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특집] 대학 공공성의 걸림돌은 지역일까, 대학일까 (하승우)

특집 /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학 공공성의 걸림돌은 지역일까, 대학일까

- 위기의 시대, 지방대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하승우

anar00@hanmail.net

이후연구소 소장,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2020년부터 교육부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협력해서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막고 인구 감소에 대응한다는 ‘지역 혁신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2020년에 경남, 충북, 광주·전남이 선정되었고, 2021년에는 대전·세종·충남이 신규로 참여하고 경남의 사업이 울산으로 확대되어 총 4개 플랫폼, 8개 광역자치단체가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고, 2021년에만 2000억 원을 넘게 투자하는 제법 큰 규모이다. 지역 혁신 플랫폼은 대학과 기업, 공공 기관이 함께 모빌리티, 공동체 혁신, 스마트 도시 등을 주제로 연계 과정을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용이 아무리 새로워도 그 내용을 추진하는 것은 기존 조직이다. 플랫폼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기존의 예산 계획과 집행 방식, 실행과 책임 구조, 교육과 학습 방식, 이런 부분들에선 거의 변화가 없다. 그냥 새로운 사업이 하나 더 생겼을 뿐, 지방 행정이 개입하니 공문서는 더 늘어나고 절차는 복잡해져서 교육은 더욱더 어려워졌다는 평가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은 여전하다. 새로운 전공이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지역 혁신은 성공한 걸까? 그렇게 취업한 학생들은 정말 지역을 떠나지 않을까?



정부 지원금이 문제의 핵심일까?


언론들의 기사만 보면 지방대 회생의 핵심은 돈이다. 중앙 언론은 지방대 문제를 잘 다루지도 않지만 국회 감사 자료나 대학교육연구소의 자료를 빈 기사들은 죄다 연구 개발 지원비, 정부 지원금, 교육비와 같은 돈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지방대가 받은 정부 지원금이 수도권 대학의 절반 수준이고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연구 개발 사업비의 43.8%를 독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2021년 경북대 합격 포기율이 86%에 이르는 등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지원금이 늘어나면 이런 문제들이 정말 해결될까? 지방대로 투입된 지원금이 정말 지방 학생들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강화시키거나 지역 회생의 출발점이 될까? 역량과 가능성은 충분한데 단지 재정이 부족해서 지방 대학들의 역할이 사라지는 걸까?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돈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지방대의 재단 전입금이나 적립금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매우 작다는 점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2020 사립 대학 재정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사립 대학 전체 교비 18조 5660억 원 중 재단 전입금은 1조 4335억 원으로 불과 7.7% 정도이다. 이에 반해 등록금 및 수강료 수입이 57.3%, 국고 보조금이 16.0%로 비중이 크다. 심지어 2020년의 전입금은 2019년에 비해 약 1천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학 재단의 문제를 지적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 구조는 거의 변화가 없다.


더구나 사학 재단의 결산을 보면 2019년 누적 적립금 총 규모는 7조 9184억 원이고, 2018년에 비해 33.4%(2593억 원) 증가했다. 누적 적립금 중 건축을 위한 누적 적립금의 규모가 3조 6342억 원으로 가장 크다. 물론 이 누적 적립금도 수도권 사립 대학의 비중이 전체의 67.7%를 차지하지만 지방 대학의 적립금이 적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적립금의 용도는 사학 재단이 좌우한다.


이렇게 사학 재단이 딴 주머니를 차고 학교 운영을 등록금에 의존하니, 학생 수 감소는 곧바로 지방 대학의 재정 감소로 이어진다. 국고 보조금이 늘어나면 재정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생 수 감소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18세 학령 인구는 매년 줄어들어서 2040년이면 28만 4,000명 정도가 되어 대학 정원은 21만 명 정도가 남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위기는 규모만 키워 왔던 대학들이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신호이다.


