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특집 -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기술은 교육을 바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좌담)

특집 -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기술은 교육을 바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좌담

 

참석자

채효정 본지 편집위원장

진냥 본지 편집위원, 초등 교사

이윤승 본지 편집위원, 중등 교사

강석남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 과정 수료

 

일시 2021년 5월 3일 월요일

장소 온라인 화상 회의

진행·정리 공현 기자

 

 

최근 기후 위기에 대한 기술주의적 대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기후 위기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면서 환경운동에 대응하는 지배 담론이, 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부정론으로부터 위기를 선도적으로 대처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는 녹색 성장론으로 옮겨 가고 있는데요.


교육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흐름들이 근래 몇 년 동안 형성되고 주류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의 위기를 학습 방법론이나 기술 혁신으로 해소하려는 기술주의적 접근은 교육 혁명을 교실 혁신으로 축소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기술주의적 해결책들이 시장주의적 해결책과 연동되어 있고, 기술화가 상품화로 연결되어 새로운 교육 시장화의 국면을 열고 있다는 점도 쉽게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지금 산업 체제 재편과 그에 따른 노동 전환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데요. 마찬가지로 교육과정과 교육 콘텐츠 생산,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배움의 주체와 관계들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해 봅니다. 


지금 교육 현장에 침투하는 기술들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경계하고, 어떤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들끼리라도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는 취지에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 채효정

 

 

공현 

먼저 오늘 이야기 나눌 주제가 뭔지 정리해 보고, 현황 이야기부터 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에듀테크’란 무엇인지, 교육에서 새롭게 도입되는 기술이 어떤 것들을 가리키는지부터 짚어 보자. 예컨대 수업 중 보조 자료로 동영상을 보여 주는 것도 에듀테크일까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그렇게 따지면 OTP나 인쇄기까지 계보를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진냥 

그렇게 계보를 짚는 건 논의하려는 주제를 좀 벗어나는 것 같다. 교사를 보조하는 장치보다는 아예 새로운 기술이 교육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거라고 생각한다.

 

채효정 

동의한다. 지금 논의해야 할 부분은 ‘교육과 테크놀로지’ 같은 기술에 대한 일반론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의 사회적 맥락 위에서 지금 교육 현장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에듀테크 자본과 기술 및 그것을 도입하는 교육 담론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강석남 

보고서 등을 보면, ‘e-러닝’, ‘스마트 러닝’, ‘에듀테크’를 구별한다. e-러닝은 인터넷과 컴퓨터를 접목한 온라인에 중점을 둔 개념, 스마트 러닝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육, 에듀테크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개념이라고 구분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AI 국가 전략’이란 걸 발표했다. 전 생애에 걸쳐 AI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하고 이를 민간이 주도하겠다고 했다. 2020년 교육부도 ‘AI 교육 종합 수립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에서도 전 국민 기본 소양 함양, 전문 인력 양성 등이 있지만, 특징적인 건 빅 데이터, AI 등 에듀테크를 활용한 교수-학습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원격 강의가 방역의 논리로 전면화되면서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이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기술을 교육 분야 혁신에 활용하거나 도입하려고 하는 시도가 계속 있어 왔다. 에듀테크 시장 구조는 소수의 사업자에 매출이 집중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차원 에듀테크 정책들이 민간 주도, 시장 자율에 맡겨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교육 부문에 AI 등의 기술이 들어오는 방식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AI 전문가를 길러 낸다거나 AI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교육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방법 자체에 AI를 도입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당연히 필요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후자는 논의의 여지는 있는 것 같다. 기술만큼 또는 기술보다 중요한 게 제도일 것이다. 기술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든 제도에 맞춰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 부문에 AI의 도입이 어떻게 제도화될 것인가 논의가 필요하다.

 

공현 

AI, 인공 지능 등을 이용해서 교육 방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계획은 분명 예전부터 많이 거론된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원격 수업 등이 실시되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이러한 변화가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인식이 싹튼 것 같다.

