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특집] 한국 대학교육 팽창의 제도적 기원 (강석남)

특집 /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 대학교육 팽창의 제도적 기원 

- 1995년 5.31 교육 개혁과 1996년 신노사 관계 구상을 중심으로


강석남

kim3soo91@hanmail.net
본지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있다.




“한국에 대학이 너무 많다.” 학령 인구 감소, 대입 정원과 고졸자 수의 역전,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 대학들의 위기가 가시화되는 지금, 사실은 그 이전부터 반복되어 온 너무나 진부한 진단이다. 이제는 한번 이 뻔한 질문을 조금 비틀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의 대학은 언제부터 많았는가? 그리고 왜 많아졌는가?

‘언제부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로 요약되는 김영삼 정부의 1995년 5.31 교육 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엄격한 허가를 구해야 했던 대학 설립 인가제 대신 등장한 준칙주의는 일정한 기준만 충족하면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한 규제 완화책으로서 대학의 과도한 난립과 양적 팽창을 불러온 주범으로 여겨져 왔다. 그 결과 1995년 131개교였던 4년제 대학은 2005년 173개교로, 전문대학은 동기간 145개교에서 158개교로 증가했고, 고등교육 취학률은 1995년 55.1%에서 2000년 80.5%까지 폭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왜?’라는 질문은 남아 있다. 5.31 교육 개혁과 준칙주의는 대학교육 양적 팽창의 계기를 의미할 뿐 그 자체로 팽창이 제도화된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5.31 교육 개혁은 왜 하필 1995년의 그 시점에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통해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는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시점에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까닭은, 학령 인구 감소를 계기로 대학교육의 양적 축소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 대학 구조 조정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위해서다. 왜 팽창했는가에 대한 대답 없이 ‘어떻게’ 대학을 구조 조정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리 없다. 이 글은 ‘상대적 과잉 교육’의 관점에서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의 대학 정원 정책을 다룬 《오늘의 교육》 63호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 한국 교육 제도는 ‘인구’와 어떻게 만나 왔는가〉의 연장선상에서, 왜 5.31 교육 개혁이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을 야기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5.31 교육 개혁의 배경

 

5.31 교육 개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배경은 1997년 IMF 금융 위기 직전에 위치한 교육 개혁의 시점이다. 5.31 교육 개혁은 김영삼 정부가 1994년 설치한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의 주도로 1995년에 발표되는데, 이 시기는 이른바 ‘세계화 담론’으로 대표되는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적극 추진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발전 국가’로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개발 독재의 효력이 19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마무리와 함께 한계에 다다르고, 동시에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운동의 성장에 따른 인건비 상승에 의해 ‘저비용’의 경쟁 우위가 사라지면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구조적인 수익성 위기에 직면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각종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을 추진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5.31 교육 개혁과 1996년 신노사 관계 구상으로 출발한 노동법 개정이다. 따라서 5.31 교육 개혁은 “김영삼 정부의 통치 전략이자 ‘국가 경영 전략의 일환인 세계화 논리’로서 신자유주의로의 제도적 추진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두 번째 배경으로는 5.31 교육 개혁이 대표적인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 관료 박세일에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5.31 교육 개혁의 추진 과정에 대한 선행 연구들, 특히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당시 청와대 정책 기획 수석 비서관 박세일이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고 지목하고 있다. 박세일은 한국개발연구원KDI를 거쳐 1985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후 1987년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의 ‘경제학 개인 교습’을 맡으면서 김영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이후 1992년 14대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이른바 ‘한국병 치유’ 개념을 도입한 학자 자문 그룹의 핵심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새 대통령 김영삼에게 ‘세계화’라는 시대적 상징어와 이를 통한 국정 개혁의 전략을 주입”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박세일은 5.31 교육 개혁이 발표된 이후 1995년 12월 정책 기획 수석에서 새롭게 신설된 사회 복지 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1996년 ‘신노사 관계 구상’으로 구체화된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개혁도 사실상 주도한다. 때문에 5.31 교육 개혁은 신자유주의 개혁 관료 박세일을 매개로 당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개혁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배경으로는 5.31 교육 개혁이 당대에 예고된 ‘학령 인구의 감소’를 그 근거로 삼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세일 사단의 일원으로 교개위에 참여하고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내는 이주호는 1994년 KDI에서 〈인력수급전망과 고등교육 개혁과제〉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에 따르면 2003년부터 대학 정원과 고졸자 수의 역전이 전망된다. 그리고 이주호의 이러한 논의는 교개위의 연구 토론 자료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보고서 제1집》(1996) 등에 직접 인용되어 수록돼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세부 수치는 달라도 교육부 또한 2003년을 기점으로 대학 정원 역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실상 대학교육 학령 인구는 20년 전 태어난 인구의 연속이기 때문에 1990년대에 2000년대의 학령 인구 감소를 예상하는 것은 그리 새로울 일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교육 양적 팽창의 계기로 알려진 5.31 교육 개혁이 학령 인구 감소를 전제한 개혁이었다는 점, 즉 학령 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도 대학교육을 양적으로 팽창시킨 결과를 추동시킨 점이 역설적이었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5.31 교육 개혁은 당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박세일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5.31 교육 개혁이 ‘왜 역설적인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을 추동했는지’는 당시 교육 개혁과 함께 추진되었던 노동 개혁인 1996년 ‘신노사 관계 구상’과의 관계 속에서 규명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기획, 전개, 결과를 교육 개혁을 중심으로 노동 개혁과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이를 규명하고자 한다.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기획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는 변화는 20세기로부터 21세기로 넘어가는 단순한 세기적 변화가 아니다. 이 변화는 문명사적 변화이다. (……) 이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는 새로운 문명은 ‘정보화 사회’, ‘지식 사회’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부터 허리띠를 동여매고 대처하여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형태의 문명이다. (……) 세계화 전략은 이러한 역사적 대전환에 대응하여 설계된 국가 생존 전략이요, 발전 전략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명과 시대의 도전에 대하여 적합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교육개혁위원회,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 1995년 5월 31일

