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특집]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다른 이름 (장인하)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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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다른 이름

- 고교 학점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장인하

terrelune124@gmail.com

전교조 조합원, 교육노동자현장실천 회원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문재인 정부 시기 학교교육에 있었던 변화를 되돌아보면, 아마 다음과 같이 정리될 것 같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가 확대되고 온라인 교육이 본격화되었으며,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었다고 말이다. ‘공정’의 바람을 타고 이루어진 정시 확대는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온라인 교육은 코로나19로 인해 얻어걸린 것이다. 그렇기에 남은 것은 고교 학점제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교육부가 건재할뿐더러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은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 후이니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고교 학점제에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정부 입장에서는 교육 분야의 제1 국정 과제였던 고교 학점제 도입은 물러설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고교 학점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교 학점제에 초점을 둔 논의가 일종의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고교 학점제는 분명히 어떠한 흐름 속에 위치해 있는데, ‘고교 학점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혹은 ‘고교 학점제 도입 시 나타날 문제점’과 같이 고교 학점제라는 하나의 정책 자체에만 한정되어 논의가 진행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코 고교 학점제의 도입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더 큰 그림 속에서 고교 학점제를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고교 학점제는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이라는 큰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하나의 물길이자 이 흐름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방편이다. 


이 글에서는 고교 학점제 및 고교 학점제 도입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2022 교육과정 개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교 학점제 이면에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따라서 고교 학점제는 필연적으로 교육 공공성의 약화로 귀결될 것이다.



정부의 종합적 교육 정책 방향


초·중등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정부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여러 영역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내놓고 있는 구상과 정책들을 꿰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정부가 이미 실시하고 있거나 추진 중인 교육 부문 정책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과정 측면에서는 고교 학점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온라인 교육을 강조하며 온라인 교육을 공교육 안으로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다. 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형 뉴딜의 교육 부문 정책인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에 15조 원을 투입할 예정인데, 여기에는 정보화 기기를 보급하고 무선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하드웨어 측면 이외에 공교육을 민간 자본에 개방하기 위한 ‘K-에듀 통합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정보화 전략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한국형 뉴딜의 본질은 경제 활성화 정책이다. 이에 정부는 미래 전략 산업으로 빅데이터·AI 활용 교육과 온라인 교육 관련 기술을 ‘에듀테크’라 칭하고 여기에 적극 투자하여 에듀테크를 선도하는 민간 자본을 육성하겠다고 하고 있다. 


한편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는 교원 정원 감축과 교사 자격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교원 양성 및 자격 체제 개편 정책을 내놓았으며, 이와 맞물린 학교 정책으로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통합된 초·중등 통합 학교를 확산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부는 분권화와 자율화를 내세 우며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교과서 자유 발행제 등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 딱히 한 게 없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이 정부는 각종 교육 정책들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해 가고 있다. 그리고 얼핏 보면 분산된 것으로 보이는 이 정책은 매우 뚜렷한 흐름 속에서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이 바로 그것이다. 고교 학점제는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자 이 흐름을 정당화하는 명분이다.



하나의 흐름 - 교육 시장화


고교 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에게 선택권과 자율성을 부여하여 학생이 직접 자신이 들을 교과 수업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이며,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선택하고 (과목별 미이수 제도를 강화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한다는 고교 학점제의 기본 원리는 그 자체로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적용한 것이다. 이로 인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나는 학교마다 개설되는 과목이 달라진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학생마다 듣는 수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학생 간격 차의 심화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일반 고등학교에 거의 동일한 과목이 개설되고 있으며, 소수의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만 아주 ‘고급스러운’ 선택 과목이 개설되고 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선택 과목을 전체 학교에서도 개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고교 학점제의 취지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 어떤 자사고에서는 ‘AP미적분학’, ‘AP미시경제’, ‘해석역학’ 따위의 과목들이 개설되고 있는데, 일반고에서 이런 과목을 들을 수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결국 학교별로 정말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는 곳은 기존의 자사고·특목고나 잘사는 지역의 소위 입시 명문 학교들일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수강한 과목 이력만 보아도 그 학생의 출신 고등학교를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025년에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이 마치 교육 개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고교 학점제로 인해 자사고 제도를 따로 둘 필요가 없게 될 뿐이다.


한층 더 문제는 이와 같은 고교 학점제의 내적 논리의 시장적 성격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교 학점제를 앞세워 공교육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온라인 교육과 에듀테크는 교육의 공공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앞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정부는 ‘한국판 뉴딜’ 계획에서 공교육을 하나의 ‘시장’으로 설정하고 공교육 시장에 진출할 에듀테크 산업·자본을 육성하는 것을 국가의 주요 미래 전략 중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교육부가 2020년에 발표한 〈미래 교육을 위한 10대 정책 과제〉 및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과 큰 그림을 담은 〈미래형 교육과정 추진 계획〉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무엇보다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온라인 교육, 빅데이터·AI 활용 교육, 에듀테크이다. 


