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특집] 교사에게 기술을 묻다(2/2) (강혜경)

특집-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교사에게 기술을 묻다(2/2)

학교 현장에서 보는 기술 도입의 어제, 오늘, 내일

 

강혜경

hyeg.kang@gmail.com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맺으며 1. 학교 현장의 기술 도입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

 


기술은 신이 아니다 - 신비에 싸인 기술 해체하기

“학교에 도입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뭐 이런 질문이 다 있나. 인터뷰에 참여한 교사들에게 무슨 기술인지 말해 주지도 않고 다짜고짜 기술에 대해 말해 달라니. 한 교사는 어떤 기술을 말하는 것인지 혹시 수업 테크닉도 해당되는지를 되물었고, 다른 교사는 플랫폼에 대해 또 다른 교사는 하드웨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마지막 교사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하여 원격 수업과 관련한 여러 툴들을 세 가지(플랫폼, 화상회의 도구, 수업 조작 도구)로 나누어 설명해 주었다.


비겁한 변명을 해 보자면, 사실 연구자 스스로가 학교 현장의 “기술”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할 말이 있다. 이제는 인이 박일 만큼인 ‘4차 산업 혁명’, 기술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등에서 말하는 그 기술들(AI와 머신 러닝, 무인 운송 수단, 3D 프린팅, 로봇 공학, 블록체인, 플랫폼 경제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며, 학교 현장에의 적용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구현된 바도, 심지어 논의된 바도 없는 탓이다. 지금은 다분히 계획과 연구, 초기 개발의 단계에 불과하다. 언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푸흐스Christian Fuchs는 4차 산업 혁명이 불가피하게 곧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혁명을 선포하는 일”이라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화되어 있는 덩어리들은 사실 이질적인 여러 기술들이 잔뜩 뭉쳐진 것이다. 이 기술들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적용과 관련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눠 보고 따져 본 역사가 없었다. 코로나19를 통해 원격 교육과 관련한 몇 가지 기술을 도입해 보았으니, 다른 기술도 쉬이 도입할 수 있으리라는 교육부의 기대는 순진하면서도 위험한 발상이다. 각론이긴 하나, 예컨대 AI에 대한 교육과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교육이 서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AI 교육”이라는 담론이 유통되고 있는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술 물신주의fetishism of technology”란 말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하비David Harvey가 같은 제목의 논문에서 제시한 용어다. 물신주의는 어떠한 대상에 독립적이고 마법적 힘을 부여하여 그 대상이 특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형성한다고 믿는 습관을 의미하는데, 저자는 기술이 그러한 힘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일컬어 기술 물신주의라 이름 붙였다. 실제로 보유한 능력 이상을 기술이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중간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역할과 기술 자체를 편향되게 하는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선택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현재의 사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신비에 싸여 있는 기술을 해체하고 따져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러다이트? 시기상조! - 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한편에서는 기술에 대한 적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 퇴직한 교사들은 “지금 퇴직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나누는가 하면, 현직 교사들 중에서도 그간 기술에 친화적이지 않거나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교사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토로한다. 이러한 의견들과 함께 기술 도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교사들의 시선을 마치 과거의 러다이트와 같은 것으로 놓을 수 있을까?


지금 와 돌아보았을 때, 러다이트가 문제적이었던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기술을 되돌리려고 했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현재 도입되는 기술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따져 본 후에,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기술을 생각할 수 있는지, 도입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교육에서 기술에 대한 논의는 시급하고 도입은 시기상조다. 현재 많은 기술은 구상 및 개발 단계에 있으며, 개발이 완료되어 시판된 제품에 대한 경험자의 평은 ‘아직 멀었다’였다.


“개중 제일 나은 툴을 써 봤는데, 솔직히 말해 한심했다. 다양한 접속 환경에 대한 고려라는 기본적인 사항도 지켜지지 않았고, 기능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면 게임으로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는데, 딱 2개 만들어 준다. 매번 새 게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웃음) 그중에 하나는 PC만 지원되고, 휴대폰으로는 안 된다.”(교사 D)

 

