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기획] 학교에서 성별의 경계를 허물다 (유랑, 꼬꼬)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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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젠더 문제아'들이 바꾸는 학교의 풍경

 

학교에서 성별의 경계를 허물다

 - 교사와 학생이 함께 시도한 변화의 기록

 


유랑(유아름) ur.ahhhng@gmail.com

QTQ(Queer Teachers with Queer)

꼬꼬(이다솜) monkeyssom@naver.com

제천간디학교 졸업생


 

함께 만들어 갈 안전한 학교


유랑

 

지난 9년간 산골 깊숙이 자리한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삶을 함께했다. 공교육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보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했다. 처음 접하는 대안 공동체, 여러 가치와 함께 가는 교육운동과 오래 꿈꾸었던 교사 생활까지, 사회생활을 행복하게 시작했다. 나에게 학교는 일터이기보다는 삶터에 가까웠다. 학생들 또한 교육 공간과 생활 공간이 뒤섞여 있는 ‘학교’에서 삶을 함께했다. 내가 있었던 대안학교는 기숙 학교였고, 개인 공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 물리적 환경은 학교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 학교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평을 자주 들었는데 따뜻한 공동체를 뜻하기도 했지만 ‘개인’의 삶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의 공동체 문화가 서로를 지킬 최소한의 ‘선’조차 무너트리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런 순간은 ‘커밍아웃’하고 싶지 않은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위험으로 다가왔다.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

 

2014년, 대안학교에서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선배 교사들은 각자 삶을 끌고 나가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가지고, 내 삶과 교육에 녹여 내리라 다짐했다. 내 삶의 운동으로 가져가고 싶은 영역은 ‘성소수자 인권’이었다. 그건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지만, 학교에 존재할 성소수자 학생들 또한 본인의 모습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이 학교 역시 성소수자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유성애중심주의가 만연했다.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혐오와 배제는 소수자를 숨게 만들었다. 나를 숨기기로 한 선택은 혐오와 배제를 마주했을 때, 나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보낸 지 3년, 이 공동체에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커밍아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더불어 당사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커밍아웃을 한 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성소수자 인권 관련 수업이었다. 본인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학생들이 본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과 이성애자로 당연하듯 살아가던 이들에게 본인 스스로 나의 성별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이에게 끌리는지 혹은 끌림을 느끼지 않는지 탐색해 보는 시간은 필요했다. 단순히 본인의 정체성을 의심해 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을 더 알아 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본인을 탐색하는 청소년 시기에 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성격과 성향, 관계의 형태 등 삶의 전반에 대해 고민하는 데 비해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탐색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알게 된다면 학교 문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담겨 있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본인에게 커밍아웃하는 친구가 있을 때 지지해 줄 수 있는 앨라이[ref] ❶ 사회 속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성소수자 차별에 관련한 맥락에서 많이 쓰인다. [/ref]가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학기 말 일주일 동안 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과정인 ‘집중식 수업’으로 ‘LGBTAIQ+’ 수업을 개설했다. 그 당시 나는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수업에 필요한 여러 내용을 공부하며 나 또한 당사자지만 몰랐던 정보가 많았음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접근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분법적이고 이성애/유성애중심주의가 당연한 이들에게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다양성을 접하며 본인 또는 사회에 대한 불편한 감각을 일깨우고, 보다 ‘나’에게 가까운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교사인 나와 이 수업이 부족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진행하는 수업은 새로운 시간을 선물했다. 오히려 교실에 있는 모든 이가 배움과 가르침을 오가며 함께 수업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많이 배웠고, 젠더와 인권, 다양성의 영역은 함께 배우는 장이 되었을 때 훨씬 효과적임을 깨달았다.

 

각자의 용기로 안전한 시간에 다가가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하루는 집중식 수업을 함께 했던 학생인 꼬꼬가 나를 찾아왔다. “쌤 지금 바쁘세요?”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니 돌아가려는 꼬꼬를 보고 아차 싶었다. 다시 붙잡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꼬꼬는 주를 여는 시간[ref]  ❷ 학교에는 매주 월요일마다 ‘주를 여는 시간’이라 불리는 전체 모임 시간이 있었다. 한 주의 시작을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모여 시작하자는 취지였는데, 모든 구성원이 돌아가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기도 했다. [/ref]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저번 학기 집중식 수업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커밍아웃 전 찾아와 준 것에 너무나 고마웠다.

