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호[특집]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 한국 교육 제도는 ‘인구’와 어떻게 만나 왔는가 (강석남)

특집 /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 한국 교육 제도는 ‘인구’와 어떻게 만나 왔는가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 과정 수료



한국 사회의 교육 부문에 대한 다수의 담론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적·이론적 대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명제가 있다면, 학령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아닐까? 매년 출생률이 보고될 때마다, 그에 따라 앞으로의 인구 추계가 갱신될 때마다 인구의 절벽, 붕괴, 소멸 같은 극단적인 수사가 포함된 언론 보도들이 쏟아진다. 


출생률 하락이 가장 먼저 가시화되는 장소는 당연하게도 새로 출생한 후속 세대가 모이는 학교이기 때문에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감은 ‘학령 인구’의 감소에 대한 위기감으로 가장 빨리 구체화된다. 그 결과 극적으로 감소하는 학령 인구에 대응하기 위한 교대·사범대 교원 양성 정원의 조정이나 퇴출을 전제한 대학 구조 조정 등 특히 고등교육 부문의 대응 필요성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학령 인구의 감소를 곧 교육 부문의 위기 그 자체처럼 여기는 진단은 타당한가? 학령 인구가 교육 제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적 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학령 인구는 말 그대로 각급 학교에 해당하는 취학 연령으로서 학교에 입학할 수 있거나 그러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6세에서 21세까지의 인구를 지칭하는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육 제도의 양적 규모를 규정하는 학생 ‘정원’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학령 인구가 곧 학생 정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학령 인구 변동의 충격은 항상 학생 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교육 부문에 닿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학령 인구 감소가 마치 교육의 위기처럼 보이는 이유는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초·중등교육 그리고 특히 고등교육의 학생 정원이 한계에 가까울 만큼의 학령 인구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학생 정원이 학령 인구의 변동 폭에 완충 지대로 작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인구 감소의 충격이 교육 부문에 중요한 징후일 수는 있겠으나 위기로 직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인구와 교육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교육 제도는 학생 정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학령 인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변동해 왔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구 감소가 교육 부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분석에 앞서, 그리고 교육 부문이 ‘인구’를 어떻게 재현하고 ‘인구교육을 구성했는지’와는 다른 층위에서, 교육 제도가 학생 정원을 조절하며 자신의 물적 재생산 조건인 학령 인구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 왜 학령 인구의 감소가 곧바로 교육의 위기로 여겨질 만큼 학생 정원이 과도하게 학령 인구를 수용해 왔는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고등교육의 양적 규모를 통제해 왔던 국가의 대학 정원 정책을 중심으로 교육 제도와 학령 인구의 관계를 일면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학령 인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상대적 과잉 교육


자본주의에 기반한 근대 국가에서 학령 인구는 기본적으로 교육 제도가 인구에 대해 갖는 특권의 한 형태다. 앞서 살펴본 학령 인구의 정의는 특정 연령대 인구의 합산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고도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그 연령대에 반드시 학교에 들어갈 것을 의무이자 권리로서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교육 제도는 이른바 학령 인구를 독점하여 모든 사회 계급의 본격적인 사회화를 시작하는 연령대의 개인들을, 1주일에 5~6일간 하루의 상당 시간 동안 국가가 규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이데올로기’ 이론을 정립한 알튀세르는 이러한 맥락에서 “성숙한 자본주의적 사회 구성체들 속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놓인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교육 이데올로기적 장치”라고 규정한다. 학령 인구의 독점으로부터 시작해 교육 제도는 개인들을 체계로서의 자본주의가 재생산될 수 있도록 복무하는 이데올로기적 주체로 호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령 인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한국적 맥락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민 교육 헌장〉, 국민 체조, 교련, ‘단일 민족’ 등의 아주 노골적인 사례들은 한국의 교육 제도가 권위주의 정권의 이른바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음을 잘보여 준다. 


개인들의 정체성을 민주적 시민이 아니라 반공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국가관으로 무장한 산업 역군으로서의 ‘국민’으로 형성시켜 왔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다소 누그러졌지만 학령 인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국민’의 정의가 내용적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1997년 금융 위기를 전후하여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으로 말미암아, 과거보다 더욱 시장 친화적인 호명들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지도록 교묘하게 기능하고 있다.


