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기획] 특수와 일반의 이분법을 넘어 포용교육으로 (김헌용)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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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_ ‘특수’라는 벽장을 넘어 교육 보편의 담론으로 ②

 

특수와 일반의 이분법을 넘어 포용교육으로

 - 한 장애인 교사의 시선

 


김헌용

engccer@gmail.com

서울 신명중 교사,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들어가며 -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경험을 돌아보다

 

나는 여섯 살에 실명했다. 부모님은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에게 남은 선택지는 나를 특수학교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만 해도 당시에는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결정이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애인의 교육권은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보장되지 못했다.

맹학교 생활은 돌이켜 보건대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맹학교의 담장 안에서 나는 차별이 무엇인지 몰랐다. 모두가 대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잔존 시력이 있다는 것이 특별한 대우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력이 아예 없는 친구들이 시력이 조금 남은 친구들의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경우도 흔했다. 시각장애 생활을 더 ‘진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얻을 것이 많은 환경이었기 때문인데, 나도 늦깎이로 맹학교에 들어온 형과 누나들을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하도록 심심찮게 도와주곤 했다.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알고 있었다. 교실은 점자책과 촉각 교구 등 온갖 만질 것들로 가득했다. 학교 곳곳은 부딪히거나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점자정보단말기와 확대독서기 같은 접근성 도구들은 발에 차일 정도로 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접근 가능했고, 모든 서비스는 우리의 필요에 맞춰져 있었다. 세상은 손끝의 감각으로, 지식은 목소리를 통해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은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는, 차별 없는 학습 환경의 표본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비장애인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엔 두렵기도 했지만 특수교육을 전공하며 접한 비장애인 사회는 머지않아 내게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특수교육과의 전통이 있는 사범대학교여서 앞서 재학한 시각장애인 선배들이 일종의 장애 친화적 전통을 만들었고 나는 그 길만 따라가면 되었다. 대학의 도서관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카페 한편에서도 접근성 문제는 크지 않았다. 문제가 있으면 늘 대안이 있었고, 동료와 교수님들은 나를 한 명의 학생, 미래의 교육자로 대했다. 그곳에서 나는 편견의 벽이 아닌,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2010년에 교사가 되어 일반 학교 교단에 섰을 때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편의 제공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접근성 문제는 일상이었다. 물리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일해 본 경험이 전무한 교육청 담당자들과 동료 교사들의 장애에 대한 낮은 인식은 나의 노동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동안의 삶이 특별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수라는 담장을 나오니 그 밖은 낭떠러지였다.

장애인 교원으로서의 경험은 무엇보다 장애 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겪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가능케 했다. 학생을 위한 통합교육은 2007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통과되면서 일반 학교에도 스며들고 있었지만 실상은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과도 같았다. 나는 신규 교사일 때 자주 특수학급 교실에 들르곤 했는데 나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환대해 주는 유일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특수 교사 선배는 나를 집에 초대해 식사까지 대접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는데 그때 느낀 온기는 지금까지 내가 교직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 중 하나이다. 돌이켜 보건대 교사인 내가 그 정도로 그 선생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면 장애 학생의 상황은 얼마나 더 척박했을까? 장애 학생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내가 교사가 되기 전까지 일상적으로 느꼈던, 그리고 교사가 되고 나서는 지극히 뜨문뜨문 경험한 온기임에 틀림없다.

교육의 질감은 다채로운 색채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이라는 이원화된 구조 속에서, 나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교육자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 모두가 어우러지는 교육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이 글에서는 장벽을 허물고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이슈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포용교육(inclusive education)으로의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특수교육 중심의 한계

 

대한민국의 교육계 내에서 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은 철저히 특수교육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맹학교에 들어갔던 30년 전보다는 교육 시스템 전반이 장애 학생에게 개방되었다고 하나 물리적 공간이 일반 학교로 확장되었을 뿐 폐쇄성은 여전하다. 이런 시스템은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이 마치 별개의 세계처럼 존재하게 만든다. 특수학교의 담장 안에 있는 아이들은 바깥세상과의 접촉이 드물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쌍둥이인 형이 바깥세상으로 난 유일한 창문이었다. 맹학교 학생들은 비장애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로 인해 사회성 발달에 있어 중요한 또래 문화의 경험이 많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특수교육의 담장 밖에 놓인 학생들은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원은 특수교육 안으로만 집중되고 바깥에 있는 아이들은 교육적으로 방치된다.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와 교직에서 만난 장애인 동료 가운데 학창 시절을 일반 학교에서 보내면서 오히려 또래와의 충분한 상호작용이나 교사로부터의 지지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사회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맹학교를 경험한 나를 동경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특수교육 중심의 접근은 교육 시스템 전체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제한한다. 특수교육 담장 안과 바깥의 깊은 간극은 영속화되며, 전체 교육 시스템의 포용성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사막 안의 오아시스나 황무지 위의 온실처럼, 장애 학생의 활동 공간을 제한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특수교육을 받은 학생과 받지 못한 학생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차별적 구조에 대한 인식은 교직 생활을 통해 내게 점차 명확히 다가왔다. 일반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만난 장애 학생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교실에서 사라져 갔다. 더러는 일과 중 오랜 시간을 특수학급 교실에 머물러 있었고 더러는 특수학교나 대안학교로 보내졌다. 정서행동장애가 있는 한 학생은 같은 학급 친구들과 끝없이 마찰을 겪다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안학교로 전학했다. 그 학생과 일대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관해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아서 공감하며 들어 주었는데 나중에 담임 교사는 그때처럼 아이가 편하게 고민 상담을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장애 학생이 겪는 교육적 고립과 소외,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배제는 특수교육의 문제 혹은 인권의 문제 어느 한쪽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문제이다. 일반 학교에 재학하는 장애 학생은 장애 친화적인 특수교육의 세계와 비장애 중심적인 바깥세계의 경계에 놓인다. 그 경계가 넓고 포용적이어야 장애 학생이 마음껏 뛰어 놀며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으련만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는 그들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특수학급 교실을 따라 그어져서 일정 범위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학교의 문제이고 교육 환경 일반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학교 안팎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 모두가 이 변화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그 시작은 특수교육 중심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시작 전부터 작동하는 차별적 게이트 키퍼

