루 종일 올라왔다. 민주당 후보의 경선 소식이라든지, 여론 조사에 참여해 달라든지, 민주당 선거에서 누구를 뽑아 달라든지 그런 소식들로 내가 학교에 있을 때도, 씻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맨날 알림이 울렸다. 난 이게 민주당 선거인지 교육감 선거인지 너무나 헷갈렸다. 


진보 교육감 지지층 상당수가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점 자체를 비판할 수야 없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이 ‘진보 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보적인 지지자들의 표를 얻으려면 ‘진보다운’ 행동과 가치를 보여 주면 좋겠다. 진보 교육감 후보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여 주기보다는 민주당 인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누가 누가 민주당과 더 친한가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진보 교육감이란 대체 뭘까 의문이 든 다른 장면도 있었다. 지난 2022년 선거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은 사회주의적 개념을 주입할 우려가 있다”라며 “교육은 보수”라고 외쳤던 후보가, 2026년 선거에서는 “교육은 보수에서 출발해 진보를 지향한다”라며 ‘엄마 교육감’을 슬로건으로 걸고 본인이 ‘진보’라고 이야기했다. 선거에서 유리한 대로 ‘보수’와 ‘진보’를 바꿔 다는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진보 교육감 후보 중 그 누구도 학생인권을 주요 이슈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명의 후보 모두 공보물이나 토론회에서 학생인권 존중에 대한 비전은 쏙 뺀 채,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교권 보호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인권 존중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이 교권만 외치는 것이 보수 교육감 후보와는 무엇이 다른가? 교권과 학생인권을 제로섬 게임으로 대립시키면서 교권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적어도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거면 진보 교육감 안 뽑는다


시민단체들이나 시민들은 왜 ‘진보 교육감’에 열광했었던가. 기존의 보수 교육감과는 차별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은 보수 교육감과 달리 학교 안의 인권 침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했고, 무상 급식을 외쳤다. 보수 교육감이 말할 수 없던, 말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기에 우리는 진보 교육감을 뽑았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자칭 ‘진보 교육감’이라는 이름에는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공약은 다 비슷비슷하고, 교권 높이겠다고, AI 교육 도입하겠다고 모든 교육감 후보가 똑같이 이야기한다. 대전의 진보 교육감 후보라는 이들 중에는, 학교 급식 파업과 관련해서 “밤에 해도 좋고, 방학 때 해도 좋으니 제발 아이들 일과 중에는 파업하지 말아 달라”라고 발언한 사람도 있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을 ‘여사’라고 부르며, 급식실을 ‘필수 공익 사업장’으로 지정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진보 교육감 후보가 자녀를 체벌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SNS에 공유하는 것까지 봤다.


현재의 진보 교육감의 기준은 ‘누가 더 민주당과 친한가’, ‘누가 더 민주당 인사와 친분이 있는가’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 과연 ‘진보 교육감 운동’에 미래가 있을까. 교육감 선거에서 단일화를 고민하기 이전에, 진보 교육감이라는 개념과 체제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만 든다. 더 이상 교육감 또는 교육감 후보들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장난치지 않기를 바란다.


- 성령(이준원)




제주

제주 교육은 

어떤 철학을 선택했는가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교육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대 민선 교육감이 모두 평교사 출신이었다. 첫 민선 교육감인 양성언 교육감을 시작으로 이석문 교육감, 김광수 교육감,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고의숙 교육감까지 모두 초·중·고 교사 출신이다. 정치인이나 교수 출신 교육감이 적지 않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남다른 모습이다.


제주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육의원’ 제도도 존재했다. 교육의원 정수가 따로 배정되어 있었고, 교육의원들 역시 대부분 교사 출신이었다. 겉으로 보면 제주는 마치 ‘교육의 섬’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사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교육이 더 현장 중심적이고 교육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양성언 교육감 시절에는 ‘한 문항 더 맞추기’가 공식 정책으로 추진되기도 했고, 직전 김광수 교육감 시절에는 사교육 업자가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고(故) 현승준 교사 사건을 둘러싸고는 유가족을 대하는 교육청의 태도가 도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전국 유일의 교육의원 제도 역시 실효성 논란 속에서 이번 지방 선거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제주 교육의 특수한 배경 속에서 치러진 제18대 제주도 교육감 선거에는 또다시 3명의 교사 출신 후보가 나섰다. 재선에 도전한 김광수 후보, 중학교 교장 출신의 송문석 후보, 그리고 초등 교사 출신으로 교육의원을 거친 고의숙 후보였다.