 

이윤승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하다 보니까 거기에 적합한 내용을 준비하게 된다. 교실에서 만나게 되면 토론형 수업을 하든 할 텐데, 온라인 수업을 하면 학생들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교사가 똑같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될 때가 많다. 수업을 하면서도 학생들과 이 시간을 공유하고 있단 느낌이 적게 든다. 아무리 실시간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내가 이걸 왜 보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AI가 하는 게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학생들에게 적합한 걸 제공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학생들 입장에선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지금도 학원에서는 국·영·수 과목 같은 경우 인터넷 강의를 골라서 들을 수 있고, 좋은 강의를 찾으려고 상담도 해 준다. 에듀테크가 본격화된다면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서 제공하고 그에 대해 안내해 주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결국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그 기술에 맞춰진 학교가 될 것이고, 맞추지 못한 학교들은 점점 밀려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채효정 

얼마 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AI를 통한 학습 부진아 조기 발견 및 맞춤형 학습 과정’을 개발하는 논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느 정도 수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사실 영화에선 기술이 아니라 ‘초능력’이 범죄의 사전 예방적 기능을 담당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기술의 ‘사회적 초능력’을 과신 혹은 맹신하는 경향이 심각하다. 정책 담당자들이야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겠지만, 기술을 도구로 바라보고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쓸 수 있다는 기술 도구론의 신화도 조심해야 한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여전히 현실에서는 기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호미나 목발, 안경 같은 신체적 연장으로서의 기술과 스스로 명령하고 자기 조절적인 경영의 주체로 진화하는 하이퍼 테크놀로지는 구분해야 한다.

 


기술이 낳을 소외

 

강석남 

주목할 만한 사례로, 작년에 영국에서 대입 시험인 ‘에이레벨A-Level’을 못 치르니까 기존의 성적과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인공 지능 알고리즘으로 시험 성적을 산출하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학생이 속한 학교 전체의 학업 성취도가 변수로 들어가니까 유명 사립 학교의 학생들은 점수가 잘 나오고 가난한 지역 공립 학교 학생들은 예상보다 성적이 낮게 나오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영국 정부는 이 결정을 철회하고, 알고리즘으로 산출된 점수가 교사 예측 점수보다 높을 때만 적용하도록 했다. AI가 기존 데이터의 편향성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사례로 읽을 수 있다.


AI 도입 등으로 교육을 혁신하자는 주장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평가를 빅 데이터로 분석해서 수준별 교육, 맞춤 교육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분석과 맞춤 교육에서 기본적 방침은 인간이 정하는 건데, 어떻게 정할 것인가? 같은 데이터라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한지, 교육운동은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 있다.


두 번째는 AI에 의해서 교육의 가이드라인을 짜 준다고 했을 때 그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서 맞춰 줄지, 아니면 사교육에서 하듯이 대학 입시를 위한 것으로 할지? 그런 논쟁들이 첨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채효정 

영국 같은 사례를 이미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대학 입시 제도를 직접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학생들의 대학 학과 선택에서 빅 데이터 기술의 개입과 결정력이 내가 예상했던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진학사’나 ‘유웨이’, ‘어디가’ 같은 대학 진학 정보 사이트에서 자기 성적을 넣으면 지원 가능 대학, 학과, 합격률이 바로 매칭되는데, 학생도 교사도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어느 선이다’ 하고 보여 주는 정보 처리 결과를 바로 수용하면서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대성학원, 종로학원에서 점수표를 가지고 전국의 대학 학과를 일등에서 꼴등까지 줄 세웠다고 한다면, 지금은 대학별로 복잡한 입시 사정 속에서 개개인들이 처리할 수 없는 데이터를 빅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해 주는 셈이다. 수능 날 시험이 끝나자마자 메가스터디나 이투스 같은 대형 입시 업체가 등급 컷을 발표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 정확하더라. 학생들이 자기 등급을 알고 싶어 입력한 성적 데이터로 계산해 낸 것이다.

