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호[연재] 누구를 위해 ‘약물’은 존재하는가 (윤상원)

연재 / 누구를 위해 ‘특수’ 교육은 존재하는가 마지막 회


누구를 위해 ‘약물’은 존재하는가

- 약물 권하는 학교 사회 비판



윤상원

yadayada@hanmail.net

대한민국의, 시각 장애로 명명된 ‘특수’ 교사입니다.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특별요구교육 박사 학위 과정을 마쳤습니다. 모든 인간은 약점으로서 손상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 혹은 개인 발달의 역사는 이 손상에 대한 부단한 사회적 보완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손상을 발달의 계기가 아닌 장애로 만드는 문화 역사적 현실에 맞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저항하고자 합니다.




들어가며 : 

“민재는 오전 내 잠들어 있었다”


5년간 근무하던 한 중학교에서 이웃한 인문계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던 해의 일이다. 전근 간 고등학교에서 첫 출근 날, 설레는 마음으로 학습도움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덩치 큰 한 학생이 학습도움실 한편에 설치된 벤치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것도 아침부터 코를 드르릉 골며 말이다. 바로 발달장애라 명명된 한 학생인 민재(가명)였다. 이 광경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향해 특수교육 실무사 선생님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게 그냥 두셔요”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그렇게 해 왔다며 말이다. 자초지종을 들을 틈도 없이 수업 시작 종이 울렸고 나는 수업을 우선 진행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그제야 실무사 선생님께 왜 민재가 아침부터 자기 교실인 원적 학급에 있지 않고 학습도움실에서 잠을 자고 있으며, 왜 깨우지 않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유인즉 민재가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잠에 취해 도무지 일어나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깨우지 않는 이유는 민재가 깨어나는 순간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일어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민재는 잠들어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실무사 선생님께서 민재에게 점심 약을 챙겨 주었고, 점심 약을 먹은 민재는 다시금 하교 시간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민재와의 만남은 그렇게 잠자는 모습만을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민재와의 허무한 첫 만남을 뒤로 하며 퇴근하는 길에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를 위해서 민재는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약물은 과연 민재를 위한 것일까? 명분은 민재의 안전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실지로는 교사를 포함한 학교 사회 구성원들의 평안함 내지는 편리를 위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학교 사회가 민재에게 약물을 권했거나 강요한 것은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이 의문들에 대해 답해 보려 한다. 먼저,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항정신병 약물 처방의 문제점과 실태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약물 복용을 학교 사회가 왜 권유 내지는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민재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학교 사회가 권유하는 약물이 발달장애로 명명된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서로 앎’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서로 앎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들에게 항정신성 약물을 권하는 학교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감행했던 특수 교사로서 나의 고군분투기로 글을 맺으려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 글은 장애를 치료하거나 재활이 필요한 질병이 아닌 사회 활동에서 참여를 제약하는 장벽으로 바라보는 장애학과 일맥상통하는 광기학Mad Studies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밝힌다. 광기학은 광기를 질병이 아닌 지배적인 구조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사고, 기분, 행동 경험으로 바라본다. 이 학문에서 광기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정신의학 전문가에 의해 치료되거나 재활되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당사자의 삶의 경험에 귀 기울임으로써, 병원이 아닌 사회 속에서 그들이 광기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함을 강조한다. 즉, 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거나 약물을 강요하는 결정을 하는 데 전문가가 주도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실천 학문이다. 이와 같은 광기학의 관점에서 ‘누구를 위해 항정신병 약물은 존재하는지’를 논의함으로써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들에게 약물을 권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항정신병 약물 처방의 문제점과 복용 실태 :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46.8%가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 및 복용 중”