학령 인구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의무 교육과 이에 준하는 초·중등교육의 학생 정원 확장을 국가가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스스로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해 왔음을 설명하는 데 용이하다. 


하지만 국가가 제도로 강제하지는 않는, 오히려 의무보다 권리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고등교육의 팽창을 설명하는 것에는 약간의 난점이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고등교육은 이미 보편적인 자격 요건으로서 상당수의 개인들에게 마치 필수적인 절차처럼 여겨지지만, 외면상으론 적어도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선택인 것처럼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접근으로 ‘상대적 과잉 교육’의 개념을 짚어 볼 수 있다.


상대적 과잉 교육은 한 사회 개인들의 학력이나 각급 학교 학생 정원이 노동 시장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이나 양적 수요를 상회하여 교육 부문과 노동 부문의 상대적인 불일치가 발생하고 재생산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①개인들은 자신의 학력보다 낮은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 하위의 직업을 선택하도록 ‘하향 취업’을 강제받게 되고 ②하향 취업에 대한 강제성은 개인들로 하여금 더 높은 학력을 필요로 하게 하는 ‘학력주의’를 추동시키며 ③학력주의로 말미암아 제한된 일자리에 더 많은 개인들이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경쟁하면서 학력의 가치가 떨어지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④그 결과 노동 시장에 공급자인 노동자(졸업자)가 과잉 공급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요자인 자본의 권력이 강화되어, 상대적 과잉 교육은 재생산된다. 


자본의 입장에서 학력을 갖춘 노동자들이 노동 시장 안팎에 일종의 산업 예비군으로서, ‘노동 시장이 유지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항상 자본의 수요보다는 상대적으로 과잉되게’ 존재하는 것이다. 상대적 과잉 교육이 재생산되는 일련의 연쇄 작용의 결과 자본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학력의 노동자를 얼마든지 골라 쓰는 이점을 누린다. 이러한 상대적 과잉 교육의 동학(메커니즘)에서 교육 제도는 학령 인구로 규정된 특정 시점의 인구를 ‘당대 노동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과잉된 정도’의 인구수로 가공하여 노동 시장에 공급한다.


상대적 과잉 교육의 관점은 한국 사회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개인들의 미시적인 수요와 더불어 거시적인 층위에서 교육 제도와 노동 시장이 자본주의적 재생산에 기여하는 구조적인 운동을 동시에 포괄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흔히 출처를 알 수없는 ‘교육열’로만 치부되어 왔던 미시적 요인과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동이라는 거시적 요인의 맞물림을 살펴보기에 용이하다. 


이 글에서는 교육 제도와 학령 인구가 맺는 관계에 주목하기에, 상대적 과잉 교육의 양적 측면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대학 정원 정책에 관한 일련의 선행 연구들은 정책의 성격에 따라 나름의 시기 구분을 시도하고 있는데, 대체로 미군정·이승만 정부 시기를 ‘자유방임’, 박정희 정권 시기를 ‘억압·통제와 실험적 육성’, 전두환 정권 시기를 ‘양적 확대’, 노태우 정부 이후를 ‘정원 자율화’의 구분으로 정의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분기점은 자유방임에서 억압과 통제로 전환하는 박정희 정권 시기와, 다시 억압·통제에서 양적 확대로 반전되는 전두환 정권 시기다.



박정희 정권 - 중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


박정희 정권 이전까지 대학 정원 정책을 포함한 고등교육 정책은, 당시 정부가 ‘초등교육과 문해교육에 치중함으로써 고등교육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간섭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유방임적 성격을 가졌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1950년대 자유방임적 고등교육 정책이 무분별한 대학의 팽창과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명목하에 〈학교 정비 기준령〉(1961), 〈사립학교법〉(1963), 〈대학 학생 정원령〉(1965)을 내놓으며 ‘대학 정원 규모 결정에 대한 국가의 독점’을 제도화했다. 