 

그렇다면 현재 교육 시스템의 한계는 무엇일까? 내가 학생과 교사로서 목격한 차별적 관행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한다. 장애 학생은 교육 시스템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차별의 장벽에 부딪힌다.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입학 과정에서의 차별은 장애 학생에게 극복해야 할 첫 번째 게이트 키퍼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입시 제도에 의해 장애 학생은 더욱 철저히 걸러진다. 이는 능력주의의 그늘에서 장애 학생이 지속적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른바 ‘진주교대 사건’은 교육계 내에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 준다. 2021년, 진주교대의 입학팀장이 시각장애 지원자를 탈락시키키 위해 성적을 실제보다 낮게 조작한 사건이 알려져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이는 장애 학생이 겪는 입학 과정의 불평등을 드러내며, 교육의 기회마저도 장애를 이유로 박탈당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노골적인 차별은 그들의 학습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훼손한다.

설령 장애 학생이 게이트 키퍼를 넘어 학교에 진입하더라도, 새로운 교육 환경에 적응하는 결정적 시기에 필요한 접근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이 시기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고, 교육적 토대를 다지는 결정적인 때이다. 웹 접근성, 의사소통 접근성, 물리적 접근성의 결여는 대표적으로 각각 시각장애 학생, 청각장애 학생, 지체장애 및 뇌병변장애 학생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박탈한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은 인지적 부하를 과도하게 발생시킨다. 지식 학습에 이렇게 많은 자원을 투여하는 교육 시스템에서 발달장애 학생은 태생적으로 더 큰 차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통합의 걸림돌

 

운 좋게 일반교육에 편입되고 적응에 성공한 학생이라 할지라도 장애 학생의 교육 여정은 종종 보이지 않는 걸림돌로 인해 순탄치 않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지나치게 비장애인 중심적이다. 현재의 교육과정은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의 원칙과는 정반대로 설계되어 있다. 보편적 학습 설계는 모든 학생이 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교육적 접근 방식으로 다양한 학습 스타일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고려하여 다중 표현, 다중 수행, 다중 참여의 원칙에 기초한 학습을 유도하는 접근이다. 보편적 학습 설계는 장애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고자 하는 포용교육 철학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과정은 인지적 능력을 중심으로 정반대로 경쟁과 선별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원 양성 기관에서 예비 교사를 어떻게 가르치든, 국가 교육과정이 어떻게 설계되든, 학교 현장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중첩된다. 나는 이러한 장애를 둘러싼 걸림돌을 ‘유리 바닥’, ‘유리 장벽’, ‘유리 천장’에 비유한다. 이 용어들은 각종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드러내는 개념이지만, 나는 학교 내 장애인(대표적으로 장애인 교원과 장애 학생이 있다)의 경험에 빗대어 이들이 겪는 교육적, 사회적 한계를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한다. 통상적인 의미와는 다르다. 요컨대, 유리 바닥은 불안정한 교육적 지원과 편의 제공의 문제를, 유리 장벽은 의미 있는 관계 형성을 가로막는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유리 천장은 장애 학생이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먼저, 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마주하는 유리 바닥은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편의 제공이 지속적이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장애 학생이 기대할 수 있는 각종 편의 지원은 학교, 지역, 심지어 담당 교사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예산 감축은 필요한 서비스를 축소시키는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장애 학생은 자신이 걷고 있는 바닥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학교생활을 해야 하며, 이는 교육의 연속성과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둘째로, 유리 장벽은 장애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마주치는 편견과 차별적 인식으로 인해 생기는 상호작용의 부족을 지칭한다. 장애 학생에게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편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다. 이런 관계는 학습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회성을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 장애 학생은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 때문에 또래와 교사로부터 소외되기 쉽다. 이 유리 장벽은 장애 학생이 학교에 통합되어 있지만 진정으로 통합되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장애물이다.