항정신병 약물은 환각, 망상, 우울, 불안, 불면, 강박, 공격성, 과잉 행동 등과 같은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처방되는 약물이다. 주로 환각 경험과 관련된 도파민이나 우울과 관련된 세로토닌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를 조절함으로써 환각이나 우울한 감정을 줄이는 데 사용한다. 하지만 항정신병 약물 처방에 두 가지 난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약물 처방의 근거가 되는 정신병 진단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정신병 진단 기준의 바이블로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신병 진단 시 채택하고 있는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을 활용하여 청소년의 행동과 감정을 진단했을 때, 그들의 약 80%는 정신병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듀크 의대 정신과 앨런 프랜시스 교수는 그의 저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프랜시스 교수는 DSM이 개정 작업을 거듭하면서 누구나 일시적이고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탈적 감정 및 행동들 다수를 정신병으로 규정하고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그 배후에 제약 회사로 대표되는 정신의학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주위 자극에 민감성이 높아 교사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교실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로 진단되곤 한다. ADHD는 1968년 DSM의 정신병 분류에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항정신병 약물의 일종인 리탈린과 애더럴 등의 처방 및 복용을 권고받게 된다. 미국 유아 및 청소년의 7% 이상이 ADHD 치료를 위해 리탈린이나 애더럴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ADHD 치료제에 대한 과잉 처방은 이를 생산하는 미국 제약업계에 어마어마한 수익을 안겨다 주었다. 한 사람의 행동은 맥락 의존적임에도 불구하고, 맥락 내지는 그 행동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문제를 너무나 쉽게 개인 내의 질병으로 환원시켜 얻어 낸 수익이라 할 수 있다.


정신병의 범주를 확대하여 ADHD를 정신병으로 분류하고, ADHD의 원인을 개인 내 질병으로 환원시켜 제약 회사의 배를 불리던 DSM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프랑스에서 일어난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 협회’는 DSM의 영향에 반대하여 대안적 분류 체계를 개발한다. 이 대안적 분류 체계는 ‘프랑스 아동기 및 청소년기 정신장애 진단 편람Classification Française des Troubles Mentaux de L'Enfant et de L'Adolescent, CFTMEA’으로, CFTMEA는 한 아이의 일탈적 행동을 그 아이 개인 내 질병으로 원인을 돌리고 치료하거나 재활하기보다 아이의 행동 근원이 되는 사회심리학적 원인을 찾아 다루는 데 초점을 둔다. 즉, ADHD가 책상 의자에 얌전히 앉아 교사의 말에 집중해야만 하는 근대 학교 사회라는 학습 맥락 속에서 탄생한 질병임을 인정한다. 나아가 ADHD를 한 아이가 근대 학교 사회 학습 환경에서 경험하는 심리·사회적 장벽 내지는 장애로 정의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ADHD로 진단된 아이들에 대한 처방은 약물이 아닌 학교 사회 혹은 교실 학습 환경에 대한 변화로 향한다. 이에 프랑스 유아 및 청소년의 0.2%만이 ADHD 치료를 위해 리탈린이나 애더럴을 복용한다. 7% 대 0.2%. 미국과 프랑스의 ADHD 치료를 위한 항정신병 약물 처방 비율에서의 차이는 인간 행동의 개인 정신병리화의 확대가 항정신병 약물의 과잉 처방과 그로 인한 제약 회사의 이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한 아이의 행위를 개인 내 질병으로 쉽게 환원시키는 것은 그 아이의 행위를 학교나 교실 환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반성하며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의 문을 닫는다.