고교 학점제는 교육의 시장화를 촉진하는 조건이 되는데, 지금까지는 예외적이거나 매우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던 온라인 교육이 교육과정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은 온라인 교육을 전면화하는 결과를 낳았고, 정부와 자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온라인 교육은 그것이 교육적인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 기반만 갖추어지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싼값(?)에 수업을 제공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정부는 고교 학점제로 인해 소인수 과목의 개설이 늘어나는 것을 감당하는 유력한 방안으로 학교 간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 운영을 제시하고 있다. 한 학교에서 특정 과목을 개설하고 온라인으로도 이를 제공하면, 다른 학교 학생들은 해당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학점을 인정받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은 학교 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농어촌 지역의 학교들에서 많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온라인 수업 활성화를 위해 흔히 ‘블렌디드 학습’이라고 불리는 온·오프라인 연계 학습을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단지 교육의 방식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라인 교육은 교육 시장화의 통로이자 촉진제이다.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수강하기 위한 기술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한국형 뉴딜의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공급하고, 온라인 교과서를 도입하여 ‘스마트 교육’을 확산시키겠다고 한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내년도 1학년 신입생 전원에게 디지털 기기를 제공하겠다며 학교별로 어떤 기기를 살지 정하도록 하고 있다. 선택지는 삼성 갤럭시 탭, 애플 아이패드, 구글 크롬북이다. 결국 공교육은 하드웨어에서부터 더욱 시장과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무엇보다 온라인 교육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대표적인 교육 시장화의 양상은, 민간 기업이 상업화된 ‘온라인 교육 컨텐츠’를 제공 하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작년에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이 전면화된 이후 사교육 업체들이 자신들의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홍보하는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 앞으로는 사교육 업체들이 제공하는 교육 콘텐츠를 공교육에서 활용하는 일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1명의 교사가 여러 교과의 수업을 진행하는 초등학교에서는 사교육 업체의 교육 콘텐츠를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사들이 이미 상당한 실정이다.


고교 학점제를 통해 정착될 온라인 수업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이를 중·고등학교로 확산시킬 것이다. 또한 정부와 자본이 교육의 시장화와 관련하여 공을 들이고 있는 영역은 에듀테크라 불리는 빅데이터·인공 지능 활용 교육이다. 그들은 교수·학습·평가에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빅데이터, AI 등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준 진단, 학습 특성 분석을 기반으로 개별 학습 제공, 학습 경로 설계 등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고, “초등 국·영·수 인공 지능 AI 활용 교육과정 기반 교수·학습 지원 시스템”을 활용하여 기초 학력을 강화한다는 등의 구상을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 앞으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하는 에듀테크의 제공 주체는? 당연히 민간 자본이다. 이미 해당 분야에서의 이윤 창출을 위해 자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K-에듀 통합 플랫폼) 흩어져 있는 콘텐츠·학습관리시스템(LMS)·학습도구 등을 하나로 연결, 유·초·중·고에서 사용 가능한 플랫폼 구축

※ (’20.9월~’21.6월) ISP 수립 ⇀ (~’22) 구축 (’23~) 서비스 개시

▲ 교육부, 〈코로나 이후 미래 교육 전환을 위한 10대 정책 과제(안)〉, 2020년 10월



정부는 미래 전략 산업 중의 하나인 에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교육을 자본에 전면적으로 개방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이를 교육과정에 도입하기 위해 2023년까지 ‘K-에듀 통합 플랫폼’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K-에듀 통합 플랫폼’ 구상에서 확인되는 교육 시장화의 대표적인 양상은, 학교와 교사는 더 이상 교육의 공급자가 아니라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는 ‘사용자’라는 점이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과 함께 ‘사용자’로 분류되어 있으며, 공급자는 ‘개인, 기업’이라고 표현된 민간 영역의 자본이다. 교육 활동의 중심에는 학습자가 제공하는 빅데이터와 이에 기반한 학습 관리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민간 자본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민간 자본에게 온전히 개방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K-에듀 통합 플랫폼은 “개방형 유통 시스템”으로, 공공과 민간, 개인과 기업을 막론하고 누구나 플랫폼에 진입할 수 있으며, 에듀파인(국가 회계 관리 시스템)과도 연계되어 간편하게 이용료를 지급할 수 있다. 또한 통합 플랫폼은 NEIS와도 연결되어 학습 이력·특성·패턴·시간 등 학생 개인별 학습 활동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민간 기업에도 제공된다. 기업은 이를 활용하여 학교와 학생에게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처럼 에듀테크를 앞세운 교육의 시장화는 공교육와 사교육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그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이 여기에 얼마나 동의할까?


그러나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고교 학점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온라인 교육 등 에듀테크의 활용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듀테크 없이는 고교 학점제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교육의 시장화는 고교 학점제를 필요로 한다.



또 다른 흐름 - 교원 구조 조정


학령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기존의 학교 체제는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학령 인구의 감소에 따라 교원 정원을 감축한다는 기조하에 이에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학교의 수를 줄이는 것은 반발이 큰 작업이기에 쉽게 학교를 통폐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이전보다 적은 수의 교사로 학교를 운영해야만 한다.


