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특집] 돌봄과 교육, 그 분리의 역사 (채효정)

[특집] 돌봄과 교육 사이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채효정 measophia@naver.com

본지 편집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 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코로나 사태 이후 돌봄의 가치와 의미는 계속 재발견되고 있다. 비가시화되었던 돌봄 노동도 필수 노동으로서 재조명되며 새롭게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교 돌봄 교실 법제화와 관련된 논란은 이러한 변화와 이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글은 돌봄 교실의 장소나 운영 주체로 협소화된 논쟁의 시야를 확장하고, 행정 관리 차원이 아닌 노동 정치와 교육 정치의 관점에서 돌봄과 교육 사이의 위계 및 관계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돌봄은 어떻게 하찮은 일이 되었나


돌봄과 교육 사이에는 오랜 분리와 위계의 역사가 있다. 돌봄은 여자의 일이고 교육은 남자의 일, 돌봄은 어머니의 일이고 교육은 아버지의 일이다. 돌봄은 가정oikos의 일이지만 교육은 국가polis의 일이고, 돌봄은 자연의 재생산에 속하지만 교육은 문화의 재생산에 속한다. 돌봄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 만물에 쓰이는 말이지만, 교육은 인간에게만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교육은 인재 양성이지만 돌봄은 뒤치다꺼리 노동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여성-어머니-가정-자연’의 영역에 배치된 노동과 ‘남성-아버지-국가-문화’의 영역에 배치된 노동 사이에는 가치의 위계가 존재한다. 돌봄 노동의 가치는 여성 노동의 가치 및 생명의 가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오랫동안 돌봄도 교육도 ‘노동’ 외 범주에 있었고, 돌보는 이도 교육하는 이도 ‘노동자’라 불리지 않았다. 교육이 육체노동과 분리되는 지식노동이고, ‘교육자’는 ‘노동자’라 부를 수 없는 숭고한 직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라면, 돌봄은 노동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하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보는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주부, 아내, 어머니, 유모, 하녀 등으로 불렸고, ‘어머니 뭐 하시냐?’라는 물음에 ‘아무것도 안 합니다’라거나 ‘집에서 놉니다’라는 대답이 가능하기도 했다. 돌봄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일로 인식되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은 필요할 때면 누군가의 사랑, 희생, 봉사 같은 단어로 치장되었다. 숭배와 혐오 사이를 오가는 돌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며, 돌봄이 노동 시장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이런 관념은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돌봄을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로 생각할 때는, 돌봄을 받는 대상도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된다. 아이들, 노인들, 환자들, 장애인들, 그리고 동물들이 그렇다. 돌봄이 필요한 존재는 미성숙하고 미흡하고 부족한 존재로 표상된다. 이런 대상을 돌보는 일에는 어떤 전문성이나 숙련도 요구되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조금만 배우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에 교육의 대상은, 그 대상도 항상 ‘주체화’를 요구받는다. 피교육자를 배움의 주체로 대하라는 것은 교육학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교육적 관계가 상호 주체성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돌봄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여전히 일방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관계가 가능한 것은 돌봄을 인간의 문화적 고양이 아니라 생명 유지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가치가 하락하면 그것을 돌보는 일의 가치도 하락한다.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이 자연을 돌본다’는 관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설정한다. ‘신이 세계를 돌본다’는 경제신학이 ‘인간이 지구를 관리한다’는 자원 관리 경제학으로 대체된 것이다. 생명을 자원으로서 바라보게 되면 생명을 돌보는 일도 노동력의 재생산이나 자원 관리 정도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생명 가치가 상품 가치나 자원 가치로 환원될 때, 생명을 돌보는 일은 서로 돌봄의 관계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돌봄은 관리 행위가 되고, 돌보는 자의 위상도 관리자로 전환된다. 그는 생명의 이치를 알고 마음을 쓰며 돌보는 자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영양을 공급하며 안전하게 잘 관리하는 자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농민은 토지 관리인이 되고, 여성의 몸은 아동의 축사가 된다. 고대 신화에서 대지를 돌보는 돌봄의 여신들이 가졌던 위상은 근대 세계에서는 대지로부터 신성함이 뿌리 뽑힘과 동시에 그 힘을 잃고 만다. 대신 남성 과학자들의 과학적 지식들이 돌봄의 여신이 대지에서 인간과 공유해 온 지혜를 대체하고, 여성과 농민을 비롯하여 돌보는 자들의 힘을 동시에 박탈한다. 이처럼 돌봄의 가치는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가 맺는 관계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돌보는 자와 가르치는 자