항정신병 약물 처방의 두 번째 난점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다. 항정신병 약물은 주로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고성이나 공격성과 같은 부적응적 적응 행동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된다.⓯⓰ 이들의 부적응적 적응 행동에 대해 항정신병 약물이 일시적 진정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는 일부 연구는 있으나, 장기적 진정 효과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는 거의 없다. 이에 반해,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부작용들은 실로 다양하다.⓲⓳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졸음, 나른함, 멍함, 피로, 식욕 상승에 따른 체중 증가, 두통 등을 들 수 있다.⓴ 나아가 항정신병 약물의 장기 복용은 의지와 상관없는 틱 행동이 나타나는 지연성 운동 이상증, 심장 부정맥, 급성 심장마비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체 장기 기능 이상과 통증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한다.㉑㉒㉓ 이러함에도 정신의학계는 정신병 범주의 확대를 통해 정신병의 과잉 진단과 과잉 처방을 조장해 왔다. 정신병의 과잉 진단과 과잉 처방 현상은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 처방 비율은 전체 인구에 대한 처방 비율의 11배를 넘어선다고 한다. 우리나라 또한,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의 46.8%가 항정 신병 약물을 처방 및 복용 중이라고 한다.㉕ 더욱이 정신병 진단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이유로 발달장애라 명명된 당사자의 경험을 배제한 채, 그가 보이는 부적응적 적응 행동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보호자의 의견에만 기반하여 처방이 이루어지기 쉽다. 이렇게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신체 상태와는 무관하게 보호자의 불편 정도에 따라 약물의 종류와 강도를 결정함으로써 과잉 처방을 하게 된다. 즉, 정확한 진단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이 이루어지기에 발달장애로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의 처방이 도를 넘어서는 것이다.㉖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의 과잉 처방에 대한 우려와 균형 잡힌 약물 처방의 필요성에 대한 제기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우리로 치면 국민건강보험 공단과 같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국은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의 과잉 처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협회, 약사협회, 정신의학회, 전국 의과대학 및 간호대학, 심리학회와 협력하여 전국 캠페인을 벌였다.㉗ 캠페인의 슬로건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과잉 처방 중단’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영국 정신의학회의 지침은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하는 전문가는 명확한 정신병 진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 발달장애라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 처방을 적절하게 줄이거나 중단할 것을 권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캠페인과 지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발달장애로 명명된 이들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 처방 패턴의 변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본인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고치고 싶은 정신병 : 

“정신병 진단은 학생에 대한 교사로서 무책임함에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병이기 때문에 고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치고 싶어서 병인 것이다. 고치고 싶다는 욕망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나온다. 즉, 고통이 먼저 있고 그 고통을 제거하거나 치료하고 싶다는 요구가 나오고 나서야 ‘병’이라는 의사의 진단과 그에 대한 처방이 내려지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고통스러우며, 누가 고치고 싶어 하는가다. 신체적 질병은 대체로 본인이 고통스럽기에 스스로 고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신병은 주로 주위 사람들이 고통스러우므로 본인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고치고 싶어 한다.


나도 민재와의 관계에서 괴로울 때면 민재의 행동을 민재 내부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질병인 정신병으로 가두고 약물로 민재를 잠재우고 싶다는 요구가 마구 올라오곤 했다. 민재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번, 교실 앞 복도를 지나다가, 급식을 먹다가, 또는 수업을 듣다가도 주위 친구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 새~끼가, 지금 나 욕했냐?”라며 욕설을 내뱉곤 했다. 이럴 때면 주먹으로 책상을 치기도 하고 지나가는 친구들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친구들이 즐거워할 때, 고개 숙여 필기할 때, 계단을 오르는 민재를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밀 때와 같이 전혀 화를 내지 않을 상황에서도 화를 내곤 했다. 실무사 선생님이나 특수 교사인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민재에게 신경 정신과 전문의는 중간 수준 이상의 망상 증세를 보이는 중증도의 조현병 또는 정신 분열로 진단하고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했고 민재는 언제나 잠에 취한 채 학교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약물은 민재를 잠재움으로써 망상 증세의 일시적 소거에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민재가 망상 증세를 가지고 어떻게 타인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인 삶의 지혜 내지는 앎을 얻을 기회는 박탈하였다. 또한, 조현병이라는 병명은 민재와 만나는 주요한 한 타인으로서 내가 민재의 망상적 행동의 원인을 개인 내의 생물학적 기질 탓으로 돌리기 딱 좋았다. 그렇게 민재의 행위는 더 이상 교육적 영역이 아닌 의료적 영역의 문제가 되었다. 정신병 진단은 학생의 삶의 경험 속에서 그들의 행위를 해석하고 이해하고자 애써야 하는 교사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민재와 나 모두의 앎의 여정을 위해 함께 앓아 보기로 했다 : 

“이해하려 하면 불이 났을 때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는 일상의 지혜를 얻게 된다”


앓는 자에게 묻지 않고 약을 지을 수는 없다.

고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고 앓는 자 자신이다.

앎은 앓음이다. 철학도 종교도 앓는 소리다.

앎이 나음이다.