며칠 뒤, SNS을 하던 중 우리 학교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의 계정을 발견했다. 최근에 당사자 모임이 시작했음을 알리는 게시물도 올라와 있었다. 기쁜 마음에 가입 신청 양식을 써서 보냈다. 모임 카톡방에 초대하겠다는 반가운 답변을 받고서 교내 성소수자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꼬꼬도 있었다. 모두들 꼬꼬의 커밍아웃 계획을 알고 있었고, 함께 응원하며 월요일을 맞이했다.

꼬꼬는 전교생과 교사에게 본인의 성별 정체성을 논바이너리라고 커밍아웃했다. 꼬꼬의 용기 있는 커밍아웃은 많은 이들의 환호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당시 꼬꼬의 같은 반 학생들과 담임 쌤이 저녁에 깜짝 축하 파티도 준비해서 하루 종일 행복한 기분으로 보낼 수 있었다. 꼬꼬의 커밍아웃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은 사회에서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성별 정체성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소수자와 함께 공존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물 받았다. 또한 그 용기로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도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다.

곧 열릴 학교 축제에서 당사자 모임 부스를 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의 존재로 교내 차별과 혐오를 부숴 버리겠다는 뜻이 담긴 ‘짱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판매할 굿즈와 작은 안내 책자도 만들었다. ‘우리 여기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에 본인의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쓰고 몸에 붙일 수 있는 활동 또한 준비했다. 짧은 활동이지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교내에 성소수자가 존재함을 보여 주고 싶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변화를 일으킬 ‘실천’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성소수자 당사자라는 것만으로도 금세 가까워졌고, 이 모임이 왜 필요한지 느끼게 되었다. 서로가 겪고 있는 일상의 차별과 혐오는 조금씩 달랐다. 몇 학년인지, 어떤 동아리를 하고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커밍아웃을 주변에 했는지 등 각자 있는 위치에 따라 경험하고 있는 지점이 달랐다.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는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일상과 같은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겪으며 그 경험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안전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했고, 그런 관계와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

 

퀴어한 가족 상상해 보기

 

여러 용기 있는 실천으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는 공동체였지만, 그 과정을 함께 하며 늘 마음속 걸림이 있었다. 나는 교사공동체에 커밍아웃을 했고, 내가 짱똘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음을 교사와 학생 대부분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밝히거나 그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것을 늘 고민했다.

짱똘이 축제 부스를 운영할 때였다. 함께 부스 운영을 하며 ‘나는 레즈비언입니다’라는 팻말을 붙이고 있었다. 이 또한 두려웠지만 함께하는 짱똘 덕에 용기 내어 했던 것이다. 축제가 끝난 저녁, 우리 반의 양육자 모임에서는 짱똘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화제가 되었다. 그날 나눴던 대화 중,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이해하지만 본인 자녀는 성소수자가 아니었으면 한다는 한 양육자의 말이 가슴속에 콕 박혔다. 결국 내 자녀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범주에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을 직접 마주한 날이었다. 짱똘의 양육자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마주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짱똘의 양육자들과는 한 번쯤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을 낸 것이다.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은 양육자와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짱똘의 양육자들께 선물하고 싶었다. 짱똘에게 먼저 동의를 구하고, 원하는 학생의 양육자에게 연락을 드렸다. 어떤 분은 책을 받으며 당황스러워하시기도 했고, 어떤 분은 감사한 마음을 전해 주셨다. 궁금한 것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어디서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궁금증을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 마음을 받으며, 교사와 학생인 우리 또한 적절한 교육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양육자 또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스젠더와 이성애자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던 이들에게 가까운 이의 커밍아웃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려운 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본인을 서로에게 솔직하게 보여 주는 과정에서 상처만 남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육자에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모두가 존재하는 공간에 다가가기