마지막으로, 유리 천장은 장애 학생이 충분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시스템 내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많은 장애 학생은 학교 시절,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탐색하고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 비록 몇몇은 대학이나 사회 진출 후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며, 대다수의 장애 학생은 유리 천장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몇몇 소수 장애 학생의 성공적 통합 사례는 다수의 장애 학생이 겪는 구조적 제약을 반증하며, 교육 시스템 내에서의 변화가 절실함을 웅변할 뿐이다.

보편적 학습 설계의 부재와 유리 바닥, 유리 장벽, 유리 천장의 문제는 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의 핵심이다. 이 장벽들은 교육의 연속성, 상호작용의 질, 그리고 성장할 기회의 제공과 같은 중요한 측면에서 장애 학생의 경험을 제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장애 학생이 보다 포용적이고 평등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

 

개선을 위한 실천 과제

 

지금까지 장애 학생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에 대해 학교 입학 관문에서 마주치는 게이트 키퍼와 입학 후에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걸림돌 비유를 통해 서술하였다. 이제는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포용성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통해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장애 학생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 책임이며, 이를 위한 실천 과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차별적 관행과의 단호한 절연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 장애 학생을 대하는 차별적 관행은 뿌리 깊다. 하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은 분명하다. 모든 교육 기관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과감히 떨쳐 내고 관련 법률 및 정책을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차별을 척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표면적인 조치를 넘어 교육과정과 학교 문화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포용적 교육과정과 다양한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과정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육 기관이다. 교육과정을 애초에 포용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일부 교사의 노력이나 접근성 제고만으로 장애 학생을 같은 교육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배경과 능력이 다양한 학생들이 상호작용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 방식 또한 다양화하고, 모든 학생의 학습 성취를 공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접근성 문제를 종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교육의 기회 균등은 접근성에서 시작한다. 디지털 자료의 웹 접근성, 의사소통의 수어 및 문자 통역, 물리적 환경의 장벽 제거 등 모든 학생이 필요로 하는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교육 기관의 기반 시설뿐 아니라 교육 자료와 통신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넷째, 수업과 일상생활에 적극적인 협력과 의사소통을 장려하는 활동을 포함시켜야 한다. 교육에서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교육의 질은 학생이 학교 내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장애 학생이 또래와 대등하게 관계를 맺고 교사와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다섯째, 모든 학교 구성원이 통합의 핵심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통합의 핵심 가치는 모든 학생에게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지향성까지를 의미한다. 교육 정책 결정자, 교육자,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장애 학생들이 차별 없이 그들을 환대하는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표가 가능한 한 많은 곳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 과제들을 중심으로 장애 학생이 직면하는 차별적 장벽을 허무는 일을 단순히 교육 기관의 역할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이는 사회 전체의 변화와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과제이다. 교육과정의 포용성 제고, 접근성 향상, 상호작용의 강화, 그리고 통합의 가치 실현은 모두 우리 사회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 목표를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단호하고 지속적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나오며 – 포용교육의 보편화를 향한 희망의 길

 

앞서 나는 차별과의 단절, 교육과정과 평가 방식의 다양성 확보, 접근성 개선의 필요성, 인간적 상호작용의 중요성, 통합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는 교육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포용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교육계에 이 길을 걷는 동행자가 많아진다면 장애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발전이 될 것이다. 장애 학생을 배제하는 게이트 키퍼, 들쑥날쑥한 지원 체계, 편견으로 쌓인 장벽을 넘어 진정 장애 학생을 끌어안는 교육으로 나아가길 갈망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교육은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을 나누고 장애 학생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흑백 논리가 지배하는 시스템에서는 누구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어느 한쪽을 택하더라도 끝없이 가지 않은 길을 괴로운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강요된 선택은 유연성과 창의성을 생명으로 삼는 교육 안에서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특수교육을 중심으로 통합교육이라는 방법론이 제시되었지만 특수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비전도 중요하지만 구체적 실천 과제가 없었던 탓이다. 이젠 포용교육으로의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 안에서 실천이 수반되어야 할 때이다.

나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활동을 통해 이것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2019년에 설립한 장교조는 끈질긴 대화와 협의를 통해 많은 변화를 이루어 왔다. 장기간의 단체 교섭은 장애인 교원도 교육 당국과 대등한 협상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러한 접근은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고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장애 학생도 비장애인 학생들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교사 및 학교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그 길에 장애인 교원이 앞서 경험한 단체 교섭의 성과와 성장이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포용교육은 교육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적 노력으로부터 확대된다. 소소해 보이는 이 작은 걸음이 집단적인 발자국으로 모일 때, 우리는 차별 없는 포용교육이라는 거대한 여정에 올라설 수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열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청, 사소한 배려가 모여 교육의 질을 변화시키고, 장애 학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토대가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란 말이 있다. 우리 각자의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제도나 큰 틀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도,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이젠 더욱 개인적인, 그래서 더욱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모두를 위한 교육’을 꿈꾼다. 그리고 더 많은 교육자가 그 변화의 파도에 한 줄기 물결이 되어 포용교육이라는 넓은 바다를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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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