돌봄과 교육의 위계에는, 가부장제의 질서 속에서 구축된 성별 위계와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탄생한 종별 위계가 작동하는 한편, 계급의 위계도 작동한다. 민중적 세계에서는 돌봄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다. 대부분 농민과 장인인 민중은, 땅을 돌보고, 도구를 돌보고, 작물과 가축을 돌보며, 마을을 돌본다. 또한 그렇게 돌볼 수 있는 사람을 돌본다. 민중에게는 돌봄이 곧 배움의 과정이며, 삶의 현장이 곧 교육의 현장이다. 그러나 귀족적 세계에서는 교육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이 아들인 알렉산드로스의 지도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고귀한 집안의 아들들은 훌륭한 학자를 모시고 학문을 사사받는다. 그 교육은 주로 통치자를 위한 학문과 관련된 것이다. 학문적 지식만이 아니라 고대와 중세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었던 전사의 기술도 삶의 기술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민중의 교육은 언제나 ‘삶의 기술’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장장이는 대장간에서, 석공은 채석장에서, 목공은 숲에서부터 기술을 배운다. 민중의 기예에는 대상에 대한 돌봄이 항시 전제된다. 불을 돌봐야 하고, 나무를 돌봐야 하고, 땅을 돌봐야 한다. 그러나 전사의 기술은 삶의 기술이 아니며 그들의 배움터인 전쟁터 역시 돌봄의 장이 아니다. 전쟁은 귀족의 경제적 기반이고, 돌봄은 민중의 경제적 기반이다. 약탈 경제와 돌봄 경제는 귀족의 경제와 민중의 경제를 각각 특징짓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돌봄 경제의 파괴 위에 수립된 약탈 경제의 완전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상업과 무역에 기반한 세계 경제는 해외 침략과 수탈에 기반한 고대 귀족의 약탈 경제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 교육 또한 이런 경제 모델을 따라 전쟁에서 이기는 자를 목표로 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탁월함’을 뜻하는 ‘아레테aretē’는 원래 전사들의 무용武勇의 탁월함에서 유래한 말이다. 민주정 이후 아테네 민중들은 이 말을 ‘평준화’하여, 모든 일에서의 탁월함으로 변형시킨다. 전사의 탁월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민의 탁월함과 목공의 탁월함과 석공의 탁월함이 각각 있는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개와 소와 말 등 다른 동물에게도 또는 도구에도 각각의 탁월함을 적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아테네의 데모스는 전사의 엘리트적 탁월함을 노동의 탁월함과 모든 존재의 기능적 탁월함으로 ‘민주적으로’ 변용시켰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 민주정이 과두정 쿠데타에 도전받고 후퇴하는 시기에는 다시 높은 자들aristoi의 교육법이 득세한다. 아테네의 청년들은 평소에는 김나지움에서 체력 단련과 무술 훈련을 한다. 이러한 분리는 전사 사회가 곧 시민 사회였던 스파르타에서는 더욱 심해, 시민의 교육은 집과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장소에서 집단생활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중들은 민주정이 퇴락하던 시기 성행한 소피스트 교육을 삶터에서 청년들을 도려내어 홀로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라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변증술과 수사학은 말로 싸워 이기는 기술이었고, 출세와 성공을 위한 ‘특수 교육’이었으며, 귀족과 부자들의 교육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민중교육과 귀족교육의 계급적 분리는 중세 자유 도시에서 등장한 새로운 시대의 교양 학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새로운 사회 귀족을 위한 학문들은 ‘자유인을 위한 학예’로, 장인 계급을 위한 실용 기술은 ‘비자유인을 위한 기예’로 불린다. 전자로부터 교양 학문 또는 인문학과 예술이, 후자로부터 실용 기술과 공예가 분화된다. 전자는 정신적인 영역에 후자는 육체적인 영역에 각각 배치된다. 전쟁의 기술 대신 인문학과 법학, 정치학, 경제학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의 지식 권력이자 무기가 되었다.