 

2020년, 우리 학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겼다. 그 전까지 학교 생활관과 화장실은 모두 성별이분법으로 나뉘어 있었다. 여자, 남자로 나뉜 생활관은 학생 수에 비해 공간이 협소해 한 방에 4명에서 많게는 6, 7명까지 쓰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지정 성별끼리 쓴다는 이유로 분리된 생활 공간 내에서 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런 환경에서 트랜스젠더퀴어 학생은 안전하게 생존하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생활관에는 마을공동체 내의 가정에서 생활을 할 수 있는 ‘홈스테이’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신청을 통해 매 학기에 6명 정도 홈스테이생을 뽑았는데 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생활 교사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회라도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한 학기 이상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는 성별이분법으로 나뉘어 있는 생활관을 벗어나기 위해 본인이 스스로 생활할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꼬꼬는 학교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논문으로 풀어냈다.[ref] ❸ 우리 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각자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교내 구성원에게 주제와 논문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총 3번 있었다. [/ref] 꼬꼬는 논문을 통해 ‘성중립 화장실’을 비롯하여 성소수자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나눴다. 논바이너리인 본인의 생존을 위해 당사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2018년, 꼬꼬의 논문 계획 발표로 공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지만 학교의 큰 변화는 없었다. 학교의 공간 부족과 비용 등의 이유였다.

큰 변화 없이 2년이 지나고, 학교의 유일한 화장실이었던 생태 화장실에 대한 문제 제기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태 화장실을 사용하는 목적인 순환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고, 낯선 화장실의 모습에 입학 지원을 꺼리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학교의 고민이었다. 이렇게 여러 상황들이 2년 동안 쌓이며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교육 공간에 생태 화장실이 아닌 수세식 화장실을 짓는 변화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했지만, 공간과 공사 비용 면에서도 화장실을 두 공간으로 분리해서 짓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렇게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존재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고민한 것이 아닌 여러 상황이 겹쳐지며 다른 필요에 의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지점이 불편했음에도 이에 대한 교육과 논의를 위한 준비를 맡아 달라는 제안에 동의한 것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교내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졌으나 충분한 논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신입생 모집 일정에 맞춰서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기에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논의 초기 단계, 교사회의 온도를 높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20년은 나와 꼬꼬가 커밍아웃한 지 햇수로 3~4년이 되던 해였다. 나도 모르는 새, 교사회에 대한 기대가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중립 화장실 설립을 진행하며 그 기대들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 성소수자에게 성중립 화장실이 필요한지, 아직 한국에서 도입한 사례가 거의 없는데 이론만 믿고 도입했을 때의 우려 등을 들으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이성적으로 이 논의를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교사회의 지금 이 분위기가 소수자에게는 차별과 배제로 다가갈 수 있음을 전하고, 학급 간담회를 위한 준비에 집중해서 논의하며 마무리했다.

결국 내가 힘을 쏟기로 마음먹은 곳은 전교생과 교사가 함께 듣게 될 교육 자리였다. 교내 성평등 위원회와 젠더교육을 함께 하는 팀티칭 교사들이 고민해서 만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동체 만들기’ 교육과 ‘젠더교육과정’의 영향으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평등’이라는 개념을 조금이나마 아는 우리였고,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불씨만 던져 준다면 온도를 올리는 것은 가능하리라 믿었다.

다행히 꼬꼬의 용기를 시작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린 장작이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체 교육 자리에 이어 학급 간담회도 진행되었다. 교육 이후, 교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화장실 시범 주간을 통해 함께 화장실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시범 주간을 진행하며 설문을 통해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고, 그걸 토대로 안전한 화장실 사용을 위한 약속을 만들어, 우리 학교만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 나갔다.


