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호[기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교육의 변화(허광영)

기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교육의 변화


허광영 adollangel@gmail.com


코로나19로 전국이 어수선한 2020년 6월 말, 정부 서울청사에서는 제18차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가 열렸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요원 10명과 민간 위원 6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 나온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지원 내실화 방안〉은 크게 네 가지다.


• 공교육 체계로의 유입을 통한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 

• 이중 언어 재능 개발 및 진로 탐색 지원 

• 코로나19 이후 교육 격차 완화 및 돌봄 공백 지원 

• 자녀의 성장을 위한 가정과 지역 사회의 역할 강화


굳이 세부 내용까지 살펴보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모범 답안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 방안 어디에도 내가 6년 동안 만나 왔던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개별 학교에 입학 신청하던 절차를 교육장이 배정하는 것으로 바꾼다면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공정한 기회’는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살아남는 건 당사자의 몫으로 남는다. 인프라가 구축 안 된 학교에 배정되어 언어 및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전학 또는 자퇴를 하면 그것도 당사자의 몫이다. 아니면 인프라가 구축된 학교로 몰아서 배정하다가 쏠림 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고.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로 정보를 연계하여 입학 안내 자료 배부 등 원활한 취학을 유도하겠다는 건, 아동·청소년의 교육권 보장 책임을 오롯이 당사자와 그 보호자에게 두겠다는 의미다. 출입국을 관리하는 법무부나 취학을 관리하는 교육부나 이들의 교육권 보장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중 언어 재능 개발이라는 표현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결혼 이주 여성들을 국내 노동 시장에 진입시키기 위해 추진했던 이중 언어 역량 프로그램을 그대로 청소년에게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이전에 국내 출생 다문화 아동·청소년의 진로 개발에서도 쓰였던 레퍼토리다. 게다가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진로 탐색 및 직업 설계 프로그램을 이야기한 게 10년도 넘었는데 아직까지 취업 가능한 직업군을 정해 두고 아이들을 거기에 맞추려고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책 방안이란 건 검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가운데, 가장 압권은 가정과 지역 사회의 역할 강화로 언급한 민·관·학 협의체를 통한 종합 지원 모델 사업이다. 2019년 당시 청와대와 여성가족부가 안산을 방문하여 인상 깊게 보고 갔던 지역 사회에서의 협력 체계는 안산 지역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삶과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마다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갔고, 하나하나의 삶에 담겨 있던 이주의 과정과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던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고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협력 체계였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하여 자리 잡은 협의체란 공간에서 다뤄지는 것은 그들의 삶이 아닌,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였다.


누가 그랬던가, 가만 두면 잘 굴러가는데 괜히 관이 손을 대서 다 망쳐 놓는다고. 제18차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의 보도 자료를 보고 든 소감이었다.



이주 배경 청소년이 겪는 절묘한 반칙


〈2018년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족 청소년의 취학률은 전체 취학률보다 중학생은 5.1%p, 고등학생은 4.5%p 낮다고 조사되었다. 희망 교육 수준은 청소년 일반(〈2017년 청소년 종합 실태 조사〉)과 비교했을 때, 4년제 대학과 대학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청소년 일반이 높았고, 고등학교 이하 및 4년제 미만의 대학교라고 응답한 비율은 다문화 청소년이 높았다. 특히 고등학교 이하라는 응답이 〈2017년 청소년 종합 실태 조사 결과〉에서는 3.1%에 불과했으나, 다문화 청소년은 11.2%로 나타나 거의 4배가량 차이를 보였다. 이와 같이 다문화 가정 학생들의 교육 현장에서의 부적응과 낮은 희망 교육 수준은 이들이 청소년 시기에 배우고 경험해야 할 환경으로부터 그들을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역량이 부족한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한국어 공부에 소홀하고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되어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잘못하고 있는 걸까? 원하지도 않는데 오라고 해서, 하기 싫은 외국어를 배워서는 친구라고는 하나 없는 학교라는 곳에 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진행되는 강의로만 진행되는 교육 환경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책임을 온전히 이주 배경 청소년의 개인 역량에만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소위 ‘선주민’이라 불리는 이들 또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절묘한 반칙’을 당하고 있는데 ‘이주민’이라고 다르겠는가.


오히려 이주민은 언어, 이질적인 문화, 경제·사회적인 기반 부족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배제’라는 더 열악한 차별에 놓여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이주민’에게, 우리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절묘한 반칙’을제공해 온 것은 아닐까.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공교육 현장이나 한국에서 중도 탈락하고 이탈하는 현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절묘한 반칙’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슬픈 자화상 중의 하나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체감하는 ‘빈곤’의 양상은 부모 세대의 경험과는 다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은 ‘빈곤’의 개념을 소득 수준과 이에 비례한 재화 소득의 가능성 부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빈곤은 자유롭게 진로와 인생의 방향을 찾고 결정하며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고, 이는 이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딱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 박진숙, 〈그 많던 비대졸자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오늘의 교육》41호(2017년 11·12월), 32쪽.


우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이 갖고 있는 교육의 ‘빈곤’에 대해 다시 정의해야 한다. 아마티아 센의 개념에 따라 정의해 보면, 중도 입국·외국인 가정 청소년이 처한 빈곤은 자유롭게 진로와 인생의 방향을 찾고 결정하며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고, 이는 이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딱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실패하지 않기 위해 강요됐던 딱 하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변해야 하는 것은 학생이었을까, 교육이었을까


지금까지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해 운영된 사업들을 정리해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교육되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진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은 배제된 채, 오로지 한국 사회의 관점에 따라 성장되어야 하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둘째, 배움의 환경 자체가 비민주적이었다.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들은 많았으나, 그들이 주체로서 배움을 선택하고 참여하여 진행하고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은 제공되지 못했다.