근대 세계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고, 가정과 사회가 분리되면서 돌봄과 교육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돌봄은 공식화된 노동 세계 바깥으로 추방되고 가정 속으로 은폐된다. 근대의 학교 제도는 배움의 장을 가정과 마을, 삶터와 일터로부터 ‘분리되어’ 국가 교육을 수행하는 ‘분리된 장소’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성별과 계급 모든 측면에서 분리의 장벽이 높았다. 교육은 남성의 특권이자 계급의 특권이었고, 돌봄은 여성의 의무이고 계급의 의무였다. 이어진 사회 혁명들이 차츰 교육의 평등권을 요구하며 프롤레타리아와 여성에게도 문을 열어 기회를 확장해 나갔지만 돌봄은 아니었다. 여자도 남자처럼 똑같이 ‘교육받게 해 달라’는 교육의 평등은 일찍부터 나왔지만, 남자도 여자와 똑같이 ‘돌봄을 함께 나누자’는 돌봄의 평등 요구는 그보다 훨씬 뒤에야 도착했다.


부르주아 가족 안에서 ‘전업주부’를 통한 성별 역할 분리가 가져온 돌봄에서의 차별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는 이중적 착취의 구조를 강제했다. 노동 계급의 여성들은 자기 계급과 동시에 지배 계급의 가족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시장화는 이런 이중성을 가시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상층 계급의 여성들은 돌봄 노동에서 부분적으로 해방되지만, 노동 계급의 여성들은 돌봄 노동 시장의 저임금과 가내의 무상 노동으로 이중 착취된다. 이러한 계급적 분리는 교육 현장에서 정규직 교사들과 비정규직 보육 노동자 사이에 나타나는 노동의 경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여성의 직업적 활동과 사회 활동, 그리고 가족의 돌봄과 재생산을 위해서는 다른 여성의 노동이 무상이나 저임금으로 전유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 학교 돌봄의 문제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방법과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 돌봄의 문제