제 병 저만이 고친다.

의사는 중간에서 공연히 이름을 도둑질할 뿐이다.

학자도 종교가도 정치가도 의사다.

씨알은 앓는 존재다. 알이 들자고 앓는다.

알이 드는 날 앎이 올 것이다. 


정신병이란 진단명 뒤에 숨어 더 이상 앎에 대한 책임을 방기할 수 없었다. 어떤 누구도 정신병이라는 의료적 진단명에 근거하여 각종 약물 내지는 격리의 방식으로 이들의 앎을 위한 앓음알이를 빼앗을 권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배워 왔던 문화 규범 속에 (가령 교사와 학생 사이의 예절이라든지,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같은 2022년 현재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유효한 규범들에) 한 아이의 행동을 가둘 수 없기에 괴로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을 이유로 한 아이를 쉽사리 질병으로 분류하고 진단하며 약물을 통해 그 목소리를 잠재우는 것은 그 아이와 교사 모두에게 어떤 앎도 일어날 수 없도록 차단할 뿐이다.


그래서 민재와 나 사이의 앎의 여정을 위해 함께 앓아 보기로 했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알아 간다는 것은 불편함과 고통을 경험하는 과정이며, 그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할 때 ‘앎’이 가능하니 말이다.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함석헌 선생에 따르면, 우리말의 ‘앎’ 은 ‘앓음’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바로 알이다. 무언가 안다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내고야 가능하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앓는 과정으로서, 불편을 차단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재와의 불편을 감수해 보기로 했다. 우선 적어도 등교하는 평일 아침 및 점심에는 약복용을 중단하기로 부모님과 협의하여 결정했다. 서로 배움과 앎을 위한 민재와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먼저 민재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어떤 일의 전후 사정에 대해 이해가 되면 화낼 일도 없어진다. 하지만 오해를 하기 시작하면 분노와 증오가 싹트기 마련이다. 나아가 이해하려 하면 이해가 되지만 오해하려 하면 한없이 오해가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오해가 더 큰 오해를 낳아 미워하고 증오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진된다. 내가 민재를 이해한다면 이 에너지는 민재와 나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민재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조용한 아이였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괴물(?)이 되었을까? 민재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다른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집단 폭력을 당했다. 민재에게 학교의 경험은 자신을 향한 온갖 욕설과 폭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폭력의 기억들이 순간순간 떠오를 때면 조그만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해하며 즉각적으로 대응하게끔 만드는 것은 아닐까. 괴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확히 말하면 민재가 괴물이 아니라 학교 사회라는 괴물이 민재를 괴물로 만든 것이다. 비록 현재 민재의 욕설과 분노가 민재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 근원에는 민재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과거의 아픈 경험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재의 분노와 욕설이 느닷없는 행동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니 민재에게서 분노의 불꽃이 튀더라도 덤덤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내가 교사로서 학생의 행동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할수록 나의 분노가 커지고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후 오히려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민재의 마음에 불꽃이 튀어 오를 때면 담담하게 주변 상황을 설명하거나 때론 유머로 찬물을 끼얹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민재와 나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불이 났을 땐 찬물을 끼얹어야 하는 법이지, 맞불로 대응하면 서로를 태우는 일이 되어 결국 남는 것은 더 큰화마와 상처뿐이니 말이다.


어느 날 필기하다 말고 (과거 친구에게 맞은 기억이 났는지) 민재가 입을 삐죽삐죽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찰나를 놓칠세라 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민재에게 말했다.


민재 : (짝을 향해 입을 좌우로 삐죽거리며 눈을 살짝 뒤집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이~ 쉬!”

나 : (담담하게) “짝이 지금 열심히 필기하고 있네, 민재도 이거 적어 볼까?” 

민재 : (한결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아~~ 네~.”


민재는 다시금 평온을 찾고 필기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을 놓치면 민재는 옆에 앉은 친구를 주먹으로 위협하거나 그 친구의 어깨를 내리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민재에게 필요한 건 현재 민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과거와 무관한 상황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 주는 것이었다.


또한, 친구들이 민재에게 호의를 보임에도 민재의 미간이 찡그려지는 순간 나는 민재에게 다음과 같이 미리 선수를 치며 말한다.