또한 관련 보고서들은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정도의 내용이다. 그 기술이 도입되어야 하는 한국 교육의 제도와 현황 및 관련 고려점에 대한 논의는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현재의 기술 혹은 다른 기술과의 차별성은 이제 논의를 시작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기술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으려면 학교 현장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도입 및 논의 시기의 문제 역시 간단치는 않다. 교사들에게는 내일의 수업도, 다음 주도 미래이고, 다음 학기는 예상조차 되지 않는 엄청 먼 미래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현재의 노동과 각 교사들이 가진 기술 인식 수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논의를 함께 진행하자는 것은 기실 불가능한 메아리에 그칠 공산이 있다. 논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학은 수학이 아니다 - 여러 주체들이 속도를 맞춰 논의하기

지금은 온통 AI 물결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로봇 세상이었다. 로봇은 기술 진보의 대표 사례나 다름없었다. 당초 인간이 걷는 모양을 도저히 구현해 낼 수가 없어서 로봇에는 바퀴가 달리거나, 팔만 있거나 했다. 오랜 노력 끝에 로봇이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발에 차이면 넘어졌다 스스로 일어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공학 기술에 대한 경외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몸체에 흔들리는 회색 화면으로 시작했건만, 이제는 부러질 것 같은 두께에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해상도를 가지게 됐다. 문제는 이것이 공학이라는 것이고, 교육에도 로봇이나 디스플레이의 경우 같은 돈을 들여서 발전을 시켜 줄 계획이 있는 것인지가 사실은 매우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공학은 계획을 제한된 예산 안에서 현실화한다. 이른바 ‘적정 기술’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발견되거나 발아하는 게 아니다. 상상과 필요에 의해 발명되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 속의 기술들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이루어진 이유는 바로 그러한 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상상이 가진 힘과 그에 대한 책임성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 도입은 외부에서 이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의 구조에 파열을 내겠다는 방식으로 현장 내의 제도·역사·경험 등을 무시한 방식으로의 기술 발전은 가능하지 않고, 설사 만들어지더라도 안착하기 어렵다. 서울대 공학 대학 교수들의 공저인 《축적의 시간》(2015)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AI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기술 이식과 아이디어 벤치마킹은 미래가 없으며, 시간을 들여 한국만의 경험과 숙련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련된 여러 주체들이 속도를 맞춰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할 수 있다. 너무 환상을 가지거나 적대를 가지거나 하는 것을 지양하면서 말이다.

 

 

맺으며 2. 논의가 일방적으로 흐를 위험

 


포스트 코로나라는 시기 - 민주적 절차의 무효화 상황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저서 《쇼크 독트린》에서 쇼크 독트린의 개념을 쇼크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이용해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선동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으로 정의했다. 현재 상황은 이 개념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데,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쇼크 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방역의 논리하에 의사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인터뷰에서 코로나 도입 시기의 문제점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절차의 무효화’가 발생한 연유도 여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의견들이 모아져야 하는 시점에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쪽은 그저 먼저 준비되거나 계획을 가지고 있는 쪽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나 AI 교육의 도입이 학생들 각각의 수준을 고려하고 학습 능력을 향상시켜 격차를 줄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훨씬 더 정치하게 접근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원격 수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급격히 도입하는 설익은 시도가 불가능하지 않은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 영국 에이레벨A-level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알고리즘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한 결과 출신 학교에 학업 성취도 가중치를 부여함으로써 기술 편향이 나타났다. 사회학에서 교육이 계급, 사회적 불평등,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논의들은 전혀 새롭지 않으며 쉬이 풀 수 없는 문제다. 기술은 이러한 재생산을 훨씬 더 세련되고 은폐된 방식으로 합리화하면서 진행할 여지가 있음을 영국 사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의 다양성과 독립성 - 협력을 위한 고려 사항의 증대

방역의 논리가 중심이 되어 민주적 논의 자체가 소거된 작금의 상황이 끝나고, 늘 바쁜 교사들의 업무도 한결 안정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에 더해 함께 기술 발전을 논의할 만큼 교사들에 대한 설득이며, 자발적인 교사들의 움직임 또한 이루어졌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1인이 1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교사라는 장점이 교사 수만큼의 교육과정을 낳게 되고, 이 중 어떤 교사의 경험을 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이 생겨난다. 이때 협력과 교류에 긍정적인 교사들의 경험이나 개인적인 특성이 과대 대표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특정한 편향성이 있을지 역시 중대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 협력이 교사 개인의 커리어 개발의 측면에서 읽힐 것인지, 입시 제도 및 격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도로 이해될 것인지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더불어 서로의 수업에 관여하지 않는 교사 사회의 독립성에 더해, 기존에는 원활히 이루어졌던 온라인 공간에서의 수업 자료 공유 등 이른바 카피 레프트, 오픈 소스 운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누가 자료를 올리면, 그걸 쓰고 개선해서 또 올리는 사이트가 있다. 꽤 오래됐다. 요새는 새로운 현상이 생겼는데, 수업 후기를 올리고 자료를 거기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블로그 등 개인 공간으로 링크를 걸더라. 자기 브랜드화, 사유화가 일어나고 있다.”(교사 D)