대학이 내실을 다져야 할 연구 및 교육 역량은 어떻게 측정될 수 있을까? 지금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사업과 대학 평가, 이 둘이 기준이다. 그렇지만 이런 양적 평가가 내실을 얼마나 측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더욱더 본질적인 문제는 지역과 연고 없는 교수, 지역을 떠나려는 학생, 돈과 실적만 챙기려는 재단, 사람이 지역을 떠나야 성공이라 여기는 지역 분위기이다. 교수, 학생, 재단, 지역, 네 주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지방 위기와 능력주의, 대학 공공성


흔히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전히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비수도권에 왜 일자리가 없을까? 제조업이나 주요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않아서라고 얘기하지만 업체가 없지 않다. 그리고 빈 땅이 공터가 아니듯이 수도권 면적의 7배가 넘는 비수도권의 상당 부분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지금은 그 비율이 계속 줄어들어 인구의 1%도 안 되는 농어민들이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으니 농촌 일자리는 많다. 그런데 농어업은 왜 일자리가 아닐까? 그리고 농어업을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교육하는 대학은 얼마나 될까?


문제는 일자리의 수 자체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과 서열화이다. 농업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보상을 받으며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다면 누가 굳이 농업을 마다할까? 한국의 농업은 산업화를 위해 저곡가를 강요받았고 그 결과 힘들고 보상이 적은 노동을 대표하는 ‘최후의 노동’(“일 없으면 고향 돌아가서 농사나 짓지”)이 되었다. 그리고 근래에는 죽으면 죽었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이 되어 버렸다.


농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종수는 2015년 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비교하며 월 평균 임금은 서울이 약 466.52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가장 낮은 충북은 약 207.59만 원으로 서울과 258.93만 원이나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수도권의 월 평균 임금은 327.38만 원이고 비수도권의 월 평균 임금은 244.98만 원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82.4만 원이나 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벌 수 있는 돈부터 차이가 난다.


그리고 〈매일노동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당장의 노동 조건이 다를 뿐아니라 노동 정책도 다르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우 노동 기본 조례와 생활 임금, 노동 이사제, 성평등 기본 조례와 같은 지방 정부 차원의 정책 기반을 만들고, 감정 노동자나 비정규직, 사회 복지사, 플랫폼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도 도입하며 관련 예산도 편성하고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역은 노동 정책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 없이 중앙 정부의 노동 정책을 단순 집행만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노동 조건의 격차를 바로잡을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 무슨 혁신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들의 본사가 수도권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중요한 결정들은 본사에서 내려지고 비수도권의 지사는 생산이나 집행만을 담당한다. 비수도권에서 생산된 이윤은 본사로 보내지고, 지사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노동 조건에 불안정한 일자리.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비수도권의 사람들에게 성공의 조건은 수도권으로의 진입이다.


이미 벌어진 노동 소득에 훨씬 더 벌어진 자산 소득을 더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물론 청년 세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수도권에 부동산을 소유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부의 대물림은 청년 내부의 계급 격차를 강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수도권에 아무리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도 그 자원은 다시 수도권 진입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될 뿐이다.


이제 수도권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 비수도권의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라는 서열은 이미 굳어졌다. 이런 서열은 오랫동안 교육과 학벌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그런 과정은 한국의 능력주의를 공고하게 만든다. 학벌과 시험, 이에 기반한 공정성은 지금 시대의 서열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래서 이 서열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지방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문제는 지방대 역시 이런 서열을 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학이야말로 능력주의를 체화시키는 공간이고, 대학도 이미 서열화되어 있다. 지방대의 수도권 대학 출신 교수들도 자신의 출신 학교(학부나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에 따라 ‘헤쳐 모여’ 하고, 수도권으로의 재진입을 준비하거나 가족들을 수도권에 둔 채 기러기 생활을 한다. 수도권 대학 출신 교수들을 보며 학생들은 서열을 체감하고 수도권으로의 전입을 시도하거나 수능을 다시 준비할 수밖에 없다. 사학 재단은 학생 수가 유지되어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자기들 마음대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좋고, 사실 그 지역에 꼭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지역 사회는 지방대를 상권으로 볼 뿐 그 학교의 정체성이나 특성, 학생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없고 생존을 위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역 특성보다 산업 단지나 특화 산업 같은 중앙/지방 정부 정책에 따라 교육과정이 개편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학의 담장은 사라졌지만 대학과 지역 사회는 별개의 공간이고, 교수나 학생들은 지역을 떠날 공간 또는 떠나야만 성공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초·중등교육은 마을교육공동체를 지향한다지만 고등교육은 딴 세상이다. 마을교육공동체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지역적인 전망을 어디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지역에 일자리를 만든들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지역에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외에 누가 남을까?



