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특집] 대학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 (강태경)

특집/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대학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

- 지식의 생산과 분배라는 대학의 역할을 중심으로


강태경

smldiff@gmail.com

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장



대학 구조 조정이 어떤 형태로든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고등교육의 조건에서, 정치적 사고의 틀인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고민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런 고민은 대학원생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생긴 학생운동에 대한 나의 인식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대학 내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쓰이는 방식은 계속 변화해 왔다. 하지만 그 말이 사용되어 온 원리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대학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라는 원칙은 ‘자유’, ‘평등’, ‘정의’, ‘진리’와 같은 대학에서 종종 교학 이념으로 표방하는 보편적인 가치들과 연결되어서 사람들이 연대를 구축하고 대학의 변화를 요구할 때 그것이 보편타당하고 정당하다는 명분을 제공하는 틀이 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학의 변화를 위해 힘을 모은다면 ‘대학의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주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답해야 한다. 이에 답하는 과정은 대학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구와 어떻게 새로운 연대를 모색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질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지칭해 왔는가


대학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지칭했는가. 반독재 투쟁을 하고 민주화를 쟁취했던 시기에는 학생이 중심이 되는 대학, 학생들의 일상 공간인 학과와 기층 동아리에서부터 학생들을 조직하여 단과대 학생회와 총학생회를 건설하고, 그 학생회를 중심으로 사회에 나가 민주화 투쟁을 하는 것을 중심으로 대학 민주주의를 사고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건설의 흐름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대학은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에서 학생들의 대안적 사회로서 민주적 해방구를 건설하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다양한 형태의 실천과 학습, 연구와 교육이 시도되었다. 대학 밖에서는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 투쟁으로 국가적 차원의 민주적 권력을 구축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었다.


민주화운동의 성공 이후 이런 학생회 모델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다. 대략적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가 뚜렷해진다. 대학에 산학 협력이 도입되었고, 대학이 기업들의 투자를 받으면서 건물이 지어졌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대학 운영상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되었다. 대학 밖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흐름과 조응해 대학의 민주주의 담론은 대학 기업화를 반대하며 대학의 변화에 저항하고 학생 자치의 민주적 기풍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의 요구와 운동이 마주칠 수 있는 주제를 잡아 투쟁하는 것에 가까웠다. 대학 밖에서는 노동자들, 특히 구조 조정을 당한 해고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학내에서는 청소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노조를 건설했다. 학생들의 다변화된 요구에 발맞춘 다양한 문화 사업과 복지 사업도 등장했다. 학과 통폐합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투쟁과 사학 비리 및 대학의 독단적 운영에 반대하는 투쟁은 대학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충실한 대표적인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중적인 폭발력을 가진 것은 단연 등록금 인상 반대 운동이었고, 2011년 전국의 등록금을 동결하는 성공을 거둔다. 이 흐름에서 주요 대립은 ‘이윤을 추구하는 대학’ 대 ‘학문과 자치가 존재하는 대학’의 구도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점점 더 학내 민주주의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학과나 동아리 같은 기층 단위 자체가 많이 와해되면서 기층-총학의 조직화 모델이 무너졌고, 전국 단위 학생 조직이었던 한국대학생연합 탈퇴가 이어졌다. 2013년도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은 반신자유주의 운동, 소수자 운동의 흐름과 대학생의 당사자 운동이 교차되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뒤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국정 농단을 규탄하는 운동이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이 흐름 속에서 다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입학금 폐지와 학생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등록금 반환 등의 요구가 대학 민주주의의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는 인권 담론이 확대되었다. 학내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게 차별받거나 억압받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페미니즘 담론이 더욱 활성화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상대로 한 젠더 폭력에 주목하게 되면서 반성폭력 운동에 힘이 실렸으며, 미투 운동까지 이어져 왔다. 고 서정민 박사의 죽음으로 대학 시간 강사들이 당하는 심각한 차별이 주목받았고, 오랜 진통 끝에 ‘강사법’이 통과되었지만 대학의 구조 조정 정세는 여전히 강사들의 고용과 처우를 위협하고 있다. 2015년 ‘인분 교수’ 사건으로 대학원생들의 인권 문제까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전국대학원총학생회 연합을 중심으로 한 대학원생 권리 장전과 인권센터 설립 요구가 관철되었고, 대학원생들의 노동권에 입각한 대학원생노동조합까지 등장했다. 대학에서는 등록금 동결 이후 비정규직이 대거 증가했는데, 차별에 반대하는 대학 내 무기 계약직, 대표적으로는 산학 협력단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시적 흐름을 나열하면서 드러내고 싶었던 점은 대학에서의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에 중점을 둔 담론에서 점점 구체적 시민 하나하나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 담론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과거에는 대학에서 힘을 모아서 사회를 바꾸려고 했다면, 지금은 대학 역시 자신이 속한 여러 사회 중 하나로서 바라보고 있고,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자신이 당장 처한 구체적 입장과 환경에 한정하여 사고하는 편이 주를 이룬다. 또한 등록금 투쟁이나 등록금 반환 투쟁에서 보이듯 학생들이 학내에서 갖는 권리를 한편으로는 소비자로서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학 차원에서는 교육 서비스를 제고하도록 하는 압박인 동시에 재정적인 압박으로 이어져서 긴축 정책을 추동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 시민성은 소비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대학에 속한 구성원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학생이 아닌 다른 학내 구성원과 (때로는 갈등적으로) 공유하는 민주적 시민권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이에 입각한 연대 활동 역시 공존한다. 이들의 시선은 자신의 공간에 맞춰져 있어서, 대학 민주주의 담론 중 사회적 연대도 학내의 다른 구성원과의 연대로 옮겨 가고 있다. 이는 대학 민주주의 논의가 점점 더 대학 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익을 다루는 것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할 수 있게 해 준다.