 

이윤승 

인공 지능 알고리즘을 장악하게 될 주체가 교육부일 수도 있고 사기업일 수도 있다. 누가 주체가 되든 그들이 만든 알고리즘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말만 들으면 좋은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알고리즘이 잘못된 거라고 말하려고 해도 뭐가 문제인지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서 비판하기 어렵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채효정 

작년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인정보 공개 법’이라고 부르며 반대한 ‘데이터 3법’이 통과되는 과정만 봐도 그렇다. 데이터를 상업적 용도로 이용하고 거래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할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데이터 산업 활성화’라는 기업의 요구만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일거수일투족이 데이터를 생산하는 채굴지가 되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건 소수의 부자들이다. 이런 기술 혁신이 가져올 정치적 지배 관계의 변화와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강석남 

이윤승 님의 말처럼 이미 많이 지적된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예를 적절히 활용하여 뭐가 문제인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외’의 전형적 형태라고 생각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을 둘 때 이세돌의 수는 해설로 나온 바둑 프로 기사들이 설명하는데, 알파고의 수는 설명을 못 했다. 그게 처음에는 잘못 둔 것일 거라고 짐작하며 넘어갔는데 알파고의 승리가 점점 쌓이다 보니까,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존의 수천년 쌓인 바둑 외의 바둑이 있던 게 아닐까 이야기하게 됐다. 요즘은 AI 바둑을 공부하는 프로 기사들도 많다고 하더라. 인간이 AI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결과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예다. 주식이나 가상 화폐 거래를 AI에 위탁하는 서비스도 있더라. 그게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나의 판단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에 자산을 위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자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러나저러나 근대 사회에서 특정 연령대의 국민 전체를 하루의 특정한 시간을 강제로 투여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학교와 공교육인 건데, 교사도 학생도 이해하지 못한 AI의 영향을 받은 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교육이 그래도 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 볼 필요도 있다. 정치적·사회적 논의들이 너무 많이 누락되어 있다.

 

이윤승 

지금의 체제는 비판하거나 욕할 대상이 있는데, AI가 이게 좋은 거라고 가리키면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할까? 《대량 살상 수학 무기》라는 책이 있다. 사람들은 수학에 의해 죽어 가지만 수학적 알고리즘을 극소수 수학자만 이해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모른다고 한다. 인공 지능을 만들어 내는 수학자들의 마인드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 ‘이게 제일 빠르다, 제일 효율적인 길이다, 고민할 필요 없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교육에서 쓸데없는 것들이 다 제거될 텐데, 그 쓸데없음과 있음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공현 

그런데 그게 기술의 문제일까? 현재에도 결정에 참여하거나 정보를 투명하게 하는 게 어렵다. AI가 도입되면 더욱 접근하기 어렵고 가려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은 그 기술을 활용해서 결정을 내리고 관리를 하는 것은 소수라는 것이고 비민주적으로 권력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기술에 의한 교육 혁신이 수용되는 이유

 

공현 

기술을 통해 교육을 혁신한다고 했을 때 그런 이야기는 어째서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교육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잘 바뀌지 않는데, 기술을 통해 바꾼다고 하면 실제로 바뀔 것 같아서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이윤승 

새로운 기술 도입이나 온라인 수업에 대해 학생들은 상당히 매력을 느낄 것 같다. 교사와 학생 간 위계,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들,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방식 등 학교가 학생들에게 학생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 안 오고 온라인으로, 원격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부족하다. 학생들 입장에선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울 방법이 있다면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현재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이후에 AI가 도입되고 교사를 대체한다면, 학교의 의미나 교사의 노동에 대해서 학생들이 동의해 주고 그 노동을 지키고자 연대해 줄까 의문이 든다.

 

강석남 

그리고 한국적 맥락에서 AI 교육 이야기를 할 때는 후발 추격자의 입장에서,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우리도 그걸 따라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수단으로 교육이 호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교육이란 게 노동의 전 단계로서의 지위가 너무 공고하니까, 교육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인력을 노동 시장에 제공할 것인지가 교육 정책, 특히 고등 교육 정책에서는 중요한 과제다. AI 또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실체 없는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표출되는 한 방식인 것 같다.