 

교육개혁위원회의 개혁 방안들은, ‘열린 교육 사회’, ‘평생 학습 사회’라는 교육 복지 사회의 기치 아래 (……) 한국 교육이 21세기의 ‘문명사적’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할 수 있도록 그 ‘판’을 새롭게 짜는 데 주력한 것이라 하겠다.

- 교육개혁위원회(1998), 《한국교육개혁백서》, 75쪽

 

우선 5.31 교육 개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5.31 교육 개혁은 당대의 변화를 정보화·지식화의 ‘문명사적 도전’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국가 생존 전략으로서 세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열린 교육 사회’와 ‘평생 학습 사회’를 제시한다. 여기서 5.31 교육 개혁이 표방하는 ‘평생 학습’이 다분히 신자유주의적 교육 원리라는 점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문명사적 도전으로 정의된 정보화·지식화의 맥락은 필연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을 전제함으로써 ‘유연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따라 급변하는 유연한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의 ‘적응’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원리로서 평생 학습은 한편으로는 적응을 위한 노동자의 교육 기회, 기간을 최대화하고,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 부적응해 퇴출된 노동력을 재교육시켜 다시금 노동 시장에 투입함으로써 ‘노동 시장 유연화’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5.31 교육 개혁은 대학교육(고등교육)과 초·중등교육을 모두 포함해 교육 분야 전체를 포괄하는 정책 개혁이었던 만큼, 전체 교육 개혁 내에서 대학교육 부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구분해야 한다. 5.31 교육 개혁안은 크게 9개의 하위 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대학교육 부문은 그중 2항인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로 구체화되어 있다. 교개위는 당시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점으로 ‘획일적인 대학 체제, 연구 여건과 학사 운영의 미진함, 각종 획일적 정부 통제에 의해 대학의 질적 수준이 세계 수준에 크게 미달함’을 지적한다. 이러한 획일적인 기존 대학 체제를 ‘세계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가 제시된다.