적은 수의 교사로 학교를 운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교사가 이전보다 더 많은 과목을 담당하게 하거나,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수업을 하는 순회 교사를 늘릴 수 있다. 아니면 정규직 교원 정원을 줄이는 대신 강사나 기간제 교원 같은 비정규직 교원의 채용을 늘리는 방법이 있으며, 이전과 달리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단독 수업을 할 수 있다. 혹은 초등 교사와 중등 교사 자격을 통합하여 교원들을 더 유연하게 배치할 수도 있다. 이도 안 되면 결국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수업을 활용하면 된다.


방금 언급한 것들이 바로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들인데, 이러한 정책들은 정원은 감축하되 노동은 유연화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교원 구조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구조 조정이라 하면 정리 해고를 떠올리는데, 노동자들을 일순간에 집단적으로 해고하는 정리 해고는 막대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에 민간 자본들도 잘 활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신 민간 자본은 은퇴하는 베이비부머 및 그 직후 세대들의 빈자리를 보충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워 넣는 방식을 통해 자연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고 노동을 유연화하는 구조 조정 방식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이와 정확히 동일한 양상이 교원들을 대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교과·다과목 수업, 기간제 교사·강사 등 비정규직 확대, 순회 교사 확대 등이 개별적으로 추진되었다면, 아마 많은 반발에 부딪혔을 것이다. 각각의 정책을 도입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노동 유연화 정책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준다.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마법 같은 언설은 이 정책들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고교 학점제를 앞세워 정원 감축과 노동 유연화라는 교원 구조 조정 정책을 패키지로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달리 보면,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 감축과 노동 유연화를 위해 고교 학점제를 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고교 학점제 연구·선도 학교의 사례를 살펴보면 각 학교별 개설 과목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사 1인당 담당하는 과목의 수가 증가하였고, 비정규직 교원이 늘어났다. 또한 정부는 순회 교사 제도를 바꾸어 2021년부터 교육청 소속의 순회 교사를 두고 그 수를 늘려나갈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정부는 정원 내에서 결원 대체 목적으로 활용하던 기간제 교사 제도를 “교육 수요 변화에 따른 탄력적 교원 수급”이 가능하도록 바꾸겠다는 계획 또한 발표하였는데, 이는 앞으로는 기간제 교사를 마음껏 채용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정부는 앞으로 교사가 다교과·다과목 수업을 하는 것은 고교 학점제와 미래 교육 체제하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며, 이는 교사의 핵심적인 ‘미래 역량’ 중의 하나임을 강조한다. 고교 학점제의 취지 자체가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을 다양화하는 데에 있으므로, 교원 정원을 늘리지 않는 한 다교과·다과목 수업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으니, 기존 노동을 유연화하고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는 방식을 교사 노동의 표준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고교 학점제와 관련해 현장의 교사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도 바로 다교과·다과목 수업이기도 하다. 교사별로 3~4개씩의 수업을 하게 될뿐더러, 자신의 본전공과 관련 없는 과목을 담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국가교육회의에서 교원 양성·자격 체제 개편 관련한 논의를 진행해 오던 정부는 올 7월 교원 양성 체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의 핵심은 고교 학점제에 알맞게 다교과 지도 역량을 갖춘 교원들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양성 단계에서부터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교사가 복수 전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교사 4년 차에 주로 이루어지는 1급 정교사 승급 연수를 부전공(융합 전공)을 이수하는 연수로 개편하기로 하였다. 몇 년 안에 교사의 다교과·다과목 수업은 ‘표준’이 될 것이며, 다교과·다과목 수업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버거워하는 교사는 역량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유연화된 노동과 이로 인한 노동 강도의 강화를 노동자 개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치환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교육 노동의 영역에서도 정확히 동일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교육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정책들에 대응해야


지금까지 교육의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이라는 두 가지 흐름을 중심으로 고교 학점제를 살펴보았다. 이 글을 통해 정부는 생각보다 큰 그림을 가지고 학교교육과 교육 노동을 개편하고 있으며, 고교 학점제는 이러한 큰 그림을 원활하게 완성해 가는 정책적인 수단으로 고교 학점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정부는 수많은 연구 결과물들을 쏟아 내며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교육과 교육 노동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연구 보고서를 보다 보면 설마 이렇게까지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는 한편, 연구 보고서에서 제안된 정책들이 실제 정책으로 발표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정말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단위에서도 정부의 이러한 큰 그림을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는 작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정부가 쏟아 내는 각종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게 ‘교육 공공성의 약화’를 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❶ 초등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 가장 대표적 사교육 업체인 ‘아이스크림에듀’는 2018년과 2019년 매출이 각각 1000억 원을 넘었다. 아이스크림에서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데, 교사들에게 수업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고 AI를 접목한 학습 관리 시스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사와 학생 모두 같은 사교육 업체의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❷ 교육부, 〈미래형 교육과정 추진 계획〉, 2021년 7월.

❸ “공교육에 민간 에듀테크 길 터 주는 교육부… “학교가 업계 수익처 될라” 논란”, 〈한겨레〉, 2020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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