대학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가 포함하지 못했던 것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대학 민주주의의 흐름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현재의 학내 민주주의 담론으로는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구조 조정,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시스템 강제적 적용에 대응하기 힘들다.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정부에다가 요구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학부생 절대 규모의 축소와 파편화는, 운동과 담론이 학부생 각각의 소비자적 이익에 입각한 요구안으로 급격히 축소될 위험성을 품고 있다.


게다가 대학은 이런 학내 민주주의의 담론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왔다. 유학생을 유치하고 연구 개발 과제를 수주해서 대학의 규모를 키우고 평가 점수를 높이고자 했다. 유학생을 학내 민주주의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들도 분명히 있긴 했지만 미약했다. 연구 노동자 집단이 된 대학원생들은 아직 조직되지 못했다. 대학 내 많은 계약직 직원들과 학생들이 연대하려면 등록금 인하 이상의 전략이 나와 주어야 한다. 산학 협력을 넘어서, 대학이 아예 대학 구성원인 학생, 대학원생, 교수의 새로운 스타트업의 공간이 되는 변화 경향도 있다. 학내 민주주의 담론을 주도했던 인문 사회 계열의 학생이나 연구자들에게는 가시 범위에 쉽게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은 이미 대학의 주된 역할로 자리 잡았다.


이런 새로운 경향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 민주주의의 입장에서는 ‘대학 기업화’라는 이유로 반대했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민주주의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하지만 대학은 이미 변화했고 연구 개발과 사업화와 같은 일들은 이제 대학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되었다. 우리는 대학의 변화 속에 기존의 민주주의의 언어가 포함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묶어 낼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를 도모해서 새로운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실천을 도모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 조정은 어떤 정세와 함께 보아야 하는가