우리가 만들어 갈 ‘안전한 학교’는

 

나의 교사 생활을 돌아보며 고민되었던 것은 ‘내가 교사로서 성소수자 당사자 학생을 위한 적절한 지원을 했는가’였다. 학교는 청소년 시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작은 사회다. 특히 내가 있었던 곳은 기숙 학교였고, 학기 중에는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학교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런 특수성을 이해하고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존재를 가시화하며 그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데는 너무 미흡했다. 학교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화장실과 생활 공간이 준비되지 않은 것임에도 그것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은 탓이다. ‘지정 성별에 맞춰서 공간을 사용하면 되니까’, ‘이전까지 그렇게 했으니까’, ‘당사자가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가니까’와 같은 수많은 이유들로 넘긴 상황들이 많았다.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학교’는 단순히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하고 당사자를 존중하는 태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심리적 지원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존재를 지울 수 있는 교육 활동이나 교내 행사 등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를 지우는 방식은 다양하고, 이것은 누구 한 명이 노력한다고 바뀔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상상해야 한다.

우선, 다양한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학교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 트랜스젠더퀴어와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교내 구성원이 있을 경우, 그 존재들이 배제되지 않는 교육과 생활을 위한 교육 활동 전반에 대한 지침을 준비해야 한다. 실제 해외에 성소수자 포용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지침을 실천한 사례[ref] ❹  2022년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공동법률사무소 ‘이채’가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에 담아냈다. [/ref]들이 있다. 그 사례를 발판 삼아 우리나라에 맞는 지침을 고민하고,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관련 지침이 없을 경우 담당 교사의 성향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따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산이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빠른 대응을 하기 어렵고, 포용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논의와 준비가 추가적인 업무로 인식되어 화살이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갈 가능성이 높다.

‘지침’과 같이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제도화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담게 된다. 제도화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혐오 세력에 대한 대응책이 된다. 제도화는 ‘성소수자’ 존재가 학교 내에 있음을 가시화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를 지우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기도 한다. 혐오 세력의 공격이 있을 때에도 공식적으로 학교나 교육지원청의 지침이며 ‘제도’라는 것을 설명하며, 그 공격이 당사자나 지원을 하는 교사인 ‘개인’에게 향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

 

안전한 학교가 만들어 낼 다채로운 세상

 

현재 학교 구조는 사회에서 ‘정상’이라 규정된 존재에 맞춰져 있다. 그런 구조는 그 밖의 존재는 지워지고, 그 존재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채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게 만든다.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학교’는 지침과 제도가 갖추어진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제도 없이 학교 구성원의 포용적인 태도로만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지침과 제도, 그리고 구성원의 포용적인 태도 모두가 존재해야, 성소수자도 학교에서 존재할 수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가 기반에 있기 위해서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교직원, 교육 연구자, 교육지원청 소속 직원, 양육자 등 사회 전반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의 내용 또한 필수 교육 시간을 이수하기 위한 일회성 교육이 아닌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사례도 포함된 다양한 방식의 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올해 2월, 소소부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판결문에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누구나 소수자일 수 있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법원은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라는 표현이 담겨 있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줬다.[ref] ❺ 〈우리의 꿈은 ‘행복한 할아버지 부부’〉, 《참여사회》, 2023년 4월호. [/ref] 그리고 8월에는 김규진, 김세연 부부가 딸 라니를 출산해 세상에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밝혔다.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과 출산에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가장하여 내뱉는 혐오와 차별의 표현에도 그들 부부는 ‘그럼 당신이 도와주면 되겠다’라는 말과 함께 그들이 도와준다면 좋은 세상이 빨리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ref] ❻ ““언니 봐봐, 여기 진한 두줄”… 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 〈한겨레〉, 2023년 6월 30일. [/ref]

결혼부터 임신, 출산까지 밝히며 ‘존재’와 본인의 삶을 운동으로 만들어 내는 김규진, 김세연 부부의 딸 라니는 7년 뒤,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다. 7년 뒤, 라니가 두 엄마와 입학할 때면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인 안전한 학교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성소수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배제당하지 않고, 차별당하지 않으며 학교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7년 뒤가 아닌 지금 현재 다양한 성소수자가 지워진 채 학생으로, 교사로, 양육자로 학교에 존재한다. 그 존재가 ‘지워지는’ 이유는 벽장 밖으로 나올 만큼의 안전을 학교와 사회가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가 ‘안전’을 보장한다면, 그 안전을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육을 한다면, 그리고 안전한 학교를 위한 지침과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가 벽장을 뚫고 나와 다채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을 함께 걷는 벗들에게