 

채효정 

그런데 실제로 경험상 강의실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 보면 사람이 아닌 ‘로봇 선생님’에 대해 오히려 더 두려움을 갖기도 한다. 교사가 인공 지능 로봇에 의해 대체될 확률이 높다고 하면 “와~” 하고 좋아하기보다는 “어어……” 하면서 당황하거나 거부감을 표하는 반응이 의외로 많다. 좀 의외의 반응이었는데, 학생들이 원하는 교사는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면, 억압적 교사는 물론 싫지만 기계적 교사도 그만큼 싫어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 전달자나 매개자 이상의 무언가 상호작용을 원하는 것이다. 저학년일수록 더 그렇던데, 생각해 보면 욕을 해도 반응이 없는 로봇 선생님이라면 무서운 선생님과는 차원이 다르게 무서울 것 같다.


또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 그러니까 ‘판서’라든가, ‘강독’ 같은 오래된 교수-학습법을 낡은 것으로 계속 도태시키면서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는 에듀테크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도 살펴봐야 한다. 새로운 기술 도입에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교사들, 대학에서도 젊은 교수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빠르게 적응한다. 새로 나온 프로그램을 교육 현장에서 선도적으로 사용할 때 얼리어댑터 같은 기분이 든다. 과거에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하면 뭔가 더 혁신적으로 보였고, 그걸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봤다. 요즘은 그런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의 폐해도 많이 지적된다. 이건 아주 단순한 기술이었지만, 복잡한 기술은 세대 간, 지역 간, 계급 간 기술 격차를 더 크게 벌릴 것이다.

 

공현 

기술에 의한 혁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교육의 본질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부대끼는 데 있는데 그런 게 사라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특히 온라인 원격 수업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그게 꼭 학교에서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냥 

초등 교사로서는 좀 고민이 있는데, 초등교육은 보육의 역할을 하고, 개인을 사회에 편입시키는 사회화 과정의 비중이 크다. 물론 그런 것도 교육이긴 하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교육이랑은 좀 다르니까 교육의 본질이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집단적인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그런 일들을 지금으로선 학교 외에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윤승 

학교라든가 어린이집, 유치원 등이 그런 걸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 줄 수 있는 기관인 것 같긴 하다. 학교 외의 곳에서 경험하려면 돈으로 사야 한다. 앞서 학생들이 학교 안 나오는 것 좋아한다고 했지만,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다른 경험을 하려면 돈이 들어간다. 그런 경험을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학교는 필요한 공간일 것이다.


강석남 

대학은 좀 다른 맥락이 있다. 근대적 종합 대학은 학문공동체란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학문공동체라고 본다고 했을 때, 대면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본질까진 아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인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리나 학생 자치 등. 내가 나온 대학은 요즘 온라인으로 학생 총회를 조직하고 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학생 총회란 건 대학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를 확인하고 감정적 고양에서부터 물리적 충돌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파생들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게 온라인으론 어렵다. 대학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런 요소들이 없는 학문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면이 대학의 본질이라고 할 순 없어도 비대면으로 다 대체될 수는 없다고 봐서, 최대한 양보한 것이 조건부 비대면 정도인 것 같다.

 

채효정 

대학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게 배움의 장소로만 그치지 않는 ‘정치적 장소’가 되려면 ‘장소성’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정치철학에서는 장소를 공간화하는 것에 맞서 장소성의 의미를 보다 급진적으로 탈구축하려는 시도와 논쟁이 계속 있어 왔는데 그런 논의들이 현실 담론장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것 같다. 브뤼노 라투르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법》에서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공간과 시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형한 사건이며, 기후 위기는 온도 변화가 아니라 거주할 장소를 잃어버린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대학은 장소 해체를 통한 공동체 해체가 훨씬 더 심각하게 진행되어 온 곳이긴 하다. ‘당신이 있는 곳이 곧 강의실’이라거나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대학’을 내세운 ‘캠퍼스 없는 대학’이 ‘미래 대학’이라고 계속 선전해 왔고, 실제로 공통의 점심시간을 없애고, 자치 공간을 없애고, 같은 건물에서 이뤄져 왔던 학과와 단과대 수업을 건물 곳곳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구성원들의 공통 경험의 토대로서의 공간과 시간을 해체해 왔다. 지금 벌어지는 양상은 분명 대학 담장을 허물고 대학 바깥 곳곳에 대학을 만들자는 1990년대의 적극적인 탈대학, 탈아카데미 운동과는 추동력이 다른 것이다. 강의실 수업은 청강이 가능하지만 온라인 강의는 청강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지금 기술은 분리와 파편화, 교육 서비스의 개인 소비 형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변화와 탈환의 가능성