지역의 재구성과 지방대의 지속 가능성


위기는 기회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편성된 한국 사회이지만 그것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 균열은 내부의 노력보다는 외부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인구의 집적은 주거와 쓰레기, 교통과 같은 도시 문제를 낳는다. 특히 한국의 경우 수도권에 필요한 기본 자원, 예를 들어 먹거리나 에너지를 대부분 외부에서 충당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외부 충격이 올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기후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심각한 사회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은 집중화된 권력과 부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겠지만 내부의 불평등은 약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다. 이런 불평등과 파국을 막으려면 기후 위기 대응/적응의 거점으로서 비수도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물론 기회가 온다고 그 기회가 온전히 실현되는 건 아니고,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 비수도권은 이런 위기 대응의 거점보다는 ‘메가시티’라는 새로운 시장의 출현으로 들썩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장이 지역을 지속시킬 효과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수도권의 분열 없이 수도권과 비슷한 중심부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의 바람직한 대안도 아니다. 수도권과 비슷한 천만 규모의 메가시티를 3, 4개 만든다는 구상도 매우 기계적이고, 그런 거점을 지속시키려면 메가시티 역시 수도권과 비슷하게 내부 식민지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학이 지역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은 아무런 기술이 필요 없는 산업이 아니다. 농업이야말로 혁신이 필요한 산업이다. 약한 힘, 적은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사 기술과 방법이 개량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거나 온실가스를 포집하는 농업을 확산시키려면 여러 가지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에 지방대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농업만이 아니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산업화 전략도 가능하다. 본사가 외국이나 수도권에 있는 대공장을 지역에 유치하는 것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고 일자리의 양과 질 모두가 나빠질 수 있다. 중소기업 중심의 기술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중소기업에는 기술 개발과 개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후 위기를 고려하면 최대한 이동 거리를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생산이 필요하다. 이런 전환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지방대가 그런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거점이 기존의 서열과 능력주의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고정된 위치에 따른 보상이 보장되지 않으면 서열은 힘을 잃는다. 


지방대의 역량 강화에는 많은 교수진이나 학벌 중심의 채용보다는, 지역을 잘 파악하고 꼼꼼히 조사할 수 있는 교수진과 함께 공부할 학생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학이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고 반영해서 학생들의 활동이나 노동과 연계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등교육과의 연계 과정을 만들고 평생교육의 실질적인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대학의 인프라를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학 재단의 민주화가 선행 조건이고, 민주화 방침을 따르지 않는 사학 재단은 퇴출시키거나 재단을 정리할 수 있도록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문을 닫은 대학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앙/지방 정부가 공동으로 인수해 지역 활성화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의 위기와 전 지구적인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방대의 지속 가능성과 교육의 공공성이 보장될 수 있다. 그러려면 교수, 학생, 재단, 지역 사회 모두의 인식과 운영 과정이 변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다.



❶ 이종수(2017), 〈지역 간 임금 격차에 대한 고찰 - 수도권·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노동정책연구》 17(2), 154쪽.

❷ “지방 정부 노동 정책도 수도권 - 비수도권 양극화”, 〈매일노동뉴스〉, 2021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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