선거 초반만 해도 결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직 교육감은 압도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각종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했고, 다른 후보들과는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다만 언제나 가장 많은 응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그만큼 교육감 선거는 정책 경쟁보다 인지도 경쟁의 성격이 강했고, 현직은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교육청을 향한 비판적 보도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세한 지방 언론들이 교육청 보도 자료를 중심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비판적 보도 역시 교육청의 눈치를 보며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김광수 교육감의 재선을 당연하게 여겼다.



상황을 바꾼 사건들


그러나 선거의 흐름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5년 5월 발생한 고 현승준 교사의 사건과 관련하여, 학교가 작성하고 교육청이 국회에 제출한 사망경위서가 허위라는 사실이 (사)좋은교사운동의 노력으로 국정 감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교육청의 해명은 의혹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키웠고, 유가족을 대하는 교육감의 태도까지 논란이 되면서 교육청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론들도 연이어 문제를 제기했고, 자체 진상 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감사원 감사 청구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은 단지 한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아니었다. 제주 교육이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가,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진지하게 듣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한편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고의숙 후보와 송문석 후보 사이에서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었다. 시민 사회는 민주 진보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단일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제주 지역 25개 시민사회단체는 고의숙 후보를 민주 진보 후보로 추대했다. 송문석 후보는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끝까지 완주했다.


이번 선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재명 정부의 높은 국정 지지율 속에서 세 후보 모두 파란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는 것이다. 파란색 옷을 입어서였을까? 어떤 언론사에서는 세 사람 모두를 ‘진보 성향’ 후보로 분류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민주 진보’는 유니폼의 색깔이 아니다. 언론이 붙여 주는 정치적 이름표도 아니다.


TV 토론회에서 송문석 후보는 고의숙 후보에게 물었다.

“민주 진보는 민주당 계열입니까? 진보당 계열입니까? 아니면 민주 진보 단체입니까?”

이에 대해 고의숙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민주 진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 소외된 것을 살피겠다는 것,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길을 지향한다는 것, 격차를 줄인다는 것, 이런 것에 합의하는 전체적인 철학과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때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오래 남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유니폼 색깔로는 알 수 없는 후보들 간의 철학의 차이가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답해야 할 과제


민주 진보란 학생이든 교사든 소외된 이를 살피겠다는 철학이고, 권위적인 학교 문화를 넘어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는 지향이다. 학습 격차, 소득에 따른 격차, 도시와 농산어촌의 교육 격차 등을 줄이겠다는 방향성이다. 이러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파란 옷만 입는다고 민주 진보가 될 수는 없겠다. 차라리 빨간 옷을 입고서 수월성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경쟁을 통해 학업 성장을 이루겠다고 대놓고 보수적 어젠다를 이야기하는 후보가 있었다면 더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제주도교육청의 태양광 업체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후보들 사이에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정작 교육철학과 정책은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다. 고의숙 후보의 ‘꿈꾸는 오후’와 같은 제주형 돌봄 정책도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승패를 가른 요인을 고 현승준 교사 사건과 태양광 업체 비리 의혹에서 찾는다. 실제로 두 사건은 선거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단순히 한 사람의 실패를 심판한 선거가 아니라, 제주 교육이 어떤 철학을 선택할 것인가 묻는 선거였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약속이다. 민주 진보를 철학이라고 말했던 그 다짐이 앞으로의 제주 교육 속에서 실제 정책과 학교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존중받고, 더 소외된 이를 먼저 살피는 제주 교육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앞으로 제주 교육이 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 현승호



교육공동체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하는 지식공동체입니다. 

교육 전문 매체인 격월간 《오늘의 교육》을 펴내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함께 꿈꾸고 공부하고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모임도 꾸려 가고 있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교육에 대한 건강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습니다.

 

교육공동체 벗은 협동조합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경제조직입니다. 정론직필의 교육전문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책들,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배움 공간 등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벗’이라는 이름에는 경쟁과 수월성이 아닌 교육을 통한 우정의 실현(友)과 대안적 실천에 대한 의지의 표현(but)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나누는 우리 교육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격월간 《오늘의 교육》과 교육 관련 책들을 발행하며 다양한 모임들을 꾸리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손쉬운 희망과 위로를 건네지 않고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매체가 되고자 애써 왔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날 교육 현장의 현실을 증언하고 새로운 철학과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널브러진’ 학생들, 스펙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진보 교육감’이 등장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근대적인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어 나가는 데서 풀어 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교육과 페미니즘, 마을과 학교, 광장과 민주시민교육, 4차 산업 혁명과 교육의 시장화라는 기획으로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과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안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로 전국을 순회한 〈이 시대 교육 포럼〉, 순종적인 교사이기만을 강요받는 불의한 시대에 불온한 교사를 꿈꾸자며 모인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교육과 삶의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농사를 짓는 〈교육농〉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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