탁구 : (민재에게 딸기 우유를 내밀며) “자, 민재야 먹어!” 

민재 : (입을 좌우로 삐죽거리며 눈을 살짝 뒤집더니 잠시 침묵) …….

나 : (얼른 말문을 연다) “민재 먹으라고 탁구가 매점에서 딸기 우유 사 왔네, 고맙지?” 

민재 : (표정이 밝아지며) “어 고마워, 탁구야!”


한편 유머로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찬물 끼얹기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민재 : (무심코 지나가는 친구를 째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이 새끼가~, 니가 그랬냐?” 

나 : (태연하게 웃으며) “민재 아들 낳았어?”

민재 : (엉뚱하다는 듯 나를 향해) “아니요, 그건 왜 물어요?” 

나 : (다시 웃으며) “새끼라고 하니까? 새끼는 자식을 뜻하잖아.” 

민재 : (입을 크게 벌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나 : “그럼 아들 놓기 전까지는 친구에게 새끼라고 말하면 될까?” 

민재 : (웃으며 큰 목소리로) “아니요, 킥킥킥.”


그렇게 민재의 표정에서 조그마한 불꽃이 튈 것 같으면 바로 그 상황이 민재를 위협하는 상황이 아님을 알리는 것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놀림의 표현에 대해 유머로 응대하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이 오해하면 화가 난다. 하지만 이해하려 들면 화가 사그라들 뿐 아니라 대화 가능성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물론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며 소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불이 났을 때는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는 일상의 지혜를 체득하게 된다. 그러한 지혜로 민재와 대화해 나가다 보면 과거의 남겨진 불씨가 현재로 튀지 않게 함으로써 현재 상황에 맞는 적응 행동을 위한 생각의 자원이 민재에게도 쌓이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그렇게 우리 서로가 찬물 끼얹기를 통해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패스트 시대에 일상의 지혜를 위해 필요한 것, 불편함과 공존 : 

“어떻게 불편함을 통해 함께 아파하며 새로운 지혜와 궁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루만 지나도 새로운 전자기기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무슨 물건이든 고장이 나면 쉽사리 수리를 맡기거나 새로 사면 되는 패스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사람의 마음 내지는 행동에 다름이나 이상이 느껴질 때, 마치 물건을 AS 맡기듯, 그런 마음을 신속히 치료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전문가를 찾곤 한다. 전문가에 의한 AS, 즉 항정신병 약물 등을 통해서도 치료되기 어렵다 여겨지면 정신병원과 같은 시설로 분리하려 한다. 그렇게 멈춤 없는 패스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문제도 바쁘다는 이유로 물건 다루듯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아예 나와는 무관한 일로 무책임하게 가두어 버리는 시대 말이다. 그러한 최첨단과 지식 범람의 시대에 오히려 삶의 불편함을 함께 앓으며 앎을 깨닫게 되는 일상의 궁리는 사라져 가고 있다. 지식의 범람 속에 지혜의 위축이라는 모순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모순의 시대에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교사라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불편함을 쉽사리 정신의학 전문가에게 떠넘기거나 항정신병 약물을 통해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가두거나 분리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함을 통해 함께 아파하며 새로운 지혜와 궁리를 얻고자 노력할 것인가?’ 발달장애라 명명된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며 일상을 살아가는 특수 교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❶ 국공립 학교 교사는 3~5년에 한 번 학교를 옮겨야 한다.

❷ 학습도움실은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라 명명된 학생의 학습 및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교내 특별실이다.

❸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에 따르면, 발달장애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일컫는다.

❹ 특수교육 실무사는 장애라 명명된 학생들의 학교내 학습과 생활을 보조하는 선생님을 일컫는다.

❺ 법적으로 원래 소속된 학급으로 통합 학급을 일컫는다.

❻ 윤상원, 〈학교 사회를 향한 장애학의 도전〉, 《오늘의 교육》, 54호(2020년 1·2월), 183~195쪽.

❼ Le François, B. A.,et al.(Eds.)(2013), Mad matters: A critical reader in Canadian mad studies, Canadian Scholars’ Press.