‘돌봄의 사회화’는 오랫동안 돌봄의 대안을 표현하는 말이었고, 여성운동이나 노동운동 모두에서 공통의 진보주의적 과제였다. 그런데 서구에서 사회화의 요구는 한편으로는 국가주의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시장주의적으로 이루어졌다. 둘 다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국가든 시장이든 ‘돌봄의 사회화’가 개인들이 돌봄의 책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함께 돌볼 수 있는 사회관계나 공동체의 형성이 아니라 돌봄을 가정 밖으로 외부화하는 방향이었다. 서구적 돌봄 기획의 첫 번째 방식은 ‘돌봄의 국가화’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는 복지 국가 모델이 대표적 사례다. 스웨덴 사민주의의 ‘국가는 인민의 집’이라는 구호에서 나타난 이상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문제는 국가로 확장된 그 ‘집’이 여전히 ‘아버지의 집’이고 돌봄 역시 ‘가장의 돌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교육도 돌봄도 모두 공공의 문제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하에, 복지 국가는 교육도 돌봄도 국가의 일로 재편한다. 그런데 그 돌봄을 수행하는 주체는 국가의 관료적 기구들이다. 확대된 집은 ‘관료화된 거대 조직’이었고, 각자의 삶이 국가 관리의 조직 하부로 배치된다. 국가 돌봄의 설계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상 가족’을 모델로 상정하고 있어 비혼모나 동성 결혼 커플 등 소수자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도 있다. 이주 노동자나 홈리스 등 비국민·비시민적 존재들이 복지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은 국가 돌봄은 가정 안으로 여성에게 전가한 돌봄 노동의 짐을 한편으로는 덜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신이 세계를 돌보듯이’ 국가가 인민을 돌보는 경제신학oikonomia의 가부장제적 질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배를 뜻하는 ‘아르케arche’라는 말에는 ‘돌보다’의 의미도 들어 있다. 지배한다는 것은 돌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돌봄은 왕이 백성을, 가장이 식솔을, 남편이 아내를, 아버지가 자식을, 주인이 노예를 돌보는 그런 돌봄의 개념이다. 인간이 자연을, 인간이 동물을 돌봐야 한다는 인간 중심주의적 환경주의도 마찬가지다. 이런 돌봄 국가를 정치철학자들은 국가와 사회(확대 가정)를 구분하지 않는 ‘사회-국가’로 비판하며, ‘보육 국가’ 또는 ‘보모 국가’로 부르기도 한다. 슈미트, 아렌트,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자들이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집요하게 구분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국가가 거대한 보육 기계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보육 기계가 된 국가의 극단화된 사례가 개인들에게 영양과 안전을 공급하며, 생명을 관리 통제하는 생명 유지 장치로서의 ‘매트릭스’ 국가다. 이와 같은 보육 국가란 결국 국민을 가축화하며, 시민을 양떼로 만드는 국가다. 서구의 복지 국가는 이와 같은 돌봄 국가로서의 ‘아버지의 집’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지 국가를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여전히 ‘인민을 돌보는 국가’에 대한 동경이 있고, ‘요순 시대’로 상징되는 유교적 이상 국가와 결부되어 돌봄 국가를 이상화하는 경향도 강력하다. ‘어진 왕’을 요구하듯이, ‘인민을 잘 돌보는 국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국가화’와 ‘사회화’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존재한다. 아마도 본래 돌봄의 사회화에 담긴 의미는 돌봄의 거부나 외부화가 아니라 ‘독박 노동’에서 벗어나 돌봄을 함께 나누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들이 돌봄을 각자 공공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받는 것은 그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 즐겨 봤던 《말괄량이 삐삐》는 복지 국가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이다. 삐삐 롱스타킹은 온몸으로 국가의 돌봄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삐삐의 친구들도 삐삐의 저항에 열광적으로 동조한다. 역시 스웨덴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어떤가. 그 노인 또한 안락하게 죽을 날을 기다리는 동물 복지 농장 같은 요양원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이것은 그 ‘인민의 집’이라는 국가 돌봄 모델이 우리가 북유럽에서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돌봄 서비스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삶을 돌보고 창조할 수 없는 수동적 존재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삐삐 롱스타킹은 자신의 주체적 성장을 부정하는 국가의 기준과 강제적 유아화를 거부하고, 창문을 넘은 100세 노인은 자신이 헤쳐 온 삶의 여정이 모두 무화된 채로 ‘나이 든 유아’가 되어 요람 같은 침대에서 죽는 치욕을 벗어나고자 한다.


지금 우리의 돌봄 개념은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일, 왕이 백성을 돌보는 일, 목자가 양떼를 돌보는 일과 같은 ‘일방적 돌봄’의 개념이 지배적이다. 국가의 돌봄도 마찬가지다. 돌봄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원하는 돌봄의 상이 무엇이며, 과연 국가 책임의 돌봄 시스템은 과연 그에 부합하는가도 함께 물어보아야 한다. 돌봄의 대상이자 주체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논의에서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도 물어봐야 한다. 학교 돌봄의 운영 주체가 교육부냐, 지자체냐 하는 양자택일의 논의 속에는 ‘돌봄’에 대한 근본 물음이 빠져 있다.



돌봄의 시장화의 문제


그렇다면 시장이 답인가? 물론 아니다. ‘국가의 실패’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혁신론은 언제나 기업과 시장을 혁신의 주체로 들고 나온다.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시장은 할 수 있다는 논리의 오류는 지난 30년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민영화의 폐해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복지 국가 모델은 1970년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정반대 방향에서 다른 경로의 사회화 요구가 등장한다. 그것은 돌봄과 교육의 시장화였고, 이를 추진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반동이었다. 시장으로 넘겨진 돌봄은 계급 간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교육의 시장화를 통해 교육 시장을 창출하고, 돌봄의 시장화를 통해 돌봄 시장을 창출했다. 그런데 교육 산업이 구글이나 MS의 교육 시장 진출이나 근래 플랫폼 교육 시장의 예처럼 하이테크 기술과 결합한 에듀테크 산업 등 기술 투자형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발전해 간 반면, 돌봄 산업은 전형적인 인력 투입 산업 분야로 팽창했다. 이에 따라 교육과 돌봄 시장도 양극화되었다. IT와 결합한 교육 업계 종사자들이 지식 정보 경제의 역군이자 전문직, 고임금, 고소득 직업군으로 노동 계급의 상층부를 형성할 때, 돌봄 시장의 노동자들은 보험 설계사, 각종 가사 도우미, 요양 보호사, 방과 후 강사, 청소부, 요식업 조리사, 급식 노동자 등 미숙련, 저임금의 불안정 취약 노동자로 노동 계급의 하층부를 형성하며 양극화되었던 것이다. 교사 임금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지만, 비정규직 보육 노동자들의 소득과 처우는 점점 더 열악해진 과정도 동일한 계급 분리와 양극화의 맥락에서 비교할 수 있다.