학령 인구 감소와 정부 재정의 문제

대학은 학령 인구 감소의 충격을 받기 시작했다. 국공립대조차 입시에서 정원대로 신입생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많은 대학이 향후 운영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대규모 구조 조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에 인구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에 있는 대학마저도 정원을 못 채우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그나마 있는 인구 유입의 가능성마저도 낮아지는 것으로 ‘지방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대학은 수도권 중심의 지역 편중도 심하여서 제대로 된 인수 합병마저 쉽지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아무리 기업화되었다고 해도, 교육 기관 자체가 수익성을 내는 사업이 아닌 상황에서, 정원 확보도 안 되는 사립대를 인수하여 운영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큰자본이 투입되어서 대학을 운영하는 모델이었던 포항공대, 성균관대, 중앙대의 경우 외에, 이 모델을 보고 더 많은 자본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수익을 내기보다는 지출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교육 기관이라는 특성상, 아예 대학의 영리화를 인정하고 폭발적인 등록금 인상을 감수할 것이 아니라면, 대안은 결국 정부 재정을 요구하는 선택지만 남는다. 그러나 4/5가량이 사립 대학인 현재의 상황에서, 재정 투입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이 변화했다

스마트폰 보급과 플랫폼 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영상 중심의 매체는 더욱 고도로 발전했고,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고도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노하우들이 폭발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대중의 지적 역량을 제고함과 동시에, 대중이 매체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알고리즘이 활용된 취향 맞춤형 자동 추천이 일반화되고,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편향적으로 취사선택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대중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역량은 오히려 잠식될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대학교육의 대중적 개방은 세계적인 추세로, 영어에 대한 접근성만 생겨도 해외 학술장에서 생산되는 강의와 세미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단기적으론 국내의 강의 노동을 하는 교수와 강사들에게 새로운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많은 학생이 국내의 강의보다 해외의 온라인 코스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 강의가 학원가를 강타했듯이, 대학교육 역시 해외의 교육 콘텐츠에 직접 노출되기 시작했다. 결국 대학이라는 공간의 필요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대학이 향후엔 어떤 지식을 생산해 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보 자체의 탐색과 습득의 문제를 넘어서, 지식을 다양하게 선별하고 습득하며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더욱 요청받고 있다.


환경의 변화와 산업의 변화

산업은 더욱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환경의 변화와 기후 위기 문제는 사회운동의 영역을 넘어서서 국제적/국가적 담론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적 전환은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것이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희망했거나 구상한 전망은 아닐지언정, 탄소 저감과 친환경적인 경제로의 전환은 분명 시대정신 수준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수많은 과거의 기술이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새로운 기술도, 현재의 수준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에, 훨씬 더 급격하고 빠른 기술 발전을 매일매일 요구받고 있다.


여기에 겹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무역을 넘어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산업적 역량 자체가 국가 경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와도 직접적인 연관을 맺게 되었다. 과학과 산업 기술의 의미가 그 자체의 과학적 진리나 기술력만을 뜻하지 않고, 어느 집단이 어떻게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외교 안보적 전략 무기가 되기도 하고 공익적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대학이 하고 있는 연구 개발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 생산은 보다 중요한 경제적 지위를 얻었으며, 과거에는 상품 생산이나 가치 생산의 영역 밖에 존재했던 것들도 매우 빠른 속도로 가치 생산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 테크 기업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부를 축적하여 이미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자본이 된 시대이다. 과거에는 국가의 역할로 여겨졌던 플랫폼 구축의 영역이 자본이 각축을 벌이는 장소로 변화했다. 지식과 데이터를 독점할 수 있는 플랫폼은 노동에 대한 착취를 넘어 대규모로 경제적 가치를 이전해 올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앞당긴 대학의 변화

한편, 2020년 닥쳐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대학에서는 고유의 물리적 공간이 가진 기능은 반강제적으로 힘을 잃었다. 학부 교육은 ‘지식 전달’로 그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고 말았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이란 공간을 통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와 그로 인한 새로운 도전의 계기들 역시 급격하게 사라졌다.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교류하며 동료를 사귀고 작은 사회를 운영해 보는 경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사회화의 기능이 급격하게 축소된 것이다. 오히려 학생과 대중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정치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연루와의 단절이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도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후 대학 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렸다.