그렇다면 5.31 교육 개혁이 필요로 하는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는 어떻게 달성되는가? 그 구체적인 수단이 앞서 강조한 ‘대학 설립 준칙주의’다. 준칙주의를 통해 대학 시장으로의 진입 장벽이 최소화되면서 대학교육 공급자(대학) 간 시장 경쟁을 극대화하고, 대학교육 수요자(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공급자는 퇴출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 5.31 교육 개혁이 표방하는 개혁의 주요 골자라 할 수 있다. 시장 경쟁에 따라 공급자의 대학 시장 진입과 퇴출이 시장 논리에 의해 이뤄진다면, 자연히 적정한 수준으로의 ‘정원 조정 기능’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기저에 깔려 있다. 즉, 준칙주의를 통해 대학교육에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예상되는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적정한 대학교육의 양적 균형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다. 이러한 대학 설립 준칙주의는 이처럼 교육 부문에 전면적인 시장 경쟁 논리를 주입하는 정책으로,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이라고 널리 알려져 왔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인 ‘준칙주의’가 다시 어떻게 신자유주의 교육 원리로서 5.31 교육 개혁의 ‘평생 학습’ 개념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준칙주의가 표방하고 있는 대학교육 공급자 간 시장 경쟁은 결국 대학교육 수요자의 선택의 결과인데, 수요자의 선택이 어디에 준거하고 있는지는 준칙주의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교육의 수요자는 곧 노동 시장의 예비 공급자로, 대학을 졸업하면 노동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중첩된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을 통해 해소된다. 즉 ‘평생 학습’ 개념이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연화된 노동 시장에서 적응의 여부가 곧 노동 시장의 예비 공급자이자 대학교육의 수요자로서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준거가 되고, 대학교육 공급자인 대학 간의 경쟁은 다시 말해 노동 시장의 수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의 여부에 달리게 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동 시장의 수요에 적응하기 위한 개별 대학들의 노력의 결과가 곧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다.

따라서 5.31 교육 개혁이 추진하는 대학교육 개혁은 시장 경쟁이라는 수단만 교육 개혁의 내부에 존재할 뿐, 구체적으로 개별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다양화·특성화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대학교육이 어떤 지향으로 개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준거는 교육 부문의 외부인 노동 부문에 있다. 5.31 교육 개혁은 노동 부문 없이 스스로 완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 부문에 열려 있는 정책이자 자기 불완결적 정책이다. 때문에 5.31 교육 개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기에 추진되었던 노동 부문의 개혁에 주목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본격적인 노동 부문 개혁의 배경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특히 노동운동의 성장에 따른 자본의 고용 비용 상승, 그 결과 저비용의 비교 우위 효과의 상실로 인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있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자본은 노동 생산성 향상과 이윤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동 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을, 1987년 이후 성장한 노동운동은 특히 당시 비합법 단체였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 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을 요구했다. 덧붙여 김영삼 정부가 1993년 ‘신경제 5개년 계획’부터 추진하고 있었던 OECD 가입이 1996년 화두에 오르며 노동법 개정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OECD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복수 노조 금지, 제3자 개입 금지 등 노동법상 노동권 보장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1996년 4월 24일, 이른바 ‘신노사 관계 구상’이 발표되면서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 개정을 통한 노동 개혁이 본격화된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신노사 관계 구상을 주도한 박세일은 그간 비합법 단체라 배제되어 온 민주노총을 노동법 개정을 위한 노동-자본 간 사회적 합의 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 참여시킴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 결과 노개위는 정부의 중재 아래 노동과 자본이 노동 기본권과 노동 시장 유연화를 맞교환하는 기획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후 노개위 내에서의 노동-자본 간 합의 불발,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양대 노총의 총파업 투쟁과 노동법 재개정 및 쟁점 법안의 유예, 이후 IMF 금융 위기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노동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본래의 기획대로 진행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단 이 글에서는 노동 개혁과 교육 개혁의 관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기업인, 근로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급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기존의 제도와 관행, 의식과 발상으로는 21세기를 향한 경쟁에서 앞설 수 없습니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는 한나라의 국민, 특히 근로자들의 지식과 정보의 양과 기술의 수준이 그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21세기 국가 발전의 핵심 과제는 다기능 고기술의 근로자,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익숙한 근로자를 육성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직장을 노사 협동의 교육 훈련장으로, 그리고 평생교육의 학습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노사 관계가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 관계로 남아 있는 한 근로자들의 잠재력과 창의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없습니다.”

- 김영삼 대통령 연설문, 〈대통령의 신노사 관계 구상〉, 1996년 4월 24일


신노사 관계 구상이 처음 구체적으로 발표된 대통령 연설문은 당대의 세계적 변화를 정보화 시대로의 ‘문명사적 대전환’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국가의 대응으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적응한 고기술의 노동자 양성을 들고, 이를 위해 직장을 노사 협동과 평생교육의 학습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수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5.31 교육 개혁과의 밀접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실상 협동적 노사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연설문은 노동 개혁안이 아니라 앞서 인용한 5.31 교육 개혁안의 전문前文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문제 인식과 대안의 제시가 유사하다.