 

공현 

기술 도입이 교육을 제도나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도록 하는 기회는 될 수 없을까? 그러려면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진냥 

AI 도입 등이 의무 교육 체제를 해체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한다. 나는 지금과 같은 의무 교육 체제는 좀 해체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의무 교육이 해체되고 그저 각자도생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더 심각하겠지만…….

 

강석남 

두 가지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이 계급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라는 논의는 이미 많이 됐다. AI 기술 도입 등이 이러한 기존 교육 구조를 더 공고하게 하면서, 그 문제점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게 효율적이다, 이게 비용이 적게 든다, 기술 진보가 더 나은 삶을 담보할 것이다’ 하는 기술 중심의 담론은 근대성 자체에 내포된 방향이므로 그런 힘이 강하게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많이 희망찬 이야기이긴 하지만 기술에 의해서 교육 부문이 변하는 계기가 있을 때 거기에 개입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낼 수 있게 교육운동이 어떻게 전환을 꾀할 수 있을지 이야기되고 준비해야 한다.

 

진냥 

AI를 둘러싼 논쟁에서 교육이 학업과 같은 개념으로 등치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 교육은 이 사회에서 아주 큰 공공 영역이고 교육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도 많았다. NEIS 때도 정보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둘 것인가 이야기했고, 지금은 지역마다 데이터센터가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 도입 문제를 논의할 때 ‘교육’이란 말이 학생들의 낱낱의 학업을 가리키는 데만 쓰인다. 그러한 기술이 작동하는 정치 사회적 구조나 기반에 대한 고려나 논쟁은 별로 없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이윤승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하면서 제일 재미없고 힘든 건 오로지 교과 관련 수업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학교에 와서 학생과 교사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은 다 제거되어 있다. 동아리라든지 자치 활동이라든지. 우리 학교는 특성화고인데, 교육부나 사기업에서 열중하는 것은 대체로 수능 시험 보는 데 적합한 콘텐츠와 기술이다. 학생들이 다른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거라든지 사회관계에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라든지 그런 부분은 소홀하다. 교육부가 갖고 있는 교육이라는 가치가 대학 가는 것 말고 또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AI가 도입되어도 교육이 아니라 학업, 교과 진도 나가고 시험 보기 위한 딱 거기까지만 할 것이다.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그 자체를 묻고 그 의미를 우리가 탈환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하든 사기업이 하든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채효정 

강석남 님의 의견대로 지금과 같이 자본이 압도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기술과 정보의 독점을 통해 지배하는 기존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지 않는 한, 당면한 문제만 해결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도입되는 기술이 교육적으로 뭔가 좋은 해결책을 내놓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학교 외부의 사회적 조건들을 생각하지 않고, 정치나 자연을 교육의 외부에 놓고서는 어떤 기술적 혁신도 지금 교육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기술 속에 희망도 있다고 본다. 자본이 발전시키는 기술이 자본을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리도 역시 지배하는 기술을 알면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도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기술에 대해 수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전복과 탈주의 관점, 가로채기, 바꿔치기, 도망치기, 방향 전환 등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대 학교가 양민을 육성하는 억압의 장소였지만 그렇게 머무르지만은 않았듯이, 근대 대학이 새로운 관료 양성의 필요성 때문에 탄생했지만 저항의 장소를 상징하게 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시공간 체험도 기존의 질서에 어떤 구멍을 낼지 모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비판하는 눈과 가능성을 붙잡는 눈이 둘 다 필요한 시기다.

 

 



〈[시험과답] 사는 곳으로 성적을 결정했다〉, 《한겨레21》, 제1329호, 2020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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