물론 교육 산업 분야에서도 젠더 불평등은 여전히 지속되어 플랫폼 교육 업체의 대표는 남성인 반면, 학습지 교사나 방문 교사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오늘날 우버 택시나 택배 노동자를 통해 대두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는 실은 그 이전에 야쿠르트 배달이나 녹즙 배달, 가전 관리, 학습지 교사나 방문 교사 등 여성이 주로 담당했던 돌봄 시장에서 이미 나타났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플랫폼 기업의 부당 노동 계약을 ‘자본의 착취’가 아니라 ‘여성의 한계’로 봤을 뿐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아이들과 가사 때문에, 주부양자인 남편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정규직보다 파트 타임 노동을 선호하며, 그것은 여성의 한계라고 자본은 설파했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돌봄 노동자와 교육 노동자 사이에 나타나는 차별적 임금과 대우 또한 성별 노동 분업 및 계급 양극화의 결과다.


한국 사회에서는 IMF 사태가 노동 시장이 재편되면서 돌봄 시장이 팽창하는 큰 계기였다. 당시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와 대량 실직을 당하면서, 여성들이 가족 부양을 위해 대거 노동 시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구조 조정으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 시장에 재진입할 때는 이전보다 훨씬 강등된 지위와 대우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라서 가장 늦게 채용되고, 여자라서 가장 먼저 잘리는 여성 노동자들은, ‘여자라도’ 할 수 있는 남은 일자리로 몰려들었고, 이렇게 해서 돌봄 시장 노동력의 ‘잉여’가 만들어졌다. 새롭게 성장한 돌봄 산업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자본이 언제든지 쉽게 조달 가능한 저렴한 대기 노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노동력의 저평가와 저임금을 토대로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졌다. 신규 진출 산업에서 축적의 시초는 기술 혁신이 아니라 언제나 그 산업에 동원되는 값싼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IT 산업에서는 쓰고 버리는 기술 개발자들이, 금융 산업에서는 카드 외판원과 보험 판매원과 다단계 판매원들이, 케어 산업에서는 코웨이 아줌마와 간병 노동자들이, 지식 산업에서는 외주화된 강사들과 방문 교사들이, 자본이 이윤을 빨아들이는 인간 자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된 노동 시장에서 교육과 돌봄 사이의 위계는 서구와 비서구, 발전 국가와 저발전 국가 간의 불평등 체제로도 나타난다. 발전한 국가의 전문가들은 미발전 국가의 어린이, 여성, 노동자를 ‘교육’을 통해 ‘개발’하는 반면, 미발전 국가의 여성 노동자들은 발전 국가의 남성, 여성, 어린이를 돌본다. 보통 국제 노동 분업 체계는 ‘지구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구조 속에서 ‘선진국의 지식 산업과 후진국의 제조업’, ‘선진국의 연구 개발과 후진국의 자원 개발’이라는 분업 구조로 설명된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 있는 중요한 노동 분업 시스템의 한 축을 돌봄 노동이 담당한다. ‘하얀 아기를 검은 유모가 돌본다’는 말은 돌봄 노동에서 나타나는 북구와 남구의 노동 분업의 단면을 보여 준다. 남유럽에서 중북부 유럽으로,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하던 돌봄 노동의 이주 경로는 홍콩 센트럴 파크 광장에서 베이비시터나 가사도우미 일자리를 구하던 ‘필리핀 메이드’를 거쳐, 한국의 ‘중국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분업화된 돌봄 노동 시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돌봄의 시장화는 여성을 가사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못했다. 이제 돌봄은 상류층에선 과시할 수 있는 특권과 사치가 되었고, 어떤 계급에게는 더 큰 질곡이 되었다. 가전 제품이 여성을 가사 노동에서 구원하지 못한 것처럼, 시장을 통한 케어 서비스 상품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언제나 각자의 처지에 맞는 선택권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지를 갖든지 그 상품은 저렴한 노동에 의해 조달된다. 지금 외식 업체들이 키우려고 하는 ‘아침 시장’도 그렇다. 여성들의 아침 식사 준비로부터 해방을 돕는 아침 시장은 1천 원짜리 김밥에서부터 새벽 배송 차를 타고 도착한 신선 조리 식품, 고급 주거 단지의 주민 공용 부엌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밤샘 노동’과 ‘저렴한 인건비’가 여성의 해방을 명분으로 자본의 수익률을 보장한다.