신노사 관계 구상은 ① 공동선 극대화의 원칙, ② 참여와 협력의 원칙, ③ 노사 자율과 책임의 원칙, ④ 교육 중시와 인간 존중의 원칙, ⑤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 원칙의 5개 원칙으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 중 ④ 교육 중시와 인간 존중의 원칙에서 교육 개혁과의 밀접한 친밀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④항에서 신노사 관계 구상은 ‘노사 공동의 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기술·지식·정보 수준을 높이는 교육과 훈련에 힘쓸 때 기업의 국제 경쟁력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임을 강조한다. 오히려 앞서 살펴본 노동 개혁 배경의 한 축이었던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④항보다 후순위에 위치한 ⑤항에서 언급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기획 단계의 신노사 관계 구상이 노동 개혁에서 교육 부문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5.31 교육 개혁과 신노사 관계 구상은 기획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상술한 대로 두 개혁 정책은 모두 당대의 시대적 변화를 정보화·지식화의 문명사적 전환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노동력의 확보를 통한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교육 개혁은 노동 시장의 수요에 준거한 대학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양적 균형을 추진하는 기획이다. 때문에 교육 개혁은 노동 부문으로 하여금 노동 시장 수요의 기준을 신호signal로 보내도록 하며, 이에 적응한 예비 노동자를 노동 시장에 공급하고자 한다. 동시에 노동 개혁은 교육 부문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노동력을 확보하여 노동 생산성의 향상을 추진하는 기획이다. 따라서 노동 개혁은 교육 부문으로 하여금 노동 시장 수요에 적응하기 위한 시장 경쟁을 하게 하고, 그 결과 시장 수요에 적응한 노동력을 고용함으로써 노동 시장 수요의 기준을 신호로 발신한다. 결과적으로 5.31 교육 개혁과 신노사 관계 구상의 기획은 노동 부문이 노동 시장 수요를 교육 부문에 발신하고, 교육 부문이 그 신호에 따라 시장 경쟁으로써 적응한 결과, 노동 시장에 시장 수요에 적응한 노동력을 공급함으로써 노동 부문의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는 ‘인과적인 선순환’ 관계를 맺도록 설계된 것이다.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전개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5.31 교육 개혁과 신노사 관계 구상으로부터 비롯된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이 이후에 한국 사회에 남긴 궤적이 ‘기획’ 단계에서 기대했던 바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준칙주의는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적정한 정원 조정 기능은커녕 과도한 대학 난립으로 인한 질적 저하의 주범이 되었고, 1997년 IMF 금융 위기 이후 노동 시장은 노사 협동과 교육을 통한 노동 생산성 향상은 여전히 요원한 채 노동 시장 유연화와 불안정 노동의 확대로 점철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육 개혁부터 살펴보자.