셋째, 이로 인해 교육 프로그램의 성과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아니라, 배움터와 후원 기관 나아가 한국 사회가 평가하였다. 외국 출생 청소년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얼마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였는지 결과를 보고자 하였고, 당사자들은 그 결과를 위해 매진해야만 하는 존재들이었다.


이처럼 그동안 진행해 온 외국 출생 청소년 대상 사업들의 공통점을 보면 다분히 현재 교육 현장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가치와 교수-학습 내용으로 점철된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민주시민교육’을 하고자 한다면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내더라도 그것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 ‘민주시민교육’으로 전하려는 이야기와 실제는 따로 놀게 되고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허울뿐인 말로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지식 전달과 수동적인 객체로서 정해진 틀 내에서 ‘너희들이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다 한들 그들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을까? 사업을 마치고 설문지의 의견 칸에 쓰이는 “몰라요”라는 답변의 이면에는 어차피 써 봐야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2017년 경기도 다문화 특구 지정 공청회장에서 입시 위주, 경쟁 중심의 현재 교육 현장에서는 국내 출생 아이들도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고 항변했던 어느 다문화 가정 학부모의 말처럼, 변해야 하는 것은 교육 환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배움의 권한을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 외국 출생 학생들에게 이양하는 것과 같은 변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 특히 언어 제약이 큰 외국 출생(중도 입국·외국인 가정) 청소년을 위한 교육 활동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가 되지 않아도 배움의 주체로 스스로 적성을 고민해서 진로를 찾고 준비하는 방법이나 살림살이를 혼자 힘으로 이끌어 나가는 독립의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교육 방법은 없을까?”



민주적인 환경에서의 배움을 시도하다


2017년에 이주 배경 청소년들과 특별한 활동을 진행했다. 1주일에 1번, 스스로 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교사와 강사들은 그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촉진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미래 수업’이라고 불렀다.


이 시간에는 여러 문화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저마다의 의견을 발산하고 이를 수렴하여 모두가 합의한 규칙에 따라 활동하고 그 결과를 공유했다. 교사는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간접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학생들이 선택한 활동들이 목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자원을 연계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이 수업이 갖는 의미는, 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힘과 자신감을 키운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잘 모르고, 부모가 주로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출신 커뮤니티에서 주로 생활하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은 대체로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주어진 진로를 수동적으로 따른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한 대로’라는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는 몇 배는 어렵다. 더불어 이 수업은 한국어 공부, 토의 훈련도 된다.


그동안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도해 보지 않았던 민주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었을 때 참여자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처음에는 하루 중 2시간을 어떻게 지낼지도 어려워하던 이들이 하루 여행을 기획하고 수학여행을 기획한 단계를 넘어서며 마침내 1년 동안 자치공동체를 운영해 가는 성장 속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은 각자가 자신의 삶과 진로에 대해 힘을 갖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상에서도 내부에서부터 규칙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났고, 학습의 태도가 달라졌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발표하거나 참여하더라도 당당하게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합리적이며 타당한 요구를 하였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그런 권리가 있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은 변화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권리와 의무는 서로 따라 다닌다. 사회 구성원은 맡은 바 의무를 수행하기에 권리를 누릴 수 있고, 그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의무가 필요하다. 성장 과정에서 청소년기에 습득해야 할 지식과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배우는 것은 의무다. 이주 배경 청소년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교육이 한국어교육과 사회문화이해교육, 진로·직업 교육이라면 이는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만이 부과되었을 뿐, 그들이 선택하여 결정한 배움의 권리는 주어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에 진행했던 미래 수업은 ① 교육 목표를 이주 배경 학생들의 자기표현과 소통 능력 향상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② 프로그램의 초점을 화려한 성과보다 학생들의 장기적인 성장과 변화에 두고 내실 있게 운영하려고 하였으며, ③ 학생들의 자기표현 및 의사 결정 경험을 유도할 수 있는 퍼실리테이션 전략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스스로 배움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어교육이나 교과 학습과 같은 사회가 요구하고 청소년기에 습득해야 할 지식과 경험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에도 열린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숙제는 많다. 더 많은 경험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배움의 성과를 산출할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며, 배움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신의 변화를 성찰하고 정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참여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역량을 성장시키고 발휘하기 위해 민주적인 배움의 환경을 유지하고자 하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 필요하다.



더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면


2017년에 미래 수업을 함께했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몇몇은 외국인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으나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지원 부족과 비싼 등록금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아이는 미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외국인 전형이란 쉬운 길을 버리고 실기 시험까지 도전했으나 입학이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올해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이런 근황을 같이 미래 수업을 꾸렸던 퍼실리테이터와 만나 나누면서 미래 수업을 함께했던 추억도 나누게 되었다. 이제 학교를 졸업했을 그들과 무엇을 선택해 보고 싶은지 함께 고민해 본다면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난 우리 사회가 이주 배경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더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함께 고민하며 움직여 주는 이들이 곁에 더 많아졌으면 한다. 공부해야 할 것은 줄여 주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은 더 많이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지냈으면 한다. 이런 나의 소망은 비단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교육은 대개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더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교육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오롯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아간다면, 이주 배경의 청소년들에게도 학교는 있고 싶은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 모두를 위한 변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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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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