돌봄의 평등을 정치적 요구로


시장이 제공하는 ‘선택의 자유’ 논리에 대해 정면 대항하여 싸웠던 사례가 학교 무상 급식 운동이다. 학교 급식이 공공화되지 않았을 때, 각자의 점심은 각자의 사정이고, 각자가 제 사정대로 다른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학교 급식 무상화 운동은 ‘공공 식사’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밥을 먹는다는 것에 공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누구도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을 받는 동안 누구도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복지의 요구만이 아니라 밥 한 끼는 평등하게 먹어야 한다는 ‘평등 교육’의 이념이 녹아 있는 ‘정치적 식사’의 요구였다. 나는 이것이 ‘돌봄의 평등’이 학교 운동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터져 나온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밥을 먹어야 일할 수 있듯이 학교의 학생들도 밥을 먹어야 공부도 할 수 있고 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는 노동은 그동안 모두 ‘집 안의 노동자’인 여성의 무상 노동으로 전유되었다. 마리아로사 델라 코스타는 ‘가사 노동에 임금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 체계와 가족 제도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폭로한다. 마리아 미즈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 노동을 무상으로 수탈하는 자본주의적 통치술로서 가부장제적 가족 제도를 지목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구입하는 노동력의 값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 시간만이 아니라 그렇게 출근하여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재생산의 비용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어떤 노동자라도 회사를 다니려면 빨래도 하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은 ‘가족 임금’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에 재생산의 비용을 포함시킨다. 하지만 그 비용 속에 든 노동자의 아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는 절반 혹은 무급의 노동으로 셈해진다. 여성의 노동을 무가치화함으로써 자본은 2명의 노동자의 몫을 1명의 노동자에게만 지급하고, 부양자 남성이 피부양자 여성을 부양하게 하는 구조를 통해 여성의 종속을 심화시킨다.