지식의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 재생산의 배후지로서의 대학


대학의 민주주의와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거시적 변화를 굳이 함께 나열한 이유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모두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야 돌파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운 지식이란 과학 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식 역시 공동으로 해당된다.


대학은 기존의 지식을 교육을 통해 전달하는 역할과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 이를 지식의 생산과 분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이 사회의 변화에 필요한 지식을 만들고 습득하는 사회의 재생산 공간의 역할을 자임해야만 구조 조정 정세 속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대학이 가진 지식의 생산과 분배라는 역할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수많은 지적 훈련과 지적 노동이 요청되고 있고, 대학은 그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 재단의 자료를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최근 몇 년은 대학의 위기가 제기된 시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의 폭발적인 성장도 존재한다. 최근 5년간 대학의 연구비는 21% 증가했고, 과제 수도 12.2% 증가했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학이 수행하는 연구 개발을 위해 투입되는 연구비는 6조 5722억 원이다. 이는 국가 연구비와 민간 연구비를 합친 것인데, 과제 수로 따지면 10만 4,260개에 달한다.


2020년 대학 등록금 중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총액을 합친 금액이 8조 6043억 원이라는 현실에 비교해 보면, 연구비 규모는 이미 등록금 비중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령 인구 감소와 연구 개발비의 꾸준한 증액 추세를 고려하면 이 금액은 장기적으로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연구비의 비중은 공학 (44.9%), 의약학(22.0%), 자연 과학(17.4%)에 집중되어 있다. 중앙 정부는 공학(47.4%), 자연 과학(19.1%), 의약학(18.7%)순으로 집중하여 연구비를 지출하고 있고, 민간 연구비는 공학(42.0%), 의약학(38.6%), 자연 과학(11.1%)의 순서를 보이고 있다.


재정 지출이 인문 사회 과학과 예체능에는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는 국가의 연구 개발 전략이 경제 성장 전략과 연계되어서 이에 필요한 과학 기술 개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만 책임을 미루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미 대학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분야에서 새로운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노동과 활동을 대학 민주주의의 담론으로 흡수하여 의제화하지 못했다는 고등 교육운동의 한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언급한 대학 민주주의 담론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사회와 국가권력의 민주화라는 시대 정신을 대학이 품었을 때, 대학의 중요성은 인정받았고 사회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민주화라는 대의가 사라진 이후, 대학의 성격은 변화했고, 대학이 요구받는 역할 역시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학 민주화 담론은, 대학이 새롭게 요구받는 사회적 역할을 받아안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대학 안에서 시장화 반대의 논리, 최고 취약 계층을 위한다는 도덕주의적 민주주의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대학 안팎의 사회적 요구를 관통하여, 지식의 생산과 분배라는 역할을 대학이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그것을 수행할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새로운 연대의 틀을 사고해야 한다. 대학 민주화의 담론에 들어오지 못했던 숨어 있는 대학의 노동자들이 대학 민주화의 담론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안적 구조 조정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❶ 이상적 보편성을 매개로 한 정치의 작용을 설명하는 논문으로는 [강경덕(2017), 〈알튀세르 이데올로기 이론에 대한 비판 및 재구성〉, 《인문학연구》, 108, 49~92쪽] 참고.

❷ 알고리즘의 통치성과 지적인 구성적 역량의 상실에 관한 논의는 [베르나르 스티글러, 김지현·박성우·조형준 옮김(2019), 《자동화 사회 1 - 알고리즘 인문학과 노동의 미래》, 새물결] 참고.

❸ 한국연구재단(2001), 《2020년도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 분석보고서》, 55쪽.

❹ 한국연구재단(2021), 앞의 보고서, 57쪽.

❺ 한국연구재단(2021), 앞의 보고서,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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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에 실린 글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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