 

3년 전, 졸업 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을 때다. 졸업 전 마지막 프로젝트인 인문학 캠프 준비가 한창일 때, 참가 접수 담당 학생이 찾아왔다. 당시 신청을 받아 외부 참가자도 함께하는 숙박형 캠프로 준비 중이었는데, 트랜지션 중인 트랜스 여성의 신청을 전하며 숙소로 예약했던 청소년 수련원의 규정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수련원에서는 지정 성별로만 판단하며 미성년자 혼숙 문제로 캠프 중 퇴실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하던 일을 내려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수련원의 퇴실 요청으로 캠프 중단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주최자로서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실제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 연락하며 도움을 청했고, 불특정 다수가 참가하는 캠프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혐오 표현이나 민원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다. 수련원과 생길 수 있는 행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참가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차별 행정에 함께 대응하자는 것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하여 인문학 캠프는 중단되더라도, 실제 사회 속에서 일어난 차별을 마주하고, 그에 대응해 운동으로 가져가는 것이 인문학 캠프 취지에 더 맞는다는 의견들이 모인 것이다. 

인문학 캠프는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꼭 이수해야 하는 필수 교육과정이었다. 그만큼 무사히 치러질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두고 논의하다 보면 논점이 흐려질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들이 오랜 시간 준비한 캠프가 모든 존재에게 안전한 공간과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결정했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우리가 했던 실천과 교육이 이 공동체에 조금씩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시도했던 젠더교육과 실천이 학교에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 것 같아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러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학교에서 짱똘과 함께 했던 시도와 실천을 떠올린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용기를 나누며 했던 실천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켰다는 것을 상기하면 다시금 나아갈 힘이 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바꿔 나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힘을 동력 삼아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각자가 위치한 세상을 뒤흔들 벗들을 기다린다. 이 길은 ‘우리’를 위한 운동이기도 하지만, ‘모든 존재’를 위한 움직임이다. 서로에게 이 운동이 숨 쉴 틈을 만들어 주기를, 그렇게 함께 살아남아 안전한 학교와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꿈꿔 본다.




학교에서 논바이너리로 살아남기

 

꼬꼬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친구가 성소수자라면 나도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밤을 새우며 성소수자에 대한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봤다. 가능성을 열고 나니, 다른 세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도,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나 자신에 가까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경험은 해방감과 충족감을 주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였다.

한번 새로운 세계를 보고 나니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교가, 사회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시스템 하나하나가 성소수자가 이곳에 없다는 무언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기숙사에 가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고, 가벼운 대화에서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커밍아웃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편 만들기

 

많은 사람 앞에서 커밍아웃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게이냐?” 같은 말을 쉽게 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의 커밍아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은 커밍아웃부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친한 선배들에게 커밍아웃했다. 운 좋게도 모든 사람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렇게 커밍아웃하던 중, 한 명이 학교에 자신이 아는 성소수자가 몇 명 있다며 그들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2명의 성소수자와 만나게 되었고, 성소수자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SNS 등을 통해서 모임이 결성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모집을 받았다. ‘짱똘’이라는 모임명도 생겼다.

유랑의 ‘LGBTAIQ+’ 수업은 성소수자에 대해 더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듣게 되었다. 그런 수업이 학교에서 열린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다. ‘교사 중에도 이런 것에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커밍아웃을 결심하고, 유랑에게도 커밍아웃하며 도움을 청했다. 이 수업 덕분에 유랑에게 더욱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하고, 그때는 유독 선생님들이 바빠 보여서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는데, 응원을 정말 많이 받았다. 친구들에게 받았던 응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학생의 입장에서 ‘교사’는 어렵고, 힘 있고, 완전히 이해받기 어려운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교사 중에도 내 편이 있다는 점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 후, 짱똘에서 유랑을 만나게 되어 또다시 많은 힘을 받기도 했다.