첫째로 5.31 교육 개혁의 준칙주의가 대학 간 경쟁을 활성화시키기보다 당시 이미 고착화된 대학 서열 체제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준칙주의는 5.31 교육 개혁이 표방한 바와 달리 대학 시장으로의 공급자 진입을 ‘완전히’ 자유롭게 열어 둘 수는 없었는데,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대학의 설립과 증원이 억제되는 규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실상 준칙주의로 대학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대학들은 지방에 위치한 사립대였고, 이들이 이미 고착화된 대학 서열 체제에서 수도권 대학들과 대등한 경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였다. 서열 체제에 따라 수도권 대학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상황에서 지방 사립대의 공급 확대는 오히려 수도권 대학들의 상대적 희소성을 더욱 강화시키며 특권적 지위를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둘째로 5.31 교육 개혁과 준칙주의는 대학교육 공급자의 자유로운 진입은 제도화했지만, ‘자유로운 퇴출’은 제도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대학교육에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으로의 자유로운 진입만큼 자유로운 퇴장(퇴출)도 가능해야 하는데, 특히 사립 대학은 사사로이 처분할 수 있는 개입 사업체가 아닌 공익 재단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제도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5.31 교육 개혁 내에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확신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대학을 어떻게 퇴출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전무하다. 당대에 대학 퇴출 관련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3년 「사립학교법」, 1998년 「고등교육법」에 대학 퇴출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법이 정한 사유 또는 정부 공권력에 의한 대학 퇴출만을 명시할 뿐 ‘대학 스스로 합병이나 자율적인 구조 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법 제도’는 미비했다.[11] 진입만 자유로워지고 퇴출을 위한 제도는 미비하니, 준칙주의는 본래 기대되었던 적절한 정원 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와 같이 5.31 교육 개혁의 준칙주의는 본래 표방해 왔던 바와 달리 시장 경쟁을 추동시키기는커녕 대학 서열 체제를 강화하는 데 머물렀고, 대학 퇴출 제도가 미비한 결과 대학 시장에 공급자들이 진입만 할 뿐 시장 경쟁에 따라 제대로 퇴출되지 못하면서 대학교육의 공급만 팽창하게 된다. 동시에 시장 경쟁이 성립되지 않으면서 개별 대학들이 스스로를 특성화할 유인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설치·운영 경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학과·계열의 증원·증과’의 경로로 획일적으로 수렴한다.[12] 결과적으로 5.31 교육 개혁의 준칙주의는 본래 목표했던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그리고 적정한 정원 조정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정반대의 결과로 ‘대학교육의 획일화된 양적 팽창’으로 귀결된다. 다만 여기서 해명되어야 할 부분은 2003년으로 예정된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양적 팽창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노동 부문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노동 개혁은 어떠했는가? 5.31 교육 개혁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재된 스스로의 한계로 예상된 실패를 맞이한 것과 달리 노동 개혁은 외부의 압력으로 경로가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은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연계를 기획한 박세일이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신노사 관계 구상이 발표되고 노개위가 출범한 1996년에 한국의 경상 수지 적자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자본을 중심으로 ‘경제 위기 담론’이 공세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다. 자본과 보수 언론은 자본에 보다 유리한 경제 위기를 배경 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노사 개혁이라는 정책 의제와 연계시킴으로써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13] 이러한 압력 속에서 청와대는 1996년 8월 8일 개각을 통해 경제 부총리와 경제 수석을 교체하는데, 이때 등장한 경제 수석 이석채를 중심으로 청와대 내에서 노동법 개정을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신호가 감지된다. 이석채가 등장한 이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박세일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노개위 내 자본과 노동의 갈등도 격화되며 사실상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하고, 이후의 과정은 앞서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날치기와 총파업 투쟁, 재개정으로 이어지며 사실상 본래 기획 단계에서 제기되었던 교육을 통한 노동 생산성의 향상이나 노동-자본 간 사회적 타협은 요원해진다.

실제로 신노사 관계 구상에서 강조되었던 교육을 통한 노동 생산성의 향상에 관한 정책적 노력들은 1996년 7월에 발표된 노개위의 노사 간 1차 합의안 등에서 발견되지만, 개각 이후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시도들은 자취를 감춘다. 개정 노동법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일부 법안들,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 「고용정책기본법」, 「고용보험법」 등 직업 능력 개발 사업에 대한 규정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규정들은 이직을 지원하는 재취업 능력 개발·직업 소개 사업에 머무른다는 점에서[14] 본래 기획에서 기대되었던 노동 개혁의 결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1996년 신노사 관계 구상으로 출발한 김영삼 정부의 노동 개혁은 1997년 IMF 금융 위기를 거쳐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의한 정리 해고제, 단시간 근로제, 파견 노동제 등 노동 시장의 수량적 유연화를 제도화한 노동법 개정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노동법 개정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에서 자본의 우위를 확인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고, 덕분에 금융 위기 상황에서 특히 대기업들은 대규모의 인력 감축과 노동 시장에서 고용 및 임금의 유연화로 노동 비용을 감축할 수 있었다.[15] 금융 위기와 맞물린 자본 우위의 노동 개혁은 그 이후 한국 사회의 궤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의 양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그에 따른 불안정 노동의 확대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노동 구조 조정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교육 개혁과 달리 박세일의 주도권 상실 이후 노동 개혁 과정에서 교육 부문과의 관계가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이 실제 역사적인 전개에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규명해 보고자 한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노동 개혁과 상대적 과잉 교육

 