❽ 대한신경정신의학회(2005), 《신경정신의학》, 중앙문화사.

❾ 앨런 프랜시스, 김명남 옮김(2014),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사이언스북스.

❿ 프랜시스 교수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주관하는 DSM 편찬 작업에 핵심 편집자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⓫ Vallée, M.(2019), The countervailing forces behind France's low Ritalin consumption, Social Science & Medicine, 238, 112492.

⓬ Visser, S. N., et al.(2014), Trends in the parent report of health care provider-diagnosed and medicated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United States, 2003–2011,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 Adolescent Psychiatry, 53(1), pp. 34-46.

⓭ Wedge, M.(2012), Do French Kids Have ADHD?: France's holistic, psychosocial approach to treating ADHD-type symptoms, Psychological Today, 8.

⓮ Kovess, V., et al.(2015), Psychotropic medication use in French children and adolescents, Journal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opharmacology, 25(2), pp. 168-175

⓯ 흔히들 문제 행동이라 알려진 행동은 알고 보면 표면상으로는 부적응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모두가 특정 상황 내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유기체는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도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 단지, 자신이 살아 가는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적응의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발달장애로 명명된 아이들도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 사이에 상당한 불일치가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는 부적응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불일치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형태의 소통 행위를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학교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인사를 걸지 않다가 한 번 친구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니 모두가 (그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반응하는 상황을 경험한 이 학생에게 머리채 잡아당기기는 비록 부적응적으로 보일지라도 인사를 위한 적응 행동이 될 수 있다. 이 학생의 행위는 자신을 무시하는 부적응적 학교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⓰ Sheehan. R., et al.(2017), Psychotropic prescribing in people with intellectual disability and challenging behaviour, Bmj, 358.

⓱ Henderson, A., et al.(2020), Changes over a decade in psychotropic prescribing for people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prospective cohort study, BMJ open, 10(9), p. e036862.

⓲ National Collaborating Centre for Mental Health(2015), Challenging Behaviour and Learning Disabilities: Prevention and Interventions for People with Learning Disabilities Whose Behaviour Challenges,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NICE).

⓳ Scheifes, A., et al.(2011), Representation of people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in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on antipsychotic treatment for behavioural problems, Journal of Intellectual Disability Research, 55(7), pp. 650-664.

⓴ Unwin, G. L. & Deb, S.(2011), Efficacy of atypical antipsychotic medication in the management of behaviour problems in children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and borderline intelligence: a systematic review, Research in developmental disabilities, 32(6), pp. 2121–2133.

㉑ Glassman, A. H. & Bigger, J. T.(2001), Antipsychotic drugs: prolonged QTc interval, torsade de pointes, and sudden death,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58(11), pp.1774–1782.

㉒ Cornett, E. M., et al.(2017), Medication-Induced Tardive Dyskinesia: A Review and Update, The Ochsner journal, 17(2), pp.162–174.

㉓ Stroup, T. S. & Gray, N.(2018), Management of common adverse effects of antipsychotic medications, World psychiatry : official journal of the World Psychiatric Association (WPA), 17(3), pp. 341–356.

㉔ Park, S. Y., et al.(2016), Antipsychotic use trends in youth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and/or intellectual disability: a metaanalysis,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 Adolescent Psychiatry, 55(6), pp.456-468.

㉕ 신현기(2019), 〈지적장애인의 이중 진단과 정신건강 문제의 고찰〉, 《지적장애연구》, 21(3), 103~125쪽.

㉖ 신현기(2019), 위의 논문

㉗ Branford, D., et al.(2018), Stopping overmedication of people with intellectual disability, autism or both (STOMP) in England Part 1–history and background of STOMP, Advances in Mental Health and Intellectual Disabilities.       

㉘ Branford , D., et al.(2018), 위의 문헌.

㉙ 박동섭(2021), 《동사로 살다 - 관계와 실체를 오가는 삶》, 빨간소금.

㉚ 박동섭(2021), 위의 책.

㉛ 함석헌(1993), 《인간혁명의 철학》, 한길사,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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