지금 돌봄의 시장화 또한 이러한 노동 가치의 셈법과 여성의 종속을 사회적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2004년 초등학교에 도입된 초등 돌봄 교실도 돌이켜 보면 돌봄 시장화와 교육 시장화의 연장선상에서 도입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도, 돌봄에 대한 철학도 없이, IMF 사태 이후 가속화된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 붕괴,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과 맞벌이 가정 확대 등의 상황에서 당면한 요구에 대한 대응책으로 졸속 도입되어 17년간 법적 근거도 없이 시행해 온 정책이었다. 돌봄 교실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이라고 ‘돌봄 교사’로 불렸다가, 교사라는 법적 지위가 없다고 ‘강사’라 불렸고, 방과 후 교실 강사와 구분되지 않는다고 ‘돌봄 전담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7년간 이들의 노동은 이들을 학교 현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노동자로 만들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사회가 중단되어도 멈출 수 없는 노동 직군에 종사하는 이들을 ‘필수 노동자’로 호명하며 불러냈다. 이 필수 노동자의 대부분이 돌봄 노동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학교 돌봄 교실 노동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비대면 수업 대체는 교육이 지식 습득이 아니라는 교육학적 주장을 단번에 깨트렸지만, 대체될 수 없었던 돌봄 교실은 학교와 배움의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물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 우리가 경제와 사회의 대전환을 생각한다고 할 때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그것은 약탈 경제, 전쟁 경제에서 생태 경제, 돌봄 경제로의 전환이며, 교육의 생태적 전환 또한 교육 담론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 전체의 전환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실천적 운동 속에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돌봄 교실 법제화 과정에서 돌봄과 교육의 위계를 전복하고 돌봄과 교육의 통합적 모델을 구상하는 것은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강사의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법적 신분의 부재와 차별적 지위를 강제한 것은 한편으로는 비용 최소화와 수익 최대화의 기업 경영 관점에서 강사의 임금을 억제하여 사학 자본의 수익을 높이려는 방책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 내 교원의 서열화 및 정규직 교원과 비정규직 교원 사이의 분리와 차별 정책을 통한 통치의 일환이었다. 학교에서 돌봄 노동과 교육 노동을 분리하는 것도 결국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돌봄 교실 법제화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출된 법안에는 돌봄 노동자의 법적 지위와 노동권 보장이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가? 교사의 권리가 학생의 배울 권리와 직결되듯이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도 돌봄 대상 어린이들의 권리와 직결된다. 돌보는 이의 노동이 정당한 임금을 받고, 불안정하지 않으며,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때, 어린이들의 돌봄 환경도 좋아진다. 반대로 돌봄 노동자들이 과도한 업무와 연속성의 단절,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등 노동 환경, 노동 강도, 노동 시간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채로, 돌봄의 공공성은 확보될 수 없는 것이다. 돌봄이 공공적인 것이라면, 돌봄 노동 역시 공공화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교원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돌봄 교원이나 돌봄 교사라는 이름에 법적 근거가 없어 쓰지 못했던 것이라면 법제화를 통해 법적 근거를 부여하면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봄의 교육적 의미도 다시 물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돌봄이 부모가 찾으러 올 때까지 교실에 아이들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담당하는 수가 많고, 처리해야 할 업무 부담이 크며, 임금은 적고, 노동 환경은 열악하며, 차별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안전 관리자’ 이상의 개인적인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상황에서 보건 의료 노동자들이 보여 준 것처럼,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기 노동에 대한 책임감을 발휘하고 전망을 수립하고자 한다. 간호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덕분에 챌린지’ 같은 ‘말로만 감사 캠페인’으로 때우려 하는 것을 기만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것은 엄지손가락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처우와 노동권이었다. 학교 돌봄 교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사법 투쟁 당시 대학 측은 강사들을 대학에서 직접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관리하는 강사 풀 제도로 운용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고 국가와 교섭할 수 있으므로 보다 유리할 수 있지만 강사들은 이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국 변용된 강사 파견 제도이자 강사 외주화 정책이었고, 대학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강사를 대학 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학교 돌봄 교실 운영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것은 돌봄 전담사를 학교 구성원에서 분리하여 인력을 외주화하는 방법이며, 학교 구성원으로서 학교 행정에 의견을 개진하고 참여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급식 노동자, 행정 노동자, 보건 노동자 등 학교 내의 다른 노동자들이 모두 교육청이나 학교 소속이라면, 돌봄 노동자만 지자체 소속으로 외부화할 이유는 없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교육이 수행되고 행정 사무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학내 노동자들의 노동과 마찬가지로 돌봄 노동이 필수적이다. 학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노동자주의 관점에서도, 같은 일터의 노동자들이 각자 다른 사용자와 고용 관계를 가지도록 이원화, 다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같은 현장을 다른 업체의 파견 노동자로 섞어 노동자의 단결을 막고 분리하여 통치하는 전형적인 노무 관리의 기법이다. 학교 돌봄 교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어디서 해야 하는가? 교사 노조의 단협 대상과 돌봄 노동자의 단협 대상이 각각 다르다면, 같은 교육 현장의 문제로, 한 테이블에서 함께 조율할 수 있는 조항들은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가?



앎에서 돌봄으로


“사회란 누구일까요? 사회 따위는 없습니다! 개별 남성과 여성이 있고 가족이 있을 뿐입니다. 정부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돌봅니다.” 이것이 대처의 그 유명한 ‘사회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사회가 없으므로, 사회의 대안도 없다. 고로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 이 선언은 국가가 국민을 돌보는 복지 국가의 포기 선언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도 용인하지 않는 사회 포기의 선언이었다. 그렇게 해서 개인은 각자 자기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각자도생 시대의 명령은 ‘너 자신을 돌보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누구에게 의존하지 말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삶에 필요한 모든 도움과 돌봄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신자유주의는 관계를 통해 조달하던 것을 시장을 통해 공급했다. 즉 혼자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곧 시장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너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말은 너의 돈으로 해결하라는 말이었고, 네 힘으로 너 자신을 돌보라는 말은 너의 돈으로 너 자신을 돌보라는 말이었다.