이러한 대학 정원 확대의 억압과 통제의 이면에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고려의 비중도 적지 않았다. 첫째로 규제받지 않던 사학의 부패와 방임된 고등교육의 폐단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에 부응하려는 것이었고, 둘째로 4.19혁명의 주축이었던 대학생들의 양적 규모를 통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처럼 고등교육 정원의 확대는 억제했던 반면 1968년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 1974년 ‘고교 연합고사제’ 등을 시행하면서 중등교육 정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초등교육의 정상화, 과열된 과외 지양, 극단적 학교 차 해소, 가정 교육비 감소, 과열된 고교 입시 경쟁 해소 등이었다. 즉 중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사회적 폐단이 발생하니,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등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 모순인데, 중등교육 정원이 확대되면 단계적으로 고등교육 진학을 원하는 수요도 증가할 것이지만 고등교육 공급은 정책적으로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중등교육 졸업 이후 고등교육의 과소 공급에 따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동 시장으로 직행해야 하는 인구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 정원 정책의 모순은 중등·고등교육 정원의 기준이 당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동과 맞물린 결과다.


박정희 정권 시기, 1970년대 한국 자본주의는 ‘동아시아 다층적 하청 체계’, 즉 고부가 가치 산업을 독과점한 일본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동아시아의 산업 구조에서 노동 집약적 산업 중심의 하청 자본주의로 기능했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의 관심은 수출 산업 부문의 주력인 제조업에서의 비교 우위였던 훈련받은 저임금 노동력의 대량 공급으로 귀결된다. 즉 하청 자본주의 국가로서 한국의 교육 제도는 학생 정원의 사회적 수요-공급의 균형이나 고등교육을 통한 고학력 노동자의 양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 시장에 저임금 노동력을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정원 정책은 고등교육 정원은 억제하고 중등교육 정원은 확대시킴으로써 ‘중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을 추동시키며, 노동 시장에 중등교육 졸업자를 퇴적시켜 저임금 노동력의 대량 공급에 일조했다. 이에 따라 당대 “생산직 노동자의 학력은 ‘국졸’에서 ‘중졸’로 상향되지만, 학력 간 노동 소득의 격차는 국졸과 중졸 노동력이 생산직 노동 시장에서 단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으로 단일화”되어, 노동자들의 학력은 상향되었음에도 실질 임금은 오히려 저하된다.❽ 고등교육 정원의 억제를 통한 중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의 결과 자연히 대졸 노동자들은 상대적 희소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특권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특권은 고등교육 정원 억제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향한 사회적 수요가 과도하게 팽창되는 조건이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 고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


박정희 정권이 추동한 중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은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를 거쳐 등장한 전두환 정권이 고등교육 정원 확대로 기조를 반전함에 따라 변동한다. 전두환 정권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명의로 1980년 7월 30일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 소위 ‘7.30 교육 개혁안’을 발표했다. 국보위는 ‘과열 과외의 원인을 대학 진학 수요와 대학교육 기회의 불균형’으로 파악하고, 대학 입학 기회를 대폭 증가시켜 고등교육의 폐단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교육 개혁의 핵심은 대학 입학 정원은 확대하되 졸업에도 정원을 두는, 즉 모든 입학생이 아니라 일부를 제외한 제한된 정원만을 졸업시키겠다는 ‘졸업 정원제’였으나 사실상 구제안이 존재했기 때문에 유명무실했다. 7.30 교육 개혁은 박정희 정권의 고등교육 정책과 마찬가지로 ‘과외 망국론’으로 대표되던 사회적 비난 여론에 부응해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7.30 교육 개혁으로부터 추동된 전두환 정권의 고등교육 정원 확대에는 정치적 고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제적 측면이 존재한다. 우선 동아시아의 다층적 하청 체계를 구성하던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네 마리의 작은 용’이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위기에 돌입하면서 신흥 공업 경제로 재편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중심부 국가들의 경공업 수출 규제 등 보호주의 강화 등이 도래하면서, 그리고 일본 자본의 동남아시아 투자가 증가하면서 하위 하청 파트너 간 경쟁이 가속화되었으며, 그에 따라 기존 한국의 수출 지향적인 노동 집약 하청 자본주의의 구조 조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면적 구조 조정의 필요성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의 3저 호황 국면이 형성되면서 다소간 유예되었지만, 한국 자본주의는 이전과는 다른 자본 집약적 형태로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의 새로운 변신을 필요로 했다. 1997년 금융 위기 전후로 가시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기원을 박정희 정권 말에서 전두환 정권 초기로부터 찾아볼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이 변화하면서 교육 제도와 노동 시장이 만나는 상대적 과잉 교육의 성격도 변화했다. 7.30 교육 개혁 이후 대졸자의 전통적인 취업 직종으로 여겨졌던 행정·전문·기술직과 사무직의 비율은 1975년 각각 3.5%, 6.3%에서 1985년 7.2%, 11.4%로 2배 가까이 증가한다.⓭  즉 노동 시장에서 대졸 노동자의 수요가 급증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각 연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1970년대 전반과 1980년대 초반까지 70%를 유지하던 대졸 취업률이 1985년 52.1%로 급감한다. 정확히 7.30 교육 개혁으로 늘어난 대학 입학자들이 졸업 후 노동 시장에 진입한 결과, 급증한 수요를 상회하는 대졸 노동자들이 노동 시장에 공급된 것이다. 그 결과 ‘대졸 노동자들은 과잉 인구층을 형성해 노동자 간 경쟁, 불안정 고용과 실업, 하향 취업을 경험’하는 ‘고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이 추동된다. 