상술한 바와 같이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연계에서 서로 다른 두 부문을 매개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수요자이자 노동 시장의 예비 공급자인 대학생들의 중첩된 정체성이다. 때문에 기획과 상이하게 전개된 두 개혁이 관계를 맺은 실제 메커니즘 또한 그 두 부문을 매개하는 대학생들의 현실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실제 역사적인 5.31 교육 개혁은 본래 목표한 바와 달리 획일적인 양적 팽창으로 귀결되면서 노동 시장에 대졸 노동력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공급하게 된다. 이때 팽창된 교육 부문에서 노동 시장으로 공급되는 노동력이 노동 시장의 질적인 수요를 충족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양적인 수요보다는 많이, 상대적으로 과잉 공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 대학 졸업자 임금 프리미엄의 장기 추세를 보면 다소간 변동이 있으나 1990년대 이후의 대졸 프리미엄이 1980년대에 비해 낮게 지속되고 있다.[16] 이미 1980년 7.30 교육 개혁의 졸업 정원제 이후부터 확인되었던, 노동 시장에 대졸 노동자가 과잉 공급되고 있는 추세[17]가 5.31 교육 개혁 이후 더욱 강화된 형태로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 사회 개인들의 학력이나 각급 학교 학생 정원이 노동 시장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이나 양적 수요를 상회하여 교육 부문과 노동 부문 사이에 상대적인 불일치가 발생하고 재생산되는 현상으로서의 ‘상대적 과잉 교육’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대졸 노동자에 대한 노동 시장의 수요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대졸 노동자가 노동 시장에 공급되는 것이다.

상대적 과잉 교육의 결과 노동 시장 내 공급자로서 개별 대졸 노동자들 간 경쟁은 심화되며 공급자의 협상력은 약화되지만, 수요자인 자본은 공급자 간 경쟁의 결과 고용 비용을 낮출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신노사 관계 구상과 노개위의 한 축이었던 자본의 요구인 노동법 개정을 통한 고용 비용의 감축과 일맥상통하는 효과다.

문제는 5.31 교육 개혁의 결과로서 노동 시장으로의 과잉 공급, 상대적 과잉 교육은 반드시 팽창된 대학의 양적 규모가 유지되어야 가능한데, 앞서 확인한 것처럼 2003년부터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정원과 고졸자의 역전 현상은 필연적으로 대학 규모의 축소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 난점은 신노사 관계 구상 이후 노동 시장 유연화의 제도화로 귀결된 노동법 개정이 해소해 준다.

IMF 금융 위기 직후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 시장이 유연화되고 불안정 노동이 확산되면서 노동 시장에 진입해야 할 대졸 예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학력 자격증’이 이전처럼 안정된 노동 시장에서의 지위로 맞교환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비록 상당 부분 허구적인 주장이었으나, 금융 위기를 계기로 이른바 ‘중산층 위기론’이 부상하였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가능해진 정리 해고를 통해 대기업·금융업 등의 관리직 종사자가 대규모 감원을 경험하면서, 이전까지의 학력 자격증이 노동 시장의 성공을 보장할 것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대로서 ‘교육 성공 신화’에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18]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 노동자들, 특히 대학 진학을 고려해야 하는 예비 대학생들은 학력 자격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여전히 대졸 학력 자격증이 하위의 학력 자격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산층 붕괴론이 부상하던 1998년 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대졸자들의 실업은 동시기 하위 학력 노동자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19] 즉, 불안정 노동의 압력이 학력에 따라 불평등하게 배분되었기 때문에, 한때 균열을 맞이했던 교육 성공 신화는 역설적으로 다시 공고해진 것이다.

그 결과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의 기획 단계에서 보여 준 인과적 순환과는 다른 메커니즘의 인과적 선순환이 발생한다. 과잉 팽창된 대학교육에 의한 대졸 노동자의 과잉 공급과 불안정 노동의 확대에 의한 안정된 일자리의 과소 공급은 노동 시장에서 예비 노동자들의 학력 자격증 수요를 증가시킨다.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 대졸 학력 자격증의 가치는 더욱 하락하는 ‘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학력 인플레이션은 더 많은 학력 자격증 수요를 불러일으키며, 팽창된 대학교육의 양적 규모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이에 따라 예고된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학교육은 그 양적 규모를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었는데, 한 세대 학령 인구의 절대적인 수는 감소할지라도, 학령 인구 중 대학 교육을 선택하는 상대적인 비율을 상승시킴으로써, 다시 말해 학령 인구의 감소를 유례없는 대학 진학률의 급격한 상승을 통해 상쇄시킴으로써 양적 규모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 시장 수요자로서의 자본은 공급자인 노동자들에 비해 우월한 협상력을 발휘하여 고용 비용을 감축시킴으로써 당대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으로 추동된 상대적 과잉 교육의 메커니즘은, 5.31 교육 개혁과 노동법 개정이 본래 의도했던 시장 논리의 전면화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주도해 노동 시장의 양적인 수요 공급을 반시장적인 과잉 공급으로 비틂으로써 가능했던 신자유주의적 노동 부문 구조 조정으로 귀결되었다.