 

교사의 독립성은 분명히 장점이다. 자기 브랜딩이나 자료의 사유화가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을 내릴 계제는 아니며, 현재에는 젊은 세대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지거나 당연한 현상인 동시에 저작권의 문제를 생각할 때 온당하다. 다만, 협력에 일정한 제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며, 이해관계의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고려할 지점을 만들어 낸다.


 

AI 기술이 가진 독특성 - 인간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논의가 다분히 교사들의 경험을 무시한 방향으로 흘러갈 공산이 없지 않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고도로 축적된 숙련 중 일부를 아예 도외시할 수 있는 것도 4차 산업 혁명의 특징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에 의한 인간의 대체’는 상상만이 아니라, 몇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이기도 하다. 자동차 생산에서 완성차 조립은 아무리 그 공정이 자동화되고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분절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숙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전기 차의 등장으로 가장 높은 숙련이 필요한 내연 기관이 사라짐으로써 그 숙련을 도외시할 수 있게 된다. 구글은 아랍어와 중국어 등 번역 서비스를 개발할 당시에 아랍어와 중국어 전문가 없이 통계와 알고리즘 전문가들로만 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앞서 공학은 충분한 예산이 없다면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거꾸로 보자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저렴한 예산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언제든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술이 언제나 숙련을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한편으로는 더 높은 숙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AI 기술의 어떤 부분이 교사의 경험을 무시할 수 있는지 또한 그 상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프레이와 오스본은 2010년 기준, 미국의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자동화될 확률을 분석하여 미래 고용 시장의 변화를 추정했다. 그리고는 구체적으로 순위 표를 제시하여, 단순 업무는 자동화가 진행되어 대체될 것이고, 창의력 및 사회적 지능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그럴 확률이 낮음을 주장했다. 교사는 대표적으로 대체되지 않을 직무 중 하나다. 또한 언젠가부터 매년 발표되는 ‘사라지지 않을 직업’ 순위에서 교사는 언제나 상위권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인 직무인 동시에 대면 상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은 비대면 상황도 가능할 수 있음을 수행해 냄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

 


맺으며 3. 동의와 협의, 합의로 가는 길

 


지금까지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둘러보고, 내일을 넘어다보았다. 그럼에도 과연 미래의 교육이 어떤 모양일지 구체적인 상이 잡히지 않는다. 교사 A의 통찰처럼 앞으로의 문제는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고교 학점제-비정규직-원격 수업 기술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교사 집단의 움직임의 사례처럼 제도와 기술, 실천은 한데 엮여 복잡하게 작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큰 그림을 펼쳐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논의의 장조차 없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찬양 혹은 두려움 모두를 내려놓고 많은 이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논쟁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공간이 요청된다. 이를 통해서 동의와 협의, 합의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는 막판에 기술의 성능과 효과를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test bed가 아니다. 학교 현장의 이야기로부터 내일을 그려 볼 수 있어야 한다.




❷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2016),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 혁명》, 새로운 현재.

❸ Fuchs, Christian(2018), 〈Industry4.0 : the Digital German Ideology〉, Triple C, Vol. 16, No. 1, pp. 280-289.

❹ Harvey, David(2003), 〈The Fetish of Technology : Causes and Consequences〉, Macalester International, Vol. 13, pp. 3-30.

❺ 영국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대입 시험에 해당하는 에이레벨을 치르지 않았다. 그 후 알고리즘으로 에이레벨 점수를 추정하여 매겼다가 전체적으로 점수가 하락하고, 사립 학교에 비해 공립 학교, 특히 낙후된 지역의 학생들이 점수가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❻ 구본권(2015), 《로봇 시대 인간의 길》, 어크로스.

❼ Frey, Carl and Michael Osborne(2017), 〈The Future of Employment :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sation?〉, Technological Forecasting and Social Change, Vol. 114, pp. 25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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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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