1980년 이후 대졸 노동자의 임금은 절대적으로 상승했지만, 고졸 노동자 임금과의 상대적인 격차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이는 대졸 노동자가 이전 박정희 정권 시기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하고, 자본은 고등교육 수요에 비해 노동 비용의 증가를 상대적으로 감쇄시키며 관리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대학 정원 정책은 각각 중등교육의 확대와 고등교육의 억제, 고등교육의 확대를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하지만 두 정책 모두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고려가 이면에 존재했다는 점, 당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동에 따라 국가가 교육 제도를 활용해 노동 시장에서 수요자인 자본의 우위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상대적 과잉 교육이 교육 정책과 노동 시장 상황의 우연한 시기적 일치가 아니라는 정황적인 증거는 두 정권 모두 앞선 시기 학생 정원 과소 공급의 불균형을 명분으로, 명목상 공급 확대를 통한 사회적 수요와의 균형을 추구했지만, 실질적으로 그 결과는 상대적 과잉 공급의 불균형으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과소 공급의 불균형을 과잉 공급의 불균형으로 대체하는 역설이 대학 정원 정책의 주요한 분기점에서,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동에 맞물려 반복됐다는 사실은 교육 제도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복무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교육받을 권리로서 각급 학교 진학 기회의 확대에는 여러 맥락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권리로서 진학 기회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왜 항상 자본이 과잉 교육을 필요로 할 때에만 국가가 용인했는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대적 과잉 교육은 교육 제도가 학생 정원의 규모를 상정할 때 학령 인구가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자본의 수요에 그 준거점을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생 정원에 있어 학령 인구는 학생 정원의 최대치이자, 노동 시장으로 상대적인 과잉 공급의 정도가 안정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에 위협이 되지 않을 규모를 상정하는 근거로만 기능해 왔다. 학령 인구의 어느 정도 비율을 학생 정원으로 상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적정한지, 민주적인지, 때로는 정의로운지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상대적 과잉 교육의 결과 자본은 교육 제도와 학생 정원을 통해 학령 인구로 규정된 인구를 그들이 사용하기에 수월한 정도만큼 조절해 공급받고 있다. 동시에 고등교육에 진입하는 개인들, 학생이자 예비 노동자로 호명되는 개인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노동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보증할 수 없는, 학력 경쟁에 뛰어들기를 강요당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중이다.



학령 인구 논의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의 상대적 과잉 교육에 대한 논의로부터 다음의 세 가지 시사점이 도출된다. 첫째로 상대적 과잉 교육은 학령 인구 감소의 위기를 재검토해 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학령 인구와 학생 정원이 개념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 정원이 한계에 가까울 만큼의 학령 인구를 포괄하고 있는 현시점에 학령 인구의 감소가 교육 부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제도는 학생 정원을 학령 인구와의 관계가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자본의 필요성에 기준을 두고 바꿔 왔음을 고려해 보면, 그 해법에 대한 고민도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에 연동해 학생 정원을 절대적으로 감축하면 위기가 극복되는가? 학생 정원은 학령 인구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수요에 상대적 과잉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학령 인구의 감소 폭만큼 학생 정원이 감소해도 여전히 노동 시장에 비해서는 상대적 과잉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학생 정원이 학령 인구에 과소이지만 노동 시장에 과잉일 수 있고, 학령 인구에 과잉이지만 노동 시장에 과소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대적 과잉 교육은 학령 인구 감소에서 비롯되는 교육 부문의 위기가 단순한 인구학적 문제가 아닌 노동 시장,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동학과 연계된 정치 경제학적 문제임을 지시한다.