돌봄 시장은 무너진 사회 윤리와 와해된 공동체 위에서 성장했다. 밥도, 빨래도, 청소도, 아이도, 노인도, 모두 시장에 맡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출산, 질병, 노화, 죽음까지도,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 산후조리원과 장례업체가 해결해 주는 돌봄의 시장화가 완성되었다. 돌봄 시장은 웰빙 산업, 웰니스 산업과 함께 팽창했고, ‘행복의 사유화’를 목표로 했다. 시장에는 각자의 처지에 맞는 다양한 상품이 대기하고 있었고, 개인들은 그중에서 자기 능력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권리’를 가졌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파괴하고자 했던 ‘사회’가 우리가 갖고 싶은 ‘사회’일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다. 어떤 관계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가 사회의 조건을 구성한다. 학교가 보육 기계나 경쟁 기계가 아니라 정말로 사회를 배우는 사회이기를 원할 때, 우리는 그곳이 어떤 사회이기를 원하는가?


학교 돌봄 교실은 학교 방과 후 교실 제도의 일환으로 도입되었고, 그 도입 취지는, 저소득층 가정, 한부모 가정, 취약 가정 등에 ‘저렴한 가격’의 사교육을 학교가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교사를 증원하고 방과 후 교육 모델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강사 인력을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방과 후 강사는 저렴한 여성 노동자와 청년 구직자의 일자리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돌봄과 일자리를 한 번에 해결하는 정책이 방과 후 교실 제도였다. 그 결과 소속 없는 방과 후 강사들은 불청객처럼 자기 공간도, 휴게실도 제대로 없이 복도를 유령처럼 헤매고, 돌봄 전담사들은 자신의 직장을 남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것처럼 눈칫밥을 먹으며 다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학교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학교는 학생들의 삶의 현장이고, 거기서 보고 듣는 일들이 교과서에서 얻는 지식보다 더 현실적인 배움을 형성한다.


돌봄에는 분명 교육 이상의 교육적 의미가 있다. 하이데거와 푸코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세계와,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맺는 근본 관계를 ‘돌봄’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에도 세계를 인식하는 지식 학습이 아니라 세계를 돌보는 관계 학습으로의 전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너무나 많은 지식을 주입하지만, 정작 타인과 자신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점점 무력하고 무능해지는 인간을 길러 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철학자들이 ‘성인기의 부재’와 청년기의 유예 혹은 영속화된 유아화를 사회적 문제로서 제기한다. 바디우는 《참된 삶》에서, ‘너무 일찍 여자가 되는 소녀들’과 ‘영원히 남자가 되지 못하는 소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인 관문을 없애고, 아동기의 연장기로서의 청소년기를 다시 청년기로 연장하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기로 봉쇄시켜 둠으로써, 자본은 시간을 지배하고 미래를 지배한다. 왜 ‘인식’이 아니라 ‘돌봄’을 현존재 혹은 주체성의 표상으로 사유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구해 보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자신과 타인을 스스로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성인의 징표이며 주체성의 징표임은 분명하다.


돌봄의 기술은 돌봄이 일어나는 상황과 행위 관계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인지나 감수성 발달과 다른 차원의 배움의 영역이다. 나이로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돌볼 줄 아는 존재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도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돌볼 수 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돌볼 수도 있다. 가정 내의 가사와 돌봄 중에서도 자기 몫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20대가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부모의 돌봄을 받는다. 이른 나이에 집에서 학교로 추방되는데도, 성장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도 요리와 빨래는커녕 청소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동생을 돌보거나 어른을 돕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이제 돌봄의 교육학은 인간 존재에게 ‘돌봄’이란 무엇인가를 더 깊이 물어볼 때가 되었다. 돌봄이 존재의 근원적 양식이라면, 돌봄과 교육의 관계 또한 전도될 것이다. 돌봄이 없이는 교육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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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