 


노동 개혁 없는 대학 구조 조정의 한계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서두에서 제기했던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5.31 교육 개혁은 왜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는가? 이는 당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노동 부문 구조 조정에, 상대적 과잉 교육의 재생산을 통해 복무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5.31 교육 개혁은 본래 의도했던 시장 논리에 의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교육 개혁이지만, 역설적으로 노동 부문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복무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 개혁으로 평할 수 있다. 때문에 5.31 교육 개혁은 통상 교육 부문에 공급자와 수요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도를 도입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교육 원리를 강제했다는 통상적인 평가와 더불어, 오히려 반시장적인 정책 개혁으로서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행에 동원되었다는 면모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대학 체제의 제도적 기원으로서 노동 부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과 맞물린 5.31 교육 개혁은 현재의 대학 구조 조정 담론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 첫째로 학령 인구 감소 담론에 입각한 인구학적 대학 구조 조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확인한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 대학 체제의 양적 팽창이 절대적 과잉이 아닌 ‘상대적’ 과잉이라는 점이 중요한데,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대학이 양적 규모를 감축한다고 해서 상대적 과잉이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의 인구학적 담론에 입각한 대학 구조 조정은 상대적 과잉 교육에서 비롯되는 교육·노동 부문의 각종 부작용, 과도한 입시 경쟁, 대학교육의 왜곡, 청년 불안정 노동, 학력 인플레이션 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둘째는 인구학적 담론을 넘어선 대안적 대학 구조 조정 담론은 반드시 노동 시장과의 관계 속에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 체제의 제도적 기원이 노동 부문과 맞물리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되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대적 과잉 교육의 재생산이 여전히 유효한 시점에서 노동 부문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대학교육의 변혁이 가능할 리 없다. 이미 대학교육의 보편화, 노동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최종 학교로서의 대학이 공고해진 상황에서 노동 부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정부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이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 부문에 대한 개입 없이 오로지 교육 부문의 일방적 축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 부문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때다. 노동 부문과의 관계를 재설계하지 않는 대학 구조 조정은 대학을 둘러싼 교육 부문의 위기를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❶ 이 글은 석사 학위 논문 [강석남(2021),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행기 고등교육제도와 노동제도의 종속적 제도결합〉]의 문제의식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❷ 최강식·이보경(2017), 〈대학정원정책을 중심으로 본 한국의 대학구조개혁정책의 변화와 쟁점〉, 《교양교육연구》, 11(1), 313~363쪽.
❸ 김정인(2018),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❹ 신현석(1996), 〈현 정부의 교육개혁의 정치학 - 5.31 교육개혁안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정치학연구》, 3(1), 92~122쪽; 안병영·하연섭(2015),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 다산출판사.
❺ 김재웅(2015),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구조와 과정 - 5.31 교육개혁안을 중심으로〉, 《교육정치학연구》, 22(2), 55~80쪽; 안병영·하연섭(2015), 앞의 책.
❻ 최창근(2019), 《경세가 위공 박세일》, 위공박세일기념사업위원회; 유신희(2014), 〈김영삼 정권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정치과정〉,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학위 논문; 안병영·하연섭(2015), 앞의 책.
❼ 교육부(1998), 《대학정원 자율조정 안내 자료집》.
❽ 교육개혁위원회(1995a),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 제2차 대통령 보고서〉.
❾ 이주호(1994), 〈인력수급전망과 고등교육 개혁과제〉, 《한국개발연구》, 16(4); 안병영·하연섭(2015), 앞의 책.
❿ 유범상(2000), 〈한국의 노동정치와 공론장 -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1996~1999)〉,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박사 학위 논문.
[11] 류동훈(2020), 〈대학 폐쇄와 법인 해산의 사후조치방안 탐색 - 폐쇄된 사립대학과 해산법인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12] 교육개혁위원회(1995b),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 참고설명자료〉.
[13] 김남두(1999), 〈1997년 노동법 파동과 미디어담론의 이중적 의미생산 -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석사 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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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김형준(2016), 〈과잉교육경쟁의 역설 - 386세대 중산층 사례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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