 

변화하는 학교

 

커밍아웃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모두 커밍아웃했고, 성소수자 모임도 생겼다. 전날에는 준비한 자료를 보고 또 봤다. 솔직히 전날까지도 고민했던 것 같다. 모두에게 나의 정체성을 알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다. 따돌림이나 따가운 시선들도 걱정됐지만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건 어른들이었다. 양육자들이 ‘이런 학교에는 우리 애 못 보낸다!’ 하며 나를 내쫓으려고 하면 어쩌나, 교사 회의에서 내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끊임없이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잘못은 ‘성소수자라서’ 그런 게 되어 버리거나 ‘성소수자들은 다 저래’라는 식의 생각으로 이어질까 봐 걱정됐다. 그럼에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커밍아웃할 수 있었다. 나의 정체성과 정체화하게 된 과정, 커밍아웃하게 된 이유 등을 이야기했다. 다행히 발표가 끝나고 큰 박수 소리가 들렸고, 그날 저녁에는 담임 선생님이 축하 파티를 준비해 줘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좋게 남아 있다.

나의 커밍아웃은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있던 시스템들이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설문 조사에 성별 선택 칸이 없어지거나 선택지가

3개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의 변화였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몇몇 후배들이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편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좀 더 쉬워졌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성애중심적인 축제들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우리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모두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가벼운 대화에도, 수업에도,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단시간에 변화하는 학교를 지켜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힘든 점도 많았다는 점을 확실히 짚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변화가 나의 의견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커밍아웃 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이런 건 괜찮아?’, ‘이건 어떻게 생각해?’ 같은 질문이었다. 성별이분법적 질서에 실질적인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 한 명뿐이었고, 이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모든 비시스젠더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만큼 나의 의견으로 변화한 것들에는 나도 모르게 무거운 책임감이 생겼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 중에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화장실이나 생활관 같은 시설 또는 문화적인 문제 등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다. 이런 문제는 내가 불편하다고 해도 “돈이 부족하다”, “다른 학생들을 설득하기에 부담이 된다” 같은 이유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내 문제가 별로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요구가 너무 이상적이라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불편함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내가 이 불편함을 입증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과정에서 혐오를 그대로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3학년이 되면서 논문을 쓰게 되었다. 학교에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논문 주제가 바뀌어 실질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계획 발표 당시에는 교사와 학생, 양육자를 모두 설득하고 그들이 모두 동의해야만 변화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발표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던 것 같다. 2년이 지나고, 새로운 화장실을 설계하며 성중립 화장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는 교사회가 제안하는 형태였다.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간담회를 진행하고, 관련된 설명과 교육도 진행했다. 기한이 빠듯해서인지 이런 과정들을 좀 급하게 진행했던 느낌이 있었는데, ‘솔직한’ 의견이 필터 없이 노출되어 나에게는 힘든 과정이었다. 이런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어쨌거나 좋은 일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일이었다니’ 하는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은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화장실 가는 게 이렇게 편안한 일이었다니! 이전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참는 일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시스젠더 학생들도 편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성소수자를 위한 학교는

 

가끔은 내가 ‘대안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괴롭힘당하지 않고, 변화를 불러올 수 있었던 걸까 하고 고민한다.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은 뭐였을까. 성소수자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 문제와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덕분에 다양성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한, 학교 시스템이 좀 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었기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지지하는 친구와 선생님이 있다는 점이 많은 용기를 주었다. 짱똘 멤버들과는 그냥 같이 밥 먹고 수다 떨고 노는 것도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 언제든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굳이 커밍아웃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였다면 어땠을까. 짱똘 멤버들과 항상 ‘우리는 존재 자체가 투쟁’이라고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먼저 성소수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좀 더 편안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생활관이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거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생활관을 마련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형식적인 성교육이 아닌, 현실적인 정보를 담은 성교육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묻기 전에 공부하고 먼저 변화를 제안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결국 성소수자가 특별하지 않은, 당연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성소수자, 트랜스젠더퀴어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키지 않아도 편안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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