둘째로 특히 대학 정원을 매개로 한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상대적 과잉 교육화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대학 정원 변동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가다. 두 정권은 대학 정원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고등교육 비용에 대한 국가의 지출 확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고등교육 비용에서 공적 지출 비중은 낮고, 대다수를 차지한 사립 학교 법인들의 책임도 작으며, 대신 학생·학부모가 등록금의 형태로 과반을 부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의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상대적 과잉 교육의 비용을 전적으로 개인들이 부담해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고등교육에 진학하는 개인들은 상대적 과잉 교육을 재생산하는 고등교육의 운영 비용을 1차로 착취 당하고, 상대적 과잉 교육의 결과 값싼 노동력으로 노동 시장에 누적되면서 그 비용을 2차로 착취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이중의 착취를 전제한 상대적 과잉 교육의 고발은 반값 등록금이나 등록금 반환 운동, 고등교육 무상화 운동 등이 활용할 수 있는, 고등교육 비용 부담 사회화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세 번째 시사점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상대적 과잉 교육과 오늘날 학령 인구 감소에 직면한 고등교육 체제의 기원이 된 김영삼 정부 시기 1995년 ‘5.31 교육 개혁’을 비교해 볼 필요성이다. 5.31 교육 개혁은 한편으로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이자 ‘대학 정원 자율화’, ‘대학 설립 준칙주의’ 등을 제도화하며 고등 교육의 양적 팽창을 추동시킨 교육 개혁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대학 정원 정책이 고등교육 취학률을 1980년 11.4%에서 1995년 36%까지 상승시켰는데, 5.31 교육 개혁의 결과 36%였던 취학률은 2008년 70.5%까지 폭증한다.⓯ 즉 5.31 교육 개혁으로부터 관찰되는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은 앞선 두 군사 정권 시기와 달리 과잉의 불균형을 다시 과잉의 불균형으로 재생산하는, 고등교육의 상대적 과잉 교육을 다시 과잉 교육화하는 이례성을 보인다. 


또한 잘 회자되지는 않지만 5.31 교육 개혁이 당시 2003년으로 예견된 ‘고졸자 수 감소와 대입 정원의 역전 현상’을 염두에 둔 교육 개혁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⓰ 결과적으로 5.31 교육 개혁은 현재의 고등교육 체제를 형성한 제도적 기원이며, 동시에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응책이면서 학생 정원은 팽창시킨 모순된 결과로 이해된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5.31 교육 개혁 이후 재생산되어 온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상대적 과잉 교육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후속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❶ 루이 알튀세르, 김동수 옮김(1991),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도서출판 솔. 강조는 원문.

❷ 상대적 과잉 교육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강순원 (1990), 《한국교육의 정치경제학》, 한길사; 김혜영(1989), 〈고등교육과 노동시장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학위 논문] 참조.

❸ 최강식·이보경(2017), 〈대학 정원 정책을 중심으로 본 한국의 대학 구조 개혁 정책의 변화와 쟁점〉, 《교양교육연구》, 11(1), 313~363쪽.

❹ 서지영(2001), 〈대학정원 변화동향과 학과분화에 관한 연구〉,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석사 학위 논문.

❺ 강순원(1990), 앞의 책.

❻ 백승욱(2006), 《자본주의 역사강의》, 그린비.

❼ 강순원(1990), 앞의 책.

❽ 강순원(1990), 앞의 책.

❾ 김재웅(1996), 〈1980년대 교육개혁의 정치적 의미와 교육적 의미 : 졸업정원제와 과외금지 정책을 중심으로〉, 《교육정치학연구》, 3(1), 42~69쪽.

❿ 김재웅(1996), 앞의 글; 김정인(2018),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⓫ 백승욱(2006), 앞의 책.

⓬ 지주형(2011),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⓭ 김혜영(1989), 앞의 논문.

⓮ 박종수(1999), 〈대졸자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의 원인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석사 학위 논문.

⓯ e-나라지표. www.index.go.kr

⓰ 이주호(1994), 〈인력수급전망과 고등교육 개혁과제〉, 《한국개발연구》, 16(4),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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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이 게시판에 공개하지 않는 글들은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행일로부터 약 2개월 후 홈페이지 '오늘의 교육' 게시판을 통해 PDF 형태로 공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